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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39회 형주성에서 공자가 계책을 세 번 구하고, 박망파에서 군사가 처음으로 용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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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三十九回 荊州城公子三求計 博望坡軍師初用兵
2
제39회 형주성에서 공자가 계책을 세 번 구하고, 박망파에서 군사가 처음으로 용병하다.
 
 
3
卻說孫權督 衆攻打夏口,黃祖兵敗將亡,情知守把不住,遂棄江夏,望荊州而走。甘寧料得黃祖必走荊州,乃於東門外伏兵等候。祖帶數十騎突出東門,正走之間,一聲喊起,甘寧攔住。祖於馬上謂寧曰:“我向日不曾輕待汝,今何相逼耶?”寧叱曰:“吾昔在江夏,多立功績,汝乃以‘劫江賊’待我,今日尚有何說!”
 
4
각설, 손권이 무리를 거느리고 하구를 공격하니, 황조가 군대는 패전하고 장수들은 죽어나가서 지켜내지 못할 것을 깨닫고, 마침내 강하를 버리고 형주 쪽으로 달아났다. 감녕이 황조가 반드시 형주로 달아날 것이라 헤아리고 (강하성의) 동문 밖에 복병하여 기다렸다. 황조가 수십 기를 거느리고 동문을 벗어나서 막 달아나려는데 함성이 일어나며 감녕이 막아섰다. 황조가 말 위에서 감녕에게 말하기를,
 
5
“내가 지난 날에 너를 박대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찌하여 핍박하느냐?”
 
6
하니, 감녕이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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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날 강하에서 공적을 많이 세워도 너는 나를‘강가를 노략질하는 도적’으로 대하더니 이제 도리어 무슨 말이냐?”
 
8
했다.
 
 
9
黃祖自知難免,撥馬而走。甘寧沖開士卒,直趕將來,只聽得後面喊聲起處,又有數騎趕來。寧視之,乃程普也。寧恐普來爭功,慌忙拈弓搭箭,背射黃祖,祖中箭翻身落馬;寧梟其首級,回馬與程普合兵一處,回見孫權,獻黃祖首級。權命以木匣盛貯,待回江東祭獻於亡父靈前。重賞三軍,升甘寧爲都尉。商議欲分兵守江夏。張昭曰:“孤城不可守,不如且回江東。劉表知我破黃祖,必來報仇;我以逸待勞,必敗劉表;表敗而後乘勢攻之,荊襄可得也。”權從其言,遂棄江夏,班師回江東。
 
10
황조가 지나가기 어렵다고 여겨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감녕이 사졸들을 뚫고 곧장 따라붙는데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몇 기가 뒤쫓아왔다. 감녕이 보니 바로 정보였다. 정보가 와서 공을 다툴까 두려워한 감녕이 황망히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몸을 틀어 황조를 쏘니, 황조가 화살에 맞아 몸이 뒤집어 낙마했다. 감녕이 그 머리를 잘라 말머리를 돌려 정보와 더불어 병력을 모아 돌아가 손권을 만나서 황조의 머리를 바치니, 손권이 명해 나무상자에 담아 강동으로 돌아가 제사를 올려 돌아가신 부친(손견)의 영전에 바치려 했다. 3군을 크게 포상하고 감녕을 도위로 승진시켰다. 상의하여 병력을 나눠 강하를 지키려 하자, 장소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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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성은 지킬 수 없으니 차라리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가 황조를 격파한 것을 유표가 알면 반드시 복수하러 올 것입니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여 피로한 적병과 싸우면 유표를 반드시 패퇴시킬 것입니다. 유표를 패퇴시킨 뒤에 기세를 타 공격하면 형주와 양양 지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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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손권이 그 말에 따라 곧 강하를 버리고 군사를 거둬 강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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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飛在檻車內,密使人告甘寧求救。寧曰:“飛即不言,吾豈忘之?”大軍既至吳會,權命將蘇飛嫋首,與黃祖首級一同祭獻。甘寧乃入見權,頓首哭告曰:“某向日若不得蘇飛,則骨填溝壑矣,安能效命將軍麾下哉?今飛罪當誅,某念其昔日之恩情,願納還官爵,以贖飛罪。”權曰:“彼既有恩於君,吾爲君赦之。但彼若逃去奈何?寧曰:“飛得免誅戮,感恩無地,豈肯走乎!若飛去,寧願將首級獻於階下。”權乃赦蘇飛,止將黃祖首級祭獻。祭畢設宴,大會文武慶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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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함거에 갇혀 몰래 사람을 보내 감녕에게 구해달라 청했다. 감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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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어찌 그를 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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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군이 오회(오군과 회계군)에 이르자 손권이 명하여 소비의 목을 잘라서 황조의 머리와 더불어 제물로 바치려 했다. 이에 감녕이 들어가 손권을 만나 머리를 조아려 소리내 울면서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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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날 소비가 없었다면 이 몸이 죽어 골짜기에 버려졌을테니 어찌 장군 휘하에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소비의 죄가 죽어 마땅하나 제가 지난날의 은정을 생각하여 바라건대 그 벼슬을 거두어 죄를 갚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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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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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니 내가 그대를 위해 사면해 주겠소. 다만 그가 만약 달아나면 어떻게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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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감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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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처형을 면하게 되면 은혜에 감복하기 이를 데 없을테니 어찌 달아나겠습니까? 만약 소비가 달아난다면 제가 그의 머리를 베어 섬돌 아래에서 바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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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손권이 이에 소비를 사면하고, 다만 황조의 머리만을 제물로 바쳤다. 제사를 마치고 주연을 베풀어 문무관리들을 크게 모아 공로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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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飲酒間,忽見座上一人大哭而起,拔劍在手,直取甘寧。寧忙舉坐椅以迎之。權驚視其人,乃淩統也,因甘寧在江夏時,射死他父親淩操,今日相見,故欲報仇。權連忙勸住,謂統曰:“興霸射死卿父,彼時各爲其主,不容不盡力。今既爲一家人,豈可複理舊仇?萬事皆看吾面。”淩統即頭大哭曰:“不共戴天之仇,豈容不報!”權與 衆官再三勸之,淩統只是怒目而視甘寧。權即日命甘寧領兵五千、戰船一百只,往夏口鎮守,以避淩統。寧拜謝,領兵自往夏口去了。權又加封淩統爲承烈都尉。統只得含恨而止。東吳自此廣造戰船,分兵守把江岸;又命孫靜引一枝軍守吳會;孫權自領大軍,屯柴桑;周瑜日於鄱陽湖教練水軍,以備攻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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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술을 마시는데 홀연히 좌상에서 한 사람이 크게 곡하며 일어나서 칼을 뽑아 들고 곧장 감녕에게 덤벼들었다. 감녕이 황망히 의자를 들어 막았다. 손권이 놀라 바라보니 바로 능통이었다. 감녕이 강하에 있을 적에 그 아버지 능조를 사살했는데, 이제 서로 만나니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었다. 손권이 잇따라 황망히 말리며 능통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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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패(감녕의 자)가 경의 부친을 사살한 것은 당시 각자의 주군을 위해서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소. 이제 한 집안이 되었는데 어찌 다시 옛날의 원수를 따지겠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내 면목을 봐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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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능통이 머리를 조아려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27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못 살거늘 어찌 복수를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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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손권과 관리들이 거듭 권하나 능통은 감녕을 노려볼 뿐이었다. 손권이 그날로 감녕에게 명해 5천 병력과 전선 1백척을 거느리고 하구로 가서 지키게 하여 능통을 피하게 했다. 감녕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병력을 거느려 하구로 갔다. 손권이 또한 능통에게 승렬도위 벼슬을 더하니 능통이 어쩌지 못해 한을 품은 채 그쳤다. 동오(東吳)가 이로부터 널리 전선을 건조하고 병력을 나누어 강변을 지켰다. 또한 손정에게 명해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오군과 회계군을 지키게 했다. 손권이 스스로 대군을 거느려고 시상(구강시 서남쪽)에 주둔했다. 주유가 매일 파양호에서 수군을 교련하여 공격전에 대비했다.
 
