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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97회 위나라를 토벌하려는 제갈 무후가 다시 표를 올리고, 조씨 군대를 격파하려는 강유가 밀서를 속여서 보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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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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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九十七回 討魏國武侯再上表 破曹兵薑維詐獻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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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위나라를 토벌하려는 제갈 무후가 다시 표를 올리고, 조씨 군대를 격파하려는 강유가 밀서를 속여서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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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蜀漢建興六年秋九月,魏都督曹休被東吳陸遜大破於石亭,車仗馬匹,軍資器械,並皆罄盡,休惶恐之甚,氣憂成病,到洛陽,疽發背而死。魏主曹睿敕令厚葬。司馬懿引兵還、 衆將接入問曰:“曹都督兵敗,即元帥之幹系,何故急回耶?”懿曰:“吾料諸葛亮知吾兵敗,必乘虛來取長安。倘隴西緊急,何人救之?吾故回耳。” 衆皆以爲懼怯,哂笑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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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촉한 건흥 6년 가을 9월에 위나라 도독 조휴가 동오의 육손에게 석정에서 크게 패하고, 수레와 마필, 군수 물자와 병기 따위를 모조리 잃었다. 조휴가 몹시 겁에 질리고 근심이 쌓여 병이 나더니, 낙양에 도착하여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위나라 군주 조예가 칙령을 내려, 그를 후하게 장사지냈다. 사마의가 병력을 이끌고 돌아오니, 장수들이 맞아들여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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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도독께서 패전한 것은 곧 원수의 책임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급하게 돌아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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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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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건대 제갈량이 아군의 패전을 안다면, 반드시 그 빈틈을 노려 장안을 공격하러 올 것이오. 만약 농서 지방에 긴급한 일이 벌어진다면, 누가 구할 수 있겠소? 이런 까닭에 내가 돌아왔을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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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모두 사마의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비웃으며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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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東吳遣使致書蜀中,請兵伐魏,並言大破曹休之事:一者顯自己威風,二者通和會之好。後主大喜,令人持書至漢中,報知孔明。時孔明兵強馬壯,糧草豐足,所用之物,一切完備,正要出師。聽知此信,即設宴大會諸將,計議出師。忽一陣大風,自東北角上而起,把庭前松樹吹折。 衆皆大驚。孔明就占一課,曰:“此風主損一大將!”諸將未信。正飲酒間,忽報鎮南將軍趙雲長子趙統、次子趙廣,來見丞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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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오에서 국서를 지닌 사자를 촉으로 보내어, 병력을 내어 위나라를 정벌하기를 요청하며, 아울러 동오가 조휴를 대파한 일도 이야기했다. 첫째는 자기의 위풍을 과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촉, 오 두 나라가 화해하여 우호 관계를 맺자는 것이었다. 후주 유선이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어, 서신을 가지고 한중으로 가서, 공명에게 알리게 했다. 이때 공명의 병사들과 말들은 강건하고, 군량은 풍족하며, 필요한 물자는 완비되어서, 마침 출병하려던 참이었다. 공명이 이런 소식을 듣자마자 곧 연회를 베풀어, 장수들을 크게 모아놓고 출병을 토의했다. 갑자기 한 바탕 거센 바람이 동북쪽에서 불어오더니, 뜰앞의 소나무를 꺾어버리니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공명이 바로 점을 한 번 치더니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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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람은 대장 한 사람을 잃을 징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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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수들이 아직 믿지 못했다. 한창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알리기를, 진남장군 조운의 장남 조통과 차남 조광이 승상을 찾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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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明大驚,擲杯於地曰:“子龍休矣!”二子入見,拜哭曰:“某父昨夜三更病重而死。”孔明跌足而哭曰:“子龍身故,國家損一棟梁,吾去一臂也!” 衆將無不揮涕。孔明令二子入成都面君報喪。後主聞雲死,放聲大哭曰“朕昔年幼,非子龍則死於亂軍之中矣!”即下詔追贈大將軍,諡封順平侯,敕葬於成都錦屏山之東;建立廟堂,四時享祭。後人有詩曰:“常山有虎將,智勇匹關張。漢水功勳在,當陽姓字彰。兩番扶幼主,一念答先皇。青史書忠烈,應流百世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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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크게 놀라서 술잔을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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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룡이 돌아가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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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두 아들이 들어와 울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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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친께서 어젯밤 3경(자정쯤)에 병환이 위중해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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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발을 구르며 소리내어 울면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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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룡이 세상을 뜨다니, 국가는 동량을 하나 잃었고, 나는 한 팔을 잃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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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수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공명이 두 아들에게 명하여, 성도로 들어가 임금을 만나 뵙고, 상을 알리게 했다. 후주가 조운의 죽음을 듣고, 목놓아 크게 울면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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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어렸을 때 자룡이 아니었다면, 난군 중에서 죽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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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즉시 조서를 내려 조운을 대장군으로 추증하고, 순평후의 시호를 내려 성도의 금병산 동쪽에 장사지내게 했다. 