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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釜山 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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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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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3. 釜山, 東 (싸움)
 
 
 

1

 
4
임진 사월 십 이일 진시에 일본의 함대는 대마도의 대포(大浦)를 떠나서 신시 말에 부산진 앞바다에 다다랐다. 병선 칠백여 척이었다. 이 칠백여 척의 대함대가 구름과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한 보고가 곧 전라 좌수영에서 수사 이 순신이 사월 십 오일에 받은 첫 경보이었다. 이렇게 칠백 척이나 되는 대함대가 국경에 침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계책이 없던 조선 관헌들은 실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5
그 이튿날인 사월 십 심일 미명에 일본 함대는 아무저항도 받음이 없이,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진을 향하고 개미때와 같이 진군하였다. 이날에 부산진을 지키는 주장인 첨절제사(僉節制使) 정 발(鄭撥)은 절영도(絶影島)에 사냥을 나가서 자고 아침에야 비로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다는 경보를 듣고 타고 갔던 병선 세 척을 끌고 창황하게 부산진으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일 같이 있었다. 군사들이나 백성들이나 조금도 놀라지 아니하고 성 위에 올라 가서, 일본군이 이상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소총을 메고 개미떼와 같이 몰려 들어오는 것을 구경삼아 보고 있었다. 이것은 조정이 김 성일의 말을 믿어서 일본이 싸우러 오리라는 말을 일체 입 밖에 내기를 금지하여, 백성들이 전혀 난리가 난 줄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해마다 한번씩 일본 배들이 장사하러 오는 예가 있으니, 이것도 아마 그것인가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도 많고 사람도 많고 차림차림도 현란하구나 할 뿐이었다.
 
6
『사또, 암만 해도 저 일본 사람들이 군사인가 보오. 평수 길이 싸우러 온다더니 과연엔가 보오.』
 
7
하고, 부하가 의심스럽게 말하나 결의 사람들은 나라에서 금하는 말(싸움이 난다는 말)을 한다고 눈을 끔적거리고 첨사 정 발은 작취가 미성한 낯에 웃음을 띠우며,
 
8
『일본이 아무리 강성 하기로니 무명 지사를 일으켜 가지고 천벌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또 설사 일본이 감히 싸움을 돋운다 하기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내 이 칼 하나면, 만명이 오기로 무슨 걱정이냐?』
 
9
하고, 칼을 만지며 뽐내었다. 정 발은 칼쓰기를 자랑하고 또 호협한 남아다. 그 말이야 시원하다. 또 정 발의 자신에는 노상 이유가 없지도 아니하였다. 부산 해성(釜山海城)에는 육천명 군사가 있었고 성의 주위에는 깊은 못이 있고 바닷가에서 성에 이르는 동안에는 마병이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철질려를 깔았다. 이만한 병력과 설비가 있으면 왠만한 적병은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것도 그럴 듯한 일이다.
 
10
첨사 정 발은 이러한 모든 것을 믿고 배짱 편안하게 동헌에 앉아서 지난 밤 부족한 잠을 졸고 있었다.
 
11
이때에 일본 장수 소서 행장(小西行長)에게서 부산 첨사에게 사자가 왔다. 그 사자는 공손히 첨사에게 예하여 소서의 편지를 첨사에세 드렸다. 그 편지에는 보통 편지 모양으로 환훤의 인사가 있고 그 끝에 이번에 평수길이 대군을 발하여 명나라를 치려 하니, 일본 군사레게 길을 빌려 무사히 명나라로 들어가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정발을 그 편지를 보고 비웃는 듯이 껄껄 웃고 내어 던지며,
 
12
『네 저놈을 성 밖에 몰아 내쳐라!』
 
13
하고 호령하였다. 정 발의 생각에 그 편지는 괘씸한 것 보다도 엉큼하였던 것이다.
 
