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40회 채 부인이 형주를 바칠 것을 의논하고, 제갈량이 신야를 불사르다. ◇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40권 다음
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四十回 蔡夫人議獻荊州 諸葛亮火燒新野
2
제40회 채 부인이 형주를 바칠 것을 의논하고, 제갈량이 신야를 불사르다.
 
 
3
卻說玄德問孔明求拒曹兵之計。孔明曰:“新野小縣,不可久居,近聞劉景升病在危篤,可乘此機會,取彼荊州爲安身之地,庶可拒曹操也。”玄德曰:“公言甚善;但備受景升之恩,安忍圖之!”孔明曰:“今若不取,後悔何及!”玄德曰:“吾寧死,不忍作負義之事。”孔明曰:“且再作商議。”
 
4
한편, 현덕이 공명에게 조조의 병력을 막을 계책을 묻자 공명이 말하기를,
 
5
“신야는 작은 고을이라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요새 듣건대 유경승의 병이 위독하니 가히 이 기회를 타서 형주를 취하여 정착할 땅으로 삼으면 거의 조조를 막을 만합니다.”
 
6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7
“공의 말씀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제가 경승의 은혜를 입어 어찌 차마 그런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8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9
“지금 취하지 아니하면 후회해도 어쩌지 못합니다.”
 
10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1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차마 정의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12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3
“다시 상의하기로 하지요.”
 
14
했다.
 
 
15
卻說夏侯惇敗回許昌,自縛見曹操,伏地請死。操釋之。惇曰:“惇遭諸葛亮詭計,用火攻破我軍。”操曰:“汝自幼用兵,豈不知狹處須防火攻?”惇曰:“李典、於禁曾言及此,悔之不及!”操乃賞二人。惇曰:“劉備如此猖狂,真腹心之患也,不可不急除。”操曰:“吾所慮者,劉備、孫權耳;餘皆不足介意,今當乘此時掃平江南。”便傳令起大兵五十萬,令曹仁、曹洪爲第一隊,張遼、張郃爲第二隊。夏侯淵、夏侯惇爲第三隊,於禁、李典爲第四隊,操自領諸將爲第五隊:每隊各引兵十萬。又令許褚爲折沖將軍,引兵三千爲先鋒。選定建安十三年秋七月丙午日出師。
 
16
한편, 하후돈이 패하여 허창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포박하여 조조를 만나 땅에 엎드려 죽기를 청했다. 조조가 풀어주자 하후돈이 말하기를,
 
17
“제가 제갈량의 속임수에 빠졌습니다. 화공을 써서 아군을 격파했습니다.”
 
18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19
“자네가 젊어서부터 용병했거늘 어찌 좁은 곳에서는 화공을 방비할 것을 몰랐는가?”
 
20
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21
“이전과 우금이 일찍이 그것을 말했습니다. 후회한들 어쩌겠습니까!”
 
22
하니, 조조가 이전과 우금 두 사람에게 포상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23
“유비가 이토록 미친 듯이 날뛰니 참으로 뱃속의 근심거리입니다. 어서 제거해야 합니다.”
 
24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25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유비와 손권 뿐이오. 나머지야 모두 개의치 않소. 이제 이번 기회에 강남을 쓸어서 평정해야겠소.”
 
26
했다. 곧 명령을 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고 조인과 조홍을 제1대로, 장요와 장합을 제2대로, 하후연과 하후돈을 제3대로, 우금과 이전을 제4대로 삼았다. 조조 스스로 장수들을 거느려서 제5대가 되었다. 각 부대마다 10만 병력을 이끌었다. 또한 허저를 절충장군으로 삼아 3천 병력을 이끌고 선봉을 맡게 했다. 건안 13년 가을 7월 병오일을 선정하여 출병했다.
 
 
27
太中大夫孔融諫曰:“劉備,劉表皆漢室宗親,不可輕伐;孫權虎踞六郡,且有大江之險,亦不易取,今丞相興此無義之師,恐失天下之望。”操怒曰:“劉備、劉表、孫權皆逆命之臣,豈容不討!”遂叱退孔融,下令:“如有再諫者,必斬。”孔融出府,仰天歎曰:“以至不仁伐至仁,安得不敗乎!”
 
28
태중대부(황제의 고문) 공융이 간하여 말하기를,
 
29
“유비와 유표는 모두 한실종친이라 함부로 정벌해선 안 됩니다. 손권도 6군에 호랑이처럼 걸터앉은 데다가 큰 강의 험준함이 있으니 역시 쉽게 취하지 못합니다. 지금 승상께서 이러한 명분없는 군사를 일으키니 천하의 소망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30
하니, 조조가 성을 내어 말하기를,
 
31
“유비와 유표, 손권이 모두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는 신하인데 어찌 토벌하지 않겠소?”
 
32
하고, 마침내 공융을 꾸짖어 물리치고, 영을 내려
 
33
“더 이상 간언하는 자는 반드시 처형할 것이라.”
 
34
했다. 공융이 부중을 나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35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가 지극히 어진 자를 치다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
 
36
했다.
 
 
37
時禦史大夫郗慮家客聞此言,報知郗慮,慮常被孔融侮慢,心正恨之,乃以此言入告曹操,且曰:“融平日每每狎侮丞相,又與禰衡相善,衡贊融曰‘仲尼不死,融贊衡曰顏回複生’。向者禰衡之辱丞相,乃融使之也。”操大怒,遂命廷尉捕捉孔融。融有二子,年尚少,時方在家,對坐弈棋。左右急報曰:“尊君被廷尉執去,將斬矣!二公子何不急避?”二子曰:“破巢之下,安有完卵乎?”
 
