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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화면 (다빈치!지식놀이터)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가사∙개화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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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개화가사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019.07.18. 14:38 (2019.07.18. 14:37)

【학습】화전가(花煎歌)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는 규방 가사의 하나인 「화전가」는 양가댁 규중 부녀자들이 청명절을 전후하여 화전놀이를 하면서 부른 것으로 조선 여인의 풍류 노래라 할 수 있다. 임금님의 화갑이 있는 경사스러운 해, 날씨 좋은 날 규방에 갇혀 지내던 부녀자들이 꽃 피는 봄을 맞아 화전놀이를 하기 위해 인근 산천의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설렘과 산천에서 자연 경관을 즐기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어와 여종들아 이내 말씀 들어 보소
이 때가 어떤 해뇨 우리 임금 화갑이라
화봉의 축원으로 우리 임금 축수하고
강구의 격양가로 우리 여인 화답하네
인정전 높은 전에 수연을 배설하니
백관은 헌수하고 창생은 고무한다.
춘당대 넓은 마당에 경과를 보이시니
목목하신 우리 임금 서일같이 임하시고
빈빈한 명유들은 화상에 분분하다.
이렇듯이 좋은 해에 이때가 어느 때뇨
불한불열(不寒不熱) 삼춘(三春)이라 심류청사(深柳靑絲) 드린 곳에
황앵(黃鶯)이 편편(片片)하고 천붕수장(天崩繡帳)* 베푼 곳에
봉접(蜂蝶)이 분분(紛紛)하다 우리 황앵(黃鶯) 아니로되
꽃은 같이 얻었으니 우리 비록 여자(女子)라도
이러한 태평세(太平世)에 아니 놀고 무엇하리
백만년(百萬年) 다 버리고 하루놀음 하려하고
일자(日字)를 정(定)차하니 길일양사(吉日良事) 언제런고
이월(二月)이라 이십오일은 청명시절(淸明時節) 제때로다
손꼽고 바라더니 어느 덧에 다닫고야
아이 종 급(急)히 불러 앞뒷집 서로 일러
소식(消息)하고 가사이다 노소(老少)없이 다 모이어
차차(次次)로 달아나니 응장성식(應粧盛飾) 찬란(燦爛)하다
원산(遠山)같은 눈썹을랑 아미(蛾眉)로 다스리고
횡운( 雲)같은 귀밑을랑 선빈(鮮?)으로 꾸미도다
동해에 고운 명주(明紬) 잔줄지어 누벼 입고
추양(秋陽)에 바랜 베를 연반물 들여 입고
선명(鮮明)하게 나와 서서 좋은 풍경(風景) 보려하고
가려강산(佳麗江山) 찾았으되 용산(龍山)을 가려느냐
매봉으로 가려느냐 산명수려(山明秀麗) 좋은 곳은
소학산(蘇鶴山)이 제일(第一)이라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앞에 서고 뒤에 서고 태산(泰山)같은 고봉준령(高峰峻嶺)
허위허위 올라가서 승지(勝地)에 다닫거다
좌우(左右) 풍경(風景) 둘러보니 수양(首陽)같은 금오산(金鰲山)
충신(忠臣)이 멀었거늘 어찌저리 푸르렀으며
황하(黃河)같은 낙동강(落東江)은 성인(聖人)이 나시련가
어찌저리 맑아있노
구경(求景)을 그만하고 화전(花煎)터로 나려와서
빈천이야 정관이야 시냇가에 걸어 놓고
청유라 백분이 화전(花煎)을 지져 놓고
화간(花間)에 제종숙질 웃으며 불렀으되
어서 오고 어서 오소 집에 앉아 수륙진미(水陸珍味)
보기는 하려니와 우리 일실 동환(同歡)하기 이에서 더할소냐
송하(松下)에 늘어앉아 꽃가지로 찍어 올려
춘미(春美)를 쾌(快)히 보고 남은 흥을 못 이기어
상상봉 치어 달아
한없이 좋은 경치 일안(一眼)에 다 들이니
저 높은 백운산은 적송자(赤松子) 놀던 덴가
반석 위의 바둑판은 낙서격(洛書格)을 벌여 있고
유수(幽邃)한 황학동(黃鶴洞)은 서왕모(西王母) 있던 덴가
청계변 복사꽃은 무릉원(武陵源)이 의연(依然)하다.
이런 좋은 경개(景槪) 흠 없이 다 즐기니
소선(蘇仙)의 적벽(赤璧)인들 이에서 더할소냐.
이백(李白)의 채석(採石)인들 이에서 덜할소냐.
화간에 벌여 앉아 서로 보며 이른 말이
여자의 소견(所見)인들 좋은 경(景)을 모를소냐
규중(閨中)에 썩힌 간장(肝腸) 오늘이야 쾌(快)한지고
흉금이 상연하고 심신이 호탕하여
장장춘일 긴긴 날을 긴 줄도 잊었더니
서산에 지는 해가 구곡에 재촉하여
층암고산에 모운이 일어나고
벽수동리에 숙조가 돌아든다
흥대로 놀려 하면 임간의 자연 취객이 아닌 고로 마지못해 일어나니
암하야 잘 있거라 강산아 다시 보자
시화 세풍 하거들랑 창안백발 흩날리고
고향산천 찾아 오마
 

