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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33회 조비가 난을 틈타 견씨를 얻고, 곽가가 계책을 남겨 요동을 평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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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三十三回 曹丕乘亂納甄氏 郭嘉遺計定遼東
2
제33회 조비가 난을 틈타 견씨를 얻고, 곽가가 계책을 남겨 요동을 평정하다.
 
 
3
卻說曹丕見二婦人啼哭,拔劍欲斬之。忽見紅光滿目,遂按劍而問曰:“汝何人也?”一婦人告曰:“妾乃袁將軍之妻劉氏也。”丕曰:“此女何人?”劉氏曰:“此次男袁熙之妻甄氏也。因熙出鎮幽州,甄氏不肯遠行,故留於此。”丕拖此女近前,見披發垢面。丕以衫袖拭其面而觀之,見甄氏玉肌花貌,有傾國之色。遂對劉氏曰:“吾乃曹丞相之子也。願保汝家。汝勿憂慮。”道按劍坐於堂上。
 
4
각설, 조비가 두 부인이 흐느껴 우는 것을 보고 칼을 뽑아 베려 하였다. 문득 얼굴에 붉은 윤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곧 칼을 만지며 묻기를,
 
5
“그대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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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한 부인이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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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장군의 아내 유씨입니다.”
 
8
했다. 조비가 말하기를,
 
9
“이 여인은 누구인가?”
 
10
하니, 유씨가 말하기를,
 
11
“이 애는 차남 원희의 처 견씨입니다. 원희가 유주에 출진하는데 이 애가 멀리 가기를 싫어해서 여기 머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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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비가 그 여인을 앞으로 가까이 불러서 그 풀어헤친 머리와 때묻은 얼굴을 보았다. 조비가 옷소매로 그 얼굴을 닦고 살펴보니 견씨는 살결이 옥 같고 얼굴이 꽃 같아 경국지색이었다. 마침내 (조비가) 유씨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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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 승상의 아들이오. 그대 집안을 지켜줄테니 아무 걱정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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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칼을 매만지며 대청마루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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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曹操統領 衆將入冀州城,將入城門,許攸縱馬近前,以鞭指城門而呼操曰:“阿瞞,汝不得我,安得入此門?”操大笑。 衆將聞言,俱懷不平。操至紹府門下,問曰:“誰曾入此門來?”守將對曰:“世子在內。”操喚出責之。劉氏出拜曰:“非世子不能保全妾家,願獻甄氏爲世子執箕帚。”操教喚出甄氏拜於前。操視之曰:“真吾兒婦也!”遂令曹丕納之。
 
16
한편, 조조가 장수들을 거느리고 기주성으로 가서 성문을 들어가려는데 허유가 말을 내달려 가까이 와서 채찍으로 성문을 가리켜 조조를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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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조조의 아명)아! 그대가 나를 얻지 못했으면 어찌 이 문으로 들어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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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조가 크게 웃었다. 장수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불평을 품었다. 조조가 원소의 집 문에 이르러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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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기에 먼저 왔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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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지키던 장수가 대답하기를,
 
21
“세자께서 안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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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불러내어 꾸짖었다. 유씨가 나와 절하며 말하기를,
 
23
“세자가 아니시면 소첩의 집안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견씨를 세자께 청소부로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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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견씨를 불러내게 하여 인사를 시켰다. 조조가 보더니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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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내 아들의 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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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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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조비가 맞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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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既定冀州,親往袁紹墓下設祭,再拜而哭甚哀,顧謂 衆官曰:“昔日吾與本初共起兵時,本初問吾曰:‘若事不輯,方面何所可據?’吾問之曰:‘足下意欲若何?’本初曰:‘吾南據河,北阻燕代,兼沙漠之 衆,南向以爭天下,庶可以濟乎?’吾答曰:‘吾任天下之智力,以道禦之,無所不可。’此言如昨,而今本初已喪,吾不能不爲流涕也!” 衆皆歎息。操以金帛糧米賜紹妻劉氏。乃下令曰:“河北居民遭兵革之難,盡免今年租賦。”一面寫表申朝;操自領冀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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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이미 기주를 평정하고, 몸소 원소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베풀어 두번 절하고 매우 슬프게 울고나서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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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내가 본초와 함께 병사를 일으켰을 때 본초가 내게 묻기를,‘만약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디로 가서 자리잡아야겠소?’하기에 내가 묻기를,‘그대는 어디로 가고 싶소?’하니, 본초(원소)가 말하기를,‘나는 남쪽으로 황하에 의지하고, 북쪽으로 연(燕)과 대(代) 지역에 가로막히며, 사막의 무리를 아울러서 남쪽으로 향하여 천하를 다투면 거의 성공하지 않겠소?’했오. 내가 답하기를,‘내가 천하에서 지혜롭고 용력 있는 인재들을 도(道)로써 거느린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오.’했오.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게 어제 같은데 지금 본초가 이미 세상을 떴으니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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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모두가 탄식했다. 조조가 재물과 식량을 원소의 처 유씨에게 하사했다. 조조가 명을 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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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 백성들이 전란을 맞아 어려우니 올해는 모든 세금을 면제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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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한편으로 조정에 표를 올리고 조조 스스로 기주목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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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許褚走馬入東門,正迎許攸,攸喚褚曰:“汝等無我,安能出入此門乎?”褚怒曰:“吾等千生萬死,身冒血戰,奪得城池,汝安敢誇口!”攸罵曰:“汝等皆匹夫耳,何足道哉!”褚大怒,拔劍殺攸,提頭來見曹操,說“許攸如此無禮,某殺之矣。”操曰:“子遠與吾舊交,故相戲耳,何故殺之!”深責許褚,令厚葬許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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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허저가 말을 달려 동문으로 들어오는데 허유와 마주쳤다. 허유가 허저를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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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었으면 너희가 어찌 이 문을 출입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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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허저가 노하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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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온갖 죽을 고비를 넘고 피흘려 싸워 성지를 빼앗았거늘 네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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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허유가 욕하며 말하기를,
 
40
“너희들 모두 필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야 어찌 족히 말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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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허저가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 허유를 죽이고, 그 머리를 집어들고 조조를 만나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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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가 이렇게 무례하여 제가 그를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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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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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허유의 자)은 나와 옛 친구여서 농담한 것뿐인데 어째서 죽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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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허저를 몹시 꾸짖고 명을 내려 허유를 후하게 장사지내게 했다.
 
