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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양주와 충주의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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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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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5. 양州와 忠州의 싸움
 
 
 

1

 
4
도체찰사 유 성룡은 신 입(申砬)을 불러서 계획을 물었다. 신 입은 이 일과 아울러 당대 명장이었다.
 
5
『대감은 무신이 아니니까, 쓸 만한 장수를 가리어서 이 일의 뒤를 돕게 하시는 것이 양책이지요.』
 
6
하고, 신 입은 자기가 나서고 싶은 뜻을 보였다.
 
7
『적군을 막을 방략이 있소?』
 
8
하고, 유 성룡이가 물으매, 신 입은 자신 있는 듯이 웃으며,
 
9
『당대 명장 신 입이 적군을 못 무찌르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아니하겠소.』
 
10
하고, 장담하였다.
 
11
유 성룡은 그 뜻을 장하게 여겨서 곧 병조 판서 김 응남과 함께 왕께 뵈옵고 신 입으로 도순변사를 하시기를 청하였다.
 
12
신 입은 독자도 기억하시려니와 수군 전페 논자다. 제승 방략(制勝方略)이라는 극히 악한 계획을 세우는 데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제긍 방략이라는 것은 일본군과 싸우는 데는 바다에서 마지 말고 육지에 상륙시켜 놓고 싸우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군은 수전에 익으니 수전으로는 당하기 어려운즉 육지에 끌어 올려 놓고 우리 편에서 능한 육전으로 싸우자는 데 있다.
 
13
이 제승 방략이라는 것이 조정에서 결정되매, 의주 목사 김 여물(金汝岉)을 적을 바다에서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육지에 내리는 길에도 막지 아니하고 내지로 끌어 들여서 싸운다는 것이 무슨 어리석은 소리냐 하고 분개하다가 묘의를 비방하였다는 혐의로 급부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14
신 입이 도순변사의 명을 받아 가지고 길을 떠나려 하여 왕께 하직 숙배를 할 때에, 왕은,
 
15
『경은 무슨 계교로 적군을 막으려 하나뇨?』
 
16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신 입은,
 
17
『염려 없소.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르오.』
 
18
하고, 아뢰었다.
 
19
『무엇을 보고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른다 하는가?』
 
20
하는 왕의 두 번째 물음에 신 입은,
 
21
『적군이 부산에 내리는 길로 내지로 들어오기만 힘쓰니, 외로운 군사를 끌고 깊이 들어가서 패하지아니하는 자가 없소. 이런 것을 모르는 적군이니 두려울 것이 없는 줄로 아뢰오. 소신이 재주 없사와도 불출 순일에 적을 평정하겠사오니 상감 염려 부리시오.』
 
22
하고, 극히 쉽게 대답하였다. 왕은 못마땅히 여기는 빛으로,
 
23
변 협(邊協)이 맹양 이르기를
 
24
『왜가 가장 어렵다 하거든 경의 말이 어찌 그리 쉽느뇨. 삼가라.』
 
25
손수 보검을 신 입에게 주며,
 
26
『이 일 이하로 명을 좇지 아니하는 자가 있거든 이 검을 쓰라.』
 
27
하였다. 왕은 신 입을 보내고 그의 경솔하고 생각이 깊지 못함을 근심하여 여러 번 변협(邊協)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신 입은 빈청에 나와 영의정 이 산해, 좌의정 유 성룡, 우의정 이 양원 등에게 하직하고 바로 계하에 내리겨 할 때에 웬일인지 신 입의 머리에 쓴 사모가 땅에 떨어졌다. 사모를 다시 쓰고 의기 양양하게 길을 떠났으나 이것을 본 사람들은 다 불길한 징조나 아닌가 하여 실색히였다.
 
 
 

2

 
29
순변사 이일, 도순변사 신 입을 적군이 오는 곳으로 파견한 조정과 서울 백성들은 날마다 첩보(싸움에 이겼다는 기별) 오기만 기다렸다.
 