1. 요점 정리

• 지은이 : 작자 미상
• 갈래 : 가사
• 성격 : 유흥적
• 구성 :
서사 - 회갑을 맞은 임금에 대한 축원 - 화전놀이의 흥겨움 배가
본사 - 태평성대 삼춘 시절에 화전놀이를 가게 됨, 몸 단장하고 산수경치 좋은 곳에 화전놀이를 감, 소학산에서 즐기는 화전놀이와 아름다운 경치
결사 - 화전놀이를 마침
• ‘화전가’의 일반적인 짜임
화전놀이 권유 → 화전놀이 준비 과정 → 놀이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 → 자연 경치를 즐기는 장면 → 화전놀이를 벌이는 장면 → 화전놀이를 마치고 헤어지는 장면
• 주제 : 화전놀이를 나온 부녀자들의 즐거움 / 봄날 화전놀이의 즐거움
• 화전터의 상징성 : 일상의 시름을 해소하는 공간이며, 여인들이 친척들과 어울려 봄을 즐기는 공간이며, 여인들이 ‘규중에 썩힌 간장’을 지니고 있는 자신들의 시름을 해소하는 공간이며, 자연의 경치를 즐기고 화전을 지져 먹으며 시름을 풀어내고 내년을 기약하는 미래의 공간이다.
• 표현 : 공간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대구법과 설의법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며, 규방에서 벗어난 여인들의 설렘과 즐거움을 섬세하고 묘사하고 있다.
 

2. 내용 연구

어와 여종들아 이내 말씀 들어 보소[여종에게 이런 말투는 어울리지 않지만 문자 표현상의 상투적 표현으로 이해됨]
 
이 때가 어떤 해뇨 우리 임금 화갑[환갑, 예순 살]이라
 
화봉의 축원[경사스러운 일을 기리어 축하하는 송축의 말]으로 우리 임금 축수[오래 살기를 빎]하고
 
강구[평화로운 거리]의 격양가[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기려 불렀다는 노래]로 우리 여인 화답하네
 
인정전[신하들이 조회하던 창덕궁 안 건물] 높은 전에 수연[장수를 축하하는 잔치]을 배설[연회나 의식(儀式)에 쓰는 물건을 차려 놓음. 진설(陳設).]하니
 
백관[모든 벼슬아치]은 헌수[환갑잔치 등에서, 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올림. 상수(上壽). 칭상(稱觴).]하고 창생[세상의 모든 사람 - 백성]은 고무[북을 치며 춤을 춘다는 뜻으로, 격려하여 기세를 돋움]한다.
 