 
 

2

 
15
군졸들은 소서 행장의 사자를 뒤떨미를 짚어서, 그야말로 발이 땅에 붙을 새가 없이 성문밖에 몰아 내쳤다. 그러나 한 가지는 판명하였다. 그것은 이 배와 사람들이 해마다 오는 세견선과 상인들이 아니라, 싸우러 온 병선이요, 군사라는 것이었다.
 
16
부산진 첨사 정 발은 소서 행장의 사자를 몰아 내고 곧 군중에 전령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적병을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군사 이천명을 성 위에 벌여 놓아 성 밖으로 모야 드는 적을 활로써 막게 하고, 남은 군사는 갈라서 혹은 성문을 지키게 하고 혹은 병기를 정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말을 놓아 다대포 첨사(多大포僉使) 윤 홍신(尹洪信),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박 홍(朴泓), 경상 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이각(李珏), 동래 대도호 부사(東萊大都護府使) 송 상현(宋象賢)에게 일본군이 길을 빌리라 하는 말과 그것을 거절하였다는 말과 자기는 부하를 거느리고 죽기로써 부산성을 지킬 터이니, 만일 부산진의 힘만으로 적군을 막아 내기 어려울 경우에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구원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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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는 남으로 이십리도 못되고 좌수영은 부산에서 동래부로 가는 중로에 있어서, 부산진에서는 십오리도 다 못되는 곳이요, 거기서 동래부는 십리 남짓하였다. 좌병영은 울산 지경에 있으니, 그것도 부산진에서는 하룻길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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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발은 설사 칠백여 척의 일본 병선이 사오만의 군사를 싣고 왔다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편 군사로 보면 부산진에 육천이 있고, 좌수영에 일만 이천이 있고, 동래부에 육천이 있고, 좌병영에도 일만여 명이 있고, 게다가 적군이 가지지 못한 성과 지리가 있으며 또 인근에 거진이 많은 즉 이삼일 내로 오륙만의 군사를 모으기는 어렵지 아니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방어의 계획을 세우고 첨사 정 발이 검은 공단 갑옷에 황금 투구를 쓰고 사랑하는 일검 보국(一劍報國)(한칼로 나라 은혜를 갚는다)의 칼을 차고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고, 비장, 병장, 군관들도 모두 전복 전립에 우의를 갖추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매고 새로 갈아서 약을 바른 살촉을 박은 화살을 전동에 가득하게 넣어 메고 성 위에 벌인 진중으로 돌아 다니며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병이 몰아 오기만 하면 융전할 준비를 하고 일변 소와 개를 잡아 군사들을 한밥 먹이고 싸워서 이긴 뒤에는 칠백 척 배와 뱃속애 있는 물건은 군사들이 맘대로 나누어 가질 것을 약속하였다. 이리하여서 하늘에 닿을 듯한 기운을 가지고 소서 행장의 군사가 쳐들어 오기를 기다렸다.
 
19
과연 진시가 되자 일대의 일본 군사다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장사 진형을 가지고 부산진을 향하여 달려 왔다. 멀리서 보기에 일만명은 될 듯하였다. 맨 앞에는 장수 같은 자가 말을 타고 앞섰고 중간쯤해서는 붉은 비단 갑옷을 입고 금빛이 번쩍거리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쓴 대장이 여러 장수의 옹위를 받고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이 붉은 갑옷을 입은 장수는 제일군의 대장인 소서 행장이요, 진의 맨 앞에 선 장수는 선봉장 모리 휘원(毛利輝元)이었다.
 
20
소서 행장의 군대는 부산 해성에서 활 두어 바탕될 만한 곳에 와서는 진형을 학익진(鶴翼陣)으로 변하여 부산성을 에워 살 모양을 보이고는 잠간 진을 머무른 뒤에 어떤 장수 하나가 단기로 부산성 남문을 향하고 달려 와서 편지 하나를 전하였다. 그것은 아까 편지와 마찬가로 길을 빌려 달라는 것이요, 만일 빌리지 아니하면 십만대군으로써 부산성을 무찌르겠다는 최후 통첩이었다.
 
