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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괴산군 괴산군 시문집 (2000)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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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018년 7월 20일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 / 웅화(熊化)
about 괴산군 시문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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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정사
【향토】
(2018.07.20. 10:25) 
◈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 / 웅화(熊化)
기유년(己酉年)에 내가 사신(使臣)으로 조선에 오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회부(晦夫) 유근(柳根)이 새 임금의 명으로 나를 강 위에서 맞이하였다.
■ 고산정사(孤山精舍)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
웅 화(熊 化)〔 ? - ? 〕
 
기유년(己酉年)에 내가 사신(使臣)으로 조선에 오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회부(晦夫) 유근(柳根)이 새 임금의 명으로 나를 강 위에서 맞이하였다. 회부의 재주와 명망이 알려진 지는 오래되었다. 앞서 조선에 왔던 사람이 북경(北京)에 그 글을 전하여 내가 읽고 마음에 와닿는 것이 소박하여 좋아하였다. 이번에 조선에 와서 직접 만나보니 마치 평생을 같이 여행하며 산수 좋은 곳을 지날 때마다 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으며 즐기는 것 같았다. 한양(漢陽)에 도착하여 틈을 내어 한강과 서호의 여러 승경을 모두 구경하고자 하니 회부가 따랐다. 내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회부가 다시 국경까지 배웅하였는데 전날 회부와 놀던 곳을 지나면서 눈을 돌려 지난 자취를 보니 떠나기가 서운하여 오래 머물며 가지 못하였다. 회부가 자랑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뛰어난 경치는 다 보지 못했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몽촌(夢村)’이라는 곳이 있는데 우리 아버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내가 몽촌에서 30리 가까운 곳에 살 터를 잡았다. 그 땅이 넓고 사방이 탁 트였는데 그 가운데 산 하나가 우뚝 솟아 이름이 ‘고산(孤山)’이다. 산에는 본래 소나무가 많아 푸른 빛으로 크게 헤아리니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만송정(萬松亭)’이라 하였다. 그 아래로 물이 합쳐 흐르다가 고여 못이 되었는데 곧 ‘영화담(映花潭)’이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보고 위를 쳐다보면 얻는 바, 다 알지 못하지만 이름을 얻은 것은 ‘은병(隱屛)’, ‘창벽(蒼壁)’, ‘영객령(迎客嶺)’, ‘황니판(黃泥坂)’, ‘제월대(霽月臺)’, ‘관어대(觀魚臺)’이다. 비록 형상은 다르고 하나 같지 않으나 그 중에서도 ‘영화담(映花潭)’이 가장 뛰어나다. 물 깊이는 몇 길이 되지만 맑아서 바닥이 보이고 진달래와 철쭉이 돌 틈에서 자라는데 늦은 봄에 꽃이 피면 물 속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가 하늘색과 서로 어울려 비친다. 내가 만송정이 내려다 보이는 그 위 큰 소나무 수 십 그루가 늘어선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고산정사(孤山精舍)’라 하였다. 선생은 기이함을 좋아하시니 나를 위하여 기문을 써주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내가 듣고서 정신이 고무되어 희롱하여 회부에게 말하기를 “어찌 내게 한 번 보이기를 참는가?”