춘당대[창덕궁 안에 있는 과거 보던 곳] 넓은 마당에 경과[나라에서 경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보이던 과거. 회시(會試)·전시(殿試) 등이 있음]를 보이시니
 
목목하신[밝고 어지신] 우리 임금 서일[상서롭게 비치는 해]같이 임하시고
 
빈빈(彬彬)한 명유[훌륭하고 이름난 선비]들은 화상[회갑 잔치에 빛나는 상]에 분분하다.[여러 사람이 뒤섞여 모여 있다.] - 서사 : 회갑을 맞은 임금님에 대한 축원
 
이렇듯이 좋은 해에 이때가 어느 때뇨
 
불한불열(不寒不熱)[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알맞게 따뜻함] 삼춘(三春)[봄의 석 달. 곧, 맹춘(孟春)·중춘(仲春)·계춘(季春)]이라 심류청사(深柳靑絲 : 청실 같은 버드나무 늘어진) 드린 곳에
 
황앵(黃鶯)[꾀꼬리]이 편편(片片)하고[펄펄 나는 / '유상앵비편편금'은 버들 사이를 누런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마치 황금 조각이 번득이는 것 같이 보임] 천붕수장(天崩繡帳)[하늘에서 드리워진 수놓은 장막.] 베푼 곳에
 
봉접(蜂蝶)[벌과 나비]이 분분(紛紛)하다[어지럽게 날고] 우리 황앵(黃鶯) 아니로되[자유로운 꾀꼬리는 아니지만]
 
꽃은 같이 얻었으니 우리 비록 여자(女子)라도
 
이러한 태평세(太平世)[태평성대의 준말]에 아니 놀고 무엇하리[유흥을 권함]
 
백만년(百萬事) 다 버리고[온갖 일을 다 버리고 /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하루놀음 하려하고
 
일자(日字)를 정(定)차하니 길일양사(吉日良事)[운이 좋거나 상서로운 날과 좋은 일] 언제런고
 
이월(二月)이라 이십오일은 청명시절(淸明時節)[춘분과 곡우의 사이에 들며, 양력 4월 5·6일경임. 천지가 상쾌하게 맑은 공기로 가득 찬다는 시기] 제때로다
 
손꼽고 바라더니[간절히 원함] 어느 덧에 다닫고야[그 시기가 도래함]
 
아이종 급(急)히 불러 앞뒷집 서로 일러[어린 종을 급히 불러 앞뒷집에 서러 일러]
 
(화전놀이 하러 간다는)소식(消息)하고 가사이다 노소(老少)없이 다 모이어
 
차차(次次)[어떠한 상태가 조금씩 진행하는 모양. 차츰. 점차]로 달아나니 응장성식(應粧盛飾)[얼굴을 단장하고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음] 찬란(燦爛)하다
 
원산(遠山)같은 눈썹을랑 아미(蛾眉)[누에나방의 촉수(觸鬚)처럼 털이 짧고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 / 미인의 눈썹]로 다스리고
 
횡운(橫雲)[비낀 구름]같은 귀밑을랑 선빈(鮮彬)[신선의 살쩍 즉 귀밑털]으로 꾸미도다
 
동해에 고운 명주(明紬) 잔줄지어 누벼 입고
 
추양(秋陽)[가을볕.]에 바랜 베를 연반물[연한 반물, 반물은 거무스름한 남빛] 들여 입고[외출복으로 꾸민다는 말]
 
선명(鮮明)하게 나와 서서 좋은 풍경(風景) 보려하고
 
가려강산(佳麗江山)[모양이나 경치 따위가 매우 아름다운 강산] 찾았으되 용산(龍山)을 가려느냐
 
매봉으로 가려느냐 산명수려(山明秀麗)[산과 물이 맑은] 좋은 곳은
 
소학산(蘇鶴山)이 제일(第一)이라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앞에 서고 뒤에 서고 태산(泰山)같은 고봉준령(高峰峻嶺)[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험준한 산마루]
 
허위허위[손발을 이리저리 내두르는 모양 / 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 올라가서 승지(勝地)[경치가 좋은 곳. 경승지]에 다닫거다
 
좌우(左右) 풍경(風景) 둘러보니 수양(首陽)[금오산을 백이숙제가 숨었던 수양산에 견주어 충신을 생각함]같은 금오산(金鰲山)
 