21
『그놈을 죽여라!』
 
22
하고 비장들이 분개하였으나 정 발은,
 
23
『단기로 온 사자를 죽이는 것이 의가 아니다. 』
 
24
하여 만류하고 왜어 통사를 시켜,
 
25
『길을 빌리는 것은 일개 병장이 할 일이 아니니, 우리나라 왕께 여쭈어라』
 
26
는 회답을 전하고 또,
 
27
『군사를 물려 서울서 회답하기를 기다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사정 없이 멸하리라』
 
28
는 위협하는 말을 보내었다.
 
 
 

3

 
30
소서 행장의 군사는 정 첨사의 회답을 받아 보고는 무엇을 생각함인지 군사를 돌려서 물러 갔다. 정 발은 적군이 물러 가는 것을 보고 심히 만만하게 여겨서, 제장을 불러서 술을 먹고 즐기고 순사들에게도 술을 주어서 질탕하게 먹었다. 마치 승전이나 한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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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서 행장 군이 물러 간 것은 결코 정 발과 그 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서 회보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산 성의 방비가 심히 삼엄한 것을 보고 당장 공격하면 이기기가 어려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직 거짓 믿고 물러 가서 조선군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하자는 것이었다.
 
32
부산 성내에서는 군사나 백성이나 평일같이 희희낙락하게 그날을 보내고 밤에 각각 자리에 들어 단잠을 잤다. 잠을 자서는 아니 될 첨사 정 발과 부하 장졸들까지도 잠을 잤다.
 
33
이날은 곧 산과 들에 꽃까지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따뜻하고 생명에 찬 첫여름의 달밤은 극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성문을 지키던 장졸들과 성랑으로 돌며 파수를 보던 장졸들도 잠이 들고 달이 서편 하늘에 기울어져 부산(산 이름)의 그림자가 먹과 같이 검게 부산성을 덮고 새벽빛은 아직 비치지 아니한 축시 말 인시 초 쯤해서 수만명 소서의 군사는 선봉장 모리 휘원의 지휘 밑에 열 겹 스무 겹으로 부산 해성을 에워 쌌다.
 
34
대개 일본군의 본진이 유둔하는 곳에서 부산진까지는 오리는 넘고 십리는 좀 못될 만한 가까운 거리이므로, 달이 넘어가기를 기다려서 대군을 몰아 삽시간에 부산진을 에워 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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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는 그래도 파수도 보았으나, 닭이 울고 새벽이 가까우매 술 취하고 훈련 없는 군사들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36
소서군은 부산의 지리를 황하게 잘 아는 왜호(倭戶)를 앞잡이로 성못(성 밖에 파놓은 못)의 얕은 데를 가리고 성내의 수비가 약한 곳을 가리어서, 일변 흙으로 못을 묻어 길을 내이고 일변 비제(飛梯)를 성에 놓고 깊이 잠든 부산성으로 터 놓은 물같이 밀어 들었다.
 
37
소서군은 성에 들어오는 대로 집에 불을 놓고 조총을 콩 볶듯 놓아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와 주검이 길을 막았다. 마음 놓고 자던 백성들은 이 불의의 변에 놀라시 혹은 어린 아이를 안고 혹은 늙은 부모를 업고 갈팡질팡 하다가, 혹은 총에 맞아 죽고 혹은 군사에게 밟혀 죽었다. 조선 군사들도 활을 들어 응전하였으나 벌써 겁을 집어 먹을 뿐더러, 처음 당하는 조총의 위력에 활이 당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먼 거리에서 마주 보고 싸우면 활이 조총(그때 조총은 멀리는 못 갔다)보다 나은 수도 있었으나 단병 접건에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군사는 시가 싸움에 익되 조선 군사는 야전에만 익어 어느 편으로 보든지 조선이 불리하였다. 길 잘 아는 왜호를 앞세운 일본군은 내 집에 들어가듯이 성내의 요새지를 점령하고 마침내는 첨사 아문을 포휘하고 첨사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38
『사또! 형세가 이 지경이니, 인제는 항복하는 수 밖에 없지 아니하오.』
 
39
하고 비장(裨將) 황 운(黃雲)이가 칼을 들고 달려 나가려는 첨사 정 발의 갑옷 소매를 끌었다.
 
