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8)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8권 다음
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8
 
 
3
아무리 여름 밤이라고는 하지만 열한시면 꿈길을 더듬을 때다. 그러나 ㅊ 읍민들은 잘 생각은커녕, 대낮처럼 횃불을 밝히고 법석이었다. 거리의 횃불에 현대의 과학을 자랑하는 전기도 무색할 지경이다. 온 읍내가 혼선된 확성기 그대로 악마구리 끓듯한다.
 
4
그 해 팔월 십오일은 마침 이 ㅊ읍의 장날이기도 했다. 5만 읍민이 겨울 미꾸리들처럼 한 군데로만 몰려들었다. 거기에 장꾼들이 이날의 성사를 구 경 하리라고 모두들 집에 돌아갈 것을 잊고 있었다. 밀고 비비고 거기다 술이 취했으니 엎어지고 자빠지고다. 고래고래 지르는 함성은 발에 밟힌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삼켜버리고 만다. 아이와 어른과 늙고 젊고 여성( 女聲) 과 남성( 男聲) 과 환호와 비명이 그대로 한데 어우러져서 볶아댄다. 그런데다가 만세 소리가 덮친다.
 
5
"만세! 대한민국 만세! 만세!"
 
6
"와!"
 
7
"와!"
 
8
무엇이 와인지 모른다. 뜻도 없다. 멋도 모른다. 그저 누가 하나 와 하면 따라서 두 팔로 하늘을 찌르며 고함을 치는 것이다. 옆사람의 볼치고 턱이고 뒤통수를 쥐어박고 내지르는 수도 있다. 친 사람은 흥에 겨워 고함이요, 맞은 사람은 아파서 비명이다. 본 사람은 우스우니 또 버레기를 깨뜨린다.
 
9
노래가 나오는가 하면 춤이다. 노래도 가지가지요, 춤도 천태만태다. 누가 하나 육자배기를 뽑으면 아리랑이 척 받는다. 「박연폭포」에 「여보 여보 거북님 」 이 어디 당한 노래랴만 심상해한다. 「쾌지나 칭칭」이 나오면 춤도 가지가지다. 뱁새춤에 꼽추춤이 나오는가 하면, 활량춤, 딴따라당, 「 꼬랴 꼬랴」에 엉덩춤, 꽹과리에 소고에, 북에, 비빔밥에다 국말이에 초에 술에 간장에 뭐가 뭔지 모를 판이다.
 
10
오직 알 수 있다는 것은 기뻐서 날뛰는 것이지 결코 슬퍼서는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일체의 음향이 환성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기쁨도 정도를 지나치면 생리적인 통증을 가져오는 모양이다. 그것은 모름지기 환호의 비명 ─ 신생 대한민국을 품에 안고 몸부림치는 국민의 비명 아닌 비명이다.
 
11
─ 재덕이네가 사형을 당했다는 소문이 떠돈 때로부터 석 달이 지나서였다.
 
12
전 읍내가 불바다를 이루고 만세 소리가 충천을 하는데, 그날 밤의 재덕이네 집은 무덤 속처럼 괴괴하다. 안방에만은 희미하나마 불이 켜져 있었으나 사랑 채에는 불조차 없다.
 
13
"소쩍! 소쩍! 소쩍!"
 
14
깊은 산중에서 우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는 소쩍새 소리가 이 고요한 공기를 흔들어 줄 뿐, 3마장 밖의 읍내가 들끓어대는데 온 집안에 인기척조차 없다.
 
15
"소쩍! 소쩍! 소쩍!"
 
16
오직 소쩍새가 울 뿐이었다.
 
17
그때다.
 
18
이 고요한, 아니 찬바람이 쏴 도는 밤공기를 깨뜨리는 또 하나의 음향 이 바로 울 뒤에서 났다. 유의해서 들어도 겨우 들릴 그런 조그마한 음향 이었다.
 
19
"바삭 ─"
 
20
낙엽을 밟는 듯싶은 소리다.
 
21
"바사삭 ─"
 
22
발 소리의 주인공은 이 고요한 집 토담 뒤에서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되어 나타났다. 껑충하니 큰 키다.
 
23
그림자는 토담 뒤에서 집안 공기를 살피는 모양이다. 코스모스가 담뿍 우 거진 꽃밭 앞으로 채송화다 분꽃이다, 백일홍에 봉숭아, 난초, 패랭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워다 모은 꽤 큰 꽃동산이 또 하나 있고, 그 앞으로 창이 난 방이 재덕의 아내 보임이의 방이었더니라.
 
