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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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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3
 
 
3
"진숙아!"
 
4
"네?"
 
5
"너 나하구 얘기 좀 하잖으려냐?"
 
6
"무슨?"
 
7
"무슨 얘기든지."
 
8
"하셔요."
 
9
하고 진숙은 선선하다.
 
10
그날부터 이틀 후다. 진숙이는 오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동요되지 않을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종호의 뒤를 쫓아가리라 결심한 것이다.
 
11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몸까지 가볍다. 그래서 오늘 아침 처음으로 연못가 에나와 앉아 있는데 읍에 나가던 재덕이가 가까이 왔던 것이다.
 
12
"무슨 얘길 한대두 놀라지 않지?"
 
13
"놀랄 만한 얘기면 놀라야죠. 놀라지 않으면 오빠가 놀랄 만한 얘기라 구 하신 보람이 있어요?"
 
14
하고 나긋나긋하게 웃어보인다.
 
15
"아차, 내가 말을 실수했군. 그럼 정정하지."
 
16
하고 작업복 주머니를 모두 들까불듯시피 해서 담배를 피워문다.
 
17
청년운동을 하면서부터 입기 시작한 작업복이다. 두툼한 서류 든 봉투를 낀 품이 오늘도 무슨 회가 있는 모양이다.
 
18
"무슨 얘길 하든간, 비관을 하지 말란 말이다."
 
19
그는 이렇게 고치고서 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듯 한다.
 
20
비관이란 말에는 뜨끔한지, 진숙의 서늘한 동자는 신경질로 움직인다.
 
21
"비관?"
 
22
"그래, 무슨 얘기를 듣든지 비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할 수 있겠지?"
 
23
"종호 씨 얘기죠? 하세요, 무슨 얘기든."
 
24
종호를 데리러 갔다가 안 오니까, 꿩 대신 닭은 못 쓰느냐고 진숙이는 아직 성명조차 모르는 청년을 데리고 왔다는 것쯤은 진숙이도 벌써 짐작 하고있는 터였다.
 
25
어젯밤 어머니와 무슨 얘기가 길더라고 금녀란 년이 귀띔해주었듯이 종호 대신 이 청년을 가까이하게 해서 내 맘을 돌려보자는 수작이거니 했다.
 
26
"좋아요, 뭐든지 얘기하셔요."
 
27
메어다치자 함이 아니라, 사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의 자기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28
"그럼 좋아. 다른 게 아니구 내가 이번 서울 간 데 대해서 네가 젤 궁금해 할 이야긴데 ─"
 
29
이렇게 서설을 벌여놓더니 밑도 끝도 없이,
 
30
"송 군은 불행히도 이번에 세상을 떠났다."
 
31
하는 것이다.
 
32
"그래요? 할 수 없죠."
 
33
뜻밖에도 진숙이는 슬퍼하기는 고사하고 놀라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34
말은 않았지만, 진숙이는 오빠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단안을 내리고 있었다.
 
35
"송 선생이 돌아간 이야기가 도대체 저와 무슨 관련이 있대요? 사람이 났다가 죽기두 하고 죽으면 묻구 그뿐 아녀요?"
 
36
"얘, 넌 내 말 잘못 해석하는 거 아니냐?"
 
37
재덕이는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으나 진숙이는 오히려 가벼이 받아 넘긴다.
 
38
"그럴 리 없을걸요."
 
39
"아니야, 넌 정녕코 내게 무슨 오해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있거나 ─ 혹 넌 내가 거짓말을 해서 너를 단념 시키는 수단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거니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친구를 죽었다고까지 거짓말을 할 오빠는 아니다. 이번 송 군 장사엔 만태, 승수, 진복이 등 동창생들이 다 모였었으니, 나중에라도 알아보면 알 일이 아니겠느냐.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이 오라비 손으로 ─"
 
40
하는데 진숙이가 "흑!" 하고 소리를 낸다. 이제야 곧이들리는 모양이다.
 
41
"사상은 사상이요, 우정은 우정이 아니냐. 나로 본다면 ─"
 
42
"인저 그만하셔요, 오빠!"
 
43
진숙은 질겁을 하듯 오라비의 입을 막고서 그 서늘한 눈을 커다라니 뜬다. 긴 속눈썹 끝에 맺힌 이슬 방울이 마침 초가을 아침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빛난다.
 
44
진숙은 그래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있다.
 
45
이윽고 눈물 한 방울이 상큼한 콧나루를 타고 골진 데를 더듬어 흘러내린다.
 
46
"진숙아, 부디 마음을 가다듬어라. 네 슬픔을 오라비만은 잘 안다. 이런 말을 한다면 송 군의 영혼이 노하겠지만, 한편 난 어차피 합칠 수 없는 평행선 일 바엔, 차라리 그렇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까지 생각이 든다. 송 군 이 우리 사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상으로 너도 공산주의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
 
47
"오빠, 인저 그만해 두세요. 네, 오빠!"
 
48
"그만하지. 그 대신 어서 들어가 아침이나 먹어라. 조반 전이라면서?"
 
49
"곧 들어가겠어요."
 
