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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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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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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20:44) 
◈ 은본기 33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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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紂愈淫亂不止。 微子數諫不聽, 乃與大師、少師謀, 遂去。 比干曰 : “爲人臣者, 不得不以死爭。” 迺强諫紂。 紂怒曰 : “吾聞聖人心有七竅。” 剖比干, 觀其心。 箕子懼, 乃詳狂爲奴, 紂又囚之。 殷之大師、少師乃持其祭樂器奔周。 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 紂亦發兵距之牧野。 甲子日, 紂兵敗。 紂走入, 登鹿臺, 衣其寶玉衣, 赴火而死。 周武王遂斬紂頭, 縣之大白旗。 殺妲己。 釋箕子之囚, 封比干之墓, 表商容之閭。 封紂子武庚祿父, 以續殷祀, 令修行盤庚之政。 殷民大說。 於是周武王爲天子。 其後世貶帝號, 號爲王。 而封殷後爲諸侯, 屬周。
 
 

2. (음역)

주유음란부지。 미자삭간불청, 내여대사、소사모, 수거。 비간왈 : “위인신자, 부득불이사쟁。” 내강간주。 주노왈 : “오문성인심유칠규。” 부비간, 관기심。 기자구, 내상광위노, 주우수지。 은지대사、소사내지기제악기분주。 주무왕어시수솔제후벌주。 주역발병거지목야。 갑자일, 주병패。 주주입, 등녹대, 의기보옥의, 부화이사。 주무왕수참주두, 현지대백기。 살달기。 석기자지수, 봉비간지묘, 표상용지여。 봉주자무경녹부, 이속은사, 영수행반경지정。 은민대열。 어시주무왕위천자。 기후세폄제호, 호위왕。 이봉은후위제후, 속주。
 
 

3. (주석)

1. 주(紂) - 3-029-주석5 참고.
 
2. 유(愈) - 더욱.
 
3. 미자(微子) - 3-029-주석2 참고.
 
4. 삭(數) - 자주, 여러 번.
 
5. 대사(大師) - 태사(太師)를 가리키며, 3공(三公)중의 하나이다. 주(紂)의 재위시기의 대사는 이름이 자(疵)라고 전해진다.
 
6. 소사(少師) - 태자(太子)를 보필하는 궁중 관리이다. 주(紂)의 재위시기의 소사는 이름이 강(强)이라고 전해진다.
 
7. 비간(比干) - 3-032-주석7 참고.
 
8. 쟁(爭) - 간할 쟁(諍)과 동일.
 
9. 7규(七竅)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얼굴 부위에 있는 7개 구멍, 즉 눈2, 귀2, 코2, 입1이다. 둘째, 신체 부위의 7개 구멍 즉 눈, 코, 혀, 입, 귀, 항문, 요도를 가리킨다.
 
10. 기자(箕子) - 이름은 서여(胥余)이고 주(紂)의 숙부이다. 태사(太師)의 관직에 있으며 기(箕) 지역을 책봉 받았다.
 
11. 상(詳) - 거짓, ~한 체하다의 양(佯)과 동일.
 
12. 은(殷) - 3-001-주석1 참고.
 
13. 제악기(祭樂器) - 제기와 악기.
 
14. 갑자일(甲子日) - 주(周)나라 역법에 의하면 무왕(武王) 즉위 제13년째의 2월 5일이다.
 
15. 주(周) - 1-029-주석20 참고.
 
16. 무왕(武王) - 3-032-주석31 참고.
 
17. 목야(牧野) - 역사상의 지명으로 현재의 신향시(新鄕市) 북부이다. 원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상나라의 수도 조가(朝歌)를 성안에서 바깥으로 나눈 구역을 성(城), 곽(郭), 교(郊), 목(牧), 야(野) 등으로 일컫는다. 즉 조가 성 밖의 목과 야 지역을 합하여 가리킨 것이다.
 
18. 녹대(鹿臺) - 3-030-주석17 참고.
 
19. 현(縣) - 매달다 현(懸)과 동일.
 