 
46
乃令人遍訪冀州賢士。冀民曰:“騎都尉崔琰,字季珪,清河東武城人也。數曾獻計於袁紹,紹不從,因此托疾在家。”操即召琰爲本州別駕從事,而謂曰:“昨按本州戶籍,共計三十萬 衆,可謂大州。”琰曰:“今天下分崩,九州幅裂,二袁兄弟相爭,冀民暴骨原野,丞相不急存問風俗,救其塗炭,而先計校戶籍,豈本州士女所望於明公哉?”操聞言,改容謝之,待爲上賓。
 
47
이에 조조가 기주 곳곳에 사람을 보내어 어진 인재를 찾게 했다. 기주 백성이 말하기를,
 
48
“기도위 최염은 자가 계규이고 청하군 동무성 사람인데 일찍이 여러 차례 원소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원소가 따르지 않아서 병을 핑계로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49
했다. 조조가 즉시 최염을 불러 기주의 별가종사로 삼아서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50
“어제 기주의 호적을 살피니 모두 합쳐 30만이라 큰 고을이라 할 만하오.”
 
51
하니, 최염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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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하가 갈라져 무너지고 9주가 찢어졌으며, 원씨 형제 두 사람이 서로 싸워 기주 백성들의 뼈가 들판에 구르고 있습니다. 승상께서 서둘러 안부와 풍속을 물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호적을 헤아려 비교하시니 어찌 본주의 남녀들이 명공께 희망을 갖겠습니까!”
 
53
했다.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을 고쳐 사과하고 그를 귀빈으로 대했다.
 
 
54
操已定冀州,使人探袁譚消息。時譚引兵劫掠甘陵、安平、渤海、河間等處,聞袁尚敗走中山,乃統軍攻之。尚無心戰鬥,徑奔幽州投袁熙。譚盡降其 衆,欲複圖冀州。操使人召之,譚不至。操大怒,馳書絕其婚,自統大軍征之,直抵平原。譚聞操自統軍來,遣人求救於劉表。表請玄德商議。玄德曰:“今操已破冀州,兵勢正盛,袁氏兄弟不久必爲操擒,救之無益;況操常有窺荊襄之意,我只養兵自守,未可妄動。”表曰:“然則何以謝之?”玄德曰:“可作書與袁氏兄弟,以和解爲名,婉詞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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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이미 기주를 평정한 뒤 사람을 보내 원담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때 원담이 병력을 이끌고 감릉, 안평, 발해, 하간 등지를 약탈했다. 원상이 중산으로 달아난 것을 전해듣고 원담이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했다. 원상이 싸울 뜻이 없어 유주로 달아나 원희에게 의탁했다. 원담이 그 무리를 모조리 항복시켜 다시 기주를 도모하려 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불러도 원담이 오지 않았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글을 전해 파혼하고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정벌하러 곧장 평원에 이르렀다. 원담이 조조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유표에게 구원을 청했다. 유표가 현덕을 불러 상의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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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조가 이미 기주를 깨뜨려서 군세가 한창 강성하여 원씨 형제는 머잖아 조조에게 잡힐테니 구원하는 것은 이익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조가 늘 형주와 양양을 넘보니 우리는 다만 병력을 길러 스스로 지켜야지 아직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됩니다.”
 
57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58
“그렇다면 어떻게 거절해야겠소?”
 
59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60
“글을 써서 원씨 형제에게 보내어, 형제 사이에 화해하라는 명분으로 완곡히 거절하십시오.”
 
61
했다.
 
 
62
表然其言,先遣人以書遺譚。書略曰:“君子違難,不適仇國。日前聞君屈膝降曹,則是忘先人之仇,棄手足之誼,而遺同盟之恥矣。若冀州不弟,當降心相從。待事定之後,使天下平其曲直,不亦高義耶?”又與袁尚書曰:“青州天性峭急,迷於曲直。君當先除曹操,以卒先公之恨。事定之後,乃計曲直,不亦善乎?若迷而不返,則是韓盧、東郭自困於前,而遺田父之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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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가 그렇다고 여겨, 먼저 사람을 보내 글을 원담에게 전했다. 그 글에 대략 이르기를,
 
64
“군자는 피난하더라도 원수의 나라에는 가지 않소. 예전에 듣자니 그대가 무릎꿇어 조조에게 항복하였다는데, 이것은 선친의 원수를 잊어버리고 형제의 도리를 저버린 채 (원수와) 동맹하는 치욕을 남기게 된 것이오. 기주의 아우가 공손치 못해도 마땅히 마음을 접고 상종해야 할 것이오. 일이 해결된 후를 기다려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옳고 그름을 가리게 하는 것이 역시 고상하고 의롭지 않겠소?”
 
65
했다. 또 원상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66
“청주(청주에 근거했던 원담을 지칭)는 천성이 괴팍한데다 성급하고 시비곡직을 잘 모르오. 그대는 마땅히 먼저 조조를 없애서 돌아가신 선친의 한을 풀어야 할 것이오. 일이 해결된 뒤에 시비곡직을 따지는 것이 역시 좋지 않겠소? 만약 그대가 계속 헤매어 돌이키지 않는다면, 옛날 한로(사나운 개)와 동곽(빠른 토끼)이 스스로 지쳐서 결국 농부에게 잡혔던 꼴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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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68
譚得表書,知表無發兵之意,又自料不能敵操,遂棄平原,走保南皮。曹操追至南皮,時天氣寒肅,河道盡凍,糧船不能行動。操令本處百姓敲冰拽船,百姓聞令而逃。操大怒,欲捕斬之。百姓聞得,乃親往營中投首。操曰:“若不殺汝等,則吾號令不行;若殺汝等,吾又不忍:汝等快往山中藏避,休被我軍士擒獲。”百姓皆垂淚而去。
 
69
원담이 유표의 서신을 받고 유표에게 출병할 뜻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한 스스로 조조에 맞설 수 없는 것을 깨달아 마침내 평원을 버리고 달아나서 남피를 지켰다. 조조가 추격하여 남피에 이르니, 그때 날씨가 매우 추워서 강 물길이 모두 얼어붙어 군량을 나르는 배가 움직일 수 없었다. 조조가 그곳 백성들을 시켜 얼음을 깨고 배를 끌게 했다. 그들이 명령을 듣고 달아났다. 조조가 크게 노해 그들을 잡아 죽이려 했다. 백성들이 알고 진영으로 몰려가서 자수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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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너희를 죽이지 않으면 내 명령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너희를 죽이면 역시 차마 못할 짓이다. 너희는 산속으로 달아나 숨어서 우리 군사들에게 잡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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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달아났다.
 
