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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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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白頭山) # 백두산 천지
【역사】
(2019.12.19. 18:57) 
◈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봉우리 명칭은 누가 지었나
[스카이데일리 연재] 1776년 서명응이 지은 백두산…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민족신앙지’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봉우리 명칭은 누가 지었나
1776년 서명응이 지은 백두산…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민족신앙지’
 
 
백두산의 천지에 오른 나는 황중봉(장군봉,병사봉)을 비롯한 망천후, 마천우 등 12봉의 굳센 기상과 넓고 맑은 천지의 물을 보고 마시니 속세의 모든 잡념을 일시에 잊어버렸다. 과연 이곳이 우리 민족의 성산이며 우리 민족 문화의 시원지임을 깨달았다. 나는 백두산 천지에서 느낀 감흥을 “천지에서”라는 제목의 시조를 지어 ‘시조생활’지 발표했다.
 
꿈에 그리던 천지에 올라 감격의 순간을 만끽한 우리 일행은 맑고 맑던 천지의 푸른 물빛이 짙푸른 감색으로 변하는 것을 달문(闥門)의 바위 위에서 지켜보았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자 햇볕이 차일봉에 가려 만들어 내는 장관이었다. 물 빛깔이 짙푸른 색이 아닌 오히려 검은 색에 가깝다.
 
그런데 백두산의 주변 12봉의 명칭은 1776년 조 엄과 함께 등정한 서명응이 지었다. 서명응은 백두산 등산 도중에 ‘삼지연’의 세 섬의 명칭도 자신이 지었다고 자신의 문집인 ‘보만재집’의 ‘유백두산기’에서 밝혔다. 서명응이 화원에게 그리게 한 ‘천지지도’와 ‘백두산등행도’는 자신의 문집에 딸린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수원에 거주하던 이종학씨의 서재에서 필자도 ‘백두산등행도’를 처음 보았다. 이걸 필자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다.
 
서명응은 지남침의 12지간(十二支干)의 위치에 따라 백두산의 형세, 천문, 주역 등을 참조해 12봉의 명칭을 지었다. 천지를 대일택(大一澤)이라 명명하고, 동남의 세봉우리를 ‘정황석산’이라 짓고 가장 빼어난 봉우리를 ‘황중봉(黃中峰)이라 했다.
 
북쪽(子)에서 시작한 12봉의 이름은 현명봉, 오갈봉, 대각봉, 청양봉, 포덕봉, 예악봉, 주명봉, 황종봉, 실침봉, 총장봉, 신창봉, 일성봉(북서쪽, 亥)으로 끝난다. 이렇게 보면 백두산은 12봉이 아닌 14봉이 되며, 현재 봉우리명과 비교해보면 황중봉은 장군봉, 장황석산은 삼기봉, 현명봉은 천문봉, 오갈봉은 자하봉, 대각봉은 자암봉, 청양봉은 쌍무지개봉, 포덕봉은 망천후, 예악봉은 해발봉, 주명봉은 제비봉, 황종봉은 와호봉, 실침봉은 낙원봉, 총장봉은 청석봉, 신창봉은 백운봉, 일성봉은 녹명봉에 해당한다
 
천지의 명칭은 이미 1751년 영조 때의 이의철의 『와유록』과, 정조 때의 성해응의 『연경재전집』에서 언급했다. 그러나 천지와 주변 봉우리 명칭의 중국 기록은 1908년 유건봉의 『장백산강강지략』에 근거했다. 따라서 우리는 천지의 명칭은 그대로 두고 백두산 주변 봉우리 명칭은 당연히 서명응의 명칭으로 부르는 것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다.
 
