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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1회 농상으로 출병한 제갈량이 신처럼 꾸미고, 검각으로 달려간 장합이 계책에 빠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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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一回 出隴上諸葛妝神 奔劍閣張郃中計
2
제101회 농상으로 출병한 제갈량이 신처럼 꾸미고, 검각으로 달려간 장합이 계책에 빠지다.
 
 
3
卻說孔明用減兵添灶之法,退兵到漢中;司馬懿恐有埋伏,不敢追趕,亦收兵回長安去了,因此蜀兵不曾折了一人。孔明大賞三軍已畢,回到成都,入見後主,奏曰:“老臣出了祁山,欲取長安,忽承陛下降詔召回,不知有何大事?”後主無言可對;良久,乃曰:“朕久不見丞相之面,心甚思慕,故特詔回,一無他事。”孔明曰:“此非陛下本心,必有奸臣讒譖,言臣有異志也。”後主聞言,默然無語。孔明曰:“老臣受先帝厚恩,誓以死報。今若內有奸邪,臣安能討賊乎?”後主曰:“朕因過聽宦官之言,一時召回丞相。今日茅塞方開,悔之不及矣!”
 
4
한편, 공명이 병력을 줄이고 아궁이를 늘리는 방법으로 한중으로 군사를 물렸다. 사마의는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 감히 뒤쫓지 못하고 역시 군사를 거두어 장안으로 떠났다. 이 때문에 촉나라 군사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다. 공명이 삼군을 크게 상준 후에 성도로 돌아가 후주를 들어가 만나서 아뢰기를,
 
5
“노신이 기산으로 나가서 장안을 취하려는데, 갑자기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서 불러들이셨습니다. 무슨 큰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6
하니, 후주가 대답할 말이 없어서 한참 있다가 이윽고 말하기를,
 
7
“짐이 오래도록 승상의 얼굴을 못 보아서 마음속으로 몹시 그리워하여 일부러 불러들인 것이지 별일은 없소.”
 
8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9
“이것은 폐하의 본심이 아니오라, 틀림없이 간신이 참언을 하여, 신에게 다른 뜻이 있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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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후주가 이 말을 듣고 묵묵히 아무 말이 없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11
“노신이 선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 맹세코 죽음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지금 내부에 간사한 신하가 있다면, 신이 어찌 능히 역적을 토벌하겠습니까?”
 
12
하니, 후주가 말하기를,
 
13
“짐이 환관의 말을 잘못 듣고 일시에 승상을 불러들였소. 오늘에야 막혔던 마음이 열리지만 후회막급이오.”
 
14
했다.
 
 
15
孔明遂喚 衆宦官究問,方知是苟安流言;急令人捕之,已投魏國去了。孔明將妄奏的宦官誅戮,餘皆廢出宮外;又深責蔣琬、費禕等不能覺察奸邪,規諫天子。二人唯唯服罪。孔明拜辭後主,複到漢中,一面發檄令李嚴應付糧草,仍運赴軍前;一面再議出師。楊儀曰:“前數興兵,軍力罷敝,糧又不繼;今不如分兵兩班,以三個月爲期:且如二十萬之兵,只領十萬出祁山,住了三個月,卻教這十萬替回,循環相轉。若此則兵力不乏,然後徐徐而進,中原可圖矣。”孔明曰:“此言正合我意。吾伐中原,非一朝一夕之事,正當爲此長久之計。”遂下令,分兵兩班,限一百日爲期,循環相轉,違限者按軍法處治。
 
16
공명이 곧 뭇 환관을 불러 추궁하여 비로소 구안이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을 알게 되었다. 급히 사람들을 시켜 체포하라 했지만, 이미 위나라로 가버렸다. 공명이 망녕되게 상주한 환관을 주살하고, 나머지 모두를 궁 밖으로 폐하여 내보내고, 또한 장완과 비위 등이 간사한 자를 살피지 못하고 천자를 올바른 도리로 간언하지 못한 것을 몹시 질책했다. 두 사람이 예예 하면서 죄를 승복했다. 공명이 후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다시 한중에 도착해서, 한편으로 이엄에게 격문을 보내어, 식량과 사료를 공급해서 싸움터로 운반하라 하고, 한편으로 출병을 다시 논의했다. 양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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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수차례 출병하여 군사력이 피폐하고, 식량 또한 이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병력을 둘로 나누고, 석 달을 기한으로, 만약 2십만 병력이라면 십만 병력만 거느리고 기산으로 나가서 3개월 머물고, 다시 다른 십만 병력으로 바꾸어 순환하도록 하여, 병력을 지치지 않게 함이 좋습니다. 그런 뒤 서서히 진군하면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9
“이 말이 참으로 내 뜻과 합치하오. 내가 중원을 정벌하는 일은 일조일석에 이뤄질 일이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멀리 내다보는 계책을 써야 할 것이오.”
 
20
하고, 곧 명령을 내려서 병력을 둘로 나누고, 1백 일을 기한으로 순환하여 교대하게 하고, 기한을 어기는 자들을 군법으로 처벌하게 했다.
 
 
21
建興九年春二月,孔明複出師伐魏。時魏太和五年也。魏主曹睿知孔明又伐中原,急召司馬懿商議。懿曰:“今子丹已亡,臣願竭一人之力,剿除寇賊,以報陛下。”睿大喜,設宴待之。次日,人報蜀兵寇急。睿即命司馬懿出師禦敵,親排鑾駕送出城外。懿辭了魏主,徑到長安,大會諸路人馬,計議破蜀兵之策。張郃曰:“吾願引一軍去守雍、郿,以拒蜀兵。”懿曰:“吾前軍不能獨當孔明之 衆,而又分兵爲前後,非勝算也。不如留兵守上邽,餘 衆悉往祁山。公肯爲先鋒否?”郃大喜曰:“吾素懷忠義,欲盡心報國,惜未遇知己;今都督肯委重任,雖萬死不辭!”
 
22
건흥 9년 봄 2월, 공명이 다시 위나라를 정벌하러 출병했다. 이때 위나라는 태화 5년이었다. 위나라 군주 조예는 공명이 다시 중원을 정벌하는 것을 알고, 서둘러 사마의를 불러 상의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23
“이제 자단(조진)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신이 바라옵건대 제가 힘을 다하여 침범하는 적을 소멸하여 폐하께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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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주었다. 다음날 보고하기를, 촉나라 군사의 침범이 위급하다고 했다. 조예가 즉시 사마의에게 군사를 일으켜 적을 막으라 명하고 친히 어가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서 환송했다. 사마의가 위나라 군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장 장안으로 가서 여러 방면의 인마를 크게 모아, 촉나라 군사를 깨뜨릴 계책을 토의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25
“내가 바라건대 1군을 이끌고 옹성과 미성을 지키러 가서, 촉나라 군사를 막겠소.”
 