사당을 건립해서 사시사철 제사를 올리게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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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땅에 호랑이 같은 장수가 났으니, 지략과 용맹이 관우, 장비에 필적하였네. 한수에서 공훈을 세웠고, 당양에서 이름을 떨쳤네. 두 번이나 어린 주군을 구했고, 오로지 옛 임금에게 보답할 생각뿐이었네. 청사에 그 충성이 열렬함을 적어서, 백 대에 그 꽃다운 이름을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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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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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後主思念趙雲昔日之功,祭葬甚厚;封趙統爲虎賁中郎,趙廣爲牙門將,就令守墳。二人辭謝而去。忽近臣奏曰:“諸葛丞相將軍馬分撥已定,即日將出師伐魏。”後主問在朝諸臣,諸臣多言未可輕動。後主疑慮未決。忽奏丞相令楊儀齎出師表至。後主宣入,儀呈上表章。後主就禦案上拆視,其表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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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후주는 조운의 지난 시절 공로를 생각하여, 장례를 아주 후하게 지내주고 그 아들 조통을 호분중랑장으로, 조광을 아문장으로 봉하여 조운의 분묘를 지키라고 했다. 두 사람이 성은에 고마워하며 떠났다. 문득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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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 승상이 군마의 배치를 벌써 마치고 바로 위나라를 정벌하러 출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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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후주가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은 아직 가벼이 움직여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후주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데, 갑자기 아뢰기를, 승상령 양의가 출사표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후주가 불러들이라 하교하니, 양의가 출사표를 바쳤다. 후두가 탁자 위에서 뜯어 읽어보니, 그 표문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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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帝慮漢賊不兩立,王業不偏安,故托臣以討賊也。以先帝之明,量臣之才,故知臣伐賊,才弱敵強也。然不伐賊,王業亦亡。惟坐而待亡,孰與伐之?是故托臣而弗疑也。臣受命之日,寢不安席,食不甘味;思惟北征,宜先入南:故五月渡滬,深入不毛,並日而食。——臣非不自惜也,顧王業不可偏安於蜀都,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而議者謂爲非計。今賊適疲於西,又務於東,兵法“乘勞”:此進趨之時也。謹陳其事如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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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께서 한나라와 역적과는 양립할 수 없고, 왕업이 중원 밖 외진 곳에 머물 수 없음을 걱정하신 까닭에,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라 부탁하셨습니다. 선제께서 명철하심으로 신의 재주를 헤아려보시고, 신이 역적을 토벌하려 해도, 재주는 미약하고 적들은 강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면, 왕업도 망하는 것이니, 다만 앉은 채 망할 날만 기다린다면, 누구와 더불어 저들을 토벌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선제께서 저에게 맡기시며 주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신이 어명을 받은 날, 잠자리도 편안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몰랐습니다. 오로지 북쪽 정벌을 위해, 우선 남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5월에 노수를 건너고, 불모지에 깊숙히 들어가서, 하루 먹을 식사를 이틀에 나눠 먹었으나, 신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건대 왕업이 촉나라의 서울(성도)에 편안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위난을 무릅쓰더라도 선제 폐하의 유지를 받들어야지, 의논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적도들은 서쪽에서 지치고 동쪽에서도 힘들어, 병법에‘지친 틈을 노려라.’고 했으니, 이때야말로 서둘러 진격해야 할 때입니다. 이에 삼가 그 일을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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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帝明並日月,謀臣淵深,然涉險被創,危然後安;今陛下未及高帝,謀臣不如良、平,而欲以長策取勝,坐定天下,此臣之未解一也。劉繇、王朗,各據州郡,論安言計,動引聖人,群疑滿腹, 衆難塞胸;今歲不戰,明年不征,使孫策坐大,遂並江東,此臣之未解二也。曹操智計,殊絕於人,其用兵也,仿佛孫、吳,然困於南陽,險於烏巢,危於祁連,逼於黎陽,幾敗北山,殆死潼關,然後偽定一時耳;況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此臣之未解三也。曹操五攻昌霸不下,四越巢湖不成,任用李服而李服圖之,委任夏侯而夏侯敗亡,先帝每稱操爲能,猶有此失;況臣駑下,何能必勝,此臣之未解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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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유방) 황제께서는 해와 달과 같이 밝고, 참모들은 지략이 매우 깊었으나,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어서 위기에 처한 뒤에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고조 황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참모들은 장량과 진평과 같지 않은데도, 만전의 계책으로 승리를 거두려 하면서 가만히 앉은 채 천하를 평정하겠다니, 이것이 신이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첫 번째 일입니다. 유요와 왕랑(후한말의 양주자사와 회계태수)이 각 주를 점거하고 있었지만, 안정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하면서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였지만, 갖가지 의문이 마음속에 가득하고, 온갖 어려움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올해 싸우지 않고 내년에도 정벌에 나서지 않다가, 손책으로 하여금 편안히 세력을 키워서 결국 강동을 병탄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두 번째 일입니다. 조조는 지략에서 사람들을 크게 뛰어넘고, 그 용병은 손자와 오자에 방불했습니다. 그러나 남양에서 포위되고, 오소에서 위험을 겪고, 기련에서 위기에 처하고, 여양에서 핍박당하고, 북산에서 참패하고, 동관에서 거의 죽을 뻔한 뒤에야, 한때 천하를 평정한 듯했습니다. 하물며 신은 재주가 미약한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평정하려 하겠다면,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째 일입니다. 조조가 창패(후한 말기의 무장)를 다섯 차례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소호를 네 차례 넘어갔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복(동승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려 한 장군)을 임용했으나, 이복이 조조를 도모했습니다. 하후연에게 위임했으나 하후연은 패전하여 죽었습니다. 선제께서도 늘 조조를 유능하다고 칭찬하셨으나, 오히려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 하물며 신은 노둔하고 재능이 떨어지거늘 어찌 능히 반드시 이긴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네 번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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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臣到漢中,中間期年耳,然喪趙雲、陽群、馬玉、閻芝、丁立、白壽、劉郃、鄧銅等,及曲長屯將七十餘人,突將無前,賨叟、青羌,散騎武騎一千餘人,此皆數十年之內,所糾合四方之精銳,非一州之所有;若複數年,則損三分之二也。