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2014년 6월 5일
|
|
|
|
|
|
|
신도 사무기 회사의 서울·지방 법인 총괄 사장인 (정 14)허용봉 님과 산행 약속으로 어제 한나절, 잠깐 설악에 다녀왔다.
|
|
|
|
|
|
(정 4)노승헌 님과 함께 가기로 했기에.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아침 아홉 시 출발하는 것으로 노 교수님이 티켓을 예매했다.
|
|
|
|
|
|
전날 밤 대전에서 출발하여 무박 산행으로 설악산을 오르는 허용봉 님과 그 일행은 비선대에서 마중하기로 일정을 잡는다.
|
|
|
|
|
|
|
강변역에 도착하니 시각이 아직 이르다. 아침 대용으로 포장마차 샌드위치와 믹스커피 한 잔을 곁들인다,
|
|
|
|
|
|
먹기 전에 먼저 혈당 약 한 봉지를 삼킨다. 올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당뇨 증세로 요즘은 식사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
|
|
|
|
|
|
일찍 도착한 노 교수님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다 버스에 올랐다.
|
|
|
|
|
|
속초에 사는 (정 13)장남중 님과 통화하니 업무차 춘천 가는 길이란다.
|
|
|
|
|
|
모처럼 설악산 가는 김에 반가운 얼굴 좀 보려 했더니 타이밍이 안 맞는다.
|
|
|
|
|
|
|
속초행 버스는 의자가 널찍하고 앞뒤 공간이 편안한 우등고속 버스다. 속초까지 두 시간 십 분 만에 도착한단다.
|
|
|
|
|
|
두 시간 십 분의 시간과 만 칠천삼백 원의 요금, 잠시 사십오 년 전 설악산 등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
|
|
|
|
|
|
|
|
|
|
|
그때 강원도 방향 시외버스 터미널은 마장동(용두동 33번지)이었다. (후에 상봉동으로 이전하였다가 지금의 동서울에 자리 잡았지만…)
|
|
|
|
|
|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속초행 첫차를 타려면 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숙박해야 했던 시절이다.
|
|
|
|
|
|
|
버스 배차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었으며, (한 시간 간격이었나?)
|
|
|
|
|
|
아홉 시인가? 정오 전에 마지막 배차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
|
|
|
|
|
|
부피 크고 무거운 배낭을(기슬링 타입 륙색) 실어야 해서 그랬는지, 방학 때라 승객이 많고 좌석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였는지,
|
|
|
|
|
|
아무튼, 산악회나 학교산악부 등반으로 설악산 갈 때면 늘 전날 마장동에서 숙박한 뒤 첫차로 출발하곤 했었다.
|
|
|
|
|
|
70년 여름, 입석 승객이 있고 정류장마다 멈추었다 떠나는 완행버스의 남교리까지 운임은 오백 원 정도였나?
|
|
|
|
|
|
|
통금 해제 후 네 시 반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일곱 시 반쯤 홍천에 도착하고 삼십 분가량 아침 식사 시간을 주었다.
|
|
|
|
|
|
허겁지겁 식사하고 차에 오르면 버스는 다시 서너 시간을 달려 설악산 입구인 인제, 원통에 도착한다.
|
|
|
|
|
|
이곳에서는 점심 시간을 준다.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 두 끼 식사를 해결한 뒤에야 설악산 언저리에 닿는 것이다.
|
|
|
|
|
|
|
홍천과 인제 구간은-
|
|
|
|
|
|
지금은 강변으로 도로가 이어지지만, 소양댐 완공 후 물이 차기까지는 강바닥에 도로가 있었다.
|
|
|
|
|
|
(가끔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나면 지금의 삼팔선휴게소 언덕에서 그때의 도로 흔적을 볼 때가 있다.)
|
|
|
|
|
|
|
강변도로도 요즘에야 도로를 대부분 직선화하고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게 하였지만,
|
|
|
|
|
|
그때는 그야말로 등고선 굴곡처럼 난 도로를 따라 곡예운전을 해야 하는 그러한 도로였다.