충신(忠臣)이 멀었거늘 어찌저리 푸르렀으며
 
황하(黃河)같은 낙동강(落東江)은 성인(聖人)이 나시련가[낙동강을 황하에 견주어, 황하가 100년에 한 번 맑아지면 성인이 난다는 이야기]
 
어찌 저리 맑아있노
 
구경[경치·경기·흥행물 등을 흥미를 가지고 관심있게 봄.]을 그만하고 화전(花煎)터로 나려와서
 
빈천이야 정관이야 시냇가에 걸어 놓고[무쇠그릇이야 솥이야 시냇가에 걸어놓고]
 
청유[맑은 기름]과 백분[쌀이나 밀가루 따위의 흰 가루]으로 화전(花煎)[진달래 따위 꽃잎을 붙여 부친 부꾸미. 꽃전]을 지져놓고
 
화간(花間)[꽃밭으로 꽃과 꽃 사이]에 제종숙질[8촌 형제자매] 웃으며 불렀으되
 
어서 오고 어서 오소 집에 앉아 수륙진미(水陸珍味)[산해진미, 귀한 재료로 차린 맛 좋은 음식]
 
보기는 하려니와 우리 일실[한방, 한 자리, 즉 가족] 동환(同歡)하기[함께 기뻐하기] 이에서 더할소냐[지금이 가장 즐거움 / 설의법] – 먼 친척까지 다 모인 화합의 화전놀이
 
송하(松下)[소나무 아래]에 늘어앉아 꽃가지로 찍어 올려
 
춘미(春美)[봄의 즐거움]를 쾌(快)[유쾌하게]히 보고 남은 흥을 못 이기어
 
상상봉 치어 달아[위쪽으로 달려]
 
한없이 좋은 경치 일안(一眼)에 다 들이니[높은 곳에서 봄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바라봄 / 척고망원(陟高望遠 :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봄)]
 
저 높은 백운산은 적송자(赤松子)[중국 신농씨 때에 비를 다스렸다는 신선 / 적송자는 신농씨(神農氏) 시대에 활약했던 우신(雨神 : 비의 신)이다. 그는 빙옥산(氷玉散 : 수정 분말)을 복용하는 술법에 뛰어났는데, 이것을 마시면 불 속에 있어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술법은 후에 신농씨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적송자는 항상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의 거처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비바람을 타고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며 신농씨의 딸에게 선술(仙術)을 가르쳐주었다. 마침내 그의 딸이 모든 것을 배워 신선이 되자 함께 천상계로 올라갔다. 세월이 흘러 황제(黃帝)의 증손자인 고신씨(高辛氏) 시대가 열리자 적송자는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놀던 덴가
 
반석[넓고 펀펀하게 된 큰 돌] 위의 바둑판은 낙서격(洛書格)[마흔 다섯 개의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 /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홍수(洪水)를 다스렸을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을 벌여 있고[벌이다 :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다]
 
유수(幽邃)[그윽하고 깊은]한 황학동(黃鶴洞)은 서왕모(西王母)[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녀 / 서왕모의 궁전은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 그곳은 천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쉽게 길을 더듬어 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궁전 왼쪽으로는 요지(瑤池)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취수(翠水), 산 밑에는 약수(弱水)라는 강이 흐르는데, 수만 미터에 이르는 높은 파도가 친다고 한다. 서왕모가 사는 궁전은 대단히 넓고 크며, 황금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서 눈부시게 아름답다. 서왕모는 절세 미녀로 알려져 있다. 크게 틀어 올린 머리 위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금빛 나는 비단옷에 봉황을 수놓은 가죽신을 신고 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원시천존에게 받은 만능의 부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해경(山海經)』에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보석 비녀를 꽂은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절세 미녀와 산발한 요괴,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양쪽 모두 서왕모의 실제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왕모는 다른 신들과 달리 여성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처럼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반대인 요괴 같은 공포스러운 면도 지니고 있는 서왕모의 이중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서왕모는 신선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신선들은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 이유는 서왕모가 신선이 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장생(長生)을 담당하는 반도(蟠桃 : 3천 년에 한 번 열린다는 신성한 복숭아-옮긴이)의 소유자이며, 많은 신선들이 이 불가사의한 열매 덕분에 신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서왕모는 신선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신선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신성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있던 덴가 [천상의 경치]
 
