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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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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1
 
 
3
그러나 갈피를 못 잡는 것은 재덕이뿐이 아니었다. 해방 이 년을 맞아 착착 건설기에 들어가 있어야 할 정치도 의연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 하고있었다.
 
4
미군정이 유일한 희망으로 만든 '민주입법의원’도 처음 계획만 컸지 아무런 실력도 갖고 있지 못했고, 또 일정한 주견도 없었다.
 
5
정치도 방향 없는 모색만 하느라고 겨울을 보냈다.
 
6
이렇듯 진통기에 들어 있는 불행한 민족에게도 또 새 봄은 찾아왔다.
 
7
그러나 이 희망의 봄도 오직 계절만의 봄이었다. 잘리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반동강이 난 몸뚱이를 안고 아파서 아파서 못견디어하는 민족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는 봄은 역시 아니었다.
 
8
과시 겨울 동안 앙상하니 대궁만 남아 있던 나무에는 싹이 트고 잎이 붙고 꽃이 피었다. 희고 파랗고 붉고 노란 갖은 새들도 이 계절의 봄을 마음껏 노래 해주고 있다.
 
9
그러나 반이 동강난 국토가 이어질 희망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자신들도 모르게 좌다 우다 하여 편이 갈라진 민족과 민족끼리의 싸움은 까닭도 모르고 날로날로 더 격해갈 뿐이다.
 
10
"어떻게 되는 겐고, 우리 나라는?"
 
11
그러나 아무도 이에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12
"우리 민족은 어떻게 된다지?"
 
13
여기에 대답해줄 사람도 없었다.
 
14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형상이었다. 굽이쳐 흐르는 탁류 속의 민중들을 놓고 제각기 건지겠다고 나섰다는 사람들이란, 모두가 실력도 없고 일정한 주장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건졌다는 치하를 받아서 자기말을 잘 듣는 ─ 자기를 내세워주는 백성이 될까 하는 생각에만 눈이 어두웠었다.
 
15
"나를 잡아라!"
 
16
"내 손을 잡아라!"
 
17
"나를 따라라!"
 
18
"내가 정말 너희들의 지도자다!"
 
19
"내 손을 잡아야 산다!"
 
20
너도나도 하고 제각기 손을 내어미나 민중들은 정말 어떤 손을 잡아야 할지를 몰랐다 ─ 그럴밖에, 해방이 되기가 무섭게 제각기 내붙인 육백 몇 개라는 정당과 단체 간판은 많이 줄기는 했었지만 의연히 수백 개로 헤아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21
이러한 정치면의 혼란은 그대로 청년운동에 반영이 되었다.
 
22
근본이 같고 목표가 같으면서도 서울 안에서는 여러 개의 청년운동 단체가 생겼다. 어떤 것은 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였고 또 어떤 단체는 정당을 배경으로 뭉쳤다. 이보다도 더 재미없는 현상은 지역별, 지방별로 청년 단체간 판이 생긴 것이다.
 
23
이토록 많은 청년단이 서로 단원을 모집하느라고 갖은 추태가 벌어지 기도 했다. 어쩌다 보면 한 사람이 두세 개의 청년단에 적을 두게 된다.
 
24
그렇다고 이들 청년운동 단체를 위해서 어떤 일정한 운영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수십 명씩 사무를 보나 일전 한푼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은 없다. 여기서 자연 무리가 생긴다. 자진 기부가 강제가 되고 협박이 되고, 질이 나쁜 단원들은 성스러운 청년단체 간판을 팔아서 그날 그날의 용돈을 뜯어 쓰는 것으로 일을 삼는 슬픈 현상이었다.
 
25
중앙이 이러했으니 조그만 읍이야 더 말할 것 없다.
 
26
재덕이네가 사는 읍내만 해도 그렇다.
 
27
손바닥만한 읍 안에 큰 청년단이 세 개나 서로 버티고 있다.
 
28
목적을 물으면 셋이 똑같다.
 
29
"민족 통일이다!"
 
30
"통일 완수다!"
 
31
"공산주의 타도다!"
 
32
방법을 물어도 다 같다.
 