 
72
袁譚引兵出城,與曹軍相敵。兩陣對圓,操出馬以鞭指譚而罵曰:“吾厚待汝,汝何生異心?”譚曰:“汝犯吾境界,奪吾城池,賴吾妻子,反說我有異心耶!”操大怒,使徐晃出馬。譚使彭安接戰。兩馬相交,不數合,晃斬彭安於馬下。譚軍敗走,退入南皮。操遣軍四面圍住。譚著慌,使辛評見操約降。操曰:“袁譚小子,反覆無常,吾難准信。汝弟辛毗,吾已重用,汝亦留此可也。”
 
73
원담이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와 조조 군대와 맞섰다. 양쪽이 진을 치고 조조가 말을 타고 나가 채찍을 들어 원담을 가리켜 욕하며 말하기를,
 
74
“내가 너를 후하게 대했거늘 네가 어찌 다른 마음을 품었느냐?”
 
75
하니, 원담이 말하기를,
 
76
“네가 내 땅을 침범하여 내 고을을 빼앗고 내 처자에게 억지를 부리고서 도리어 나더러 다른 마음을 먹었다 말하는가?”
 
77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서황을 출마시켰다. 원담이 팽안을 보내 접전케 했다. 둘이 맞붙어 몇합이 못 되어서 서황이 팽안을 베어 낙마시켰다. 원담의 군대가 패주하여 물러나 남피성으로 들어갔다. 조조가 군대르 보내 사방을 에워쌌다. 원담이 당황하여, 신평을 보내 조조를 만나 항복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78
“원담 어린 놈이 반복 무상하여 내가 믿지 못하겠소. 그대의 아우 신비를 내 이미 중용했으니 그대 역시 여기에 머무는 게 좋겠소.”
 
79
했다.
 
 
80
評曰:“丞相差矣。某聞主貴臣榮,主憂臣辱。某久事袁氏,豈可背之!”操知其不可留,乃遣回。評回見譚,言操不准投降。譚叱曰:“汝弟現事曹操,汝懷二心耶?”評聞言,氣滿填胸,昏絕於地。譚令扶出,須臾而死。譚亦悔之。郭圖謂譚曰:“來日盡驅百姓當先,以軍繼其後,與曹操決一死戰。”譚從其言。當夜盡驅南皮百姓,皆執刀槍聽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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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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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께서 틀렸습니다. 제가 듣자니 주군이 귀해지면 신하는 영광스럽게 되고, 주군에게 우환이 있으면 신하는 치욕을 당한다고 합니다. 제가 원씨를 오래 섬겼는데, 어찌 배반을 하겠습니까?”
 
83
했다. 조조는 그가 머물지 않을 것을 알고 돌려보냈다. 신평이 돌아가 원담을 만나서 조조가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니, 원담이 꾸짖기를,
 
84
“네 아우가 지금 조조를 섬기니 너도 딴 마음을 품었느냐?”
 
85
했다. 신평이 그 말을 듣고 기가 차서 가슴이 답답해 땅바닥에 혼절해 쓰러졌다. 원담이 그를 부축해 나가게 했으나 (신평은) 잠시 뒤에 죽었다. 원담도 뉘우쳤다. 곽도가 원담에게 말하기를,
 
86
“내일 백성들을 모두 몰아 앞세우고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여, 조조와 죽기살기로 결판을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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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원담이 그 말을 따랐다. 그날 밤 남피 백성들을 모두 끌어모아 창칼을 쥐어주고 명령을 듣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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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日平明,大開四門,軍在後,驅百姓在前,喊聲大舉,一齊擁出,直抵曹寨。兩軍混戰,自辰至午,勝負未分,殺人遍地。操見未獲全勝,乘馬上山,親自擊鼓。將士見之,奮力向前,譚軍大敗。百姓被殺者無數。曹洪奮威突陣,正迎袁譚,舉刀亂砍,譚竟被曹洪殺於陣中,郭圖見陣大亂,急馳入城中。樂進望見,拈弓搭箭,射下城壕,人馬俱陷。
 
89
이튿날 해뜰 무렵 4문을 활짝 열어 백성들을 앞세우고 군사들이 뒤따라서 함성을 크게 지르며 일제히 몰려나가 곧장 조조 영채에 이르렀다. 양쪽 군대가 혼전하여 진시(오전8시)에서 정오가 되었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고 시체가 땅에 가득했다. 조조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말을 타고 산에 올라 몸소 북을 쳤다. 장수와 병사들이 그것을 보고 힘을 떨쳐 전진했다. 원담의 군대가 크게 져서 죽은 백성을 헤아릴 수 없었다. 조홍이 위세를 떨쳐 돌진하여, 바로 원담을 마주쳐 칼을 들어 마구 찍어 마침내 원담이 진중에서 조홍에게 살해당했다. 곽도가 진세가 크게 어지러운 것을 보고 급히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악진이 멀리서 바라보고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쏘아 맞추니 곽도가 성밖 해자에 말과 함께 빠져 죽었다.
 