當何以圖敵,此臣之未解五也。今民窮兵疲,而事不可息;事不可息,則住與行,勞費正等;而不及今圖之,欲以一州之地,與賊持久,此臣之未解六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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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한중 땅으로 온 이래 겨우 한 해가 지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 같은 장수들과 아울러 곡장(군대편제 곡의 지휘관), 둔장(주둔 기지의 지휘관) 7십여 인을 잃었습니다. (남방 병사인) 돌장(돌격 장수), 무전(무적), 빈수(소수민족 부대), 청강(소수민족 부대), 산기(기율 기병), 무기(용감한 기병) 등 여러 부대의 장졸도 1천여 인을 잃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수십 년 동안에 걸쳐, 1개 주가 아니라 사방에서 규합한 정예 병력입니다. 다시 몇 년이 지나면 3분의 2를 잃을 텐데, 무엇으로 적들을 도모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다섯 번째 일입니다. 이제 백성은 궁핍하고 병졸은 지쳤지만, 그렇다고 쉴 수는 없는 형세입니다. 머물며 지키는 것과 싸우러 가는 것은 인력과 비용이 같습니다. 지금 도모하지 못하면서, 한 주(익주)의 땅으로써 적들과 지구전을 펴겠다니,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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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難平者,事也。昔先帝敗軍於楚,當此之時,曹操拊手,謂天下已定。然後先帝東連吳、越,西取巴、蜀,舉兵北征,夏侯授首,此操之失計,而漢事將成也。然後吳更違盟,關羽毀敗,秭歸蹉跌,曹丕稱帝,凡事如是,難可逆見。臣鞠躬盡瘁,死而後已;至於成敗利鈍,非臣之明所能逆睹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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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천하의) 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형주) 땅에서 패전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천하가 이미 평정된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 동쪽으로 오월(동오)과 연결하고, 서쪽으로 파촉을 취하여 병력을 일으켜 북쪽을 정벌하여 하후연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이것은 조조의 실책이니, 한나라를 중흥시키는 일이 곧 이뤄질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뒤에, 오나라가 맹약을 어겨서, 관우가 무너져 패전하고, 자귀(호북성 지명)에서 실패하니 조비가 황제를 칭했습니다. 무릇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신은 머리 숙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며,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출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성패와 순조로움과 어려움은 신이 능히 명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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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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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主覽表甚喜,即敕令孔明出師。孔明受命,起三十萬精兵,令魏延總督前部先鋒,徑奔陳倉道口而來。早有細作報入洛陽。司馬懿奏知魏主,大會文武商議。大將軍曹真出班奏曰:“臣昨守隴西,功微罪大,不勝惶恐。今乞引大軍往擒諸葛亮。臣近得一員大將,使六十斤大刀,騎千裏征宛馬,開兩石鐵胎弓,暗藏三個流星錘,百發百中,有萬夫不當之勇,乃隴西狄道人,姓王,名雙,字子全。臣保此人爲先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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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가 표를 읽고 나서 몹시 기뻐하며, 즉시 칙령을 내려 공명에게 출병을 명했다. 공명이 어명을 받들어, 3십만 정예군을 일으켜서, 위연에게 선봉 부대를 총지휘하게 하고, 곧장 진창 어귀의 길로 가도록 했다. 재빨리 세작이 낙양으로 들어가 보고하니, 사마의가 상주하여 위나라 군주에게 알리고, 문무 관료를 크게 불러 모아 상의했다. 대장군 조진이 반열에서 나와서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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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저번에 농서를 수비했으나, 공은 미약하고 죄는 큰지라, 황공한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바라옵건대, 대군을 이끌고 제갈량을 잡으러 가고 싶습니다. 신이 요사이 대장 한 사람을 얻었는데 6십 근 큰 칼을 쓰고,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서역의 명마를 타고, 2석(활 세기의 단위)짜리 철태궁(안을 쇠로 만든 강한 활)을 잡아당기며, 유성추(던지는 철퇴) 세 개를 숨겼다가 던지는데 백발백중이옵니다. 만 명의 사나이도 당하지 못할 용맹을 가졌습니다. 그는 바로 농서군 적도현 사람으로, 성은 왕이요 이름은 쌍이며 자는 자전이라 하옵니다. 신은 이 사람을 선봉으로 천거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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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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睿大喜,便召王雙上殿。視之,身長九尺,面黑睛黃,熊腰虎背。睿笑曰:“朕得此大將,有何慮哉!”遂賜錦袍金甲,封爲虎威將軍、前部大先鋒。曹真爲大都督。真謝恩出朝,遂引十五萬精兵,會合郭淮、張郃,分道守把隘口。卻說蜀兵前隊哨至陳倉,回報孔明,說:“陳倉口已築起一城,內有大將郝昭守把,深溝高壘,遍排鹿角,十分謹嚴;不如棄了此城,從太白嶺鳥道出祁山甚便。”孔明曰:“陳倉正北是街亭;必得此城,方可進兵。”命魏延引兵到城下,四面攻之。連日不能破。魏延複來告孔明,說城難打。孔明大怒,欲斬魏延。忽帳下一人告曰:“某雖無才,隨丞相多年,未嘗報效。願去陳倉城中,說郝昭來降,不用張弓只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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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곧 왕쌍을 전각 위로 불러 올렸다. 그를 보니, 신장이 9척이요 얼굴은 검고 눈동자는 누런데, 곰 같은 허리에 범 같은 등을 가졌다. 조예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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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이런 대장을 얻었으니 무엇을 걱정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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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곧 비단 전포와 황금 갑옷을 하사하여, 호위장군 전방 부대 선봉으로 삼았다. 조진은 대도독이 되었다. 조진이 성은에 감사드리고 조정을 나와서, 곧 십오만 정예병을 이끌고, 곽회, 장합과 회합하여, 길을 나눠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한편, 촉병 전초부대가 진창을 정찰한 뒤, 공명에게 돌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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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 어귀에 이미 성 하나를 쌓았고, 성안에는 대장 학소가 지키고 있는데, 해자는 깊고 보루는 높으며, 녹각(나무를 사슴뿔처럼 얽은 장애물)을 두루 배치하여, 아주 엄중히 방어하고 있습니다. 이 성은 버려두고 태백령 험준한 산길을 따라 기산으로 나가는 것이 아주 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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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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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 바로 북쪽이 가정이니, 반드시 이 성을 점령해야 바야흐로 진군할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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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위연에게 명하여 병력을 이끌고 성 아래 이르러 사방으로 공격하게 했다. 날마다 공격해도 깨뜨리지 못하여 위연이 되돌아와서, 공명에게 성을 격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위연을 참하려는데, 문득 막사 안에서 한 사람이 고하기를,
 
