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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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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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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 단둥 시(丹東市) 당 태종(唐太宗) 만리 장성(萬里長城) 백두산(白頭山) 이병도(李丙燾) # 고구려산성 # 낙랑군 중국역사지도집 # 동북역사재단 # 미창구 # 미창구 장군묘 # 박작성 # 백산시 # 봉황산 # 봉황산성 # 오골산 # 오골성 # 장군묘 # 호산장성 # 환인시
【역사】
(2020.05.12. 11:14) 
◈ 미창구(米倉溝) 장군묘와 호산장성 대신에 봉황산에 들리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장군묘와 호산장성 대신에 봉황산에 들리다
우리 일행은 환인시에서 남쪽 10km 지점에 있는 미창구 장군묘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나타나는 얕은 구릉 능선과 폭도 크지 않은 작은 하천들이 나타났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려서 백두산의 백산시 위에서 발원하는 혼하(渾河)에 유입되는 지류로 보인다.
 
맑고 푸른빛의 강물은 물속에 잠긴 자갈 모양조차 구분이 간다. 남쪽 지역은 북쪽에 비해 넓은 평야지대이고, 수량이 많은 강이 있어 미창구(米倉溝)라는 지명처럼 19세기 후반부터 쌀농사가 일찍 시작된 지역이다. 도로 좌우에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버스가 들어가니 마을 아주머니들 여러 명하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버스를 마을 중심가에 세워두고 동네 뒤로 나가니 옥수수밭 사이로 큰 무덤의 봉분이 나타났다. 일행들은 삼삼오오 옥수수 밭을 지나 장군묘 봉분까지 난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잡초들이 무릎까지 올라온다. 봉분 위에서 보니 서북쪽은 높은 산들이 에워쌌다. 동쪽은 혼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지대라 넓은 평야가 대부분이다. 남쪽은 산봉우리들이 멀어 보이는데 푸른 혼강의 물줄기기 보인다. 군데군데 옥수수 밭이 보이지만 잡초가 우거진 곳도 보였는데 비워둔 논으로 보였다.
 
남쪽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없어 허술해 보인다. 그래서 이곳에 장군묘가 위치한 것 같다. 2000년 전에도 선조들이 자연적인 약점도 보완하였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봉분 중턱에 있는 표지석 앞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을로 내려오니 마을 사람들이 발굴 당시의 이야기를 해준다. 여러 해 전에 장군묘를 발굴할 당시에 무덤 석실 좌우에는 모두 연꽃그림이 가득했다고 하였다.
 
환인지역의 유일한 벽화 고분으로 석실봉토분이다. 지금은 무덤의 내부 구조와 벽화는 오년산성 박물관이 건립되어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불가능하였다. 고분 밑변의 둘레가 150m이고, 높이 8m이며, 벽화무늬는 연꽃이 주제인데 곁방에는 왕자(王字) 형 연꽃이 벽 전체를 장식하였다. 네 벽과 들보, 천정 및 무덤 방문에까지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5세기 후반에 유행하는 벽화양식으로 보고 있으며, 벽화 주인공은 주몽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요령성의 경계인 ‘파천령’을 넘어 단동까지 4시간이나 이동하였다. 북한식당인 ‘평양칠보산 식당’에서 아코디언 반주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녁식사를 한 후 ‘흥원호텔’에 투숙했다. 단동 시내의 야경은 화려한 반면, 압록강 너머 신의주 지역은 불빛이 없다.
 
마지막 날 아침에 버스에 승차하니 안내 아가씨가 동북쪽 20km에 위치하는 호산장성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안내 아가씨는 우리 동포 출신이라 우리말을 잘 하였다. 그래서 내가 일행들에게 ‘호산장성’은 중국 측이 압록강가에 조작하여 만든 가짜 만리장성의 동단이며 고구려의 박작성을 허물고 지은 곳이니 답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대신에 북쪽의 ‘봉황산성’을 답사하자고 제안하니 회원들도 그게 좋다고 하여 안내 아가씨에게 버스를 봉황산성으로 가자고 요구하였다.
 
이에 안내 아가씨는 ‘봉황산성’으로 가면 제 시간에 출국선을 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하기에, ‘봉황산성’이 멀지도 않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힐책을 하였다. 우리 일행은 호산장성이 잘 보이는 곳에 버스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버스를 돌리어 봉황산성으로 향했다.
 
우리 일정에 잡힌 호산장성(虎山長城)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1990년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을 허물고, 심지어 직경 4.4m, 깊이 6m 의 대형 우물터도 메우고, 1992년부터 장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국 측은 이 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홍보를 하였다. 명나라 시기의 만리장성의 옛터를 발견하고 1.2km 복원했다는 것이다. 1982년 중국의 담기양이 펴낸『중국역사지도집 』에는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그려져 있다. 담기양이 그린 만리장성 동단의 근거가 바로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주장에 있다.
 
진(晉) ‘태강지리지’에는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은 이 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병도는『한국고대사연구』에서 “수성현(遂成縣)은 미상(未詳)하나 지금의 황해도 수안(遂安)인 듯하고” 라는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일 뿐인 ‘황해도 수안(遂安)’ 을 갈석산이라고 단정했다.
 
이와 같은 이병도의 단정대로 편찬한 지도가 담기양의『중국역사지도집』이다. 이 지도집에는 만리장성의 동단이 황해도에 위치한 것처럼 그려졌다. 담기양의『중국역사지도집』처럼 그린 지도가 ‘동북역사재단’이 몇 해 전 추진한『동북아역사지도집』이다.
 