26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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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두 부대가 홀로 공명의 대군을 막을 수도 없고, 또한 병력을 앞뒤로 나눠도 승산이 없소. 병력을 주둔해, 상규(현재 감숙성 청수현)를 지키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기산으로 가는 것만 못하오. 공께서 선봉에 서시겠소?”
 
28
했다. 장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29
“내가 평소에 충의를 품고 진심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고자 했으나, 이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소. 이제 도독께서 기꺼이 중임을 맡기시니, 비록 만 번 죽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소.”
 
30
했다.
 
 
31
於是司馬懿令張郃爲先鋒,總督大軍。又令郭淮守隴西諸郡,其餘 衆將各分道而進。前軍哨馬報說:孔明率大軍望祁山進發,前部先鋒王平、張嶷,徑出陳倉,過劍閣,由散關望斜穀而來。司馬懿謂張郃曰:“今孔明長驅大進,必將割隴西小麥,以資軍糧。汝可結營守祁山,吾與郭淮巡略天水諸郡,以防蜀兵割麥。”郃領諾,遂引四萬兵守祁山。懿引大軍望隴西而去。
 
32
이에 사마의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아, 대군을 총지휘하게 하고, 또 곽회에게 농서 지방의 여러 군을 수비하게 했다. 나머지 장수들도 각각 길을 나누어 진군했다. 선두 부대의 정찰 기병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33
“공명이 대군을 거느리고 기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전방의 선봉인 왕평, 장의가 곧장 진창으로 나가 검각을 지나, 산관을 경유해서 사곡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34
했다. 사마의가 장합에게 일러 말하기를,
 
35
“이제 공명이 장거리를 크게 진격하니 틀림없이 농서 일대의 밀을 베어서 군량을 삼으려 할 것이오. 그대는 기산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시오. 나는 곽회와 더불어 천수 일대의 여러 군을 돌며 촉나라 군사가 밀을 베는 것을 막겠소.”
 
36
했다. 장합이 응낙하고 곧 4만 병력을 이끌고 기산을 수비했다. 사마의는 대군을 이끌고 농서를 향해 갔다.
 
 
37
卻說孔明兵至祁山,安營已畢,見渭濱有魏軍提備,乃謂諸將曰:“此必是司馬懿也。即今營中乏糧,屢遣人催並李嚴運米應付,卻只是不到。吾料隴上麥熟,可密引兵割之。”於是留王平、張嶷、吳班、吳懿四將守祁山營,孔明自引薑維、魏延等諸將,前到鹵城。鹵城太守素知孔明,慌忙開城出降。孔明撫慰畢,問曰:“此時何處麥熟?”太守告曰:“隴上麥已熟。”孔明乃留張翼、馬忠守鹵城,自引諸將並三軍望隴上而來。前軍回報說:“司馬懿引兵在此。”孔明驚曰:“此人預知吾來割麥也!”即沐浴更衣,推過一般三輛四輪車來,車上皆要一樣妝飾。此車乃孔明在蜀中預先造下的。
 
38
한편, 공명의 병력이 기산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나서 바라보니, 위수 물가에 위나라 병력이 방비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공명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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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마의가 틀림없소. 우리가 지금 당장 영채 안에 군량이 모자라서, 여러 차례 이엄에게 사람을 파견해 군량미를 보내라 재촉했지만, 여태 보내오지 않고 있소. 내가 헤아리건대 농상(천수 부근)의 밀이 익었을 것이니, 몰래 병력을 이끌고 가서 밀을 베어야겠소.”
 
40
하고,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 네 장수를 남겨서 기산의 영채를 지키게 하고, 공명 스스로 강유, 위연 등 여러 장수를 이끌고 노성으로 갔다. 노성의 태수는 평소 공명을 아는지라 황망히 성문을 열고 나와 투항했다. 공명이 위로를 마치고 묻기를,
 
41
“지금쯤 어디에 밀이 익었소?”
 
42
하니, 태수가 고하기를,
 
43
“농상의 밀은 이미 익었습니다.”
 
44
했다. 공명이 이에 장익과 마충을 남겨 노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여러 장수와 아울러 3군을 이끌고 농상을 향해 갔다. 그런데 앞서가던 군사들이 되돌아와 보고하기를,
 
45
“사마의가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 와 있습니다.”
 
46
하니, 공명이 놀라 말하기를,
 
47
“이 사람이 내가 밀을 베러 올 줄을 미리 알았구나!”
 
48
하고, 즉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더니, 똑같은 사륜거 세 대를 밀고 오게 하여, 수레마다 같은 모양으로 장식을 했다. 이 수레들은 공명이 촉나라에 있을 때 미리 만들었던 것이었다.
 
 
49
當下令薑維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伏在上邽之後;馬岱在左,魏延在右,亦各引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每一輛車,用二十四人,皂衣跣足,披發仗劍,手執七星皂幡,在左右推車。三人各受計,引兵推車而去。孔明又令三萬軍皆執鐮刀、馱繩,伺候割麥。卻選二十四個精壯之士,各穿皂衣,披發跣足,仗劍簇擁四輪車,爲推車使者。令關興結束做天蓬模樣,手執七星皂幡,步行於車前。孔明端坐於上,望魏營而來。
 
50
공명이 강유에게 1천 군사를 이끌고 수레를 호위하고 5백 군사는 북을 요란히 두들기며 상규 뒤쪽에 매복하라고 했다. 마대는 왼쪽에서, 위연은 오른쪽에서 역시 각각 1천 군사를 이끌고 수레를 호송하고 5백 군사는 북을 요란히 두드리며, 수레 한 대마다 스물네 명이 검은 옷에 맨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손에 들고 좌우에서 수레를 밀게 했다. 세 사람이 계책을 받고 병력을 이끌고 수레를 밀며 갔다. 공명이 다시 3만 군사에게, 모두 낫과 짐을 묶는 노끈을 들고 밀을 베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스물네 명의 건장한 군사를 뽑아서 각각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고 사륜거를 호위하게 하여 수레를 미는 사람으로 삼았다. 관흥에게 하늘의 신처럼 차려입게 하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손에 쥐고, 수레 앞을 걸어가게 했다. 공명은 (사륜거) 위에 단정히 앉아서 위나라 진영 쪽으로 왔다.
 
 
51
哨探軍見之大驚,不知是人是鬼,火速報知司馬懿。懿自出營視之,只見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端坐於四輪車上;左右二十四人,披發仗劍;前面一人,手執皂幡,隱隱似天神一般。懿曰:“這個又是孔明作怪也!”遂撥二千人馬分付曰:“汝等疾去,連車帶人,盡情都捉來!”魏兵領命,一齊追趕。孔明見魏兵趕來,便教回車,遙望蜀營緩緩而行。魏兵皆驟馬追趕,但見陰風習習,冷霧漫漫。盡力趕了一程,追之不上。各人大驚,都勒住馬言曰:“奇怪!我等急急趕了三十裏,只見在前,追之不上,如之奈何?”
 