50
“제가 비록 재주가 없으나, 승상을 다년간 수행하며, 아직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진창성 안으로 들어가, 학소에게 귀순을 설득할 터이오니, 활을 당겨 화살 한 발을 쏠 필요 없사옵니다.”
 
51
했다.
 
 
52
衆視之,乃部曲靳祥也。孔明曰:“汝用何言以說之?”祥曰:“郝昭與某,同是隴西人氏,自幼交契。某今到彼,以利害說之,必來降矣。”孔明即令前去。靳祥驟馬徑到城下,叫曰:“郝伯道故人靳祥來見。”城上人報知郝昭。昭令開門放入,登城相見。昭問曰:“故人因何到此?”祥曰:“吾在西蜀孔明帳下,參贊軍機,待以上賓之禮。特令某來見公,有言相告。”昭勃然變色曰:“諸葛亮乃我國仇敵也!吾事魏,汝事蜀,各事其主,昔時爲昆仲,今時爲仇敵!汝再不必多言,便請出城!”
 
53
사람들이 보니, 그는 바로 부곡(군부대의 하나)을 맡고 있는 근상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54
“그대가 무슨 말로 설득하겠소?”
 
55
하니,
 
56
“학소는 저와 같이 농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사귀었습니다. 제가 이제 저곳으로 가서 이해득실로써 설득하면, 틀림없이 귀순하러 올 것입니다.”
 
57
했다. 공명이 즉시 가라고 명했다. 근상이 말을 몰아 곧바로 성문 아래 이르러 외치기를,
 
58
“학백도(학소)의 옛 친구 근상이 찾아왔소!”
 
59
하니, 성 위의 사람이 학소에게 알렸다. 학소가 성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니, 성을 올라가 만났다. 학소가 묻기를,
 
60
“옛 친구가 무슨 일로 이곳을 오셨소?”
 
61
하니, 근상이 말하기를,
 
62
“나는 서촉의 공명 막하에서 군사 업무를 보좌하는데, 상빈으로서 대우받고 있소. 특별히 내게 명하여 공을 찾아뵙게 했소. 공께 드릴 말씀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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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학소가 왈칵 낯빛을 고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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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우리나라의 원수요! 나는 위나라를 섬기고, 그대는 촉나라를 섬기며 각자 그 군주를 섬기는 것이오! 지난날 형과 아우였으나, 이제는 원수가 되었구려! 그대는 더 말할 것 없이 어서 성을 나가시오!”
 
65
했다.
 
 
66
靳祥又欲開言,郝昭已出敵樓上了。魏軍急催上馬,趕出城外。祥回頭視之,見昭倚定護心木欄杆。祥勒馬以鞭指之曰:“伯道賢弟,何太情薄耶?”昭曰:“魏國法度,兄所知也。吾受國恩,但有死而已,兄不必下說詞。早回見諸葛亮,教快來攻城,吾不懼也!”祥回告孔明曰:“郝昭未等某開言,便先阻卻。”孔明曰:“汝可再去見他,以利害說之。”祥又到城下,請郝昭相見。昭出到敵樓上。
 
67
근상이 다시 말을 꺼내려는데, 학소가 이미 망루 위로 나가버렸다. 위나라 병사들이 은상에게 급히 말을 타라고 재촉하여 성 밖까지 쫓아나왔다. 은상이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학소가 가슴을 보호하는 나무 난간에 기대어 선 것이 보였다. 은상이 말을 멈춰 세워,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68
“백도(학소) 아우님은 어찌 이렇게 인정이 없는가?”
 
69
하니, 학소가 말하기를,
 
70
“위나라 법도를 형도 아실 것이오. 내가 나라의 은혜를 입어, 다만 죽음으로써 갚을 뿐이오. 형께서 더 말씀하지 마시고, 빨리 제갈량에게 돌아가 어서 성을 치러 오라고 하시오. 나는 두렵지 않소!”
 
71
했다. 근상이 돌아가 공명에게 고하기를,
 
72
“학소가 제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제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73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74
“그대가 다시 가서, 이해득실로써 설득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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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근상이 다시 성 아래에 이르러, 학소에게 만나기를 청하니, 학소가 적루 위로 나왔다.
 
 
76
祥勒馬高叫曰:“伯道賢弟,聽吾忠言:汝據守一孤城,怎拒數十萬之 衆?今不早降,後悔無及!且不順大漢而事奸魏,抑何不知天命、不辨清濁乎?願伯道思之。”郝昭大怒,拈弓搭箭,指靳祥而喝曰:“吾前言已定,汝不必再言!可速退!吾不射汝!”靳祥回見孔明,具言郝昭如此光景。孔明大怒曰:“匹夫無禮太甚!豈欺吾無攻城之具耶?”隨叫土人問曰:“陳倉城中,有多少人馬?”土人告曰:“雖不知的數,約有三千人。”孔明笑曰:“量此小城,安能禦我!休等他救兵到,火速攻之!”
 
77
근상이 말을 멈춰 세우고 크게 외치기를,
 
78
“백도(학소) 아우님! 내 충언을 들어보시오! 그대가 한낱 고립된 성을 지킨들, 어찌 수십만 대군을 막겠소? 지금 어서 항복하지 않으면, 뒤늦게 뉘우쳐도 소용없소. 게다가 한나라를 따르지 않고, 간악한 위나라를 섬기다니, 어찌 천명을 모르고, 맑음과 흐림을 분별치 못하오? 바라건대 백도께서 잘 생각해 보시오!”
 