천지(天池)의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달문(闥門)에는 팔각형의 종덕사(宗德寺)가 세웠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1906년에 대종교에서 세웠다는 설, 1928년 최시현 건립설, 조선 중기 신경준(1712-1782)의 고지도에 종덕사가 표기 된 것으로 봐서 이미 오래 전에 세웠다는 설이 있다. 최근 북한의 잡지 ‘조선’ 화보에 옛 종덕사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3중 8각 형식으로 99칸의 방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종덕사의 건립 배경으로 “일제침략으로 민족의 생존이 우려되자 백두산 천지에 종덕사를 건립하여 천출위인이 출현해줄 것을 기도 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 천지에 하늘의 옥황상제의 정기가 깃들어 있다고 믿은 것으로 보이며, 오래 전부터 신당을 만들어 놓고 심신을 수도(修道)하면서 더불어 나라의 융성함을 기원하면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일 뿐만 아니라 ‘민족신앙지’였음을 알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애국투사들과 의병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특히 일본 정규군을 괴멸시킨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는 청사에 길이 빛나는 전투였다.
 
천지는 칼데라호로서 대택(大澤), 용왕담, 용궁지, 달문지 등 무수한 별칭을 가진 천상의 호수이며,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무수한 고구려의 높은 산성에는 샘물이 솟는 못을 어김없이 천지(天池)라 이름을 지은 것도 이곳 백두산의 신성스러운 천지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천지는 1962년 조중변계조약에 의거 북한(54.5%)과 중국(45.5%)이 양분되었지만 실제로 전체 백두산 지역의 3분의 2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 조약은 40여년이 지나도록 공개하지 않았던 밀약이다. 이 때 이들이 맺은 국경선은 간도영유권 분쟁의 기원이 되는 백두산석비의 토문강을 무시하고 압록강-천지-홍토수-두만강으로 이어진다.
 
이 조약에 대해 중국의 6.25 참전대가설, 중국의 양보설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비밀조약으로 한 것은 중국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밀약이 국내외에 알려진다면 한국의 거센 반발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옛 간도지역인 이 지역이 국제적 영토분쟁지역화로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여튼 조중변계조약은 통일한국 이후 간도영유권 분쟁의 해결에 혹이 하나 더 붙은 격이 되어 버렸으니 김일성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두 번째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이다. 차일봉의 그림자가 검게 물든 천지를 바라보며 다섯 시가 조금 넘어 하산을 서둘었다. 달문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기 시작한 일행은 나름대로 흐르는 냇가 주위를 관찰하면서 걸었다.
 
오백 미터 정도 완만하게 흐르는 이 물을 우리 선조들은 승사하(乘槎河)라 불렸다. 이 물이 흘러 68미터의 백두폭포(비룡폭포)를 만든다. 그런데 바위 틈새의 흐르는 물속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수중 생물이나 피라미 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너무나 깨끗한 천지 물이라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점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른바 속세에도 너무나 청렴(淸廉)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비유를 “물이 깨끗하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평범한 진리를 이곳 천지에서 다시 실감했다. 지금 천지에 사는 산천어는 북한이 실험용으로 60년대에 산천어 치어를 방사한 이후 나타난 결과이다.
 
이젠 제법 해가 서쪽 봉우리에 지고 동쪽 봉우리 윗부분만 노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7시 가까이 되어 산장에 도착하니 다른 일행들도 늦게 지프차를 타고 백두산 위에 올라 낙조를 보았다고 했다. 도로 공사 중이라 늦게나마 허락이 된 모양이다. 저들이 부르는 ‘장백산 산장’은 초대소 수준이다. 목재와 혼합된 한옥과 양옥 건물로 지은 지 오래된 탓으로 누추한 감이 들었다. 당시에는 백두산에서 제일 나은 숙소로 보였다. 두 해 뒤 백두산에 다시 갔는데 보니 이 초대소도 헐린 것으로 보였으며 새로 신축한 호텔들의 모습이 띄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식사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이른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잠은 오지 않고 깊은 산 속 적막감만 몰려왔다. 다만 저녁 식사 때 대접받은 들쭉술의 맛이 기억에 남았다. 맛은 포도주 맛이었다. 그후 여러 번 백두산에 왔지만 이 들쭉술의 맛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백두산(白頭山) # 백두산 천지
【역사】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백두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며…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기원
•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봉우리 명칭은 누가 지었나
• 우리 민족의 성산…백두산의 천지를 오르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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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