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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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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일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about 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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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향가(鄕歌) # 득오
【학습】
(2019.06.02. 17:01) 
◈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년) 때의 화랑 득오가 지은 향가. 8구체 형식의 향가이다. 동료 화랑인 죽지랑의 죽음을 애도하여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작품이다.
목   차
[숨기기]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하는구나
눈 깜박할 사이에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
- 양주동 해독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계시지못하여 우올 이 시름.
전각(殿閣)을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헐어 가도다.
눈의 돌음 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낭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다북쑥이 우거진 무덤)에서잘 밤 있으리.
- 김완진 해독
 

 
 

1. 요점 정리

 
• 작자 : 득오곡(得烏谷, 득오라고도 함). 신라 효소왕 때 화랑.
• 형식 : 8구체 향가
• 연대 : 효소왕(692-702) 때
• 성격 : 찬양적. 흠모적
• 내용 : 화랑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개인 서정을 빌려 노래한 것
• 주제 : 죽지랑에 대한 흠모의 정. 화랑 죽지랑에 대한 추모의 정
• 의의 :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서정시로, 낭도(郎徒)의세계를 보여 준 작품이다.
• 구성 :
 
해독 1.
 
(그대가 계셨던) 지나간 봄이 그리워서
모든것이 울며 시름에 잠기는구나. <사별에대한 슬픔>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그대의) 얼굴이주름살을 지니려 하는구나. <살아생전의 임의 모습 회상>
 
눈 돌이킬(깜짝할)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기회를) 지으리이다. <재회에대한 전망>
 
죽지랑이여, 그리운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이우거진 마을에서 함께 잘 밤이 있으리다(저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재회의확신>
 
해독 2
 
간(지나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것이 울어 시름하는구나. <젊음에의회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지니려는구나. <늙음의 안타까움>
 
눈 돌이킬(눈깜빡할) 사이에
만나뵈옵기를 지으리. <그리움의충동>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
다북쑥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오. <만날수 없음에 대한 탄식>
 
 

2. 내용 연구

간(지나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것이 울어 시름하는구나.
[지나간봄은 죽지랑이 살아 있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간' 즉 '지나간'이라는 말에는 죽음이라는 뜻과 그로 인한 상실감도 담겨 있을 수 있다.]<젊음에의회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지니려는구나.
[죽지랑의인품을 회상하고 늙음에 대한 한탄과 더불어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하는부분이다.] <늙음의 안타까움>
 
눈 돌이킬(눈깜빡할) 사이에
만나뵈옵기를 지으리.
[죽지랑을만나고 싶어하는 화자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그리움의충동>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
다북쑥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오
[죽지랑에대한 추모의 정이 나타나고 불교적 윤회관이 담겨 있는 말로 '다봊 굴허'는 '무덤' 또는 '저 세상'의 뜻으로, 이 세상에서는 헤어졌으나 죽어서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만날수 없음에 대한 탄식>
 
 

3. 이해와 감상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는신라 효소왕 때 득오 ( 得烏 )가 지은 8구체 향가.
 
〔개 요〕
 
득오가 죽지랑(竹旨郎)을사모하여 지었다는 노래. ≪ 삼국유사 ≫ 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竹旨郎條)에 관련설화와 함께 가사가 전한다. 이 노래의 이름은 양주동 ( 梁柱東 )이 ‘ 모죽지랑가 ’ 라고 칭한 이외에도 오구라(小倉進平)는 ‘ 득오곡모랑가(得烏谷慕郎歌) ’ 라 하였고, 김선기(金善琪)는 ‘ 다기마로 노래 ’ , 김사엽(金思燁)은 ‘ 대마로가 ’ 혹은 ‘ 죽지랑가 ’ 등으로 불렀다.
 
삼국을 통일한 후 화랑도가세력을 잃어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노래이다. 노래 제목은 ≪ 삼국유사 ≫ 본문의 기록에 따라 뒤에 붙인것이다.
 