33
"민주주의 실천으로!"
 
34
"민족정신 침투다!"
 
35
"생산 확충이다!"
 
36
작년 10월폭동이 나기 전까지는 좌익 계통의 청년단과의 싸움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지하로 들어가고 남은 것은 오직 같은 민주 계통의 청년 단 뿐이었으니, 지부장이나 지단장의 성명이 다를 뿐이었다.
 
37
"근본 정신이 같고 주장이 같고 정책이 같다면 셋, 넷으로 나누어져서 싸울 필요가 어디 있나?"
 
38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단장과 단원은 어느 단을 막론하고 하나도 없었다.
 
39
그들이 할 줄 아는 대답은 오직 다음의 한마디가 있을 뿐이다.
 
40
"그 자식들은 데데해서 ─ 원."
 
41
그야말로 데데한 대답이다.
 
42
이렇듯 일정한 주견이 없는 단체들인지라, 실로 싸우는 방법도 졸렬했다.
 
43
집 한 채를 놓고서 세 청년단체가, 섣달 그믐께부터 시작한 싸움을 이듬해 일 년을 두고 대가리가 터지게 싸워댄 것이다.
 
44
그 문제의 집이란 금융조합 뒤에 있는 양말공장이다. 이 공장은 작년 10월 폭동 때에도 온전히 남았었다. 이보다도 훨씬 작은 상점까지도 그대로 두지 않았는데, 이만한 공장을 놈들이 손도 까딱 않았다는 것은 좀 우습다 하여 뒤를 파본 결과, 놈들이 그 집에서 숙식을 했다는 것이다.
 
45
"그런 놈의 집은 뺏어야지!"
 
46
"암, 그냥 둬서 되나."
 
47
맨 처음에 이렇게 발견한 것은 ㄷ청년단이었다. 그래서 그날로 양말 공 장주인을 잡아다가 족쳤다. 이쪽은 놈들하고 통했다느니, 주인은 아니 라거니, 내 라거니 못 낸다거니 이렇게 승강이를 하는 동안에 ㅁ청년단에서는 그 집이 적산인 것을 알고서 적산 관재처 주임과 교섭을 진행시켜 승낙을 받고말았다.
 
48
ㅁ청년단에서 이 불법적인 교섭을 그렇게 쉽게 성공시킨 데는 이 청년 단 의지 단장이 바로 관재처 주임과 동서간이었기 때문이다.
 
49
그러나 이 두 청년단이 서로 다투는 동안에 ㅅ청년단에서는 경찰서장을 잡고 늘어져 내락을 받고는 바로 그 길로 청주에 있는 관재처 지청에 교섭을 했다. 경찰서장의 추천서가 즉시에 효과를 발생한 것이다.
 
50
이쯤 되고 보니 집은 한 개인데 주인이 넷이 된 셈이었다.
 
51
정말 주인은 말도 못하고 쫓겨나갔을 뿐만 아니라, 없는 혐의를 쓰고 봄내 유치장에서 고생을 했던 것이다.
 
52
집 한 채를 놓고 세 단체가 서로 모략 중상이 시작되었다. 잽싸게 먼저 들었던 ㄷ청년단은 ㅁ청년단한테 쫓겨났었고 ㅁ청년단은 두 달도 못 가서 이번에는 ㅅ청년단이 몰아내고 들었다.
 
53
"서장놈이 개자식야. 그 자식이 고향이 평북이거든!"
 
54
단체 대 단체의 중상은 개인의 중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55
"ㅅ청년단에선 김가만 꺾어노면 맥 못 쓴다. 그 김가가 서장과 한 고향이 거든."
 
56
"한고향뿐이야, 뭐 된다더라."
 
57
"그래, 나두 그런 소릴 들었어. 그 자식 한 번 술이 잔뜩 취 해가지고는 서장이 자기 앞에 와서 일을 해달라구 두 번이나 사람을 보냈더라나. 그래, 영등포서 큰 공장 총무과장으로 있다가 내놓구서 이리 왔다구 뽐내더라."
 
58
"그 자식 언제 월남해 왔다누? 빨갱이 아닌가?"
 