 
29
話分兩頭。卻說玄德差人打探江東消息,回報:“東吳已攻殺黃祖,現今屯兵柴桑。”玄德便請孔明計議。正話間,忽劉表差人來請玄德赴荊州議事。孔明曰:“此必因江東破了黃祖,故請主公商議報仇之策也。某當與主公同往,相機而行,自有良策。”玄德從之,留雲長守新野,令張飛引五百人馬跟隨往荊州來。玄德在馬上謂孔明曰:“今見景升,當若何對答?”孔明曰:“當先謝襄陽之事。他若令主公去征討江東,切不可應允,但說容歸新野,整頓軍馬。”
 
30
이야기가 두갈래로 갈라진다. 한편, 현덕이 사람을 보내 강동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31
“동오가 황조를 공격해 죽이고 지금 시상에 주둔해 있습니다.”
 
32
하니, 현덕이 곧 공명을 불러 토의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유표가 사람을 보내 현덕을 형주로 불러 일을 의논하고자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33
“이것은 틀림없이 강동이 황조를 격파했기 때문에 주공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상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공과 동행하여 기회를 보아 조치하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34
하니,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운장을 남겨서 신야를 지키게 하고 장비에게 명해 5백 인마를 이끌고 형주로 수행케 했다. 현덕이 말 위에서 공명에게 말하기를,
 
35
“이제 경승(유표의 자)을 만나면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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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37
“먼저 양양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하십시오. 그가 만약 주공께 강동을 치라 해도 절대 응해선 안 됩니다. 다만 신야로 돌아가 군마를 정돈케 해달라고만 말씀하십시오.”
 
38
했다.
 
 
39
玄德依言。來到荊州,館驛安下,留張飛屯兵城外,玄德與孔明入城見劉表。禮畢,玄德請罪於階下。表曰:“吾已悉知賢弟被害之事。當時即欲斬蔡瑁之首,以獻賢弟;因 衆人告危,故姑恕之。賢弟幸勿見罪。”玄德曰:“非幹蔡將軍之事,想皆下人所爲耳。”表曰:“今江夏失守,黃祖遇害,故請賢弟共議報複之策。”玄德曰:“黃祖性暴,不能用人,故致此禍。今若興兵南征,倘曹操北來,又當奈何?”表曰:“吾今年老多病,不能理事,賢弟可來助我。我死之後,弟便爲荊州之主也。”玄德曰:“兄何出此言!量備安敢當此重任。”
 
40
현덕이 그 말에 따라 형주에 이르러서 관역(여관)에서 쉬고 장비를 성밖에 머물러 주둔케 했다. 현덕이 공명과 더불어 성에 들어가 유표를 만났다. 예를 마치고 현덕이 섬돌 아래에서 죄를 청하자 유표가 말하기를,
 
41
“내가 이미 아우님이 해를 입은 일을 모두 알고 있소. 당시 채모의 목을 바로 베어 아우님께 드리려 했으나 사람들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해서 용서해 주었소. 아우님은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오.”
 
