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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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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가
about 향가

▣ 향가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019.06.04. 19:40 (2019.06.02. 16:45)

【학습】도솔가

신라 경덕왕 때 스님인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삼국유사》에 이두로 된 4구체의 향가와 한문으로 번역된 시가 전한다.
오늘 이에 '산화'의 노래 불러
뿌리온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심부름하옵기에
미륵좌주를 모셔라!
(양주동역)
 
오늘 이에 산화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에 부리워져
미륵 좌주 뫼셔 나립하라(벌려 늘어서라)
(김완진역)
 

 

1. 요점 정리

• 작자 : 월명사
• 연대 : 경덕왕 19년(760)
• 성격 : 주술적, 불교적
• 형식 : 4구체
• 주제 : 산화공덕(散花功德)
• 표기문자 : 향찰
• 특징 : 나라를 편안하게 하자는 뜻에서 부른 노래
• 출전 : 삼국유사
 

2. 내용 연구

• 산화 : 불교의 제식에서 범패를 부르며 꽃을 뿌리는 의식
• 블어 : 불러. '블다>불다'는 원순모음화
• 고자 : 꽃아. 꽃이여. 곶(명사)+아(호격)
• 미륵좌주 : 미륵불, 앞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할 미래불.
 

3. 이해와 감상

신라의 향가(鄕歌). 760년(경덕왕 19) 4월 초하루, 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왕명에 따라 연승(緣僧)으로 뽑힌 월명사(月明師)가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도 부르고 이 노래도 지어 부르자, 괴변이 곧 사라졌다는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에 전한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미륵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며,국가적 의식에서 미륵 보살의 하강을 기원한 노래로 볼 수 있다.《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은 이 노래를 <산화가>가 아니라 <도솔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삼국유사》에 이두(吏讀)로 된 4구체(四句體)의 원가(原歌)와 한역시(漢譯詩)가 함께 실려 있어, 향가의 해독(解讀)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조선고가연구》(양주동)의 해독문을 보면 “오이에 散花 블어/고자 너는/고 命ㅅ브리디/彌勒座主 뫼셔라”이다.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 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이므로, 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이다.
 

4. 심화 자료

• 배경 설화
 
경덕왕 19년 경자 4월 초하룻날에 해가 둘이떠서 10여 일간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은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산화공덕을 지으면 예방이 되리라."하였다. 이에 조원전에 단을깨끗이 모시고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마침 월명사가 천백사의 남쪽 길로 지나가므로 왕이 사람을 시켜 불러들여단을 열고 계청을 지으라 명했다. 월명사는 "저는 다만 국선의무리에 속하여 오직 향가만 알고 범패 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하였다.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정하였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고하였다. 월명이 이에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 도솔가
 
신라 경덕왕 19년(760)에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 삼국유사 ≫ 권5 월명사 도솔가조에전한다. 760년 4월 초하룻날 두 해가 함께 나타나서 10여일간 없어지지않자, 왕이 일관 ( 日官 )의 청으로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였다.
 
왕이 청양루에서 연승(緣僧)인월명사를 만나 단(壇)을 열고 계(啓)를 지으라 하여, 월명사가 이 작품을지었다고 한다. 형식은 4구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 삼국유사 ≫ 의 띄어쓰기에서는 3분절되어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이에 산화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 받아
미륵좌주뫼셔라. (梁柱東 해석)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유창균(兪昌均)은 “ 오 堪 이 倨 散花(산화) 브르라/돌보 基 본 고라 너흰/고 慨 絅 嗜 鏡 命人(명인) 브리아기/彌勒座主(미륵좌주) 모리라라. ” 라고 읽은 바 있다. 이러한독법에 의해 ‘ 오늘 이곳에 모든 화랑(花郞)을 부르는 바라. (나라의)은총을입고 있는 화랑 너희들은, 한결같이 굳은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여기에미륵좌주를 뫼셔 받들 것이로다. ’ 라고 해석하였다.
 
이 작품을 김동욱(金東旭)은미륵청불(彌勒請佛)의 불교가요로 보는가 하면, 김열규(金烈圭)는 〈 구지가 龜旨歌 〉 와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즉 김열규는 〈 구지가 〉 를 전통적인 주사(呪詞)에 직접 맥을 대고 있는 주사적양식의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한편 김종우(金鍾雨)는 ‘ 미륵좌주 ’ 라는 말을 낭 · 불융합(郎佛融合)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특한용어로 보고, 작품은 순불교적인 가요로 각각 파악하였다.
 
