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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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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0
 
 
3
"그럼 죽었겠구나?"
 
4
"글쎄요."
 
5
"총소리가 많이 났어?"
 
6
"아마 한 십여 방 났을 겝니다. 첨엔 빵 빵 빵 세 방이 나더니만 딥 다 들 싸우는 소리가 나더군요. 그러더니만 한참 있다가는 아마 한 대여섯 방 그대로 볶아칩디다."
 
7
"그러면 죽었겠군. 어쨌든 놈의 소행은 괘씸하다만서두, 그래두 그게 머리가 검다구 널 살려 보내주었으니 희한한 노릇이다. 그놈이 그래두 그만큼 신 셀 졌다는 의리 생각이 났던 모양이지?"
 
8
재덕이 모친은 뭐가 어찌 되었든 아들 살아온 것만이 대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9
"그래, 그 녀석이 같이 내려오자구 그러니까 뭐라던?"
 
10
재덕의 부친 신구영 씨가 이렇게 묻는다.
 
11
신구영은 고향에서 폭동이 진정되었다는 신문을 보고는 그날로 뛰어내려 왔었다.
 
12
내려와서 보니 뜻밖에도 그날이 아버지의 장사날이었다. 서울로 보낸 사람과 길이 어긋났던 것이다.
 
13
기실 재덕의 조부장이 죽은 것을 모른 것은 서울 있는 아들뿐만이 아니었다. 재덕이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며느리 되는 재덕 모친과 손녀인 진 숙이는 병원으로 간 채 서로 소식을 몰랐고, 재덕의 처와 달순이, 금녀, 박건 남매 ─ 이렇게는 갑자기 폭도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버선발로들 뛰어나가서 풍비박산이 되어버렸었다.
 
14
온 집안에 사내라고는 재덕의 조부장인 칠십 노인과 박건이었다. 노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박건도 말은 사내지만 도끼에 칼에 몽둥이에 제각기 든 이십여 명 앞에서는 자다가 벌떡 일어난 벌거숭이로서는 어찌할 수도 없었다.
 
15
우선 급한 대로 뒷산으로 피했다가 이틀 만에야 돌아와 보니, 노인의 시체가 안마당에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16
모두 타는 줄 알았더니 요행 안채만은 남았다.
 
17
그러나 말만 남았지 가재도구는 하나도 간 곳이 없고, 옷 한 가지 반반한것이 없다.
 
18
안채 마루에는 아주 영구히 쓸 줄 알았던지 재덕이가 쓰던 테이블 이외에도 어디서 두 개나 갖다 놓고 의자는 대여섯 개나 날라다놓았다. 테이블 위에 잉크병이고 종이고가 그대로 널려 있는 것을 보면 일을 하다가 경찰이 들어왔다니까 그대로 들고뛴성싶었다.
 
19
식구가 다 모인 것은 경찰이 들어온 이튿날 점심때서다.
 
20
앓다 죽은 것도 아닌 거라 그날이라도 장사를 모시자는 의논도 있었지만, 상주도 장손도 없는 장사를 지낼 수 없던 차에 뜻밖에도 신구영이가 뛰어든것이다.
 
21
그때까지도 재덕이의 소식이 없었던지라, 남은 물론 집안 식구들도 다 잃은 사람으로 쳤다. 그때에 한쪽에서는 시신 없는 장사라도 지내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으나, 여기에는 박건과 재덕의 부친 신구영 씨가 극력 반대를 해서 중지되었다.
 
22
"개두 정이 들면 무덤을 해준다는데 무덤 없는 죽음이 어디 있답니까. 자식이 없어 제사는 못 지내줄망정 물 떠놀 데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23
장사라도 지내주자고 주장하던 재덕의 치 보임이는 시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말도 못했지만, 진숙이를 보고서 이렇게 쫑알거렸다.
 
24
"어디 오빠가 돌아가셨수? 장사는 죽은 사람한테 지내는 게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무덤을 만든다니?"
 
25
진숙이도 처음부터 반대였다.
 
26
"그야 작은아씨 말대루 살아주셨으면야 좋지요. 허지만 만일에 돌아갔다면 고혼인들 오죽 섭섭하겠어요?"
 
27
"만일을 위해서 무슨 장살 지낸담!"
 
28
시어머니도 처음에는 장사를 지내야 한다고 서둔 축이었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역시 그 말이 옳을 것 같았던 것이다.
 