42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43
“채 장군이 간여한 일이 아니라 모두 아랫사람이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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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45
“이제 강하를 지키지 못하고 황조가 해를 입었기에 아우님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함께 의논하고자 하오.”
 
46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47
“황조는 난폭하고 사람을 쓸 줄 몰라 이렇게 화를 입었습니다. 지금 출병해 남쪽을 치다가 만약 조조가 북쪽에서 쳐들어 온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48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49
“내가 이제 늙고 병이 많아 일을 능히 처리하지 못하니 아우님께서 와서 나를 도와주시고, 내가 죽은 뒤에 형주의 주인이 되어 주시오.”
 
50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51
“형님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꺼내십니까? 제가 감히 어찌 이런 중임을 감당하겠습니까?”
 
52
했다.
 
 
53
孔明以目視玄德。玄德曰:“容徐思良策。”遂辭出。回至館驛,孔明曰:“景升欲以荊州付主公,奈何卻之?”玄德曰:“景升待我,恩禮交至,安忍乘其危而奪之?”孔明歎曰:“真仁慈之主也!”正商論間,忽報公子劉琦來見。玄德接入。琦泣拜曰:“繼母不能相容,性命只在旦夕,望叔父憐而救之。”玄德曰:“此賢侄家事耳,奈何問我?”孔明微笑。玄德求計於孔明,孔明曰:“此家事,亮不敢與聞。”少時,玄德送琦出,附耳低言曰:“來日我使孔明回拜賢侄,可如此如此,彼定有妙計相告。”琦謝而去。
 
54
공명이 현덕에게 눈짓을 하자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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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천천히 좋은 계책을 생각해보겠습니다.”
 
56
했다. 작별하고 나와서 관역으로 돌아갔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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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께서 형주를 주공께 맡기려는데 어찌하여 거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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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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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이 나를 여태 은혜와 예의로 대했거늘 어찌 차마 그의 위기를 틈타 빼앗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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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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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자하신 주공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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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상의하고 있는데 문득 공자 유기가 찾아왔다고 알렸다. 현덕이 맞이하여 들이니 유기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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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가 저를 미워해서 제 목숨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숙부께서 가련히 여겨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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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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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조카님의 집안 일인데 어찌 내게 물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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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미소를 지으니 현덕이 공명에게 계책을 구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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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집안 일이라 제가 감히 알은 체 할 수가 없습니다.”
 
68
했다. 잠시 뒤 현덕이 유기를 데리고 나가 귓속말로 말하기를,
 
69
“내일 내가 공명을 조카님께 보낼테니 여차여차 하면 그가 틀림없이 절묘한 계책을 알려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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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유기가 사례하고 떠났다.
 
 
71
次日,玄德只推腹痛,乃浼孔明代往回拜劉琦。孔明允諾,來至公子宅前下馬,入見公子。公子邀入後堂。茶罷,琦曰:“琦不見容於繼母,幸先生一言相救。”孔明曰:“亮客寄於此,豈敢與人骨肉之事?倘有漏泄,爲害不淺。”說罷,起身告辭。琦曰:“既承光顧,安敢慢別。”乃挽留孔明入密室共飲。飲酒之間,琦又曰:“繼母不見容,乞先生一言救我。”孔明曰:“此非亮所敢謀也。”言訖,又欲辭去。琦曰:“先生不言則已,何便欲去?”孔明乃複坐。琦曰:“琦有一古書,請先生一觀。”乃引孔明登一小樓,孔明曰:“書在何處?”琦泣拜曰:“繼母不見容,琦命在旦夕,先生忍無一言相救乎?”
 
72
이튿날 현덕이 배가 아프다며 공명에게 자기 대신 유기를 찾아가서 인사하라고 부탁했다. 공명이 응낙하고 공자 유기의 집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들어가 공자를 만났다. 공자가 맞아 후당으로 불러 들였다. 차를 마시고 유기가 말하기를,
 
73
“제가 계모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데 선생께서 한 말씀을 가르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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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75
“제가 여기 손님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 골육 사이의 일을 간여하겠습니까? 만약 누설되면 해를 입음이 얕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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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 가겠다고 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77
“이왕 왕림하셨는데 어찌 감히 소홀히 대접해 떠나게 하겠습니까?”
 
78
하고, 공명을 만류하여 밀실로 데려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가 유기가 다시 말하기를,
 
79
“계모가 미워하니 아무쪼록 선생께서 한 말씀으로 저를 구해주십시오.”
 
8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1
“이것은 제가 감히 꾀할 게 못 됩니다.”
 
82
했다. 말을 마치고 다시 떠나려 하자 유기가 말하기를,
 
83
“선생께서 말을 안 하시면 그만이지 어찌 바로 가시려 하십니까?”
 
84
했다. 공명이 이에 다시 앉자 유기가 말하기를,
 
85
“제게 고서가 한 권 있는데 청컨대 선생께서 한번 살펴보시지요.”
 
86
하고, 공명을 이끌어 작은 누각에 올라갔다. 공명이 말하기를,
 
87
“책이 어디 있습니까?”
 
