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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신라의 번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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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2.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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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사], 신라의 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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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三[삼]국 통일이 고구려 쪽으로는 매우 부실하고 말았지마는, 여하간 반도의 대부분을 한 손아귀에 넣고 물자와 권력을 마음대로 쓰게 된지라, 신라 나라의 번성하고 영화스러움은 진실로 그전에 보지 못한 바 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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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 뒤의 신라는 위선무력 제일(武力第一)의 시기를 지내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문무왕의 다음 신문왕(神文王) 때에는 국학(國學) (곧 국립 대학)을 세워서 학문을 권장하니, 신라 시대의 제일 글 잘 짓기로 유명한 강수(强首)와, 지나의 서책을 우리 말로 새겨 읽는 법을 마련한 설총(薛聰)이라는 이가 다 이때에 활동하였으며, 그다음 효소왕(孝昭王)과 또 그다음 성덕왕(聖德王) 두 대에 걸쳐서는 천문학(天文學)· 의학(醫學)· 율령학(律令學)· 산학(算學) 등의 기관이 설치되었으며, 또 성덕왕(聖德王) 때에는 김대문(金大問)이라는 학자가 나서, 옛날 잘난 이의 사적과 그때의 음악에 관한 사실을 모아서 여러 가지 귀중한 저술을 남겼으며, 또 그다음 효성왕(孝成王)의 때에는 김생(金生)이라는 이가 한평생 글씨를 공부하여, 지나의 왕희지(王羲之)와 나란히 일컫게 되는 등 사실이 대마다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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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당나라 교제와 국내 문화 향상에 다 불교 승려들의 공헌함이 큰 고로, 국가와 민중이 한가지로 불교를 숭상하고 승려를 공경하여, 서울 안에 절의 수가 민가하고 상반하다 이르고, 그 큰 것은 대궐로 더 붙어 굉장함을 겨루니 황룡사(皇龍寺)·분황사(芬皇寺)·사천왕사(四天王寺) 등이 그 두드러진 것이요, 지방에도 통도사(通度寺)· 해인사(海印寺)· 부석사(浮石寺)· 화엄사(華嚴寺) 등 큰 절이 많았읍니다. 통일 운동의 전후에 명승(名僧)이 쏟아져 난 가운데 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원측(圓測) 등이 특히 드러나니, 원효는 교리를 밝힌 허다한 저술을 하여 부처님이 다시 나셨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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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과의 교통이 심히 빈번하여 벼슬하는 이, 공부하는 이, 승려· 장사 아치 등을 싣고 다니는 배가 베틀에 북 드나들 듯하고, 이러한 관계 로서 신라 서울 계림(鷄林)과 당나라 서울 장안(長安)과는 밀접하기 한끝에 잡아맨 것 같으며, 따라서 그때 장안으로 모여든 세계의 모든 문화는 금새 바다를 건너 계림으로 전해 오며, 더욱 장사하는 배가 지나 남방의 항주(杭州)· 천주(泉州) 등 항구에서 그때에 동방 무역을 혼자 맡아 하던 아라비아의 장사아치를 만나서 물건과 지식을 교환한 것은, 세계로 하여금 동방 해상에 신라라는 부국이 있음을 알게 하는 단서가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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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변, 신라 사람 중의 용기 있는 이는, 아라비아 사람의 장사배를 잡아타고 바다에 떠서 남양과 먼 서양으로 나가는 이도 가끔 있었는데, 그 가운데 불교의 승려로서 부처님의 나라에 가서 이쪽에 전하지 아니한 교리를 찾아지라 하는 이가 많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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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왕(孝成王) 때에 혜초(慧超)라는 젊은 중이 당나라로부터 바다로 나와서 말레이와 자바·수마트라를 거치고 실론에 다다라서, 여기서 떠나 인도의 모든 지방과 서쪽 아시아와 중앙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골고루 구경하고, 육로로 장안에 돌아와서 여행 중의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여, 후세 에전한 것 같음은 가장 유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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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동방 