52
보초를 서던 군사가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이게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가 없어, 부리나케 사마의에게 알렸다. 사마의가 직접 영채를 나가 살펴보니, 공명이 관을 머리에 쓰고 학창의를 입고 손으로 깃털 부채를 흔들며 수륜거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좌우로 스물네 명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쥐고 있었다. 앞쪽의 한 사람은 손에 검은 깃발을 들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하늘의 신을 닮았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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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공명이 괴상한 일을 벌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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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곧 2천 인마를 뽑아서 분부하기를,
 
55
“너희는 달려가서 수레와 둘러싼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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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위나라 군사들이 명령을 받들어 일제히 뒤쫓았다. 공명은 위병이 뒤쫓는 것을 보고 수레를 되돌리라고 지시하고 멀리 촉나라 진영 쪽으로 느릿느릿 갔다. 위병이 모두 말을 몰아 뒤쫓지만 음산한 바람이 슬슬 불고, 차가운 안개가 가득 피어올랐다. (위나라 군사들이) 힘을 다해 한참을 쫓아도 따라잡지 못했다. 사람들이 크게 놀라서 모두 달리던 말을 멈춰 세우고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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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일이오! 우리가 매우 급하게 3십 리를 쫓아왔거늘 바로 앞에 보이는데도 따라잡지 못하니, 어찌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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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59
孔明見兵不來,又令推車過來朝著魏兵歇下。魏兵猶豫良久,又放馬趕來。孔明複回車慢慢而行。魏兵又趕了二十裏,只見在前,不曾趕上,盡皆癡呆。孔明教回過車,朝著魏軍,推車倒行。魏兵又欲追趕。後面司馬懿自引一軍到,傳令曰:“孔明善會八門遁甲,能驅六丁六甲之神。此乃六甲天書內‘縮地’之法也。 衆軍不可追之。” 衆軍方勒馬回時,左勢下戰鼓大震,一彪軍殺來。懿急令兵拒之,只見蜀兵隊裏二十四人,披發仗劍,皂衣跣足,擁出一輛四輪車;車上端坐孔明,簪冠鶴氅,手搖羽扇。懿大驚曰:“方才那個車上坐著孔明,趕了五十裏,追之不上;如何這裏又有孔明?怪哉!怪哉!”
 
60
공명은 위나라 군사가 뒤쫓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수레를 밀어 위나라 군사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향해 가게 하니, 위나라 군사들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몰아 쫓아왔다. 공명이 다시 수레를 돌려 천천히 갔다. 위나라 군사들이 2십 리를 추격해도 앞에 보이기는 하나 따라잡을 수 없어서 모두 멍하니 쳐다볼 따름이었다. 공명이 다시 수레를 돌리라 지시하여, 위나라 군사들 쪽으로 수레를 밀며 되돌아왔다. 위나라 군사들이 다시 뒤쫓으려는데 뒤에서 사마의가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명령을 전하기를,
 
61
“공명은 여덟 문 변신술에 능하고, 육정 육갑의 신장들을 부를 수 있소. 이것은 <육갑천서>에 있는‘축지법’이니, 군사들이 추격해선 안 될 것이오.”
 
62
했다. 군사들이 말들을 멈춰 세워 돌아가려는데, 왼쪽에서 북소리 크게 울리며 한 무리 군사가 달려왔다. 사마의가 급히 영을 내려 막게 했다. 그런데 촉나라 군사 대열 속에서 스물네 사람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들고 검은 옷에 맨발 차림으로 한 대의 사륜거를 호위해 나왔다. 수레 위에 공명이 단정히 앉아서 관을 머리에 쓰고 학창의를 입고 손으로 깃털 부채를 흔들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63
“방금 저 수레 위에 분명히 공명이 앉아 있어, 5십 리를 추격해도 붙잡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여기 또 공명이 있다는 말이냐? 괴이하구나! 괴이하구나!”
 
64
했다.
 
 
65
言未畢,右勢下戰鼓又鳴,一彪軍殺來,四輪車上亦坐著一個孔明,左右亦有二十四人,皂衣跣足,披發仗劍,擁車而來。懿心中大疑,回顧諸將曰:“此必神兵也!” 衆軍心下大亂,不敢交戰,各自奔走。正行之際,忽然鼓聲大震,又一彪軍殺來:當先一輛四輪車,孔明端坐於上,左右前後推車使者,同前一般。魏兵無不駭然。司馬懿不知是人是鬼,又不知多少蜀兵,十分驚懼,急急引兵奔入上邽,閉門不出。此時孔明早令三萬精兵將隴上小麥割盡,運赴鹵城打曬去了。司馬懿在上邽城中,三日不敢出城。後見蜀兵退去,方敢令軍出哨;於路捉得一蜀兵,來見司馬懿。
 
66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오른쪽에서도 북소리 울리며 한 무리 군사가 달려오는데, 사륜거 위에 역시 공명이 또 하나 앉아 있었다. 그 좌우에도 스물네 사람이 검은 옷에 맨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잡고 수레를 호위해 다가왔다. 사마의가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스러워서,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67
“이것은 틀림없이 귀신 군사요!”
 
68
하니, 군사들의 마음이 크게 어지러워져서, 감히 맞붙어 싸우지 못하고 제각기 달아났다. 이렇게 달아나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며, 다시 한 무리 군사가 달려왔다. 맨 앞의 사륜거 한 대에 공명에 단정히 앉아 있고, 좌우에서 수레를 밀고 오는 이들도 앞서와 같았다. 위나라 군사들이 깜짝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다. 사마의는 이들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 수가 없고, 또 촉나라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가 없어, 몹시 놀라고 두려워서 다급히 병사들을 이끌고 상규성 안으로 달아나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때 공명이 재빨리 3만 정예병들에게 명하여, 농상 지방의 밀을 모두 베고, 노성으로 운반해서 타작하고 볕에 말리게 했다. 사마의가 상규성 안에 머물며 사흘을 감히 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뒤 촉나라 군사가 퇴각하자 비로소 군사들을 내보내어 정탐하게 했다. 길에서 촉나라 군사 한 명을 사로잡아 사마의에게 끌고 왔다.
 
 
69
懿問之,其人告曰:“某乃割麥之人,因走失馬匹,被捉前來。”懿曰:“前者是何神兵?”答曰:“三路伏兵,皆不是孔明,乃薑維、馬岱、魏延也。每一路只有一千軍護車,五百軍擂鼓。只是先來誘陣的車上乃孔明也。”懿仰天長歎曰:“孔明有神出鬼沒之機!”忽報副都督郭淮入見。懿接入,禮畢,淮曰:“吾聞蜀兵不多,現在鹵城打麥,可以擊之。”懿細言前事。淮笑曰:“只瞞過一時,今已識破,何足道哉!吾引一軍攻其後,公引一軍攻其前,鹵城可破,孔明可擒類。”懿從之,遂分兵兩路而來。
 
70
사마의가 그에게 물으니, 그 사람이 고하기를,
 
71
“저는 밀을 베던 사람인데 가다가 마필을 잃어서 이렇게 사로잡혀 왔습니다.”
 
