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2)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2권 다음
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2
 
 
3
ㅊ읍내에서의 5월 1일 메이데이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밝은 날에는 어디가서 숨었다가 박쥐처럼 밤에만 살짝 나오는 인종들이 어느 틈엔지 선전 삐라를 거리에 뿌리고 십여 곳에다 벽보를 붙인 사건밖에 다른 큰 사건은 없었다.
 
4
"아이고, 박쥐 같은 놈의 새끼들. 어제 그렇게 철통같이 지켰는데 어느 틈에 나와서 붙였을까? 그저 붙들기만 했으면 ─"
 
5
하고 분해하나 눈에 보이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서에서는 필적과 잉크를 근거로 전 읍내에 있는 등사판을 조사도 했으나 어디서 박아왔는지 기어코 놓치고 말았다.
 
6
이 해의 메이데이는 당국의 지시도 있고 해서 되도록 간단히 해치웠다.
 
7
재덕이는 행렬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진숙이와 경애를 데리고 거리에서 행렬 구경을 했다. 며칠 전 박도진 청년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서이겠지만, ㄷ 이니 ㅁ이니 ㅅ이니 하는 똑같은 계통의 청년단이 한동리에서 따로따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것을 볼 때 유난히도 눈에 거슬린다.
 
8
'뭉치자 ─ 그렇다. 우리 청년운동의 제일 목표는 먼저 여기에다 두어 야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세 개의 청년단체만이라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합동을 시켜야 한다. 세 개를 두 덩이로, 두 덩이를 한 덩이로!’
 
9
그러기 위해서는 갖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모략도 많을 것이요 중상도 있겠고, 어쩌면 상상치도 못하는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10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성공을 시켜야 했다.
 
11
'만일 이것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한교실 안에다 ㄷ청년단반, ㅁ 청년 단 반, ㅅ청년단반을 따로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12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나온다.
 
13
5월 행사가 끝나자 재덕이는 곧 청년학교 설립에 착수했다.그러기 위 해서는 교사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4
교실 문제도 실상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이 청년학교를 계기로 세 개의 청년 단체가 합쳐주기만 한다면 현재의 회관만 가지고도 두 반은 수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은 현재 ㄷ청년단이 쓰고 있는 사무실을 이용 해도 좋았고, 그것이 불편하다면 학교 안에도 그만한 방쯤은 송판을 대 어서라도 만들 수 있으리라 했다. 집만 해결이 된다면 선생은 어떻게 될 것 같다. 정치학은 박건이가 맡아줄 것이요, 사회학은 자기가 맡아도 좋고, 청년 단 고문으로 있는 윤수영 씨한테 떼어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영어와 수학은 진숙이나 경애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15
그래서 맨 먼저 세 청년단을 합동할 가능성의 유무를 타진키로 했다.
 
16
재덕이가 처음 찾아간 것은 자기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ㅁ청년단의 고문 윤수영 씨다.
 
17
윤씨는 작년 사건에 희생이 된 이배근 씨의 후임으로 취임한 윤일영 씨의 사촌 형이다. 단장보다도 먼저 고문의 의견을 들어보고 승낙만 한다면 윤고문을 동원해보잔 것이다.
 
18
윤 고문을 찾으니 마침 손님이 와 있었다. 내일 아침 다시 오기로 하고 이름만 대고 나오려니까 윤 고문이 몸소 쫓아나왔다.
 
19
손님이라야 신 군하구 더 가까운 사람이니 들어오라는 것이다.
 
20
"누구신데요?"
 
21
"아, 글쎄, 들어와. 신 군과 나와는 사돈간이지만, 신 군하구는 직접 한 핏줄이야."
 
22
하고 호들갑을 떤다. 한 잔 하던 길인가보다.
 
23
"그럼, 단장님이 와 계십니까?"
 
24
"누가 아니래! 어서 들어갑시다."
 
25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26
윤 고문과 단장은 취하지는 않았으나 꼭 이야기하기 알맞게 거나했다.
 
