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5)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5권 다음
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5
 
 
3
5월달 접어들면서부터의 재덕이네는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날을 맞고 보내고 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란 말이 있지만, 오전에는 배우고 오후에는 들로 몰려나가서 갈고 뿌리고 한쪽으로는 참나무밭을 개간도 했다.
 
4
재덕이네 밭 사흘갈이 옆에는 만여 평이나 되는 굴밤나무밭이 있었다. 이 것을 개간해서 조그만 과수원을 만들어보잔 것이었다.
 
5
올에는 우선 이 참나무밭을 개간을 하고 내년 봄에는 또 비알도 깎아 뭉 갤 작정 이었다.
 
6
산비알까지만 깎아내린다면 4, 5만 평의 큰 과목밭이 될 수가 있었다.
 
7
그들은 한 사람이 완전히 세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있었다.
 
8
아침에는 학생이었다. 여덟시부터 오정까지에 네 시간 학과를 끝내고 도시락 밥을 게눈 감추듯 하고는 괭이에 삽에 도끼에 있는 대로의 연장들을 들고는 금융조합 앞을 돌아서 들로 몰려나가는 것이다.
 
9
삼십여 명 중에는 실농군도 있었고, 일이 몸에 밴 사람도 보였지만, 그 대부분이 그늘에서 자란 나무처럼 손이 하이얀 패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잣집 자식들이란 말은 아니다. 그 대부분이 가난한 집 자식들이면서도 일 하는 것은 그 무슨 치욕처럼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온 사람들이다.
 
10
거기에다가 그 무슨 확고한 신념에서라기보다도 일시적인 기분으로 모인 사람도 없지 않았다.
 
11
"일합시다. 일을 해야 개인도 살고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삽니다!"
 
12
그들의 오전 학과란 일을 하지 않으면 개인도 국가도 민족도 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집중이 되었었다.
 
13
"여러분은 ─"
 
14
하고 박건은 국가와 민족을 떠나서 개인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15
"여러분은 혹 국가와 민족을 떠나서는 개인이 없다는 말을 의아하게 들을지도 모르지요. 국가와 민족의 이익보다도 자기 한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살면서 얼마든지 잘사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 ─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허지만, 그것은 순간이지요. 극히 일시적입니다. 결코 영원한 이익 도아 니요, 행복도 아닙니다."
 
16
박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개중에는 알 듯싶으면서도 채 못 알아듣겠다는듯이 몸을 솟구면서 귀를 기울이는 청년도 있었다.
 
17
"선생님, 그걸 좀더 ─"
 
18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질문이 튀어나오는 일도 있다.
 
19
그럴 때면 박건 자신도 안타까워진다.
 
20
"잘 못 알아듣겠으면 우리 이런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합시다. 여기에 한 친일파가 있었습니다. 그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사람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아주 호화롭고 편케 살았다 합시다. 그때는 모두가 부러워했겠지요. 자기자신도 자랑을 했겠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눈에도 그들이 잘사는 것이 그 당시엔 부럽게 보였었지요?"
 
21
비죽이들 웃어보인다.
 
22
"그러나 어땠습니까? 일본이 한번 망하자 그 친일파는 어떻게 됐지요? 망했지요? 거 보십시오. 피가 같은 한민족이 아닌 외국인이란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때만 감언이설로 동포니 애국자니 하고 치켜세우고 앞잡이로 써먹었지만, 8·15를 당하니까 언제 봤더냐 하고 저희들끼리만 싹 건너가고 말지 않습디까. 그랬지요?"
 
23
"네 ─"
 
24
"거 보시오. 이것은 피가 다른 까닭입니다. 피가 같아야 운명도 같이 할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같은 일인들 사이도 그렇지요. 일인들 중에도 제나라와 제 민족의 이익보다 저 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산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해방 전 돈으로도 몇천만원씩 가진 자가 얼마든지 있었지요. 우리 읍에서만 보더라도 하라다란 놈은 삼천 석에 버스회사에 과수원, 그 뿐입니까? 하라다 상점이 있었고 여관까지 갖고 있었으니 억대에 가까운 돈 이었지요. 그 하라다는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제 나라가 망한 그 순간에 똑같이 망하고야 말았습니다. 보따리 한 개씩만 들고 달아났다고 여러분들이 늘 이야기하셨지요?"
 
25
학생들 틈에는 진숙이와 경애도 끼여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들은 이야기를 저녁에 다시 동리 부녀들을 모아서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26
진숙이와 경애는 처음에는 진숙이네 방에다 동리 부녀자들을 모아서 서울 이야기 로부터 시작을 했었다. 그러다가 전쟁 이야기, 공산당 이야기, 나라와 개인, 민족이란 무엇이냐 ─ 이렇게 동화하듯 이야기해 들렸다.
 
27
"참 재미있다!"
 
28
이렇게 하나하나 모여들어 경애는 집에서 진숙이는 박 과부의 안방으로 자리를 갈라서 한편 국문도 가르치고 한편으로는 박건이와 재덕이의 이야기를 옮기 기도 했다.
 