59
"글쎄!"
 
60
"빨갱이야 빨갱이. 뒤루 한 번 철저히 조사해봐요. 집어넣어 버리지 뭐. 뭐라구? 여기 서장이 어째? 아, 경찰국에서 와서 잡아가는데 서장이 제가 어쩐 단 말야."
 
61
"아, 그렇구나. 네 매부한테?"
 
62
"암!"
 
63
"됐다! 옭아치워!"
 
64
그러나 이런 모략은 그래도 '공’을 위한 모략이다. 일정한 지도 방침이 없고 일정한 정책이 없고, 또 일정한 주장이 없고 보니 자연 할일이 없었다. 3·1기념이 끝나고 나니 이제는 메이데이 준비밖에 없는데, 작년 폭동 이후로 빨갱이들이 모두 흩어진 뒤로는 싸울 만한 상대도 없어졌다.
 
65
자연 모여앉았으니 잡담밖에 할 것이 없다.
 
66
그러나 날마다 진종일 같이 뒹구는 사람들이니 늘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
 
67
"출출한데 ─"
 
68
"누가 아니래. 걸찍한 막걸리에다 너비아니나 한 점 해서 꿀꺽꿀꺽 ─ 어때 맛이?"
 
69
방구가 잦으면 기어코 탈을 내고야 만다.
 
70
"누가 돈 없나?"
 
71
"있을 게 뭐야."
 
72
"어디 꿀 데 없을까? 춘성네 가볼까?"
 
73
"말 말아, 접때 것 안 준다구 길에서두 보면 쨍알대는 것두."
 
74
"더러운 년. 누가 가모 없나? 가만 있자. 옳지 옳지. 저 양복집 쥔 녀석 말야. 그 자식 오늘 나왔다더라. 불러 불러."
 
75
"무사히 나왔다는걸."
 
76
"아니 글쎄, 불러오기만 해. 봇장만 울리면 나오지 안 나올게 있나! 내 수단만 보지."
 
77
이렇게 해서 우 막걸리집으로 몰려간다.
 
78
그러나 그 해 봄 뜻하지 않은 청년단 안을 빌려서 재덕은 청년운동의 재건을 위해서 발벗고 나서기로 했다.
 
79
이렇듯 부패해가는 청년단체 내부 이야기를 재덕이한테 와서 들려준 것은, 일찍이 그가 데리고 있던 부하 단원이었다. 지나치게 양심적이요 바른말을잘 해서 '정의파’라고 부르던 청년이었다. 고려대학에 다니다가 작년 폭동으로 전재산이 없어진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는 동안에 그를 도와서 선전 부일을 보았었다.
 
80
"그렇게까지들 부패했나?"
 
81
재덕은 정말 뜻밖이었다.
 
82
"다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뭐 안 그렇다고 해야 할 사람을 헤 이기 가더 쉬울 겁니다. 우 모여앉아서 남의 청년단 욕 아니면 개인 욕, 그렇잖으면 술, 계집 이야기뿐이지요. 누구 하나 책이라도 보아서 지식을 넓힌다 든가,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도와줄 생각을 한다든가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아요. 부장님은 요새 잘 안 나오셨으니까 모르시겠지만 근로의 정신 이통 없습니다. 회관 밖은 그만두구서두, 이십여 명이 들끓으면서 사무실 한번 자진해서 쓸려 드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연 무슨 일을 좀 해보려는 사람은 조롱만 받게 돼요."
 
83
"……"
 
84
무엇이라고 이 청년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담배만 뻑뻑 빨고 있으려 니까, 문득 지난 겨울 생각이 난다.
 
85
지난 겨울 거의 그믐께다. 며칠 전에 박건이가 '청년운동 지도자 특별 강좌’ 가 있어서 서울로 가서 있는 터라, 청년교육에 필요한 서적을 구 하도록 편지를 쓰는데, 오늘처럼 단원 하나가 왔었다. 단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하다가 돌아가서는 재덕이가 무슨 편지를 쓰다가 황당해서 감추더라는 말을퍼 뜨려 송종호 이야기가 끌려나오고 박건까지가 말썽이 되었었다.
 