24
검은 그림자는 그 방을 잠깐 넘겨다보고는 사랑채를 한번 돌아보고서 인기척이 없자 다시 산속 솔밭으로 몸을 감춘다. 그의 목적은 사랑채 사람을 찾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
 
25
집 주위는 다시 정적으로 돌아갔다.
 
26
소쩍새도 울음을 그치고 나뭇잎에 이슬 내리는 소리가 곧 들리는 듯 싶게 고요하다.
 
27
그때 또 발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하나만의 발소리가 아니다. 두 사람 아니 7, 8명은 정녕코 됨직한 어지러운 발소리다.
 
28
이윽고 발소리들은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되어 마당 앞 늙은 느티나무 밑에 나타났다. 두 남자와 세 여성 ─ 그리고 아이들이다. 두 남자와 젊은 여자는 재덕이 남매와 박건이 남매에, 그리고 보임이에 틀림이 없을 게다.
 
29
"그러니까 우리는 정치와 정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단 말야."
 
30
하는 것은 앞선 그림자 중의 한 사나이다. 무슨 토론의 계속인 모양이다.
 
31
그 목소리는 좀 쉰 목이기는 하나 어딘지 신재덕의 음성과 같다.
 
32
"정치에서 정책이 나와야지 거꾸로 정책에서 정치가 나온다면 언제나 백성들은 갈피를 못 잡거든. 그놈의 정치가 언제 또 어떻게 변할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안 그래, 박 군!"
 
33
하는 품이 정녕코 신재덕이다.
 
34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는 신재덕이었다. 5·10선거를 한 달 앞두고 몸의 자유를 잃었던 재덕이네 일파는 선거가 지난 지도 십여 일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풀려나왔었다. 이승구는 낙선이 되자 ㄷ청년단 선전부장에게 약속을 이행 치 않았다. 선거운동만 해준다면 2십만원을 주마고 해놓고서 그동안 거지 주듯 돈 오만원을 주고는 아주 입을 쓱 씻어버린 것이다.
 
35
이해로 맺어진 사이란 이해만 틀리면 언제든지 틈이 버는 법이다. 이승구와 선전부장 사이는 틈이 번 정도가 아니라 아주 불상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36
"천하에 죽일 놈 같으니. 그놈이 어떤 놈인데그랴? 아, 신재덕이네가 왜 들어간 줄 알아? 다 그놈 짓야, 그놈 짓!"
 
37
선전부장이 술을 먹고서 이렇게 떠들어댄 소리가 이번에는 정말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재덕이네 여섯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른 단원의 말까지가 완전히 합치된 것과 재덕이가 이따금씩 써두었던 일기가 나타나서, 경찰에서도 무고인 것을 알고 석방하려던 터에 이 사실이 드러난것이었다.
 
38
이승구도 할 수 없이 좍좍 불었다. 선전부장도 동시에 구금이 되고 재덕이네는 40여 일 만에야 푸른 하늘을 보았던 것이다.
 
39
"이 정치란 ─"
 
40
하고 사랑방으로 들어가면서 재덕이는 계속을 하고 있었다.
 
41
"제일 중대한 문제가 나왔으니 또 하룻밤 더 새워야지."
 
42
하고 진숙이와 경애가 따라 들어가려니까,
 
43
"야 이 얘야, 지금이 몇시라구 그러냐? 일찍 일어날 사람들이 일찍이나 자잖구."
 
44
하고 어머니가 말린다. 그러나 진숙이와 경애는 못 들은 체 따라 들어간다.
 
45
"아까 계속인데 말일세. 이 정치란 곧 신념이거든! 정책은 때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겠고 또 변경하기도 하지마는, 이 정치가 송두리째 변해서는안 된단 말야."
 
46
"그러면 그 신념은 어디서 나오죠?"
 
47
하고 진숙이가 묻고자 하던 말인데 경애가 잽싸게 톡 채고 만다.
 
48
"그 신념이 어디서 나오냐구? 정치이념에서 나와야지요."
 
49
"그러면 그 정치이념이란?"
 
50
하고 이번에는 진숙이가 멱살을 바짝 치켜들 듯 하자,
 
51
"신재 덕이 오늘 단단히 혼나는군!"
 
