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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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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여행과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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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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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친스크 조약(尼布楚条约, Treaty of Nerchinsk)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연해주(沿海州) # 강도회맹 # 북경조약 # 이리조약 # 천진조약 # 최재형기념사업회 # 키아크타 조약
【역사】
(2020.09.21. 16:57) 
◈ 블라디보스톡 여행과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과정
[스카이데일리 연재] 북경조약 체결로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고토를 가다
2017년 9월 한국간도학회 이사로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를 겸하고 있는 친구인 구충서 변호사가 블라디보스톡 등 연해주 답사여행을 가자고 제안해왔다. 최재형기념사업회가 4박 5일(10.15~19)간 연해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다. 간도 연구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적절한 제안이었다. 백두산 등 간도지역은 15회나 답사하였지만 간도지역의 일부인 연해주를 답사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여기에 한국간도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는 박영규 교수가 합세하였다.
 
절친인 세 사람이 연해주 여행에 의기투합했으니 준비하느라 신이 났다. ‘연해주 항일유적 탐방단’의 단장은 김철종 새한산업 회장이 맡았다. 28명의 참가자 중에는 각 분야에 일가(독자적 경지)를 이룬 분들이 보였다. 유명한 기업의 CEO 출신인 김수필 이사장을 비롯하여 작가인 문영숙 상임이사, 은퇴 후 철원 동막리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가꾸는 이석홍 장군, CEO 출신인 민계식․김일두․문양수 사장, 안중근기념관 홍보대사인 최기홍 교수, 정민수 홍보대사, 배우인 황건 씨 등이 보였다.
 
우리 탐방단은 10월 15일 오전 11시에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만나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후 1시에 인천공항을 떠나 3시 50분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였다. 담양 출신의 조미향(趙美香) 가이드가 반겨주었다. 그는 자기소개에서 옥천 조씨이고 담양댁이라 하였다. 전용버스에 승차하여 50분 후에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이 하차하여 걸어가는 곳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오래된 건물과 유적들이 모여 있는 공원으로 보였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여러 대학을 통합하여 루스키 섬으로 옮기기 전에는 이 부근에 있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를 기념해 만든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았다. 작고 예쁜 개선문은 비운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위한 ‘개선문’이라고 하는데, 니콜라이가 황태자였던 시절인 1891년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기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2차대전 때 적함 14척을 침몰시킨 C-56 잠수함이 있었다. 1939년에 진수한 잠수함을 통째로 전시하면서 이를 ‘잠수함 박물관’이라 불렀다. 처음으로 잠수함 내부의 선실․기관실․조타실․어뢰실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었으며, 당시 승무원들인 수병들의 사진과 자료․모자․복장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잠수함 뒤에는 전쟁영웅들과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건너편 구 극동기술대학 박물관 터에는 진천 출신인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1938년 스탈린 집권 시기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금각만을 보기 위해 독수리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의 이름도 이 산의 이름인 ‘독수리 요새(Orlinoye Gnezdo)’에서 유래하였다.
 
전망대에 서 있는 십자가와 책을 들고 있는 두 명의 동상은 슬라브족의 러시아정교화에 큰 역할을 한 ‘키릴로스’와 ‘메토디우스’ 형제라고 하였다. 이 형제는 키릴문자를 만들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와 군함으로 가득한 항만인 금각만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각만 바다를 가로지르는 금각만 대교의 케이블을 지탱하고 있는 웅장한 주탑이 인상적이다. 금각만 대교 건너 이어지는 섬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지려는 듯 석양의 붉은 노을의 모습이 다가왔다.
 
저녁식사 후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최재형기념사업회의 러시아 동포학생 장학금 전달식이 있다고 하여 일행들이 호텔 로비에 모여 이들을 축하해주었다. 김수필 이사장이 두 명의 동포 대학생인 김바나바(블라디보스톡 예술대 재학, 음악 전공, 남)와 강류바(블라디보스톡 의대 재학, 여)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오후 7시 경에 몇 명의 젊은 남녀회원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의 야경을 구경하려고 혁명광장이라 부르는 중앙광장으로 나왔다. 보이는 동상은 구소련 시기(1917~1922)에 전사한 병사들의 혁명전사 기념동상으로 보였다. 다른 하나는 어두워서 누구의 동상인지는 몰라도 블라디보스톡 개척에 기여한 인물로 보였다. 또한 블라디보스톡 125주년을 기념해 만든 오벨리스크도 보였다. 중앙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아르바트 거리를 거쳐 호텔로 돌아왔다.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을 우리 선조들은 해삼위(海蔘威)라 불렀다. 블라디보스톡의 의미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고대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던 연해주를 획득한 과정을 알 필요가 있기에 간단히 기술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부동항을 얻기 위해 동진정책을 추진하였다. 1651년경 청은 러시아의 송화강~흑룡강 지역에서의 남하를 막지 못하고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연패를 당하자 조선에 조총군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은 1654년에 변급(邊岌)의 지휘 하에 150여명을 파병하였으며, 1658년에는 신유(申瀏)의 지휘하에 260여명을 파병하였다. 조선군의 조총부대가 2회에 걸쳐 청군과 함께 나선(羅禪․러시아) 정벌에 참여하여 크게 승리한 지역이 송화강 중류와 흑룡강 지역이다.
 