 
 

4

 
41
『항복을 말하는 자는 군법에 처하리라』
 
42
하고 정 발은 여전히 싸움을 독려하였다. 영문 안에 남은 군사가 아직 천명은 남았다. 육천명 군사 중에 오천명은 벌써 다 죽은 것이다. 비록 늦게 응전하였으나 정발은 잘 싸웠다.
 
43
『에크, 검은 갑옷!』
 
44
하고 일본 군사는 정 발의 검은 갑옷이 번쩍할 때면 무서워하였다. 그의 칼은 참으로 신인 듯하여, 그의 칼이 번뜩이는 곳에는 적병이 삼 슬 듯하였다.
 
45
그러나 중과부적하여 정 장군은 마침내 남은 군사를 끌고 영문 속에 물러 와서 최후까지 싸우기를 결심한 것이다.
 
46
해는 올라 왔다. 성내에는 화광이 충전하고 성 위에는 도처에 붉은 기였다. 붉은 기는 일본 군사의 기였다. 남은 군사도 하나씩 적군의 조총알에 맞아 거꾸러지고 한량 있는 화살도 거진 다하였다. 푸르륵하는 조선 군사의 활쏘는 소리, 밖으로 들려오는 백성들의 우짖는 소리!
 
47
『사또! 인제는 살도 다하였으니, 도망하엿다가 훗 기회를 기다림이 어떠하오?』
 
48
하고 비장 황운이 정 발에게 청하였다. 활을 쏘자니 살조차 없는 군사들은 부질없어 활을 들고 첨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에서 화살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일본군은 납함하며 삼문 밖에 다다랐다.
 
49
정 발은 웃으며,
 
50
『사내가 죽을지언정 도망을 한단 말이냐? 나는 이 성의 귀신이 될 터이니, 가고 싶은 자는 가거라........』
 
51
하고 칼을 빼어 들고 삼문을 향하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적을 하나라도 죽이고 자기도 죽자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는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군사들은 축시 말에서 부터 진시가 넘도록 싸우는 통에 시장한 줄도 몰랐으나 살이 진하고 더 싸울 기력이 없으니, 일시에 시장과 피곤이 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정 발의 비장한 말에 군사들은 다시 기운을 내어,
 
52
『우리도 사또와 같이 이 성 귀신이 되려오!』
 
53
하고 칼이 있는 자는 칼을 들고 칼도 없는 자는 활집과 몽둥이를 들고 정발의 뒤를 따랐다. 정 발은 삼문을 열기를 명하였다. 삼문은 열렸다.
 
54
밖에 있던 소서 행장의 군사는 와! 하고 안으로 몰려 들었으나 정 발의 칼 바람에 경각 간에 수십명이 죽는 것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55
정 발은 칼을 두르며 도망하는 소서 행장의 군사를 따라 고루(북단 다락)까지 나갔다. 군사들도 정 발의 뒤를 따라 용감하게 적군을 엄살하여 수백의 적군을 죽이면서 장거리까지 나왔으나, 마침내 정 발은 조총의 탄환에 십야 군데를 맞아 땅에 엎더졌다. 비장 황 운은 엎더지는 정 발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도 탄환에 맞아 주장을 안은 채로 넘어져 죽었다.
 
56
이리하여 진시 말에 부산진 육천명 장졸은 거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 죽고, 부산진은 일본군에게 점령함이 되었다. 이날에 일본군이 죽은 것도 사천이 넘었다.
 
