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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20.11.03. 11:05 (2020.11.03. 11:05)

【여행】영흥도(靈興島) 십리포 해변길과 영흥대교

서울에서 시화방조제, 대부도를 거쳐 영흥도에 갔습니다. 영흥도는 선재도(仙才島,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섬이란 뜻)와 연결된 영흥대교로 통해 편하게 접근했습니다.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해변길로 휴일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서울에서 시화방조제, 대부도를 거쳐 영흥도에 갔습니다. 영흥도는 선재도(仙才島,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섬이란 뜻)와 연결된 영흥대교로 통해 편하게 접근했습니다.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해변길로 휴일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시화방조제와 달 전망대
▼구봉도 낙조 전망대
 
▼영흥대교
☞2001.11.15일 개통한 해상 사장교(斜張橋, Cable-stayed Bridge)
☞한국남동발전(주)이 1700억원을 들여 만듬
☞선재도 넛출과 영흥도 진두항을 연결함
☞길이 1,250m, 너비 9.5m, 왕복 2차선의 다리
☞ 일곱 색깔 무지개로 변하는 다리의 멋진 야경
 
▼십리포 해수욕장의 소사나무 군락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함
 
▼해당화
거센 해풍과 척박한 사질토 등 악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꽃으로 "이끄시는대로"가 꽃말이며 노래(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에 나오는 꽃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십리포 해변은 인천에서 서남방으로 32Km 떨어진 영흥도의 북쪽에 위치한 해변으로 이곳 해변은 총 길이 1Km, 폭 30m의 왕모래와 작은 자갈의 해수욕장
☞십리포란 지명은 영흥도 선착장에서 십리에 위치한 해수욕장이라 붙여진 이름이라함
☞가을이고 썰물이라 해수욕장은 철이 지나 한산함
☞주변에 펜션이 많음
 
▼깡통 기차 : 5,000원
 
▼썰물이라 물이 빠졌고 바다 건너 희미하게 섬이 보인다.
 
 
▼유람선이 지나며 멀리 영종도가 보인다.
 
▼인천상륙작전 전초기지 기념석 (내용)
미국 극동 사령부 해군 정보장교 클라크 대위와 한국 해군 정보부대 KLO-8240부대원은 1950년 9월 15일 01:40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힌다. 이 등대불을 신호로 유엔군은 261척에 달하는 연합함대가 05:00부터 공격준비 사격에 이어 상륙주정 (LCVP) 20척에 분승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06:33분에 녹색 해안 (GREEN BEACH)인 인천 월미도에 상륙하여 06:55분에 월미산 105고지 정상을 탈환하였고, 08:00 월미도를 확보한 후 정오쯤 소탕작전을 완료하였다. 월미도 상륙작전 시 미 해병대의 총 피해는 부상자 17명이었으며 적 사살 108명, 포로 136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대대적인 작전이었다. 그러므로 미 극동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북한군 첩보활동을 위한 부대 창설을 요청했다. 함명수 소령, 임병래 중위 등 17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해군 특수 첩보대가 비밀리에 창설된 배경이다. 해군 첩보대는 8월 18일 01:00에 어선을 타고 부산항을 떠나 6일째인 8월 24일 서해 영흥도에 도착했다. 작전 보안을 위해 첩보작전의 거점인 영흥도에 도착해서야 함소령은 대원들에게 작전 (작전명: X-RAY) 의 목적과 구체적인 임무를 하달했다. 특수 첩보대 대원들은 3개 조로 나누어 인천과 서울 수원을 왕래하면서 북한군에 관한 첩보활동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하루 전, 영흥도를 거점으로 첩보활동을 펼치던 특수 첩보대에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철수 준비를 서두르던 02:00, 한국군의 첩보활동을 뒤늦게 감지한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를 기습했다. 영흥도에는 17명의 첩보대원과 영흥도 청년 방위 대원 6명만 남아있었다. 첩보대원과 청년 방위 대원이 적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동안 나머지 9명의 첩보대원들은 해안에 정박해 둔 마지막 보트를 타고 탈출했다. 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앞두고 영흥도 전투에서 8명의 해군첩보대원과 영흥도 청년 방위 대원 6명 등 14명이 전사했다. 이후 북한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그동안 한국 해군 첩보대와 클라크 첩보대에게 적극 협조한 영흥도의 청년들을 학살하였는데 [한국전쟁] 2의 기록에 의하면 '9월 16일, 미 해병대가 영흥도를 점령해보니 클라크 퇴거한 직후에 1개 대대 (400명 정도)의 북한군이 상륙하여 아군에게 협력한 부락민 50여 명을 참살했음을 알았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희생자들의 호국정신과 영흥도 주민들의 갸륵한 애향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십리포 해변길
고려 말 왕족 익령군(翼靈君) 왕기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알고 비운을 맞을까 성(姓)과 이름을 바꾸고 온 가족과 함께 집을 떠나 사람이 살지 않은 섬으로 숨어 살기로 했다. 무작정 배를 띄었지만 항로도 잘 모르는 데다 파도가 심하여 구사일생 끝에 이 섬, 영흥도에 닿았다고 한다.
영흥도는 당시 왜구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섬이었다. 왕기는 왕족으로서 해보지 못했던 고된 일이지만 버려진 땅을 일구고 짐승을 기르고 고기를 잡으면서 섬에 정착해갔다. 그러면서도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매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개경을 바라보며 이 산을 국사봉(國思峰)이라고 이름 지었다.
섬으로 들어온 지 3년 만에 고려가 망하고 대부분의 왕족들이 거제도에서 수장되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지만 미리 피신했던 왕기 일가는 환난을 모면하고 이곳에 터를 잡아 목동 일을 하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한다.
 
▼하늘에서 본 해변 데크길(밀물때)
 
 
 
▼전망대에서 본 십리포 해수욕장
 
▼언덕으로 올라가니 가을이다.
 
 
 
▼ 주차료

최초 30분

추가30분

1일

1,000원

500원

1만원

▼영흥도 길
 
▼영흥도 이름의 유래
① 중국에서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암초에 부딪혀 파손되어 침몰 직전에 있었는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구멍을 막아 육지로 인도해 주었다. 그 뒤 신령이 도와준 섬이라 하여 영흥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②고려 말 왕족 익령군 왕기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알고 비운을 맞을까 성과 이름을 바꾸고 온 가족과 함께 집을 떠나 사람이 살지 않은 섬으로 숨어 살기로 했다. 무작정 배를 띄었지만 항로도 잘 모르는 데다 파도가 심하여 구사일생 끝에 이 섬, 영흥도에 닿았다고 한다. 영흥도는 당시 왜구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섬이었다. 왕기는 왕족으로서 해보지 못했던 고된 일이지만 버려진 땅을 일구고 짐승을 기르고 고기를 잡으면서 섬에 정착해갔다. 그러면서도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매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개경을 바라보며 이 산을 국사봉(156m)이라고 이름 지었다. 섬으로 들어온 지 3년 만에 고려가 망하고 대부분의 왕족들이 거제도에서 수장되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지만 미리 피신했던 왕기 일가는 환난을 모면하고 이곳에 터를 잡아 목동 일을 하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섬의 이름이 익령군의 '영'자를 따서 영흥도가 되었으며 '영혼이 흥하는 섬'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출처: 옹진군, 네이버, 구글, 민족문화대백과,투어 코리아
★장봉도
https://jawkoh.blog.me/220580292468
★3형제섬(신도,시도,모도)
https://jawkoh.blog.me/22048456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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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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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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