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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자 료 실
문서 개요
2015년
2015년 12월
2015년 12월 29일
올 마지막 산행은 장봉도 (2015. 12. 29)
2015년 12월 28일
경희궁 알아보기.. 후편 (2015. 12. 28)
2015년 12월 27일
경희궁 알아보기.. 전편 (2015. 12. 27)
2015년 12월 14일
실학 박물관 (2015. 12. 14)
2015년 12월 13일
다산 정약용. - 7편, 다산 문화거리와 농악 풍경- (2015. 12. 13)
2015년 12월 12일
다산 정약용. - 6편, 생가인 여유당과 주변의 풍경들 - (2015. 12. 12)
2015년 12월 11일
다산 정약용. - 5편, 정약용 묘와 사당을 둘러보고- (2015. 12. 11)
2015년 12월 10일
다산 정약용. - 4편 , 다산의 애절양- (2015. 12. 10)
2015년 12월 9일
다산 정약용. - 3편. 다산 문화관에서 찾은 것- (2015. 12. 9)
2015년 12월 8일
다산 정약용. - 2편. 왜 많은 책을 썼나?- (2015. 12. 8)
2015년 12월 7일
다산 정약용. - 1편, 역사채널 그날 - (2015. 12. 7)
2015년 12월 1일
수종사에서 운길산 가는 길 (2015. 12. 1)
2015년 11월
2015년 11월 30일
수종사 5편(최종) - 삼정헌, 팔각오층탑, 부도 둘러보기- (2015. 11. 30)
2015년 11월 29일
수종사 4편 -산신령각, 응진전, 해탈문 둘러보기- (2015. 11. 29)
2015년 11월 28일
수종사 3편 -일주문에서 대웅보전까지 둘러보기- (2015. 11. 28)
2015년 11월 27일
수종사 2편 -수종사(水鐘寺)와 세조- (2015. 11. 27)
2015년 11월 26일
수종사 1편 - 일출을 찍다- (2015. 11. 26)
2015년 11월 13일
푸른 수목원의 가을. (2015. 11. 13)
2015년 11월 7일
서울 둘레길 고덕.일자산(3코스)의 가을 3편 (2015. 11. 7)
2015년 11월 6일
서울 둘레길 고덕.일자산(3코스)의 가을 2편 (2015. 11. 6)
2015년 11월 5일
서울 둘레길 고덕.일자산(3코스)의 가을 1편 (2015. 11. 5)
2015년 11월 2일
충남 예산 전통 5일장 (2015. 11. 2)
2015년 11월 1일
조선 고종 후비 무덤인 영휘원과 산사나무 (2015. 11. 1)
2015년 10월
2015년 10월 31일
세종대왕 기념관 야외의 전통혼례식 (2015. 10. 31)
2015년 10월 29일
춘천 강촌 봉화산에 다녀와서 (2015. 10. 29)
2015년 10월 27일
세종대왕 기념관 -후편- (2015. 10. 27)
2015년 10월 26일
세종대왕 기념관 -전편- (2015. 10. 26)
2015년 10월 25일
홍릉숲 탐방기 -후편- (2015. 10. 25)
2015년 10월 24일
홍릉숲 탐방기 -전편- (2015. 10. 24)
2015년 10월 23일
인천 3형제섬 여행기 -마지막 편- (2015. 10. 23)
2015년 10월 22일
인천 3형제섬 여행기 -제3편- (2015. 10. 22)
2015년 10월 21일
신도, 시도, 모도( 인천 3형제섬) 여행기 -2편- (2015. 10. 21)
2015년 10월 20일
인천 3형제 섬(신도,시도,모도) 여행기 - 1편- (2015. 10. 20)
2015년 10월 16일
가을 밤을 서울 억새축제밭에서 (2015. 10. 16)
2015년 10월 15일
부여 부소산성 탐방기 (2015. 10. 15)