88
하니, 유기가 눈물 흘리며 절을 올려 말하기를,
 
89
“계모가 미워해서 제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렸는데 선생께서 저를 구할 한 마디도 차마 말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90
했다.
 
 
91
孔明作色而起,便欲下樓,只見樓梯已撤去。琦告曰:“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泄漏,不肯出言;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孔明曰:“疏不間親,亮何能爲公子謀?琦曰:“先生終不幸教琦乎!琦命固不保矣,請即死於先生之前。”乃掣劍欲自刎。孔明止之曰:“已有良策。”琦拜曰:“願即賜教。”孔明曰:“公子豈不聞申生、重耳之事乎?申生在內而亡,重耳在外而安。今黃祖新亡,江夏乏人守禦,公子何不上言,乞屯兵守江夏,則可以避禍矣。”琦再拜謝教,乃命人取梯迭孔明下樓。孔明辭別,回見玄德,具言其事。玄德大喜。
 
92
공명이 낯빛을 고쳐 일어나서 바로 누각을 내려가려 하나 사다리가 이미 치워져 있었다. 유기가 고하기를,
 
93
“제가 좋은 계책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 선생께서 누설을 걱정하셔서 기꺼이 말씀을 꺼내시지 않습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아래로 땅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 그대께서 말씀하셔도 제 귀에만 들어올 뿐이니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게 됐습니다.”
 
9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95
“남이 친척 사이를 가를 수 없다고 했는데 제가 어찌 공자를 위해 꾀를 내겠습니까?”
 
96
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97
“선생께서 끝내 제게 가르침을 내리시지 않으면 제 목숨을 참으로 지키지 못하오니 청컨대 선생 앞에서 죽어버리겠습니다.”
 
98
하고, 이에 칼을 뽑아 자살하려 하자 공명이 말리며 말하기를,
 
99
“진작에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100
했다. 유기가 절을 하고 말하기를,
 
101
“어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10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03
“공자께서 어찌 (晉獻公의 두 아들인) 신생과 중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 죽고 중이는 밖에 있어 살았습니다. 이제 바로 황조가 패망해 강하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공자께서는 어찌 강하에 주둔해 지키겠다는 말씀을 올리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104
했다. 유기가 두번 절하여 가르침에 사례하고 부하에게 명해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공명을 내려 보냈다. 공명이 작별하여 돌아가서 현덕을 만나 그 일을 상세히 고하자 현덕이 크게 기뻐했다.
 
 
105
次日,劉琦上言,欲守江夏。劉表猶豫未決,請玄德共議。玄德曰:“江夏重地,固非他人可守,正須公子自往。東南之事,兄父子當之;西北之事,備願當之。”表曰:“近聞曹操於鄴郡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南征之意,不可不防。”玄德曰“備已知之,兄勿憂慮。”遂拜辭回新野。劉表令劉琦引兵三千往江夏鎮守。
 
106
다음날 유기가 강하를 지키겠다는 말을 올리니, 유표가 머뭇거려 결정하지 못하고 현덕을 불러 함께 의논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07
“강하는 중요한 곳이라 참으로 다른 사람이 수비할 곳이 못 되니 바로 공자께서 몸소 가셔야만 합니다. 동남쪽의 일은 형님 부자께서 맡으십시오. 서북쪽의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108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109
“요새 듣자니 조조가 업군에 현무지를 만들어 수군을 훈련한다니 필시 남쪽을 칠 뜻이 있는 것이라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110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11
“제가 이미 알고 있으니 형님께서 우려치 마십시오.”
 
112
하고, 절을 올려 작별하고 신야로 돌아갔다. 유표가 유기에게 명해 병력 3천을 이끌고 가서 강하에 주둔해 지키게 하였다.
 
 
113
卻說曹操罷三公之職,自以丞相兼之。以毛玠爲東曹掾,崔琰爲西曹掾,司馬懿爲文學掾。懿字仲達,河內溫人也。潁川太守司馬雋之孫,京兆尹司馬防之子,主簿司馬朗之弟也。自是文官大備,乃聚武將商議南征。夏侯惇進曰:“近聞劉備在新野,每日教演士卒,必爲後患,可早圖之。”
 
114
한편, 조조가 3공의 직위를 없애고 스스로 승상으로서 겸직했다. 모개를 동조연(曹掾은 보좌관)으로 삼고, 최염을 서조연으로 삼고,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았다. 사마의는 자가 중달인데 하내의 온현 사람이다. 영천태수 사마준의 손자이자 경조윤 사마방의 아들이고, 주부 사마랑의 아우다. 이로부터 문관들이 크게 갖춰지자 무장들을 모아 남쪽 정벌을 상의했다. 하후돈이 나아가 말하기를,
 
115
“요새 듣자니 유비가 신야에서 매일 사졸들을 교련한다고 합니다. 반드시 후환이 될테니 어서 도모해야 합니다.”
 
116
했다.
 
 
117
操即命夏侯惇爲都督,於禁、李典、夏侯蘭、韓浩爲副將,領兵十萬,直抵博望城,以窺新野。荀彧諫曰:“劉備英雄,今更兼諸葛亮爲軍師,不可輕敵。”惇曰:“劉備鼠輩耳,吾必擒之。”徐庶曰:“將軍勿輕視劉玄德。今玄德得諸葛亮爲輔,如虎生翼矣。”操曰:“諸葛亮何人也?”庶曰:亮字孔明,道號臥龍先生。有經天緯地之才,出鬼入神之計,真當世之奇才,非可小覷。”
 
118
조조가 즉시 명해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병력을 거느리고 곧장 박망성에 이르러 신야를 엿보게 했다. 순욱이 간언하기를,
 
119
“유비는 영웅인데다 이제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으니 가볍게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120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121
“유비는 쥐새끼 같을 뿐이니 내 반드시 잡아버리겠소.”
 