27
후래삼배니 진객이 원래했느니 하며 권하는 잔을 재덕이도 할 수 없이 서너 잔 받고 나니 이쪽도 말하기 꼭 알맞다. 그래서 자세히 온 뜻을 이야기 하고서 세 청년단을 합쳤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28
살얼음을 건너듯 눈치를 보아가며 조심조심 이야기를 하노라니, 단장은 연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리에 어긋나는 말이 아닌지라, 무턱대고 반대도 못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수월히 알아듣는 체하는 데는 되레 불안하다. 다 안다. 좋은 일이다.
 
29
'좋은 일은 더없이 좋은 일인데 ─’
 
30
이렇게 꺼내려고 하는 제스처 같기도 하다.
 
31
그러나 단장은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을 턱 잡으면서,
 
32
"대단히 훌륭한 생각이오. 나도 늘 그런 생각을하고 있었소. 학교야 되든 안 되든 그건 둘째 문제구, 이 손바닥만한 곳에서 세네 단체가 서로 버티고있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오. 안 그렇소, 형님?"
 
33
"이르다 뿐인가?"
 
34
하고 윤 고문도 맞장구를 친다.
 
35
재덕이는 되레 여우에 홀린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그러자니까 윤 단장은 한술 더 뜬다.
 
36
"난 잘 모르겠소만, 꼭 학교를 해야만 합동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학교도 합시다그려. 일을 하자면 돈도 필요할 것이 아니오. 큰돈이야 낸들 어디 있 소만 작은 돈쯤이야 보태기라도 하리다."
 
37
"어째 너무 쉽게 찬동을 해주시니까, 절 놀리시는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38
하고 재덕이는 웃었다.
 
39
"원 천만에. 신 군을 놀리다니? 옳은 일, 바른 말에 딴소리를 해보았자 도리가 있소? 좋은 일은 언제나 좋은 일이거든. 안 그렇소, 형님?"
 
40
단장은 이렇게 고문한테 동의를 얻더니 술을 자작 한 잔 따라 먹고는,
 
41
"참 좋은 생각을 했소. 그래야 하구말구! 그런데 내 한 가지 청이 있소. 아주 긴한 청이야. 학교두 좋구 합동두 좋구 다 좋은데, 그렇게 되거든 나를 그 합동된 청년단의 단장으로 추천해주셔야 하겠소. 아시겠소? 단장으로 말이오."
 
42
'옳거니, 이거였구나!’ 하고 재덕이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43
'그러면 그렇지!’
 
44
그러나 이쪽 대답은 그렇게 수월할 수가 없었다.
 
45
"왜 반대요?"
 
46
"원 천만예요. 반대기는 왜요. 다만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선뜻 대답을 못해 드리는 것이지. 저 혼자 결정하는 일이라면야 뭘 주저 하겠습니까?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 자리서 당장 거절을 하겠지만 요 ─"
 
47
그러나 참고 재덕이는 끝말은 하지 않았다.
 
48
"옳은 말이야. 그렇게 돼야지?"
 
49
단장은 혼자서 감탄을 한다.
 
50
"그게 다 사리를 아는 사람의 말이란 말야. 철없이 날뛰는 사람이면 사, ' 아, 염려 마십시오’, 그 자리서 대답을 할 테지 ─"재 덕이는 삼십 평생 처음으로 뻐근한 칭찬을 듣고 나니 등이 근지럽다.
 
51
단장은 또 술을 권하고 자기도 한 잔 따라 마시면서,
 
52
"이렇게 말하면 신 군은 혹 내가 무슨 명예욕이나 취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게다 ─ 이렇게 오해할지도 모르오만, 그건 안 그렇단 말야. 국가를 위 해서지. 민족을 말야. 신 군은 선전부장이니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금년 안엔 꼭 나라가 서구 만다니까."
 
53
"나라가 서다니요? 그렇게 보십니까?"
 