20. 대백기(大白旗) - 태백기(太白旗)이고, 일종의 군대를 지휘할 때 사용하는 깃발이다.
 
21. 달기(妲己) - 3-030-주석11 참고.
 
22. 봉(封) - 무덤 위에 흙을 첨가하여 높여주는 것을 가리킨다.
 
23. 표(表) - 표창, 찬양.
 
24. 상용(商容) - 3-032-주석8 참고.
 
25. 여(閭)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이문(里門, 마을 문), 마을을 가리킨다. 둘째, 주민 편제제도로 5집을 비(比), 5비를 여(閭)라 한다. 즉 25집을 가리킨다.
 
26. 무경녹부(武庚祿父) - 무경(?—대략 기원전1039년)은 상나라 주(紂)의 아들이고 별명이 녹부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무경을 상나라 유민들을 관리하도록 은(殷)에 책봉하여 은후(殷侯)가 되었으며, 무경은 그의 사후에 추증된 시호이다. 주나라 문왕은 무경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주변에 위(衛)나라와 패(邶)나라, 채(蔡)나라 등을 설립하여 무경을 감시하게 하였다.
 
27. 반경(盤庚) - 3-021-주석2 참고.
 
28. 열(說) - 기쁠 열(悅)과 동일.
 
29. 천자(天子) - 1-004-주석6 참고.
 
30. 제후(諸侯) - 1-002-주석3 참고.
 
 

4. (국역)

주왕은 더욱 음란해지고 그칠 줄을 몰랐다. 미자계가 자주 간언했지만 듣지 않았으며, 이에 3공중의 하나인 태사 비와 태자를 보필하는 궁중관리인 소사 강과 더불어 상의한 후에 드디어 주왕의 곁을 떠났다. 비간이 말하기를 “신하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주왕에게 강력하게 간언하였다. 주왕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나는 성인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 비간의 배를 가르고 그 심장을 보았다. 기자는 두려워서 이에 거짓으로 미친척하고 노예가 되었지만 주왕은 다시 그를 가뒀다. 상나라의 대사와 소사는 상나라의 제기와 악기를 가지고 주나라로 도망갔다. 주나라의 무왕은 그래서 제후를 거느리고 주왕을 정벌하였다. 주왕도 또한 군사를 일으켜서 목야에서 주나라 군사에 항거하였다. 무왕이 즉위한 13년째 2월 5일에 주왕의 군사는 패배하였다. 주왕은 도망쳐서 성안으로 들어가 녹대로 올라갔으며, 보물과 옥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주나라 무왕은 드디어 주왕의 머리를 잘라서 군대를 지휘할 때 사용하는 깃발인 대백기에 매달았다. 달기도 죽였다. 기자는 감옥에서 풀어주고, 비간의 묘는 흙을 첨가하여 높여주고, 상용이 거주했던 마을의 이문에는 표창하는 글을 내려주었다. 주왕의 아들 무경녹부를 은에 책봉하여 상나라의 제사를 계속하게 하고, 반경의 중흥정치를 실천하도록 명령하였다. 상나라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주나라 무왕은 천자가 되었다. 그의 후손은 제라는 호칭을 낮춰서 칭호를 왕으로 하였다. 그리고 상나라의 후손은 제후로 책봉하고 주나라에 종속시켰다.
 
 

5. (참고)

목야지전(牧野之戰) - 목야의 전쟁에 대한 시기는 일치하지 않는다. 또 이 전쟁을 달리 무왕벌주(武王伐紂)라고 일컫는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연합군이 상(商)나라 군대와 목야에서 치른 전쟁이다. 무왕은 목야에서 군사들에게 맹세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주왕(紂王)의 죄상을 공개하며 하늘의 뜻으로 주왕을 정벌한다고 선포하였다. 주요 내용은 《상서(尙書)》〈태서(泰誓)〉에 기재되어 있다. 또 목야의 전쟁은 중국 고대 전쟁사상 소수와 약졸로써 다수와 강군을 이긴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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