물론 폐기됐지만 이병도계의 식민사학자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상태는『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에서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인 주범이 노태돈과 송호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들과 같은 주류 고대사학계의 사기꾼들에게 장악되어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가 발생해도 꿀 먹은 벙어리라고 질타하였다. 『사기』에 전하는 연·진의 장성 동단이 요하(遼河) 선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노태돈의 논문을 극찬하고 있는 오강원 역시 패수(沛水)는 청천강으로, 패수(浿水)는 압록강으로 비정한 이병도계의 식민사학자다.
 
중국이 가짜 만리장성의 동단인 ‘호산장성’을 만들어 놓고, 30년 동안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여 관람료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 조작·왜곡을 비판하거나 중지시키지 않고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 우리 역사계이며 정치계의 현주소다.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을 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인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오히려 중국의 역사왜곡의 앞잡이가 되어 주구 노릇을 충실히 행하였다. 김상태가 바르게 지적하였듯이 역사계의 사기꾼들이 이 단체를 장악하여,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식민사학을 퍼뜨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심양행 고속도로로 타고 가다가 50km 지점에서 봉성(鳳城) 출구로 나오니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전면에 봉황산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온통 바위산이니 마치 서울의 북한산ㆍ도봉산의 모습처럼 빼어났다. 요령성에서 천산, 의무려산과 더불어 3대 명산으로 알려졌다. 좌우 들판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하천 둑을 넓힌 도로를 타고 가다 보니 밭의 활짝 핀 해바라기를 만났다. 해바라기 꽃의 배경이 봉황산이라서 사진도 잘 나왔다.
 
봉황산 입구에 도착했다. 나의 일정 변경의 목적은 오골성인 봉황산성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버스 기사가 봉황산으로 데리고 왔다. 3년 전에 봉황산성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남문으로 답사했던 봉황산성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남문 부근에 10여 미터의 바위산인 장대가 있었고, 북문 부근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양지바른 우측에는 3개의 막사 건물터를 발견하였다. 당시에 봉황산성의 출입이 통제를 받고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기습적이고 빠르게 봉황산성 내부를 답사하고 하산하였다.
 
주민의 연락을 받고 급히 올라오는 중국 공안원을 하산 중에 만나고 말았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압수한다는 등 대화가 오갔지만 안내자가 잘 이야기하여 탈 없이 승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봉환산성은 고구려시기에 검은 화강암 절벽이라서 오골산(烏骨山)이라 알려져 있다. 기록에는 당태종 이세민이 동순(東巡)을 하던 중 오골산에 올랐다고 했다. 이때, 봉황이 조상에 배례했던 곳이란 전설을 듣고 봉황산(鳳凰山)이란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고구려에 패한 후 화살 독으로 죽은 이세민과 관련된 전설을 후세에 만들었던 것이다.
 
고구려산성으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인 봉황산성은 오골성으로 불렀다. 거대한 오골산으로 불렸던 우측의 봉황산과 좌측의 고려성자산이 모두 바위산의 절벽이 높아서 천연요새를 이루고 있었다. 성벽은 주로 낮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막는 형식으로 쌓았다. 성벽의 길이가 16km이며, 동·남·북 세 벽의 문이 있었다. 북쪽은 거대한 봉황산이 뒤를 봐주고 좌우 청룡의 고려성자산과 백호의 봉황산의 두 산줄기가 완벽한 산성을 이루었다. 고구려산성 자료에 의하면 87개 구간의 천연장벽과 86개 구간의 돌로 쌓은 성벽으로 이루어졌으며, 성 안은 넓은 평지로 10만 명 이상의 군사들의 수용이 가능할 장소였다.
 
당시 답사했던 봉황성도 대부분 고구려성의 특징이지만 건안성, 백암성처럼 자연 지형물을 이용하여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낸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그리고 수·당과의 전쟁 시에는 군수물자 지원 등 중추역할을 했을 것이다. 성 안의 고성촌(古城村) 마을 가운데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답사단을 중국공안에 알린 주민도 고성촌의 젊은 청년이었다.
 
우리 일행은 “鳳凰山”이라고 쓴 정문에 도착하였다. 봉황산의 가장 높은 곳은 836m의 찬운봉(攢雲峰)이다. 봉황산 남쪽은 봉황산성이 위치하여 고구려의 군사작전상의 필수적인 군수물품 조달의 후방 요새의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북쪽의 최근 봉황산 지역은 등산 등 관광 중심지로 발전하여 가게 등의 상가들이 보였다. 우리 일행은 정문 안에 있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조형물 앞의 계단에 앉아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단동 시내의 ‘금강산 공원’에 있는 기념품 상점에서 기념품을 구입했으며, ‘조선대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단동항으로 이동하여 출국 수속 후 단동훼리호에 승선하였다. 선내 석식 후 배의 간판에서 간단한 답사 소감을 발표하는 등 다과파티를 열었다. 초·중·고의 어린 학생들을 답사단에 참여시킨 간도본부 회원들의 답사 소감이 감명 깊었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영토관을 심어주었다는 평가를 하면서 이번 답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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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대련의 대흑산(大黑山)과 북진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을 오르다
• 미창구(米倉溝) 장군묘와 호산장성 대신에 봉황산에 들리다
• 환인지역의 흘승골성(訖升骨城)을 답사하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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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