38
이때 어사대부(관직자 감찰) 치려의 문객이 그 말을 듣고 치려에게 알려주었다. 치려가 공융에게 늘 거만하게 업신여김을 당해 마음속으로 한을 품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들어가서 조조에게 고하고 또 말하기를,
 
39
“공융이 평소에 매양 승상을 무시하고 예형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예형이 공융을 칭찬하여,‘중니(공자)께서 죽지 았았소.’하고, 공융은 예형을 칭찬하여 ‘안회께서 되살아난 듯하오.’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예형이 승상을 모욕한 것도 바로 공융이 시킨 것입니다.”
 
40
하니, 조조가 크게 노해 곧 정위(최고 사법관)에게 명해 공융을 잡아들이게 했다. 공융에게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때 마침 집안에서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좌우에서 급히 알리기를,
 
41
“부친께서 정위에게 잡혀가셔서 곧 처형되십니다. 두 공자께서 어찌 서둘러 피하시지 않습니까?”
 
42
하니, 두 아들이 말하기를,
 
43
“둥지가 깨뜨려졌는데 어찌 온전한 알이 있겠습니까?”
 
44
라고 했다.
 
 
45
言未已,廷尉又至,盡收融家小並二子,皆斬之,號令融屍於市。京兆脂習伏屍而哭。操聞之,大怒,欲殺之。荀彧曰:“彧聞脂習常諫融曰:公剛直太過,乃取禍之道,今融死而來哭,乃義人也,不可殺。”操乃止,習收融父子屍首,皆葬之。後人有詩贊孔融曰:孔融居北海,豪氣貫長虹:坐上客長滿,樽中酒不空;文章驚世俗,談笑侮王公。史筆褒忠直,存官紀“太中”。曹操既殺孔融,傳令五隊軍馬次第起行,只留荀彧等守許昌。
 
46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위가 들이닥쳐서 공융 식구와 아울러 두 아들을 잡아다가 모두 처형했다. 공융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공개하니, 경조(서울) 사람 지습이 시체에 엎드려 곡을 했다. 조조가 듣고 크게 노하여 죽이려 하자 순욱이 말하기를,
 
47
“제가 듣자니 지습이 항상 공융에게 간하기를 ‘공께서 지나치게 강직하니 화를 부르는 길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지금 공융이 죽자 와서 곡을 하니 바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죽여선 안 됩니다.”
 
48
하니, 조조가 이에 그만두었다. 지습이 공융 부자의 시신을 거두어 모두 장사지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49
“공융이 북해에 살아 호기가 무지개를 뚫었네, 자리에는 손님들이 가득하고 술동이에 술이 비지 않았네. 문장은 세상 사람을 놀래고 담소는 왕공을 조롱했네. 역사 기록은 충직함을 기렸고, 관직에 있기는 태중대부였네.”
 
50
라고 했다. 조조가 이미 공융을 죽인 뒤, 다섯 대 군마를 차례로 출발하게 하고 순욱 등을 남겨 허창을 지키게 했다.
 
 
51
卻說荊州劉表病重,使人請玄德來托孤。玄德引關、張至荊州見劉表。表曰:“我病已入膏肓,不久便死矣,特托孤於賢弟。我子無才,恐不能承父業,我死之後,賢弟可自領荊州。”玄德泣拜曰:“備當竭力以輔賢侄,安敢有他意乎!”正說間,人報曹操自統大兵至。玄德急辭劉表,星夜回新野。劉表病中聞此信,吃驚不小,商議寫遺囑,令玄德輔佐長子劉琦爲荊州之主。
 
52
한편, 형주의 유표의 병세가 위중해서 사람을 시켜 현덕을 불러 사후에 남겨진 자식을 맡기고자 한다. 현덕이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형주에 이르러 유표를 만났다. 유표가 말하기를,
 
53
“내 병이 이미 고황(병이 들면 낫기 어렵다는 곳)에 들어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오. 아우님께 특별히 자식들을 부탁하오. 내 아들들이 재주가 없으니 내 유업을 잇지 못할까 걱정이오. 내가 죽은 뒤 아우님께서 스스로 형주를 다스리시오.”
 
54
했다. 현덕이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려 말하기를,
 
55
“제가 마땅히 힘껏 조카님을 보필해야지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이 있겠습니까?”
 
56
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람이 보고하기를, 조조가 스스로 대병력을 이끌고 온다고 했다. 현덕이 서둘러 유표에게 작별을 고하고 밤새 신야로 되돌아갔다. 유표가 병중에 이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라 유촉(유언) 적는 것을 상의하여, 현덕이 보좌하고 맏아들 유기가 형주의 새 주인이 될 것을 명하였다.
 
 
57
蔡夫人聞之大怒,關上內門;使蔡瑁、張允二人把住外門。時劉琦在江夏,知父病危,來至荊州探病,方到外門,蔡瑁當住曰:“公子奉父命鎮守江夏,其任至重;今擅離職守,倘東吳兵至,如之奈何?若入見主公,主公必生嗔怒,病將轉增,非孝也。宜速回。”劉琦立於門外,大哭一場,上馬仍回江夏。劉表病勢危篤,望劉琦不來;至八月戊申日,大叫數聲而死。後人有詩歎劉表曰:“昔聞袁氏居河朔,又見劉君霸漢陽。總爲牝晨致家累,可憐不久盡銷亡!”
 