 
 

5

 
58
정 발은 형세가 위급함을 보고 여러 번 좌수영 (이십리 미만)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좌수영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 중에 몇 사자는 적군에 붙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빤하게 바라보이는 곳에서 경상 좌수사 박 홍이 부산진이 위급한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부산진을 일본군이 에워 쌌다는 말을 듣고 경상 좌수사 박 홍은 곧 애첩과 가족을 동래부로 피란시키고 자기는 경보를 몸에 지니고 뒤산에 올라 부산진의 형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후, 군관 중에는 군사를 내어 부산진을 구원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박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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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를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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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핑계로 듣지 아니하였다. 약한 장수의 밑에는 강한 군사가 없었다.
 
61
부산진에서 위급하다는 기별이 와도 수사가 꼼짝하지 아니하는 양을 보고 군관, 군졸들은 모두 장수의 밎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가족과 재물을 뭉쳐 가지고 동래부로 도망하였다. 그러다가 정 발로 부터,
 
62
『위급하다. 곧 구원하라』
 
63
하는 최후의 고목이 온 때에 박 홍은 창황히 말을 내이라 하여 도망할 준비를 하고 그래도 후일에 책망을 두려워함인지 서울로 사람을 놓아,
 
64
『부산성에는 붉은 기가 찼사오니 아마 적에게 함락된 듯 하나이다.』
 
65
하는 장계를 띄우고 군사를 시켜 군량고와 병기고와 민가에 불을 놓게 하고 말을 몰아 동래성을 향하고 달아났다. 군사 삼 만을 가진 거진으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는 수사 박 홍을 향하여 군관 오 억년(吳億年)은 무수히 욕질하고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하겨 활을 당기어 박 홍의 등을 쏘니, 박 홍은 맞아 말에서 떨어지고 말은 놀래어 북을 향하고 달아났다.
 
66
오 억년은 수사 박 홍을 죽이고 (기실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달려가 부산을 구하려 하였으나, 한번 흩어진 군사의 마음은 다시 수습할 길이 없어 몇 개 동지를 규합하여 빈 성을 지키리고 하였다. 죽은 줄 알았던 박 홍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다만 그엉덩이에 살이 박혔을 뿐이었다. 그는 종자의 도움을 받아 천신 만고로 밀양까지 도망하였다. 차마 동래부로 들어 갈 염치는 없었던 것이다.
 
67
부산진을 손에 넣은 소서 행장은 선봉 모리 휘원에게 명하여 곧 좌수영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좌수영의 일만 이천 장졸은 이미 수사 박 홍의 본을 받아 다 흩어지고 오직 군관 오 억년이 죽기를 맹세하는 수백의 군졸을 거느리고 모리 휘원의 오만 대군을 대항하였으나 그것은 손으로 바닷물을 막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오 억년과 그 동지들은 한 아니 남고 다 죽기까지 싸웠다. 일본군이 동래성에 다다른 것은 부산진이 함락된 십사일 신시였다. 이보다 먼저 동래 부사 송 상현(宋象賢)은 일본군이 부산성을 친다는 경보를 듣고 곧 좌병사(左兵使) 이 각(李珏), 울산 군수(蔚山郡守) 이 언함(李彦譀) 양산 군수(梁山郡守) 조영규(趙英珪) 에게 이문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68
송 상현의 계획으로 말하면, 동래성에 일본군을 막아 한 걸음도 내지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만일 동래부가 함락이 된다고 하면, 일본군은 밀양을 돌아서 서울로 향할 수도 있고, 경주를 돌아서 서울로 향할 수도 있으니, 동래 한 목에서 막지 못하면 그 십배의 힘을 가지고도 막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6