하니 회부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귀국하여 황제에게 보고할 일이 닥아오고 우리 임금은 나를 생각하는 것이 깊다. 공무에 매인 몸이라 따를 수 없는데 나를 따라 놀겠는가?” 하였다. 내가 다시 말하기를 “회부는 곧 스스로 조석으로 가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니 회부가 걱정스럽게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는 초저녁부터 공무를 살펴 꿇어앉아 아뢰어야 하고 밥을 먹어도 서둘러야 하니 조석으로 즐길 수 있겠는가?”하였다. 내가 멍청하여 깨닫지 못하였다. 돋았던 흥이 슬퍼지니 행락이 어려졌다. 내가 수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이 곳에 왔거늘 하루를 놀지 못하고 회부는 뜻대로 맡은 일을 하면서 조석으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모두 직무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동방삭(東方朔)도 살았을 때 호를 ‘이은(吏隱)’이라 하였어도 임천(林泉)에서 편안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매자진(梅子眞)도 옛날에는 ‘선리(仙吏)’라 불렀으나 끝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대은(大隱)보다 분명하다는 조정과 시정의 말은 허망한 것이다. 대저 내가 보지 않은 바를 그대를 위해 그대가 스스로 얻은 바를 나의 기문을 빌려 전하려는 것도 모두 허망한 것이다. 유근이 가만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대궐에 들어가 조정과 지방에서 벼슬한 지 30여년 군(郡), 조(曹), 관(館), 각(閣)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동쪽 정벌할 때 직책이 군량을 맡아 몸이 행렬간에 있었는데 소유(少遊)의 말이 깨어나서 거짓말을 아니한다고 맹세해도 문서의 추이에 따라 이르지 않는다면 가장 요긴한데를 밟아 오를 것이다 이제 늙어 벼슬을 내놓고 은퇴하려는 바램이 아침저녁으로 한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그대는 재주와 능력이 근본에 전통하여 국체를 모두 밝히고 가장 오래동안 일을 시험하고 펼치는 솜씨가 밝다. 그러므로 새 임금이 선왕의 사업을 계승하여 옛 신하를 찾으면 넉넉히 행락을 즐길 때가 아닌가? 그대는 다만 내 기문을 가지고 돌아가 옷자락을 땅에 끌면서 느긋하게 지낼 때 한번 펼쳐 가지고 놀다가 마땅히 집에 누어서 즐길 것이고 공을 이루어 명예 얻기를 기다려 소나무 있는 집과 꽃피는 못에서 그대가 스스로 취한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즐기는 것은 실로 내가 다 얻고자 하는 바를 힘써 구하는 것이다. 내가 다 얻고자 하는 바를 힘써 구하고 다시 찾는다면 그대는 다른 날 곧 재주로서 그대를 붙잡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길이 어려워 나가지 못하고 공관에 신세가 물락한 것이 구년이나 되었어도 능히 회부의 다다름과 같지 않다. 강남에 이르면 땅이 험하고 집이 가난하여 능히 회부의 승지와 같은 산을 얻지 못하였으나 돌아보면 우주는 넓다. 명산대천을 누가 마음대로 주인이라 하겠소? 자녀들이 혼인하기를 기다려 마땅히 머리 풀고 높은 걸음으로 옛 사람의 오악(五嶽)놀이를 본받아 그 자취를 따르는 것도 내가 사사로이 얻는 것이다. 회부보다 사치하지 아니하니 얻는 바가 많겠는가? 그러나 내가 회부보다 30년이나 젊으니 반드시 자녀들이 결혼하기를 기다려 이 뜻을 이룰 것인 즉 이는 조석으로 능한 바가 아니다. 마침내 다른 날 결과를 얻어 그 인연으로 마땅히 남쪽으로 상수(湘水)를 다 향하고 동쪽으로 우혈(禹穴)을 찾고 오회(吳會)의 부강(浮江)을 지나서 황하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 들어가 북쪽으로 진(晉)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의 옛 터를 두루 살펴보고 대종(岱宗)에 올라 동해(東海)를 바라보며 백악(白嶽)에서 한강(漢江)이 있는 곳을 가르킨다면 혹 회부도 공을 이루어 명예를 얻을 때로다. 이름을 청하여 기록함으로써 오늘의 약속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만력(萬曆) 기유년(己酉年) 5월 17일 사진사제(賜進士第) 행인사행인(行人司行人) 흠차사일품복(欽差賜一品服) 강우(江右) 웅화(熊化)가 짓고 아울러 쓰다.