2015년 10월 14일
부여 낙화암 고란사와 백마강 탐방기 (2015. 10. 14)
2015년 10월 13일
부여 박물관 탐방기 (2015. 10. 13)
2015년 10월 12일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탐방기 (2015. 10. 12)
2015년 10월 11일
동의보감과 허준박물관 (2015. 10. 11)
2015년 10월 10일
2015 허준 축제와 허준박물관 알아보기 (2015. 10. 10)
2015년 10월 9일
부여 궁남지 탐방기 (2015. 10. 9)
2015년 9월
2015년 9월 26일
2015 여의도 불꽃축제 정보 (2015. 9. 26)
2015년 9월 25일
겸재 정선 그림속 현장 찾기 -마지막편- (2015. 9. 25)
2015년 9월 24일
겸재 정선 그림속 찾기 -5편(청휘각)- (2015. 9. 24)
2015년 9월 23일
겸재 정선 그림속 찾기 -4편(필운대,수성동,)- (2015. 9. 23)
2015년 9월 22일
도란도란 서울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2015. 9. 22)
2015년 9월 20일
겸재 정선 그림속 찾기 -3편- (2015. 9. 20)
2015년 9월 19일
겸재 정선의 그림속 찾기 -2편- (2015. 9. 19)
2015년 9월 18일
겸재 정선의 그림(장동8경)속 찾기 -1편- (2015. 9. 18)
2015년 9월 11일
미리가 본 억새축제장. 하늘공원 (2015. 9. 11)
2015년 9월 9일
사육신 공원 둘러보기 -후편- (2015. 9. 9)
2015년 9월 8일
사육신 (死六臣)공원 둘러보기 -전편- (2015. 9. 8)
2015년 9월 1일
청와대 사랑채에 가보셨나요? (2015. 9. 1)
2015년 8월
2015년 8월 25일
다시 찾은 장봉도 (2015. 8. 25)
2015년 8월 16일
독립문은 왜 그 자리에 있을까? (2015. 8. 16)
2015년 8월 3일
인기 짱! 민통선내 유스호스텔 정보 (2015. 8. 3)
2015년 8월 1일
도라산역과 도라산 전망대 (2015. 8. 1)
2015년 7월
2015년 7월 30일
제 3땅굴을 다녀와서 (2015. 7. 30)
2015년 7월 29일
부산바다 축제에 풍덩하기 (2015. 7. 29)
2015년 7월 27일
임진각을 다녀 와서 (2015. 7. 27)
흥선 대원군의 운현궁 탐방기 (2015. 7. 27)
2015년 7월 22일
경회루 특별 관람 정보 (2015. 7. 22)
2015년 7월 20일
인천 용유도 왕산해수욕장과 선녀바위를 다녀와서 (2015. 7. 20)
2015년 7월 16일
신나는 2015 보령 머드 축제 정보 (2015. 7. 16)
2015년 7월 9일
수원 화성 알아보기 (2015. 7. 9)
한강 선유도 풍광과 나무들 -5편- (2015. 7. 9)
2015년 7월 6일
한강 선유도 풍광과 나무들 -4편- (2015. 7. 6)
2015년 7월 2일
한강 선유도 풍광과 나무들 -3편- (2015. 7. 2)
2015년 7월 1일
한강 선유도 풍광과 나무들 -2편- (2015. 7. 1)
2015년 6월
2015년 6월 26일
한강 선유도 풍광과 나무들 -1편- (2015. 6. 26)
2015년 6월 16일
인천 장봉도 산행기 (2015. 6. 16)
2015년 6월 15일
인천 장봉도 바다길 (2015. 6. 15)
2015년 6월 9일
봄·봄과 동백꽃의 김유정을 칮아 (2015. 6. 9)
2015년 6월 8일
겨울연가의 남이섬 방문기 (2015. 6. 8)
2015년 6월 5일
연미정. 정묘호란때 굴욕의 현장.그리고 멋진 풍광 (2015. 6. 5)
2015년 6월 4일