 
70
경상 좌병사 이 각은 동래 부사 송 상현의 말을 옳게 여겨 조방장(助防將) 홍 윤관(洪允寬), 울산 군수 이 언함과 칠천 병마를 거느리고 밤도와 행군하여 십사일 오정에 동래부에 도달하고 양산 군수 조 영규도 군사 이천을 거느리고 그보다 좀 일찍 동래성에 들어 왔다. 이리하여 동래성에는 모두 이만의 군사가 있었다. 미시 말이나 되엇 부산진의 패보가 동래에 들어오고 또 얼마 아니하여 좌수사 박 홍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좌수영이 싸우지도 아니하고 무너졌다는 경보가 들어 왔다. 이 경보를 받더니 참담하게 있던 좌병사 이 각(李珏)이 동래 부사 송 상현을 보고,
 
71
『여보 동래, 나는 가오』
 
72
하고 동래에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73
『가시다니 사또가 어디를 가신단 말씀이요? 적병을 막으려고 밤도와 오셨다가 적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시다니, 어디로 가신단 말이요?』
 
74
하고, 송 부사는 병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75
『아니, 내가 피하는 게 아니요, 나는 대장이니까 밖에 있어서 각진 군사를 지휘를 하야지 성안에 있어서 쓰겠소. 성을 지키는 것은 동래가 맡아 하오.』
 
76
하고, 동래 부사 송 상현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아병 이십명만 동래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는 별장과 군사를 데리고 서문을 열고 달아나 소산(蘇山)이란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77
좌병사 이 각은 부산진이 함락되고 첨사 정 발이 육천 병사로 더불어 전사하였단 말을 듣고 잔뜩 겁을 집어 먹어서 듣기 좋은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 나온 것이다. 그의 생각 같아서는 곧장 서울로 도망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아직도 염치가 약간 남아서 소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여기서 기회를 보아서 동래성 싸움에 일본군이 지면 자기도 의기 양양하게 동래성으로 들어가고, 동래가 지면 내빼자는 계교다. 왜 태평 시절에 병사 노릇을 못하고 난시에 병사가 되었던고 하고 이 각은 수없이 한탄하였다.
 
78
이 각이 바로 소산에 이르러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동래성에서는 포향과 고각이 진동하엿다. 일본군과 접전이 된 것이다. 이 각은 자기가 선견지경명이 있어서 도망한 것을 다행히 여겼다.
 
79
병사 이 각이 달아난 뒤에 동래 부사 송사 송 상현은 그 벼슬을 따라 주장이 되어서, 동래성 남문에 올라 전군을 지휘하였다. 울산 군수 이 언함(李喭諴)은 죄위장은 삼아 동문을 지키게 하고, 양산 군수 조 영규(趙英珪)로 우위장을 삼아 서문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홍 윤관(洪允寬)으로 충군을 삼아 성중과 북문을 지키게 하였다. 십사일 유시에 일본군의 선봉이 동래 남문 밖인 취병장(지금 말로 연병장)에 이르러 유진하였다.
 
80
일본 진중으로서 어떤 키 큰 순사 하나가 무기를 들지 아니하고 손에 흰 목패 하나를 들고 성 가까이 오더니 그것을 성중에 던졌다. 군사가 그 목패를 집어 부사 송상현에게 드리니, 부사는 가도 문제에 관하여 평 수길의 사자인 대마도주 평조신(平調信)과 절충한 일도 있었고 또 조정으로 부터「다시 가도에 관한 청이 있거든 단연 거절하고 이체 접제 말라」는 훈령도 있으므로,
 
81
『  .  .(죽어도 길을 못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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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큰 목패에 써서 성 위에 세우게 하고, 곧 방포하고 활을 쏘아 싸움을 돋우었다.
 
