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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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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3
 
 
3
이튿날 아침 재덕이네가 회관에 갔을 때는 유·박 둘이 벌써 와서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4
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청소를 했다. 쓸 데는 쓸고 닦을 데는 닦고나니, 그제서야 하나씩 둘씩 단원들이 모여든다.
 
5
단원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말끔히 치워진 방안을 휘휘 둘러보고만 있다.
 
6
"어떻소들. 안 쓰니보다 좋지?"
 
7
하고 재덕이가 웃으니까 모두들 머리를 득득 긁어댄다.
 
8
'미안합니다.’ 하는 뜻이었다.
 
9
"선전부장님, 오늘 웬일이십니까?"
 
10
하고 한 단원이 몹시 의아한 모양이다.
 
11
"오늘부터 나도 개과천선을 했소. 너무 핀둥핀둥 놀기만 했더니 길에서 단원들을 만나도 얼굴 둘 곳이 없구."
 
12
"원, 천만에요. 저희들은 뭘 했습니까? 날마다 모여앉아서 잡담 아니면 장기나 두었지요. 하긴 우리두 염치없어요. 말이 청년운동이지 뭘 하는 게 있어야지요."
 
13
"뭐 할일이 있으면 하겠소들?"
 
14
하고 재덕이가 슬쩍 떠보았다.
 
15
"아, 이르다뿐입니까!"
 
16
"하구말구요!"
 
17
"정말 사지가 멀쩡한 놈들이 날마다 뻔질뻔질 놀기만 해노니까 인저는 몸이 다 근지러워요."
 
18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은, 이렇게 말할 때의 그들의 얼굴과 몸짓으로 알 수 있었다.
 
19
"정말 일이 없어 죽겠다구 그랬지요들?"
 
20
"그럼요!"
 
21
"몸이 비비꼬인다구?"
 
22
"그랬어요."
 
23
하고들 웃는다.
 
24
"그럼 일거리가 생기면 몸 사리지 않고 일들 하지요?"
 
25
"아, 하다뿐이어요!"
 
26
"정말?"
 
27
"정말입니다!"
 
28
"좋소. 그럼 다 이리들 오시오."
 
29
하고 재덕이는 단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30
단원들은 정말인지 농담인지 의아해하는 눈치면서도 기다란 나무걸상을 끌어다놓고 교장선생님 앞에 불리어온 국민학교 생도들처럼 단정하니 앉는 것이다.
 
31
"그러면 내 여러분께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여기에 젓가락 여러 매가 있습니다. 이 젓가락을 따로 세울 수가 있겠소."
 
32
모두들 멍청하니 서로 쳐다본다.
 
33
"못 세울까?"
 
34
"……"
 
35
"못 세우겠지. 그것은 여러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지요. 그 가느단 젓가락을 따루 세울 수가 있나요, 없지. 그러나 꼭 한 가지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젓가락들을 한데 묶으면 세워지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36
"네 ─"
 
37
대답은 하나 긴치않은 대답이다.
 
38
"물론 내 말뜻을 모르실 게요."
 
39
하고 재덕이는 그제서야 툭 털어놓았다.
 
40
"다시 말하면 젓가락이나 우리 인간이나 마찬가지지요. 합치면 설 수 있고 따로 떼어놓으면 쓰러지고 이것은 비단 젓가락에만 한한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가정도 그렇고 동리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지요. 우리는 언제나 합쳐야 강해지고 합쳐야만 굳세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41
그제서야 단원들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42
그러나 그들이 정말 재덕이의 하려는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은,
 
43
"우리 청년운동만 해도 그렇지요. 첫째 우리 읍내의 청년운동 단체만 하더라도… "
 
44
하고 이야기를 꺼낸 후부터다.
 
45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느 오직 단 한 가닥의 핏줄에 얽힌 민족 입니다. 오천년이란 긴 역사를 두고 오직 한 가지의 말만 써온 백성입니다.
 