122
했다. 서서가 말하기를,
 
123
“장군은 유현덕을 경시하지 마시오. 이제 현덕이 제갈량의 보좌를 받아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소.”
 
124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125
“제갈량이 어떤 사람이오?”
 
126
했다. 서서가 말하기를,
 
127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며 도호는 와룡선생입니다. 경천위지(하늘과 땅을 날실과 씨줄로 삼아 천하를 주무름)의 재주를 가지고 출귀입신(변화무쌍해 예측할 수 없음)의 계략을 가진, 참으로 당세의 기재이니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128
했다.
 
 
129
操曰:“比公若何?”庶曰:“庶安敢比亮?庶如螢火之光,亮乃皓月之明也。”夏侯惇曰:“元直之言謬矣。吾看諸葛亮如草芥耳,何足懼哉!吾若不一陣生擒劉備,活捉諸葛,願將首級獻與丞相。”操曰:“汝早報捷書,以慰吾心。”惇奮然辭曹操,引軍登程。
 
130
조조가 말하기를,
 
131
“공에 비해서 어떻소?”
 
132
하니, 서서가 말하기를,
 
133
“제가 어찌 감히 제갈량에게 비하겠습니까? 제가 반딧불이라면 그는 밝은 달처럼 밝습니다.”
 
134
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135
“원직의 말이 틀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제갈량은 초개(지푸라기)와 같을 뿐인데 어찌 족히 두렵겠습니까! 내가 만약 유비와 제갈량을 한번에 사로잡지 못한다면 바라건대 제 수급을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136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137
“너는 어서 승전 소식을 올려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138
했다. 하후돈이 분연히 조조를 작별하여 군사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139
卻說玄德自得孔明,以師禮待之。關、張二人不悅,曰:“孔明年幼,有甚才學?兄長待之太過!又未見他真實效驗!”玄德曰:“吾得孔明,猶魚之得水也。兩弟勿複多言。”關、張見說,不言而退,一日,有人送氂牛尾至。玄德取尾親自結帽。孔明入見,正色曰:“明公無複有遠志,但事此而已耶?”玄德投帽於地而謝曰:“吾聊假此以忘憂耳。”
 
140
한편, 현덕이 공명을 얻은 뒤 스승의 예로써 대했다.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불쾌해 말하기를,
 
141
“공명이 나이 어린데 무슨 재주와 학문이 있겠오? 형장께서 그를 대우함이 너무 지나치오! 게다가 아직 그가 참으로 효험을 보인 것도 아닌데 말이오!”
 
142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비유컨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두 아우는 다시는 여러 말을 말라.”
 
143
고 했다. 관우와 장비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물러났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검은 들소의 꼬리를 보내오자 현덕이 그 꼬리털로 스스로 모자를 짰다. 공명이 들어와 보더니 정색하고 말하기를,
 
144
“명공께서 원대한 뜻을 가지지 않고, 단지 이런 일이나 하십니까?”
 
145
하니, 현덕이 짜던 모자를 땅에 내던져 사과하고 말하기를,
 
146
“내가 이런 틈을 내어 근심을 잊는 것뿐입니다.”
 
147
했다.
 
 
148
孔明曰:“明公自度比曹操若何?”玄德曰:“不如也。”孔明曰:“明公之 衆,不過數千人,萬一曹兵至,何以迎之?”玄德曰:“吾正愁此事,未得良策。”孔明曰:“可速招募民兵,亮自教之,可以待敵。”玄德遂招新野之民,得三千人。孔明朝夕教演陣法。忽報曹操差夏侯惇引兵十萬,殺奔新野來了。張飛聞知,謂雲長曰:“可著孔明前去迎敵便了。”
 
149
공명이 말하기를,
 
150
“명공께서 스스로 조조에 비해 어떻다 여기십니까?”
 
151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52
“그보다 못합니다.”
 
153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54
“명공의 군사는 불과 수천 인이니 만일 한 무리의 병력이 다다르면 어찌 막겠습니까?”
 
155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56
“내가 바로 그 일을 근심하고 있지만 아직 좋은 계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157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58
“어서 민병을 모집하시면, 제가 그들을 교련하여 적을 맞서게 하겠습니다.”
 
159
하니, 현덕이 곧 신야의 백성을 불러 모아 3천 인을 얻었다. 공명이 아침저녁으로 진법을 교련했다. 홀연 보고하기를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10만 병력을 이끌고 신야로 쇄도해 온다고 했다. 장비가 듣고서 운장에게 말하기를,
 
160
“공명더러 먼저 가서 적을 맞으라 하면 되겠소.”
 
161
했다.
 
 
162
正說之間,玄德召二人入,謂曰:”夏侯惇引兵到來,如何迎敵?”張飛曰:“哥哥何不使‘水’去?”玄德曰:“智賴孔明,勇須二弟,何可推調?”關、張出,玄德請孔明商議。孔明曰:“但恐關、張二人不肯聽吾號令;主公若欲亮行兵,乞假劍印。”玄德便以劍印付孔明,孔明遂聚集 衆將聽令。張飛謂雲長曰:“且聽令去,看他如何調度。”
 
163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덕이 두 사람을 불러 들여서 말하기를,
 
164
“하후돈이 병력을 이끌고 왔으니 어떻게 막아야 하겠느냐?”
 