54
"허, 왜 이렇오. 날 시험하는군. 허지만 나두 배운 건 없어두 먹은 나인있거들랑. 나라가 서는 게 분명한 것이, 작년 박사가 미국으로 가시더니 전 미국을 뒤흔들어노셨거든 ─ 조선두 독립을 주어야 한다, 총선을 해야 한다, 만일 전부가 안 된다면 단독정부라두 세워야 한다 ─ 이렇게 여론을 일으켜 노셨단 말야. 알겠소? 미국이란 여론의 나라거든. 내 말이 거짓말이오? 박사께서 돌아오신 지 보름도 채 안 돼서 미국서는 벌써 조선에 단독 정부라 두 세워야 옳다구, 막들 여론이 비등하지 않소? 영감 하는 수작이 아주 엉뚱하시거든. 하지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얘, 비행기 좀 내라.’ ' 어디 가시겠소?’ '다 귀찮다. 내 집에나 좀 갔다 오겠다’, 하지는 시원커든, 그래, 가서는 고관대작들의 멱살을 잡고서 '하지를 불러들일 테냐 안 불러 들일 테냐 ─’ 이 식이란 말야."
 
55
재덕이는, 어릴 때 생각이 났다. 그는 큰 동리 박 부자의 외아들이 나이 이십이 넘도록 침을 깨 흘리고 밤이면 오줌을 질질 싸는 위인이었는데, 이치가 다른 짓은 못하나 계집을 떼어 먹는 데는 실로 비상한 재치가 있었다. 몸도 둔하고 미련하고 말도 떼떼거리는 위인이. 그러나 어디 그럴싸하게 생긴 여자가 눈에 뜨이면 낮이고 밤이고, 들이고 나뭇간에서고 실로 재치 있게 뚝 따먹고 입을 쓰윽 씻는다. 하릴없이 두꺼비가 나는 파리를 잡아먹는 식이다.
 
56
"하느님이 정말 공명정대하시거든. 저 자식한테 저런 재주나마 주셨으니 ─"그 위인이 아무개를 따먹었다는 소문만 돌면, 동리 사람들은 이렇게 탄복을 했었다.
 
57
재덕이는 지금 그 위인을 연상하는 것이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해도 왜정 때 세금을 적게 매겼다고 항의를 제출한 위인인데, 자기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에는 천치가 계집 따먹듯이 비상한 재간을 발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58
사실 그가 본 대로 금년 안으로는 그 어떤 형식으로든지 정부가 설 수 있는 여론을 이 박사는 일으켜놓은 것이었다.
 
59
"그럼 출마를 하실 생각이시군요?"
 
60
하고 재덕이가 앞을 지르니까 단장은,
 
61
"오케! 오케!"
 
62
하고 호들갑을 떤다. 아니 그야말로 기고만장이다.
 
63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척하면 일백오십 척이거든! 이래서 교육 받은 사람들이 좋다는 게거든! 무섭다는 거란 말야! 변두리를 건드리기만 해두 복장이 쩌렁쩌렁 울어대거든! 그렇소, 그렇소. 그렇다구 난 털끝만 한 야심두 없소. 나라를 위해서지. 국가를 ─ 다시 말하면 우리 군 십이만 ㅊ 군민을 위해서란 말이지."
 
64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보지요. 그것두 우선 합동을 하고야 볼 일이니까요."
 
65
이렇게 재덕은 집으로 돌아왔다. 맛있게 먹자던 밥을 첫술에 돌을 ─ 그것도 푸석돌을 와지끈 씹어댄 때와도 같았다.
 
66
씁쓰름한 입맛으로 집에 돌아오니 박건이가 돌아와 있다.
 
67
박건도 자금 막 들어왔는지 찬밥상을 받고 앉았다가,
 
68
"다 들었지."
 
69
한다.
 
70
진숙이와 경애가 입이 근지러워서도 보고치 않고는 못견디었으리라.
 
71
이튿날은 조반을 일찍이 먹고 ㄷ청년단장을 찾았다. 박도진이도 오늘 아침쯤은 궁금해서라도 올 것이니까 대강 이야기를 해주고 넷이서 박이 말 하던 밭이나 가서 보고 오라고 일러두고 나왔다.
 
72
ㄷ청년단장은 버스회사 사장 이승구다. 그는 아직 나오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닌지라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제야 세수를 하고 있다.
 
73
"아, 어서 들어오게. 아침부터 웬일인가?"
 
74
그럴 처지도 실상 못 되련만 허게가 깍듯하다.
 
