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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2019년 6월
2019년 6월 4일
우적가(遇賊歌)
2019년 6월 2일
about 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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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적가(遇賊歌) 향가(鄕歌) # 영재
【학습】
(2019.06.04. 17:09) 
◈ 우적가(遇賊歌)
신라 원성왕(元聖王:재위 785∼798) 때의 화랑이며 승려인 영재(永才)가지은 10구체 향가(鄕歌).
목   차
[숨기기]
제 마음에
형상을 모르려던 날
멀리 □□ 지나치고
이제란 숨어서 가고 있네
오직 그릇된 파계주를
두려워할 짓에 다시 또 돌아가리!
이 쟁기(무기, 칼, 도둑의 흉기)랄사 지내곤
좋은 날이 새리이니
아으 오직 요만한 선(善)은
아니 새 집이 되니이다.
양주동해독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해는 서산에 멀어지고 새도 제 깃에 숨다) 달이 달아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것은 강호님(세력이 강하여 대적하기힘든 사람),
머물 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를 마다 하고
즐길 법(불법, 곧 부처의 가르침)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만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김완진 해독
 

 
 

1. 요점 정리

• 작가 : 영재
• 갈래 : 향가
• 연대 : 원성왕
• 형식 : 10구체
• 주제 : 도적을 회개시킨 노래
 
 

2. 내용 연구

일원조일(日遠鳥逸) : 해는 서산에 멀어지고 새도제 깃에 숨다
강호 : 세력이 강하여 대적하기 힙든 사람
법 : 여기서는 불법, 곧 부처의 가르침
 
 

3. 이해와 감상

오구라(小倉進平)는 <영재우적>, 양주동은 <우적가>, 김선기는 <도둑 만난 노래>, 김사엽은 <도적가>라하였다.신라 원성왕(元聖王:재위 785∼798) 때의 화랑이며 승려인 영재(永才)가지은 10구체 향가(鄕歌). 영재는 풍류에 뛰어난 화랑으로 향가에 능하였다하는데, 90세에 뜻을 세워 승려가 되고자 남악(南岳:지리산)으로 가는도중 대현령(大峴嶺)에 이르러 60여 명의 도둑떼를 만났다. 도둑들이노래 잘하는 영재임을 알고 노래를 지으라고 하자 즉석에서 이 노래를지어 불렀는데, 도둑들이 감동하여 그를 따라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영재우적(永才遇賊)>에 그 유래와가사가 실려 전하나, 노래 가운데 결실자(缺失字)가 간간이 눈에 띈다. 그 내용은 재물에 눈이 어두운 중생에게 인생의 참뜻과 바른 길을 제시하여자신을 수련하며 참되게 살아가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향가라고 볼 수있다.
 
이해와 감상1
 
신라 원성왕 때 승(僧) 영재(永才)가 지은 향가로 '삼국유사' 권5 영재우적(永才遇賊)조에 실려 전한다. 영재가 남악(南岳)에 은거하러 가던 길에 도둑을 만났다. 도둑은 칼을 영재의 목에 대고 위협했으나 두려워하는 빛이 없자 그 이름을 물었다. 평소 영재의 이름을 들은 바 있는 도둑은 영재에게 노래를 지으라고 명했다. 노래를 들은 도둑은 크게 감동하여 영재에게 비단 2필을 주었으나 영재는 재물은 지옥으로 가는 근본이라며 거절했다. 도둑은 이에 감동하여 칼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영재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한다. 빠진 글자가 있어 정확한 해독은 어려우나 대강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지금 나는 내 마음속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깊은 산중으로 수도하러 가는 수도승이다/너희들 칼에 내가 찔림을 받으면 좋은 날이 바로 올 것이라 슬플 것이 없지만/아직도 정진해야 할 길은 멀리 남아 있는데 그렇게 무참히 명을 끊을 수 있겠느냐." 욕심을 버리고 수련을 쌓으며 참되게 살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노래이다.
 
이해와 감상2
신라 원성왕 때 영재(永才)가 지은 10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5에 ‘영재우적(永才遇賊)’이라는 제목 아래 이 노래와 아울러 연기설화가 실려 있다. 영재가 도적을 만나 그들의 명에 따라 지은 노래로 ≪삼국유사≫에는 이 노래의 제목이 전해져 있지 않다.
오구라(小倉進平)는 〈영재우적〉, 양주동(梁柱東)은 〈우적가〉, 김선기(金善琪)는 〈도둑 만난 노래〉, 김사엽(金思燁)은 〈도적가〉라 하였다.
 
