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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괴산군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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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산군 시문집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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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2018.07.20
【향토】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2018.07.20
【향토】 화양동(華陽洞) 수석의 훌륭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인데 우암선생(尤菴先生)이 병오년(丙午年)에 그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으시니 참으로 세속 밖의 그윽한 곳이다.
2018.07.20
【향토】 정자가 무너지고 현판은 떨어지니 병술년(丙戌年) 여름에 고쳐 단장하고 이름을 ‘응향정(凝香亭)’이라 고쳐 편액하였다. 연풍의 이태수(李太守)는 글을 읽기와 옛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018.07.20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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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향토】 일가정(一可亭) 주인은 누구인고. 충청도 연풍군에서 여러 대를 현달한 집안으로 성은 경(慶)이오, 이름은 광국(光國)이오, 호는 석옹(石翁)이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에 이르고 나이는 80이 가깝다.
2018.07.20
【향토】 하루는 현감 이덕부(李德溥)가 글을 보내어 나에게 말하길 “연풍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위엄을 잃었으며 연이어 굶주림에 시달려 관청이 쓰러지게 되었어도 중수할 수 없었다.
2018.07.20
【향토】 성산(星山) 이진백(李進伯)군은 예전에 옛 터에서 호암(虎巖) 아래로 옮겨와 살다가 지난 해에 다시 남곡(南谷) 중으로 옮겨 들어와, 띠집을 지어 살면서 돌벼랑 위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돌이 쌓여진 것으로 계단의 기초를 삼았다.
2018.07.20
【향토】 옛날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 관청과 군영을 수리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어찌 노고와 비용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일이 진실로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어찌 바르게 않겠는가?
 
◈ 최근등록순
2018.07.20
【향토】 반계정은 정호(鄭澔)〔1648-1736〕가 괴산군 연풍면 입석리에 세운 정자인데, 6. 25사변 때 불에 탔다.
2018.07.20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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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향토】 애한정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6년(1614)에 박지 겸(朴知謙)이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세운 정자인 데, 현종(顯宗) 15년(167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 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2018.07.20
【향토】 파관(葩串) 골짜기의 넓음과 반석의 웅장함은 진실로 소문과 어긋나지 않는데 돌빛은 오히려 맑고 매끄러움이 부족하다. 거기서 가장 밝고 깨끗하여 가히 사랑할만한 것은 물 북쪽의 한 곳 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상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18.07.20
【향토】 일가정(一可亭) 주인은 누구인고. 충청도 연풍군에서 여러 대를 현달한 집안으로 성은 경(慶)이오, 이름은 광국(光國)이오, 호는 석옹(石翁)이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에 이르고 나이는 80이 가깝다.
2018.07.20
【향토】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2018.07.20
【향토】 연풍은 옛날 장연부(長延府)라 하였다. 숭정(崇禎) 무진년(戊辰年)에 현(縣)을 조령(鳥嶺) 아래 두고 처음 관아를 지어 다스린 곳이다.
2018.07.20
【향토】 하루는 현감 이덕부(李德溥)가 글을 보내어 나에게 말하길 “연풍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위엄을 잃었으며 연이어 굶주림에 시달려 관청이 쓰러지게 되었어도 중수할 수 없었다.
2018.07.20
【향토】 성산(星山) 이진백(李進伯)군은 예전에 옛 터에서 호암(虎巖) 아래로 옮겨와 살다가 지난 해에 다시 남곡(南谷) 중으로 옮겨 들어와, 띠집을 지어 살면서 돌벼랑 위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돌이 쌓여진 것으로 계단의 기초를 삼았다.
2018.07.20
【향토】 화양동(華陽洞) 수석의 훌륭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인데 우암선생(尤菴先生)이 병오년(丙午年)에 그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으시니 참으로 세속 밖의 그윽한 곳이다.
2018.07.20
【향토】 정자가 무너지고 현판은 떨어지니 병술년(丙戌年) 여름에 고쳐 단장하고 이름을 ‘응향정(凝香亭)’이라 고쳐 편액하였다. 연풍의 이태수(李太守)는 글을 읽기와 옛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018.07.20
【향토】 옛날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 관청과 군영을 수리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어찌 노고와 비용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일이 진실로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어찌 바르게 않겠는가?
2018.07.20
【향토】 숭정(崇禎) 경술년(庚戌年) 나라 안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백성이 10명 중 6․7명이나 되었다. 이 때 영남안찰사(嶺南按察使) 이숙(李䎘) 중우(仲羽)가 정성을 다하여 구휼함으로써 영남사람을 전부 살렸다.
2018.07.20
【향토】 안민헌은 청안현(淸安縣)의 동헌(東軒)으로 현종(顯宗) 9년(1668) 현감 박원경(朴元慶)이 중건하고 편액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2018.07.20
【향토】 상당(上黨)의 동쪽 검단산(黔丹山) 아래 끊어진 산기슭이 있는데 그 이름이 ‘고운대(孤雲臺)’이다. 긴 시냇물이 인봉(釰峰)에서 곧바로 내려와 고운대를 안고 흐르는데 그 좌우에 절벽과 높은 산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앞쪽은 평평하게 탁 트여 경치가 뛰어나다.
2018.07.20
【향토】 지난 신축년(辛丑年)에, 우리 아버님께서 괴주(槐州) 방하현(方下峴)에 들어가 4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후 거의 50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버님이 사시던 곳에 살고자 했으나 벼슬살이에 매여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2018.07.20
【향토】 조은정은 신경행(申景行)〔1557-1623〕이 말년에 청안면 문방리에 세운 정자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2018.07.20
【향토】 괴탄(槐灘)의 상류는 땅은 궁벽하나 아름답다. 푸른 석벽과 맑은 물에 큰 소나무와 긴 대나무의 빼어남이 있다. 나의 늙은 벗 박익경(朴益卿)이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의 이름을 ‘애한정(愛閑亭)’이라 하고 벼슬 높은 사람에게 기문(記文)을 구하였다.
2018.07.20
【향토】 내 친구 박익경(朴益卿)은 오랫동안 내 이웃의 서쪽인 무악(母嶽)의 아래에 살았는데 단풍 언덕과 숲 속 연못이 있는 그윽한 곳이었다.
2018.07.20
【향토】 임진왜란이 지난 뒤에 돌아갈 곳이 없어 가족을 거느리고 괴주(槐州)의 괴탄(槐灘) 위에 있는 처가의 옛 농막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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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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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