58
채 부인이 듣고 크게 노해 안쪽 문을 걸어 잠그고 채모와 장윤 두 사람을 시켜 바깥문을 지키게 했다. 이때 유기가 강하에서 아버지 병환이 위중한 것을 알고 문병하러 형주에 이르러, 바깥문에 다다르자 채모가 가로막고 말하기를,
 
59
“공자께서는 부친의 명을 받들어 강하를 진치고 지키니 그 임무가 지극히 무겁습니다. 이제 함부로 직무에서 떠나시니 만약 동오 병력이 쳐들어온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만약 들어가 주공을 만나면 주공께서 필시 진노하셔서 병환이 더욱 심해질테니 효도가 아닙니다. 마땅히 어서 돌아가십시오.”
 
60
했다. 유기가 문 밖에 서서 한바탕 크게 곡하고, 말에 올라 강하로 돌아갔다. 유표는 병세가 위독한 가운데 유기를 기다리지만 유기는 오지 않았다. 8월 무신일에 (유표가) 수차례 크게 외치더니 죽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유표를 탄식하는 시를 짓기를,
 
61
“지난날에 원씨가 하북 지방에 웅거하고, 유표가 한양(한수 북쪽)을 장악했으나, 모두 암탉이 새벽에 울어 집안에 누가 되더니, 가련하게 오래지 않아 모두 멸망했구나.”
 
62
하였다.
 
 
63
劉表既死,蔡夫人與蔡瑁、張允商議,假寫遺囑,令次子劉琮爲荊州之主,然後舉哀報喪。時劉琮年方十四歲,頗聰明,乃聚 衆言曰:“吾父棄世,吾兄現在江夏,更有叔父玄德在新野。汝等立我爲主。倘兄與叔興兵問罪,如何解釋?” 衆官未及對,幕官李珪答曰:“公子之言甚善。今可急發哀書至江夏,請大公子爲荊州之主,就命玄德一同理事:北可以敵曹操,南可以拒孫權。此萬全之策也。”蔡瑁叱曰:“汝何人,敢亂言以逆主公遺命!”李珪大罵曰:“汝內外朋謀,假稱遺命,廢長立幼,眼見荊襄九郡,送於蔡氏之手!故主有靈,必當殛汝!”
 
64
유표가 이미 죽고 채 부인이 채모, 장윤과 상의하여 거짓 유서를 써서 둘째아들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삼은 뒤, 소리 높여 곡하고 부고를 돌렸다. 이때 유종의 나이 막 14세인데 제법 총명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말하기를,
 
65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지만 형은 현재 강하에 있고 더구나 숙부 현덕은 신야에 있소. 그대들이 나를 주인으로 세웠지만 만약 형과 숙부가 출병해 죄를 묻는다면 어떻게 풀겠소?”
 
66
했다. 관리들이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데, 막료 이규가 대답하기를,
 
67
“공자의 말씀이 매우 훌륭합니다. 지금 서둘러 강하에 부고를 전하시고 큰 공자(유기)를 청해 형주의 주인으로 삼으십시오. 현덕을 시켜 함께 일을 처리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북으로 가히 조조를 대적할 수 있고 남으로 가히 손권을 막을 수 있으니 이는 만전을 기하는 계책입니다.”
 
68
하니, 채모가 꾸짖어 말하기를,
 
69
“네가 뭔데 감히 어지러운 말로 주공의 유명을 거스르느냐!”
 
70
했다. 이규가 크게 욕하기를,
 
71
“네놈이 안팎으로 무리지어 음모를 꾸미고 유명을 위조해 맏이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워 형주 양양 9군을 눈 깜짝할 사이에 채씨 손에 넘기려 하는구나! 돌아가신 주공의 영혼이 있다면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72
했다.
 
 
73
蔡瑁大怒,喝令左右推出斬之。李珪至死大罵不絕。於是蔡瑁遂立劉琮爲主。蔡氏宗族,分領荊州之兵;命治中鄧義、別駕劉先守荊州;蔡夫人自與劉琮前赴襄陽駐紥,以防劉琦、劉備。就葬劉表之柩於襄陽城東漢陽之原,竟不訃告劉琦與玄德。劉琮至襄陽,方才歇馬,忽報曹操引大軍徑望襄陽而來。琮大驚,遂請蒯越、蔡瑁等商議。東曹掾傅巽進言曰:“不特曹操兵來爲可憂;今大公子在江夏,玄德在新野,我皆未往報喪,若彼興兵問罪,荊襄危矣。巽有一計,可使荊襄之民,安如泰山,又可保全主公名爵。”琮曰:“計將安出?”巽曰:“不如將荊襄九郡,獻與曹操,操必重待主公也。”
 
74
채모가 크게 노해 좌우에게 소리질러 끌어내 참하게 하지만 이규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크게 욕해 마지않았다. 이에 채모가 곧 유종을 주인으로 세우고, 채씨 종족이 형주의 병력을 나눠 거느렸다. 치중(자사의 보좌관) 등의와 별가(보좌관) 유선에게 명해 형주를 수비케 하였다. 채 부인이 스스로 유종과 더불어 양양으로 가서 주둔하여 유기와 유비를 방비했다. 유표의 관을 양양성의 동쪽 한양 언덕에 장사 지내고 끝내 유기와 현덕에게는 부고를 보내지 않았다. 유종이 양양에 이르러 말을 세워 쉬는데 문득 보고가 올라오니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곧장 양양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다. 유종이 크게 놀라 괴월, 채모 등을 불러 상의했다. 동조연(보좌관) 부손이 나아가 말하기를,
 
75
“비단 조조 병력이 오는 것만 근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이제 큰 공자(유기)는 강하에 있고 현덕은 신야에 있는데 우리가 아무도 가서 상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출병해서 죄를 묻는다면 형주 양양이 위태롭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형주 양양의 백성들을 태산처럼 안정시킬 뿐더러 주공의 명예와 지위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76
하니, 유종이 말하기를,
 
77
“어떤 계책이오?”
 
