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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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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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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9. 09:53) 
◈ 주본기 3
后稷卒, 子不窋立。 不窋末年, 夏后氏政衰, 去稷不務, 不窋以失其官而奔戎狄之閒。 / 후직이 사망하고 아들 부줄이 즉위하였다. 부줄의 말년에 하후씨 즉 하나라의 정치가 쇠락하고, 농업을 주관하는 관직인 농사를 없애고 농업에 힘쓰지 않게 되었으며, 부줄은 관직을 잃고 황하 서북방의 이민족인 융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도망갔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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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后稷卒, 子不窋立。 不窋末年, 夏后氏政衰, 去稷不務, 不窋以失其官而奔戎狄之閒。 不窋卒, 子鞠立。 鞠卒, 子公劉立。 公劉雖在戎狄之閒, 復脩后稷之業, 務耕種, 行地宜, 自漆、沮度渭, 取材用, 行者有資, 居者有畜積, 民賴其慶。 百姓懷之, 多徙而保歸焉。 周道之興自此始, 故詩人歌樂思其德。 公劉卒, 子慶節立, 國於豳。
 
 

2. (음역)

후직졸, 자부줄입。 부줄말년, 하후씨정쇠, 거직불무, 부줄이실기관이분융적지간。 부줄졸, 자국입。 국졸, 자공류입。 공류수재융적지간, 부수후직지업, 무경종, 행지의, 자칠、저도위, 취재용, 행자유자, 거자유축적, 민뢰기경。 백성회지, 다사이보귀언。 주도지흥자차시, 고시인가악사기덕。 공류졸, 자경절입, 국어빈。
 
 

3. (주석)

1. 후직(后稷) - 1-026-주석8 참고.
 
2. 부줄(不窋) - 고대 주(周) 종족의 수령으로 후직(后稷)의 아들이다. 후직의 농사 관직을 계승하였으나, 하(夏)나라 공갑(孔甲) 시기에 관직을 잃고 부락민을 이끌고 경양(慶陽) 일대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초기 주나라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활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최근에는 후직과 부줄은 시기상 격차가 너무 커서 부자관계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3. 하후씨(夏后氏) - 1-029-주석14 참고.
 
4. 거직(去稷) - 거는 폐기하다이고, 직은 농업을 주관하는 관직인 농사(農師), 직관(稷官), 직정(稷正) 등을 가리킨다. 즉 농업을 주관하는 관직을 폐기하는 의미이다.
 
5. 융적(戎狄) - 춘추시기에 화하족(華夏族)과 주변의 이민족인 이(夷), 융(戎), 만(蠻), 적(狄)의 구분이 있었다. 융적은 주로 황하 북쪽과 서북지역에 거주하였고, 일반적으로 서북지역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6. 간(閒) - 사이
 
7. 국(鞠) - 부줄(不窋)의 아들이고 처음에는 국도(鞠陶)라고 일컬었으며, 기타 문헌에는 도(陶)라고 기록되어 있다.
 
8. 공류(公劉) - 부줄의 아들이고 기(棄)의 손자로 빈(邠, 彬, 豩, 豳)에 정착하여 농업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주나라의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왔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는 이외에 무력을 발전시키고 종묘를 건립하였다.
 
9. 수(脩) - 다스리 수(修)와 동일.
 
10. 행(行) - 살펴보다.
 
11. 지의(地宜) - 상지지의(相地之宜)와 동일하다. 즉 각기 다른 토양에서는 각기 다른 생물의 성장에 적합함을 관찰하다. 간략하게 토지의 특성을 살피다의 의미이다. 달리 지리환경 혹은 조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12. 칠(漆) - 2-013-주석9 참고.
 
13. 저(沮) - 2-006-주석9 참고.
 
14. 위(渭) - 2-012-주석24 참고.
 
15. 취재용(取材用) - 목재를 채취하여 사용하다.
 
16. 자(資) - 밑천으로 삼을, 재물.
 
17. 축적(畜積) - 쌓다, 쌓인 재물.
 
18. 경(慶) - 은덕.
 
19. 백성(百姓) - 1-002-주석4 참고.
 
20. 회(懷) - 그리워하다.
 
21. 보귀(保歸) - 귀부, 귀의하다.
 
22. 주(周) - 1-029-주석20 참고.
 
23. 시인(詩人) - 《시경》의 작자를 가리킨다. 즉 《시경》〈대아(大雅)〉편에 「독공류(篤公劉)」라는 시가 있는데, 공류의 위대한 업적과 고상한 품덕을 칭송하는 시가이다.
 
24. 경절(慶節) - 공류의 아들이고 경양(慶陽)에서 정식으로 빈국(豳國)을 건립하였다. 빈국은 당시 서북지역에서 세력이 비교적 강한 부락 국가를 형성하였다.
 
25. 국(國) - 도읍지를 나타내고, 여기서는 도읍지를 건립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6. 빈(豳) - 고대의 도읍 명칭으로 빈(邠, 彬, 豩) 등으로 쓴다. 현재 섬서성(陜西省) 빈현(彬縣)이다.
 
 

4. (국역)

후직이 사망하고 아들 부줄이 즉위하였다. 부줄의 말년에 하후씨 즉 하나라의 정치가 쇠락하고, 농업을 주관하는 관직인 농사를 없애고 농업에 힘쓰지 않게 되었으며, 부줄은 관직을 잃고 황하 서북방의 이민족인 융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도망갔다. 부줄이 사망하고 아들 국이 즉위하였다. 국이 사망하고 아들 공류가 즉위하였다. 공류는 비록 황하 서북방의 이민족인 융적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하였지만, 다시 후직이 하던 일에 종사하였고, 밭을 갈고 씨 뿌리는데 힘쓰며, 각기 다른 토양에서는 각기 다른 생물의 성장에 적합함을 관찰하였다. 칠수와 저수로부터 위수를 건너서 목재를 채취하여 사용하도록 하니, 길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밑천으로 삼을 재물이 생기고 집에 있는 사람에게도 재물이 쌓였으며, 백성들이 그의 은덕에 의지하게 되었다. 백관들도 그를 그리워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옮겨와서 그에게 귀의하였다. 주나라의 정치와 교화의 흥성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그래서 《시경》의 작자가 《시경》〈대아(大雅)〉편에 「독공류(篤公劉)」를 지어서, 공류의 위대한 업적과 고상한 품덕을 칭송하며 회상하였다. 공류가 사망하고 아들 경절이 즉위하였고 빈에 도읍을 건립하였다.
 
 

5. (참고)

공류(公劉)의 역사상 공헌 - 주(周) 종족은 처음에는 축목업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 공류는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계기로 빈(豳)으로 이동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생산방식을 전환하였다. 당시 발전된 생산도구의 사용과 후직(后稷)의 전통 계승으로 인하여 주 종족의 농업생산은 크게 확대되었고, 주나라 형성에 유리한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경》〈대아(大雅)〉편에 공류의 공적이 기록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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