|
|
|
|
|
|
험로가 오죽했으면 운전기사 솜씨와 능력은 강원도 기사가 최고란 얘기까지 나돌았을까?
|
|
|
|
|
|
|
포장이 끊어진 채 자갈로 덮인 신작로도 군데군데 있었고
|
|
|
|
|
|
인제에서 설악산을 돌아 진부령 넘는 길은 '단일로'로 불리는 일차선 통행로도 몇 군 데 있어서
|
|
|
|
|
|
양쪽 검문소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일방통행을 시키곤 했었다.
|
|
|
|
|
|
|
검문소는 또 왜 그리 많았는지…
|
|
|
|
|
|
속초까지 가려면 서너 군데의 군경검문소에서 매의 눈길로 흩어보는 현병의 검문검색 절차를 밟아야 했고
|
|
|
|
|
|
인상 험악한 대원이 있던 산악부에서는 매번 검문에 걸리는 대원을 두고 내기를 걸고 놀림으로 에피소드를 가졌던 적도 있었다.
|
|
|
|
|
|
|
한계령 길은 그즈음 군사도로로 닦아만 놓은 채 도로포장을 하지 않아 거의 차량 왕래가 없었고
|
|
|
|
|
|
미시령은 능선으로 가로막혀 진부령 길을 넘어야지 속초에 입성할 수 있던 때이다.
|
|
|
|
|
|
|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에 힘겹게 올라서면 올라온 거리의 두 배쯤 되는 굽이굽이 협곡을(아찔하고 오줌마려운) 돌아내린 후
|
|
|
|
|
|
간성, 고성, 토성을 지나야 속초에 들어설 수 있었다.
|
|
|
|
|
|
|
속초 도착이 네다섯 시쯤 되었나?
|
|
|
|
|
|
서울에서 열두 시간 이상을 달려야 속초에 들어서고 또 한 시간 이상 시내버스로 이동해서 겨우 설악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
|
|
종일 버스를 타고 있다 보니 누이 같은 차장은 어느새 정이 들어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다음 만남을 기대하는 사이가 되었다.
|
|
|
|
|
|
|
|
|
|
|
|
잠깐 두 시간이 지나자 버스는 미시령 터널을 지난다. 사십여 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
|
|
|
|
|
울산바위의 수려한 자태를 볼까 했으나 설악산이 모두 구름 안개에 가렸다. (영동지방은 어제부터 비가 내렸더래요.)
|
|
|
|
|
|
|
속초 시내 들어서기 전 한화콘도 사거리에 버스를 세워주기에 그곳에서 택시로 설악동 국립공원 매표소까지 왔다.
|
|
|
|
|
|
연휴라 그런지 설악동 A 지구를 지나자 공원 입구까지 도로가 정체다.
|
|
|
|
|
|
지체하는 동안 운전기사는 어제 지방선거에 따른 강원도 정치판 예기로 침을 튀긴다.
|
|
|
|
|
|
|
천천히 걸어올라 열두 시 반쯤 비선대에 도착했다.
|
|
|
|
|
|
비선대에 들를 때마다 늘 보던 그때의 주인장이 아직 비선대 산장을 관리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
|
|
|
|
|
|
오색에서 출발한 허용봉 님과 일행은 중청산장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이제야 선두가 희운각에 도착했노라 연락이 온다.
|
|
|
|
|
|
동동주와 감자 부침개로 허기를 달래며 설악을 찬찬히 음미한다.
|
|
|
|
|
|
|
우쿨렐레를 조율하고 낮은음으로 가만히 설악가를 불러본다.
|
|
|
|
|
|
며칠 전 사별한 정훈 형의 청량한 노랫소리가 생각나고 그의 환한 미소가 그려진다.
|
|
|
|
|
|
|
잠시 뒤에 뒷자리에서 귀 기울이던 부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설악가를 어찌 아시느냐고?
|
|
|
|
|
|
으잉? 나더러 설악가를 어찌 아느냐고?