75
아무려나 재덕은 온 뜻을 이야기했다. 이승구는 잠자코 듣더니만,
 
76
"좋은 생각이오. 허나 단원과도 이야기해보아야겠고, 서울 본부의 의사가 어떤 지도 타진해봐야 할 게니까 ─"
 
77
하는 대답이다. 단원들과 타협은 해야겠지만 본부의 의사에 맡길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을 이야기하고 나와서 재덕은 그 길로 바로 ㅅ청년단장을 찾아갔다.
 
78
ㅅ청년단은 원래 이 지방에 근거가 있는 청년단이 아니라, 해방 직후에 하도 공산당 세력이 들고일어나니까 경찰이 방패삼아 끌어들인 단체인데, 이지방 사람들이 대체로 소극적인 데 비하여 그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공산당과 단판 씨름을 했던 것이다.
 
79
그 공로가 커서 얼마간의 지방 청년을 포섭하고, 주로 이북에서 넘어온 애국 청년들이 진을 치고 있다.
 
80
그래서 단장도 좀 색다른 사람이다.
 
81
단장 노진갑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로 이 지방에서 사회운동을 많이 한 사람이다. 동경서는 박열과도 밀접히 지내다가 고향에 돌아온 후로는 흑색 동맹을 만들어가지고 활약을 하다가 3년간 복역도 했고, 나와서는 전향을 하기도 했고 군 사회과 촉탁이란 명목으로 왜정 때는 강연도 한다, 좌담회도 한다 하며 이럭저럭 살던 사람이다.
 
82
같은 좌익이기는 하면서도 무정부주의자는 공산당과는 옹추다.
 
83
이것을 아는지라 ㅅ청년단이 단장으로 끌어낸 것이었다.
 
84
노진갑은 대체로 좋다고 했다. 그러나 별 흥미가 없는 눈치다. 비단 이 문제뿐이 아니라, 정치라는 데 염증을 내고 있는 듯싶은 말거취다.
 
85
"어디 조용한 촌에 들어가서 채소나 심고 닭이나 몇 놈 치고 살았으면 싶은 생각밖에는 없소. 거 자리만 그럼직한 데가 있었으면 양어가 좋은데. 논 을 그대로 이용해서 잉어를 치면 곡식도 잘되고 고기도 키우고 일 거양 득이지. 그렇게 정 큰 데가 없다면 한 두어 마지기두 돼요. 한쪽으로는 미꾸리를 키우구 한쪽에는 당년치기를 기르거든요. 미꾸리는 서울로 먹히자면 얼마든지 먹힐 수 있지요. 지금 값으로는 관당 3천원이 가니 근당 오백원 꼴 아닌가요. 그놈이 또 몸에 좋거든. 아침마다 한 모금씩만 마셔 두면 보약도 그런 보약이 없지요. 없겠소, 어디 그런 자리?"
 
86
"없기야 왜 없겠습니까. 있을 겝니다."
 
87
재덕은 예의상 이렇게라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88
노진갑의 집을 나오니 몹시 피곤하다.
 
89
돌아오는 길에 회관에를 들렀다. 육칠 명 단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장기들을 두고 있다. 박도진의 말을 들은 뒤로는 자연 청소 같은 데도 신경이 쓰여진다. 그래서 둘러보니, 과연 더럽기 짝이 없다. 마룻바닥의 담배 꽁초는 오히려 자연스러웠지만, 테이블 귀퉁이와 심지어 오락판인 장기판에까지도 꽁초를 비벼 끈 채다.
 
90
'저 사람들은 옷을 벗고 자는 일도 없으렷다. 세수할 때도 저고리를 벗는 일두 없구 ─ 아니, 이나 닦는지?’
 
91
이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자니 좋이 심사가 좋지 않다.
 
92
"거 장기두 좋지만 방이나 한 번 쓰윽 쓸어 치우구들 두지."
 
93
힐끗들 쳐다보더니 하나가 소리를 빽 지른다.
 
94
"장야! 그놈의 포 갈 데 참 많겠다. 어디? 이크, 벌써 냄새가 퀴퀴하군 그 랴. 그놈의 포 참 눈치 빠르다!"
 
95
"들었소들?"
 
96
재덕이가 재우치니까,
 
97
"네 ─"
 
98
하고 하나 둘 일어나고 장기 두던 패는 그대로 들여다본다.
 
99
"아, 어서 받아요. 두잔 장기지 보란 장긴가?"
 