러시아가 이반(Ivan) 3세 때인 1483년의 시베리아 대원정이 있은 이후 본격적으로 우랄 북방에 진출한 것은 16세기 말엽이다. 카자크의 추장 예르마크(Yermark)가 1581년 달단국(시비르 칸국)을 원정하여 달단국의 수도에 토볼스크(Tobolsk)시를 건설하였으며, 러시아가 계속 동진하여 흑룡강(아무르강) 일대에 원주민을 정복한 후 요새를 구축하자 청과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양국 간에 1689년 네르친스크(Nerchinsk)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러시아의 흑룡강 진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러시아의 동방경략은 계속 돼 1700년에 캄차카의 상부를, 1702년에는 캄차카의 하부를 확보하고 1719년에 시베리아를 토볼스크, 예니세이스크, 이르쿠츠크의 3성으로 나누어 개발하였다.
 
1727년에는 청‧러 간에 ‘키아크타(Kiakhta)’ 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간의 통상의 기초를 규정하였다. 1742년에는 시베리아 미탐험 지역의 전부가 러시아 영토라는 것을 선언하였으며, 1754년에 유형수에 의한 시베리아 개발정책을 시행하였다. 알렉산더 12세는 1822년 시베리아를 동․서로 나누어 이르쿠츠크에 동부 시베리아 총독을, 토볼스크에 서부 시베리아 총독을 각각 설치․임명하는 제도를 수립하였다.
 
러시아의 흑룡강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험은 니콜라이 1세가 38세의 야심만만한 무라비에프(Muravieff) 중장을 동부 시베리아 총독에 임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시베리아 전체를 위해서 흑룡강의 중요성을 알게 된 무라비에프는 직접 배를 타고 오호츠크와 캄차카까지 답사하였으며, 그의 지시를 받은 네벨스코이(Nevelskoy)는 흑룡강 입구를 탐험하여 1850년에 페트로프스코에(Petrofskoe)와 니콜라이데브스크(Nikolaievsk) 요새를 건설하였다.
 
한편 러시아가 투르키스탄(Turkistam)을 정복한 후 청과 이리(Ili)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1853년 드 카스트리(de Castries)만에 알렉산드로프스크(Alexandrofsk) 요새, 키지호(Lake Kizi)에 마리인스크(Marinsk) 요새 등을 건설했으며 네르친스크 조약을 무시하고 러시아 군대를 흑룡강 입구로부터 그 남안에 진입시켜 사할린(Sakhalin), 쿠릴열도(Kuril Is.) 방면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리고 무라비에프가 1858년 청의 혁산(奕山) 장군과 애훈조약을 체결하였다.
 
주요 내용은 애훈강부터 흑룡강에 이르는 좌안을 러시아 영토로 하고 그 우안 우수리(烏蘇里)강에 이르기까지 청의 영토로 하며, 우수리강과 해양에 이르는 지역은 경계가 확정될 때까지 양국이 공동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후 무라비에프는 흑룡강 좌안에 흑룡강성을 설치하고 또 우수리 지방을 탐험하여 1860년에는 블라디보스톡항을 개설하고 포세트(posiet)를 점령하였다. 이후 러시아는 이 지역을 근거로 하여 극동지역을 본격적으로 경략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청과 러시아 간에 체결한 1858년의 애훈조약으로 인해 우수리강 우안을 양국이 공동관리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극동지역의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러시아의 무라비에프는 이를 무시하였다. 더구나 무라비에프는 청과 조선의 봉금지역인 연해주가 무주지임을 알고 군대를 파견하여 먼저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세트를 점령했던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애훈조약으로써 흑룡강 좌안의 광대한 지역을 취득했으나 연해주에 대한 현안은 후일로 미루고 있었다. 이를 해결할 기회가 제2차 영불 연합군과 청의 전쟁이었다. 청과 1856년 애로우(Arrow)호 사건이 발생한 후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광주성을 점령하였으며, 1858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천진을 점령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와 미국이 가세하여 청은 ‘천진조약’을 4국과 각각 체결하였다. 1860년에 청은 천진조약의 후속 조약인 북경조약을 영국과 프랑스와 각각 체결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청에 영·불 연합군과의 전쟁에 대한 ‘분쟁 조정에 대한 공로’를 빌미로 공친왕을 압박하여 1860년 11월 청․러북경조약(中露北京續增條約)을 체결하였다. 북경조약의 주요 영토조항의 내용(조약 제 1조, 제 2조)은 “국경 획정에서는 흑룡강 이북과 우수리강 이동의 전 지역, 즉 우수리강과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우수리 지방인 연해주를 러시아 영토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북경조약의 체결은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은 우리 민족 고토의 상실을 가져왔다. 이 지역은 1627년 청과 맺은 강도회맹에서 양국 간에 봉금하여 무인지대로 남겨두기로 약속한 지역이다. 청은 조선과의 이러한 약속을 어기고 연해주를 러시아에 불법 할양했던 것이다.
네르친스크 조약(尼布楚条约, Treaty of Nerchinsk)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연해주(沿海州) # 강도회맹 # 북경조약 # 이리조약 # 천진조약 # 최재형기념사업회 # 키아크타 조약
【역사】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연해주 항일투쟁의 요람 신한촌 답사기
• 블라디보스톡 여행과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과정
• 대문구(大汶口) 박물관과 태산(泰山)을 다시 오르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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