〔관련 설화및 내용〕
 
≪ 삼국유사 ≫ 에는 이노래를 짓게 된 동기를 설명해 주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죽지랑의무리에 득오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 죽지랑을 모시다가 갑자기열흘 가까이 나오지 않으므로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이에 그의 어미가 모량리(牟梁里)의 익선 아간(益宣阿干)이 부산성의창고지기로 급히 임명하여, 미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게 되었음을고하였다.
 
죽지랑이 낭도 137인을 거느리고떡과 술을 가지고 득오곡을 위로하러 가서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득오곡을불러 떡과 술을 먹이고 익선에게 휴가를 주어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익선은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사리(使吏) 간진 ( 侃珍 )이 세금으로 곡식 30석을 거두어 성중으로 돌아가다가 낭의 선비를아끼는 인품을 아름답게 보고, 익선의 융통성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겨곡식 30석을 주면서 낭의 청을 허락해줄 것을 청하였지만, 그래도 듣지않으므로 다시 말과 안장까지 주자 그때서야 득오곡을 놓아 주었다.
 
이러한 후의를 입은 득오곡이죽지랑을 사모해서 이 노래를 지었다는 것이다. ≪ 삼국유사 ≫ 는 이러한산문 기록의 아래 〈 모죽지랑가 〉 의 가사를 수록하고 있다. 양주동의해독에 따라 가사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간봄 그리매/모든 것 坮 우리 시름/아 譴 나토샤온 즈 萄 /살 ○ 디니져/눈 돌칠 嗜 이예/맞보 督 디지 圖 리/郎이야 그릴 絅 撞 鏡 녀올 길/다 珖 絅 當 羸 잘 밤이시리(간 봄 그리매/모든것사 설이 시름하는데/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주름살을지니려 하옵내다/눈 돌이킬 사이에나마/만나뵙도록(기회를)지으리이다./郎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
 
현대역은 다음과 같다.
 
간 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서러워 시름하는데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 하옵내다.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하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길이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최철 풀이)
 
원문은 다음과 같다.
 
去隱春皆林米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 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풀이 및작품의 의의〕
 
해독상의 성과를 보면 양주동의해독은 15세기의 음가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는데, 신라 시대의 음가가과연 15세기의 음가와 동일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를 대변하는 해독으로는 홍기문과 정열모의 연구를 들 수있다. 홍기문은 신라어의 음가에 최대한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특이하게 해독한 바 있다.
 
그리고 김완진은 네 가지원칙을 세워서 작품을 해독한 특징이 있다. 일자 일음의 원리, 훈수종음의원리, 맥락 일치의 기준, 율조의 기준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독하였다.
 
양주동과 김완진의 해독상차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 皆林米 ’ 에 대한 해독에서 양주동은 ‘ 그리워함에 ’ 로 하였고, 김완진은 오지 못하다로 하여 음역(音譯)과훈역(訓譯)의 차이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 ’ 에 대해서는 양주동이 ‘ 아름다움 나타내신 ’ 으로 풀이한 반면, 김완진은 ‘ 殿閣을 밝히오신 ’ 으로 풀이해서 큰 차이를 보여 주고있다. 그리고 ‘ 逢 烏支惡知作乎下是 ’ 에 대해서도 양주동은 ‘ 만날수 있도록 만들겠다 ’ 고 해석한 반면, 김완진은 ‘ 만나보기를 어찌이룰 것인가 ’ 로 해석하여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래를 보면 지나간 봄을그리며 시름에 젖고, 또 죽지랑의 아름답던 모습이 쇠함을 바라보는득오곡의 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작품의 주된 정조를형성하고 있다. 한때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 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몸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郎)의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향한 변하지 않는 존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작품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설과, 그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여지은 노래라는 설이 학계에 제기되어 있다. 전자에 따를 때 이 노래는득오가 앞서 익선에게 끌려 가서이거나 그 일이 있은 뒤 낭을 사모하여지은 노래가 되고, 후자의 경우 죽지랑이 죽은 뒤 그의 덕을 사모하여추모 찬송한 추모가의 성격을 지닌다.
 