 
 

7

 
84
해가 지도록 양 진 대접전을 하여 피차에 수천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나 무론 승부가 나지 아니하였다. 밤도 낮과 같이 달이 밝았으므로 으례히 일본군이 엄습할 것을 믿었으나 적연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 군사들은 아마 일본군이 잠을 자고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싸우려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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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 군사는 자지 아니하였다. 동래 부사 송 상현이 쉽사리 달아나거나 항복할 위인이 아닌 줄을 안 일본군은 계교를 쓰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밤 동안에 군사를 성으로 돌려 방비가 약한 북문으로 쳐들어 오자는 것이었다.
 
86
송 부사는 충성과 용기가 있었으나 결코 장수의 재목은 아니었다. 하물며 울산 군수 이 언함은 병사 이 각이 달아날 때에 같이 따라 가지 못한 것을 향하여 벌벌 떨고 앉았고, 오직 조방장 홍 윤관, 양산 군수 조 영규 같은 장수들은 죽기로써 성을 지키려고는 하나, 적군은 오만이 넘고 이편은 이만이 다 못되니, 비록 성이 있다 하더라도 승패는 벌써 정한 일이었다. 만일 도망하였던 이 각이 그 군사를 끌고 온다면 며칠 동안은 견딜 만도 하지마는 돌아 올 사람이 도망할 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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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군사는 잔약하고 장수는 없는 동래성은 마치 도마에 오른 고기와 같은데, 사월 보름의 달 그림자는 점점 금정산(金井山)으로 빗기고 뒷산의 두견만 목이 메어 울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진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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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이르면 아침 네 시가 될락말락한 때에 동북방을 지키던 군사가 놀래어 일시에 소시를 쳤다. 그것은 새벽빛이 훤히 올려 쏘는 동쪽으로 부터 불의에 괴상한 물건이 올라 온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삼 갑절이나 큰 허수아비에 붉은 옷을 입히고 푸른 수건을 동이고 등에 붉은 기를 지고 번쩍번쩍하는 긴 칼을 찬 흉물이 성안으로 넘실넘실 들여다보는 것이다. 밤새도록 겁을 집어 먹고 있던 군사들에게 이 흉물은 완전히 정신 착란을 주었다. 더구나 장수되는 울산 군수 이 언함이 소리를 치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은 병기를 던지고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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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언함이 피신할 수 있기도 전에 성을 넘어 정말 일본 군사들이 칼을 두르고 조총을 놓으며 달려 들었다. 울고 불고하던 조선 군사들은 두 팔을 들고 땅바닥에 앉은 대로 칼과 총에 맞아 죽었다. 달아나던 이 언함은 다리에 기운이 없어 일본군에 붙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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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 군사 앞에 엎드려 합장하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일본군은 그가 울산 군수 이 언함인 줄 알고는 죽이지 않고 뒷짐으로 결박을 지어 앞을 세우고 성내의 길을 인도하라고 하였다. 이 언함은 길을 인도하여 부사 송 상현의 진을 가리켰다. 일본군은 성을 넘어서 엄살하는 줄을 안 조방장 홍 윤관은 군사를 돌려 일본군이 남문으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군사는 너무나 적었다. 홍 윤관이 거느린 이천명 군사는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홍 윤관 자신도 군사들과 한 가지로 맞아 죽었다. 그러나 홍 윤관이 죽은 것이 결코 값이 없지는 아니하였다. 홍 윤관의 저항이 없었던들 남문에 있는 본진은 준비도 없는 동안에 경각 간에 함몰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 뿐더러 홍 윤관의 군사는 졌더라도 하나가 하나씩은 적군을 죽이고 죽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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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윤관의 군사가 전멸을 당한 뒤에 일본은 조선군의 시체를 밟고 넘어 관사 앞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거기는 서문을 지키던 조 영규가 지키고 있었다. 관 앞은 길이 넓어서 양쪽 군은 수천명이 한꺼번에 단병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소서 행장군의 주력이 남문의 본진을 습격할 때이므로 본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혈전을 하기 약 한 시각에 조 영규는 민가의 지붕에서 내려 쏘는 적의 총환에 맞아 죽고 조 영규는 군사도 거의 전멸하였다. 진시가 넘어서 남문을 본거로 한 본진은 복배로 적의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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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는 비장 송 봉수(宋鳳壽), 김 희수(金希壽), 향리 송 박(宋迫) 등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으나 중과부적하여 마침내 남문은 열리고 본진은 함락이 되었다. 남문을 중심으로 길과 성에는 피를 뿜고 넘어진 군사가 몇 겹씩 덧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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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송 상현은 일이 끝난 줄 알았다. 죽더라도 이 나라의 신하 된 절과 예를 잃지 아니하리라 하여, 갑옷 위에 조의를 껴입고 호상에 걸터 앉아 싸움을 독려하였다. 이윽고 일대의 일본 군사가 남문 누상으로 침입하여 상현에게 칼을 견주었다. 그 군사들 중에 평 조익(平調益)이라는 장수가 있어서, 상현을 향하고 달려 드는 군사를 제지하여 뒤로 물리고 상현더러 어서 도망하기를 재촉하였다. 대개 평 조익은 대마도주 평 조신의 친척으로서 작년에 동래부에 사신의 한 사람으로 와서 송 상현의 관대를 받았던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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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현은 듣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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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명을 받아 이 성을 지켰거든, 죽기 전에 이 자리를 떠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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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래도 평 조익은 상현의 옷을 끌어 피할 틈을 가리켰다. 상현은 마침내 면하지 못할 줄을 알고 호상에 내려 북향하고 절한 끝에 부채를 당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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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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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쓰니, 이는 그의 노부 복홍(福興)에게 보내는 결별사다. 그 뜻으로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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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성이 적에 에워 싸였으되, 다른 진들이 본체 아니하도다. 군신의 의는 무겁고 부자의 은은 가볍도다.』함이다.
 