30
어 문경을 지나 사월 이십 이일에 경상도 상주목(尙州牧)에 도달하였다. 이 일이가 상주에 온 까닭은 이러하다.
 
31
부산서 서울로 오는 데는 길이 셋이 있으니, 이것을 삼로하고 한다. 일찌기 대장 변 협이,
 
32
『(     .   .   . (되와 왜가 세 길 형세를 잘 아니 앞날 근심이 말할 수 없다.)』
 
33
고 한「세 길」이란 것이 이것이었다. 과연 일본군은 삼로의 형세를 잘 알아서 군을 셋으로 갈라 제 일군은 소서 행장(평 행장 평이란 성은 그때 일본 장수는 누구나 일컫는 것이었다.)이 주장되고, 이군은 가등 청정(加藤淸正)이 주장이 되고, 제 삼군은 혹전 장정(惑田長政)이 주장이 되었다. 그래서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제 일군인 소서 행장의 군사는 사월 십 삼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 동래, 양산, 밀양, 청도를 거쳐 지금 순변사 이 일이가 막으려는 상주(尙州)로 향하니 이것이 가운데 길이요, 제 이군인 가등 청정군은 사월 십 칠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왼편 길로 향하고, 제 삼군인 혹전 장정군은 사월 십구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내려 김해를 점령한 것이니, 이것이 오른편 길로 향한 것이다. 가운데 길이라 함은 부산에서 양산(梁山), 밀양(密陽), 청도(淸道), 대구(大邱), 인동(仁同), 선산(善山)을 거쳐 상주(尙州), 문경(聞慶)을 지나 새재(새재)를 넘어서 서울로 오는 길이요, 왼편 길이라 함은 곧 경상 좌도의 길이라는 뜻이니, 부산에서 기장(機張), 울산(蔚山), 경주(慶州), 영천(永川), 신녕(新寧), 의홍(義홍)을 겨쳐 용궁강(龍宮江)을 건너 대재(㐲載)를 넘어서 서울로 오는 길이요, 오른편 길이라 함은 주로 경상 우도의 길이란 말이니, 김해에서 성주(星州), 무현(茂縣) 강을 건너 지례(知禮), 김산(金山)을 거쳐 추풍령(秋風嶺)을 넘어 충청도 영동(永同)을 지나서 서울에 오는 길이다. 이제 이 일은 이 세 길 중에 가운데 길로 적군이 올 것을 예상하고 상주에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상주에 들어 온다는 사월 이십 이일데 그를 나와 맞는 이는 오직 상주 판관(尙州判官) 권 길(權吉)뿐이었다.
 
34
『목사(牧使)는 어디 가고 아니 나왔느냐?』
 
35
하고, 이 일은 판관 권 길을 보고 호령하였다. 이 일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희나, 눈초리가 우으로 찢어지고, 목소리가 크고, 과연 장수의 위엄이 있었다. 더구나 이날은 영남의 거진인 상주목에 도달하는 날이라 하여 중로에 함창(咸昌)에서 부터 갑주에 위의를 갖추어 그 위엄이 만군을 누를 듯하고 수종하는 제장들도 그와 같았다. 판관 권 길은 두려움을 보이며,
 
36
『사또께서는 상사또 지영한다 하옵고 아침 일찍 군사 이백명을 다 데리고 함창으로 간다 하옵고 떠났소.』
 
37
하고, 아뢰었다. 과연 권 길은 영문 장교, 군노 수십명을 거느렸을 뿐이었다.
 
38
『목사가 나를 맞으러 떠났어?』
 
39
하고, 순변사는 일변 노하고 일변 의심하였다.
 