100
재덕은 덤벼들어서 장기판을 들어엎을 것을 간신히 참았다.
 
101
'아! 위대한 청년들이여!’
 
102
재덕은 울고 싶었다.
 
103
'이것이 우리의 청년운동이더냐!"
 
104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105
'아! 거룩한지고!’
 
106
재덕이는 불쾌한 대로 집을 한 번 다시 둘러보았다. 무리를 하면 백 명 하나는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을 질러 칸을 막는다면 문만 하나 더 내면 두 방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걸상? 그런 것은 해서 뭣하랴 싶다. 제각기 거적 한 닢이면 우선 내일이라도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만하다.
 
107
아침부터 사뭇 불쾌한 꼴만 보고 당하고 했건만, 그래도 즐거웠다.
 
108
우편국 앞을 돌아서 일단 집으로 가리라고 버스회사를 바라보고 가려니까, 저쪽에서 진숙이 패들이 몰려오다가 손을 번쩍 든다. 일거리가 생겨 그들도 역시 즐거운 모양이다.
 
109
"어떻던가?"
 
110
하고 재덕은 먼저 밭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111
"글쎄 ─"
 
112
"좋잖아?"
 
113
"따빌 일군 밭인데 채손 좀 힘들잖을까? 돌을 골라내고 거름만 푹 지르면야 안 될 것도 없겠지만, 그 돌이란 것이 그대로 속속들이 자갈밭이거든."
 
114
"좋아. 그럼, 우리 밭이 있잖나."
 
115
"뒷밭? 너무 멀잖아요?"
 
116
하고 진숙이가 주의를 시킨다.
 
117
"뭐가 멀어. 이십분 안 걸리는 농터가 흔턴가. 만주선 아침에 떠나서 저녁에 도착하는 밭이 수두룩한데 엎드러지면 코 닿을 데가 멀어?"
 
118
"오빠두, 보통 농터와 채전과는 다른 법야요. 여북해서 채마전은 텃밭이라 구 할라구."
 
119
"제법인데."
 
120
하고 재덕이도 웃고 만다.
 
121
그까짓 밭이야 달리 해결할 방법도 있지 않으랴. 우선 시작을 하고 보리라는 배짱이다.
 
122
"유달성 ─ 이던가?"
 
123
"네."
 
124
"만났나?"
 
125
"아마 오늘 오후에 올 겝니다. 그저께 청주 볼일이 있어 갔는데 오늘 온 댔습니다. 오건 이따가… "
 
126
하다가 박도진이는,
 
127
"참 오늘 저녁에 유 군 집에 좀 와주시면 좋겠다구 그러던데요."
 
128
"유 군 집에?"
 
129
"어제가 그 할머니 환갑이었어요. 그래, 어제 모시려다가 너무 번잡 하면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겠다구."
 
130
"가지."
 
131
하고 재덕이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132
"유 군 집이라면 가고말구. 그렇지 않아도 나도 한번 만나고 싶었소. 지금 청년단에를 들러 오는 길인데 정말 박 군 말대로야. 모여서 장기들만 두고 있습디다."
 
133
"그래요. 사실 또 할 일이 있습니까?"
 
134
"어쨌든 오늘 유 군과 만나서 일을 시작하고 봅시다. 그 사람들만 나무랄수도 기실 없거든. 일을 시켜야 일을 하지. 어때, 괜찮겠지? 박건 군두 가지?"
 
135
"그럼요. 박 선생님뿐 아니라, 두 분두 다함께 모시고 오라구 그러던데."
 
136
하고 진숙이와 경애를 가리킨다.
 
137
"아이, 우리가 뭣하러!"
 
138
하고 진숙이가 질색을 하니까,
 
139
"다 들 가지! 뭐 못 갈 데냐. 일을 시작만 한다면 이제 날마다들 만날 사람인데."
 
140
"그럼요."
 
141
하고 박도진도 만족인 모양이었다.
 
142
그들은 버스회사 앞에서 헤어졌다.
【원문】젊은 사람들 (12)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4
- 전체 순위 : 683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0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4) 삼대(三代)
• (22) 적도(赤道)
• (20) 어머니
• (19)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젊은 사람들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195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2권 다음 한글 
◈ 젊은 사람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