청계변 복사꽃은 무릉원(武陵源)[무릉도원으로 이상향을 말함 / 4세기 무렵 중국의 이야기이다.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민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사이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자신의 작은 고기잡이배를 저어가니 계곡 양쪽 물가를 따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모두 복숭아나무였다.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어부는 이 복숭아나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보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동안 가니까 복숭아나무 숲은 끊기고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기슭에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굴 안은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 갈 정도였다.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은 아이들도 한가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부의 모습을 발견한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겪은 그대로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은 자기 집으로 어부를 데리고 가서 술과 닭고기 요리를 대접해주었다. 어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아래 세상에 대해서 이것저것 어부에게 캐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진(秦)1)나라 때 전란을 피해서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이 산속으로 피난을 왔다. 그후로는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인연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마을 사람들은 한(漢)이라는 시대도 몰랐다. 그러니 위(魏)나 진(晋)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 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가면서 어부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푸짐한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부는 이 마을에서 며칠 동안을 지낸 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주시오."
 
어부는 마을을 나와서 원래 장소에 있던 배를 타고 오면서 도중에 표시가 될 만한 곳을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관리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관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를 동행시켜서 마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이 의연(依然)하다[전과 다름이 없다 – 자연에 대한 예찬].
 
이런 좋은 경개(景槪)[경치] 흠 없이 다 즐기니
 
소선(蘇仙)의 적벽(赤璧)[중국 송나라 때의 문호 소동파가 놀면서 ‘적벽부’를 지음 / 적벽부는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소동파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부’란 운문(韻文)의 하나인 문체의 명칭인데, 사물의 서술을 중심으로 한 한대(漢代)의 장려한 작품에서부터 육조(六朝) ·당(唐)시대의 형식적인 소형 작품으로 쇠퇴한 ‘부’의 장르를 생동하는 묘사로, 서정과 사상을 겸비한 문장으로 부활, 완성시킨 작품이 이 《적벽부》이다. 삼국시대의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려(流麗)한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인들 이에서[이보다] 더할소냐.[아름다운 자연 경치에 대한 극찬 / 대구법 / 설의법]
 
이백(李白)의 채석(採石)["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로,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일컬어지는 중국 최고의 시인이다. 이백은 거의 평생을 방랑하며 보냈는데 이는 단순한 방랑이 아닌 정신의 자유를 찾기 위한 방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가 채석강에서 술을 마시다 물 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강에 뛰어들어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의 대표작으로는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읊은 <청평조사>와 달빛 아래서 술 마시는 즐거움을 나타낸 <월하독작> 등이 있다.]인들 이에서[이보다] 덜할소냐[설의법]. -본사 :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감상함
 
화간에 벌여 앉아 서로 보며 이른 말이
 
여자의 소견(所見)인들[가부장제 사회라 여자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낮춘 겸손한 표현] 좋은 경(景)[경치]을 모를소냐[아름다운 경치를 본 여인들의 당당한 자부심 / 설의법]
 
규중(閨中)[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에 썩힌 간장(肝腸)[규방 생활의 답답함] 오늘이야 쾌(快)한지고[화전놀이를 통해 그간에 쌓인 아녀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었다는 말 / 해방감]
 
흉금이 상연하고 심신이 호탕하여[가슴이 시원하고 마음과 몸이 확 트이어]
 
장장춘일 긴긴 날을 긴 줄도 잊었더니[긴긴 봄날이 긴 줄도 잊었더니]
 
서산에 지는 해가 구곡에 재촉하여[서산에 지는 해가 여러 골짜기에 재촉하여]
 
층암고산에 모운이 일어나고[바위에 쌓인 높은 산에는 해 질 무렵의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고]
 
벽수동리에 숙조가 돌아든다[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골짜기에는 잘새가 감돌아든다]
 
흥대로 놀려 하면 임간의 자연 취객이 아닌 고로 마지못해 일어나니[흥이 나는 대로 놀고 싶지만 숲 속의 자연 취객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일어나니 / 화전놀이를 마쳐야 하는 아쉬움]
 
