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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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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2.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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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팔], 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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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는 시방 만주의 서북 저쪽 오논강(斡難江) 가에서 짐승 치고 살던 한 부락이더니, 테무진(鐡木眞)이 부장이 됨에 미쳐 안으로 부족을 통일하고 밖으로 사방을 정복하여 거연히 큰 나라를 이루고, 그 아들 오고대(窩闊台)에 이르러 금(金)을 멸하고 드디어 동방 대륙의 주인 자리에 앉으니, 이 것이 고종(高宗) 二一(이일)년, 약 七一(칠일)○년 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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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가 일어나매 대륙의 형세가 온통으로 흔들리고 그 영향이 저절로 고려가 미쳐 왔읍니다. 고종 초년에 금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금나라 장수 포선만노(浦鮮萬奴)가 반하여 시방 간도(間島) 지방에 동진국(東眞國)을 세우고, 계단의 끼친 백성 야불사(耶不斯)의 무리는 시방 장춘(長春) 근처에 대요수국(大遼收國)을 만들었으니, 고종 三[삼]년, 七三[칠삼]○년쯤 전에 계단의 무리수만이 몽고에게 쫓겨서 압록강을 건너와 의주 이하의 여러 성을 침략하고 각처로 돌아다니면서 작폐가 대단하다가, 五[오]년에 우리 장수 김취려(金就礪)에게 패하여 강동성(江東城)으로 들어갔읍니다. 이에 동 진과 몽고가 다 군사를 데리고 와서 공동 작전을 청하여, 六[육]년 정월에 세 나라 연합군이 강동을 에워싸고 계단의 무리를 항복받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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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하여 고려가 몽고로 더불어 서로 다닥뜨렸는데, 몽고는 동방 대륙에서 일을 하자면 고려를 손에 넣어야 할 형세를 보고, 함참 서역 여러 나라를 정복한 위엄으로써 고려를 눌러서 굴복시키려 하며, 한쪽에서 동진은 동진대로 고려의 동북 지경을 집적거려서 고려의 북방 걱정이 두 쪽으로 쉬지 아니하였읍니다. 그러나 최씨의 정권은 그대로 꿋꿋하게 버티어서 허리를 굽히지 아니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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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부분 부분의 싸움에서는 가끔 쾌한 승전을 하여 적의 혼을 띄우는 일이 있었읍니다. 시방 의주 압록강 건너에는 금나라에서 파속부(婆速府)를 두고 많은 군사를 주둔시켜 두었는데, 고종 초년에 포선 만노의 침략을 받았을 제 고려가 구원병을 내어 그 위태함을 펴준 일이 있더니, 고종 十二[십이] 년에 그 장수 우가하(亏哥下)가 은덕을 배반하고 가만히 우리 지경으로 침입하기를 꾀하거늘, 우리 의주를 지키는 장수 김희제(金希磾)가 앞질러 보병·기병 一[일]만 인을 데리고 가서, 그 근거지인 석성(石城)을 들이 쳐서 그 군사를 무찌르고 우가하의 항복을 받고 돌아온 일이 있더니, 이 싸움 뒤 얼마 아니하여 금나라가 멸망하여 버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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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十八[십팔]년에 몽고, 살례탑(撒禮塔)으로 하여금 대군을 거 느리고 와서 귀주(龜州)를 에워쌌었읍니다. 이때 귀주를 지키는 장수는 박서(朴犀) 이러니, 이 성을 잃으면 나라가 없으리라 하여 상하 일심으로 죽는 이상의 싸움으로써 지킬새, 몽고가 그동안 아시아로부터 구라파까지에 걸친 여러 백 군데 성을 치던 경험으로써, 갖은 방법으로 밤낮 없이 들이치기를 두어 달에 걸치되 군사의 힘으로는 어찌하는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몽고 군사가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조정을 굴복시키고 임금의 명으로써 성을 열게 하나 얼른 응하지 않고, 이 성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소란하여 견디지 못 함을 알고야 겨우 임금의 명을 좇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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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례탑의 난으로 하여 몽고의 덤비는 힘이 얼마나 센 줄을 안 고려는, 그 전 같은 방법으로는 몽고를 대항하기 어려움을 깨달았읍니다. 