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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 애환 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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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바람처럼 스쳐간…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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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登山) # 산노래 # 월간 산 # 이용대 # 전두성
【여행】
(2018.06.13. 08:37) 
◈ 산악인들 애환 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산악잡지 월간 "mountain" 2013년 3월호에서
산악인들 애환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_코오롱등산학교교장
 
근대등산이 이 땅에 뿌리 내린 지 어언 80년이 넘었다.
세월의 나이테가 쌓여가며 이제 등산세계는 하나의 집단문화권으로 성장하여 소사회를 이루었고 문학, 그림, 사진, 음악, 역사, 생태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지며 윤택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등산문화 중에서도 ‘산노래’는 산쟁이들의 전통, 관습, 도전의지, 애환, 생활 등이 노래 속에 잘 녹아있어 서로가 동류의식을 갖게 하는 언어 구실을 해왔다. 군가가 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노래이듯이, 산노래는 산악인들의 도전의지와 애환을 담은 노래다. 산쟁이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가 ‘산노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연대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해방 전 1세대 산악인들로부터 시작되어 불러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개나리고개는 눈물의 고개 / 올라갔다 내려 올제 님의 집 생각 / 에 헤야 개나리, 아무렴 그렇지 개나리 / 지금은 어디서 개나리 생각하나’
 
변변한 산 노래가 없던 시절 일제치하의 1세대 산악인들이 애창했던 ‘개나리고개’의 가사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북한산을 가기위해서는 돈암동 옛 전차종점(지금의 태극당 제과점 앞)부터 걸어서 미아리고개를 거쳐 개나리가 만발한 지금의 삼양동 개나리고개를 넘으면서 흥얼대던 노래다. 민요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구십을 넘긴 원로산악인들에게 옛날을 회상시켜주는 국내 최초의 산노래다.
 
1970년대 초 어느 겨울 양폭산장 앞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김정태 선생(1917~1988)께서 부르던 구성진 음률의 ‘개나리 고개’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이 노래를 가장 잘 부르던 사람이 그분 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산꾼들의 산노래는 1960~70년대 중흥기를 거쳐왔다. 사진은 1970년대 초반 한국산악회 등산학교의 산노래 강의 모습>
 
 
일제치하에서 생겨난 산노래, 1960~70년대 전성기
 
조국광복 후인 1947년에는 악보와 가사가 함께 수록된 산 노래성격의 <조선유람가(朝鮮遊覽歌)>(동명사)가 출간되기도 했다. 1930년대 한반도 곳곳의 고산들을 찾아 탐사등산시대를 연 육당 최남선이 작사하고, 김영환(金永煥)이 작곡한 노래다. 조선의 자연과 산수경관을 찬미한 노래 80곡이 책자로 발간되었으나, 당시는 일부 부유한 지식층들만이 등산을 하던 시기였기에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6.25전란을 겪으면서 단절되어버렸다.
 
산노래가 산악인들 사이에서 전성기를 이룬 시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이며 이시기에 정점을 이루었으나, 취사야영제한조치가 생긴 이후에는 캠핑장소가 제한되면서 산노래의 열기가 점차 식어버렸다.
 
산악운동이 한창 열기를 띠었던 70년대에는 이에 발 맞춰 산노래도 중흥기를 맞았다.
‘산에는 마음이 있어 산사나이의 보금자리… 너 없이 못사는 사람은 산사나이 뿐’ 당시 산악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산 사나이’의 한 소절이다. 당시 이 노래는 산악인들의 정서에 잘 어울려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일본의 산 노래 ‘산남의 가(山男の歌)’를 번안한 곡으로 밝혀지면서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지만 그 시대 산악인들에게는 진한 향수가 서린 노래였다.
 