40
『과연 그러하오.』
 
41
하고, 판관 권 길은 사실대로 아뢰인 것이다. 상주 목사(尙州牧師) 김 해(金海)는 이 일을 맞으러간다 칭하고 군사 이백명을 거느리고 상주 서문을 나갔으나 중로에서 군사들을 쉬라 하고 김 해는 단기로 잠간 다녀 오마 하고는 어디로 가 버리고 말았다. 군사들은 목사가 낮이 기울도록 아니 돌아 오는 것을 보고는 난을 일으켜 병기를 가진 채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3

 
43
『군사는 다 어찌 되었느냐?』
 
44
하고, 순변사 이 일은 더욱 노발이 충관하였다.
 
45
『군사 없는 것은 상주만이 아니요, 영남 각 읍에 군사라고 있는 것은 더러는 대구로 가옵고, 더러는 상사또 내려 오시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흩어져 산으로 달아나옵고, 어느 고을에 가든지 남은 백성이라고는 늙은이나 병신뿐이오니 상주에 군사 없는 것이 소인의 죄가 아니요.』
 
46
하고, 판관 권 길은 굴지 않고 말하였다. 권 길의 말은 사실이었다.
 
47
진관제(鎭官制)가 폐하고 각 읍 군사가 도원수부(都元帥府)에 속하게 된 뒤로는 도원수부에서 주장이 내려 오기 전에는 각 읍 군사는 무장지졸이 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산 동래가 적군에게 함몰되었다는 기별을 듣고 영남 각 읍에서는 소속 군사를 혹은 백, 혹은 이백씩 모아 놓고 기다렸으니 십여 일이 되어도 장수는 오지 아니하니 부득이 더러는 대구 감영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새로 난 순변사 이 일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 일이가 서울서 군사가 모집되지 아니하여서 삼 일을 지체하는 동안에 다 흩어져 피난을 가고 만 것이었다. 그때 군사 제도로 말하면 오늘날 징병 제도와 같아서 남자로 나서 정년에 달하면 누구나 양반이나 상놈을 물론하고 국족까지도 군사가 되는 제도였지만, 이백년 태평으로 내려 오는 동안에 제도가 해이해져서 양반의 자식, 돈 있는 자의 자식은 거짓 병신도 되고 늙은 부모의 외아들로 호적을 고치기도 하여 군사에 빠지고 오직 미천한 사람만이 군사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권 길의 말이 옳지마는 군사가 흩어진 책임을 이 일에게 들리는 것이 괘씸해서 이 일은,
 
48
『판관을 내어 베이라.』
 
49
하고, 호령을 하였다. 군노들은 판관 권 길에게 달려들었다. 권 길은 잠간 할말이 있다 하고 이 일에게,
 
50
『소인이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오마는 소인마저 죽으면 상사또는 군사 한 명 없이 무엇으로 적군을 막으시려오? 소인도 오래 국은을 받았으나 만일을 갚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 되오. 오늘 밤만 소인을 살려 두시면 천명 군사 하나는 모아 보리다. 그러거든 내일 아침에 소인을 죽이셔도 늦지 아니하오.』
 
51
하였다. 이 일은 권 길의 말을 좇지 아니할 수 없었다. 권 길은 이날 밤에 상주의 육방 관속을 총출동을 시켜서 인근 사십리 이내에서 모두 구백명의 군사를 모집하였다.
 
52
군사라야 아무 조련도 받아 보지 못한 농부들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도 기운이 다 죽지 아니하여 서울서 큰 장수가 왔단 말을 듣고 모여 든 것이었다. 이 일은 상주에서 달아나고 남은 기생을 셋이나 한꺼번에 수청을 들여 밤을 새우고 아침 늦게야 벌겋게 된 눈을 가지고 일어났다.
 
53
권 길은 새벽부터 대령하고 있다가 이 일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곧 구백여 명의 군사 명부를 드렸다.
 