아픈 역사의 고려궁궐터와 강화산성 (2015. 6. 4)
2015년 6월 2일
용흥궁. 졸지에 왕이 된 강화도령 살던 터 (2015. 6. 2)
2015년 6월 1일
115년 된 한옥성당 탐방기 (2015. 6. 1)
2015년 5월
2015년 5월 30일
파주,연천,양주의 감악산 산행기 (2015.5.30)
2015년 5월 28일
한양도성에 무엇이 있을까? 돈의문터~정동 ~ 숭례문 (2015.5.28)
2015년 5월 27일
정동야행(貞洞夜行) 축제 (2015.5.27)
2015년 5월 26일
한양도성에서 무엇을 배울까? 창의문~ 돈의문 터 (2015.5.26)
2015년 5월 22일
고석정. 쇠둘레 길. 그리고 한반도 중심 철원 (2015.5.22)
2015년 5월 21일
서울 둘레길 4-2구간. 양재시민의 숲 ~ 사당역 (2015.5.21)
2015년 5월 19일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방문기 (2015.5.19)
2015년 5월 17일
철원 월정리역과 노동당사 방문기 (2015.5.17)
2015년 5월 15일
연등회. 연등 축제 그리고 다양한 축제들 (2015.5.15)
2015년 5월 13일
철원 도피안사. 국보 63호 철불좌상 (2015.5.13)
2015년 5월 11일
다시 찾은 겸재 정선 미술관과 궁산 (2015.5.11)
2015년 5월 9일
서울 둘레길 4코스. 대모산과 구룡산 (2015.5.9)
2015년 5월 8일
행주산성. 그리고 권율장군을 보다 (2015.5.8)
2015년 5월 6일
망원정 방문기 (2015.5.6)
2015년 5월 4일
용양봉저정을 다녀와서 (2015.5.4)
2015년 5월 2일
북한산 보현봉. 일선사. 그리고 대성문 (2015.5.2)
2015년 4월
2015년 4월 27일
윤동주를 찾아. 기념관. 하숙집 터. 문학관. 그리고 원고 보존터 (2015.4.27)
2015년 4월 24일
강남 봉은사 방문기 (2015.4.24)
2015년 4월 22일
대구 비슬산 대견사, 진달래 축제 (2015.4.22)
2015년 4월 18일
정감록, 십승지十勝地 그리고 여행지 -후편- (2015.4.18)
2015년 4월 11일
정감록, 십승지十勝地 그리고 여행지 -전편- (2015.4.11)
2015년 4월 8일
DMZ 자전거 투어 (2015.4.8)
2015년 4월 5일
겸재 정선미술관, 궁산 소악루 그리고 양천향교 (2015.4.5)
2015년 3월
2015년 3월 24일
진해 군항제 (2015.3.24)
2015년 3월 6일
서울 둘레길 TIP (2015.3.6)
2015년 2월
2015년 2월 21일
덕유산 향적봉 산행기 (2015.2.21)
2015년 2월 20일
덕유산 백련사 (2015.2.20)
2015년 2월 12일
정동진,백복령, 그리고 정선 생태수목원과 모노레일 -후편(2일차)- (2015.2.12)
2015년 2월 11일
정동진, 백복령, 그리고 정선 모노레일 -전편- (2015.2.11)
2015년 2월 7일
용마산에 다시 가다. 화랑대역에서 묵동천,용마산거쳐 용마산역까지 걷다. (2015.2.7)
2015년 1월
2015년 1월 28일
서울 둘레길 제2코스. 서울 아차산,용마산, 그리고 망우산 (2015.1.28)
2015년 1월 27일
낙성대. 강감찬 그리고 귀주대첩 (2015.1.27)
2015년 1월 25일
서울 둘레길 5코스. 사당역에서 서울대 입구 (2015.1.25)
2015년 1월 11일
용평스키장 (2015.1.11)
2015년 1월 7일
고궁 박물관 (2015.1.7)
2015년 1월 2일
대관령 눈꽃축제, 태백산 눈축제 (2015.1.2)
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1.30. 10:38 (2017.11.30. 10:32)

