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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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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5
 
 
3
날이 거듭하고 박건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질수록에, 박건에게 대한 진 숙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
그것은 거의 존경에 가까운 감정이기도 하다.
 
5
"그이 눈은 참 이뻐!"
 
6
왕방울 같은 눈동자에 사암해 보이기만 하는 겉눈썹, 심술이 잔뜩 곪긴 두 눈등 ─ 어디로 보아 아름다운지 모르겠으나, 진숙이는 가끔 이렇게 박건의 눈을 찬미하는 것이다.
 
7
"말할 땐 그대루 폭포구!"
 
8
이것은 그의 정열적인 성격을 예찬하기 위한 말이겠지만,
 
9
"그이는 마치 끓는 기름가마 속에서 뛰어나온 사람 같아 ─"
 
10
하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1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숙이가 종호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다. 박건한테 대한 친밀감은 종호한테 느꼈던 친밀감과 별로 차이가 없다 해도 성질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종호에 대한 애정을 한 여성이 남성에게 대해서 느끼는 애정이라 한다면, 박건한테 대한 진숙의 애정은 오라비에 대한 누이의 애정, 스승에게 대한 제자의 애정이었다.
 
12
'그이와 일생을 같이 사귄대도…’ 하고 진숙은 생각하는 것이다.
 
13
'그이와 일생을 같이 사귄대도, 나는 영원히 그이한테서는 남성을 느낄수 없을 것이다. 그이도 내게 그런 것을 요구 않겠지마는, 설사 그이가 내게 그것을 요구한대도 ─ 가령 종호처럼 키스를 요구한대도 나는 응하지 않으리라. 아니, 그이도 절대 그런 일이 없겠지 ─’
 
14
이 두터운 믿음이 마음놓고 박건한테 가까이 할 수 있게 했다.
 
15
그러나 종호를 생각할 때 진숙의 가슴은 역시 뛰는 것이었다. 지금쯤은 이미 한줌의 흙이 되었을 종호(진숙이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건만, 그의 모습을 눈앞에 그릴 때 그 긴 키스가 가져다주던 흐뭇한 애정에 진숙은 울고 싶도록 그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자기 손에 자기 손을 얹어 볼때도 진숙은 따뜻하던 종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16
한 순진한 여성의 첫번 키스란 이렇게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한 여성의 일생이란 이 첫 키스를 위해서 바치는 생애의 전부로, 이 첫 키스에 대한 끝없는 의무 이행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그친다.
 
17
어쨌든 불과 한 달 남짓한 동안에 진숙은 박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친밀 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18
그때는 박건과 경애가 다같이 진숙이네 집에 와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종호를 잃은 뒤로 재덕이는 사실 인간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사상적으로도 여간 고독을 느끼고 있지 않았었다. 종호한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종호한테 진 셈이었고, 또 자기의 사상이 그가 신봉하는 공산주의에 참패를 본 것 같은 일종의 굴욕감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19
더욱이 그 당시의 정치는 실로 말이 아니었다.
 
20
군정이 들어오면서 끽소리를 못하고 있던 왜정 시대 인물들이 정당을 끼고 들고, 실정을 모르는 단순한 군인들을 매수해서 갖은 모략과 중상, 음모를 다 할 때다. 살인 방화를 하기 위해서 칼을 갈고 화약을 준비하는 공산 당원들을 목격 하고서도,
 
21
"현행범이 아니니까, 생각만 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생각은 자유니까.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니까 ─"
 
22
이렇게 단속도 하지 않았다.
 
23
그뿐이 아니라, 모든 생산 기관은 영어 할 줄 아는 위인들이 독점을 하다 시피 해서, 금처럼 아껴야 할 기술자와 전문가들은 양담배를 팔아서 그날그날을 연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4
정치도 그랬다. 반벙어리 영어로 '하우스’ 보이 노릇을 하던 사람이 데꺽 도지사다, 군수다, 어디 국장 과장을 차고나가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25
교육계 또한 그 지경이었다.
 