72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73
“그 전의 신병들은 무엇인가?”
 
74
하니, 대답하기를,
 
75
“세 방면의 복병이 모두 공명이 아니오라, 강유, 마대, 위연이었습니다. 한 갈래마다 다만 1천 명이 수레를 호위하고, 5백 명의 병사가 북을 쳤습니다. 다만 먼저 와서 유인하던 수레 위의 사람이 공명이었습니다.”
 
76
했다. 사마의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기를,
 
77
“공명은 신출귀몰한 계략을 가졌구나!”
 
78
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부도독 곽회가 왔다고 했다. 사마의가 맞아들여서 인사를 마치자, 곽회가 말하기를,
 
79
“제가 듣기에 촉나라 군사가 많지 않고 현재 노성에서 밀을 타작한다고 하니, 이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80
하니, 사마의가 앞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곽회가 웃으며 말하기를,
 
81
“한 때 속였을 뿐이고, 이제 그들의 꾀를 간파했는데 어찌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1군을 이끌고 그들의 뒤를 칠 테니, 공께서 1군을 이끌고 그들의 선두를 치면, 노성을 함락하여 공명을 잡을 수 있습니다.”
 
82
했다. 사마의가 이를 따라 곧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누어서 갔다.
 
 
83
卻說孔明引軍在鹵城打曬小麥,忽喚諸將聽今曰:“今夜敵人必來攻城。吾料鹵城東西麥田之內,足可伏兵;誰敢爲我一往?”薑維、魏延、馬忠、馬岱四將出曰:“某等願往。”孔明大喜,乃命薑維、魏延各引二千兵,伏在東南、西北兩處;馬岱、馬忠各引二千兵,伏在西南、東北兩處:“只聽炮響,四角一齊殺來。”四將受計,引兵去了。孔明自引百餘人,各帶火炮出城,伏在麥田之內等候。
 
84
한편, 공명은 군사를 이끌고 노성에서 밀을 타작하여 말리면서, 장수들을 불러들여 군령을 내리기를,
 
85
“오늘밤에 적들이 틀림없이 성을 치러 올 것이오. 내가 헤아려보니, 노성의 동서쪽 밀밭에 복병을 둘 만하오. 누가 용감히 나를 위해 가겠소?”
 
86
하니, 강유, 위연, 마충, 마대 네 장수가 나와서 말하기를,
 
87
“저희가 가겠습니다.”
 
88
했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강유, 위연에게 명하여, 각각 2천 병력을 이끌고 동남쪽과 서북쪽 두 곳에 매복하게 했다. 마대, 마충도 각각 2천 병력을 이끌고 서남쪽과 동북쪽 두 곳에 매복하게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89
“포성이 울리면 네 방향에서 일제히 돌격하시오.”
 
90
하니, 네 장수가 계책을 받아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공명이 직접 백여 명을 이끌고, 군졸에게 각각 화포를 가지게 하고 성을 나가서, 밀밭 안에 매복하여 기다렸다.
 
 
91
卻說司馬懿引兵徑到鹵城下,日已昏黑,乃謂諸將曰:“若白日進兵,城中必有准備;今可乘夜晚攻之。此處城低壕淺,可便打破。”遂屯兵城外。一更時分,郭淮亦引兵到。兩下合兵,一聲鼓響,把鹵城圍得鐵桶相似。城上萬弩齊發,矢石如雨,魏兵不敢前進。忽然魏軍中信炮連聲,三軍大驚,又不知何處兵來。淮令人去麥田搜時,四角上火光沖天,喊聲大震,四路蜀兵,一齊殺至;鹵城四門大開,城內兵殺出:裏應外合,大殺了一陣,魏兵死者無數。司馬懿引敗兵奮死突出重圍,占住了山頭;郭淮亦引敗兵奔到山後紥住。孔明入城,令四將於四角下安營。
 
92
한편, 사마의는 병력을 이끌고 곧장 노성 아래 이르렀는데, 벌써 해가 저물어 컴컴하니,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93
“만약 밝은 대낮에 진군하면 성중에서 반드시 준비할 것이오. 야밤을 틈타서 공격해야겠소. 이곳 성벽이 낮고 해자가 얕으니 곧 함락할 수 있소.”
 
94
하고, 곧 병력을 성 밖에 주둔시켰다. 1경(저녁 8시쯤) 무렵에 곽회도 병력을 이끌고 이르렀다. 두 부대가 병력을 합쳐서 한 차례 북소리를 울리고 노성의 주위를 철통같이 포위했다. 성 위에서 수많은 쇠뇌가 일제히 사격하여, 화살과 돌이 빗발치니 위나라 병사가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 갑자기 위나라 군중에서 신호용 화포 소리가 잇따라 울리니, 3군이 크게 놀랐지만, 어디에서 오는 병사들인지 알지 못했다. 곽회가 사람들을 시켜 밀밭을 수색하자, 사방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르며 함성이 크게 진동했다. 네 갈래의 촉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고, 노성의 네 문이 활짝 열리며, 성안에서 병력이 달려나왔다. 안팎으로 호응하고 합치며, 한바탕 크게 무찔러서, 위나라 군사들이 무수히 죽었다. 사마의가 패잔병을 이끌고 죽기 살기로 싸워 두꺼운 포위망을 뚫고 나와 어느 산꼭대기를 점령해 주둔했다. 곽회도 패잔병을 이끌고 산 뒤로 달아나서 영채를 세워 주둔했다. 공명이 성으로 들어가서, 네 장수에게 명하여, 네 방면에 영채를 세우라고 했다.
 
 
95
郭淮告司馬懿曰:“今與蜀兵相持許久,無策可退;目下又被殺了一陣,折傷三千餘人;若不早圖,日後難退矣。”懿曰:“當複如何?”淮曰:“可發檄文調雍、涼人馬並力剿殺。吾願引軍襲劍閣,截其歸路,使彼糧草不通,三軍慌亂:那時乘勢擊之,敵可滅矣。”懿從之,即發檄文星夜往雍、涼調撥人馬,不一日,大將孫禮引雍、涼諸郡人馬到。懿即令孫禮約會郭淮去襲劍閣。
 
96
곽회가 사마의에게 고하기를,
 
97
“이제 촉나라 군사들과 허구한 나날을 대치했지만, 아무 계책이 없으니, 퇴각해야겠습니다. 바로 지금 또다시 한 바탕 공격을받아, 3천여 명을 잃었습니다. 만약 조속히 도모하지 못하면, 얼마 뒤에는 퇴각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98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99
“어찌해야겠소?”
 