165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166
“형님은 왜 ‘물’을 보내지 않소?”
 
167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68
“지혜는 공명에게 의지하더라도 용맹은 두 아우가 꼭 있어야 하는데 어찌 뒤로 빠지려 하느냐?”
 
169
하니, 관우와 장비가 나갔다. 현덕이 공명을 청해 상의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70
“다만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제 명을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공께서 제게 용병을 맡기시려거든 아무쪼록 주공의 칼과 도장을 빌려주십시오.”
 
171
했다. 현덕이 칼과 도장을 공명에게 맡기자, 공명이 장수들을 소집해 명령을 듣게 했다. 장비가 운장에게 말하기를,
 
172
“일단 명령을 들어보고 그가 어찌하나 봅시다.”
 
173
했다.
 
 
174
孔明令曰:“博望之左有山,名曰豫山;右有林,名曰安林:可以埋伏軍馬。雲長可引一千軍往豫山埋伏,等彼軍至,放過休敵;其輜重糧草,必在後面,但看南面火起,可縱兵出擊,就焚其糧草。翼德可引一千軍去安林背後山穀中埋伏,只看南面火起,便可出,向博望城舊屯糧草處縱火燒之。關平、劉封可引五百軍,預備引火之物,於博望坡後兩邊等候,至初更兵到,便可放火矣。”又命:於樊城取回趙雲,令爲前部,不要贏,只要輸,“主公自引一軍爲後援。各須依計而行,勿使有失。”
 
175
공명이 명령을 내리기를,
 
176
“박망의 왼쪽에 산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예산이요 오른쪽에 숲이 있으니 이름하여 안림이라 군마를 매복할 만하오. 운장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예산으로 가서 매복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적군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대적하지 마시오. 그 치중이며 군량과 말먹이가 반드시 뒤쪽에 있을 것이오. 남쪽에서 불이 치솟으면 출격해서 곧바로 군량과 말먹이를 불사르시오. 익덕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안림 뒤쪽의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남쪽에서 불이 치솟으면 곧 나와서 박망성에 양초를 쌓아둔 곳으로 가서 바로 불을 놓으시오. 관평과 유봉은 오백 군사르 이끌고 인화물을 준비하여 박망파 뒤쪽 양편에서 기다리다가 초경에 적의 군사가 이르면 곧 불을 지르시오.”
 
177
하고, 또 명령하기를, 번성에 가서 조운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선봉을 맡기고 이길 필요 없이, 다만 지는 척 달아나라고 했다. 그리고
 
178
“주공께서 스스로 1군을 이끌고 후원할 것이오. 각자 반드시 계책에 따라 움직여서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179
했다.
 
 
180
雲長曰:“我等皆出迎敵,未審軍師卻作何事?”孔明曰:“我只坐守縣城。”張飛大笑曰:“我們都去廝殺,你卻在家裏坐地,好自在!”孔明曰:“劍印在此,違令者斬!”玄德曰:“豈不聞‘運籌帷幄之中,決勝千裏之外’?二弟不可違令。”張飛冷笑而去。雲長曰:“我們且看他的計應也不應,那時卻來問他未遲。”
 
181
운장이 말하기를,
 
182
“우리는 모두 나가서 적군을 맞이하는데, 군사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지 분명하지 않소.”
 
183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84
“나는 다만 이 현성을 지키겠소.”
 
185
했다. 장비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86
“우리 모두 싸워 죽이러 나가는데 당신은 집안에 편히 있겠다니!”
 
187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88
“칼과 도장이 여기 있소. 명령을 어기는 자 참하겠소!”
 
189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90
“어찌 듣지도 못했더냐? ‘막사 안에서 책략을 써서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짓는다,’라고 하였다. 두 아우는 명령을 어겨선 안 된다.”
 
191
했다. 장비가 비웃으며 가버렸다. 운장이 장비에게 말하기를,
 
192
“우리는 일단 그의 계책이 들어맞는지 안 맞는지 보고나서 그때 그에게 뭐라 해도 늦지 않다.”
 
193
했다.
 
 
194
二人去了。 衆將皆未知孔明韜略,今雖聽令,卻都疑惑不定。孔明謂玄德曰:“主公今日可便引兵就博望山下屯住。來日黃昏,敵軍必到,主公便棄營而走;但見火起,即回軍掩殺。亮與糜竺、糜芳引五百軍守縣。命孫乾、簡雍准備慶喜筵席,安排功勞簿伺候。”派撥已畢,玄德亦疑惑不定。
 
195
두 사람이 떠났다. 장수들이 아직 공명의 계략을 알지 못해 이제 비록 명령을 들었으나 모두 의심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현덕에게 말하기를,
 
196
“주공께서 오늘 병력을 이끌고 박망산 아래로 가서 주둔하십시오. 내일 황혼에 적군이 반드시 올테니 주공께서 바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십시오. 그러다 불길이 치솟으면 즉시 군사를 돌려 쳐부수십시오. 저는 미축, 미방과 더불어 5백 군사를 이끌고 고을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손건과 간옹에게 명하여 축하 연회를 준비하고 공로 장부를 마련하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97
했다. 파견과 안배를 마쳤지만 현덕 역시 의혹이 가라앉지 않았다.
 