86
'이 녀석도 그런 녀석이 아닌가?’
 
87
이런 생각에 청년을 새삼스러이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으려니까,
 
88
"기실은 오늘 부장님께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89
한다.
 
90
"청?"
 
91
"무슨? 말하지. 내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고말구. 뭔데?"
 
92
"다른 게 아니라요 ─"박 청년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어놓으며 보라는 것이다.
 
93
재덕이가 무심코 받아 펴보니, 그것은 청년학교 설립 계획서였다.
 
94
계획이 실로 치밀하다. 취지서도 앞뒤가 꽉 짜인 명문이었다. 학과로 선택한 과목도 청년들 교육에 있어서 빼어서는 안 될 과목만 쭉 뽑았다.
 
95
"이 계획을 박 군이 세웠나?"
 
96
재덕이는 겨우내의 우울이 한결 풀리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97
"아닙니다."
 
98
"그럼?"
 
99
"제 친구하구 같이 세웠습니다."
 
100
"누군데?"
 
101
"조직부에서 일하는 유달성 군입니다."
 
102
"아, 그 육군 출신! 좋소!"
 
103
하고 재덕은 무릎을 탁 치듯이 했다.
 
104
"매우 좋은 계획이오! 그래, 계획은 좋은데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을 해보려구?"
 
105
"이렇습니다. 제 계획은 주학으로 해볼까 했습니다. 그랬더니 유 군 말이, 주학에는 직업 있는 사람두 있구 해서 곤란할 게니 야학으로 해보자구 그럽 디다. 그러나 제 생각엔 지금들 직업을 가졌댔자 대단한 직업들두 아니구 하니까, 역시 주학으로 해봤으면 해요. 낮에 내버려두니까 역시 모두들 마음이 흩어지는 것 같구."
 
106
"그럼 여기 실습이란 건 뭐지?"
 
107
"제 집에 한 천 평짜리 밭이 하나 있습니다. 토질은 좋지 않으나 거름만 푹 지르구 가꾸기만 잘한다면 채소는 되지 않을까 해서요. 부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청년단에 무슨 비용이 있습니까? 비용이 없으니까, 백원짜리 비누를 사다가 삼백원씩이나 매겨서 단원들이 팔러 다닙니다. 전 뭣보다도 청년 단에서 그런 일 시키는 것이 젤 싫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단에서 내 맡기는 건 필요가 있든 없든 모두 저의 집에서 사구 말았어요. 그래, 이런 채소 밭이라도 우리 손으로 가꾸고 종이쯤 사 쓸 비용은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
 
108
"참 좋은 계획이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지!"
 
109
재덕은 극구 칭찬을 했다. 나이로는 불과 6, 7세 차이였지만 어린 애들한테 빰 맞은 때처럼 무색했다.
 
110
"이게 그 수지 예산표입니다. 대충 뽑아보니까 일체 비용을 빼구서도 평당 2백원은 나와요. 2십만원이면 종이는 사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111
재덕은 또 그 수지 예산표를 받아서 검토해보았다. 비료대와 잡비로 각 5만원 씩이 지출되어 있고, 평당 수입도 현 시가보다는 훨씬 적게 잡았다.
 
112
"찬성해주시겠습니까?"
 
113
"찬성뿐이겠소. 적극적으로 돕겠소. 뭐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114
"우선 시간만 맡아주신다면 다른 건 차차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115
"좋소, 좋아!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맡지!"
 
116
그날 저녁 재덕은 실로 오래간만에 떠들어 마침 저녁때도 되었고 어찌도 기쁘던지, 막걸리를 사 오래서 청년과 같이 나누었다.
 
117
진숙이와 경애도 그 자리에 끌려나왔다.
 
118
"그런데 뭔가… 박 군, 그 동기를 좀 듣세나. 무슨 동기로 이런 계획을 세울 생각이 났었노? 아, 나이 어린 사람이 엉뚱하게도?"
 
119
재덕은 이런 농담까지 했다.
 
120
"어리진 않습니다. 저두, 이래봬두 스물셋입니다."
 