78
했다. 부손이 말하기를,
 
79
“형주 양양 9군을 조조에게 바치는 게 좋습니다. 조조가 반드시 주공을 후대할 것입니다.”
 
80
하였다.
 
 
81
琮叱曰:“是何言也!孤受先君之基業,坐尚未穩,豈可便棄之他人?”蒯越曰:“傅公悌之言是也。夫逆順有大體,強弱有定勢。今曹操南征北討,以朝廷爲名,主公拒之,其名不順。且主公新立,外患未寧,內憂將作。荊襄之民,聞曹兵至,未戰而膽先寒,安能與之敵哉?”琮曰:“諸公善言,非我不從;但以先君之業,一旦棄與他人,恐貽笑於天下耳。”
 
82
유종이 꾸짖어 말하기를,
 
83
“이것이 무슨 소리요! 내가 선군으로부터 기업을 이어받아 자리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거늘 어찌 그 땅을 남에게 줄 수 있겠소?”
 
84
하니, 괴월이 말하기를,
 
85
“부공제(공제는 부손의 자)의 말이 옳습니다. 무릇 거스르고 따르는 것도 큰 줄거리가 있으며, 강하고 약한 것도 정해진 형세가 있습니다. 지금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조정을 장악해 명분이 서는데 주공께서 맞서면 그 명분이 순조롭지 못합니다. 게다가 주공께서 이제 막 자리에 올랐기에 바깥의 우환이 가라앉지 않으면 곧 안의 근심거리가 일어납니다. 형주 양양의 백성들이 조조의 병력이 오는 것을 들으면 미처 싸우기도 전에 간담이 서늘해질텐데 어찌 더불어 대적하겠습니까?”
 
86
했다. 유종이 말하기를,
 
87
“여러분의 좋은 말씀을 내가 따르지 않겠다는 게 아니오. 다만 선군의 유업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남에게 주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소.”
 
88
했다.
 
 
89
言未已,一人昂然而進曰:“傅公悌、蒯異度之言甚善,何不從之?” 衆視之,乃山陽高平人,姓王,名粲,字仲宣。粲容貌瘦弱,身材短小;幼時往見中郎蔡邕,時邕高朋滿座,聞粲至,倒履迎之。賓客皆驚曰:“蔡中郎何獨敬此小子耶?”邕曰:“此子有異才,吾不如也。”粲博聞強記,人皆不及:嘗觀道旁碑文一過,便能記誦;觀人弈棋,棋局亂,粲複爲擺出,不差一子。又善算術。其文詞妙絕一時。年十七,辟爲黃門侍郎,不就。後因避亂至荊襄,劉表以爲上賓。
 
90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당당하게 나아가 말하기를,
 
91
“부공제나 괴이도(이도는 괴월의 자)의 말씀이 몹시 훌륭한데 어찌하여 따르지 않습니까?”
 
92
했다. 사람들이 보니 바로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성은 왕이고 이름은 찬인데 자는 중선이다. 왕찬은 용모가 여위고 약하며 키가 작았다. 어려서 중랑 채옹을 찾아가 만나니 당시 채옹은 고상한 벗들이 좌석에 가득한데, 왕찬이 온 것을 듣더니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나가서 맞이했다. 빈객들이 모두 놀라 말하기를,
 
93
“채중랑께서 왜 유독 이 아이만 대우하십니까?”
 
94
하니, 채옹이 말하기를,
 
95
“이 아이는 남다른 재주가 있어 저보다 뛰어납니다.”
 
96
했다. 왕찬의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일찍이 길가의 비문을 한번 보고는 바로 외워 읊었다. 남들이 두는 바둑을 보고 바둑판이 어지러워져도 왕찬이 복기하여 두는데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또한 산술을 잘했다. 그 문장이 뛰어나서 당대에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나이 열일곱에 황문시랑으로 천거됐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뒷날 형주 양양으로 피난하여 유표가 상객으로 삼았다.
 
 
97
當日謂劉琮曰:“將軍自料比曹公何如?”琮曰:“不如也。”粲曰:“曹公兵強將勇,足智多謀;擒呂布於下邳,摧袁紹於官渡,逐劉備於隴右,破烏桓於白狼:梟除蕩定者,不可勝計。今以大軍南下荊襄,勢難抵敵。傅、蒯二君之謀,乃長策也。將軍不可遲疑,致生後悔。”琮曰:“先生見教極是。但須稟告母親知道。”只見蔡夫人從屏後轉出,謂琮曰:“既是仲宣、公悌、異度三人所見相同,何必告我。”
 
98
그날 (왕찬이) 유종에게 말하기를,
 
99
“장군께서 스스로 헤아리시기에 조공에 비해 어떻습니까?”
 