29
이렇듯 오전 과업이 끝나면 도시락밥을 꺼내어 게눈 감추듯 하고 다시 들로 몰려나간다. 한편으로는 갈고 씨를 뿌리고 한쪽에서는 굴밤나무를 베어 눕히고 뿌리를 캐내었다.
 
30
코에서 단내가 물씬거리는 고된 노동이었다. 그러나 재덕이와 박건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했다. 진숙이도 그랬고 경애도 그랬다. 몸은 고 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31
저녁을 먹고는 남자들은 토론회를 열었고, 여자들은 강습에 나간다. 집에 돌아오는 것은 대개 열시나 되어서지만, 진숙이와 경애는 재덕이와 박건 사이에 벌어진 논전에 휩쓸리어 자정에야 자기들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 이었다.
 
32
"얘들아, 너희들 그러다간 병 나겠다. 일두 좋지만 사람이 잠을 자야잖느냐?"
 
33
어머니의 걱정도 지금의 그들 귀에는 대견히 여기는 것만 같이 들려질 말이다.
 
34
이렇듯 그들은 한 사람이 세 사람 분의 일을 하는 외에, 또 한 가지 일이 덧 붙어 다니었다.
 
35
박건과 진숙, 재덕이와 경애는 일을 위한 동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이 자칫하면 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애정으로 변해가려고 드는 자기네 자신을 단속하는 일이었다.
 
36
박건은 진숙이가 자기를 극진히도 아껴주고 믿어주고 그리고 존경 해주고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진숙이만 해도 박건이가 자기를 믿고 아껴주고있 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칫하면 일을 위한 동지를 단순한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바라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둘이 다 놀라는것이었다.
 
37
재덕이와 경애 사이도 그러했다. 더욱이 재덕이는 아내 보임이와의 관계가 덤덤한 사이였더니만큼, 자기도 모르게 경애와 보임이와를 비교해보는 버릇이 생겨져 있었다. 보임이만 해도 트집을 잡을 데는 없는 여자였다.
 
38
성격이 대범해서 좀 덤덤하다 할 뿐이요, 그것도 재덕이의 무관심에서 주눅이 들린 탓도 없지 않다.
 
39
그러나 경애와 같이 앉혀놓고 비교할 때 그것은 돌과 옥과의 차이였다. 선머슴처럼 건강한 보임이의 육체는 나약한 경애 앞에서는 건강이 아니라 원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40
사실 무지한 여성의 미란 언제나 단조한 법이다.
 
41
'보임이가 내 아내가 아니고 경애가 내 인생의 반려 자란다면…’
 
42
이런 생각을 간혹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재덕이인 줄을 경애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재덕이가 입으로는 별소리를 다해도 그의 눈은 언제나 경 애앞에서 이것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었다.
 
43
그러니만큼 경애한테는 과업 한 가지가 더 늘었다.
 
44
'보임이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에서 오는 노력이었다. 재덕이로 하여금 싫은 아내에게 애정을 느끼게 하고 무지한 보임이의 눈을 띄어주어 멀어져 가는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게 하는 것도 나약한 여성에게는 큰 부담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부담은 그 여성 자신 재덕이를 사랑 하고있다는 사실이었다.
 
45
"언니, 우리 같이 나가요! 같이 가서 이야기도 듣고 언니 생각도 이야기하고. 그러는 동안에 언니두 배워지고 재덕 씨와도 허물이 없어지지 않아요?"
 
46
경애는 이렇게 사랑에도 끌고 나갔고, 자정이 넘어서도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보임이한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47
그러다가 경애는 보임이와 한자리 속에서 쓰러져 자는 일도 많았다.
 
48
이렇듯 극진한 경애의 정성은 보임이한테도 통한 모양이었다. 보임이는 처음처럼 경애를 색안경으로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할 말 못할 말 없이 자기 심경을 이야기해주기까지 한다.
 
49
"용서해주어, 경애!"
 
50
한번 보임이는 이렇게 경애의 손을 잡고서 눈물지은 일까지 있었다. 목석처럼 무표정한 보임이의 눈물은 보통 여성들의 눈물보다도 경애를 깊이 감동 시켜 주었었다.
 
51
"경애! 언니한테서 그이를 빼앗으면 안 돼요! 응, 약속하지?"
 
52
보임이의 이 말을 듣자, 경애는 가슴이 뻐개지는 듯싶었다. 이 한마디 속에는 보임이의 사람됨과 재덕이에게 대한 깊고깊은 애정이 숨겨져 있었던것이다.
 
53
'보임이는 이처럼 재덕 씨를 사랑하고 있다!’
 
54
경애는 한 여성의 극진한 애정을 짓밟는 재덕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원문】젊은 사람들 (15)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4
- 전체 순위 : 683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0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20) 어머니
• (2) 이순신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젊은 사람들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195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5권 다음 한글 
◈ 젊은 사람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