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서재(巖棲齋) 암서재는 우암(尤庵) 송시렬(宋時烈)이 현종(顯宗) 7년(1666)에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운영담(雲影潭) 위에 5칸 초당(草堂)을 짓고 ‘화양계당(華陽溪堂)’ 이라 하였다. 그 뒤에 금사담(金沙潭) 위에 3칸 정 자를 짓고 ‘암서재(巖棲齋)’라 하였는데 경종(景宗) 1년(1721)에 중수하였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75 호로 지정되었다.
1. 화양동 바위 위 정사에서 읊다(華陽洞 巖上精 舍吟)
송시렬(宋時烈) 〔1607-1689〕
시냇가에 바위 벼랑 열렸으니 溪邊石崖闢 그 사이에 집 한 칸을 지었네 作室於其間 고요히 앉아 성인의 교훈 찾아 靜坐尋經訓 조금이라도 따르려 노력한다네 分寸欲躋攀
【송자대전(宋子大全)】
2. 초당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하나의 돌봉우리 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구름노을이 지나 가면 보이지 않고 흰 눈이 덮히면 우뚝 솟아 다른 봉우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회손이 시를 청하므로 먼저 시운에 따라 한 절구를 짓다 (草堂南望一石峯 則若有若無 雲霞過之 則全不見 白 雪冒之 則分明突兀 諸峯莫敢望焉 晦孫請賦之 用前韻 爲書一絶)
송시렬(宋時烈) 〔1607-1689〕
한 봉우리 구름 밖에 솟으니 一峯雲外起 가물 가물, 있는 듯 없는 듯 微茫有無間 눈 내린 뒤에 분명히 보이니 雪後分明見 고고하여 오를 수가 없구나 孤高不可攀
【송자대전(宋子大全)】
송시렬(宋時烈) 〔1607-1689〕
새벽에 일어나니 공기가 차갑고 溪堂晨起氣凄凄 아지랑이가 산기운 가득 깔렸네 林靄山嵐四望迷 하염없이 금서 대하고 앉았으니 悠然靜對琴書坐 종일 새들이 나를 위해 노래하네 盡日幽禽向我啼
【송자대전(宋子大全)】
심 육(沈 錥) 〔1685-1753〕
책상 머리에 오히려 옛 장서 있으니 床頭尙有舊藏書 여기 우암선생 오래 머무신 곳이네 爲是先生久此居 무늬 하나로 숨은 표법을 어찌 알리 那把一班知隱豹 강직이 싫지 않아서 시어를 취했네 不嫌多骨取時魚 청고의 표상 지금도 있는 것 같으나 淸高標像今猶在 문과 담장 허물어져 유적은 멀어지네 牢落門墻迹已疏 뜰 앞에 가을 풀이 가득하니 서글프고 坐惜庭前秋草遍 어긋남을 가르쳐 바로 잡을 사람 없네 更無人得謾敎鉏
【저촌유고(樗村遺稿)】
송능상(宋能相) 〔1710-1758〕
물소리가 풍우소리 우레소리 같은데 如風如雨或如雷 밤에 누어서 들으니 더욱 신기하구나 夜枕聽來更奇哉 그 누가 소악이 없어졌다고 말하리오 誰道于今韶樂廢 인심이 보내지 않아 잠시 겉돌 뿐인데 人心不遣暫時回
【운평집(雲坪集)】
6. 화양초당 : 연재선생 모시고 돌아가며『춘추』 를 강론하며(華陽草堂 : 陪淵齋先生輪講春秋)
이병운(李柄運) 〔1858-1937〕
우암이 중국을 높히는 의리는 尤翁尊華義 그 골수가 춘추에 실려 있네 骨髓自麟經 스승 모시고 소리내어 읽으니 陪師今大讀 파관 물이 대답하는 듯 하네 巴谷若應聲
【긍재문집(兢齋武集)】
7. 암서재 : 경건히 우암선생의 시를 차운하다 (巖棲 齋 : 敬次尤菴先生韻)
이병운(李柄運) 〔1858-1937〕
맑은 못 푸른 벼랑 위에 澄潭蒼壁上 깨끗한 삼칸 집이 있네 瀟灑屋三間 유학을 배울 곳 있으니 有地講吾道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세 努力敬躋攀
【긍재문집(兢齋文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