100
하니, 유종이 말하기를,
 
101
“그보다 못합니다.”
 
102
했다. 왕찬이 말하기를,
 
103
“조공은 병사가 강하고 장수가 용감한데다 지혜가 넘치고 꾀가 많습니다.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고, 관도에서 원소를 꺾었으며, 농우에서 유비를 쫓아내고 백랑에서 오환을 격파했습니다. 제거하고 평정한 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대군으로써 형주 양양으로 남하하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부손과 괴월 두 분의 꾀는 곧 멀리 바라보는 계책입니다. 장군께서 머뭇거리다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104
했다. 유종이 말하기를,
 
105
“선생의 가르침이 극히 옳습니다. 다만 모친께 고하여 알려드려야겠습니다.”
 
106
하니, 채 부인이 병풍 뒤에서 돌아나와 유종에게 말하기를,
 
107
“이미 중선, 공제, 이도 세 분의 소견이 같은데 하필 나에게 고하겠느냐?”
 
108
했다.
 
 
109
於是劉琮意決,便寫降書,令宋忠潛地往曹操軍前投獻。宋忠領命,直至宛城,接著曹操,獻上降書。操大喜,重賞宋忠,分付教劉琮出城迎接,便著他永爲荊州之主。宋忠拜辭曹操,取路回荊襄。將欲渡江,忽見一枝人馬到來,視之,乃關雲長也。宋忠回避不迭,被雲長喚住,細問荊州之事。忠初時隱諱;後被雲長盤問不過,只得將前後事情,——實告。雲長大驚,隨捉宋忠至新野見玄德,備言其事。
 
110
이에 유종이 뜻을 정하여 항복 문서를 써서 송충에게 명해 몰래 조조 군대의 진영으로 가서 바치게 했다. 송충이 명을 받들어 곧바로 완성에 가서 조조를 만나 항서를 바쳤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송충을 후하게 포상했다. 그에게 분부해 유종이 성을 나와 조조를 영접할 것과 조조는 그를 영원히 형주의 주인으로 삼을 것임을 전하게 한다. 송충이 조조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고 길을 나서 형주 양양으로 돌아갔다. 강을 건너려는데 문득 한줄기 인마들이 다가왔다. 바라보니 바로 관운장이다. 송충이 미처 회피하지 못해 운장이 붙잡아서 형주의 일을 캐물었다. 송충이 처음에는 숨기다가 뒤에 운장이 거듭 캐묻자 어쩌지 못해 전후사정을 낱낱이 사실대로 고했다. 운장이 크게 놀라서 송충을 붙잡아 신야로 데려가서 현덕을 만나 그 일을 낱낱이 말했다.
 
 
111
玄德聞之大哭。張飛曰:“事已如此,可先斬宋忠,隨起兵渡江,奪了襄陽,殺了蔡氏、劉琮,然後與曹操交戰。”玄德曰:“你且緘口。我自有斟酌。”乃叱宋忠曰:“你知 衆人作事,何不早來報我?今雖斬汝,無益於事。可速去。”忠拜謝,抱頭鼠竄而去。玄德正憂悶間,忽報公子劉琦差伊籍到來。玄德感伊籍昔日相救之恩,降階迎之,再三稱謝。籍曰:“大公子在江夏,聞荊州已故,蔡夫人與蔡瑁等商議,不來報喪,竟立劉琮爲主。公子差人往襄陽探聽,回說是實;恐使君不知,特差某齎哀書呈報,並求使君盡起麾下精兵,同往襄陽問罪。”
 
112
현덕이 듣고 크게 곡을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113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먼저 송충을 참하고 출병해 강을 건너 양양을 빼앗고 채씨와 유종을 죽인 뒤에 조조와 더불어 교전해야 합니다.”
 
114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15
“너는 입을 다물어라. 내 나름대로 헤아리는 게 있다.”
 
116
했다. 현덕이 송충을 꾸짖어 말하기를,
 
117
“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을 알고 어찌해서 어서 일찍 내게 알리지 않았느냐? 이제 너를 참한들 아무 이로울 게 없으니 어서 돌아가라.”
 
118
했다. 송충이 작별 인사를 올리고 머리를 감싼 채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현덕이 한창 근심하고 있는데 문득 공자 유기가 이적을 보냈다. 현덕은 그가 지난날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계단을 내려가 맞이하여 거듭 사례했다. 이적이 말하기를.
 
119
“큰 공자(유기)께서 강하에 계시면서, 유형주(유표)께서 이미 돌아가신 것을 들었으나 채 부인이 채모 등과 상의하여 부고도 보내지 않고 마침내 유종을 주군으로 세웠습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양양으로 보내 정탐하게 해서 돌아와 사실을 보고했는데, 사군께서 모르고 계실까 걱정하여 저를 보내 부고의 글을 전하고 아울러 사군께 요청해 휘하 정병을 모두 동원해 함께 양양으로 가서 죄를 묻자고 하십니다.”
 
120
했다.
 