당시 산에 다닌 사람들치고 ‘설악가’ ‘설악아 잘있거라’ ‘산 아가씨’ ‘산사나이’ ‘산악인의 노래’ ‘숨은 벽 찬가’ ‘그리운 산정’ ‘저 높은 산’ ‘즐거운 산행길’ ‘아득한 산정’(일명 아득가) ‘산의 나그네’ ‘자일의 정’ ‘산 이야기’ ‘에델바이스’ ‘베르네 산골’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푸른 창공에 로프를 던져라’ 등 50여 편의 산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음치 반열에 끼는 산악인들이라도 이런 노래 한 두곡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애창되었던 산 노래는 ‘설악가’(이정훈 작사 작곡)가 단연 으뜸이었다.
별빛이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설악산 자락의 캠프사이트에서 우쿨렐레(하와이 원주민이 사용했던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설악가를 부르면 평소 ‘뽕짝’이나 대중가요에만 익숙했던 일반인들도 이내 감동할 정도였다.
 
‘즐거운 산행길’(이정훈 작사 작곡)은 기성가수 김홍철이 음반으로 취입한 노래며, 힘차고 경쾌한 박자의 ‘산악인의 노래’는 당시 한국산악회장을 역임한 노산 이은상이 작사했고 김동진이 작곡한 곡이다. 이 노래는 한국산악회 회가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지금까지 모든 산악인들에게 널리 애창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산악회였던 백령회의 회지에 실려 있는 산노래 가사.>
한글로 된 "산이 부른다" 외에 일본어로 된 "움직여라 움직여"
"로렐라이" "모차르트의 자장가" 등이 실려 있는 걸로 보아 당시의 산노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
 
 
산악인들은 산노래를 통해 연대의식을 키워 왔고 마음의 아픔을 나누었다.
또한 등반 중 고난에 처했을 때는 산노래를 통해 도전의지를 키워오기도 했다. 1983년 북한산 인수봉에서 급작스런 눈보라와 한파로 기상이 급변하여 여러 명이 동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몇몇 대학생들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저체온증으로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새 산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하며 위험상황을 극복한 일도 있었다. 산악인들은 매우 독특한 집단이다. 이들끼리 통용되는 세계 공통의 언어인 등반용어가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고 있다.
 
산쟁이들은 산노래를 통해 집단의식을 키워왔으며 마음의 아픔을 나누었다. 또한 등산 중 고난에 처했을 때도 좌절하지 않은 채 산 노래를 부르며 사기를 진작시켜 고난을 극복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에서 생환한 이들은 아마도 산노래가 없었다면 모두가 저체온증으로 자신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상태로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버렸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산노래를 끌어가는 몇몇 개척자들
산악인들은 분야별로 일인자라 부를만한 독보적인 존재들이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김자인, 고산 거벽등반의 박정헌, 고산등반 분야에서는 엄홍길 박영석을 쳐주듯이 장르별로 이름을 떨치는 고수급들이 있다. 산노래 분야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산 노래의 중흥기를 이끌어온 고수급전도사들이 있다. 이 정훈(성남 성심치과 원장·고령산악회) 전두성(열린캠프 대표) 정규현(알파인코러스 단장) 류문환 이영수(한양대OB) 신현대(포크 가수) 등이 그들이다.
 
‘독일병정’이란 별명을 지닌 전두성.
 
산쟁이들 사이에 잘 알려진 그의 상표는 청바지와 우쿨렐레이다. 그는 일 년 내내 청바지만 입고 산다. 청바지는 그의 등산복이자 평상복이다. 등산복장으로 청바지가 비 기능적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알지만 어떤 바지보다 더 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열린캠프라는 이름의 등산학교의 대표다. 학생들에게는 기능적인 등산복 입기를 권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은 청바지만을 고수하는 고집불통의 자유인이다. 수십 년의 연주 경력을 갖춘 우쿨렐레 연주 솜씨는 남다른 음조를 지녀 듣는 이로 하여금 금방 산노래의 세계로 빨려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한창 열창을 하면서 우쿨렐레를 연주할 때는 신들린 무당의 모습이다.
 