26
양심적인 교육자들이 날마다 등차급수로 뛰어올라가는 물가에 견디다 못 하여 학교나 관청에 취직운동을 하러 '장’ 자리를 찾아보면, 자기가 가르친 학 생일 때는 있음직도 한 일이겠지만, 해방 전날까지도 자기가 가르치던 재적 생인 경우도 있었고, 과장이라고 회전의자를 빙그르 빙그르 돌리고 앉은 사람이란 것이 자기가 과거에 데리고 있던 말석 부하가 보통이요, 사동으로 부리던 아이가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27
"아니, ○ ○ 주식회사 사장이 누군가 했더니, 저 있잖나, 마루덴이란 스시 집 이다바루 있던 바루 그 녀석이."
 
28
이런 소리도 있었고,
 
29
"동양 목장 우유 배달이 경찰서장이 돼 갔다면서?"
 
30
이런 말도 떠돌았다.
 
31
그리고 또 개중에는 풍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32
하기는 왜정 때는 모두 숨어 살았으니까 우유 배달이 경찰서장도 될 수 있겠고, 스시 집 이다바가 큰 국책회사 사장 될 자격자도 있었겠지만, 애국자들이 그렇게 많았다고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33
"깨판야! 깨판!"
 
34
이것이 당시의 정치를 말하는 일반 백성들의 민성이었다.
 
35
"깨판이라니까!"
 
36
이러한 남쪽의 혼란이 공산당원들에게 좋은 욕 자료가 되어주고도 있었던것이다.
 
37
"이북엔 정치를 잘한다는데 ─"실로 조직적인 공산당의 선전에 속아서 살 수 없는 백성들은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38
그러다가 정말 살기가 어려워지면 혹은 공산당을 알아도 이북으로 월북 을해 가고 ─ 이런 판이었다.
 
39
가장 영리하다고 하던 송종호도 물론 그중의 한 사람이다.
 
40
"박 군의 말은 옳았다! 우리는 사상을 가져야 한다. 남이 자기네 감정에 맞게 만든 사상과 주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전통과 생리에 맞는 우리 의사상을 찾아야 한다. 역사에서 ─ 그렇다. 우리 오천 년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천 년 왕업을 이은 신라에서!"
 
41
지금 재덕이가 두고두고 생각하는 것이 오직 이것이었다.
 
42
공산주의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사상! 주의! 지도이념!─ 이것을 찾고자 목이 말라할수록에 지금의 재덕에게는 박건이 필요했다.
 
43
'오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박 군을 보내어선 안 된다! 박 군을 잡자. 그리고 신라만은 늘 연구하자!’
 
44
그러기 위해서는 신라의 옛 터전 경주도 한번 가리라 했다.
 
45
재덕은 한번 경주 구경을 한 일이 있었다.
 
46
벌써 십 년 전 중학 때 수학여행으로서였다. 그러나 지금 보는 경주는 다르리라 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일망정, 신라의 향기가 풍겨도 풍기고 호흡이 느껴져도 느껴지리라 했다.
 
47
그래서 박건과 경주행을 결정했다. 새재를 넘어서 안동으로 빠지면 걸어간 대도 이틀이면 족한 거리다.
 
48
"오빠! 경주 가신다지! 우리두 가요? 네, 경애 씨두 그렇구, 나두 언 제 경주 구경 했어요? 여비는 우리가 쓸 테야, 정말!"
 
49
"계집애들이 뭘 이 소란한 세상에 ─ ?"
 
50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재덕이는 동의했던 것이다. 진숙이나 경애도 청년 운동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을 아는지라, 경주를 보여서 해는 없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51
이렇게 내일 새벽에는 도보로 새재를 넘어서 안동까지 가기로 작정이 되었다.
 
52
그러나, 여기에 뜻 아니한 사건이 돌발했다.
 