79
했다. 학소가 크게 노해, 활을 집어들어 화살을 메겨서 근상을 겨누며 꾸짖기를,
 
80
“나는 앞서 말한 대로다. 그대가 더 말하지 않고 물러가면, 나도 쏘지 않을 것이오!”
 
81
했다. 근상이 공명에게 돌아가, 학소의 이런 모양을 자세히 말했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82
“필부의 무례함이 너무 심하구나! 어찌 내게 공성 도구가 없는 줄 알고 업신여긴단 말이냐!”
 
83
하고, 원주민을 불러 묻기를,
 
84
“진창성 안에 인마가 얼마나 있는가?”
 
85
하니, 원주민이 고하기를,
 
86
“비록 그 숫자를 잘 모르겠으나, 대략 3천쯤 있을 것입니다.”
 
87
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88
“이까짓 작은 성으로 어찌 나를 막겠는가! 다른 구원 병력을 기다릴 것 없이, 빨리 공격하라!”
 
89
했다.
 
 
90
於是軍中起百乘雲梯,一乘上可立十數人,周圍用木板遮護。軍士各把短梯軟索,聽軍中擂鼓,一齊上城。郝昭在敵樓上,望見蜀兵裝起雲梯,四面而來,即令三千軍各執火箭,分布四面;待雲梯近城,一齊射之。孔明只道城中無備,故大造雲梯,令三軍鼓噪呐喊而進;不期城上火箭齊發,雲梯盡著,梯上軍士多被燒死,城上矢石如雨,蜀兵皆退。孔明大怒曰:“汝燒吾雲梯,吾卻用‘沖車’之法!”於是連夜安排下沖車。
 
91
이에 군중에서 1백 승(수레 등을 세는 단위)의 운제(공성용 사다리)를 동원했다. 운제 1승에 열몇 사람씩 타고, 주위를 나무판자로 방호했다. 군사들은 제각기 짧은 사다리와 가벼운 밧줄을 가지고, 군중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울리면 일제히 성을 올랐다. 학소는 망루 위에 있다가 촉병이 운제를 동원해서 사방에서 오는 것을 보고, 즉시 영을 내려 3천 군사가 제각기 불화살을 들고 사면에 나누어 섰다. 운제가 성벽에 접근하기를 기다려, 일제히 불화살을 쏘았다. 공명은 성중에 대비가 없음을 알고 일부러 운제를 크게 만들어 삼군에 명령하여 고함지르며 진군하게 했다가, 뜻밖에 성 위에서 불화살을 일제히 쏘니, 운제에 불이 붙어 사다리를 탔던 군사들이 많이 타 죽었다. 성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 오듯 쏟아지니 촉병들이 모두 물러났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92
“네가 내 운제를 불태웠으니 나는 충차의 방법을 쓰겠다.”
 
93
하고 이에 밤새 충차를 배치했다.
 
 
94
次日,又四面鼓嗓呐喊而進。郝昭急命運石鑿眼,用葛繩穿定飛打,沖車皆被打折。孔明又令人運土填城壕,教廖化引三千鍬軍,從夜間掘地道,暗入城去。郝昭又於城中掘重壕橫截之。如此晝夜相攻,二十餘日,無計可破。孔明正在營中憂悶,忽報:“東邊救兵到了,旗上書:‘魏先鋒大將王雙’。”孔明問曰:“誰可迎之?”魏延出曰:“某願往。”孔明曰:“汝乃先鋒大將,未可輕出。”又問:“誰敢迎之?”裨將謝雄應聲而出。孔明與三千軍去了。孔明又問曰:“誰敢再去?”裨將龔起應聲要去。孔明亦與三千兵去了。孔明恐城內郝昭引兵沖出,乃把人馬退二十裏下寨。
 
95
다음날 다시 사방에서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했다. 학소가 급히 명령하여, 돌을 운반하여 구멍을 뚫어서 칡 밧줄로 꿰어 휘둘러서 수레를 때리니, 충차가 모두 부딪혀 부서졌다. 공명이 다시 사람들에게 명령해서 흙을 날라 성 둘레 해자를 메우게 하고, 요화에게 지시해서 삽과 괭이를 든 군사 3천을 이끌고, 밤중에 땅굴을 파게 해서 성안으로 몰래 들어가려 했다. 학소가 다시 성안에 깊은 해자를 파서 가로로 (땅굴을) 잘랐다. 이렇게 밤낮으로 공격하여, 이십여 일이 지났지만 깨뜨릴 계책이 없었다. 공명이 진영 안에서 근심하고 있는데, 홀연 보고하기를,
 
96
“동쪽에서 구원병이 왔는데, 깃발 위에 크게 ‘위나라 선봉대장 왕쌍'이라고 썼습니다.”
 
97
했다. 공명이 묻기를,
 
98
“누가 그를 맞아 싸우겠소?”
 
99
하니, 위연이 말하기를,
 
100
“제가 가겠습니다.”
 
101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02
“그대는 선봉대장이니, 함부로 출전할 수 없소.”
 
103
하고 또 묻기를,
 
104
“누가 용감히 그를 맞겠소?”
 
105
하니, 비장 사웅이 그 소리에 응하며 나왔다. 공명이 3천 군사를 주어서 보냈다. 공명이 다시 묻기를,
 
106
“누가 또 용감히 가겠소?”
 
107
하니, 비장 공기가 그 소리에 맞춰 나왔다. 공명이 그에게도 3천 군사를 주어서 보냈다. 공명은 성안의 학소가 병력을 이끌고 출격할까 염려해서, 인마를 2십 리 물려서 영채를 세웠다.
 
