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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괴산군 괴산군 시문집 (2000)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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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018년 7월 20일
안민헌기(安民軒記) / 송시렬(宋時烈)
about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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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宋時烈) # 안민헌
【향토】
(2018.07.20. 10:25) 
◈ 안민헌기(安民軒記) / 송시렬(宋時烈)
안민헌은 청안현(淸安縣)의 동헌(東軒)으로 현종(顯宗) 9년(1668) 현감 박원경(朴元慶)이 중건하고 편액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 안민헌(安民軒)
안민헌은 청안현(淸安縣)의 동헌(東軒)으로 현종(顯宗) 9년(1668) 현감 박원경(朴元慶)이 중건하고 편액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안민헌기(安民軒記)
송시렬(宋時烈)〔1607-1689〕
 
나라가 여러번 전쟁을 겪으면서 관민의 피해가 컸는데 청안(淸安)의 경우는 더욱 심하여 오래동안 복구하지 못하였다. 크고 작은 관아에 모두 보잘 것 없는 기둥만 서있으니 백성들이 해마다 덮을 이엉을 걱정하였다. 대개 몇 자의 재목, 한 묶음의 띠도 관청에서 쓰는 것은 하나 둘이라면 백성들에서 나오는 것이 몇 갑절이며 아울러 관리들이 들끓으면서 간혹 쌀이나 베를 징수하는 자도 있었다. 금상(今上) 병오년(丙午年)에 현감 금성(錦城) 박원경(朴元慶)이 문보를 거쳐 청안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본도에서 임금의 살핌으로 처음 신과(新科)를 신설하면서 수령의 월봉을 경관(京官)과 같이 하니 수령은 적은 것에 대하여 병으로 여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름만 월봉이지 마음대로 넘치고 모자랐으며 협착함에 따라 교묘함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박현감은 옷이 헤지고 식량이 떨어져도 다달이 저축하고 삼년 지나 모아진 것을 보고 가능하다고 하였다. 관아의 수리는 고을 백성들도 소원한 것이라 드디어 재목을 구하고 쟁이를 불러 무신년(戊申年) 겨울에 시작하여 일년이 되지 않아 일을 마치었다. 대개 청안은 넓이가 20리도 안 되고 호수가 겨우 2천인데 1년 만에 내아(內衙)와 외아(外衙)의 크고 작은 집 70여칸에 기와를 덮었다. 그러나 모두 관에서 경비를 조달하고 백성들의 참여가 없었다. 일을 마치자 현감이 그 공을 백성들에게 돌렸다. 고을 안에서 환갑을 지낸 노인들에게 동헌을 낙성하고 알리기를 “관사(官舍)는 비록 현감이 거처하는 곳이나 부서질 때마다 수리하는 경우 고을 노인들에게 미치는 폐단이 많았다. 이제 내가 이 일을 한 것은 부득이 한 것이다. 비록 말하기를 백성들의 참여가 없었다고 하나 어찌 귀신이 운영하고 만들었겠는가? 다 고을 노인들의 힘이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길 ‘하나도 힘 쓰는 것이 없으면 오래 편안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노인들이 이로부터 위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노고를 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고을 노인들이 모두 손을 들어 감사하며 말하기를 “관민이 매우 행복하다”고 하니 드디어 그 뜻을 취하여 동헌의 이름을 ‘안민헌(安民軒)’이라 하였다. 