 
90
操引兵入南皮,安撫百姓。忽有一彪軍來到,乃袁熙部將焦觸、張南也。操自引軍迎之。二將倒戈卸甲,特來投降。操封爲列侯。又黑山賊張燕,引軍十萬來降,操封爲平北將軍。下令將袁譚首級號令,敢有哭者斬。頭掛北門外。一人布冠衰衣,哭於頭下。左右拿來見操。操問之,乃青州別駕王修也,因諫袁譚被逐,今知譚死,故來哭之。
 
91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남피로 들어가 백성을 안심시켰다. 갑자기 한무리 군마가 몰려오는데 바로 원희의 부하장수인 초촉과 장남이었다. 조조가 몸소 군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맞이했다. 두 장수가 무기를 거꾸로 잡고 갑옷을 벗은 채 특별히 찾아와서 투항했다. 조조가 그들을 열후에 봉했다. 또한 흑산적 장연이 군사 10만을 이끌고 와서 투항하니 조조가 그를 평북장군에 봉했다. 원담의 잘린 머리를 조리 돌리게 하고, 감히 곡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하라고 명했다. 원담의 머리가 북문 밖에 걸렸는데, 한 사람이 상복을 차려 입고 그 아래에서 곡을 했다. 좌우에서 잡아다가 조조에게 끌고갔다. 조조가 물으니 바로 청주 별가 왕수였다. 원담에게 간언하다가 쫓겨나서, 지금 원담의 죽음을 알고 찾아와 그를 곡한 것이었다.
 
 
92
操曰:“汝知吾令否?”修曰:“知之。”操曰:“汝不怕死耶?”修曰:“我生受其辟命,亡而不哭,非義也。畏死忘義,何以立世乎!若得收葬譚屍,受戮無恨。”操曰:“河北義士,何其如此之多也!可惜袁氏不能用!若能用,則吾安敢正眼覷此地哉!”遂命收葬譚屍,禮修爲上賓,以爲司金中郎將。因問之曰:“今袁尚已投袁熙,取之當用何策?”修不答。操曰:“忠臣也。”問郭嘉,嘉曰:“可使袁氏降將焦觸、張南等自攻之。”操用其言,隨差焦觸、張南、呂曠、呂翔、馬延、張顗,各引本部兵,分三路進攻幽州;一面使李典、樂進會合張燕,打並州,攻高幹。
 
93
조조가 말하기를,
 
94
“너는 내 명령을 아느냐? 모르느냐?”
 
95
하니, 왕수가 말하기를,
 
96
“압니다.”
 
97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98
“너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99
하니, 왕수가 말하기를,
 
100
“제가 그의 명령(벼슬)을 받았는데 그가 죽어 곡하지 않는다면 의리가 아닙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리를 잊어서야 어찌 세상에 서 있겠습니까! 만약 원담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 줄 수 있다면, 죽임을 당해도 한이 없겠습니다.”
 
101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02
“하북에는 의로운 사내들이 이렇게 많구나! 원씨가 쓸 줄을 모른 게 안타깝구나! 만약 쓸 줄 알았다면 내가 어찌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이 땅을 노렸겠는가?”
 
103
했다. 마침내 조조가 명하여 원담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고 왕수를 상빈으로 예우하여 사금중랑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에게 묻기를,
 
104
“지금 원상이 이미 원희에게 가버렸는데 그들을 취하려면 무슨 계책을 써야겠소?”
 
105
하니, 왕수가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106
“충신이구려.”
 
107
하고, 곽가에게 묻자 곽가가 말하기를,
 
108
“원씨의 항복한 장수인 초촉과 장남에게 직접 그들을 공격하게 시키십시오.”
 
109
했다. 조조가 그 말을 받아들여 초촉, 장남, 여광, 여상, 마연, 장의에게 각각 휘하 병력을 이끌고 세 갈래로 유주로 진공하라고 보냈다. 한편으로 이전, 악진에게 장연과 모여 합쳐서 병주로 가 고간을 치라고 했다.
 
 
110
且說袁尚、袁熙知曹兵將至,料難迎敵,乃棄城引兵,星夜奔遼西投烏桓去了。幽州刺史烏桓觸,聚幽州 衆官,歃血爲盟,共議背袁向曹之事。烏桓觸先言曰:“吾知曹丞相當世英雄,今往投降,有不遵令者斬。”依次歃血,循至別駕韓珩。珩乃擲劍於地,大呼曰:“吾受袁公父子厚恩,今主敗亡,智不能救,勇不能死,於義缺矣!若北面而降操,吾不爲也!” 衆皆失色。烏桓觸曰:“夫興大事,當立大義。事之濟否,不待一人。韓珩既有志如此,聽其自便。”推珩而出。烏桓觸乃出城迎接三路軍馬,徑來降操。操大喜,加爲鎮北將軍。
 
111
한편, 원상과 원희는 조조 병력이 들이닥칠 것을 알지만 맞서기 어렵다고 헤아려서 성을 버리고 병력을 이끌어 밤새 요서의 오환에게로 달아났다. 유주자사 오환촉이 유주 관리들을 모아 피를 입에 발라 맹세하여 원씨를 배신해 조조에게 넘어갈 것을 같이 함께 의논했다. 오환촉이 먼저 말하기를,
 
112
“내가 알기에 조 승상은 당세의 영웅이니, 지금 그에게 투항하겠소.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참할 것이오.”
 
113
하니, 차례대로 피를 입에 발라 맹세했다. 별가 한형의 차례가 되자, 한형이 칼을 땅에 집어던지며 크게 외치기를,
 
114
“나는 원공 부자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주공이 패망해도 나는 구해드릴 지혜도 없고 죽을 용기도 없으니 의리가 없는 것이오! 그러나 만약 북면하여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나는 못하겠소!”
 
115
했다. 모두 다 얼굴빛이 바뀌었다. 오환촉이 말하기를,
 
116
“무릇 대사를 일으키려면 마땅히 대의를 세워야 하오. 일의 성패는 한 사람에게 달린 게 아니오. 한형의 뜻이 이미 이렇다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겠소.”
 
117
하고, 한형을 끌어냈다. 오환촉이 성을 나가 세 갈래 군마를 영접하고 바로 조조에게 투항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진북장군 벼슬을 더해주었다.
 