 
198
卻說夏侯惇與於禁等引兵至博望,分一半精兵作前隊,其餘盡護糧車而行。時當秋月,商飆徐起。人馬趲行之間,望見前面塵頭忽起。惇便將人馬擺開,問向導官曰:“此間是何處?”答曰:“前面便是博望坡,後面是羅川口。”惇令於禁、李典押住陣腳,親自出馬陣前。遙望軍馬來到,惇忽然大笑。 衆問:“將軍爲何而笑?”惇曰:“吾笑徐元直在丞相面前,誇諸葛亮爲天人;今觀其用兵,乃以此等軍馬爲前部,與吾對敵,正如驅犬羊與虎豹鬥耳!吾於丞相前誇口。要活捉劉備、諸葛亮,今必應吾言矣。”遂自縱馬向前。趙雲出馬。惇罵曰:“汝等隨劉備,如孤魂隨鬼耳!”
 
199
한편, 하후돈이 우금 등과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박망에 이르러서 그 절반의 정예병을 나누어 선발부대로 삼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양초를 호송했다. 이때 마침 가을이라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인마들이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멀리 바라보니 앞쪽에 먼지가 문득 피어올랐다. 하후돈이 곧 인마들을 펼치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에게 묻기를,
 
200
“여기가 어디냐?”
 
201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202
“앞쪽은 박망 언덕이고 뒤쪽은 나천 어귀입니다.”
 
203
했다. 하후돈이 우금과 이전에게 명해 행렬을 멈춰 진을 펼치게 하고 몸소 진 앞으로 나갔다. 멀리 군마들이 오는 걸 보더니 하후돈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사람들이 묻기를,
 
204
“장군께서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
 
205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206
“서원직이 승상 면전에서 제갈량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 자랑하던 것이 우스워서 그랬소! 이제 그 용병하는 꼴을 보니 저 따위 군마를 선봉으로 내세워 우리와 대적하겠다니 바로 개나 양을 몰아 호랑이나 표범과 싸우겠다는 것과 같구려! 내가 승상 앞에서 장담을 해서 유비와 제갈량을 사로잡아야겠는데 이제 틀림없이 내 말대로 되겠소.”
 
207
했다. 곧 스스로 말을 내달려 앞으로 나갔다. 조운이 말을 타고 나오자 하후돈이 욕하기를,
 
208
“너희가 유비를 따르는 게 마치 오갈데 없는 넋이 귀신을 따라다니는 꼴이구나!”
 
209
하였다.
 
 
210
雲大怒,縱馬來戰。兩馬相交,不數合,雲詐敗而走。夏侯惇從後追趕。雲約走十餘裏,回馬又戰。不數合又走。韓浩拍馬向前諫曰:“趙雲誘敵,恐有埋伏。”惇曰:“敵軍如此,雖十面埋伏,吾何懼哉!”遂不聽浩言,直趕至博望坡。一聲炮響,玄德自引軍沖將過來,接應交戰。夏侯惇笑謂韓浩曰:“此即埋伏之兵也!吾今晚不到新野,誓不罷兵!”乃催軍前進。玄德、趙雲退後便走。
 
211
조운이 크게 노해 말을 내달려 싸우러 나왔다. 두 말이 서로 엇갈린 지 몇합이 되지 않아 조운이 거짓으로 패해 달아났다. 하후돈이 뒤쫓았다. 조운이 약 십여 리를 달아나더니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우다가 몇합만에 또 달아났다. 한호가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와 간언하기를,
 
212
“조운이 유인하니 매복이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213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214
“적군이 이 모양인데 비록 열 방면에서 매복을 한들 내 어찌 두렵겠소!”
 
215
했다. 결국 한호의 말을 듣지 않고 곧장 박망파까지 뒤쫓았다. 한차례 호포 소리 울리더니 현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달려들어 조운을 응원하여 교전했다. 하후돈이 웃으며 한호에게 말하기를,
 
216
“이게 바로 매복한 병력이구려! 내가 오늘 저녁까지 신야에 이르지 못하면 맹세코 병력을 거두지 않으리다!”
 
217
하고, 이에 군사들을 재촉해 전진했다. 현덕과 조운이 뒤로 물러나서 바로 달아났다.
 
 
218
時天色已晚,濃雲密布,又無月色;晝風既起,夜風愈大。夏侯惇只顧催軍趕殺。於禁、李典趕到窄狹處,兩邊都是蘆葦。典謂禁曰:“欺敵者必敗。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倘彼用火攻,奈何?”禁曰:“君言是也。吾當往前爲都督言之;君可止住後軍。”李典便勒回馬,大叫:“後軍慢行!”人馬走發,那裏攔當得住. 於禁驟馬大叫:“前軍都督且住!”
 
219
이때 날이 이미 저녁이 되어 짙은 구름이 가득한데 달빛도 없었다. 낮부터 바람이 불어 밤이 되자 더욱 거세졌다. 하후돈은 오로지 군사가 추격하기를 재촉할 뿐이었다. 우금과 이전이 뒤따라 와서 좁은 곳에 이르렀는데 양쪽으로 모두 갈대밭이었다. 이전이 우금에게 이르기를,
 
220
“적을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패한다고 하였소.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다가와 있고 수목이 빽빽한데, 만약 적이 화공을 쓴다면 어쩌겠소?”
 
221
하니, 우금이 말하기를,
 
222
“그대의 말이 옳소. 내가 앞으로 달려가 도독께 말씀드려야겠소. 그대는 후군을 멈추시오.”
 