〈도솔가〉 는 하늘에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 ” 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할 수 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대응관념으로보았을 때, 해는 곧 왕에 대응된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보해 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와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린 노래가 〈 도솔가 〉 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신앙의 차원에서 불교의식을수용한 상태의 것이다. 즉,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에다 시조강림관념은쉽사리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미륵좌주로 나타난 것이다. 거기에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국가태평 또는평정을 기원하는 제의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신을 불러내는 말이 재래양식 그대로 쓰이고 있다. 다만 시대적인 상황의 변천에 따라 불교적인미륵하생관념이 혼융되기는 하였다.
 
즉, 위협적인 모습은 인심의순화에 따라 완곡의 표현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명령법이라는 것이아직도 작품에 그대로 남아 있어, 고대 제의에 사용되던 주가적 흔적을보여주고 있다.
 
≪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韓國歌謠의 硏究(金東旭, 乙酉文化社, 1964), 鄕歌文學論(金鍾雨, 二友出版社, 1972), 鄕歌의 語文學的 硏究(金烈圭 · 鄭然粲 · 李在銑, 西江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1972), 新羅詩歌의 硏究(尹榮玉, 螢雪出版社, 1980). 鄕歌批解(兪昌均, 螢雪出版社, 1994).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도솔가(兜率歌)
 
신라 유리왕 때 지은작자 미상의 가악. 가사는 전하지 않으나, ≪ 삼국사기 ≫ 신라본기유리이사금 5년조와 ≪ 삼국유사 ≫ 노례왕조에 작품명과 짧은 설명이전한다.
 
≪삼국사기≫ 에는 “ 이 해에 민속이 환강하여 〈 도솔가 〉 를 처음으로 지으니, 이것이가악의 시초였다(是年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 라 기록되어있고, ≪ 삼국유사 ≫ 에는 “ 도솔가를 처음으로 지으니 차사사뇌격이있다(始作兜率歌 有嗟辭詞腦格). ” 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악명인 ‘ 도솔가 ’ 의뜻이나 차음(借音)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텃노래 〔 國都歌 〕 의 뜻으로 ‘ 돗놀애 ’ 또는 ‘ 두(도)리놀애 ’ 로 풀이하거나 ② 제신가(祭神歌)의 뜻으로 ‘ 덧소리 ’ 에서 온것으로 보기도 한다.
 
③ 〈 돌아악 突阿樂 〉 의 동명이사(同名異寫)로서 후렴의 특징을 따라 붙인 ‘ 槪 이놀애 ’ 라는 견해도 있고, ④ 신악(神樂)의 성격을 지닌 ‘ 도살푸리 ’ · ‘ 살푸리 ’ 와 관련짓기도 한다.
 
한편 ‘ 도솔 ’ 을 ⑤ 환강(歡康)의뜻인 ‘ 두리 ’ 로서 동이악(東夷樂)의 이름인 ‘ 조리(朝離) ’ · ‘ 주리(侏離) ’ 의 다른 차자식(借字式) 표기라는 설도 있으며, ⑥ 두레노래 〔 農樂 〕 의 원류로서 ‘ 두률 ’ , 혹은 ⑦ 소생(蘇生) · 재생의 뜻인 ‘ 도살놀애 ’ 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밖에 ⑧ 치리(治理) · 안민(安民)의 노래로서 ‘ 다 基 놀애 ’ 로부터 왔다는 설과 ⑨ 일본에전해진 고려악무인 ‘ 도리소 〔 鳥蘇 〕 ’ 와 같은 신악(神樂)으로 ‘ 도릿소리 ’ 라는 여러 풀이가 있다.
 
장르에 관해서는 차사사뇌의격조가 ‘ 있다 〔 有 〕 ’ 는 표기에 따라 향가의 하위 장르인 사뇌가 ( 詞腦歌 ) 장르에 포함된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뇌가장르와는 다른 독립적 장르로 보는 설도 있다.
 
형식에 대해서도 사구체설, 육구체설, 십구체설(사뇌가인 三句六名體), 한 구가 여섯 단어로 이루어지고여음을 가진 〈 정읍사 〉 형식설 등이 있다.
 