121
박 군은 농도 제법 받아넘길 줄 안다.
 
122
"동기랄 건 없지만 ─"
 
123
하고 여자들이 둘이나 앉아 있어 그런지 몹시 주눅이 들어보이는 말투다.
 
124
"동기랄 건 없지만, 전 어려서부터 박사 할아버지의 숭배자였습니다. 제가 박사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기는 ─"
 
125
"박사 할아버지라께?"
 
126
진숙이는 차마 박도진이한테 묻지를 못하고 재덕이를 쳐다본다.
 
127
"글쎄, 누구 얘기지?"
 
128
"저 이승만 박사 할아버지 말씀입니다."
 
129
"아, 난 박사 할아버지라기에 댁에 그런 할아버지가 계신가 했어요."
 
130
하고 진숙이가 웃는다.
 
131
"아닙니다. 제가 그 할아버지 손자라면 한번 뻐기게요."
 
132
하고 박도 웃으며,
 
133
"그 박사 할아버지 말씀을 듣긴 일곱 살 때부터예요. 저의 아버지께서 늘 할아버지 말씀을 하시면서, 생전에 한번 고국에두 못 와보시구 돌아가신다구 한탄을 하셨어요. 그러시더니 박사 할아버진 오셨는데 아버지는 먼저 가셨군요."
 
134
"아, 그럼 안 계셨던가?"
 
135
"네, 그래, 해방이 되자 전 언제 박사가 돌아오시나 하구 친할 아버지처럼 기둘렀어요. 그랬더니 시월 십육일이 돼서야 돌아오시겠지요. 그때 전 국민이 박사께서 인민공화국에 대통령으로 가시나 안 가시나 하구 공론이 많았는데, 돌아오시는 길로, 아, 대통령 자리를 턱 내물리시잖아요? 그때 어린 생각 에두 어떻게 좋든지, 집에서 막 뛰었었습니다. 그러구는 돌아오셔서 하시는 첫 말씀이, 우리는 대통령이구 대신이구 할 때가 아니라, 민족이 먼저한 덩어리로 뭉칠 때이다. 뭉친 후에야 나라도 설 수 있고, 나라가 서야 대통령도 있구 도지사도 있지 않겠느냐 ─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정말 요 새 문자로 질렸었습니다. 과시 우리 박사 할아버진 위대한 어른이시라구 탄복을 했었어요. 뭐 질린 건 나뿐이 아니었을 겝니다. 그때 인민공화국을 만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어떻게 이런 판에 감투나 하나 얻어 써 보겠다구 날뛰던 사람들은 다 그 한 말씀에 질렸을 겝니다."
 
136
"그건 참 그랬어요."
 
137
하고 경애도 참견을 한다.
 
138
"그때 전 일본서 나오던 길인데 기차 속에서 웬 사람이 신문을 들구는 ' 얏 빠시 에라이 히도니와 에라이도꽁아 아루까라 노, 다이또룡아 이야 닷 다 까라네! 다이시다 몬야!’ 이러겠죠, 그래, 뭔 소린가 하구 넘겨다봤더니 '이승만 씨 대통령 취임을 일언지하에 거절’ 이런 제목이 붙구 사진까지 났더군요. 전 이승만 박사란 어른이 계시단 소리두 그날서야 첨 들었어."
 
139
하고 제라서 자지러진다.
 
140
"그래, 어떡하였어요?"
 
141
진숙이가 독촉을 했다.
 
142
"저 옛날 얘기 듣는 것 같지?"
 
143
"그래서 난 어머니보구서 그랬어요. 이 어른이 이제 우리 나라 대통령이 되시구 말게니 보라구. 그래, 그날부터 난 박사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란 말씀은 오늘날까지 단 한 번두 안 빼놓구 신문에서 오려 붙여 왔습니다. 그것이 지금 큰 스크랩으루 둘이야요. 미국 가셔서 하신 연설이며 어쨌든 신문에 난 할아버지 기사는 모조리 오렸으니까요."
 
144
"그래서?"
 