 
108
卻說,謝雄引軍前行,正遇王雙;戰不三合,被雙一刀劈死。蜀兵敗走,雙隨後趕來。龔起接著,交馬只三合,亦被雙所斬。敗兵回報孔明。孔明大驚,忙令廖化、王平、張嶷三人出迎。兩陣對圓,張嶷出馬,王平、廖化壓住陣角。王雙縱馬來與張嶷交馬,數合不分勝負。雙詐敗便走,嶷隨後趕去。王平見張嶷中計,忙叫曰:“休趕!”嶷急回馬時,王雙流星錘早到,正中其背。巍伏鞍而走,雙回馬趕來。王平、廖化截住,救得張嶷回陣。王雙驅兵大殺一陣,蜀兵折傷甚多。巍吐血數口,回見孔明,說:“王雙英雄無敵;如今將二萬兵就陳倉城外下寨,四圍立起排柵,築起重城,深挖壕塹,守禦甚嚴。”
 
109
한편, 사웅이 군사를 이끌고 전진하여 왕쌍과 마주쳤다. 싸운 지 3합이 되지 않아서 왕쌍이 한칼로 (사웅을) 쪼개어 죽였다. 촉병이 패주하니, 왕쌍이 뒤따라 쫓아왔다. 공기가 맞이하여 교전한 지 겨우 3합에 역시 왕쌍이 (공기를) 참했다. 패잔병들이 공명에게 돌아가 알리니, 공명이 크게 놀라서, 황망히 요화, 왕평, 장의 세 사람에게 나가서 맞아 싸우게 했다. 양쪽 진영이 대치하자, 장의가 출마하고, 왕평과 요화가 좌우 진영 양쪽에 버티어 섰다. 왕쌍이 말을 몰아와서, 장의와 몇 합을 교전하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왕쌍이 지는 척 달아나자, 장의가 뒤따라 쫓았다. 왕평이 보니 장의가 꾀에 빠진 것이라, 바삐
 
110
“쫓지 말라!”
 
111
고 외쳤다. 장의가 급히 말머리를 돌리는데, 왕쌍이 던진 유성추가 어느새 날아와서 장의의 등에 명중했다. 장의가 말안장에 엎드린 채 달아나자, 왕쌍이 말머리를 돌려 뒤쫓았다. 왕평과 요화가 차단하고, 장의를 구해 진지로 돌아갔다. 왕쌍이 병력을 몰고 와서,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촉병 사상자가 아주 많았다. 장의가 수차례 피를 토하며, 공명에게 돌아가 이야기하기를,
 
112
“왕쌍이 영웅이라 맞설 수 없습니다. 지금 2만 병력이 진창성 밖에 진을 치고, 사방으로 방어용 나무 울타리를 세워서, 큰 성을 쌓아 올리고 해자를 깊게 파서, 아주 엄중하게 방어합니다.”
 
113
했다.
 
 
114
孔明見折二將,張嶷又被打傷,即喚薑維曰:“陳倉道口這條路不可行。別求何策?”維曰:“陳倉城池堅固,郝昭守禦甚密,又得王雙相助,實不可取。不若令一大將,依山傍水,下寨固守;再令良將守把要道,以防街亭之攻;卻統大軍去襲祁山,某卻如此如此用計,可捉曹真也。”孔明從其言,即令王平,李恢,引二千兵守街亭小路;魏延引一軍守陳倉口。馬岱爲先鋒,關興、張苞爲前後救應使,從小徑出斜穀望祁山進發。
 
115
두 장수를 잃은 데다 장의마저 부상을 입자, 공명이 즉시 강유를 불러 말하기를,
 
116
“진창 입구 저쪽 길로 나아갈 수가 없는데, 따로 무슨 계책을 구해야겠소?”
 
117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118
“진창성이 견고하고, 학소가 아주 굳게 방어합니다. 게다가 왕쌍이 도우니, 참으로 취할 수가 없습니다. 대장 한 사람에게 명해, 산과 물에 의지해서 영채를 세워 굳게 지키게 하고, 다시 재주 많은 장수로 하여금 길목을 지켜서 가정에서의 공격을 방어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편 대군을 거느리고 기산을 습격하여 제가 이러이러한 꾀를 쓰면 가히 조진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119
하니, 공명이 그 말을 따라, 즉시 왕평과 이회 두 사람에게 명하여, 2천 병력을 이끌고, 가정의 좁은 길을 지키게 했다. 위연도 한 무리 병사를 이끌고 진창 입구를 지키게 했다. 마대를 선봉으로, 관흥과 장포를 앞뒤로 구원하는 지휘관으로 삼아, 작은 지름길을 따라 사곡을 나와서 기산 쪽으로 출발했다.
 
 
120
卻說,曹真因思前番被司馬懿奪了功勞,因此到洛陽分調郭淮、孫禮東西守把;又聽的陳倉告急,已令王雙去救。聞知王雙斬將立功,大喜,乃令中護軍大將費耀,權攝前部總督,諸將各自守把隘口。忽報山穀中捉得細作來見。曹真令押入,跪於帳前。其人告曰:“小人不是奸細,有機密來見都督,誤被伏路軍捉來,乞退左右。”真乃教去其縛,左右暫退。其人曰:“小人乃薑伯約心腹人也。蒙本官遣送密書。”真曰:“書安在?”其人於貼肉衣內取出呈上。
 
121
한편, 조진은 지난번에 사마의에게 공로를 빼앗긴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낙양 어귀에 도착하자, 곽회와 손례에게 동쪽과 서쪽을 나눠 수비하도록 일렀다. 또한 진창이 위급함을 듣고, 이미 왕쌍에게 명하여 가서 구하게 하였는데, 왕쌍이 적장을 베어 공을 세운 것을 전해 들었다. 조진이 크게 기뻐하며, 중호군 대장 비요에게 명하여, 선두부대 총지휘를 대행하게 하고, 장수들에게 제각기 요충지를 지키도록 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산골짜기에서 세작을 잡아 왔다고 했다. 조진이 압송해 들여서 군막 앞에 무릎 꿇리게 했다. 그 사람이 고하기를,
 
122
“소인은 첩자가 아니오라, 기밀을 전하러 도독을 찾아오다가, 잘못되어 길에 매복한 군사에게 붙잡혀 온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좌우 사람들을 물려주십시오.”
 
