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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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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 : 1759년 영조 3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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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자 : 한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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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맹자의 사상을 밝히고, 그 도로써 제세구민하려는 이상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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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 중국의 역대 인물들의 초청을 모두 물리치고맹자를 만나 그의 도를 받아 세상을 교화할 것을 마음 먹고 물러나오는광경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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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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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해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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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영조 35) 한석지(韓錫地)가 지은 가사. 작자의 문집 ≪온고록 溫故錄≫(일명 明善錄) 끝에 실려 있다. 작자가 51세 때 운림(雲林) 중덕산 (中德山)에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국한문혼용으로 되어 있으며 4음보 1행으로 헤아려 총 140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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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찾는다고 하여 나가 보았더니, 뜻밖에도 중국 역대인물인 한신(韓信)·장량(張良)·엄광(嚴光)·진단(陳邱)·가의(賈誼) 등이 자기를 초청하러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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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자는 여러 가지 핑계로 맹자의 도와 거리가 있는 이들의 초청을 거부하고, 맹자의 제자를 만나 그의 인도로 맹자를 알현하게 된다. 맹자는 낭랑한 음성으로 작자를 위로하고, 자기의 도를 잘 지켜 세상을 교화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크게 감격한 작자는 그의 부탁을 명심하고, 절하고 물러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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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으로 보아 작자는 맹자의 도와 사상을 사모하고 숭상한 나머지, ‘꿈’을 빌려 이에 대한 자기의 이상을 펴 보려 한 것인데, 이것은 맹자와의 대화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요컨대, 이 가사는 맹자의 도와 사상을 널리 선양하고 세상을 제도하여 만민을 구해 보겠다는 작자 나름의 이상을 표현한 가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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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8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서사(序詞)로서 ‘길몽을 꾼 기쁨’을 노래했는데, 너무 희한한 만고의 길몽이기 때문에 작자 혼자만이 간직할 수 없어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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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단에서는 ‘작자의 천성’을 술회하여, 괴팍한 성품으로 부귀공명을 원하지 않고, 중정인의(中正仁義)만을 숭앙한다고 했다. 제3단에는 ‘역대인물들의 초청과 이에 응대하는 작자의 자세’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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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단에서는 ‘맹자 제자와의 접견과 맹자 친서를 받는 감격’을 노래했는데, 이때 맹자의 친필 척소(尺素)를 가지고 온 유생은 맹자의 제자답게 정제한 의관에 단정한 거동을 보여 주고 이를 통해 친서를 받는 작자의 송연함과 감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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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단은 ‘친서의 내용’인데 맹자는 여기서 작자가 문장과 지혜에 뛰어나고, 지행일치한 호걸이라고 칭찬하면서 속히 자기에게 와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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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단에서는 ‘맹자와의 접견과 작자의 고백’을 노래했는데, 이때 맹자는 소쇄(瀟灑)한 당실(堂室)에 엄연한 모습으로 좌정해 있었고, 그의 위용은 구주(九州)의 호기를 배합한 것 같고, 좌상은 화기 넘치는 춘풍 같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작자는 세속이 어지러워 가고, 성현의 도가 날로 쇠퇴하여 생령의 곤액(困厄)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음을 맹자에게 고백하고, 그 구제의 길이 없겠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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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단에서는 ‘맹자의 당부’를 노래하고 있는데, 작자의 고백을 들은 맹자는 그를 어여삐 여겨 “네 뜻이 내 뜻이요 네 도리 내 도리라 문행(文行)을 교훈하야 충신으로 권하여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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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자의 처신에 대하여도 간곡한 당부를 하는데, 안연(顔淵)의 사물(四勿)과 증자(曾子)의 삼성(三省)을 잊지 말고 지키라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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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단은 결사로서, 맹자의 간절한 교시를 받은 작자는 이를 길이 간직할 것을 다짐하고, 아울러 이 길몽을 다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비치면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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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혼용체인 이 가사는 한글 철자의 통일성이 없고 무질서함을 보여 준다. 체언에 있어 ‘아해’와 ‘아羸’, 용언에 있어 ‘悧고’와 ‘하고’, ‘할器’과 ‘할산’, 조사에 있어 ‘을’과 ‘올’, ‘勘’과 ‘난’, 경음표기에 있어 ‘內’과 ‘購’이 호용된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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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자표기가 비교적 적고, 우리말이 자연스럽게 구사된 것은 친근감을 가지게 한다. 또한, 개세강개(慨世慷慨)하는 충정과 제세구민(濟世救民)을 염원하는 정신이 작품 전면에 깔려 있어, 선비의 고고한 기개를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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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몽자가사(夢字歌辭)로서는 조선시대 가사사상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그 제재상의 특성을 들 수 있다. 또, 내용전개에 있어서 대화체의 수법을 빌려 절실한 감흥에 젖게 한 것도 평가하여야 할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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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李朝歌辭精選(李相寶, 精硏社, 1966), 芸菴의 吉夢歌考察(丁益燮, 語文學 9, 韓國語文學會, 196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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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심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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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지(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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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평중. 호는 운암, 또는 호산자 숙종 35년(1709)에함흥에서 낳아 병고와 가난 속에서 불우한 80여 평생을 지냈다. 유저로 '명선록'이 있으니 일명 '온고록'이며 그 끝에 '길몽가'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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