100
하니, 곽회가 말하기를,
 
101
“격문을 써서, 옹주와 양주의 인마들과 힘을 합쳐서 소멸해야겠습니다. 제가 바라건대, 1군을 이끌고 검각을 습격해서, 저들의 귀로를 끊고 식량을 운반하지 못하게 만들면, 3군이 당황하여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때를 틈타서 공격하면 적군을 멸할 수 있습니다.”
 
102
했다. 사마의가 그 말에 따라, 곧 격문을 발하여, 밤새 옹주와 양주로 가서 인마를 조달하게 했다. 하루가 안 돼서 대장 손례가 옹주와 양주 여러 군의 인마를 거느리고 도착했다. 사마의가 즉시 손례에게 명하여, 곽회와 회합하여 검각을 습격하러 가라고 했다.
 
 
103
卻說孔明在鹵城相拒日久,不見魏兵出戰,乃喚薑維、馬岱入城聽令曰:“今魏兵守住山險,不與我戰:一者料吾麥盡無糧;二者令兵去襲劍閣,斷吾糧道也。汝二人各引一萬軍先去守住險要,魏兵見有准備,自然退去。”二人引兵去了。長史楊儀入帳告曰:“向者丞相令大兵一百日一換,今已限足,漢中兵已出川口,前路公文已到,只待會兵交換:現存八萬軍,內四萬該與換班。”孔明曰:“既有令,便教速行。”
 
104
한편, 공명이 노성에서 오래도록 방어하지만, 위나라 군사가 출전하지 않자, 강유와 마대를 성으로 불러들여 군령을 내려 말하기를,
 
105
“이제 위병이 험준한 산악 지대에 주둔해 지키며 우리와 싸우지 않으니, 첫째 우리의 밀이 떨어져서 군량이 없어지기를 바라서요, 둘째 병력을 보내어 검각을 습격해서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끊기 위해서요. 그대 두 사람은 각각 1만 군사를 이끌고 먼저 험한 요충지로 가서 수비하시오. 위나라 군사들은 우리가 준비한 것을 보고 저절로 퇴각할 것이오.”
 
106
했다. 두사람이 군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장사 양의가 군막으로 들어와 고하기를,
 
107
“지난 날 승상께서 전군에게 1백 일에 한 번씩 교대하라 명하셨는데, 지금 기한이 다 되어, 한중 지방의 병력이 서천 어귀로 나오고, 앞서 공문이 이미 도착해서, 병력 교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8만 군사 가운데, 안쪽의 4만 군사를 모두 교대해야 합니다.”
 
10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09
“이미 군령을 내렸으니, 빨리 행하라고 하시오.”
 
110
했다.
 
 
111
衆軍聞知,各各收拾起程。忽報孫禮引雍、涼人馬二十萬來助戰,去襲劍閣,司馬懿自引兵來攻鹵城了。蜀兵無不驚駭。楊儀入告孔明曰:“魏兵來得甚急,丞相可將換班軍且留下退敵,待新來兵到,然後換之。”孔明曰:“不可。吾用兵命將,以信爲本;既有令在先,豈可失信?且蜀兵應去者,皆准備歸計,其父母妻子倚扉而望;吾今便有大難,決不留他。”即傳令教應去之兵,當日便行。
 
112
군사들이 이를 전해 듣고, 각각 짐을 꾸렸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손례가 옹주와 양주의 인마 2십만을 거느리고 싸움을 도와서 검각을 습격하러 가고, 사마의도 직접 병력을 이끌고 노성을 공격하러 온다고 했다. 촉나라 군사들이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양의가 들어와 공명에게 고하기를,
 
113
“위나라 군사들이 심히 급하게 몰려오니, 승상께서 교대할 군사들을 우선 머물게 하여 적병을 물리치고, 새로 오는 병력을 기다린 뒤에 교대하게 하십시오.”
 
11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15
“안 되오. 내가 병사들을 부리고 장수들에게 명을 내리는 것은 신의를 근본으로 하오. 이미 군령을 먼저 내렸는데 어찌 신의를 저버리겠소? 게다가 촉나라 군사들 중에 이번에 가야 할 이들은 모두 돌아갈 계획을 준비하고 그 부모 처자가 문가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내가 이제 큰 곤란에 처하더라도 결코 그들을 붙잡아 두지 않겠소.”
 
116
하고, 즉시 명령을 전하여, 떠나기로 예정된 병사들은 당일 바로 가라고 했다.
 
 
117
衆軍聞之,皆大呼曰:“丞相如此施恩於 衆,我等願且不回,各舍一命,大殺魏兵,以報丞相!”孔明曰:“爾等該還家,豈可複留於此?” 衆軍皆要出戰,不願回家。孔明曰:“汝等既要與我出戰,可出城安營,待魏兵到,莫待他息喘,便急攻之:此以逸待勞之法也。” 衆兵領命,各執兵器,歡喜出城,列陣而待。
 
118
군사들이 이를 듣고 모두 크게 외치기를,
 
119
“승상께서 이토록 은혜를 베푸시니 저희는 바라옵건대 일단 돌아가지 않고 각각 목숨을 바쳐서라도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러서 승상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120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21
“너희가 마땅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늘 어찌 다시 이곳에 붙잡을 수 있겠느냐?”
 
122
하니, 군사들이 모두 출전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공명이 말하기를,
 
123
“너희들이 기왕에 나와 함께 출전하겠다니, 성 밖으로 나가서 영채를 세우고 위병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쉴 틈을 주지 말고 급히 공격하라. 이것이 편안히 쉰 병력으로 지친 적군을 기다려서 치는 병법이다.”
 
124
했다. 병사들이 명령을 받들어, 각각 병기를 들고 기뻐하며 성 밖으로 나가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125
卻說,西涼人馬倍道而來,走的人馬困乏;方欲下營歇息,被蜀兵一擁而進,人人奮勇,將銳兵驍,雍、涼兵抵敵不住,望後便退。蜀兵奮力追殺,殺得那雍、涼兵屍橫遍野,血流成渠。孔明出城,收聚得勝之兵,入城賞勞。忽報永安李嚴有書告急。孔明大驚,拆封視之。書雲:“近聞東吳令人入洛陽,與魏連和;魏令吳取蜀,幸吳尚未起兵。今嚴探知消息,伏望丞相,早作良圖。”
 
126
한편, 서량의 인마들은 길을 재촉해 왔으므로, 달려온 인마들이 지쳤다. 막 영채를 세우고 쉬려는데 촉나라 군사들이 크게 몰려들었다. 촉나라 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용맹을 떨치며 그 장수와 병사들이 날래고 굳세니, 옹주와 양주의 군사가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달아났다. 촉나라 군사가 힘을 떨쳐 추격해서 옹주와 양주의 병사들을 죽이니 그 시체가 들판 가득 나뒹굴고 피가 흘러 도랑을 이루었다. 공명이 성을 나와, 승리를 거둔 병사들을 거두어서, 성으로 들어가 공로를 치하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영안의 이엄이 서신을 보내 급히 고한다고 했다. 공명이 크게 놀라 서신을 뜯어 읽어보니 그 서신에 이르기를,
 
127
“근래에 들으니, 동오에서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어, 위나라와 화친를 맺으려 합니다. 위나라가 동오에게 촉나라를 치라고 하였으나, 다행히 오나라가 아직 출병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가 이 소식을 탐지했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승상께서 빨리 좋은 계책을 마련하십시오.”
 