【여행】부여 궁남지 탐방기 (2015. 10. 9)

파란 하늘에 박힌 하얀 목화솜 같은 구름이 펼쳐진 지난 10월 2일(금) 서울 우장산 숲속 도서관(길 위의 인문학)에서 과거로 떠나는 부여 탐방에 40여 명과 함께 참가하였다.
파란 하늘에 박힌 하얀 목화솜 같은 구름이 펼쳐진 지난 10월 2일(금) 서울 우장산 숲속 도서관(길 위의 인문학)에서 과거로 떠나는 부여 탐방에 40여 명과 함께 참가하였다. 때마침 부여는 제61회 백제 문화제 기간 중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고유제(告由祭, 국가나 개인의 집에서 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또는 장차 치르고자 할 때에 종묘宗廟나 가묘家廟 등에 그 사유를 아뢰는 제사)가 열려 축제로 인파가 많았다.
 
국립 부여박물관(國立扶餘博物館), 정림사지 5층 석탑(定林寺址 五層石塔)을 보고 쌈밥 점심을 먹은 후 부소산성(扶蘇山城), 고란사(皐蘭寺) , 고란사 나루터에서 구드래 나루터까지 황포 돛대 배로 백마강의 조룡대, 낙화암을 보았으며 끝으로 연밥이 익어가는 궁남지(宮南池)를 다녀와 포스팅한다.
 
▼ 궁남지 전경(국민방송 캡쳐)
 
 

 
▶ 궁남지(宮南池)는?
 
문화재 사적 제135호이며 현재 면적 13,000평으로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634년(무왕 35)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뱃놀이 기록도 있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못의 동쪽 언덕에서 백제 때의 기단석과 초석, 기와조각, 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근처에 이궁(離宮)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사계절이 아름다워 7월에는 천만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구드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궁남지 전설 안내판
 
 
▼포룡정(抱龍亭)으로 가는 궁남지 다리
 
 
 
▼ 포룡정​
 
 
▼ 포룡정에 계시던 문화해설사 분이 보이지 않는다.
 
 
▼ 포룡정 현판 글씨 주인공은 부여 출신 전 국무총리 김종필
 
 
▼ 서동요 (薯童謠)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정을 통하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몰래 안고 간다(夜矣 夗[卯]乙抱遣去如).”
 
 
▼포룡정기(抱龍亭記).1975년
 
 
 
 
 
▼ 큰 빅토리아 연(지름 90cm~ )
 
 
 
▼ 물양귀비
 
 
▼ 서동 연꽃 축제때 연꽃사진이며 꽃말은 청결, 신성, 당신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 -유튜브 사진 -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 만해 한용운의 알수 없어요 -
 
​▼ 연밥
 
 
▼ 밤에 피는 수련(낮에 핀다하여 수련睡蓮이라 하였다는데.....)
 
 
▼ 수련과 벌
 
 
 
 
 

 
▶ 백제 무왕(武王)에 대하여
 
백제 제30대 국왕으로 재위기간은 600~641년이다. 이름은 장(璋) 또는 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제29대 법왕(法王)의 아들이며,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의 아버지이다.
 
무왕(武王) 즉위 직전의 혜왕(惠王)과 법왕은 모두 재위 1년 만에 죽었다. 위덕왕(威德王)은 45년 동안 집권하다가 598년 12월에 죽었고, 70여세가 넘은 위덕왕의 동생 혜왕이 598년 12월에 즉위했다. 혜왕은 이듬해 599년에 죽고 이어 혜왕의 아들인 법왕이 즉위했는데 법왕도 이듬해인 600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백제는 내외 정세가 악화되고 귀족 간에 내분이 일어났으며 왕실 권위가 약화되었는데, 거듭되는 왕의 단명은 그러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이 무왕의 즉위로 어느 정도 완화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麻)를 캐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서동(薯童)이 지략을 발휘하여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백제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즉위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왕의 즉위에도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41년간에 달하는 무왕의 재위 기간에 왕권이 안정되었는데, 이는 무왕 재위 기간 동안 집요하게 추진해 온 신라 침공과 같은 정복 전쟁에서의 승리에 힘입은 것이다.
 
무왕은 소백산맥을 넘는 통로의 확보에 치중했다. 602년과 603년에는 신라와의 아막산성(阿莫山城)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좌평(佐平) 해수(解讎)는 4만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였다. 아막산성은 소백산맥으로 통과하는 중요한 통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백제-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백제로서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전투였으나 해수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막산성 전투에서 좌평 해수의 참패는 무왕의 권력을 회복시키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좌평 해수가 4만 병력을 손실한 것은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3만 병력을 잃은 것보다 더 컸다. 이로 인해 무왕은 귀족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무왕은 차츰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624년 백제는 소백산맥을 넘어 함양으로 진출하였다. 백제가 함양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소백산맥을 넘어 신라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왕은 636년독산성(禿山城: 경북 성주군 가천면으로 비정)을 기습하여 함양을 점령한 후 동남쪽으로 진출하여 진주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던 듯하다. 함양의 동북쪽으로는 낙동강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함양의 동남쪽으로는 낙동강 하류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하였다.
 