52
하면서 박건이가 웃는다.
 
53
"이 정치이념이 나올 데는 아무 데도 없어. 종시 일관한 주의 주장이 서야지! 그 민족 그 국민의 민족성과 국민성, 역사적 전통, 생활 문화, 풍속, 도덕 그리고 지리적인 특성 ─ 이 모든 것을 토대로 한 일정한 주의가 서야만 비로소 줏대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야."
 
54
"잘 알아듣네. 그런데 그 주장 ─ 이를테면 주의란 말이지? 그 주의를 종교 화해야 하느냐 않아야 하느냐를 이야기하다가 말이 딴데로 흘러 버렸는데… "
 
55
하고 이번에는 재덕이가 한판 차릴 듯이 책상 모퉁이에다 한 팔을 세우고 덤벼든다.
 
56
"난 무지한 민중일수록에 종교화해야 한다고 생각네. 무지한 백성을 끌 구가는 데는 종교밖에 없거든 ─"
 
57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
 
58
박건은 찬찬하게 그러나 다부지게 부인해버린다.
 
59
"자네 말도 일리는 있지. 그러나 만일 무지한 민중이라고 해서 주의를 종교화 시킨다면 그 종교가 거짓말인 것이 발견될 때는 그 국민은 어떻게 된다노? 어미 잃은 양새끼처럼 헤맬 거라! 안 그래?"
 
60
하나 대답을 기다리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그대로 말을 잇는다.
 
61
"지금까지의 종교란 쉽게 말해서 모략이었거든. 거짓말로 꾸미고 어리고 싸서 이것이 진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속에 진리가 있다 ─ 이렇게 속이는 거야. 자네가 말하는 종교란 소련이 쓰고 있는 정책 바로 그것이지. 공산주의가 진리다 ─ 이 빨간 상자 속에는 진리가 있다. 행복이 있다. 이 것을 믿으면 반동이 아니고 의심하거나 믿지 않거나 하면 반동이다!"
 
62
"아니, 얘기가 너무 어려워졌어요!"
 
63
하고 경애가 짜증을 낸다.
 
64
"어째 두 분은 쉬운 이야기도 어렵게들 만드셔! 그런 토론은 두구 두구하 시구서, 아까 말씀한 세 가지 원칙이 뭔가나 말씀해주셔!"
 
65
사뭇 응석이다.
 
66
"그만 이야기가 아주 딴데루 새어버렸군."
 
67
하고 재덕이도 열없어한다.
 
68
"한핏줄에 태어난 민족은 같은 운명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시인 하시지?"
 
69
"네. 그건 잘 알아듣겠어요. 그건 알겠으니까 인저 새로 발견하셨던 그 3원 칙 이야기나 하세요."
 
70
"첫짼, 자유지요!"
 
71
"자유라뇨?"
 
72
"각개 국민은 절대로 자유라야 한다고 난 생각합니다.이 자유가 확보 되자면 첫째 남녀의 차별이 없어야지요. 남녀가 동등한 권리로서 정치에 참 섭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각 개인이 자기의 의사를 정치에다 반영시킬 수 있어 야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 의사란 한핏줄에 엉킨 한민족이 같은 운명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그 사람의 개인의사란 말입니다."
 
73
"그럼 오빠, 남녀의 동등 권리란 한계가 어디야요?"
 
74
"한계? 한계가 뭣때문에 필요하냐? 남자도 사람, 여자도 사람, 이 남녀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위아래의 구별이 없다는 말도 아니지. 상·하의 구별은 있지만 윗사람이라고 아랫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질 수는 없단 말이다."
 
75
"아이, 내 참, 뭐 그리 얘기가 자꾸 어려워만 갈까?"
 
76
하고 진숙이가 안타까워하는데 박건이가,
 
77
"여기의 권리란 말을 자기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이렇게 생각 하면 되지요. 사무 잘 보는 남자가 사무 보는 건 그 남자의 권리요, 빨래 잘 하는 여성이 빨래하는 건 그 여자의 권리구 ─ 이렇게 구별은 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똑같다 ─ 이런 말입니다."
 
78
하자 진숙이는,
 
79
"인저 알겠어요. 오빤 자꾸 어렵게만 얘길 해놓으니 점점 더 ─"
 
80
하고 눈을 흘긴다.
 
81
"얘, 네가 언제부터 박 군 설명만 그렇게 잘 알아듣게 됐다니?"
 