46
그리고 우리는 통일된 땅을 가진 민족입니다. 이것을 말해서 단일 민족, 단일 언어, 통일국토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단일로부터 흩어졌습니다. 꼭 가져야만 할 단일 사상, 단일 주의를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재 덕이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서,
 
47
"이 원인은 오직 우리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8
─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49
단원들도 그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것 같았다.
 
50
그래서 재덕이는 어젯밤 여섯이서 늦도록 이야기한 계획을 대강 이야기 하고서,
 
51
"어떻습니까, 우리와 손을 잡고 일들 해주시렵니까?"
 
52
하고 묻자, 한 단원이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썩 내미는 것이다.
 
53
재덕이도 따라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54
우두둑 소리가 나게 청년은 재덕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55
"기다렸습니다!"
 
56
단 한 마디를 하고는 제자리에 앉는다.
 
57
열 마디 백 마디 해주는 것보다도 재덕이네한테는 감명이 깊은 말이었다.
 
58
"그럼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59
재덕이가 묻자,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흡사 정말 국민학교 생도들이 선생님 앞에서 하는 짓과 같았다.
 
60
"좋습니다."
 
61
"감사합니다."
 
62
"대찬성입니다!"
 
63
"고맙습니다."
 
64
하고 이번에는 재덕이가 답례를 하고,
 
65
"동지 한 분 소개하겠습니다. 새삼스러운 것 같으나 이 박건 동지가 우리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저기 저 박도진 동지와 유 달성두 동지는 이 훌륭한 안을 생각해낸 창안자요, 여기 이분은 박경애 씨 ─ 아니 박경애 양 ─"
 
66
하다가 재덕이는 경애를 보고,
 
67
"양 이 시지요?"
 
68
한다. 경애도 죽는다고 야단이다.
 
69
"이 말괄량이는 다 아시다시피 내 누이입니다. 우리 여섯은 힘껏 여러분의 심부름을 해드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70
"만세!" 하고 아까 일어나서 손을 잡던 홍해성이가 한 팔을 번쩍 들어 이 사업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71
재덕이네는 대개 찬동해주리라고는 믿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들 할 줄은 몰랐었다.
 
72
"자, 그럼 우리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합시다."
 
73
하고 재덕이는 자리를 고쳐앉았다.
 
74
박건과 도진, 달성, 진숙, 경애 이렇게 차례차례 긴 걸상을 삼각형으로 놓고 자리를 잡았다.
 
75
"늘 뵈면서도 인사 못 드렸습니다. 박건입니다."
 
76
박건이 이렇게 인사를 하고서,
 
77
"혹 들어 아실 분도 계시겠지마는 나는 작년에 이북에서 월남해온 사람 입니다."
 
78
하고 이북의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독재이며 얼마나 포악한 정치이며, 이 무섭게 포악한 정치 속에서 백성들이 또 얼마나 무서운 학대를 받고 있다는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79
"혹 여러분 중에는 설마 그럴까 하고 믿어지지 않으실 분도 있을 겝니다. 그러나, 날이 추워도 춥다는 말을 함부로 못한다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겝니다. 춥다는 말은 곧 정부가 백성 ─ 아니 인민을 춥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말이다. 인민이 춥게 내버려둔 정치는 잘못 하는 정치다. 그러고 보면 결국 김일성의 정치가 나쁘다는 말이요 공산당의 정부가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 이런 결론에 떨어집니다. 고발만 하면 최소한도 6개월은 수양해야 합니다. 수양이란 곧 감옥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북만주나 강계, 영변 같은 데로 끌려가서 중노동을 하게 됩니다."
 
80
박건의 이야기에 모두 혀들을 만다.
 
81
"그저 쉽게 말하면 재채기도 공산당식으로 하지 않고는 단 사흘을 한 동리에 머물러 있기가 어려울 겝니다. 도시고 농촌이고 할 것 없이 평균 세 집이면 그 안에 반드시 밀정이 한 사람은 끼여 있다고 믿는 것이 옳을 겝니다. 형제간은 그만두고 내외간에 자리에 누워서 정치를 흉본 것을 밀고 해서 잡혀간 사건도 아마 평균하면 한 면에 하나꼴은 충분하겠지요."
 