128
했다.
 
 
129
孔明覽畢,甚是驚疑,乃聚諸將曰:“若東吳興兵寇蜀,吾須索速回也。”即傳令,教祁山大寨人馬,且退回西川:“司馬懿知吾屯軍在此,必不敢追趕。”於是王平、張嶷、吳班、吳懿,分兵兩路,徐徐退入西川去了。張郃見蜀兵退去,恐有計策,不敢來追,乃引兵往見司馬懿曰:“今蜀兵退去,不知何意?”懿曰:“孔明詭計極多,不可輕動。不如堅守,待他糧盡,自然退去。”大將魏平出曰:“蜀兵拔祁山之營而退,正可乘勢追之,都督按兵不動,畏蜀如虎,奈天下笑何?”懿堅執不從。
 
130
공명이 읽고 나서 몹시 놀라고 의심이 들어 장수들을 불러 모아 말하기를,
 
131
“만약 동오가 출병해서 촉을 침범할 것이라면 우리는 긴급히 돌아가야 하오.”
 
132
하고, 즉시 명령을 전하여 기산의 본진에 주둔한 인마들에게 또한 서천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133
“사마의는 우리가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킨 것을 알면, 틀림없이 감히 추격하지 못할 것이다.”
 
134
했다.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가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누어 서서히 서천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장합은 촉병이 물러나자 계책이 있을까 두려워 감히 뒤쫓지 못하고 병력을 이끌고 사마의를 찾아가 말하기를,
 
135
“이제 촉병이 퇴각하는데 그 의중이 무엇인지 모르시겠습니까?”
 
136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137
“공명은 속임수가 극히 많으니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되오. 차라리 견고히 수비하며 그들의 군량이 바닥나서 자연히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오.”
 
138
했다. 대장 위평이 나와서 말하기를,
 
139
“촉나라 군사가 기산의 영채를 거두어 퇴각하니 참으로 이를 틈 타서 추격해야 합니다. 도독께서 군사 활동을 멈추고 정세를 관망하며 촉나라 군사를 마치 호랑이처럼 두려워하니 어찌 천하 사람들이 웃지 않겠습니까?”
 
140
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굳게 고집을 부려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141
卻說,孔明知祁山兵已回,遂令楊儀、馬忠入帳,授以密計,令先引一萬弓弩手,去劍閣木門道,兩下埋伏;若魏兵追到,聽吾炮響,急滾下木石,先截其去路,兩頭一齊射之。二人引兵去了。又喚魏延、關興引兵斷後,城上四面遍插旌旗,城內亂堆柴草,虛放煙火。大兵盡望木門道而去。魏營巡哨軍來報司馬懿曰:“蜀兵大隊已退,但不知城中還有多少兵。”懿自往視之,見城上插旗,城中煙起,笑曰:“此乃空城也。”令人探之,果是空城。
 
142
한편, 공명은 기산의 병력이 이미 돌아간 것을 알고, 양의와 마충을 군막으로 불러들여 비밀 계책을 주며, 먼저 1만 명의 궁노수(황과 쇠뇌를 쏘는 병사)를 이끌고 검각의 목문도로 가서 양쪽에 매복하라 했다. 만약 위병이 추격해 오면, 아군의 포성을 듣는 대로 나무와 돌을 굴러 떨어뜨려 그 달아날 길을 막은 뒤, 양쪽에서 일제히 사격하라고 했다. 두 사람이 병력을 이끌고 갔다. 다시 위연과 관흥을 불러 지시하여, 병력을 이끌고 후미를 엄호하고 성 위 4면에 각종 깃발을 꽂고, 성안에 장작과 풀을 쌓아서 연기와 불을 피우는 척하게 했다. 대군이 모두 목문도를 향해 떠났다. 위나라 진영의 순찰병이 사마의에게 와서 보고하기를,
 
143
“촉병의 대부대가 이미 퇴각하였는데, 다만 성안에 얼마의 병력이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44
했다. 사마의가 직접 가서 살펴보니, 성 위에 깃발이 꽂혔고 성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145
“이것은 빈 성이다.”
 
146
하고, 사람을 시켜 살피게 하니 과연 빈 성이었다.
 
 
147
懿大喜曰:“孔明已退,誰敢追之?”先鋒張郃曰:“吾願往。”懿阻曰:“公性急躁,不可去。”郃曰:“都督出關之時,命吾爲先鋒;今日正是立功之際,卻不用吾,何也?”懿曰:“蜀兵退去,險阻處必有埋伏,須十分仔細,方可追之。”郃曰:“吾已知得,不必掛慮。”懿曰:“公自欲去,莫要追悔。”郃曰:“大丈夫舍身報國,雖萬死無恨。”懿曰:“公既堅執要去,可引五千兵先行;卻教魏平引二萬馬步兵後行,以防埋伏。吾卻引三千兵隨後策應。”
 
148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49
“공명이 이미 퇴각하였는데 누가 용감히 추격해 보겠소?”
 
150
하니, 선봉 장합이 말하기를,
 
151
“내가 가겠소.”
 
152
했다. 사마의가 저지하며 말하기를,
 
153
“공은 성미가 조급하니 가서는 안 되오.”
 
154
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155
“도독께서 관문을 나올 때 저를 선봉으로 임명하셨소. 오늘이 바로 공을 세울 때인데 도리어 저를 쓰지 않겠다니 대체 무슨 까닭이오?”
 
156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157
“촉병이 퇴각하니 험준한 곳에 반드시 매복을 둘 것이오. 모름지기 십분 자세히 살핀 뒤에야 추격할 수 있소.”
 
158
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159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160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161
“공께서 직접 가겠다면 절대 후회하지는 마시오.”
 
162
하니, 장합이 말하기를,
 
163
“대장부가 몸 바쳐 나라에 보답하는데 비록 만 번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소?”
 
164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165
“공께서 기어코 가겠다면 5천 병력을 이끌고 먼저 가시오. 위평에게도 지시해, 2만 기마병과 보병을 이끌고 뒤따라가서 매복에 방비토록 하겠소. 내가 직접 3천 병력을 이끌고 뒤따라 돕겠소.”
 
166
했다.
 