이때 정권을 잡고 있는 최우(崔瑀)가 단연히 도읍을 강화(江華)로 옮기고 왕과 및 모든 기관을 이리로 가지고 들어갔읍니다. 대개 몽고 사람은 대륙의 마른 바닥에서 사는 까닭에 물을 끔찍이 무서워하는 줄 알고서 그 약점을 이용한 것 입니다. 강화는 물에 가까운 섬이언마는 몽고는 감히 이를 넘어 들어갈 생각을 못하여, 이 뒤 三[삼]○년 동안에 여섯 번이나 대군으로써 침입 하였으되 고려의 정권은 아무 탈 없이 강화 안에서 편안하게 버티고 나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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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몽고가 일어난 지 이미 반 세기에 그때의 거의 전세계를 거침새 없이 횡행하고 그 군사의 이르는 곳에 없어지지 않는 나라가 없었거늘, 오랫 동 안이 강정(强敵)을 대항하여 피곤한 줄을 모르기는 그때 세계에 고려 하나밖에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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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이 하도 오래니까 쫓겨 다니는 백성이 차차 최씨의 강경 정책을 괴롭게 여기고, 조정에는 최씨의 전횡함을 미워하는 기세가 생겨서 四五[사오] 년, 약 六九[육구]○년 전에 반대당이 일어나서 최씨를 거꾸러뜨리고 오래간만에 정권이 왕에게로 돌아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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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정의 방침이 몽고에 굽히기를 결정하여 태자를 몽고 임금 쿠빌라이(忽必烈[홀필렬])에게 보내어서 화친을 청하매, 쿠빌라이는 의외같이 생각 하여 대접을 후히 하고 마침 고종의 세상 떠난 기별이 오매 군사를 내어 태자를 모셔다 두게 하였읍니다. 이렇게 임금된 이가 원종(元宗)이니, 이 뒤 여러 번 곡절을 치르고 고려 마침내 몽고의 보호국이 되어서, 몽고의 군사가 고려로서 물러나고 원종 十一[십일[년에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돌려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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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으로 돌아온 이듬해에 몽고는 도읍을 연경(燕京)(시방 북경)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원(元)이라고 고쳤는데, 원에서는 고려에 뒷걱정을 없애려하여 원종의 태자로 사위를 삼아서 자기 서울에 데려다 두었다가 임금될 때에 돌려보내고, 이것이 전례를 이뤄서 이 뒤 약 백 년 동안에 몽고의 공주(公主) 일곱 사람이 고려로 시집왔읍니다. 이렇게 친족 관계로써 고려와 원이 서로 의심을 놓고 편안히 지내니, 대저 몽고는 고려를 힘으로 굽힌 것 아니라 집안 식구를 만들어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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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원나라로 더불어 한집안처럼 지내는 동안에는 괴로운 일도 많았으니, 열왕(烈王)이 임금 되는 해, 시방부터 六七[육칠]○년 전에 쿠빌라이의 군사와 함게 三[삼]만 三[삼]천 연합군으로써 일본을 치러 갔다가 태풍을 만나서 실패하고, 그 뒤 七[칠]년 만에 또 한 번 그러한 손해를 받은 일이 있었으며, 이렇게 두드러진 일 말고도 임금이 본국에보다 원나라 서울에 가서 있는 때가 많아서, 오고 가는 동안에 재산이 많이 든다든지, 원나라에서 이 것 저것 보채는 일이 많아서 이루 수응하기 어려웠음 등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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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 원나라는 그때 세계의 대부분을 판도 안에 거둬 있고, 이 각국 사람들이 원나라 서울에 와서 벼슬도 살고 장사도 하여, 말하자면 세계의 인종과 문화가 여기 다 모였는데, 그것이 그대로 고려 서울에 연락 하여 우리가 세계로 더불어 호흡을 한가지로 한것 같음은 좋은 영향의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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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몽고는 워낙 문화적으로 유치한 종족이어서 대제국을 건설한 뒤에 세계상 모든 문화를 가져다가 가기네의 생활 내용을 풍부하게 하였는데, 고려의 의복· 음식 만드는 솜씨가 많이 몽고로 전해 가서 고려시체란 것이 그 네 의사이에 크게 숭상되고, 일변 몽고의 인물이 많이 이리로 들어오는 동시 에그 풍속이 따라온 것도 더러 있으니, 부인네의 예복에 쓰는 족두리· 도투락댕기와, 남자의 옷고름에 차는 장도와 수육 삶은 맹물을 설렁탕이라고 하는말 등은 대개 몽고로서 전해 온 것으로 인정되는 바입니다.
【원문】8. 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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