해상으로 배타고 돌아다니는 일은 신라 사람의 혼자 차지가 되어 오는 바이어니와, 흥덕왕(興德王) 때에 장보고(張保皐)라는 이가 시방 전라 남도의 완도(莞島)를 근거지로 하고, 지나의 산동 반도 이하 여러 곳에 연락하는 처소를 만들고서, 여러 척 배로써 지나와 신라와 일본의 사 이로왕래 하면서 크게 장사하는 그물을 폄에 미쳐는, 신라 사람의 해상 무역에 있는 권위가 한고작 높아졌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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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배에는 약대와 같은 북방 물건과 공작과 같은 남방 물건이 다 있 음을 보건대, 그 무역의 내용이 어떻게 광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읍니다. 이때에는 일본에서 큰 배 지을 줄을 몰라서, 그 지나로 다니는 사신과 유학생들도 반드시 장보고와 같은 신라 사람의 배를 타고 왕래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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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부터 외국으로 가져다가 파는 물건에는 인삼·구슬·금은 같은 천산물(天産物)이 주장이었지마는, 자개 그릇, 잔 새김질한 것 등 세공품으로서 왕왕 우리 손재주의 비범함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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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왕(惠恭王)이 당나라 대종(代宗)에겐 선사한 만불산(萬佛山)이란 것은, 한 길 쯤 되는 화류나무를 새겨서 산과 골과 절과 초목·금수 모든 것을 나타내고, 구슬을 다듬어서 부처와 중과 온갖 꾸미개를 만들어 놓았으되, 몇천 몇만임을 모르는 물형이 죄다 살아서 움직일 듯하였다 하며, 또 신라 국에서 오색 털실로 짠 담요를 보내 왔는데, 한 치만큼씩 정간을 하고 그 안에 가무하는 모양과 산천 경개와 화초와 봉접(蜂蝶)을 나타냈으되, 바람이 스르르 불어 털을 거스르면 이것들이 죄다 뛰고 나는 듯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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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의 신라는 이렇게 안으로 국가의 부력(富力)이 넉넉하고, 밖으로 국민의 활동이 왕성하매, 문화의 정도와 생활의 수준이 저절로 퍽 높았읍니다. 마흔 아홉째 임금인 헌강왕(憲康王) 때의 일이라고 옛글에 전하는 바를 보건대, 서울의 호수(戶數)가 十七[십칠]만이 되어서 길이가 五五[오오] 리에 뻗쳤으되 이것이 다 기와집이요, 노래와 풍악 소리가 거기 널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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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사람의 저술(著述)에, 신라국에는 황금이 어떻게 많은지 지붕을 황금으로 잇고, 개의 목테까지 금으로써 한다고 하니, 그럴 리야 없지마는 대개 신라의 부력을 불려서 하는 말을 듣고서 적음을 것입니다. 헌강왕의 때에 최치원(崔致遠)이 어려서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다가, 十八[십팔] 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글 잘하는 명예가 천하를 들레고서 본국으로 돌아온 일이 있으니, 또한 좋은 시절을 꾸밀 만한 장한 일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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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평 세월은 대략 二[이]백 수십 년 동안 계속하였는데, 후일 조선의 언어·풍속·사회 제도 등은 대개 이 사이에서 생기고 자라고 또 성립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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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새해를 설이라 하여 곱게 쉬고, 대보름을 큰 명일로 하여 약밥을 지어 먹고, 五[오]월 五[오]일을 수리하 하여 따뜻한 철의 놀이날을 삼고, 六[육] 월 보름을 유두라 하여 일년내 몸의 때를 떨어 버리고, 八[팔]월 보름을 가위라 하여 상하 남녀 노소가 다 함께 크게 즐기는 제일가는 명일을 삼고, 一[일]○월을 상달이라 하여 새 곡식과 과실로써 신령님께 고맙습니다 하는 제사를 드리고, 섣달 그믐께 처용(處容)의 탈춤으로써 일년내의 지 꺼분한 기운을 가셔 버리는 등, 명절이 대개 신라에 비롯하여 오래도록 지켜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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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과 옷 제도를 많이 당나라의 본새에 따르게 된 것도 신라 때에 시작한 것입니다.
【원문】4. 신라의 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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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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