145
이번에는 재덕이가 재촉을 한다. 부쩍 흥미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146
"그래, 하루는 박사 할아버지가 우리 국민들한테 하신 말씀을 따로 추려 봤지요. 정치, 경제, 문화, 외교 ─ 이렇게 각 부문으루 나누어노니까 이상한 결론이 나왔어요."
 
147
"어떻게?"
 
148
재덕은 이제 흥미 정도가 아닌 눈치다. 피우던 담배를 상 귀퉁이에다 쓱쓱 비비고는 바짝 다가앉는다.
 
149
"간단히 말씀하면 ─"
 
150
하고 박도진도 선배가 자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데 만족을 느끼며,
 
151
"대내적으로는 한말로 하면 우리는 한핏줄에 엉킨 단일민족이니까, 한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러니까 무조건하고 뭉치구 보자, 이것이었구, 대 외적으로는 화목하자 ─ 이것이었어요. 그리구 국민의 태도를 말씀한 것을 모 아보니까 그저 한마디예요. 일하자! 노동자들이 8시간제도를 주장하구 파업을 한 데 대한 말씀이었는데, 남들은 8시간 일을 해도 되지만 우리는 열 시간 열두 시간 일을 해도 안 될 처지니, 그런 말 말고 이 황폐한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하자 ─ 결국은 이 한 말씀이더군요."
 
152
"그러면 결국… "
 
153
하고 재덕이가 손을 꼽으니까, 진숙이가 잽싸게,
 
154
"한 핏줄, 한운명이니까 뭉쳐야 산다."
 
155
"또?"
 
156
"남보다두 더 많이 일해야 산다."
 
157
"또?"
 
158
"그만이지 뭐야, 오빤."
 
159
"이 단 두 마디뿐인가?"
 
160
"그래요."
 
161
하고 박도진이가 대답했다.
 
162
"그렇게 커다란 스크랩에서 추리고 나니까, 결국은 이 두 말씀 뿐이었어요. 나중에 보여달라시면 보여드리겠지만, 그 스크랩에두 그런 게 있어요. 처음 박사 할아버지가 환국해 들어오셔가지구 첫 말씀이 '뭉쳐라’ 하셨는데, 이 말씀을 가지구 각계에서 찧구까불구 한 기사까지 다 있지요. 거기 그런 말이 있는데 ─ 하긴 저두 첨엔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모두들 말이 덮어놓고 어떻게 뭉치느냐 ─ 이런 의견이 전부였어요. 저두 덮어놓고 그렇게 뭉쳐지나 ─ 하구 의아하게 생각했댔는데, 지금까지 쓰신 글이나 하신 말씀을 다 추려노니까 덮어놓구 뭉칠 수밖엔 없다 싶어요. 왜냐하면, 한 핏줄, 한 운명인데 여기에 다른 이론이 붙을 턱이 있어야죠. 이유 여하를 불문 하구서 한핏줄 한운명인데 합치지 않을 수 있나요. 세상없이 위대하구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두 한핏줄이 같은 운명을 지닌다는 진리를 깨뜨릴 사람이 있겠어요? 그래서 저 혼자 생각엔 이 '뭉치자’ '일하자’ 두 가지만 실천하면 우리 민족은 산다 ─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것을 한 번 실천 해보자구 이번 계획두 세워본 거구요!"
 
163
박도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164
"박사 할아버지 한 번 만나뵈면 좋겠다."
 
165
어린애처럼 눈을 대글거리는 것이었다.
 
166
─ 이 박 청년의 계획은 겨우내 침통하던 재덕이의 기분을 홱 전환 시켜주었다.
 
167
성공하고 실패하고는 둘째였다. 계획하는 즐거움, 생각할 대상이 생긴 것만으로도 재덕이는 그지없이 즐거울 수 있었다.
 
168
"그렇다! 뭉치는 정신 ─ 일하는 정신, 이 두 가지만 가지면 우리는 살수 있다! 뭉쳐도 일을 않으면 뭉친 보람이 없고 아무리 일을 부지런히 해도 뭉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169
어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찾아 헤맨 자기가 새삼스러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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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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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사람들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195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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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