‘산 나그네’의 노랫말처럼 ‘그곳(산)에는 하늘만한 행복이 있기 때문일까’.
그는 정서가 메마른 사람은 산에 오를 준비가 덜된 사람이라고 말하며, 산쟁이들의 정서가 산과 무관하지 않은 이상 산이 음악의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면서 산 노래집 출간과 보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한 산과 현실사이를 방황하며 갈등하는 후배 산쟁이들의 고민을 술자리에서 노래를 안주삼아 치유해주기도 한다. 전두성은 국내 굴지의 삼보컴퓨터의 잘나가는 중견간부직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그 밥통과 1990년 안나푸르나 남벽 입산 허가서를 맞바꾸었다. 원정 결과는 폭설로 뚫어낸 루트가 무너져 분패했다. 그의 산에 대한 열정은 탱크처럼 저돌적이다. 비오는 날 인수봉에서 추락하여 골절상을 입기도 했으며, 강촌 구곡폭포 빙벽에서 수박 크기의 낙빙을 얼굴에 맞고도 기사회생한 오뚝이다.
 
<노산 이은상이 작사하고 박두진이 작곡한 ''산악인의 노래'' 원본 악보. 한국산악회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정훈 그의 본업은 치과의사다.
그가 작사 작곡한 산노래 ‘설악가’는 같은 시기에 나온 ‘즐거운 산행길’과 함께 산쟁이들 사이에서 공전의 인기를 기록한 애창곡이다. ‘즐거운 산행길’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요들 가수 김홍철이 자신의 음반에 취입하여 보급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쟁이들이 ‘설악가’를 모른다면 간첩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1970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널리 애창되고 있다.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 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애조를 띤 4분의 3박자의 설악가는 평소 대중가요에만 익숙했던 일반인도 이내 감동할 정도다.
그는 지금 병마와 끈질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 설악가를 열창 해주길 빌 뿐이다.
 
 
신현대는 ‘난 바람 넌 눈물’로 가요계에 데뷔한 포크가수다.
1988년 히트곡 중의 하나였던 ‘난 바람 넌 눈물’을 만든 사람으로 여가수 백미현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 인기순위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깜짝 스타다. 그는 1997년 코오롱 등산학교에 들어와 본격적인 등산 수업을 받은 다음 등산학교 졸업생들이 만든 산악회의 회장을 맡기도 하면서 본격적인 산쟁이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걷다가 걸으면서 사랑을 노래하던 그가 이제는 산을 노래하는 가수로 입신한다.
 
그는 유럽 알프스. 히말라야의 초오유 등을 섭렵하면서 산에서 떠오른 착상을 산 노래에 담아 발표해왔다. 그의 인생 역정은 파란만장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 기타 하나만 가지고 무작정 상경하여 삼청공원에서 노숙자생활로 고달픈 삶을 거치면서 자신의 노래세계를 키워왔다.
 
최초의 알프스 원정에서 추락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몇 년 전 에베레스트 8600m지점서 고립되어 비박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동상에 걸려도 기타는 쳐야하니까 발가락은 잘라도 좋지만, 손가락만은 자르지 않게 되길 빌었다고 한다.
 
산노래 강좌는 한때 코오롱 등산학교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교과목으로 채택해왔다.
1985년 개교 당시부터 정규 커리큘럼에 산노래를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여 수강생들에게 보급했다. 개교 초 교과목 편성 안을 놓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완고한 어느 원로께서는 “등산교과목에 왜 노래를 포함시키느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고루한 의견을 내놓은 분도 있었다.
 
그동안 전두성 정규현 이영수 류문환 등이 산 노래 강의를 전담해왔다.
지금까지 교육을 통해 보급해온 곡만 200여 곡에 이르며 여러 교과목 중 산노래는 새내기 산쟁이들을 감동시키는 가장 인기 있는 과목중의 하나가 되었다. 산 노래는 단순한 실전교육에서 벗어나 노래를 통해 정신과 육체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을 고양시키기 위해 필요한 방편이었으나 최근의 경향은 그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 잠정적으로 폐강했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훌륭한 산 노래가 많이 만들어져 널리 보급되는 일은 건전한 산악문화 발전에 바람직한 일이다. ⓜ
등산(登山) # 산노래 # 월간 산 # 이용대 # 전두성
【여행】 바람처럼 스쳐간…
• 건국대학 산악부와 어울린 남도산행 (3월 30~31일)
• 산악인들 애환 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 하얀 능선에 서면 (2002년 12월 마지막 주의 추억)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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