54
낮이 지난 뒤에야 이 일은 갑주에 위의를 갖추고 취병장에 나와서 신모군을 검열하고 부하를 시켜 그들에게 활 쏘기와 칼 쓰기 창 쓰기며, 법대로 지퇴하는 방법을 조련하기를 명령하고, 판관 권 길을 불러 이렇게 군사가 있으면서도 미리 모아서 조련하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공사 태만한 죄로 장 팔십에 처하였다. 이것이 목사 김 해의 책임일지언정 판관 권 길의 책임은 아니었다. 이 일의 이 처분을 보고 권 길 이하로 다순변사의 밝지 못함을 원망하였다.
 
 
 

4

 
56
권 길은 군사를 모집한 것이 도리어 죄가 되어서 장 팔십을 얻어맞았다. 군사를 조련할 때에도 이 일은 군사를 사랑하는 정이 조금도 없고 군사를 대하기를 마치 개 돼지 대하듯하여 한나절 동안에 두 사람이 베임을 당하고 매를 맞은 군사는 수효를 몰랐다. 마치 장난삼아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 듯하였다. 군사를 조련하여 날이 거의 석양이 된 때에 개녕(開寧) 사람 하나가 달려 와서 일본 군사가 선산(善山)을 점령하였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 일은 그 개녕 사람을 불러서 앞에 세우고,
 
57
『네 이놈, 죽일 놈! 십 사일에 일본 군사가 동래에 왔다 하거든 아무리 빨리 오기로 청도, 경산, 대구, 인동은 다 어찌하고 벌써 선산에를 온단 말이냐? 이놈 헛소문을 내어서 인심을 소동하는 놈이다. 』
 
58
하고, 곧 목을 베어 효시하라고 명하였다. 개녕 백성은 적군이 선산에 들어온 것을 보고 그래도 이 기별을 하루라도 속히 순변사에게 알리고자 하여 허위 단심으로 와서 고한 것인데 도리어 죄가 되어서 목을 잃게 되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이일을 향하여,
 
59
『소인이 추호인들 거짓 말씀을 아뢸리가 있소. 하루 동안 소인을 살려 두셨다가 만일 내일 안으로 일본 군사가 상주에 들어오지를 아니하거든 그때 죽여 주시오.』
 
60
하였다. 이 일은 웃고 그 개녕 백성을 내려 가두라 하였다. 이튿날 상주 판관 권 길이 새로 모집한 군사 구백여명은 쥐와 좀이 먹다가 남겨 놓은 낡은 군복을 입고 머리에는 퍼런 수건을 동이고 전통을 메이고 활을 들고, 칼 차는 자는 칼을 차고, 창 드는 자는 창을 들고 그래도 제법 군사답게 차리고, 그중 경군과 토군 합하여 한삼백명 가량은 말을 타서 마병이 되었다.
 
61
이 일은 이날 이십 오일 늦게 일어나서 가주에 순변사북문 밖 천변에서 구백명 군사를 버려서 책에 있는 대로 진법을 연습하였다. 종사관 윤 섬(從事官尹暹), 박호(朴虎), 매 맞은 판관 권 길 등이 뒤에 옹위하고 서기 양양하게 군사들을 검열하였다.
 
62
겸열이 끝난 뒤에 어제 저녁에 잡아 가두었던 개녕 백성을 잡아 내어 목을 베어 높이 매어 달아 다시 적군이 온단 말로 민심을 소란케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였다. 아직도 개녕 백성의 모가지에서 흐르는 피가 굳기도 전에 웬 검은 옷 입은 사람 두엇이 북천이라는 냇가 수풀 속에서 이쪽을 엿보고 달아나는 것을 군사들도 보고 이 일의 막하도 보고, 그것이 일본 군사의 척후인 줄도 짐작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상주성 중에 연기 기둥이 일어나고 뒤이어 화광이 나니, 그제야 이 일도 의심이 나서 군관 하나를 시켜 가서 성중의 모양을 알아 보라고 하였다.
 
63
군관이 말을 달려 북문을 향하고 가기를 얼말 하여 북천 내 굽이를 건너는 다리에 다다랐을 때에 총소리 콩 볶는 듯 일어나며 순관이 말에서 떨어지더니 다리 밑으로서 일본 군사 한 명이 뛰어 나와 군관의 목을 잘라 가지고 들어가 버린다.
 