암하야 잘 있거라 강산아 다시 보자[우리가 놀던 바위 아래야, 잘 있거라, 아름다운 이 강산아, 다시 보자]
 
시화 세풍 하거들랑 창안백발[늙어 여윈 얼굴 ↔ 홍안] 흩날리고 [기후가 좋아서 풍년이 들게 되면 늙어서랴도]
 
고향산천 찾아 오마[고향 산천을 잊지 않고 찾아오마] - 결사 : 화전놀이를 마침
 

3. 이해와 감상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는 규방 가사의 하나인 「화전가」는 양가댁 규중 부녀자들이 청명절을 전후하여 화전놀이를 하면서 부른 것으로 조선 여인의 풍류 노래라 할 수 있다. 임금님의 화갑이 있는 경사스러운 해, 날씨 좋은 날 규방에 갇혀 지내던 부녀자들이 꽃 피는 봄을 맞아 화전놀이를 하기 위해 인근 산천의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설렘과 산천에서 자연 경관을 즐기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대개는 부녀자들이 화전놀이에서 돌아와 그날의 흥취와 감회를 오래도록 남겨 두기 위해 화전가를 지으며, 이러한 작품군을 일컬어 ‘화전가류’라 하는데 지역마다 다양한 화전가류의 노래가 전하고 있다.
 

4. 심화 자료

화전가
 
화전놀이를 소재로 한 규방 가사(閨房歌辭). ‘화류가(花柳歌)·화수가(花樹歌)·낙유가(樂遊歌)’ 등으로도 불린다.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절 등 봄에 일기가 좋은 날을 택해 부녀자들이 산이나 승지(勝地)를 찾아가서 하루를 즐기는데, 이 때의 상화(賞花)놀이를 화전놀이(꽃달임) 또는 화류놀이·꽃놀이라 부르고, 그 장소를 화전장(花煎場)이라 한다. 화전장은 주로 사방이 트여 잘 보이는 나즈막한 산봉우리가 많다.
 
여인들은 그 곳에서 준비해 간 음식과 진달래 꽃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또 지필묵(紙筆墨)으로 현장에서 창작·윤작(輪作), 독송(獨誦)·윤송(輪誦) 등의 규방 가사로 가회(歌會)를 여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다.
 
이 때 지은 가사를 화전가라 한다. 화전가는 이처럼 현장에서 짓기도 하지만, 미리 지어 오거나(이 때 남편이 지어 주기도 함.) 또는 화전놀이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그 날 하루를 돌이키며 그 감회를 글로 남기기도 한다.
 
내용은 대개 봄을 맞아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 그 날 화전장에서 하루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하산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집에 도착한 뒤의 감회까지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단락을 나누면 서사(序辭)·본사(本辭)·결사(結辭)·발사(跋辭) 등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본사는 화전놀이 당일 요란하게 몸치장을 하고 출발하는 모습과, 화전장에 도착해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또 직접 그 곳에서 화전·화면 등을 만들어 먹으며 문중 이야기나 집안 자랑, 시집살이 이야기 등으로 꽃을 피우며 즐겁게 노는 광경이 묘사된다. 그러면서도 산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자기 친정이나 동기간을 그리워하는 모습도 함께 나타나 있다.
 
결사에서는 하산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으며, 아쉽게 끝나 버린 하루해를 ‘춘몽’·‘남가일몽(南柯一夢)’ 등과 같이 허무적 표현으로 끝내고 있다.
 
마지막 발사 부분은 작품의 제작 연대 및 간지(干支), 지은이의 택호(宅號) 등과 가사를 짓게 된 연유, 아랫사람들에게 주는 충고와 경계의 격언 등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화전가는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가사 내용 가운데 “근친길이 제일이요 화전길이 버금이라.”(상주 지방)라는 말이 있듯이, 새봄을 맞아 상춘(賞春)한다는 의미와 함께 시집살이의 굴레에서 하루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부녀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韓國詩歌의 民俗學的硏究(金善豊, 螢雪出版社, 1977)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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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