 
118
忽探馬來報:“樂進、李典、張燕攻打並州,高幹守住壺口關,不能下。”操自勒兵前往。三將接著,說幹拒關難擊。操集 衆將共議破幹之計。荀攸曰:“若破幹,須用詐降計方可。”操然之。喚降將呂曠、呂翔,附耳低言如此如此。呂曠等引軍數十,直抵關下,叫曰:“吾等原系袁氏舊將,不得已而降曹。曹操爲人詭譎,薄待吾等;吾今還扶舊主。可疾開關相納。”高幹未信,只教二將自上關說話。二將卸甲棄馬而入,謂幹曰:“曹軍新到,可乘其軍心未定,今夜劫寨。某等願當先。”
 
119
홀연 정찰병이 달려와 알리기를,
 
120
“악진, 이전, 장연이 병주를 쳤으나 고간이 호구관을 굳게 지켜 함락할 수 없다고 합니다.”
 
121
하니, 조조가 몸소 병력을 이끌어 전진했다. 세 장수가 맞아들여 이야기하기를 고간이 관문을 막아서 공격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조조가 장수들을 모아 고간을 깰 계책을 함께 논의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122
“고간을 깨려면 반드시 거짓으로 항복하는 꾀를 써야 합니다.”
 
123
하니, 조조가 그렇다고 하고, 항복한 장수 여광과 여상을 불러 귓속말로 이러저러하라고 했다. 여광 등이 군사 수십 명을 이끌고 관 아래로 바로 가 외치기를,
 
124
“우리는 원래 원씨의 옛 장수들로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항복했었소. 조조가 사람됨이 기괴하고 우리를 박대해 이제 옛 주공을 찾아왔소. 어서 문 열어 받아주시오.”
 
125
하니, 고간이 아직 믿지 못하면서도 두 장수를 관 위로 불러 이야기했다. 두 장수가 갑옷을 벗고 말에서 내린 뒤 들어와 고간에게 말하기를,
 
126
“조조 군대가 막 도착해 그 군심이 안정되지 못한 틈에 오늘밤 영채를 공격하십시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127
했다.
 
 
128
於喜從其言,是夜教二呂當先,引萬餘軍前去。將至曹寨,背後喊聲大震,伏兵四起。高幹知是中計,急回壺關城,樂進、李典已奪了關、高幹奪路走脫,往投單於。操領兵拒住關口,使人追襲高幹。幹到單於界,正迎北番左賢王。幹下馬拜伏於地,言曹操吞並疆土,今欲犯王子地面,萬乞救援,同力克複,以保北方。左賢王曰:“吾與曹操無仇,豈有侵我土地?汝欲使我結怨於曹氏耶!”叱退高幹。幹尋思無路,只得去投劉表。行至上潞,被都尉王琰所殺,將頭解送曹操。曹封琰爲列侯。
 
129
고간이 그 말을 따라 그날밤 두 여씨에게 앞장서라 지시하고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전진했다. 조조 영채에 다다를 무렵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고 복병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고간이 계략에 빠진 것을 깨닫고 서둘러 호구관성으로 돌아가지만, 악진과 이전이 이미 호구관을 빼앗았다. 고간이 길을 뚫어 달아나 선우(흉노의 군주)에게로 달아났다. 조조가 병력을 거느려 관 어귀를 막고 군사들에게 고간을 뒤쫓게 했다. 고간이 선우의 경계에 다다라 북번좌현왕(흉노 왕자)을 마주쳤다. 고간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130
“조조가 저희 영토를 집어삼켜 이제 왕자의 땅도 침범하려 합니다. 부디 저희를 구원하여 함께 힘을 모아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북방을 지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
 
131
하니, 죄현왕이 말하기를,
 
132
“나는 조조와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내땅을 침범하겠는가? 네가 나를 조씨와 원수지게 하고 싶구나!”
 
133
하고, 고간을 꾸짖어 내쳤다. 고간이 아무리 생각해도 갈 데가 없어 별수 없이 유표를 찾아갔다. 길을 가다 상로(上潞) 땅에 이르러 도위 왕염에게 살해되어 (왕염이) 그 머리를 조조에게 보내주었다. 조조가 그(王琰)를 열후에 봉했다.
 
 
134
並州既定,操商議西擊烏桓。曹洪等曰:“袁熙、袁尚兵敗將亡,勢窮力盡,遠投沙漠;我今引兵西擊,倘劉備、劉表乘虛襲許都,我救應不及,爲禍不淺矣:請回師勿進爲上。”郭嘉曰:“諸公所言錯矣。主公雖威震天下,沙漠之人恃其邊遠,必不設備;乘其無備,卒然擊之,必可破也。且袁紹與烏桓有恩,而尚與熙兄弟猶存,不可不除。劉表坐談之客耳,自知才不足以禦劉備,重任之則恐不能制,輕任之則備不爲用。雖虛國遠征,公無憂也。”操曰:“奉孝之言極是。”
 
135
병주가 이미 평정되자 조조가 서쪽으로 오환을 칠 것을 상의했다. 조홍 등이 말하기를,
 
136
“원희와 원상이 싸움에 지고 장수들을 잃어 세력이 궁하고 힘이 다하여 멀리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지금 병력을 이끌어 서쪽을 치면, 만약 유비와 유표가 틈을 타서 허도를 습격해도 우리가 구원하지 못해 그 재앙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청컨대 군사를 돌려 (오환으로) 진격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137
하니, 곽가가 말하기를,
 
138
“여러분들 말씀이 틀렸습니다. 주공의 위세가 천하를 뒤흔들지만 사막 사람들은 그 땅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믿어 틀림없이 방비를 안했을 것입니다. 그 무방비를 틈타 갑자기 습격하면 반드시 깰 수 있습니다. 또한 원소가 오환에게 은혜가 있는데 원상, 원희 형제가 아직 남아 았으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표는 앉은 채 담론이나 즐기는 인간일 뿐인데 스스로 자신의 재주가 유비를 거느리기에 부족한 것을 압니다. 그에게 중임을 맡겨 그를 제어하지 못할까 두려워 합니다. 가벼운 임무를 맡기면 유비는 제몫을 못합니다. 비록 나라를 비우고 멀리 정벌한들 공께서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139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40
“봉효(곽가의 자)가 말한 게 극히 옳소.”
 
141
했다.
 