50
"그래라. 어머니두 걱정을 하구 계시다. 할아버지두 들어가 뵙구. 간밤에 많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야. 응, 어서 ─"
 
51
"네, 들어가요."
 
52
"그래라. 내 다녀오마."
 
53
재덕은 모표도 없는 국방모를 푹 눌러쓰고 서류 봉투를 둘러메듯 어깨에다 얹더니, 몇 발 가다 말고 되돌아서 온다.
 
54
"참, 그제 밤에 온 친구 소개한다는 걸 잊었구나. 나와는 중학 때 한 하숙에서 삼 년이나 지냈구, 이번 박 군두 학병으로 나가서 탈주를 했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넉 달 전에 불행히 잡혀서 작년 해방에 나왔다가, 고향에서 온 집안이 반동분자로 숙청을 당했지. 무섭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지 금제천까지 가던 길에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기에 며칠 쉬어 가라구 붙들었더니라."
 
55
진숙이야 듣든 말든 이렇게 소개를 늘어놓고는,
 
56
"참, 너 혹 우리 읍내에 박경애란 여자가 있다는 소리 못 들었냐?"
 
57
"누구?"
 
58
"박경애란?"
 
59
"왜 그러세요?"
 
60
하고 진숙은 눈이 동그래진다.
 
61
"아니, 그런 여자가 있단 소리 못 들었냐 말여."
 
62
박경애라면, 바로 장혜영이네 집에 있는 병색 꼴이 나는 여자다.
 
63
"같은 이름인진 몰라두, 하나 있긴 있어요. 저 혜영이네 집에 ─"
 
64
"아, 그래? 그럼 그 여자가 뭘 잘하는 게 없다던?"
 
65
"글을 좀 쓴대. 우리집에두 한 번 놀러왔댔었는데."
 
66
하는 말에 재덕이는 무릎을 탁 치면서,
 
67
"오라 잇!"
 
68
하고 소리를 친다.
 
69
오라잇 소리 한마디를 하는 동안에 재덕이는 벌써 사랑 쪽으로 대여섯 발이나 뛰어가고 있었다.
 
70
"박 군, 박 군! 어서 나오게. 매씨를 찾았네!"
 
71
재덕이 소리를 듣더니 박건도 뛰어나왔다. 청년운동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머리까지 깨끗이 빗었다.
 
72
재덕이는 박건을 진숙이 앞으로 끌고 오더니,
 
73
"매씨가 글을 쓴댔지? 그래, 그럼 제천까지 갈 필요가 없네. 제천이 아니라, 바루 여기 있어."
 
74
"제천 계셨다면 틀림없을 겝니다. 올 여름까지두 제천 국민학교에 계셨다니까 요. 저 희랍 미인처럼 생기셨지요?"
 
75
"위인이 희랍 미인을 봤어야 말이지."
 
76
"희랍 미인까지는 몰라두 살결은 몹시 흽니다. 코가 동양 사람 코치 고서는 좀 날카로운 편이랄까?"
 
77
"그럼 틀림없는 매씨신가 봅니다!"
 
78
"글쎄요, 그렇기나 하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기실 그것이 일곱 식구 중에서 똠방 하나 남은 우리 혈육입니다!"
 
79
"그러세요."
 
80
진숙은 이제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흥미를 갖는지,
 
81
"아니, 어떻게 해서?"
 
82
하고 오빠와 박건을 번갈아 쳐다본다.
 
83
"아니, 쟤 좀 보게나. 너 아까 남이 이야기할 땐 어디 갔다 왔니? 이북에서 반동분자라고 온 가족이 숙청을 당했다니까 ─"
 
84
"아니, 그럼 숙청이라는 게 정말 죽이는 것인가요?"
 
85
"쟤 좀 보라니까."
 
86
"그렇습니다. 숙청이란 바로 총살입니다."
 
87
진숙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88
"그래요?" 할 뿐이다.
 
89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북에서는 악독한 친일파, 민족반역자까지도 생명만은 절대로 보장해주었다고 종호한테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90
'숙청’이란 말도 '사형’이란 말이 아니라 '근신’시키느라고 관직에서 일시 몰아내는 뜻이라고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91
"남쪽에서 말하는 것은 이북을 중상하기 위해서다 ─"
 
92
종호는 이렇게 말했었다.
 
93
'종호 씨가 그런 거짓말을 버젓이 하는 사람이었던가?’
 
94
모를 소리였다.
 
95
"그럼, 너 얼른 아침 먹구 박 군하구 좀 가보게 해라. 누이가 제천 읍내 있다는 말만 풍편에 듣구서 찾아가던 길이란다. 거 보게, 이 사람, 그날 내 말 안 들었으면 고생만 죽두룩 했지 뭔가. 그러기에 어른 말씀을 어려워하 랬지."
 
96
"어려워했으니까, 자넬 따라오지 않았는가."
 
97
"인제야? 어쨌든, 너 곧 모셔다 드려. 오후 두시쯤 내게루들 오지. 내 중국요리 한턱 씀세. 그럼 난 먼저 가봐야겠네."
 