현감은 또 못을 파고 연꽃을 옮겨 심으니 더없이 깨끗함이 가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재(內齋)의 이름을 ‘청심재(淸心齋)’라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청심은「소학(小學)」에서 주자(朱子)가 안씨(顔氏)의 “청심성사(淸心省事)”에서 취한 것인데 이는 백성을 다스리는 요체이다. 대저 위정자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않으면 그 백성은 끝내 편안할 수 없는데 그것은 위정자의 마음이 맑지 않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무릇 만물에는 바탕이 있고 끝이 있는데 마음은 삼재(三才)가 참여해야만 만화의 근본이 나오는 것이다. 먼지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그 사이에서 모여 합치는 것이므로 그것을 꾀하는 바는 욕심을 부려 재물을 뺏는 일이 없지 않다. 백성이 편안해야만 수령도 편안한 것이다. 정성으로 마음을 맑고 밝게 함으로써, 밖에서 유혹하는 폐단이 없다면 온 천하의 사물은 하늘이 비치는 물의 형상은 움직일 수 없으니 그가 말한 것은 모두 마땅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백성이 편안하면 현감이 불안하겠는가? 이제 청심재와 안민헌의 이름은 달라도 그 본체와 용도는 그 근원이 하나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일을 맡긴 뜻과 같고 또 현감이 옛 사람의 교훈에서 얻은 바가 뚜렷하니 나는 현감의 밝음을 사랑한다. 힌감은 학문이 도탑고 백성을 살피는 바가 아름답고 본말에 차례가 있음을 알아 기문을 쓴다. 그러나 바르게 일을 이루었다고 느긋하게 지내거나 현감이 돌아갈 뜻을 읊는다면 고을 백성들이 탄식하며 즐거워하지 않음을 것이다. 내가 말하기를 “한선제(漢宣帝)가 말을 여러번 바꾸어 백성이 불안하였다. 민정을 살피는데 힘 쓰길 바라며 안민헌이 좋은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安民軒記
 
國家屢經喪亂 公私蕩殘 如淸安事力尤綿 久不能復舊 大小廨舍 皆草創支柱 民病歲苫 盖數尺之材 一束之茅 用於官者一二 而其出於民則倍蓰 兼且官吏夤緣 或徵其米布者有矣 今上丙午 錦城朴候元慶由文譜來涖是縣 本道自聖考初設新科 令守宰受月俸一如京官 則守宰尤病於厪厪 然旣名月俸 則隨意盈朒 亦有因狹見巧者矣 朴候削衣貶食 月有其扐 以至三年 而視其聚有 則曰可矣 衙舍之修 亦縣民之所願欲者矣 遂鳩材募工 經始於戊申之冬 期年而告訖 盖本縣脩廣無二十里 民戶僅二千 而十數月之內 能了內外大小七十餘間之屋 皆覆以瓦 然皆自官調度 民無與焉 而旣成 候猶歸之於民 屬縣之耆老 落之於東軒而告之曰 衙舍雖縣官之所處 然隨毁隨補之際 弊及於父老者多矣 今吾之爲是役者 亦不得已也 雖曰民不與焉 亦豈神運而鬼作也 皆父老之力也 然古語曰 不一勞則不久安 父老從此得免於上入執功之勞矣 父老咸擧手謝曰 公私幸甚矣 遂取其意 名其軒曰安民 候又鑿池蒔荷 淸絶可愛 遂名內齋以淸心 竊惟朱子於小學書 取顔氏以淸心省事 爲爲政之要者 夫爲政者 孰不欲安其民 而其民終不能安者 職由於心不能淸矣 凡物有本有末 心者所以參三才而出萬化之本也 如使塵垢汚穢 叢沓於其間 則其所猷爲者 無非貪饕剝割之事 民安得而安也 誠使方寸淸明 無外誘之累 則擧天下之物 不能動其鑑空水止之體 而其見於云爲者 無不得 其當矣 民安得不安哉 今齋與軒 雖有內外之異名 然其體用一源 理事同致之義 則又候之所得於古訓者然矣 余候之表親也 嘉候之學優而仕 而知有本末之序 故書以記之 然政成事暇 而候有賦歸之意 則縣民咨嗟不樂矣 余語之曰 漢宣帝有言數變易則民不安 幸勉副民情 毋負斯軒可也
【송자대전(宋子大全)】
송시열(宋時烈) # 안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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