123
했다. 이에 조진이 그 결박을 풀어주고, 좌우를 잠시 물리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124
“저는 바로 강백약(강유)의 심복으로, 본관(강유)이 저를 통해 밀서를 보내셨습니다.”
 
125
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126
“밀서는 어디에 있는가?”
 
127
하니, 그 사람이 품속에서 꺼내어 바쳤다.
 
 
128
真拆視曰:“罪將薑維百拜,書呈大都督曹麾下:維念世食魏祿,忝守邊城;叨竊厚恩,無門補報。昨日誤遭諸葛亮之計,陷身於巔崖之中。思念舊國,何日忘之!今幸蜀兵西出,諸葛亮甚不相疑。賴都督親提大兵而來:如遇敵人,可以詐敗;維當在後,以舉火爲號,先燒蜀人糧草,卻以大兵翻身掩之,則諸葛亮可擒也。非敢立功報國,實欲自贖前罪。倘蒙照察,速賜來命。”
 
129
조진이 뜯어서 읽어보니 (밀서에) 이르기를,
 
130
“죄를 지은 장수 강유가 백배사죄 드리오며, 조 대도독 휘하에 글을 바칩니다. 오로지 오랫동안 위나라 녹을 먹은 것만 생각하며, 치욕스럽게 성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두터운 은혜를 부끄럽게 입고, 보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제갈량의 꾀에 잘못 빠져, 높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옛 나라를 생각하며, 어찌 하루라도 잊겠습니까? 이제 다행히 촉병은 서쪽으로 출병하고, 제갈량은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독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오셔서 적군을 만나면, 지는 척하십시오. 제가 뒤에 머물다가 불을 피워올려 신호하고, 먼저 촉군의 군량과 사료를 태울 테니, 그때 도독께서 대군을 이끌고 몸을 돌려 습격하시면, 제갈량을 잡을 수 있습니다. 공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지난날의 죄를 씻으려 함입니다. 아무쪼록 잘 살펴주시고,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131
했다.
 
 
132
曹真看畢,大喜曰:“天使吾成功也!”遂重賞來人,便令回報,依期會合。真喚費耀商議曰:“今薑維暗獻密書,令吾如此如此。”耀曰:“諸葛亮多謀,薑維智廣,或者是諸葛亮所使,恐其中有詐。”真曰:“他原是魏人,不得已而降蜀,又何疑乎?”耀曰:“都督不可輕去,只守定本寨。某願引一軍接應薑維。如成功,盡歸都督;倘有奸計,某自支當。”
 
133
조진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34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는구나!”
 
135
하고, 찾아온 이를 크게 포상하고, 곧 돌아가 보고하게 하며, 기일을 맞춰 회합하기로 했다. 조진이 비요를 불러 상의하기를,
 
136
“이제 강유가 몰래 밀서를 바치며,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했소.”
 
137
하니, 비요가 말하기를,
 
138
“제갈량은 모략이 많고, 강유도 지략이 많습니다. 혹시 제갈량이 시킨 것이어서, 그 속임수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139
하니, 조진이 말하기를,
 
140
“그는 본래 위나라 사람이었으나 부득이하게 촉나라에 투항한 것이거늘 어찌 또 의심하겠소?”
 
141
했다. 비요가 말하기를,
 
142
“도독께서 가벼이 진군하지 마시고, 다만 본채를 지키고 계십시오. 바라건대 제가 1군을 이끌고 강유와 접응할 터이니, 성공한다면 도독께 모든 공이 돌아올 것입니다. 만약 간계에 빠지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143
했다.
 
 
144
真大喜,遂令費耀引五萬兵,望斜穀而進。行了兩三程,屯下軍馬,令人哨探。當日申時分,回報:“斜穀道中,有蜀兵來也。”耀忙催兵進。蜀兵未及交戰先退。耀引兵追之,蜀兵又來。方欲對陣,蜀兵又退:如此者三次,俄延至次日申時分。魏軍一日一夜,不曾敢歇,只恐蜀兵攻擊。方欲屯軍造飯,忽然四面喊聲大震,鼓角齊鳴,蜀兵漫山遍野而來。
 
145
조진이 크게 기뻐하며, 곧 비요에게 명하여 병력 5만을 이끌고, 사곡 쪽으로 진군하도록 했다. 두세 마장을 가서 군마를 멈춰 세우고,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했다. 그날 신시(오후 4시쯤) 무렵에 돌아와 보고하기를,
 
146
“사곡으로 가는 길로 촉병이 오고 있습니다.”
 
147
했다. 비요가 황급히 진군할 것을 재촉했다. 촉병이 미처 교전하기도 전에 달아나니, 비요가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했다. 촉병이 다시 와서, 막 대진하려는데, 촉병이 또 퇴각했다. 이렇게 세 차례를 되풀이했다. 다음날 신시까지 이어지니, 위나라 군사들이 하루 동안 밤낮으로 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로지 촉병의 공격을 두려워했다. 비로소 군사들이 자리잡고 밥을 하려는데, 홀연히 사방에서 함성이 요란하고,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촉병들이 산과 들을 뒤덮으며 몰려왔다.
 
