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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17회 등사재(등애)가 은밀히 음평을 돌파하고, 제갈첨이 면죽에서 전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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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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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一十七回 鄧士載偷度陰平 諸葛瞻戰死綿竹
2
제117회 등사재(등애)가 은밀히 음평을 돌파하고, 제갈첨이 면죽에서 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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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輔國大將軍董厥,聞魏兵十餘路入境,乃引二萬兵守住劍閣;當日望塵頭大起,疑是魏兵,急引軍把住關口。董厥自臨軍前視之,乃薑維、廖化、張翼也。厥大喜,接入關上,禮畢,哭訴後主黃皓之事。維曰:“公勿憂慮。若有維在,必不容魏來吞蜀也。且守劍閣,徐圖退敵之計。”厥曰:“此關雖然可守,爭奈成都無人;倘爲敵人所襲,大勢瓦解矣。”維曰:“成都山險地峻,非可易取,不必憂也。”正言間,忽報諸葛緒領兵殺至關下,維大怒,急引五千兵殺下關來,直撞入魏陣中,左沖右突,殺得諸葛緒大敗而走,退數十裏下寨,魏軍死者無數。蜀兵搶了許多馬匹器械,維收兵回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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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국대장군 동궐은 위나라 군사가 십여 개 방면으로 국경을 침입하자 군사 2만을 이끌고 검각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먼지가 크게 일자 위나라 군사가 아닐까 의심하여 급히 군사를 이끌고 관문 입구를 막아섰다. 동궐이 직접 군사 앞으로 와서 살피니, 바로 강유, 요화, 장익이었다. 동궐이 크게 기뻐하며 관문 위로 영접해 들였다. 인사를 마친 뒤 소리내어 울며 후주와 황호의 일을 고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5
“공께서는 우려치 마시오. 이 강유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위나라가 촉나라를 병탄하는 일을 용납지 않을 것이오. 우선 검각을 지키며 적군을 격퇴할 계책을 천천히 도모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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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동궐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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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은 비록 지킬 수 있더라도 성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적군이 습격하면 대세가 와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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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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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산이 험하고 땅이 가팔라서 쉽게 취할 수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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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말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보고하기를, 제갈서가 군사를 거느리고 관문 아래로 몰려왔다고 했다. 강유가 크게 노해 급히 군사 5천을 이끌고 관문 아래로 달려가서 위나라 군중으로 쳐들어가 좌충우돌하여 제갈서를 크게 무찌르니, (위나라 군이) 대패하여 수십 리를 달아나서 영채를 세웠다. 위나라 군의 전사자가 무수하고, 촉나라 군이 많은 마필과 군 장비를 빼앗았다. 강유가 군사를 거두어 관문으로 돌아갔다.
 
 
11
卻說,鍾會離劍閣二十裏下寨,諸葛緒自來伏罪。會怒曰:“吾令汝守把陰平橋頭,以斷薑維歸路,如何失了!今又不得吾令,擅自進兵,以致此敗!”緒曰:“維詭計多端,詐取雍州;緒恐雍州有失,引兵去救,維乘機走脫;緒因趕至關下,不想又爲所敗。”會大怒,叱令斬之。監軍衛瓘曰:“緒雖有罪,乃鄧征西所督之人;不爭將軍殺之,恐傷和氣。”會曰:“吾奉天子明詔、晉公鈞命,特來伐蜀。便是鄧艾有罪,亦當斬之!” 衆皆力勸。會乃將諸葛緒用檻車載赴洛陽,任晉公發落;隨將緒所領之兵,收在部下調遣。
 