29
이렇게 노인 장사를 치르고 난 뒤에 뜻밖에도 재덕이가 툭 튀어들어온 것이다.
 
30
재덕이는 부친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기 전에 힐끗 진숙의 얼굴빛을 살펴보았다. 아까까지도 불콰하게 상기가 되었던 진숙이는 금세 백랍처럼 차다.
 
31
재덕은 역시 종호 이야기를 숨겨두었을 것을 ─ 하는 후회를 했으나,
 
32
"그래, 안 내려오겠다구 그러던?"
 
33
하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또 재촉을 한다.
 
34
"내려오자면 내려오겠습니까? 저두 속아서 했든 어째서 했든 그런 일을 저질러놓 구서 무슨 낯으로 내려오겠습니까?"
 
35
이렇게만 대답해버렸다.
 
36
"어쨌든 무서운 일이다. 이것이 딴나라와 딴민족끼리라도 또 모르겠는데, 한 핏줄이 아니냐. 오천 년 동안 남의 피가 섞이지 않은 민족이라고는 오직 우리네 민족뿐일 것이다. 한핏줄에 한운명을 타고난 같은 민족끼리 어불성설이지, 서로 죽이다니."
 
37
신구영은 뽀얀 재가 된 사랑채를 멀거니 내려다보며 한숨을 후유 쉰다.
 
38
"모두가 우리 죄다. 우리 대의 죄를 너희들이 받는 셈이지. 모두들 저 한 몸 잘살 생각만 했지, 한핏줄에 한운명을 지고 난 우리네 민족이 이해가 똑같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이 없었더니라. 같은 자손이요 같은 민족이니, 모두 다 잘살아야 자기 개인두 잘산다는 것을 너희들 젊은 애들한테 알려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민족과 개인은 아비와 자식과 같은 것이야. 남편과 아내 같구. 형과 아우 같구 ─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같은 것이지.
 
39
그런데 이 아주 쉬운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 없었단 말이다. 알려준 사람이 없었어. 너희들 청년운동두 뭐니뭐니 떠들기만 하지 말구, 이 삼척동자라 두 알 수 있는 한핏줄, 한조상, 한운명에 얽혀져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이란 것, 삼천만이 다 부귀가 없고 가난과 부자가 없이 고루 살 수 있어야만 자기 개인두 잘살 수 있다는 근본을 알려주도록 하는 게 제일이니라, 요새 보면 청년 단이 걸핏하면 정당 행세를 하려 들거든. 알아 해라."
 
40
신구영은 긴 설교를 끝내고 일어서더니만 금세 다시 쪼그리고 앉으면서,
 
41
"이런 의미에서 ─"
 
42
하고 다시 말을 잇는다.
 
43
"이런 의미에서 난 이번 사건은 우리 민족한테 대단히 불행한 일 이었지만 또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목격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건댄 ─"
 
44
하고 신구영은 다시 털퍽 자리를 잡아 앉으며 담배까지 꺼낸다.
 
45
그것을 보더니 부인이 며느리한테 눈짓을 해서 방석을 가져오래서 깔아 준다.
 
46
"벌써 마루가 얼음장 같아졌구나. 사람들 말을 듣건댄 정말 폭도보다도 이 지방에서 멋도 모르고 날뛴 놈들이 더 많았다더구나. 이것이 뭐냐 하면, 너희들이 지금까지 해왔다는 청년운동이 그저 기분으로만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단 증거란 말야. 그렇다구 그 사람들을 나무랄 것은 못 되지. 왜 그러냐 하면 배우지를 못했으니까. 공산주의가 나쁘다 하는 그것만 가지구는 청년 운동을 못해. 나쁘니까 어떻게 해야겠다, 이것이 있어야지. 그것이 없었거든. 지도자들이 모르니, 그 밑의 젊은 애들이야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알아서 해."
 
47
"네!"
 
48
"그게 없으면 헛 운동야."
 
49
하고 아버지가 일어선다. 재덕이는 정말 뼈에 사무치는 교훈을 받았다고 생각 했다.
 
50
사실 그렇게 지적을 당하고 나니 자기가 지금까지 해왔다는 청년운동은 어떤 때는 정당의, 또 어떤 때는 경찰의, 또 어떤 때는 군대의 의뢰를 받고서 그대로 남의 힘과 남의 생각에만 움직여왔던 것 같았다.
 
51
이 점은 박건이가 늘 주장해왔지만 그때까지도 막연하였던 것이 이번 사건을 치르고 나니 정말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이 주의와 이 사상을 위 해서는 목숨도 기쁘게 바칠 수 있다는 신념을 길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친다.
 