82
단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걷힌다.
 
83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걸 믿어도 좋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남편보다 이 세상에서 더 믿을 사람이 있던가요? 이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부 중의 하나를 밀정으로 잡으니, 방법이야 이 이상 더 묘한 방법은 없을 겝니다. 이 하나로서 놈의 정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84
"그렇지만 농민한텐 농토를 거저 나누어주었다지 않습니까?"
 
85
하고 한 단원이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묻는다. 하도 모략이 많은 세상이니 분명히 또 누가 잘못 듣지나 않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모양이었다.
 
86
"그렇습니다. 무상으로 나누어주었지요."
 
87
이렇게 단언하는 말에 모두들 멀쑥해진다. 그 의문에 대답하듯 박건은 이북의 토지 정책을 설명 하고서,
 
88
"그러면 왜 못 사는가 하고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2할 5부의 현물 세란 것이 말뿐이지 한 섬 난 데 2할 5부면 일곱 말 닷 되가 농민 차지가 되지만, 한 섬 난 것을 두 섬 난 것으로 치면 결국 현물세가 5할이 되고 석 섬으로 치면 7할 5부 정반대루 되지 않나요? 그렇지요?"
 
89
모두들 웃어댄다. 그러나 이 웃음은 박건의 다음 이야기에 쑥 걷히고 만다.
 
90
"그러면 그 수확고 예산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하면, 초가을에 조나 수 수 밭에 들어가서 그중 제일 이삭이 좋은 놈으로 하나 꺾습니다. 그걸 가지구 와서 떨어서는 한 알 한 알 헤입니다. 이것이 그 밭의 수확고가 되니 어디 다른 이삭이 다 그 알수가 되는가요?"
 
91
"그럼, 좁쌀 같은 건 어떻게 헤이나요."
 
92
하고 누가 묻는다.
 
93
"왜 못 헵니까? 성냥개피를 하나씩 들고는 밤이 새더라도 한 알 한 알 영락 없이 헤이지요?"
 
94
이 말에는 그야말로들 질리는 모양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95
"그러면 그 많이 받아들이는 세금을 다 뭘 하나요?"
 
96
얼마인가 후에야 누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97
"소련놈들 먹여살리지 뭐해!"
 
98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 모양이다.
 
99
"옳습니다. 그 대신 무기를 사오지요. 농민들 부역이 일년간에 총계 구십일씩 입니다. 그런데 남쪽에선 일년에 단 이틀 길 부역을 시키는 데도 불평이 많습니다요."
 
100
박건은 남쪽과 북쪽을 여러 각도로 비교해서 비판을 하고는, 남쪽에서는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고서 자기한테 편하고 이롭도록만 이용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어리석음을 깨우치자는 것이 이 계획의 초점이라고도 했다.
 
101
"근로정신이 적은 것도 말하자면 몰라서 그런 것이지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102
"어떻습니까? 팔을 걷어붙이고 용감히 나서볼 생각 없습니까?"
 
103
재덕이가 제안을 하자 그들은 전부가,
 
104
"좋소."
 
105
하고 손을 들어서 찬의를 표한다.
 
106
이렇게 해서 그들은 힘찬 출발을 했던 것이다.
 
107
우선 내일부터 교실을 수리하는 한편, 이 계획에 찬동하는 단원들을 모으기로 하고, 그날은 헤어지는데,
 
108
"우리 집에 들 가십시다. 먹다 난 찌꺼기라 죄송합니다만 잔치 끄트러기 북어 포 나부랭이하구 막걸리는 두어 말 남았을 겝니다."
 
109
하고 유달성이가 앞장을 섰다.
 
110
재덕이네는 어제 간 터라 굳이 사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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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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