98
하면서 시계를 보더니 늦었다고 들고뛴다.
 
99
진숙으로서는 부지런히 서둔다는 것이 박건과 같이 집을 나온 것은 열한시가 다 되어서였다.
 
100
늘 나다니는 읍내였고 보니, 별 치장이 필요치는 않았지만 어쩐지 오래간만에 깨끗이 차리고 싶었다. 그래서 장을 온통 들거울러서 깊숙히 들었던 벨벳 치마를 꺼내어 입었다. 저고리는 연회색을 꺼냈다가, 흰 옥양목 겹 저고리로 갈아입었다.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가 역시 언제나 말쑥하다 싶었다. 진숙은 거울 앞에 서보고 더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흡족했었다.
 
101
추석 직전의 한낮, 햇볕은 아직 따갑다.
 
102
둘은 신작로에 나오도록 한마디도 교환하지 않고 걸었다.
 
103
"그럼, 박 선생님은 이번에 나오셨습니까?"
 
104
"네, 서울 온 지 한달 가량 됩니다."
 
105
"고향이 황해도라셨던가?"
 
106
"재령입니다."
 
107
"아 참, 재령이시라더라. 장수산이 바로 거기라구 경애 씨가 한번 말씀 하시더군요. 경애 씬 사뭇 이남에 계셨던가보던데요?"
 
108
"걘 일본 있다가 해방되구서 나왔었지요. 나두 만난 지가 삼 년 가까이 됩니다."
 
109
"아이, 어쩌면!"
 
110
필요치 않은 데 놀라보이는 것도 여자들이 호의를 보일 때 쓰는 방법의 하나이다.
 
111
"이북은 어떻습니까? 농촌에두 전부 전기가 통했다죠?"
 
112
"더러 통한 데가 있지요."
 
113
하고 말 적게 대답 하더니만,
 
114
"통했대야 어디 전기들을 씁니까."
 
115
"왜요?"
 
116
"비싸니까요."
 
117
"그렇게 비싸요?"
 
118
"비싸지요! 석유도 비싸지만, 전등은 그 비싼 석유값보다두 삼 배 반은 될 겁니다."
 
119
"그럼, 전기를 두구두 석유들을 쓰겠군요?"
 
120
"석유를 뭣하러 씁니까?"
 
121
"어떡하시는 말씀일까?"
 
122
진숙이가 핼끔이 쳐다보니까 박건은 껄껄 웃는다.
 
123
"그러실 겝니다. 전기두 안 쓰구 석유두 안 쓰구, 그럼 뭘 쓰느냔 말씀 이 시지? 안 씁니다, 안 써. 아무것도 안 쓰면 되잖습니까. 저녁만 먹으면 쓰러져 자지요. 또 보름 동안은 곡식 안 달라는 천연등이 있구요. 이남에선 눈으로 보지를 않아서 뭐가 좋으니 어쩌니들 합니다. 한말루 해서 지옥 이지요. 그나마두 생지옥입니다. 뺑 둘러서 모닥불을 질러놓고서 달구치는 ─"
 
124
여기까지 말하더니만 박건은 아주 길가에 떡 서버린다.
 
125
"여기서 소위 반동분자란 것이 생깁니다. 모닥불을 보고 불이라 해도 반동이요, 뜨겁다 해도 반동이요, 가만히 앉아서 죽기가 싫어서 울안에서 단한 발자국이라도 내어 디디는 날이면 따따따딱 ─ 이렇습니다. 가장 되는 사람이 월남을 했으면 그 집 문간에는 '반동분자의 집’이라는 널판쪽이 덜컥 붙습니다. 그것이 붙는 날이면 그 집 사람은 다 살았지요. 이것이 자유 입니다. 이것이 농민의 나라요, 노동자의 천국입니다. 교장실에 꽃병을 놓고 꽃을 꽂았다는 죄로 부르조아 반동으로 몰려서 쫓겨난 것까지는 좋지만, 이 년간 중노동을 하는 교장이 있는가 하면, 좁쌀알을 잘못 헤었 다가 수양 ─ 감옥이란 말이죠. 수양 간 사람이 아마 수백 명은 될 겝니다. 이 것이 지상낙원이란 것이지요. 지상낙원! 그래두 남쪽에선 ─"
 
126
이때 국방복을 입은 두세 사람이 지나다가 힐끗힐끗 보는 바람에 박건은 말을 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127
그는 자기의 말을 중단시킨 그 국방복 패들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128
"밤에라 두 계속하지요."
 
129
하고는 덤덤히 걷는다.
 
130
들으면 들을수록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뿐이었다.
 
131
"남쪽에서들은 '인류의 적’이란 말들을 많이 쓰는데, 놈들의 하는 짓을단 하루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인류의 적’이란 말이 아주 실감이 날 겝니다.
 
132
그는 귓속말처럼 이렇게 속삭이고 다시 저만큼 떨어져 걷는다.
 
133
그러다가는 어느새 또다시 진숙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뭐라고든지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134
그 한마디 한마디가 진숙에게는 또한 무서운 놀람이었고, 그대로 몸서리가 쳐지는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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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