 
142
遂率大小三軍,車數千輛,望前進發。但見黃沙漠漠,狂風四起;道路崎嶇,人馬難行。操有回軍之心,問於郭嘉。嘉此時不伏水土,臥病車上。操泣曰:“因我欲平沙漠,使公遠涉艱辛,以至染病,吾心何安!”嘉曰:“某感丞相大恩,雖死不能報萬一。”操曰:“吾見北地崎嶇,意欲回軍,若何?”嘉曰:“兵貴神速。今千裏襲人,輜重多而難以趨利,不如輕兵兼道以出,掩其不備。但須得識徑路者爲引導耳。”
 
143
마침내 조조가 크고 작은 삼군과 수레 수천 량을 거느리고 앞으로 향해 전진했다. 다만 누런 모래가 막막하고, 미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올 뿐이었다. 길이 험준하여 사람과 말이 가기 어려웠다. 조조가 군사를 돌리고 싶어 곽가에게 물었다. 곽가는 그때 풍토가 몸에 맞지 않아 병을 앓아 수레에 누워 있었다. 조조가 울며 말하기를,
 
144
“내가 사막을 평정하려다 그대를 멀리 힘들게 끌고 와 병에 걸리게 했으니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소?”
 
145
하니, 곽가가 말하기를,
 
146
“제가 승상께 큰 은혜를 입어 비록 죽은들 만분의 일도 못 갚습니다.”
 
147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48
“내가 보니 북쪽 땅이 험하여 군사를 돌리고 싶은데 어떻소?”
 
149
하니, 곽가가 말하기를,
 
150
“군사는 귀신처럼 빠른 것을 귀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천릿길을 가서 남을 습격하려는데 보급이 많아서는 이롭지 못하니, 가벼운 군사로 하루에 이틀 길을 가서 적의 무방비를 덮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길을 잘 아는 자가 인도해야 합니다.”
 
151
했다.
 
 
152
遂留郭嘉於易州養病,求向導官以引路。人薦袁紹舊將田疇深知此境,操召而問之。疇曰:“此道秋夏間有水,淺不通車馬,深不載舟楫,最難行動。不如回軍,從盧龍口越白檀之險,出空虛之地,前近柳城,掩其不備:蹋頓可一戰而擒也。”操從其言,封田疇爲靖北將軍,作向導官,爲前驅;張遼爲次;操自押後:倍道輕騎而進。
 
153
결국 곽가를 역주에 남겨 치료하게 하고, 길을 이끌 향도관을 구했다. 사람들이 원소의 옛 장수 전주가 이 지역을 깊이 안다고 추천했다. 조조가 그를 불러 길을 묻자 전주가 말하기를,
 
154
“이쪽 길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물이 차오릅니다. 얕아도 수레와 말들이 다니지 못하고. 깊어도 배를 띄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움직이기 제일 어렵습니다. 여기서 회군하시는 게 낫습니다. 그리하여 노룡구로보터 백단의 험로를 넘으십시오. 인적이 드문 곳을 나가 유성에 가까이 가서 그 무방비를 습격하면 묵돌(흉노의 선우)을 한번 싸워 잡을 수 있습니다.”
 
155
하니, 조조가 그 말을 따라 전주를 정북장군으로 삼고 향도관에 앉혀 길을 선도하게 했다. 장요가 다음이 되고, 조조 스스로 뒤를 맡아 속도를 배가해 경기병을 이끌어 전진했다.
 
 
156
田疇引張遼前至白狼山,正遇袁熙、袁尚會合蹋頓等數萬騎前來。張遼飛報曹操。操自勒馬登高望之,見蹋頓兵無隊伍,參差不整。操謂張遼曰:“敵兵不整,便可擊之。”乃以麾授遼。遼引許褚、於禁、徐晃分四路下山,奮力急攻,蹋頓大亂。遼拍馬斬蹋頓於馬下,餘 衆皆降。袁熙、袁尚引數千騎投遼東去了。
 
157
전주가 장요를 이끌어 백랑산에 이르렀다. 때마침 원희, 원상이 묵돌과 함께 기병 수만을 이끌고 몰려오다 마주쳤다. 장요가 급히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가 친히 말을 몰아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묵돌 병사들이 대오를 짓지 않아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않았다. 조조가 장요에게 말하기를,
 
158
“적병들 대오가 흐트러져 바로 공격해야겠소.”
 
159
하고, 대장기를 장요에게 주었다. 장요가 허저, 우금, 서황을 이끌고 네 갈래로 나누어 산을 내려가서 힘껏 급습했다. 묵돌이 크게 혼란에 빠졌다. 장요가 말에 박차를 가해 묵돌을 베어 말 아래 떨어뜨리니, 나머지 무리가 모두 항복했다. 원희와 원상은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났다.
 
 
160
操收軍入柳城,封田疇爲柳亭侯,以守柳城。疇涕泣曰:“某負義逃竄之人耳,蒙厚恩全活,爲幸多矣;豈可賣盧龍之寨以邀賞祿哉!死不敢受侯爵。”操義之,乃拜疇爲議郎。操撫慰單於人等,收得駿馬萬匹,即日回兵。時天氣寒且旱,二百裏無水,軍又乏糧,殺馬爲食,鑿地三四十丈,方得水。操回至易州,重賞先曾諫者;因謂 衆將曰:“孤前者乘危遠征,僥幸成功。雖得勝,天所佑也,不可以爲法。諸君之諫,乃萬安之計,是以相賞。後勿難言。”
 
161
조조가 군사를 거두어 유성에 들어가서, 전주를 유정후로 봉해 유성을 지키게 했다. 전주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162
“저는 의리를 저버리고 달아난 인간일 뿐입니다. 두터운 은혜를 입어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큰 다행입니다. 어찌 노룡의 영채를 팔아 상과 녹을 받겠습니까! 죽을지언정 제후의 작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163
했다. 조조가 그를 의롭게 여겨 전주를 의랑으로 삼았다. 조조가 선우의 사람들을 달래고 준마 1만필을 거두어 그날로 회군했다. 그때 날씨가 춥고 가물어서 2백리를 가도 물이 없었다. 게다가 군량도 떨어져 말을 잡아먹었다. 땅을 삼사십 길 파야 마실 물을 얻었다. 조조가 돌아가 역주에 이르러, 일찍이 (원정을 말려) 간언했던 사람들을 크게 포상하며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164
“내가 지난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원정해서 요행히 성공했소. 비록 이겼지만 하늘이 도왔으니 본으로 삼을 것은 아니오. 여러분 간언은 곧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라 포상을 내리오. 앞으로도 말하는 것을 꺼리지들 마시오.”
 