 
121
玄德看書畢,謂伊籍曰:“機伯只知劉琮僭立,更不知劉琮已將荊襄九郡獻與曹操矣!”籍大驚曰:“使君從何知之?”玄德具言拿獲宋忠之事。籍曰:“若如此,使君不如以吊喪爲名,前赴襄陽,誘劉琮出迎,就便擒下,誅其黨類,則荊州屬使君矣。”孔明曰:“機伯之言是也。主公可從之。”玄德垂淚曰:“吾兄臨危托孤於我,今若執其子而奪其地,異日死於九泉之下,何面目複見吾兄乎?”孔明曰:“如不行此事,今曹兵已至宛城,何以拒敵?”玄德曰:“不如走樊城以避之。”
 
122
현덕이 (부고의) 서찰을 다 읽고 나서 이적에게 말하기를,
 
123
“기백(이적의 자)은 단지 유종이 자리를 빼앗은 것만 알지 유종이 이미 형주 양양 9군을 조조에게 바친 것을 모르는구려!”
 
124
하니, 이적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25
“사군께서 어찌 아십니까?”
 
126
했다. 현덕이 송충을 사로잡은 일을 낱낱이 말하자, 이적이 말하기를,
 
127
“만약 이렇다면 사군께서는 차라리 문상을 명분으로 양양으로 달려가서 유종을 마중 나오게 유인하여 사로잡아서 그 일당을 처형하여 형주를 차지하시는 게 낫습니다.”
 
12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29
“기백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공께서 따르셔야 합니다.”
 
130
했다. 현덕이 눈물 흘리며 말하기를,
 
131
“내 형님께서 위독하실 때 내게 아들을 부탁하셨는데 이제 그 아들을 잡아 그 땅을 빼앗는다면 언젠가 죽어 구천에서 무슨 낯으로 형님을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13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33
“만약 이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지금 조조 병력이 벌써 완성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대적하시겠습니까?”
 
134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35
“번성으로 달아나 피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136
했다.
 
 
137
正商議間,探馬飛報曹兵已到博望了。玄德慌忙發付伊籍回江夏整頓軍馬,一面與孔明商議拒敵之計。孔明曰:“主公且寬心。前番一把火,燒了夏侯惇大半人馬;今番曹軍又來,必教他中這條計。我等在新野住不得了,不如早到樊城去。”便差人四門張榜,曉諭居民:“無問老幼男女,願從者,即於今日皆跟我往樊城暫避,不可自誤。”差孫乾往河邊調撥船只,救濟百姓;差糜竺護送各官家眷到樊城。
 
138
상의하고 있는데 정찰 기병이 급보를 전하니 조조의 병력이 이미 박망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현덕이 황망히 이적을 강하로 되돌려 보내어 군마를 정돈하게 하는 한편, 공명과 더불어 적을 막을 계책을 상의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39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번에 화공으로 하후돈의 인마들 가운데 태반을 불살랐습니다. 이번에 조조의 군대가 다시 오니 반드시 그가 저 계략에 걸려들었던 것을 가르쳐줬을 겁니다. 우리가 신야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빨리 번성으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140
했다. 곧 사람을 보내 4개 성문에 방을 써 붙여 거주민들에게 고지하기를,
 
141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따라가고 싶은 자는 오늘 즉시 모두 나를 따라 번성으로 잠시 피난하는데 착오가 없도록 하라.”
 
142
고 했다. 손건을 강가로 보내 선박을 조달하여 백성을 구제하게 하고, 미축을 보내 관리들의 가족을 호위해 번성으로 가게 했다.
 
 
143
一面聚諸將聽令,先教雲長:“引一千軍去白河上流頭埋伏。各帶布袋,多裝沙土,遏住白河之水,至來日三更後,只聽下流頭人喊馬嘶,急取起布袋,放水淹之,卻順水殺將下來接應。”又喚張飛:“引一千軍去博陵渡口埋伏。此處水勢最慢,曹軍被淹,必從此逃難,可便乘勢殺來接應。”又喚趙雲:“引軍三千,分爲四隊,自領一隊伏於東門外,其三隊分伏西、南、北三門,卻先於城內人家屋上,多藏硫黃焰硝引火之物。曹軍入城,必安歇民房。來日黃昏後,必有大風;但看風起,便令西、南、北三門伏軍盡將火箭射入城去;待城中火勢大作,卻於城外呐喊助威,只留東門放他出走。汝卻於東門外從後擊之。天明會合關、張二將,收軍回樊城。”
 
144
한편으로 장수들을 불러모아 명령을 듣게 하니, 먼저 운장에게 이르기를,
 
145
“1천 군사를 이끌고 백하(한수의 지류) 상류로 가서 매복하고, 사람마다 포대를 가져가 모래와 흙을 담아 백하의 물을 막았다가, 내일 3경이 지나서 하류에서 사람의 함성과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거든 급히 포대를 허물어 물을 놓아 빠뜨리고, 물살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서 접응하시오.”
 
146
했다.
 
147
또한 장비를 불러 이르기를,
 
148
“1천 군사를 이끌고 박릉의 나루 어귀에 매복하고, 이곳의 물살은 가장 느려서 조조 군대가 물에 빠지면 반드시 이곳으로 도망해 올 것이니 가히 기세를 타고 달려들어 접응할 수 있소.”
 