52
이 주의, 이 사상, 이 지도이념 ─ 이것은 역시 지금 자기네가 입버릇처럼 떠드는 막연한 민주주의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도 뼈아프게 느껴진다.
 
53
'…우리가 믿고 살아야 할 주의는 역시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란, 우리 민족을 토대로 하고 우리 민족의 감정과 생활과 전통과 역사가 토대가 된 민주주의라야 할것이다. 그런 주의를 찾아줄 사람은 없을까?…’
 
54
오직 안타까울 뿐이다.
 
55
자신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괴로운 일은 없다는 것을 재덕이는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 때까지는 정말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그러나 박건을 위시해서 부친한테까지도 그런 것을 지적당하고 나니, 아무런 줏대도 생각도 청년들을 이끌어갈 방향도 모른 채 청년운동을 한 답시고 쫓아다닌 자신이 정말 우스워지는 것이었다.
 
56
재덕이는 이렇게도 똑같은 경험을 한 일이 있다.
 
57
그것은 아마 중학 일학년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하루는 목욕을 갔다가 씨름판이 벌어졌었다. 그때 우연히 유도 이야기가 나자 다른 아이들이 재덕이를 보고 유도를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서울 중학교에 다니니까 유도를 배우려니 해서 난 말이었겠지만, 기실 재덕이는 한 번 유리창 너머로 상급생이 유도하는 것을 본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가 싫다.
 
58
"와 ─ 가르쳐줄게 ─"
 
59
재덕이는 그중 한 아이를 잡아 끌어다가 '허리치기’로 어깨를 넘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두 팔을 쥐고 엉덩이를 상대방 배에다 대고서 팔을 잡아낚는 것을 보았던지라, 그대로 일러주고는 실험을 해보이려고 잡아 낚 으 려고 드는데, 상대방 아이가 되레 그를 보기좋게 메어다꽂고 만다.
 
60
기실 그 아이는 순사 아들로 어려서부터 자기 아버지와 유도 장난을 한다고 술이 취하면 메어다치고 메어다치고 해서 제창 유도를 잘하는 아이 였던것을 재덕이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61
그뒤에는 유도 말만 들어도 그때 무안하던 생각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62
그러나 그것은 어릴 때 이야기요, 지금은 나이 삼십이 넘은 청년이었다.
 
63
청년의 '청’자도 모르는 위인이 대중을 모아놓고서 청년운동을 지도 한 답시고 나섰었으니, 배꼽이 웃을 노릇이다.
 
64
그러나 자신없는 일을 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지만, 일하던 사람이 일 없이 지낸다는 것도 역시 괴로운 일이었다.
 
65
"박 군! 어떻게 하면 좋은가? 정말 이 이상 난 청년단에 나갈 용기가 없네. 유도 경우와 똑같은 일종의 굴욕까지 느끼게 돼."
 
66
"좋은 현상이야, 고민해야지."
 
67
"그렇다고 아무것도 않고 징커니 있긴 죽기보다두 싫구."
 
68
"교양부를 맡아보면? 아버지 말씀이 옳아. 우리는 지금 지도 운운할 때가 아니라 계몽할 때니. 계몽과 청년운동을 혼동했어."
 
69
박건은 이런 의견이었다.
 
70
"그러나 말이 교양이지 난들 뭘 아는가?"
 
71
"아니야. 우리가 비록 아무것도 모르기는 하지마는, 그래두 일반 단원들보다는 아는 셈이 아닌가? 그러니까 지금 단원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을 아주 뿌리째 뽑아보잔 말야. 뿌리째 뽑아 없애구서 ─"
 
72
"그러다간 또 파쇼가 되게?"
 
73
"아니지, 뽑기가 무섭게 새 씨를 뿌려야지."
 
74
"그 새 씨란?"
 
75
여기 와서는 둘이 다 덤덤히 마주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모르는 것도 비극이지만 모르는 줄을 알고 있다는 것도 비극이었다.
 
76
그 해 겨울은 재덕이에게 있어서 더없이 괴로운 겨울이었다. 살아 있는 목적도 살아갈 방향도 모르고, 우두커니 찬 회색 하늘만 바라다보고 선 재덕이의 초라한 꼴은, 타버린 숯검정이 아직도 그대로 뒹굴고 있는 사랑채 없는 집보다도 더한층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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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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