64
이것을 보고야 비로소 이 일도 개녕 백성의 말이 옳은 줄 알고 놀랐으나 벌써 손 쓸새도 없이 수없이 일본 군사가 고함을 치고 조총을 난사하며 엄습함을 당하였다.
 
 
 

5

 
66
일본군은 선봉대로 조총대 수십명으로 하여금 관군의 전렬을 엄습하게 하고 진을 좌우익으로 나누어 관군을 포위할 형헤르 보였다.
 
67
이 일은 곧 영을 내려 군사고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으나 한두 나절 밖에 활쏘기를 배우지 못한 군사들의 화살은 멀리도 가지 못하고 견양한 대로도 가지 못하고 함부로 날랐다. 이것을 본 일본 군사들은 이거 웬 떡이냐 하는 듯이 조총을 놓으며 몰려 들어왔다. 그래서 앞줄에서 싸우던 군사 수십명이 순식간에 총을 맞아 넘어졌다. 순변사 이 일은 이 모양을 보고 말을 채쳐 뒤러 달렸다.
 
68
『사또. 어디로 가시오?』
 
69
하고 윤 섬, 박 호 등이 따라 서니 이 일은 뒤로 돌아 볼 사이 없이,
 
70
『자네들고 따라 오게. 따라 와.』
 
71
하고 그 좋은 백달마의 강철 같은 말굽으로 안개같이 먼지를 찼다.
 
72
『이놈 이 일아!』
 
73
하고 윤 섬이 이 일의 등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74
『네놈이 받은 국은이 망극하거든 이제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면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주상께 뵈오려느냐? 남아가 이 때를 당하여 한번 죽으면 고만이지 도망이 말이 되느냐? 다들 나를 따라라.』
 
75
하고, 말을 채쳐 적군을 향하여 달려갔다. 군사들 중에는 윤 섬을 따라서는 이도 있었으나, 하늘같이 믿었던 대장 이 일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대부분이 활과 칼을 던지고 달아났다. 윤 섬도 죽고, 판관 권 길도 죽고, 변기(邊璣)의 종사관 이 경(李慶)도 싸워 죽었다.
 
76
일본 군사들이 이 일의 뒤를 따르니 이 일이 황굽하여 자기가 이 일인 것을 숨기기 위하여 마상에 앉은 대로 갑주를 벗어 버리고, 나중에는 탔던 말까지도 내어 버리고, 그래도 급하게 되니 입었던 옷을 벗고 촌가의 바자에 빨아 널었던 헌 잠방이 하나를 훔쳐 입고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산속, 수풀 속으로 도망하여 밤중에 새재를 넘어 이튿날 아침에 충주(忠州)에 들어가 도순변사(都巡邊使) 신 입(申砬)의 진에 들었다. 이때에 도순변사 신 입은 열도병마 삼천 여를 거느리고 흐기 당당하게 충주에 내려와 충주성 북 단월역(丹月曆)에 진을 치고 있었다.
 
77
이 일과 변기가 패하여 도망해 온 것은 선봉을 삼아 공을 세워 죄를 속하기로 하고 종사관 전 의주 목사 김 여물, 조방잔 충주 목사(忠州牧師) 등 여러 장수가 있었다.
 