223
했다. 이전이 곧 말머리를 돌려 크게 외치기를,
 
224
“후군은 행군을 늦춰라!”
 
225
했다. 인마들이 질주해 오다가 그 자리에서 가로막혀 멈추었다. 우금이 말을 내달려 크게 외치기를,
 
226
“전군의 도독께서는 일단 멈추시오!”
 
227
했다.
 
 
228
夏侯惇正走之間,見於禁從後軍奔來,便問何故。禁曰:“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可防火攻。”夏侯惇猛省,即回馬令軍馬勿進。言未已,只聽背後喊聲震起,早望見一派火光燒著,隨後兩邊蘆葦亦著。一霎時,四面八方,盡皆是火;又值風大,火勢愈猛。曹家人馬,自相踐踏,死者不計其數。趙雲回軍趕殺,夏侯惇冒煙突火而走。
 
229
하후돈이 한창 달리다 바라보니 우금이 뒤따라 내달려 왔다.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우금이 말하기를,
 
230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다가와 있고 수목이 우거져 화공을 방비해야겠습니다.”
 
231
하니, 하후돈이 깊이 깨닫고 즉시 말머리를 돌리더니 군마들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배후에서 함성이 울리면서 벌써 저 멀리 한 무더기 불길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양쪽의 갈대 역시 불이 붙었다. 삽시간에 사면팔방이 온통 불바다다. 게다가 마침 바람까지 크게 일어나 불길이 더욱 사나워졌다. 조조 진영의 인마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운이 군사를 돌려 쫓아와서 무찌르니 하후돈이 연기와 불길을 뚫고 달아났다.
 
 
232
且說李典見勢頭不好,急奔回博望城時,火光中一軍攔住。當先大將,乃關雲長也。李典縱馬混戰,奪路而走。於禁見糧草車輛,都被火燒,便投小路奔逃去了。夏侯蘭、韓浩來救糧草,正遇張飛。戰不數合,張飛一槍刺夏侯蘭於馬下。韓浩奪路走脫。直殺到天明,卻才收軍。殺得屍橫遍野,血流成河。後人有詩曰:“博望相持用火攻,指揮如意笑談中。直須驚破曹公膽,初出茅廬第一功!”夏侯惇收拾殘軍,自回許昌。
 
233
한편, 이전이 살펴보고 형세가 좋지 않아서 서둘러 박망성으로 되돌아가는데 불빛 가운데 한무리 군사가 가로막았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관운장이었다. 이전이 말을 내달려 혼전하여 길을 뚫어 달아났다. 우금이 식량과 사초를 실은 수레가 죄다 불살라지는 것을 보고, 곧 작은 길을 뚫어 달아났다. 하후란과 한호가 달려와 식량과 사초를 구하다가 바로 장비와 마주쳤다. 싸운 지 몇 합만에 장비가 한 창으로 하후란을 찔러 낙마시켰다. 한호가 길을 뚫고 달아나서 벗어났다. (장비는) 동틀녘까지 내리 무찌르고서야 군사를 거두었다. 죽인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고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234
“박망에서 서로 싸우다 화공을 쓰니, 웃고 이야기하며 지휘는 뜻대로 하네. 조공의 간담이 놀라도록 깨뜨리니, 초가집을 나와 처음 세운 공이라네.”
 
235
했다. 하후돈이 패잔군을 수습하여 허창으로 돌아갔다.
 
 
236
卻說孔明收軍。關、張二人相謂曰:“孔明真英傑也!”行不數裏,見糜竺、糜芳引軍簇擁著一輛小車。車中端坐一人,乃孔明也。關、張下馬拜伏於車前。須臾,玄德、趙雲、劉封、關平等皆至,收聚 衆軍,把所獲糧草輜重,分賞將士,班師回新野,新野百姓望塵遮道而拜,曰:“吾屬生全,皆使君得賢人之力也!”孔明回至縣中,謂玄德曰:“夏侯惇雖敗去,曹操必自引大軍來。”玄德曰:“似此如之奈何?”孔明曰:“亮有一計,可敵曹軍。”正是:破敵未堪息戰馬,避兵又必賴良謀。
 
237
한편, 공명이 군사를 거두자,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238
“공명은 참으로 영걸이오!”
 
239
했다. 몇리 가지 않아서 미축과 미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작은 수레 하나를 호위해 오는데 수레에 단정히 앉은 사람은 바로 공명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에서 내려 수레 앞에서 절하고 엎드렸다. 조금 후에 현덕과 조운 유봉 관평 등이 모두 이르러 군사들을 모으고, 노획한 식량과 사초와 치중을 장수와 사졸들에게 나눠 포상하고, 신야로 회군했다. 신야의 백성들이 먼지를 바라보고 길을 막고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240
“우리 목숨이 온전한 것은 모두 사군께서 현인을 얻으신 덕분이오!”
 
241
했다. 공명이 신야현으로 돌아가서, 현덕에게 말하기를,
 
242
“하후돈이 비록 패하여 물러갔으나 조조가 반드시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243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244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 해야겠습니까?”
 
245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246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조조 군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247
했다. 이야말로, 적병을 깨뜨리고 아직 전마가 쉬지도 못했는데, 다시 싸움을 피하려면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어야겠네.
 
 
248
未知其計若何,且看下回分解。
 
249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39회 형주성에서 공자가 계책을 세 번 구하고, 박망파에서 군사가 처음으로 용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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