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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괴산군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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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편(題詠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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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편(記文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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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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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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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등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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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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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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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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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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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애한정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6년(1614)에 박지 겸(朴知謙)이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세운 정자인 데, 현종(顯宗) 15년(167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 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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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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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파관(葩串) 골짜기의 넓음과 반석의 웅장함은 진실로 소문과 어긋나지 않는데 돌빛은 오히려 맑고 매끄러움이 부족하다. 거기서 가장 밝고 깨끗하여 가히 사랑할만한 것은 물 북쪽의 한 곳 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상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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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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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일가정(一可亭) 주인은 누구인고. 충청도 연풍군에서 여러 대를 현달한 집안으로 성은 경(慶)이오, 이름은 광국(光國)이오, 호는 석옹(石翁)이오, 벼슬은 정삼품(正三品)에 이르고 나이는 80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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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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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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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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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연풍은 옛날 장연부(長延府)라 하였다. 숭정(崇禎) 무진년(戊辰年)에 현(縣)을 조령(鳥嶺) 아래 두고 처음 관아를 지어 다스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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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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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하루는 현감 이덕부(李德溥)가 글을 보내어 나에게 말하길 “연풍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위엄을 잃었으며 연이어 굶주림에 시달려 관청이 쓰러지게 되었어도 중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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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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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성산(星山) 이진백(李進伯)군은 예전에 옛 터에서 호암(虎巖) 아래로 옮겨와 살다가 지난 해에 다시 남곡(南谷) 중으로 옮겨 들어와, 띠집을 지어 살면서 돌벼랑 위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돌이 쌓여진 것으로 계단의 기초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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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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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화양동(華陽洞) 수석의 훌륭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인데 우암선생(尤菴先生)이 병오년(丙午年)에 그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으시니 참으로 세속 밖의 그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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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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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정자가 무너지고 현판은 떨어지니 병술년(丙戌年) 여름에 고쳐 단장하고 이름을 ‘응향정(凝香亭)’이라 고쳐 편액하였다. 연풍의 이태수(李太守)는 글을 읽기와 옛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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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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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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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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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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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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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애한정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6년(1614)에 박지 겸(朴知謙)이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세운 정자인 데, 현종(顯宗) 15년(167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 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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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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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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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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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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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반계정은 정호(鄭澔)〔1648-1736〕가 괴산군 연풍면 입석리에 세운 정자인데, 6. 25사변 때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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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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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내 친구 박익경(朴益卿)은 오랫동안 내 이웃의 서쪽인 무악(母嶽)의 아래에 살았는데 단풍 언덕과 숲 속 연못이 있는 그윽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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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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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괴음정은 1953년에 괴마(槐馬) 임백령(林百齡)의 음덕을 기리어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세운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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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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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망화정은 고종(高宗) 10년(1873)에 이시재(李始宰)가 괴산 감물면 오창리에 화양서원을 사모하여 세운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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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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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진왜란이 지난 뒤에 돌아갈 곳이 없어 가족을 거느리고 괴주(槐州)의 괴탄(槐灘) 위에 있는 처가의 옛 농막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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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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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매죽정은 숙종(肅宗) 41년(1715)에 이해종(李海宗)이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의 무덤 아래 세운 정자인데, 1939년 괴산군 문광면 유평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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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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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우암(尤庵) 송시렬(宋時烈)이 현종(顯宗) 7년(1666)에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운영담(雲影潭) 위에 5칸 초당(草堂)을 짓고 ‘화양계당(華陽溪堂)’ 이라 하였다. 그 뒤에 금사담(金沙潭) 위에 3칸 정 자를 짓고 ‘암서재(巖棲齋)’라 하였는데 경종(景宗) 1년(1721)에 중수하였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75 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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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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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만취정은 해방 후에 심상직(沈相直)〔1901-1980〕이 괴산 불정면 추산리에 세운 정자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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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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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관란정은 고종(高宗) 12년(1876)에 순흥안씨 문중에서 괴산 감물면 이담리에 세운 정자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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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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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조세구(趙世球)〔1483-1550〕가 선조인 조신(趙 紳)이 은거했던 곳에 세운 정자로 지금 괴산군 문 광면 광덕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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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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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옛날 제갈무후(諸葛武侯)가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 관청과 군영을 수리하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어찌 노고와 비용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일이 진실로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 어찌 바르게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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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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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조은정은 신경행(申景行)〔1557-1623〕이 말년에 청안면 문방리에 세운 정자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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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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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기유년(己酉年)에 내가 사신(使臣)으로 조선에 오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회부(晦夫) 유근(柳根)이 새 임금의 명으로 나를 강 위에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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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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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수옥정은 숙종(肅宗) 37년(1711)에 현감 조유수(趙裕秀)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수옥폭포 옆에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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