165
했다.
 
 
166
操到易州時,郭嘉已死數日,停柩在公廨。操往祭之,大哭曰:“奉孝死,乃天喪吾也!”回顧 衆官曰:“諸君年齒,皆孤等輩,惟奉孝最少,吾欲托以後事。不期中年夭折,使吾心腸崩裂矣!”嘉之左右,將嘉臨死所封之書呈上曰:“郭公臨亡,親筆書此,囑曰:丞相若從書中所言,遼東事定矣。”操拆書視之,點頭嗟歎。諸人皆不知其意。次日,夏侯惇引 衆人稟曰:“遼東太守公孫康,久不賓服。今袁熙、袁尚又往投之,必爲後患。不如乘其未動,速往征之,遼東可得也。”操笑曰:“不煩諸公虎威。數日之後,公孫康自送二袁之首至矣。”諸將皆不肯信。
 
167
조조가 역주에 이르렀을 때 곽가가 이미 죽은 지 며칠째라 주검을 넣은 널을 관청에 두었다. 조조가 가서 제사 지내며 크게 울어 말하기를,
 
168
“봉효(곽가의 자)가 죽다니 하늘이 나를 버렸소!”
 
169
했다.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170
“여러분의 나이는 모두 나와 동년배인데 오직 봉효가 가장 어렸소. 내가 그에게 뒷일을 맡기려 하였는데 중년이 못 돼서 요절하니 내 가슴과 창자가 갈가리 찢어지는구려!”
 
171
했다. 곽가의 측근들이 곽가가 죽음에 임해 봉했던 글을 조조에게 바쳐 말하기를,
 
172
“곽공께서 죽음에 임해 친히 이렇게 글을 써 맡기며 말하기를,‘승상께서 내 글에 적힌대로 하시면 요동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73
하였다. 조조가 뜯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 아뢰기를,
 
174
“요동태수 공손강이 오래도록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원희, 원상이 그곳으로 의탁하러 갔으니 틀림없이 후환이 될 것입니다. 아직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정벌하면 요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175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176
“여러분이 번거롭게 호랑이 같은 위엄을 떨칠 것 없소. 며칠 뒤 공손강이 스스로 두 원씨의 목을 바치게 될 것이오.”
 
177
했다. 장수들은 모두 믿지 못했다.
 
 
178
卻說袁熙、袁尚引數千騎奔遼東。遼東太守公孫康,本襄平人,武威將軍公孫度之子也。當日知袁熙、袁尚來投,遂聚本部屬官商議此事。公孫恭曰:“袁紹在日,常有吞遼東之心;今袁熙,袁尚兵敗將亡,無處依棲,來此相投,是鳩奪鵲巢之意也。若容納之,後必相圖。不如賺入城中殺之,獻頭與曹公,曹公必重待我。”康曰:“只怕曹操引兵下遼東,又不如納二袁使爲我助。”恭曰:“可使人探聽。如曹兵來攻,則留二袁;如其不動,則殺二袁,送與曹公。”康從之,使人去探消息。
 
179
한편, 원희와 원상이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났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본래 양평 사람인데 무위장군 공손탁의 아들이다. 그날 원희, 원상이 온다는 말을 듣고, 그 밑의 관리들을 불러모아 그 일을 상의했다. 공손공이 말하기를,
 
180
“원소가 살아 있을 때 늘 요동을 집어삼킬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 원희, 원상이 싸움에 지고 장수들을 잃어 아무 기댈 데가 없자 여기로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비둘기가 까치 집을 빼앗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받아들이면 뒤에 반드시 우리를 도모할 것입니다. 그들을 속여 성안으로 불러들여 죽이는 게 낫습니다. 그들의 머리를 조공께 바치면 조공이 분명 우리를 후대할 것입니다.”
 
181
했다. 공손강이 말하기를,
 
182
“다만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와서 요동을 함락할까 두렵소. 차라리 원씨 형제를 받아들여 우리를 돕게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소.”
 
183
하니, 공손공이 말하기를,
 
184
“사람을 보내 알아보십시오. 만약 조조의 병력이 공격하러 오면 원씨 형제를 머물게 하십시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원씨 형제를 죽여 조조에게 보내십시오.”
 
185
했다. 공손강이 그 말을 따라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았다.
 
 
186
卻說袁熙、袁尚至遼東,二人密議曰:“遼東軍兵數萬,足可與曹操爭衡。今暫投之,後當殺公孫康而奪其地,養成氣力而抗中原,可複河北也。”商議已定,乃入見公孫康。康留於館驛,只推有病,不即相見。不一日,細作回報:“曹公兵屯易州,並無下遼東之意。”公孫康大喜,乃先伏刀斧手於壁衣中,使二袁入。相見禮畢,命坐。時天氣嚴寒,尚見床榻上無裀褥,謂康曰:“願鋪坐席。”康瞋目言曰:“汝二人之頭,將行萬裏!何席之有!”尚大驚。康叱曰:“左右何不下手!”刀斧手擁出,就坐席上砍下二人之頭,用木匣盛貯,使人送到易州,來見曹操。
 
187
한편, 원희, 원상이 요동에 이르러 두 사람이 은밀히 의논하여 말하기를,
 
188
“요동은 군병이 수만이니 조조와 승부를 다툴 만하다. 지금 잠시 몸을 맡기고 뒤에 공손강을 죽여 그 땅을 빼앗아 기력을 양성해 중원에 맞서면 하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189
하였다. 상의를 마치고 들어가 공손강을 만났다. 공손강이 그들을 여관에 머물게 하며 병을 핑계로 곧바로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공손강의) 세작이 돌아와 알리기를,
 
190
“조조가 역주에 주둔하여 요동을 점령할 뜻이 없습니다.”
 