〔연기설화〕
 
수록문헌에 따르면 승려인 영재는 천성이 익살스럽고 재물에 무심하며, 또한 향가를 잘 하였다. 영재가 만년에 장차 남악에 은거하려고 대현령(大峴嶺)에 이르렀을 때, 60여 명의 도적을 만났다. 도적들이 칼을 들이대며 해를 가하려고 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자, 도적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의 이름을 물으니 영재라 하였다.
도적들은 일찍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노래를 지으라고 명하였다. 이에 영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르자, 도적들은 노래에 감동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고 비단 두 필을 주고자 하였다.
이에 영재는 “재물이 지옥 가는 죄악의 근본임을 알아 이제 깊은 산에 숨어서 일생을 지내고자 하는데 어찌 이것을 받겠는가.” 하고 땅에다 버렸다. 도적들은 더욱 감동하여 칼과 창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었으며, 지리산에 들어간 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용 및 해석〕
이 노래의 원문 해독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해독
제 絅坮매 瀝모愷렷단 날 머리-디나치고 ○柰수메 가고쇼다 오직 외온 破戒主 저플 즈○蝎외 寗 돌려 이 잠可坮 디내온 됴浬날 새누옷다니 아으 오지 이欖맛한 善은 안디 새집 愷외니다 (양주동 해독)
 
② 현대어 풀이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日達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것은 强豪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法을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만한 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최철 풀이)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글자들이 있어서 완전한 해독을 하기 어렵다. 해독상의 차이점을 양주동과 김완진의 풀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日遠烏逸-過出知遣’를 양주동은 ‘멀리-지나치고’로 푼 반면에, 김완진은 ‘日達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로 풀이하였다. ‘日達鳥逸’를 양주동은 ‘멀리’로 보았는데, 김완진은 한문투의 삽입으로 본 것이다.
‘次弗史內於都還於尸朗也’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해독은 비슷한 차이점이 있다. 양주동이 ‘두려워할 짓에 다시 또 돌아가리’로 풀이한 반면, 김완진은 ‘머물게 한들 놀라겠습니까’로 풀이하여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 구절인 ‘此兵物叱沙過乎 好尸日沙也內好呑尼’에서도 양주동은 ‘이 쟁기를 사 지내면 좋은 날 새리니’로 해석한 반면, 김완진은 ‘병기를 마다하고 즐길 법을랑 듣고 있는데’로 해석하여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 ‘安支尙宅都乎隱以多’의 해독에서도 ‘安支’를 ‘아니’로 본 반면, 김완진은 ‘아직’으로 보아 차이가 있다. 나머지 부분도 양주동은 의미로 해독한 반면, 김완진은 소리로 해독하여 ‘턱도 없다’로 하고 있다.
〈우적가〉의 대략적인 내용을 풀이하면, “지금 나는 내 마음 속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깊은 산중으로 수도를 하러 가는 수도승이다. 너희들 칼에 내가 찔리면 좋은 날이 바로 올 것이라 슬플 것이 없지만, 아직도 정진해야 할 길은 멀리 남아 있는데, 그렇게 무참히 명을 끊을 수 있겠느냐.”라고 설복시킨 노래이다.
재물에 눈이 어두운 중생에게 인생의 참뜻과 바른 길을 제시하여, 자신을 수련하며 참되게 살아가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향가이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鄕歌麗謠新釋(池憲英, 1947), 鄕歌硏究(鄭烈模, 1965), 鄕歌解讀法硏究(金完鎭, 서울大學校 出版部, 1980), 新羅詩歌의 硏究(尹榮玉, 螢雪出版社, 198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심화 자료

• 영재
 
생몰년 미상. 신라 원성왕 때의 승려. 천성이 익살스럽고 재물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향가(鄕歌)를 잘 하였다. 만년에 지리산으로 은거하러 가다가 대현령(大峴嶺)에 이르렀을 때 도둑 60여명을 만났다.
도둑들이 해치려 하자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당당하고 화기(和氣)롭게 대하였다. 뒤늦게 도둑들은 그가 향가에 능한 영재임을 알고 노래를 짓게 하였다.
“제 마음에 모든 형상을 모으려 하던 날 멀리 지나치고, 이제는 숨어서 가고 있노라. 오직 그르친 파계승을 두려워할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노니, 이칼이사 지내고 나면 좋은 날이 새리니. 아! 오직 이만큼의 선(善)은 새집이 안된다네.”
도적들이 그 뜻에 감동하여 비단 두 단(端)을 주자,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아 장차 깊은 산에 숨어 일생을 보내려고 하거늘, 어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하고 땅에 내던졌다.
도둑들이 그 말에 감동되어 칼과 창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되어 같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이때 영재의 나이 90세였다. ≪참고문헌≫ 三國遺事.(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적가(遇賊歌) 향가(鄕歌) # 영재
【학습】 향가
• 원가(怨歌)
• 우적가(遇賊歌)
• 안민가(安民歌)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추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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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