149
했다. 또 조운을 불러 이르기를,
 
150
“3천 군사를 이끌되, 4개 부대로 나누어 그 가운데 1개 부대를 장군 스스로 이끌고 동문 밖에 매복하고, 나머지 3개 부대는 서, 남, 북의 3개 성문에 매복하시오. 먼저 성 안의 인가 옥상에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물질을 가득 쌓아 두시오. 조조의 군대가 입성하면 반드시 민가에서 쉴 것이오. 내일 황혼이 된 후에 반드시 큰 바람이 불 테니,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서, 남, 북 3개 문의 복병들은 일제히 불화살을 성 안으로 쏘게 하시오.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기를 기다려, 성 밖에서 함성을 질러 위세를 더해서, 적들이 동문 밖으로 몰려 나와 달아나게 놔두시오. 이때 그대가 동문 밖에서 뒤로부터 적군을 공격하시오. 동이 트면 관우, 장비 두 장군과 합쳐서 군사를 거두어 번성으로 돌아가시오.”
 
151
했다.
 
 
152
再令糜芳、劉封:“二人帶二千軍。一半紅旗,一半青旗,去新野城外三十裏鵲尾坡前屯住。一見曹軍到,紅旗軍走在左,青旗軍走在右。他心疑必不敢追。汝二人卻去分頭埋伏。只望城中火起,便可追殺敗兵,然後卻來白河上流頭接應。”孔明分撥已定,乃與玄德登高了望,只候捷音。
 
153
다시 미방과 유봉에게 명령하기를,
 
154
“두 사람은 2천 군사를 거느리고 절반은 붉은 깃발을, 절반은 푸른 깃발을 들고 신야성 밖 30리의 작미파(까치꼬리 언덕) 앞에 주둔했다가, 조조 군사가 다다르면 붉은 깃발을 든 부대는 왼쪽으로 달아나고, 푸른 깃발을 든 부대는 오른쪽으로 달아나시오. 그들이 반드시 의심해 감히 뒤쫓지 못할테니 그대 두 사람은 길을 나눠 달아나 매복하시오.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바로 패잔병을 뒤쫓아 무찌른 뒤 백하 상류로 물러나 접응하시오.”
 
155
했다. 공명이 작전 배치를 마치고 현덕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멀리 바라보며 승전 보고를 기다렸다.
 
 
156
卻說曹仁、曹洪引軍十萬爲前隊,前面已有許褚引三千鐵甲軍開路,浩浩蕩蕩,殺奔新野來。是日午牌時分,來到鵲尾坡,望見坡前一簇人馬,盡打青、紅旗號,許褚催軍向前。劉封、糜芳分爲四隊,青、紅旗各歸左右。許褚勒馬,教且休進:“前面必有伏兵。我兵只在此處住下。”許褚一騎馬飛報前隊曹仁。曹仁曰:“此是疑兵,必無埋伏。可速進兵。我當催軍繼至。”
 
157
한편, 조인과 조홍이 군사 10만을 거느려 선두 부대가 되고, 그 앞에 허저가 3천의 철갑군 을 이끌고 길을 열어 물살이 거침없이 몰려오듯이 신야로 쇄도했다. 이날 오패(정오)에 작미파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언덕 앞에 한 무리의 인마가 있는데 모두 청기와 홍기를 흔들어 신호를 주고 받았다. 허저가 군사들을 재촉해 앞으로 나가니 유봉과 미방이 4개 부대로 나누어 청기와 홍기가 각각 좌우로 돌아갔다. 허저가 말고삐를 잡아 멈추라고 지시했다.
 
158
“앞에 반드시 복병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군사는 여기에 머물러야겠다.”
 
159
하고, 허저가 홀로 급히 말을 달려 선두 부대의 조인에게 급보했다. 조인이 말하기를,
 
160
“이것은 의병(적군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병력)이니 매복이 없는 게 틀림없소. 어서 진병하시오. 나도 군사들을 재촉해 뒤따르겠소.”
 
161
했다.
 
 
162
許褚複回坡前,提兵殺入。至林下追尋時,不見一人。時日已墜西。許褚方欲前進,只聽得山上大吹大擂。抬頭看時,只見山頂上一簇旗,旗叢中兩把傘蓋:左玄德,右孔明,二人對坐飲酒。許褚大怒,引軍尋路上山。山上擂木炮石打將下來,不能前進。又聞山後喊聲大震。欲尋路廝殺,天色已晚。曹仁領兵到,教且奪新野城歇馬。軍士至城下時,只見四門大開。曹兵突入,並無阻當,城中亦不見一人,竟是一座空城了。
 
163
허저가 언덕 앞으로 되돌아가 병력을 거느리고 달려들었다. 숲 아래까지 뒤쫓아가서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허저가 전진하려는데 산 위가 시끌벅적했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산꼭대기에 한 떼의 깃발이 빽빽한 가운데 두 개의 일산 아래 왼쪽은 현덕, 오른쪽은 공명 두 사람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허저가 크게 노해 군사를 이끌고 길을 찾아 산을 올랐다. 산 위에서 아래로 나무를 굴리고 돌을 날려 전진할 수가 없었다. 또한 산 뒤에서 함성이 크게 나므로 길을 찾아 무찌르려 하나 날이 이미 저물었다. 조인이 병력을 거느리고 도착하여 신야성을 빼앗아서 쉬자고 했다. 군사들이 성 밑에 다다르니 4개 성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조조 병력이 돌입해도 아무도 막지 않았다. 성 안에도 역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뜻밖에 텅빈 성이었다.
 