 
167
張郃領命,引兵火速望前追趕。行到三十餘裏,忽然背後一聲喊起,樹林內閃出一彪軍,爲首大將,橫刀勒馬大叫曰:“賊將引兵那裏去!”郃回頭視之,乃魏延也。郃大怒,回馬交鋒。不十合,延詐敗而走。郃又追趕三十餘裏,勒馬回顧,全無伏兵,又策馬前追。方轉過山坡,忽喊聲大起,一彪軍閃出,爲首大將,乃關興也,橫刀勒馬大叫曰:“張郃休趕!有吾在此!”郃就拍馬交鋒。不十合,興撥馬便走。郃隨後追之。趕到一密林內,郃心疑,令人四下哨探,並無伏兵;於是放心又趕。
 
168
장합이 명령을 받들어 병력을 이끌고 부리나케 추격했다. 3십 리 남짓 가자, 갑자기 배후에서 함성이 한바탕 울리며 수풀 속에서 한 무리 군사가 나타나는데, 선두의 대장이 칼을 비스듬히 잡고 말을 멈춰 세우더니 크게 외치기를,
 
169
“적장은 병력을 이끌고 어디로 가느냐!”
 
170
했다. 장합이 고개 돌려 바라보니 바로 위연이었다. 장합이 크게 노하여 말머리를 돌려 교전했다. 불과 십 합을 못 싸우고 위연이 못 이기는 척 달아났다. 장합이 다시 3십여 리를 뒤쫓아 말을 멈추고 고개 돌려보니 전혀 복병이 없었다. 다시 말에 채찍을 가해 추격에 나섰다. 산기슭을 막 돌아나오자 홀연히 다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한 무리 군사가 몰려나오는데, 선두 대장은 바로 관흥이었다. 칼을 비껴들고 말을 멈춰 세운 채 크게 외치기를,
 
171
“장합은 뒤쫓지 마라! 내가 여기 있다!”
 
172
했다. 장합이 곧 말을 박차 교전했다. 불과 십 합을 못 넘겨서 관흥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장합이 뒤따라 추격했다. 한 빽빽한 숲 안에까지 추격하게 되자, 장합이 의심이 들어 사람들을 시켜 사방을 정탐하게 하지만 역시 복병이 없었다. 이에 마음놓고 다시 추격했다.
 
 
173
不想魏延卻抄在前面;郃又與戰十餘合,延又敗走。郃奮怒追來,又被關興抄在前面,截住去路。郃大怒,拍馬交鋒,戰有十合,蜀兵盡棄衣甲什物等件,塞滿道路,魏軍皆下馬爭取。延、興二將,輪流交戰,張郃奮勇追趕。看看天晚,趕到木門道口,魏延撥回馬,高聲大罵曰:“張郃逆賊!吾不與汝相拒,汝只顧趕來,吾今與汝決一死戰!”郃十分忿怒,挺槍驟馬,直取魏延。延揮刀來迎。戰不十合,延大敗,盡棄衣甲、頭盔,匹馬引敗兵望木門道中而走。
 
174
뜻밖에도 위연이 다시 앞에서 습격했다. 장합이 다시 십여 합을 싸우자 위연이 다시 패하여 달아났다. 장합이 성을 내어 뒤쫓는데 다시 관흥이 앞에서 공격하며, 갈 길을 가로막았다. 장합이 크게 노해, 말을 몰아 교전했다. 싸움이 십 합에 이르자, 촉나라 군사들이 모두 옷과 갑옷 등 물건을 버리고 달아나니, 도로를 꽉 메웠다. 위병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서 다투어 가졌다. 위연과 관흥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교전하고, 장합은 용맹을 떨치며 추격했다. 점점 해가 저무는데 목문도 어귀까지 추격하자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소리높여 크게 욕하기를,
 
175
“장합 역적아! 내가 너와 싸우지 않았더니 너는 쫓아오기만 했다! 내가 이제 너와 한바탕 죽기로 싸우겠다!”
 
176
했다. 장합이 십분 분노하여, 창을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서, 곧장 위연에게 달려들었다. 위연이 칼을 휘두르며 맞이해서 싸우지만 십 합을 못 넘기고 위연이 크게 패하여, 옷과 갑옷, 투구와 말을 모조리 버린 채, 패잔병을 이끌고 목문도 안으로 달아났다.
 
 
177
張郃殺得性起,又見魏延大敗而逃,乃驟馬趕來。此時天色昏黑,一聲炮響,山上火光沖天,大石亂柴滾將下來,阻截去路。郃大驚曰:“我中計矣!”急回馬時,背後已被木石塞滿了歸路,中間只有一段空地,兩邊皆是峭壁,郃進退無路。忽一聲梆子響,兩下萬弩齊發,將張郃並百餘個部將,皆射死於木門道中。後人有詩曰:“伏弩齊飛萬點星,木門道上射雄兵。至今劍閣行人過,猶說軍師舊日名。”
 
178
장합은 성질이 치솟는데다 위연이 대패해 도주하자 말을 몰고 뒤쫓았다. 이때 하늘이 컴컴한데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산 위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큰 돌과 장작 더미가 굴려내려와 달아날 길을 차단했다. 장합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79
“내가 계책에 빠졌구나!”
 
180
하고, 급히 말머리를 돌리는데, 배후는 이미 나무와 돌들로 퇴로가 막히고, 중간에 겨우 한 토막 빈 땅이 있을 따름으로, 그 양쪽은 모두 가파른 낭떠러지라, 장합이 나아가거나 물러날 길이 없었다. 갑자기 딱딱이 소리가 한차례 울리더니, 양쪽에서 1만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어, 장합과 아울러 백여 명의 부장들이 모두 목문도 안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181
“매복한 쇠뇌가 일제히 수많은 별처럼 날아서, 목문도 위에서 용맹한 병사들을 쏘았다네. 지금도 검각을 행인들이 지나가며, 지금껏 제갈 군사의 옛 명성을 이야기하네.”
 
182
했다.
 
 
183
卻說,張郃已死,隨後魏兵追到,見塞了道路,已知張郃中計。 衆軍勒回馬急退。忽聽得山頭上大叫曰:“諸葛丞相在此!” 衆軍仰視,只見孔明立於火光之中,指 衆軍而言曰:“吾今日圍獵,欲射一‘馬’,誤中一‘獐’。汝各人安心而去;上覆仲達:早晚必爲吾所擒矣。”魏兵回見司馬懿,細告前事。懿悲傷不已,仰天歎曰:“張雋乂身死,吾之過也!”乃收兵回洛陽。魏主聞張郃死,揮淚歎息,令人收其屍,厚葬之。
 
184
한편, 장합이 전사한 뒤, 뒤따라 위병들이 도착해서 도로가 막힌 것을 보고, 장합이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았다. 군사들이 말머리를 돌려 급히 퇴각했다. 갑자기 산꼭대기 위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5
“제갈 승상께서 여기 계시다!”
 