그리고 사뇌가 삼구에 있어서전구나 중구의 끝에 감탄어미를 붙여 시상(詩想)을 분절하되, 후구 부분에해당되는 구에 가서는 후구 대신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여음구(餘音句)를넣고 이어나가던 연장체(聯章體) 장행의 노래 형식설을 갖는 것으로보는 설도 있다.
 
혹은 삼구육명의 사뇌가형식과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지만 차사가 개입되는 형식적 장치와 노래의의미단락이 세 개의 구조적 단락으로 짜여진 정도의 형태일 것고 보기도한다.
 
내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해석상의 차이를 보인다. 왕의 어진 정치를 찬송한 것이나 민속환강을노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송축한 것, 부족연맹국가의건설에 따른 국가이념과 연맹국간의 자율적 조화 및 연맹국의 무한한발전을 염원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악장문학이 가지는찬미하고 경계하는 양 측면을 모두 지닌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았거나백성의 환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을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문학사적 위치에 관해서는두 사서(史書)에서 ‘ 시제(始製) ’ · ‘ 시작(始作) ’ 이라는말로 〈 도솔가 〉 를 강조하고 있는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는견해들이 있다.
 
①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가로보는 견해, ② 상고(上古)의 순연한 종교적 의식의 축사(祝詞)와 근고(近古)의서정요의 중간 형식으로 보는 견해, ③ 그때까지 전래해온 주교적(呪敎的) · 집단적인 것이 아닌 새로운 서정적 민요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④ 낡은 가악인 신요(神謠)에서종교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순수하게 민중의 환강이라는 새로운 내용과형식을 갖춘 가요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⑤ 동양적 예악사상에입각해 의도적으로 제작되어 궁중의례에서 연주된 최초의 정풍(正風)가악에사용된 노래로 보는 견해가 있다.
 
⑥ 왕이 친제(親祭)하였던국행제의(國行祭儀)에서 불려진 제악(祭樂)으로서 왕가가 제정한 최초의가격(歌格)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 외에 ⑦ 국가의 기반을 수립하는시기에 야기된 여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거행된 제의곧 민속환강을 구하는 기축(祈祝)의 제의에 쓰인 최초의 가악으로 평가하는견해도 있다.
 
≪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韓國音樂硏究(李惠求, 國民音樂硏究會, 1957), 國文學通論(張德順, 新丘文化社, 1960), 한국고전시가론(鄭炳昱, 新丘文化社, 1979), 한국고시가의거시적 탐구(김학성, 집문당, 1997), 新羅古樂再攷(李杜鉉, 新羅伽倻文化 1, 靑丘大學 新羅伽倻文化硏究院, 1966), 兜率歌再攷(金性彦, 東亞大國語國文學論文集 6, 1985), 兜率歌와 新羅初期의 歌樂(許南春, 李佑成先生定年退職紀念國語國文學論叢, 1990), 兜率歌(金承璨, 崔珍源博士 停年紀念論叢 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199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미륵보살(彌勒菩薩)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보살 가운데 하나.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미륵은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자씨(慈氏)로 의역된다. 따라서 미륵보살은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불교사상의 발전과 함께 미래불이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싹트게 됨에 따라 미륵보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뒤 56억7000만 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자세가 곧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삼국시대에 이 미륵반가사유상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또한 미륵보살을 신앙하는 사람이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없을 때는 현재 보살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上生〕, 또는 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下生〕 염원하며 수행하는 미륵신앙이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현재 미륵보살이 상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은 지족(知足)이라고 번역되는 하늘로, 지나친 욕심이나 번뇌망상으로 방탕함이 없는 세계이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의 제자가 되는 길은 관행인과(觀行因果)에 있다고 보았다. 이 관행은 도솔천의 뛰어난 장엄과 미륵보살이 수행의 결과로 누리는 과보의 뛰어남을 관하는 것이다.
이 관에 수반되는 행으로는 미륵보살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이미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것과, 미륵보살의 덕을 우러러 받들고 믿는 것, 그리고 탑을 닦고 마당을 쓸며 향과 꽃을 공양하는 등의 일이다.
우리 나라에는 3000년 설에 입각하여 미륵보살이 대부분 비바람 아래 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조상되어 있다. ≪참고문헌≫ 彌勒上生經, 彌勒上生經宗要(元曉).(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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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