|
|
|
|
|
|
|
말씀을 들으나 75년도쯤 젊었던 시절의 부인이 설악산 백담산장 정취에 반해 가끔 들렸었는데 그때 알았던 설악가이고
|
|
|
|
|
|
Alpinist로 등산 활동을 한 적이 없어 설악가를 당시 어울리던 분들끼리의 노래로만 알아 왔다고라…
|
|
|
|
|
|
자신들 몇몇만 알았던 40년 전의 노래를 이방인이 부르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반가움에 조심스레 여쭈어 본 것이란다.
|
|
|
|
|
|
|
나와 설악가의 관계를 말씀드렸더니 남편이 다시 설악가를 청한다.
|
|
|
|
|
|
부인과는 달리 처음 설악가를 듣는다는 남자의 감긴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
|
|
|
|
|
아쉬움에 이별을 고하는 부부는 우리가 마신 술값까지 대신 치르고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
|
|
|
|
|
|
네 시 가까이 되어 허용봉 님과 회사사원 사십여 명의 일행이 비선대에 도착했다.
|
|
|
|
|
|
대전서부터 다섯 시간 걸려 이동한 뒤 새벽부터 오색약수 쪽에서 대청을 올라 열두 시간 이상을 걸어 설악을 넘어온 이들이다.
|
|
|
|
|
|
|
무척 지친 표정이다. 비선대에서 길게 휴식하며 동동주와 부침개, 비빔밥과 잔치국수로 뒤풀이를 대신한다.
|
|
|
|
|
|
비록 몸은 피곤하더라도 설악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낀 분들이라 그런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
|
|
|
|
|
|
허용봉 님의 부탁으로 설악가와 산노래 몇 곡을 통해 산으로 알아보는 자연과, 등반 수련으로 깨닫는 자아를 들려준다.
|
|
|
|
|
|
처음 듣는 산노래지만 설악을 그리는 시구 절이라 그런지 두 번째 부를 때는 발로 장단을 맞추고 조금씩 따라 부르며 느낌을 가져간다.
|
|
|
|
|
|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전으로 가는 일행과 헤어지며
|
|
|
|
|
|
(정 14)허용봉, 박진철, (22기)최태영 님 등 몇 분과 노 교수님만 함께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
|
|
|
|
|
요즘 속초-서울 간 고속버스는 강릉-서울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동홍천- 춘천으로 그리고 서울-춘천 고속도로로 다닌다.
|
|
|
|
|
|
덕분에 버스가 미시령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
|
|
|
|
|
|
|
돌아오는 길,
|
|
|
|
|
|
|
아침과 달리 구름 안개가 걷혀 시야가 트였다.
|
|
|
|
|
|
달마봉과 울산바위가 예쁘게 눈에 들어오고 그 사이로 마등령 아래 세존봉(노인봉)까지 뚜렷하게 펼쳐있다. 참 잘생겼다.
|
|
|
|
|
|
미시령을 넘어가며 볼 수 있는 설악의 실루엣, 무척 아름답고 벅차게 가슴에 와 닿는다.
|
|
|
|
|
|
특히 손에 잡힐 것 같은 울산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보는 파노라마는 어떤 대가의 풍경화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하는 그림이다.
|
|
|
|
|
|
|
그림을 채 가슴에 새기기도 전에 버스는 무정하게도 터널로 들어선다.
|
|
|
|
|
|
늘 설악을 다녔으면서도 비선대까지만 올라 설악을 보고 돌아선 것은 한두 번 손꼽을 정도였다.
|
|
|
|
|
|
Alpinist 길에서 내려선 지 불과 이 년이 넘을 뿐인데 그동안 설악의 품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 언제쯤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
|
|
|
|
|
이 년쯤 전에 고교 동창들과 한계령에서 서북 능으로,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내려온 적이 한 번 있었던가?
|
|
|
|
|
|
|
모처럼 설악과 눈 맞춤 하며 추억을 더듬고 설악을 노래하였다.
|
|
|
|
|
|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