12
한편, 종회가 검각에서 2십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는데, 제갈서가 스스로 찾아와 죄를 청했다. 종회가 노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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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에게 음평교 어귀를 지켜서 강유의 귀로를 차단하라 했거늘 어찌 빼앗겼단 말이오. 게다가 이제 또다시 내 군령을 어기고 함부로 진군해 이런 패배를 당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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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제갈서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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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속임수를 많이 써서 옹주를 치는 척했습니다. 저는 옹주를 잃을까 두려워 군사를 이끌고 구하러 갔습니다. 강유가 그 틈을 타서 탈주하기에 제가 관문 아래까지 추격했지만 뜻밖에 다시 패전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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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종회가 크게 노해 그를 처형하라고 소리치니 감군(군사 감독관) 위관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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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서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등정서(정서장군 등애)의 수하 사람이니, 말하지 않고 장군께서 그를 죽이면, 화목한 기운을 깰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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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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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자의 밝은 조서와 진공(사마소)의 엄명을 받들어서 특별히 촉나라를 정벌하러 왔소. 등애가 곧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역시 마땅히 참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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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람들이 모두 힘써 권하자, 종회가 제갈서를 함거에 태워 낙양으로 보내어, 진공 사마소의 결정에 맡겼다. 곧 제갈서가 가느렸던 병력을 자신의 휘하로 거두어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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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人報與鄧艾。艾大怒曰:“吾與汝官品一般,吾久鎮邊疆,於國多勞,汝安敢妄自尊大耶!”子鄧忠勸曰:“小不忍則亂大謀,父親若與他不睦,必誤國家大事。望且容忍之。”艾從其言。然畢竟心中懷怒,乃引十數騎來見鍾會。會聞艾至,便問左右:“艾引多少軍來?”左右答曰:“只有十數騎。”會乃令帳上帳下列武士數百人。艾下馬入見。會接入帳禮畢。艾見軍容甚肅,心中不安,乃以言挑之曰:“將軍得了漢中,乃朝廷之大幸也,可定策早取劍閣。”會曰:“將軍明見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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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를 등애에게 알리자 등애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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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와 관직의 품계가 같지만, 나는 오랫동안 변경에 주둔해서 국가를 위해 노고가 많거늘, 그가 어찌 감히 내 자존심을 이토록 무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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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들 등충이 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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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책을 어지럽힌다고 했습니다. 부친께서 만약 그와 화목지 못하면 반드시 국가 대사를 그르칠 것이니 바라건대 우선 용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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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등애가 그 말을 따랐다. 그러나 마음속에 분노를 품은 채, 수십 기를 이끌고 종회를 만나러 갔다. 종회가 등애가 왔다는 말을 듣고, 좌우의 측근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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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가 군사를 얼마나 데리고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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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좌우가 대답하기를,
 
29
“다만 수십 기 뿐입니다.”
 
30
했다. 종회가 이에 군막 안에 가득히 무사 수백 인을 세워놓았다. 등애가 말에서 내려 들어와 만나니, 종회가 장막 안으로 영접해서 인사를 마쳤다. 등애가 보니 군사들이 몹시 엄숙하여 마음속이 불안해서 말로써 건드려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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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이 한중을 점령했으니 조정의 큰 행운이오. 어서 계책을 정해 조속히 검각을 점령해야겠소.”
 
32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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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견해는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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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35
艾再三推稱無能。會固問之。艾答曰:“以愚意度之,可引一軍從陰平小路出漢中德陽亭,用奇兵徑取成都,薑維必撤兵來救,將軍乘虛就取劍閣,可獲全功。”會大喜曰:“將軍此計甚妙!可即引兵去。吾在此專候捷音!”二人飲酒相別。會回本帳與諸將曰:“人皆謂鄧艾有能。今日觀之,乃庸才耳!” 衆問其故。會曰:“陰平小路,皆高山峻嶺,若蜀以百餘人守其險要,斷其歸路,則鄧艾之兵皆餓死矣。吾只以正道而行,何愁蜀地不破乎!”遂置雲梯炮架,只打劍閣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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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가 거듭 스스로 무능하다고 사양하지만, 종회가 고집스럽게 물으니, 등애가 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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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자면,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음평의 지름길에서 한중의 덕양정으로 나가서, 기습병으로 곧바로 성도를 취해야 하오. 강유가 틀림없이 병력을 철수해 구하러 갈 것이니, 그 틈에 장군이 검각을 치면 완전한 공을 거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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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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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이 계책은 절묘하오! 즉시 군사를 이끌고 가시오. 나는 여기에서 승전 소식을 기다리겠소.”
 