53
내일 떠날 준비를 한다고 오후에 읍내로 나간 채 재덕이는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54
열시가 열시 반, 열시 반이 열한시, 다시 자정이 지나도 소식조차 알 길이 없었다.
 
55
온 집안이 안대청에 웅기중기 모여앉았었다. 뒤미처 경애도 들어왔고 박건도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대로 날을 밝힐 작정이었다.
 
56
한시가 지난 때서야 청년단에서 사람이 왔다. 되레 부장(선전부장)이 무사히 집에 계시냐는 것이다.
 
57
"어떻게 된 일이오?"
 
58
하고 박건이 되묻자 그는 허리를 척 접어 탄식을 하며,
 
59
"이 거 큰일났습니다! 놈들한테 납치가 됐나봅니다!"
 
60
"납치가 되다니?"
 
61
"필시 그런가봅니다."
 
62
부장(재덕)은 분명히 단장, 부단장과 아홉시에 헤어져서 댁으로들 돌아갔는데 자정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단장 집에서 기별이 오더니 부단장 집에서도 기별이 왔다는 것이다.
 
63
근간 놈들이 폭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는 정보가 여기저기서 떠돌고 있을 무렵 이었던 지라, 가족은 더욱 긴장이 되었다.
 
64
"그럼 경찰엔?"
 
65
"연락이 되어 있습니다."
 
66
"경찰에서도 모르던가?"
 
67
"모르고 있습디다. 지금쯤 아마 동원됐을 겁니다. 비상소집이 내리는 것을 보고 왔으니까요. 단에서도 조직부장님 명의로 비상소집을 내렸습니다."
 
68
박건은 그 단원과 같이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69
온 집안이 벌벌 떨기만 했지, 이렇다 할 방도가 나서지 않는다. 더욱이 진 숙이는 소위 그놈들의 '숙청’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 후다.
 
70
그들은 모여앉은 채 날을 밝히었다.
 
71
새벽 다섯시는 되어서 형사 하나가 단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어제 입고 나간 옷과 가졌던 물건, 신발, 모자 일체를 알아가지고 가더니, 그날이다 시 저물도록 아무런 정보도 없다. 박건 남매와 진숙이도 종일 드나들었지만 아무런 단서조차 얻지 못하고 돌아오곤 한다.
 
72
"죽은 게야."
 
73
모친이 털썩 주저앉는다. 보통 노파 같았으면 벌써 온 동리를 뒤집어 엎었으련만, 이때까지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었다. 이제 맥이 탁 풀리고 만 모양이다.
 
74
이튿날 아침 식전 연못가에 나갔던 경애가 웬 편지 한 장을 가지고 왔다.
 
75
연못둑 걸상에 놓여 있더라는 것이었다.
 
76
편지란 일종의 통고문이다. 일부러 만들어서 쓴 글씨일시 분명한 꼬불꼬불 한 연필 글씨로,
 
77
"가장 악질적인 반동분자, 신재덕 놈의 가족에게 고하노라."
 
78
이런 서두로써 시작된 편지는 명일 자정을 기해서 악질적인 반동분자 신재 덕 놈을 숙청할 것이니, 내일 안으로 관과 기타 장사에 필요한 일체 준비를 끝내고 대기하라는 문면이다.
 
79
박건이가 이 통고문을 가지고 경찰에 뛰어가니, 단장과 부단장의 집에도 똑같은 글씨와 내용의 통고문이 왔다고 마침 와서 있었다.
 
80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부단장한테 온 편지에는 '색마’라는 두 글자 가더 들어 있다는 것이다.
 
81
부단장은 색마 소리를 들을 만큼 여자 관계에 추잡한 사람도 아니었다.
 
82
그러나 보통 사람이 보아서는 무심히 넘겨버릴 수 있는 이 두 글자가 수 사 주임한테 는 신기한 영감을 준 모양이었다.
 
83
그는 무릎을 탁 치고서,
 
84
"오라 잇!"
 
85
하고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86
이때부터 내일 자정까지는 불과 사십 시간밖에 남지 않았었다.
 