어떻든지 이 작품은 지난날 위대하였던 노화랑 죽지랑이 일개 아간 벼슬의 익선에게 수모를 당할정도로 그 위엄과 위의를 상실해 간 화랑도의 세력을 잃은 모습을 상징적으로형상화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 朝鮮古歌硏究(梁柱東, 博文書館, 1942), 다기마로 노래(金善琪, 現代文學 13-2, 1967.2.), 향가해석(홍기문, 1956), 향가해독법 연구(김완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新羅歌謠의 硏究(朴魯 褻 , 悅話堂, 1982), 향가의 문학적 해석(최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0).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여간 모죽지랑가는 화랑 죽지랑의 무리인 득오곡이 자기가 모시던죽지랑이 죽자 그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이다.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인죽지랑을 찬양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다면, 저 세상어느 곳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적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기리고 그리워하는 노래로서,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생 무상의정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술성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다른 작품에비해 현저하게 적다는 점에서, 순수 서정시에로 진일보한 작품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한때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공을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에 받았던노화랑(老花郞)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에서, 삼국을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실세(失勢)하여 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감상2
 
화랑 죽지랑의 무리인 득오곡이자기가 모시던 죽지랑이 죽자 그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이다. 고매한인품의 소유자인 죽지랑을 찬양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않다면, 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적 소망을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함께 화랑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노래로서,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인생 무상의 정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술성이나 종교적인 색채가다른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는 점에서, 순수 서정시에로 진일보한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데 공을 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몸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郞)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심정에서,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실세(失勢)하여 가는 과정을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화랑 죽지랑의 탁월한인품과 고역(苦役)에서 구해 준 덕을 사모하여 부른 향가로 화랑의 세계를보여 주는 작품으로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대표작이다. 이노래의 해독상 제작 연대를 ①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은 것(양주동), ②타계(他界)한후에 지은 것(김동욱), ③ 죽지랑이 효소왕 때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진덕여왕 때의 작품으로 보는 설(신수식) 등 가장 이견(異見)이 심하기도하다.
 
이 노래는 죽지랑에 대한 애정이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더욱 정신적 가열 작용을 일으키게하는 순수 서정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돌이킬 수 없는봄[靑春(청춘)]에의 회한이(1,2행) 숭앙(崇仰)의 정으로 이입(移入)된죽지랑의 늙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폭발되고(3,4행), 이로 인해 더욱만나고 싶은 애정적 충동은(5,6행) 드디어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처절한탄식으로 마무리되는(7,8행) 득오(得烏)만의 정서적 서경과 만날 수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7,8행은 10구체 향가의 낙구(落句)인 9,10행과같은 탄사(嘆詞)를 가진 유사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절묘한 은유적표현으로 전개되어 있다. '그리워 할 마음의 가는 길'이라는 감정의구상화와 '다북쑥 마을'이 지니는 황촌(荒村)은 곧 작자 득오가 낭을만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정신적 초토(焦土)나 폐허의 은유적 표현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자의 정서적 처절성이 가열하면 해질수록죽지랑이라는 화랑의 인품과 덕의 높음을 더욱 실감 있게 상상할 수있을 것이다.
 