 
148
門旗開處,閃出一輛四輪車,孔明端坐其中,令人請魏軍主將答話。耀縱馬而出,遙見孔明,心中暗喜,回顧左右曰:“如蜀兵掩至,便退後走。若見山後火起,卻回身殺去,自有兵來相應。”分付畢,躍馬出呼曰:“前者敗將,今何敢又來!”孔明曰:“喚汝曹真來答話!”耀罵曰:“曹都督乃金枝玉葉,安肯與反賊相見耶!”孔明大怒,把羽扇一招,左有馬岱,右有張嶷,兩路兵沖出。魏兵便退。行不到三十裏,望見蜀兵背後火起,喊聲不絕。費耀只道號火,便回身殺來。蜀兵齊退。耀提刀在前,只望喊處追趕。
 
149
진영 문의 깃발이 열리는 곳에, 사륜거 한 대가 나오는데, 공명이 그 위에 반듯이 앉아 있었다. 사람을 시켜 위나라 주장을 불러 대답할 것을 청했다. 비요가 말을 몰아 나오더니, 멀리 공명이 보이자,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고, 좌우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150
“촉병이 공격해 오면 바로 후퇴해 달아나라. 만약 산 뒤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몸을 돌려 공격하라. 나도 병력을 거느리고 돕겠다.”
 
151
했다. 분부를 마치고 비요가 말을 타고 나와 호통치기를,
 
152
“지난날의 패장이 지금 어찌 감히 다시 왔느냐!”
 
153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54
“너는 가서, 조진을 불러 직접 대답하게 해라!”
 
155
했다. 비요가 욕하기를,
 
156
“조 도독은 금지옥엽이시거늘, 어찌 기꺼이 너 따위 반적과 만나시겠냐!”
 
157
했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깃털 부채를 한번 흔들자, 왼쪽에서 마대가, 오른쪽에서 장의가, 양 갈래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위병들이 바로 퇴각했다. 3십 리를 못 가서, 멀리 바라보니, 촉병들 배후에서 불길이 치솟고,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비요가 다만 신호로 올리는 불인 줄 알고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촉병이 일제히 물러나니 비요가 칼을 들고 앞장서서 함성이 일어나는 곳을 향해 추격했다.
 
 
158
將次近火,山路中鼓角喧天、喊聲震地,兩軍殺出:左有關興,右有張苞。山上矢石如雨,往下射來。魏兵大敗。費耀知是中計,急退軍望山穀中而走,人馬困乏。背後關興引生力軍趕來,魏兵自相踐踏及落澗身死者,不知其數。耀逃命而走,正遇山坡口一彪軍,乃是薑維。耀大罵曰:“反賊無信!吾不幸誤中汝奸計也!”維笑曰:“吾欲擒曹真,誤賺汝矣!速下馬受降!”耀驟馬奪路,望山穀中而走。忽見穀口火光沖天,背後追兵又至。耀自刎身死,餘 衆盡降。孔明連夜驅兵,直出祁山前下寨,收住軍馬,重賞薑維。維曰:“某恨不得殺曹真也!”孔明亦曰:“可惜大計小用矣。”
 
159
장차 불이 가까워지는데, 산길 중간에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진동하고, 양쪽에서 군사들이 몰려나오는데, 왼쪽은 관흥이요 오른쪽은 장포였다. 산 위에서 화살과 돌을 빗발치듯 아래로 쏘아댔다. 위나라 군사들이 크게 패했다. 비요가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급히 군사들을 산골짜기 쪽으로 후퇴시키지만, 사람도 말도 지쳤다. 배후에서 관흥이 힘이 솟는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하니, 위나라 군사들이 서로 짓밟고 물에 떨어져 죽는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비요가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나다가, 산기슭 입구에서 한 무리 군사와 마주치니, 바로 강유였다. 비요가 크게 욕하기를,
 
160
“반적 놈은 믿을 수가 없구나! 내가 불행히 네놈의 간사한 꾀에 빠졌구나! ”
 
161
하니,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162
“내가 조진을 잡으려 했는데, 잘못돼서 네놈이 걸려들었구나!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163
했다. 비요가 말을 몰아 길을 뚫고 산골짜기 쪽으로 달아나지만, 갑자기 산골짜기 안에서도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배후에서 추격병이 몰려왔다. 비요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나머지 무리는 모두 항복했다. 공명이 밤새 병력을 몰아서 곧장 기산 앞에 이르러 진영을 세우고, 군마를 거두어 주둔하고, 강유에게 큰 상을 내렸다. 강유가 말하기를,
 
164
“조진을 죽이지 못해 한스럽습니다.”
 
165
하니, 공명도 말하기를,
 
166
“큰 계책을 작은 데다 쓴 것이 아깝소.”
 
167
했다.
 
 
168
卻說曹真聽知折了費耀,悔之不及,遂與郭淮商議退兵之策。於是孫禮、辛毗星夜具表申奏魏主,言蜀兵又出祁山,曹真損兵折將,勢甚危急。睿大驚,即召司馬懿入內曰:“曹真損兵折將,蜀兵又出祁山。卿有何策,可以退之?”懿曰:“臣已有退諸葛亮之計。不用魏軍揚武耀威,蜀兵自然走矣。”正是:已見子丹無勝術,全憑仲達有良謀。
 
169
한편, 조진은 비요가 죽은 것을 듣고 후회해 마지않더니, 곧 병사를 후퇴시킬 계책을 곽회와 상의했다. 이에 손례와 신비가 한밤중에 위나라 군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기를, 촉병이 다시 기산으로 나와, 조진이 병사와 장수를 잃고 형세가 몹시 위급하다고 했다. 조예가 크게 놀라, 즉시 사마의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170
“조진이 병사와 장수를 잃고, 촉병이 다시 기산으로 나왔다는데, 경에게 물리칠 계책이 있소?”
 
171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172
“신에게 이미 제갈량을 물리칠 계책이 있사옵니다. 굳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촉병은 자연히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173
했다. 이야말로, 자단(조진)이 승산이 없는 것을 보고, 중달(사마의)에게 좋은 계책이 있다고 매달리네.
 
 
174
未知其計如何,且看下文分解。
 
175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97회 위나라를 토벌하려는 제갈 무후가 다시 표를 올리고, 조씨 군대를 격파하려는 강유가 밀서를 속여서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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