87
수사주임은 비수처럼 잘 드는 박 형사의 김 부장을 부단장의 고향인 S 면으로 보냈다. 고향에서 단서를 못 얻거든 부단장의 토지가 있는 동리를 모조리 조사하라고 지령했다.
 
88
"이놈은 반드시 여자로 해서 부단장과 원한이 있는 놈이다. 지금 와서 이런 원한을 표시하는 것을 보면 필시 소작인이거나 집에서 부리던 놈이나, 안 그러면 돈에 애여서 제가 좋아하는 계집을 뺏겼든지 무슨 관련이 있는 놈일 것이다. 이 점을 잘 캐치하라구!"
 
89
다음 한 가지 단서란, 편지 봉투 귀퉁이에 묻은 흙빛이었다. 황토빛 조 대 흙, 이런 흙이 나는 데는 대개 일정하니, 주로 토굴을 수소문해보도록 했다. 근방에는 금광이 성한 지방이라 토금굴이 있는 곳을 각별 탐색케 했다.
 
90
경찰과 청년단원 해서 이십여 명이 각지로 파견되었건만 그날 해가 지 도록 아무런 단서도 발견치 못했다.
 
91
이제 희망을 붙일 사람은 오직 김 부장과 박 형사뿐이었다. 밤 열시나 되어서 농군으로 차린 김 부장과 박 형사가 돌아왔다는 보고가 단원으로부터 단 본부에 들어왔다.
 
92
단 사무소에서 밤을 새우기로 한 박건과 진숙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93
"선생님, 어떻게 되는가요?"
 
94
진숙은 박건의 손을 잡고 흔들어댄다.
 
95
"가만히 계십시오. 내 좀 알아보고 오리다."
 
96
하고 단장실로 들어가더니 얼마 만에야 나와서 지금 모처로 또 파견이 되어 나갔다는 이야기뿐이다.
 
97
그날 밤도 그대로 밝고 말았다.
 
98
아침을 먹으러 집에 오니 혜영이가 와서 집안일을 돌보아주고 있다가, 진 숙이를 보더니 정원 뒤로 끌고 간다.
 
99
"좀 물어볼 말이 있어."
 
100
"뭔데?"
 
101
"우리집 양반이 어서 들었다고 그러는데 ─"
 
102
하더니 갑자기 말문을 돌린다.
 
103
"저 진숙이네 집에 있던 사람 있지?"
 
104
"지금두 있지, 왜?"
 
105
"그이가 이거야?"
 
106
하며 엄지와 둘째손가락으로 고리를 지어 보인다.
 
107
한때는 '돈’으로 쓰여지던 이 암호는 지금 와서는 공산당원으로 쓰여지는 터다.
 
108
"아니, 누구 말야. 경애 오빠 말야?"
 
109
"아니, 경애 오빤 웬. 경애 오빤 내가 몰라서?"
 
110
"그런데 왜 그래?"
 
111
"글쎄 말야. 이거냐 말야?"
 
112
"글쎄, 모르겠어. 오빠 말눈치로는 혹 그렇지 않나 싶기두 하구 ─ 허지만 지금 우리집에서 나갔는데 뭐."
 
113
"글쎄, 누가 그걸 모른다나베? 그이가 지금 어디 있어?"
 
114
"왜?"
 
115
"글쎄 말야."
 
116
"그이 ─ 죽었어!"
 
117
"뭣이? 죽어? 언제?"
 
118
"한 달포 전에."
 
119
"어디서?"
 
120
"아, 글쎄, 왜 그러는 거야. 이야기를 해야 알잖아? 이건 형사 심문하 듯이 제 말만 자꾸 내세우네나."
 
121
"그이가 죽 ─ 었 ─ 다?"
 
122
여전히 혜영이는 자기 말만 하고 있다.
 
123
"왜 그래, 글쎄?"
 