191
했다. 공손강이 크게 기뻐하여 먼저 도부수들을 벽에 둘러친 천 속에 숨겨두고 두 원씨를 불러들였다. 인사를 마치고 그들을 앉게 했다. 그때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원상이 자리에 방석이 없는 걸 보고 공손강에게 말하기를,
 
192
“자리를 깔아주시오.”
 
193
하니, 공손강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기를,
 
194
“네 두 사람의 머리가 곧 만리를 떠날 것이다! 무슨 자리가 있겠느냐?”
 
195
했다. 원상이 깜짝 놀랐다. 공손강이 꾸짖기를,
 
196
“여봐라! 어찌 시작하지 않느냐!”
 
197
하니, 도부수들이 몰려나와 앉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머리를 베었다. (머리를) 나무상자에 넣고 사람을 시켜 역주에 갖고 가서 조조를 만나게 했다.
 
 
198
時操在易州,按兵不動。夏侯惇、張遼入稟曰:“如不下遼東,可回許都。恐劉表生心。”操曰:“待二袁首級至,即便回兵。” 衆皆暗笑。忽報遼東公孫康遣人送袁熙、袁尚首級至, 衆皆大驚。使者呈上書信。操大笑曰:“不出奉孝之料!”重賞來使,封公孫康爲襄平侯、左將軍。 衆官問曰:“何爲不出奉孝之所料?”操遂出郭嘉書以示之。書略曰:“今聞袁熙、袁尚往投遼東,明公切不可加兵。公孫康久畏袁氏吞並,二袁往投必疑。若以兵擊之,必並力迎敵,急不可下;若緩之,公孫康、袁氏必自相圖,其勢然也。” 衆皆踴躍稱善。操引 衆官複設祭於郭嘉靈前。亡年三十八歲,從征十有一年,多立奇勳。
 
199
그때 조조가 역주에서 군대를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요가 들어와 아뢰기를,
 
200
“요동을 점령할 게 아니라면 허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표가 다른 마음을 품을까 두렵습니다.”
 
201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202
“두 원씨들의 목을 기다렸다가 즉시 회군하겠소.”
 
203
했다. 모두들 속으로 웃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요동 공손강이 사람을 보내어 원희, 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고 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사자가 서신을 바치자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204
“봉효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205
하고,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관리들이 묻기를,
 
206
“어찌하여 봉효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겁니까?”
 
207
하니, 조조가 곽가의 글을 꺼내 보여 주었다. 글에 대략 이르기를,
 
208
“지금 듣자니 원희, 원상이 요동에 의탁하러 갔다 합니다. 명공께서 절대 병력을 보내지 마십시오.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들이 집어삼킬까 걱정했습니다. 원씨 형제가 찾아가면 반드시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군사가 쳐들어가면 반드시 그들은 힘을 합쳐 우리에게 맞설테니 급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느슨하게 해주면 공손강과 원씨들이 반드시 서로를 도모할 것입니다. 그 형세가 그렇습니다.”
 
209
했다. 모두 환호하며 곽가를 훌륭하다 칭찬했다. 조조가 관리들을 이끌고 다시 곽가 영전에 제사를 올렸다. 향년 38세였다. 11년간 싸움터를 따라다녀 비상한 공훈을 많이 세웠다.
 
 
210
後人有詩贊曰:“天生郭奉孝,豪傑冠群英:腹內藏經史,胸中隱甲兵;運謀如範蠡,決策似陳平。可惜身先喪,中原梁棟傾。”操領兵還冀州,使人先扶郭嘉靈柩於許都安葬。程昱等請曰:“北方既定,今還許都,可早建下江南之策。”操笑曰:“吾有此志久矣。諸君所言,正合吾意。”是夜宿於冀州城東角樓上,憑欄仰觀天文。時荀攸在側,操指曰:“南方旺氣燦然,恐未可圖也。”攸曰:“以丞相天威,何所不服!”正看間,忽見一道金光,從地而起。攸曰:“此必有寶於地下”。操下樓令人隨光掘之。正是:星文方向南中指,金寶旋從北地生。
 
211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212
“하늘이 곽봉효를 낳아, 호걸스러움이 영웅들을 뛰어넘었네. 뱃속에 경전과 역사를 품고, 가슴에 용병의 지략을 숨겼다. 지모는 범려와 같고, 계책은 진평을 닮았으나, 애석하게 먼저 세상을 뜨니, 중원의 큰 기둥이 쓰러졌다.”
 
213
고 했다. 조조가 병력을 거느리고 기주로 돌아와서 사람을 시켜 곽가의 영구를 허도에 먼저 보내어 안장하게 했다. 정욱 등이 청하기를,
 
214
“북방을 이미 평정했으니 지금 허도로 돌아가 어서 강남을 함락할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215
하니,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216
“내게 그럴 뜻이 있은 지 오래요. 여러분이 말한 것이 내 뜻과 꼭 맞소.”
 
217
했다. 그날밤 기주성 동쪽 누각 위에서 머무는데 난간에 기대어 천문을 우러러 살폈다. 그때 순유가 옆에 있었다. 조조가 가리키며 말하기를,
 
218
“남쪽에 왕성한 기운이 찬란해서 아직 도모해서는 안 될까 두렵소.”
 
219
하니, 순유가 말하기를,
 
220
“승상의 하늘같은 위엄에 무엇인들 굴복하지 않겠습니까?”
 
221
했다. 바로 보고 있는 사이에 문득 한줄기 금빛이 땅에서 솟아났다. 순유가 말하기를,
 
222
“이것은 틀림없이 지하에 보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223
했다. 조조가 누각을 내려가 사람들에게 그 빛을 따라 땅을 파라 명했다. 이야말로, 별자리는 지금 남쪽을 가리키는데, 황금보물은 도리어 북쪽 땅에서 나오는구나.
 
 
224
不知所得何物,且聽下文分解。
 
225
무슨 물건을 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33회 조비가 난을 틈타 견씨를 얻고, 곽가가 계책을 남겨 요동을 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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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