186
했다. 군사들이 쳐다보니, 공명이 불빛 사이에 서서, 군사들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187
“내가 오늘 사냥으로‘말'을 쏘아 잡으려 했는데 잘못돼서‘노루'를 잡았구나. 너희 모두 안심하고 돌아가서, 중달에게 아뢰어, 조만간 반드시 내게 잡힐 것이라고 해라.”
 
188
했다. 위나라 군사들이 돌아가서 사마의를 만나, 앞의 일을 자세히 고했다. 사마의가 비통해 마지않더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189
“장준의(장합)가 죽은 것은 나의 잘못이다!”
 
190
했다. 이에 병력을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군주가 장합이 전사함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 시신을 거두어서 후하게 장례를 치르게 했다.
 
 
191
卻說,孔明入漢中,欲歸成都見後主。都護李嚴妄奏後主曰:“臣已辦備軍糧,行將運赴丞相軍前,不知丞相何故忽然班師。”後主聞奏,即命尚書費禕入漢中見孔明,問班師之故。禕至漢中,宣後主之意。孔明大驚曰:“李嚴發書告急,說東吳將興兵寇川,因此回師。”費禕曰:“李嚴奏稱軍糧已辦,丞相無故回師,天子因此命某來問耳。”
 
192
한편, 공명이 한중으로 들어가서, 후주를 만나러 성도로 돌아가려고 했다. 도호 이엄이 후주에게 거짓말로 아뢰기를,
 
193
“신이 이미 군량을 준비하고, 곧 승상의 전장으로 운송하려는데, 승상이 갑자기 군사를 거둬 돌아온다고 하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194
했다. 후주가 아룀을 듣고 즉시 상서 비위에게 명하여, 한중으로 들어가 공명을 만나 철병한 이유를 묻게 했다. 비위가 한중에 도착하여 후주의 뜻을 전했다. 공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95
“이엄이 서신을 보내 위급을 고하며, 동오가 장차 출병하여 서천을 침범할 것이라고 해서, 이 때문에 군사를 거둔 것이오.”
 
196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197
“이엄이 아뢰기를,‘군량을 이미 준비했는데, 승상께서 까닭 없이 회군한다.’고 하여, 천자께서 이 때문에 저에게 명하여, 찾아와 묻게 한 것입니다.”
 
198
했다.
 
 
199
孔明大怒,令人訪察:乃是李嚴因軍糧不濟,怕丞相見罪,故發書取回,卻又妄奏天子,遮飾己過。孔明大怒曰:“匹夫爲一己之故,廢國家大事!”令人召至,欲斬之。費禕勸曰:“丞相念先帝托孤之意,姑且寬恕。”孔明從之。費禕即具表啟奏後主。後主覽表,勃然大怒,叱武士推李嚴出斬之。參軍蔣琬出班奏曰:“李嚴乃先帝托孤之臣,乞望恩寬恕。”
 
200
공명이 크게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방문조사를 해보니, 실은 이엄이 군량을 마련하지 못해, 승상에게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서신을 보내어 회군하게 하고, 도리어 천자에게 거짓말을 아뢰어, 자기의 과오를 숨긴 것이었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201
“필부가 자기 한 몸을 위해, 국가 대사를 폐하다니!”
 
202
하고, 사람들을 시켜 끌고 와서 참하려 했다. 비위가 권하기를,
 
203
“승상께서는 선제 폐하의 부탁하신 뜻을 생각하시어, 잠시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204
하니, 공명이 이를 따랐다. 비위가 즉시 표를 갖춰 후주에게 아뢰었다. 후주가 표를 읽어보고, 왈칵 크게 성을 내어 무사들을 호통쳐서, 이엄을 끌어다가 참하라고 했다. 참군 장완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205
“이엄은 선제께서 탁고(고아를 부탁함)한 신하이니, 바라옵건대 너그러이 용서해 주소서.”
 
206
했다.
 
 
207
後主從之,即謫爲庶人,徙於梓潼郡閑住。孔明回到成都,用李嚴子李豐爲長史;積草屯糧,講陣論武,整治軍器,存恤將士:三年然後出征。兩川人民軍士,皆仰其恩德。光陰茬苒,不覺三年:時建興十二年春二月。孔明入朝奏曰:“臣今存恤軍士,已經三年。糧草豐足,軍器完備,人馬雄壯,可以伐魏。今番若不掃清奸黨,恢複中原,誓不見陛下也!”後主曰:“方今已成鼎足之勢,吳、魏不曾入寇,相父何不安享太平?”孔明曰:“臣受先帝知遇之恩,夢寐之間,未嘗不設伐魏之策。竭力盡忠,爲陛下克複中原,重興漢室:臣之願也。”言未畢,班部中一人出曰:“丞相不可興兵。” 衆視之,乃譙周也。正是:武侯盡瘁惟憂國,太史知機又論天。
 
208
후주가 이를 따라, 즉각 이엄을 서인(평민)으로 삼아 재동군으로 귀양을 보내서 한가로이 살게 했다. 공명이 성도로 돌아와서, 이엄의 아들 이풍을 장사(비서장)로 임용했다. 군량을 모으고, 진법과 병법을 강론하고, 무기를 정비하고, 장졸들을 돌보며, 삼 년 후 출정하기로 했다. 양천(촉나라)의 인민과 군사들이 모두 그 은덕을 우러러보았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때는 건흥 12년 봄 2월이었다. 공명이 조정에 들어가 아뢰기를,
 
209
“신이 이제 군사들을 살핀 지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군량과 사료는 풍족하고, 무기는 완비되고, 인마는 튼튼하니, 위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간사한 무리(위나라)를 쓸어내어, 중원을 회복하지 못하면, 맹세코 폐하를 뵙지 않겠습니다!”
 
210
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211
“지금은 이미 세 발 솥의 형세를 이루어, 오나라와 위나라가 침입하지 않는데, 상부(제갈량을 높여 부르는 말)께서 어찌 편안히 태평세월을 누리지 않으십니까?”
 
21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213
“신이 선제 폐하의 지우지은(재능을 알아본 은혜)을 입어, 잠들어 꿈꾸는 사이에도, 위나라를 정벌하는 계책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 바쳐 폐하를 위하여 중원을 회복하고, 한나라 황실을 중흥하는 것이 신의 소원입니다.”
 
214
했다.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215
“승상께서 출병해서는 안 됩니다.”
 
216
했다. 사람들이 보니 바로 초주였다. 이야말로, 무후가 정성을 다해 오로지 나라를 걱정하는데, 태사(초주)가 천기를 알고 천명을 논하네.
 
 
217
未知譙周有何議論,且看下文分解。
 
218
초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1회 농상으로 출병한 제갈량이 신처럼 꾸미고, 검각으로 달려간 장합이 계책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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