124
몸이 달아서 진숙이가 달구치니까,
 
125
"그럼 아냐, 우리집 양반이 잘못 들었나보아."
 
126
"뭔 소린데 그래? 바루 들었든 삐뚜루 들었든 얘길 해줘야 알잖나베. 그래, 그이가 어쨌다는 거야?"
 
127
"우리집 양반이 어느 좌석에서 들었다는데, 이번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 진숙이네 집에 있던 바로 그 사람이란 말이 있어서 그래. 허지만 죽었다는 사람이 어떻게 ─ 아마 누가 모르고 그런 말을 내돌린 게로군 그 랴."
 
128
혜영이 남편은 농업학교 영어선생이었다.
 
129
해방 전에는 제천 국민학교 촉탁으로 있다가 영어 실력이 있으니까 농업 학교로 온 것이다. 연희전문 출신으로 특히 영어에는 숙달하다.
 
130
경애가 혜영이네 집에 와서 있게 된 것도 경애도 같은 단양 학교 촉탁으로 있었던 관계로 혜영이와 친해진 터다.
 
131
"거짓말야!"
 
132
진숙은 비로소 안심을 했다. 사랑과 우정과 민족까지 배반하고 나간 사람 이기는 했지만 종호한테 그런 욕을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133
"새빨간 거짓말야? 그이는 흙이 돼도 벌써 다 됐을 건데 뭐. 이번 오빠가 서울 가서 오래 되지 않았수? 그때 오빠 손으로 묻구서 왔대요."
 
134
"아이 참, 세상에, 헛소문두 참 잘 나지? 정말 그런 거짓말 퍼뜨리는 놈은 생사람 잡잖겠네나."
 
135
아침을 먹고 들어와 보니 역시 이렇다는 단서도 없다는 것이다.
 
136
그날도 온종일 진숙이는 읍내에서 살았다. 경찰서에서 청년단으로, 청년 단에서 경찰서로 ─ 이렇게 되풀이하다 보니 또 해가 진다.
 
137
놈들이 말한 자정이란 이제 불과 너덧 시간밖에는 남지 않았었다.
 
138
이 바쁘고 경황이 없는 중에도 진숙의 머리에는 피뜩피뜩 종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139
혜영이의 한 말이 어쩐지 귀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140
'그럴 수가 없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여기를 와서!’
 
141
처음에는 이렇게 종호를 싸고돌다가, ' 설사 살아 있다기로서니 그이가 설마 여기 와서 그런 짓이야 할라구. 다른 사람두 아닌 오빠를!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오빠까지야 그러지는 못하겠지!’
 
142
그러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혜영이 이야기를 들은 뒤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혹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오빠의 말대로 정말로 송종호가 죽고 말았는가 하는 의심이다.
 
143
오빠가 그런 거짓말을 할 사람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혜영의 말을 들은 후로는, '그게 정말인가?’ 하는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그 자신으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144
그렇다고 종호가 살아 있기를 비는 것은 아니다.
 
145
'그 살뜰하던 우정과 사랑과 그리고 의리를 배반한 사람!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만 사람 ─’
 
146
이렇게 생각할 때 차라리 오빠의 말대로 아주 죽어버리기나 했으면 오죽 좋으랴 했다. 이미 썩어서 흙이 다 된 사람을 가지고도 엉뚱한 소문이 떠도 는데, 그이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 이었다.
 
147
아니, 그가 살았다면 정말 또 민족에게 무슨 큰 죄를 질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그만 정도로 죽었기를 비는 마음 ─
 
148
이것도 오로지 일생에 첫번 키스를 바친 처녀의 기원인 동시에 의무 이었을것이다.
 
149
'종호 씨여, 다시는 깨어나지 마사이다! 당신을 극진히도 사랑하는 신진숙을 위해서 ─ 그리고 우리 삼천만의 불쌍한 민족을 위해서…’
 
150
단 한 번의 키스의 의무란 이렇게도 과중한 것이던가?…
【원문】젊은 사람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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