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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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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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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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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화양동(華陽洞) 수석의 훌륭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인데 우암선생(尤菴先生)이 병오년(丙午年)에 그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으시니 참으로 세속 밖의 그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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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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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정자가 무너지고 현판은 떨어지니 병술년(丙戌年) 여름에 고쳐 단장하고 이름을 ‘응향정(凝香亭)’이라 고쳐 편액하였다. 연풍의 이태수(李太守)는 글을 읽기와 옛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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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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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일가정(一可亭) 주인은 누구인고. 충청도 연풍군에서 여러 대를 현달한 집안으로 성은 경(慶)이오, 이름은 광국(光國)이오, 호는 석옹(石翁)이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에 이르고 나이는 80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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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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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하루는 현감 이덕부(李德溥)가 글을 보내어 나에게 말하길 “연풍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위엄을 잃었으며 연이어 굶주림에 시달려 관청이 쓰러지게 되었어도 중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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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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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성산(星山) 이진백(李進伯)군은 예전에 옛 터에서 호암(虎巖) 아래로 옮겨와 살다가 지난 해에 다시 남곡(南谷) 중으로 옮겨 들어와, 띠집을 지어 살면서 돌벼랑 위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돌이 쌓여진 것으로 계단의 기초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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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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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옛날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 관청과 군영을 수리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어찌 노고와 비용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일이 진실로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어찌 바르게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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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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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반계정은 정호(鄭澔)〔1648-1736〕가 괴산군 연풍면 입석리에 세운 정자인데, 6. 25사변 때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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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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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애한정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6년(1614)에 박지 겸(朴知謙)이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세운 정자인 데, 현종(顯宗) 15년(167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 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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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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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파관(葩串) 골짜기의 넓음과 반석의 웅장함은 진실로 소문과 어긋나지 않는데 돌빛은 오히려 맑고 매끄러움이 부족하다. 거기서 가장 밝고 깨끗하여 가히 사랑할만한 것은 물 북쪽의 한 곳 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상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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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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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일가정(一可亭) 주인은 누구인고. 충청도 연풍군에서 여러 대를 현달한 집안으로 성은 경(慶)이오, 이름은 광국(光國)이오, 호는 석옹(石翁)이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에 이르고 나이는 80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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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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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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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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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연풍은 옛날 장연부(長延府)라 하였다. 숭정(崇禎) 무진년(戊辰年)에 현(縣)을 조령(鳥嶺) 아래 두고 처음 관아를 지어 다스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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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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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하루는 현감 이덕부(李德溥)가 글을 보내어 나에게 말하길 “연풍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위엄을 잃었으며 연이어 굶주림에 시달려 관청이 쓰러지게 되었어도 중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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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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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성산(星山) 이진백(李進伯)군은 예전에 옛 터에서 호암(虎巖) 아래로 옮겨와 살다가 지난 해에 다시 남곡(南谷) 중으로 옮겨 들어와, 띠집을 지어 살면서 돌벼랑 위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돌이 쌓여진 것으로 계단의 기초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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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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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화양동(華陽洞) 수석의 훌륭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인데 우암선생(尤菴先生)이 병오년(丙午年)에 그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으시니 참으로 세속 밖의 그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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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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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정자가 무너지고 현판은 떨어지니 병술년(丙戌年) 여름에 고쳐 단장하고 이름을 ‘응향정(凝香亭)’이라 고쳐 편액하였다. 연풍의 이태수(李太守)는 글을 읽기와 옛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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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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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옛날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 관청과 군영을 수리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어찌 노고와 비용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일이 진실로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어찌 바르게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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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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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숭정(崇禎) 경술년(庚戌年) 나라 안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백성이 10명 중 6․7명이나 되었다. 이 때 영남안찰사(嶺南按察使) 이숙(李䎘) 중우(仲羽)가 정성을 다하여 구휼함으로써 영남사람을 전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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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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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안민헌은 청안현(淸安縣)의 동헌(東軒)으로 현종(顯宗) 9년(1668) 현감 박원경(朴元慶)이 중건하고 편액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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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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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상당(上黨)의 동쪽 검단산(黔丹山) 아래 끊어진 산기슭이 있는데 그 이름이 ‘고운대(孤雲臺)’이다. 긴 시냇물이 인봉(釰峰)에서 곧바로 내려와 고운대를 안고 흐르는데 그 좌우에 절벽과 높은 산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앞쪽은 평평하게 탁 트여 경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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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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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지난 신축년(辛丑年)에, 우리 아버님께서 괴주(槐州) 방하현(方下峴)에 들어가 4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후 거의 50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버님이 사시던 곳에 살고자 했으나 벼슬살이에 매여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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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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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조은정은 신경행(申景行)〔1557-1623〕이 말년에 청안면 문방리에 세운 정자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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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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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괴탄(槐灘)의 상류는 땅은 궁벽하나 아름답다. 푸른 석벽과 맑은 물에 큰 소나무와 긴 대나무의 빼어남이 있다. 나의 늙은 벗 박익경(朴益卿)이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의 이름을 ‘애한정(愛閑亭)’이라 하고 벼슬 높은 사람에게 기문(記文)을 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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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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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내 친구 박익경(朴益卿)은 오랫동안 내 이웃의 서쪽인 무악(母嶽)의 아래에 살았는데 단풍 언덕과 숲 속 연못이 있는 그윽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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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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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진왜란이 지난 뒤에 돌아갈 곳이 없어 가족을 거느리고 괴주(槐州)의 괴탄(槐灘) 위에 있는 처가의 옛 농막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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