 

 
孤山精舍記
 
歲己酉 余奉使來東 領中樞府事柳晦夫根 以嗣王命逆余江上 晦夫負才名最久 先是至者 傳其文於京師 余讀而善之心與者素矣 至是一把臂 卽如平生輪蹄 所歷佳山水處 輒布石呼酒嘯詠 以爲樂 尋抵王都 將命之暇 得窮漢江西湖諸勝 晦夫從焉 及余竣事歸 而晦夫復護之出境 過前所徑遊者 轉眄陳迹 依依久之 若未能去 晦夫詑余曰 是未盡奇也 泝漢江而上曰夢村 則先大夫之壟在焉 根亦卜地 於夢村三十里之近 其地廣衍 四寒中一山突起 是名孤山 山故多松葱翠 以萬計爲構亭其上 曰萬松亭 其下二水合流 匯爲潭 卽映花潭也 俯仰所得 莫能盡識 其得名者 爲隱屛 爲蒼壁 爲迎客嶺 爲黃泥坂 爲霽月觀魚二臺 雖異狀不一 而映花潭爲最勝 潭水深數丈 其淸見底 杜鵑躑躅 羅生石罅間 當暮春花發 倒影水中 空色相應映 而余亭臨其上 前搆小屋 列長松數十株合 名之曰孤山精舍 先生好奇 盍爲我記之 余聽之神往因戱謂晦夫曰 向何忍我一觀乎 晦夫笑曰 公迫於反命 吾君伊人之懷深矣 縶維之無從 而能從我遊乎 余復謂 晦夫卽自能朝夕往觀乎 晦夫蹙然曰 未能也 吾夙夜在公啓跪 飮食之不遑 能朝夕樂此乎 余不覺惘然 興懷嗟乎行樂之難也 余能不遠數千里 以至於斯 而不能展一日之遊 晦夫能擅爲已業 而不能朝夕 有其樂 則皆職守限之也 故東方生時 號吏隱 未聞其有林泉之適 梅子眞 昔稱仙吏 終於長往而不返 則信乎大隱 朝市之言妄也 夫以余所未見者 而爲君記 以君所自得者而欲籍 余記以傳 則皆妄也 晦夫黙然良久曰 根早獲通籍 歷官中外者 三十餘年 郡曹館閣 無不涉也 猶記東征之役 職典軍興 身在行間 少遊之言 寤矢不諼 不謂隨牒 推移 躐躋樞要而今老矣 菟裘之願 朝暮遂焉 余曰 不然 君才力精幹明悉 國體而試事 最久曉暢掌 故新君嗣服 訪落舊臣 非優遊行樂時也 君但持我記 歸曳裾之 暇時一展玩 以當臥遊 俟功成拂衣 松舍花潭 恣君自取 然君所樂者 實余所欲函得 而力求之者也 余所欲函得 而力求者 而復需 君於異日 則以才不逮君也 余蹇策不前陸沉使署者 垂九載 不能如晦夫之達 江南地隘 家貧不能得山 如晦夫之勝 顧宇宙廣矣 名山大川 誰任爲主 期以婚嫁之畢 當散髮高步效 昔人五嶽之遊 杖屐所適 我得私之 不侈於晦夫 所得多乎 然余少晦夫且三十年 必俟婚嫁之畢 以成此志 則是非朝夕所能 遂他日獲果 此緣當南盡衝湘 東探禹穴 歷吳會浮江 灌遵河 而北遍 閱晉齊魯之墟 登岱宗 望東海 指白嶽 漢江所在 或亦晦夫功成拂衣時乎 請名識之 以毋忘今日之約 萬曆己酉 仲夏月十七日 賜進士第 行人司行人 欽差賜一品服 江右 熊化撰倂書
【고산정(孤山亭) 벽상기(壁上記)】
# 고산정사
【향토】 괴산군 시문집 (2000)
• 애한정기(愛閑亭記) / 박지겸(朴知謙)
•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 / 웅화(熊化)
• 청원정기(淸遠亭記) / 서거정(徐居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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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