무왕은 신라 서쪽 변방을 빈번하게 침공함으로써 백제군이 낙동강 방면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백제는 신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한층 가중시켰다. 무왕의 영역 확대는 결과적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적인 유착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정복 전쟁의 승리에 힘입어 무왕 대의 백제는 국제 문제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무왕은 어느 한쪽에 가담하기보다는 양쪽의 대결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취하려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강화된 왕권의 표징으로, 또 왕권의 존엄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대규모 역사(役事)를 단행하였다. 630년사비궁(泗沘宮)을 중수했으며, 634년 왕궁의 남쪽에 인공 호수와 그 안에 인공 섬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신선이 산다는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같은 해 그 무렵 백제의 중심적인 사원으로서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왕흥사(王興寺)도 완성되었다. 이 절은 600년 법왕이 착공한 뒤에 죽자, 아들인 무왕이 30여 년 만에 완성시킨 것이다. 왕흥사는 절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왕이 건립을 주도했고 몸소 불공을 드린 곳으로서 왕실의 원찰(願刹) 또는 왕과 특별히 밀착된 사원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역사는 왕권의 안정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므로 귀족 내부의 분쟁 요인 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어느 정도 억제되었음을 뜻한다. 대왕포(大王浦: 충청남도 부여 백마강에 지금도 그 지명이 전함)라는 지명과 함께, “무왕과 신하들이 그 곳에서 흥겹게 어우러져 즐겼다”는 고사는 표면적으로 태평한 백제 지배층의 정황을 잘 보여준다.
 
무왕은 강화된 왕권에 힘입어 재위 후반기에는 익산 지역을 중시해 이 곳에 별도(別都)를 경영하고, 장차 천도(遷都)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궁성이 될 왕궁평성(王宮坪城)을 익산에 축조하는 동시에, 흔히 궁성 안에 있어서 내불당(內佛堂)의 성격을 띠는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9년 1월 14일에 미륵사지 서탑 해체 중 발견된 금동사리함 명문에 의하면, 정실 왕후 사택씨(沙宅氏) 세력의 보시로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익산에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였음이 밝혀졌다.
 
미륵사지는 거의 20여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그 결과 사찰구조가 3탑 3금당의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탑의 층수도 9층이었음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신라의 황룡사 구층목탑(皇龍寺九層木塔) 건립이 신라의 삼국통일 의지를 상징해주듯이, 미륵사의 구층탑 건립도 이와 연결될 수 있으며 미륵사의 3원 건립도 백제를 중심으로 한 삼국의 공존과 세력균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미륵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무왕와 왕비(후궁으로서 선화공주)가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도중 연못 속에서 솟아오른 미륵삼존상(彌勒三尊像)을 만나 이를 모시기 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백제 어느 지역의 연못에서 솟아 나왔다는 점이다. 백제는 미륵불국토(彌勒佛國土)를 이룰 수 있었던 인연이 깊은 땅이었는데, 이를 실현시켜준 인물로서 무왕이 추앙되었다. 미륵불국토의 실현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제민들에게 앞으로의 전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미륵불국토의 실현을 위해서 희생된 자신이 다시 미륵에 의해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무왕은 익산 천도를 통한 귀족세력의 재편성을 기도했다. 비록 익산 천도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관산성 패배 이후 동요된 백제 왕권이 무왕 때 와서 급속히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아들인 의자왕이 즉위 초기에 정치적 개혁을 통해 전제 왕권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무왕 때의 백제는 정복 전쟁의 승리와 더불어 사비궁의 중수나 왕흥사·미륵사의 창건 같은 대규모 역사가 시행될 정도로 전제 왕권이 강화되고, 대외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사비시대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위치에 있는 무왕은 흔히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서동설화 속의 무강왕(武康王)과 관련 짓고 있다. 그런데 서동설화는 여러 시대의 전승들이 복합,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커서 단순한 일원적 해석은 위험하다.
 
예컨대 동성왕(東城王)과 관련된 혼인 설화와 무왕 대의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 외에 무령왕이 즉위 전 익산 지역의 담로장(擔魯長)으로서 이 지역을 다스린 데서 생겨난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라는 견해도 있기 때문이다.
 
무왕의 능은 익산시 팔봉면 신왕리에 있는 쌍릉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고려시대에 이미 도굴된 적이 있는 쌍릉은 1916년에 조사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사비시대 능산리 고분의 묘제와 일치함이 밝혀졌다. 무왕의 능을 통해 그가 익산 태생이며 그의 성장기반이었던 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산을 중시했던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 다음은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입니다.
 
​>>> 출처: 부여군청, 유튜브. 국민방송, 민족문화대백과,위키백과,문화재청,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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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