 
164
曹洪曰:“此是勢孤計窮,故盡帶百姓逃竄去了。我軍權且在城安歇,來日平明進兵。”此時各軍走乏,都已饑餓,皆去奪房造飯。曹仁、曹洪就在衙內安歇。初更已後,狂風大作。守門軍士飛報火起。曹仁曰:“此必軍士造飯不小心,遺漏之火,不可自驚。”說猶未了,接連幾次飛報,西、南、北三門皆火起。曹仁急令 衆將上馬時,滿縣火起,上下通紅。是夜之火,更勝前日博望燒屯之火。後人有詩歎曰:“奸雄曹操守中原,九月南征到漢川。風伯怒臨新野縣,祝融飛下焰摩天。”
 
165
조홍이 말하기를,
 
166
“형세는 외롭고 계책은 궁하니 백성을 모조리 데리고 도망한 것이 틀림없소. 아군은 잠시 이 성에서 머물다가 내일 해가 뜨면 출발해야겠소.”
 
167
했다. 이때 군사마다 걸어서 지치고 굶주려서 모두들 방을 찾아 밥을 지었다. 조인과 조홍도 관아로 들어가서 쉬었다. 초경(밤 8시)이 지나자 광풍이 크게 일어났다. 문을 지키던 군사가 불이 났다고 급보했다. 조인이 말하기를,
 
168
“이는 반드시 군사들이 밥을 짓다가 조심하지 않아서 불씨가 튄 것이니, 놀랄 것 없다.”
 
169
했다.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잇따라 급보가 날아드니 서, 남, 북 세개 성문에서 모조리 불길이 치솟았다. 조인이 급히 명을 내려 장수들이 말에 탔지만 온 성 안에 불길이 치솟아 위아래 천지가 온통 붉은 색이다. 이날 밤의 화공은 지난 날 박망파에서 적진을 불사른 승리를 되풀이한 것이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170
“간사한 영웅 조조가 중원을 지키다가, 구월에 남쪽을 정벌하여 한천에 이르렀지만, 풍백이 노하여 신야 고을에 임하고, 축융(불의 신)이 날아 내려와 불꽃이 하늘을 찌르네.”
 
171
했다.
 
 
172
曹仁引 衆將突煙冒火,尋路奔走,聞說東門無火,急急奔出東門。軍士自相踐踏,死者無數。曹仁等方才脫得火厄,背後一聲喊起,趙雲引軍趕來混戰,敗軍各逃性命,誰肯回身廝殺。正奔走間,糜芳引一軍至,又沖殺一陣。曹仁大敗,奪路而走,劉封又引一軍截殺一陣。到四更時分,人困馬乏,軍士大半焦頭爛額;奔至白河邊,喜得河水不甚深,人馬都下河吃水:人相喧嚷,馬盡嘶鳴。
 
173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불과 연기를 뚫고 길을 찾아 달아났다. 동문엔 불이 붙지 않았다고 전해 듣고 급급히 동문으로 달아났다. 군사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가 무수했다. 조인 등이 막 불길을 벗어나자 뒤에서 한차례 함성이 일더니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뒤쫓아와서 혼전을 벌였다. 패잔병들이 각각 살길을 찾아 달아나니 누군들 기꺼이 몸을 돌려 싸우겠는가?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미방이 1군을 이끌고 달려들어 다시 한바탕 무찌르니 조인이 대패하여 길을 뚫고 달아났다. 유봉이 다시 1군을 이끌고 가로막아 한바탕 무찔렀다. 4경(새벽2시)에 이르러 사람과 말이 지쳐서 군사들 태반이 머리털이 그슬리고 이마가 불에 데었다. 백하 물가까지 달아나서 물이 별로 깊지 않은 것을 기뻐하며 인마들이 모두 물로 뛰어드니 물에 잠겼다. 사람은 서로 아우성치고 말들은 모두 울부짖었다.
 
 
174
卻說雲長在上流用布袋遏住河水,黃昏時分,望見新野火起;至四更,忽聽得下流頭人喊馬嘶,急令軍士一齊掣起布袋,水勢滔天,望下流沖去,曹軍人馬俱溺於水中,死者極多。曹仁引 衆將望水勢慢處奪路而走。行到博陵渡口,只聽喊聲大起,一軍攔路,當先大將,乃張飛也,大叫:“曹賊快來納命!”曹軍大驚。正是:城內才看紅焰吐,水邊又遇黑風來。
 
175
한편, 운장이 상류에서 포대를 사용해 강물을 막아두었다. 황혼 무렵에 멀리 보니, 신야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4경에 이르자 문득 하류에서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말들이 울부짖는 것이 들렸다. 운장이 급히 명을 내려 군사들이 일제히 포대를 들어낸다. 물살이 하늘까지 넘치며 하류로 거세게 몰아치니 조조 군대의 인마들이 모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극히 많았다.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물살이 완만한 쪽으로 길을 뚫고 달아났다. 박릉 나루 어귀에 이르러 함성이 크게 일고 1군이 길을 막는데 앞장선 대장은 바로 장비였다. 그가 크게 외치기를,
 
176
“조조 도적들아! 어서 목을 바쳐라!”
 
177
하니, 조조의 군대가 크게 놀랐다. 이야말로 성안에서 불꽃을 토하는 것을 봤는데, 물가에서 다시 컴컴한 바람을 만났네.
 
 
178
未知曹仁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179
조인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40회 채 부인이 형주를 바칠 것을 의논하고, 제갈량이 신야를 불사르다.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중국고전〕
▪ 분류 :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5511
- 전체 순위 : 3 위 (1 등급)
- 분류 순위 : 1 위 / 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 날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나관중(羅貫中) [저자]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백과사전 으로 가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동양문학 >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40권 다음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