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괴산군 괴산군 시문집 (2000)
괴산군 시문집 (2000)
(보기 : 목록별구성)
2018년 7월
2018년 7월 20일
식영정기(息影亭記) / 이하곤(李夏坤)
about 괴산군 시문집 (2000)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내서재
추천 : 0
# 식영정 # 이하곤
【향토】
(2018.07.20. 10:25) 
◈ 식영정기(息影亭記) / 이하곤(李夏坤)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 식영정(息影亭)
 
식영정기(息影亭記)
이하곤(李夏坤)〔1677-1724〕
 
내 본성이 매우 우원하여 다른 것은 좋아하는 것이 없고 오직 산수를 좋아하여 8․9세부터 이미 산에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 집의 농장이 낙영산(落影山) 아래 있었는데 그 땅이 대저 기이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흰 바위들의 경승이 있었다. 집안의 늙은 종이 항상 왕래하여 내가 매번 그 늙은 종에게 그 경승을 물으면 늙은 종은 비유하지 않고 다만 “두 산이 우뚝 솟아있고 오래된 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 합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문득 기뻐하여 곧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병자년(丙子年) 내가 처음으로 낙영산에 들어가 산의 안팎을 두루 살펴보고 이로부터 1년에 한 번 가거나 2․3년에 한 번 갔다. 도착하면 노닐지 않은 적이 없었고, 노닐 적에는 두루 완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무릇 산의 물 한 줄기, 돌 하나에 내 발자취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늘 몇칸 띠집을 지어놓고 독서하거니 수양하는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을미년(乙未年) 가을 내가 박백형(朴伯亨), 민향숙(閔向叔) 등 여러 사람들과 낙영산에 들어가 단풍을 완상하다가 내가 박백형에게 이르길 “내가 장차 이곳에 띠집을 짓고 노년을 지낼까 하오” 하니 마을사람이 나를 비웃으며 “만일 그대의 말대로라면 정자를 예전에 지었을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나는 부끄러워 대꾸하지 못하고, “이젯껏 내가 새 정자를 짓지 못하고 촌옹이 졸렬한 계획 비웃음을 부끄러워 하네”라는 시를 지었다. 정자를 지을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자 곧 재목을 구하고 돌을 깎아 병신년(丙申年) 봄에 일을 시작하여 정유년(丁酉年)에 완성하였다. 무룻 방이 셋이니 ‘관묘실(觀妙室)’ ‘청간실(聽澗室)’ ‘고반실(考槃室)’이오, 마루가 하나이니 ‘은궤헌(隱几軒)’이오 다락이 하나이니 ‘수월루(水月樓)’이고 이를 총칭하여 ‘식영정(息影亭)’이라 하였다. 더욱이 내가 어릴적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훗날 정자를 ‘식영정’이라 하는 것이 좋으리라”하였는데, 후에「남화경(南華經)」을 읽어보니 “그림자에서 쉰다는 것은 음(陰)에서 들어난다”라는 구절이 있어 내가 이상히 여기다가 이에 이르러 마침내 이로써 이름하였다. 겨울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와 머무는데 큰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 종일토록 인적이 없어 글 읽는 소리와 물소리가 서로 응답하였다. 식사 후에 조금 심심하면 동쪽에 있는 다락에 올라 앞 봉우리의 흰눈을 바라보니 아이들도 즐거워하였다. 오래도록 돌아갈 줄 몰라 60여일을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듬해 아이 혼사로 서울로 올라가 수레바퀴의 먼지와 말 발자국 사이에서 쫒기면서 산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어언 2․3년이 되었다. 아, 몸은 쉬지 못하는데 어찌 그림자가 쉴 수 있겠는가? 옛날 향자평(向子平)이 자녀의 혼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오악(五嶽)을 유람했다더니 바로 이것인가! 내 또한 세상의 인연이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남쪽으로 돌아가기를 도모하여 숨은 자취가 나오지 않은 후에야 노인이 경계하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런 뜻을 적어 후일의 증표로 삼는다. 경자(庚子) 8월에 소금산초(小金山樵)가 양산(陽山)의 명발재(明發齋)에서 쓰다.
 

 
息影亭記
 
余素性甚迂 無他嗜好 獨好山水 自八九歲時 已有山棲之志 余家別業 在于落影山中 其地盖有奇峰峭壁淸流白石之勝 家有老奴常往來 余每從老奴問其勝 老奴不喩余所謂 但曰兩山矗立 老木參天而已 聞之輒欣然 便有獨往之意 歲丙子 余始入山 周覽山之內外 自此歲一至焉 或二三歲一至焉 至則未嘗不游 游則未嘗不遍 凡山之一水一石 足跡無不及焉 常欲置數間茅屋 以爲讀書藏修之所 家貧力未能辯 乙未秋 與朴伯亨閔向叔諸人 入山賞霜葉 余謂伯亨曰 吾將誅茅于此 以終老焉 村人有嘲余者曰 若君之言 亭成已久矣 余慚不能答 有詩曰 至今未辨新亭子 慚愧村翁笑拙謀 建屋之計 於是遂決 乃鳩財伐石 經始于丙申之春 至丁酉秋落成焉 凡爲室者三 曰觀妙 曰聽澗 曰考槃 爲軒者一曰隱几 凡樓者一 曰水月 摠名之曰息影 益余少時夢 有老人告余曰 他日以息影名亭可也 其後讀南華有息影者体于陰之語 余心異之 至是遂以此名之 至冬携兒輩來居之 大雪寒天 終日無人跡 讀書聲與泉聲相應答 飯後稍倦則登東樓 望前峰雪色 我輩亦心樂之 久而忘返 凡留六十日而歸 其明年以兒婚北走都下 遂遂于車塵馬足之間 不至山中者 忽已三年矣 噫 其身之不息 又何以息影乎哉 昔向子平欲待婚家之畢 游五嶽者 良以此哉 余亦待世緣粗了 卽謀南歸 秘跡不出 然後庶不負老人告戒之意也 姑書此以爲他日之證 庚子仲秋 小金山樵 書于陽山之明發齋
【두타초(頭陀草)】
# 식영정 # 이하곤
【향토】 괴산군 시문집 (2000)
• 일가정자서(一可亭自序) / 경광국(慶光國)
• 식영정기(息影亭記) / 이하곤(李夏坤)
• 풍락헌기(豊樂軒記) / 이덕부(李德傅)
【작성】 null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정보 :
향토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소유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 식영정 (1)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