82
"아이, 보기 싫어!"
 
83
"그럼 다음 둘짼 뭘까요?"
 
84
하고 경애가 바짝 다가앉는다.
 
85
"둘째는 진리를 찾는 일입니다."
 
86
"진리?"
 
87
"그렇습니다."
 
88
"방법은?"
 
89
"교육이지요."
 
90
하고 재덕이는 대답한다.
 
91
"이 교육은 우리가 종래로 가지고 있던 관념과는 좀 다른 의미의 교육 입니다. 즉, 어떤 특수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교육이 아니라, 전민족이 최소한 도의 균일한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그럼으로 해서만 전 국민은 똑같은 권리를 찾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남성은 열을 아는데 여성은 다섯밖에 모르거나, 갑은 다섯을 아는데 을은 둘밖에 모른다면, 모르는 그만큼은 아무리 이쪽에서 권리를 준대도 찾아먹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의무교육을 국민학교 정도로부터 초급 중학 그것을 다시 대학 ─ 이렇게 올려야지요."
 
92
재덕이는 다시 이렇게 보탠다.
 
93
"다시 말하자면 종래의 개인본위의 교육을 민족 교육으로 재편하자는 것 입니다."
 
94
"그러자면 전국민이 그만한 경제력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95
"물론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경제조직도 개인경제로부터 민족경제로 개편을 하는 것이지요. 누구는 덜퍽 많이 갖고 누구는 한 푼도 없다면 핏줄은 한 핏줄 이 면서도 운명은 달라질 것이란 말야."
 
96
"전민족이 많고 적고가 없게 고루 가진다?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 그 고루 가진다는 원칙과 저 공산주의자들이 고루 갖자는 원칙과는 그럼 어떻게 달라야 할가요?"
 
97
경애의 야무진 질문이다.
 
98
"참 좋은 문제가 나왔는데 ─"
 
99
하고 재덕이는 박건을 쳐다본다.
 
100
"박 군, 좀 설명해주게. 내가 설명을 하면 또 어려워져."
 
101
박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고루 나눈다는 원칙과 우리가 지금부터 고루 가져야 할 원칙을 비교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102
"이를 간단히 요약해 말한다면, 그자들의 고루 나눈다는 원칙은 말만 그렇지 일종의 복수거든. 네놈들은 지금까지 잘살았으니 인저는 우리가 좀 잘살아야 하겠다는 복수란 말야. 한 번 잘살고 한 번 못사는 것이니까 고루 나눈 셈이란 말이지. 그러나 그렇게 하면 같은 민족이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 해서 늘 싸움이 그치지 않는단 말야. 이 비극은 같은 민족 속에 두 계급이 있기 때문이거든. 이 비극을 우리는 이번에도 경험하지 않았나. 같은 청년 운동이니 같은 핏줄인 셈인데 세 청년단이 싸우는 것은 결국 자기만이 잘살겠다는 야심 때문이거든!"
 
103
"거길 좀더 ─"
 
104
하고 진숙이는 몹시 가려운 자리를 손이 모자라서 긁지 못하는 사람처럼 안타까워 한다.
 
105
"거기를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셔요!"
 
106
"권리를 똑같이 갖고자 한다면 자기한테 더 온 권리를 주인을 찾아줄 것인데, 찾아주기는커녕 남의 권리까지 탐을 내니까, 자연 남을 모략도 하고 중상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공산당의 모략과 중상도 이 때문입니다. 모략과 중상을 해도 안 되니까 그때는 상대방을 죽이고서라도 자기 욕심 ─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네가 잘살았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또는 우리가 좀 잘살아야 하겠다 ─ 말하자면 행복을 번갈아 갖자는 심사에서 사람도 죽이게 되고 관공서를 불사르게도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고루 나누어 살자는 원칙입니다. 하고 박건은 계속했다.
 
107
"그러나 우리가 고루고루 나누어 살자는 것은 과거에야 누가 더 잘살 고누가 더 못살았든지간에, 우리는 한핏줄이요 한운명을 타고났으니 이제부터는 고루고루 나누어 서로 아끼고 서로 도와가며 살자는 것입니다. 고루 고루 나눈다는 말은 같으나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이런 차이가 있는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아시겠어요?"
 