 

4. 심화 자료

• 배경 설화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고 하는 급간(級干:신라 관등의 제 9위)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 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전(幢典:오늘날의 부대장에 해당하는 신라 때의 군직) 모량부(牟梁部- 사람이름)의 익선아간(益宣阿干:아간은 신라 관등의 제 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 곡식창고를 지키는 직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지랑은 이 말을 듣고,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그 곳에 갔다면 찾아 볼 필요가 없지마는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오. 죽지랑은 익선의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지금의 밀양)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싣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변통성이 없는 것을 품위가 없고 천하게 생각하여, 가지고 가던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득오를 보내오록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또 진절사지(珍節舍知-신라 관직의 제13위)가 쓰는 말안장을 더 주었더니 드디어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신라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관직)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씻어 주고자 하였는데, 도망쳐 버렸으므로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때는 동짓달 몹시 추운 날인데 성 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키니 얼어죽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모량리 사람은 모두 벼슬에서 몰아내게 하였고, 그 지방 사람 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주었다.
처음에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것이 모죽지랑가다.
 
• 득오곡(得烏谷)
 
신라 효소왕 때의 화랑, '득오'라고도 한다.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죽지랑의 문도로, 그를 추모하는 죽지랑을 사모하는노래인 '모죽지랑가'를 지음
 
• 세속 오계(世俗五戒)
 
화랑 취항과 귀산이 원광법사를 찾아가서 일생 동안 살아가는데 꼭 지켜야 할 가르침을 받은 다섯가지의 계율 로 다음과 같다.
 
사군이충 (事君以忠) : 나라에 충성하기
사친이효 (事親以孝) : 부모에 효도하기
교우이신 (交友以信) : 친구를 믿음으로 사귀기
임전무퇴 (臨戰無退) : 싸움터에 나아가 물러서지 않기
살생유택 (殺生有擇) : 생명이 있는 것을 함부로 죽이지 않기
 
• 해석에 대한 이설
 
화랑 죽지랑의 무리인 득오곡이 자기가 모시던죽지랑이 죽자 그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이다.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인죽지랑을 찬양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다면, 저 세상어느 곳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적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경주부산성 (慶州富山城)
 
그리고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기리고 그리워하는 노래로서,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생 무상의정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술성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다른 작품에비해 현저하게 적다는 점에서, 순수 서정시에로 진일보한 작품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한때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공을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에 받았던노화랑(老花郞)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에서, 삼국을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실세(失勢)하여 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화랑 죽지랑의 탁월한 인품과 고역(苦役)에서구해 준 덕을 사모하여 부른 향가로 화랑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대표작이다. 이 노래의 해독상 제작연대를 ①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은 것(양주동), ②타계(他界)한 후에지은 것(김동욱), ③ 죽지랑이 효소왕 때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진덕여왕때의 작품으로 보는 설(신수식) 등 가장 이견(異見)이 심하기도 하다.
 
이 노래는 죽지랑에 대한 애정이 시간의 흐름에대한 안타까움으로 더욱 정신적 가열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순수 서정시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돌이킬 수 없는 봄[靑春(청춘)]에의회한이(1,2행) 숭앙(崇仰)의 정으로 이입(移入)된 죽지랑의 늙음에 대한안타까움으로 폭발되고(3,4행), 이로 인해 더욱 만나고 싶은 애정적충동은(5,6행) 드디어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처절한 탄식으로 마무리되는(7,8행) 득오(得烏)만의 정서적 서경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7,8행은 10구체 향가의 낙구(落句)인 9,10행과 같은 탄사(嘆詞)를 가진유사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절묘한 은유적 표현으로 전개되어 있다.'그리워 할 마음의 가는 길'이라는 감정의 구상화와 '다북쑥 마을'이지니는 황촌(荒村)은 곧 작자 득오가 낭을 만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오는 정신적 초토(焦土)나 폐허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작자의 정서적 처절성이 가열하면 해질수록 죽지랑이라는 화랑의 인품과덕의 높음을 더욱 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해설 : 경주부산성 (慶州富山城)으로효소왕 때 화랑 득오가 죽지랑과의 우정을 그리워하며‘모죽지랑가’를 지은 곳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현재는 남문터와 군의 창고터·군사훈련을 시켰던 연병장터·우물터·못터, 그리고 비밀통로인 암문터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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