78
일본군이 금명간에 조령을 넘어 온다 하면 어떻게 막을까 하는데 대하여 두 가지로 의론이 갈렸다. 하나는 도순변사 신 입의 주장이니, 일본 군사가 조령을 넘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기병으로 이를 깨뜨리면 반드시 이기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종사관 김 여물, 조방장 이 종장 등의 주장이니, 관군은 적고 적군은 많은즉, 마땅히 새재를 지켜 군사를 수풀 속에 숨기고 깃발과 연기를 많이 보여 적으로 하여금 관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의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입은 김 여물과 이 종장 등 수뇌부를 데리고 새재의 형세를 살피기까지 하였으나 자기의 주자을 고집하여 새재를 버리고 단월역에 본진을 두고 적군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싸우기로 하였다. 주장이 하는 일이니 김 여물이나 이 종장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6

 
80
김 여물은 다시 신 입을 보고,
 
81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하는 비결은 험액네 웅거하는 것이니, 적은 군사로 평야에서 많은 군사를 만나는 것은 만무일리요, 만일 새재의 험액을 이용하지 아니 할진댄 차라리 물러가 한강을 의지하여 서울을 지키는 것이 옳을까 하오.』
 
82
하고 진언하였다. 그러나 신 입은 자부심이 많고 고집이 세어 김 여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만,
 
83
『영감은 염려 마오. 적군은 내가 당하리다. 』
 
84
하고 호언하였다. 김 여물은 신 입의 어리석음을 보고 분개하여 반드시 패하여 돌아가지 못할 줄을 알고 그 아들 유(濡)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85
『삼   .   .   .   .   .   .   .   .기』
 
86
라 하였다. 번역하면,
 
87
『삼 도에 군사를 불러도 한 사람도 오지 아니하는 도다. 우리는 다만 빈 주먹만 들었으니 사나이 나라 위해 죽음이 원래 할 일이어니와, 오직 나라의 부끄러움을 씻지 못하고 장한 뜻이 재를 이루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질 뿐이로다.』
 
88
충주를 막아 내이느냐? 못 막아 내이느냐 하는 문제는 곧 적군을 서울에 들이느냐? 아니 들이느냐 하는 문제다. 상주가 무너지고 적군을 넘겨 충주를 그 손에 맡길진댄 적군은 한걸음에 한강을 엄습할 것으로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89
서울서는 이 일과 신 입을 떠나 보내고 얼마쯤 믿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매일 대관들이 모여서 적군을 막을 방략을 토의하였다. 혹은 두꺼운 철로 전신갑(전신을 싸는 갑옷)을 만들어 군사를 입혀서 총을 막자 하였으나 실지로 만들어 놓고 보니 무거워서 운동할 수가 없어서 버리고, 또 혹은 한강에 높게 착을 만들어 적군을 막자는 의견을 내는 자도 있었으나 그것도 총을 막지 못하리라 하여 파의 하고 말았다. 이 모양으로 저마다 묘책을 내노라 하였으나 쓸 만한 것은 없었다.
 
90
그러는 동안에 이십 칠일 석양에야 순변사 이 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달아나고 상주는 적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신 입의 장계가 올라 왔다.
 
91
이 기별을 들은 왕은 용상에서 발을 굴렀다.
 
92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
 
93
하고 왕은 자못 황겁하였다. 이때에 도승지(都承旨) 이 항복(李恒福)이 가만히 좌의정 유 성룡의 곁으로 가서 왼편 손바닥을 내어 보였다. 거기는,
 
94
『立馬永(    )』
 
95
라고 써 있었다.
 
96
『말을 영감문 안에 세웠다. 』
 
97
는 말이니, 왕을 모시고 달아나자는 뜻이다. 유 성룡도 그 밖에 길이없을 것을 생각하고 이항복이 말하는 뜻을 귓속으로 왕께 아뢰었다. 왕은 차마 먼저 달아날 말을 내이지 못하던 터이라, 곧 유 성룡의 말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수상(首相) 이 산해(李山海)에게 말한즉, 이 산해도 그럴까 하오 하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곧 메루리, 은금, 반찬, 보교, 걸음 잘 걷는 교군군 등, 달아나기에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를 명하였다. 대궐 문으로 메투리 짐, 유삼, 보교 같은 물건이 들어가는 것을 본 종친들과 일반 인민들은 대궐 문밖에 모여 통곡하였다.
 
98
『서울을 버리지 마오.』
 
99
하는 것이었다.
【원문】양주와 충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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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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