108
"네 ─"
 
109
하고 대답하는 진숙이를 꼬집듯이 경 애가,
 
110
"어느 분 설명이신데 못 알아들으실라구 ─"
 
111
하고 새새득거린다. 진숙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112
"그렇기 때문에 ─"
 
113
박건은 진숙이의 난처해하는 양이 딱한 듯이 얼른 뒷말을 이어서,
 
114
"그렇기 때문에 혁명을 하는 방법도 놈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지금의 이사회 제도를 고치자는 것은 ─ 다시 말하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원리는 놈들이나 우리나 다 똑같습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무기로써 몰아쳐서 남을 거꾸러뜨리고 자기네가 그 자리에 앉으려 듭니다. 소위 무력혁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을 일으키되 지금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계급을 쳐 거꾸러뜨리고 대신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자는 혁명이 아니라, 우리 3천만은 한 핏줄이니 운명도 같다는 것을 교육으로써 깨우치게 하여, 우리는 권리와 의무를 똑같이 고루고루 나누어, 아무도 더 갖고 덜 갖는 사람이 없도록 혁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놈들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교육 방침도 다르지요. 그들은 민중을 무지로 만들고서 오직 공산주의 하나만을 가르쳐, 공산당을 위해서 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지만, 우리는 되도록은 민중이 공산주의 이외의 것도 많이 알고 많이 가르쳐서 국민 자신이 깨우치게 하자는 것입니다."
 
115
"그렇지, 거기야!"
 
116
하고 재덕이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117
"접때 내가 하자던 말도 거기야. 그걸 진숙이가 오해를 해서 이야기가 길어졌었지. 놈들의 교육은 우리 계급이 저 계급의 자리를 뺏어야 한다는 교육이요,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 할 교육은 한핏줄에 한운명을 타고난 같은 민족 끼리 계급이란 패를 지어서 싸울 수는 없다, 우리는 둘이나 셋이 될 것이 아니라, 우리한테는 오직 한 계급 ─ 한핏줄에 한운명을 타고난 계급, 즉 '민족’이라는 오직 한 개의 계급이 있을 뿐이다, 이렇거든. 이 오직한 개밖에 없는 계급이 누구하구 싸우냐 말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계급이 남의 계급을 거꾸러뜨리고서 이번에는 우리 계급이 판을 치자는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에 자꾸 저 계급이 우리 원수다, 죽여야 한다, 파괴 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이렇듯 패를 짓자니까 너는 서북판데 저 놈은 영남파다 하고 패 만드는 교육을 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수십 수백의 당파가 생기고 어디 파 어디 파 하는 지방당파가 생기지요. 모든 모략 중상은 여기서 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118
그들이 이렇게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다. 경애는 문득 밖에서 무슨 인기척이 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119
"누가 왔나?"
 
120
하고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121
"이 밤중에 올 사람이 누가 있어."
 
122
하면서도 재덕이는 귀를 기울여본다.
 
123
잠잠하다.
 
124
"자, 우리 오늘은 이만큼 할까. 내일은 오전 과업을 그만두구서 아침부터 고 구 말 싹 처치해버리도록 하지."
 
125
"아니야요, 역시 과업은 과업대루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어요."
 
126
하고 경애가 반대를 했다.
 
127
그때다. 또 인기척이 났다.
 
128
"아니, 정말 누가 왔나보아?"
 
129
이번에는 진숙이의 귀가 쫑긋해진다.
 
130
"오긴 누가?"
 
131
그러면서 불안이 온 방안 사람의 얼굴에 확 퍼진다.
 
132
모두가 한 번 놀란 가슴들이기도 했다.
 
133
그러자 정말 문을 똑똑 뚜드리는 소리가 난다.
 
134
"누굴까, 이 밤중에? 거 누구요?"
 
135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활딱 열어젖힌 문으로 한 사나이가 날듯이 뛰어들어오면서,
 
136
"쉬 ─"
 
137
하고 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는다.
 
138
좌중은 돌에 놀란 고기떼처럼, 이 창졸간에 방으로 뛰어든 사나이를 피해서 쫙 사방으로 갈라졌다. 겁도 겁이었거니와 이 뛰어든 사나이의 모습에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던 것이다.
 
139
─ 그것은 송종호였다.
【원문】젊은 사람들 (18)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4
- 전체 순위 : 683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0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5)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0) 탁류(濁流)
• (20) 어머니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젊은 사람들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195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8권 다음 한글 
◈ 젊은 사람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