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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 정묘호란때 굴욕의 현장.그리고 멋진 풍광 (201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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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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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江華郡) 정묘호란(丁卯胡亂) # 연미정
【여행】
(2017.11.24. 13:26) 
◈ 연미정. 정묘호란때 굴욕의 현장.그리고 멋진 풍광 (2015. 6. 5)
보물섬 강화도의 마지막 편으로 연미정(燕尾亭)을 포스팅한다.
보물섬 강화도의 마지막 편으로 연미정(燕尾亭)을 포스팅한다. 더운 날씨에 오읍 약수에서 물을 마시고 담아 가려던 계획은 음용 부적합이라 적힌 팻말로 손만 씻고 연미정으로 향한다. 조금 내려가니 자동차 도로가 나와 그 도로를 따라 쭉 걸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그늘로 가면 좋은데 왜 그리로 안 갈까? 알고 보니 처음 강화나들길이 생겼을 때 해안 숲길을 따라 갔지만 지역주민과 나들길 이용객 간의 마찰로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즉 민폐를 끼쳤다는 얘기다. 새로 난 도로를 따라가니 농토를 산업단지로 조성했지만 입주한 기업은 아직 없다. 언제 기업들이 오려는지......
 
황형장군의 사당인 장무사(莊武祀) 옆을 지나 연미정으로 가는데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도 풍년이 되면 좋겠다. 멀리 김포의 문수산과 문수산성도 보인다. 드디어 조해루(朝海樓)를 지나 연미정에 도착한다. 물 흐르는 길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 불렀다. 연미정 옆의 500년 된 느티나무는 치욕의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정묘호란때 정묘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연미정이었으니 그 날 치욕의 증인이다. 느티나무 2그루 사이에 연미정이 있으니 여기까지 걸어 올라오느라고 나온 땀이 식었고 멀리 북녘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멀리 보이는 북녘땅도 자유의 땅으로 될 날을 기다려본다.
 
역사는 반복한다. 반복되는 역사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문제다. 임진왜란 전까지 왜(倭)라고 무시하고 깔보던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 일본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체 무장을 하여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스스로 왜군을 막지 못해 사대하던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왜군을 물리쳤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기록을 징비록에 남겼다. ‘징비’란 ‘내 지난 날을 반성하고 훗날에 근심이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망각하여 연달아 후금(청)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했고 더구나 일제 36년 고통과 수탈의 식민지배 통치까지 당할 뿐이었다. 어찌 남을 탓하랴. 이는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역사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과 역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가에 다가올 미래는 없다.
 
여행 개요다.
 
① 언제 : 2015.5.21(목)
② 어디로 : 강화도 나들길 1코스
③ 목적 : 역사 현장인 강화 보물섬을 찾아가는 여행
④코스 : 양천도서관 → 강화도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용흥궁 → 고려궁지 → 진송루 → 북장대 → 오읍 약수 → 연미정 →양천도서관
⑤소요시간 : 총 5시간 30분
 
 

 
▼ 오읍약수 밑 마을로 모내기 모판이 보인다
 
▼ 숲길이 아닌 도로로 걷는다.
 
▼ 길에서 만난 붉은 단풍잎
 
▼ 처음 나들길 코스 표시
 
▼ 장무사는 황형장군(1459~1520) 사당
 
 
▼ 김포 문수산이 보인다.
 
▼ 모내기 준비 작업중이다.
 
▼ 조해루(朝海樓,월곶나루에서 강화로 진입하던 누각)
 
 
 
 
연미정(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에 대해 알아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 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500년 된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이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 고려 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이 정자를 하사하였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 통제구역(民間人統制區域, 民統線) 이북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 제한을 했었으나 2008년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스럽게 관람하고 있다
 
 
▼ 장무공 황형집터
 
▼ 안내문
이곳은 장무공 황형장군께서 오위도총관에 이르는 30여년간의 남서북 국경을 침략하는 왜군과 여진족들을 남정북벌로서 국가를 지킨 후 공조판서를 역임하시고 낙향하셔서 거쳐하시던 집이다. 1459년 탄생하시고 1520년 62세에 천수를 다하셨다. 부음에 접한 중종께서 크게 슬퍼하시고 시호를 장무라 추증하셨고 이곳 연미정 지역과 3만여평의 많은 전답을 사패지로 하사하셨다. 지금도 매년 음력10월1일 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 500년 된 느티나무와 연미정
 
 
▼ 정묘호란때 정묘조약의 치욕을 느티나무는 보았고 안다.
 
▼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다.
 
▼ 1627년 후금(청)의 조선 침입으로 일어난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인조는 강화도로 피하였으며, 후금은 부장을 보내어 화의를 교섭하게 하였다. 이에 양측은 화약(和約)후 후금군의 즉시 철병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묘조약(丁卯條約)을 맺은 장소가 연미정이다.
 
▼ 앞면은 <고공신장무공황형댁>이라 적혀있고 개국(開國) 501년으로 뒷면에 표시되어 있다.
 
 
▼ 멀리 보이는 무인도 유도(留島). 몇년 전 홍수 때 황소가 임진강을 타고 표류하다가 머물렀던 섬이다.
 
▼ 작가의 마지막 설명
 
 
감사합니다.
 
 
출처: 민족문화대백과,한국기행,
강화군(江華郡) 정묘호란(丁卯胡亂) # 연미정
【여행】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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