101
평 조익도 송 상현을 구하지 못할 줄 알고 밖으로 몸을 피하니, 다른 군사들이 달려 들어 칼로 상현을 위협하고 항복을 청하니, 상현은 오른손에 병부를 잡고 왼손에 구리 인을 잡고 호상에 앉은 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102
이때에 벌써 성중에는 어디나 붉은 기가 날리고 총소리와 고각 함성도 그쳤다.
 
103
『사또. 항복을 하시오. 거역하면 죽을 길 밖에 더는 있소?』
 
104
하고, 송 상현에게 권하는 것은 울산 군수 이 언함이었다. 그는 일본 장수의 복색을 입고 일본 칼을 찼다. 송 상현을 대하매 부끄러워 감히 낯을 들지 못하나, 모리 휘원의 명령을 거슬리지 못하여 말을 한 것이었다.
 
105
『이놈, 역적놈아!』
 
106
하고, 상현은 이 언함을 보매 눈초리가 찢어질 듯하고 그의 검은 얼굴은 노기로 주홍빛이 되었다. 상현은 병부와 인을 한 손에 걷어 쥐고 한 손으로 칼을 빼어 이 언함을 치려 하였으나, 곁에 있던 일본 군사 하나가 나는 듯이 칼을 들어 송 상현의 칼 든 팔을 쳤다. 상현의 팔은 조복 소매와 함께 떨어졌다. 또 한 일본 군사가 상현의 병부와 인을 잡은 팔을 찍으니, 상현의 팔은 병부와 인을 꼭 쥐인 대로 마루에 떨어졌다.
 
107
두 팔을 다 잃은 상현은 오른편 발로 자기의 떨어진 손에 있는 인과 병부를 밟았다. 오른편 발과 왼편 발이 다 떨어지매 상현은 엎드려 인과 병부를 입에 물었다. 그의 목이 잘릴 때에도 그의 입은 병부와 인을 놓지 아니하였다. 병부와 인을 아니 놓는 것은 오늘날로 이르면 국기나 군기를 아니 놓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리하여 동래성 남문에서 송 상현은 죽었다.
【원문】釜山 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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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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