40
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작별했다. 종회가 군막으로 돌아가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41
“사람들 모두가 등애를 유능하다고 말하지만, 오늘 살펴보니 그저 범용한 인재일 뿐이오!”
 
42
했다. 여러 장수가 그 까닭을 물으니 종회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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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평의 지름길은 모두 고산준령이라 만약에 촉나라가 백여 명으로 그 험한 요충지를 수비하고 귀로를 끊는다면, 등애의 군사는 모두가 굶어 죽게 되오. 나는 오로지 정도로 갈 것이니, 어찌 촉나라를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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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운제(공성용 사다리)와 포가(포 받침대)를 가져다가 오로지 검각관을 공격했다.
 
 
45
卻說,鄧艾出轅門上馬,回顧從者曰:“鍾會待吾若何?”從者曰:“觀其辭色,甚不以將軍之言爲然,但以口強應而已。”艾笑曰:“彼料我不能取成都,我偏欲取之!”回到本寨,師纂、鄧忠一班將士接問曰:“今日與鍾鎮西有何高論?”艾曰:“吾以實心告彼,彼以庸才視我。彼今得漢中,以爲莫大之功;若非吾屯遝中絆住薑維,彼安能成功耶!吾今若取了成都,勝取漢中矣!”當夜下令,盡拔寨望陰平小路進兵,離劍閣七百裏下寨,有人報鍾會,說:“鄧艾要去取成都了。”會笑艾不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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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등애가 영채의 출입문을 나와 말에 오르더니 수행원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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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회가 나를 어떻게 대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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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수행원이 말하기를,
 
49
“그의 말과 얼굴빛을 살펴보니, 장군의 말씀을 진심으로 옳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단지 입으로 억지로 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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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등애가 웃으며 말하기를,
 
51
“그는 내가 성도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기어코 점령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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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본진으로 돌아가니 사찬과 등충 등 한 무리 장수들이 등애를 맞이해 묻기를,
 
53
“오늘 진서장군과 더불어 무슨 깊은 의논을 나누셨습니까?”
 
54
하니, 등애가 말하기를,
 
55
“내가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나를 평범한 인재로 무시했소. 그가 지금 한중을 빼앗은 것을 막대한 공으로 여기고 있으나, 만약 내가 답중에서 강유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공을 이뤘겠소! 내가 이제 성도를 점령해서, 한중을 점령한 그 공을 넘어서겠소!”
 
56
했다. 그날 밤 영을 내려서 영채를 모조리 거두어, 음평의 지름길로 진군하여 검각에서 7백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누군가 종회에게 이를 알리기를,
 
57
“등애가 성도를 취하려 합니다.”
 
58
하니, 종회가 등애를 지혜롭지 못하다고 비웃었다.
 
 
59
卻說鄧艾一面修密書遣使馳報司馬昭,一面聚諸將於帳下問曰:“吾今乘虛去取成都,與汝等立功名於不朽,汝等肯從乎?”諸將應曰:“願遵軍令,萬死不辭!”艾乃先令子鄧忠引五千精兵,不穿衣甲,各執斧鑿器具,凡遇峻危之處,鑿山開路,搭造橋閣,以便軍行。艾選兵三萬,各帶幹糧繩索進發。約行百餘裏,選下三千兵,就彼紥寨;又行百餘裏,又選三千兵下寨。是年十月自陰平進兵,至於巔崖峽穀之中,凡二十餘日,行七百餘裏,皆是無人之地。
 
60
한편, 등애는 밀서를 써서 사마소에게 급히 알리는 한편, 여러 장수를 군막 안으로 불러모아 묻기를,
 
61
“내가 이제 빈틈을 노려 성도를 취하여 그대들과 더불어 불후의 공명을 세우고자 하는데 그대들이 기꺼이 따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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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러 장수가 응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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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군령을 받들어, 만 번 죽더라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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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등애가 먼저 아들 등충에게 정예병 5천 명을 이끌고, 갑옷을 입지 않은 채로 각자 도끼와 끌 따위의 도구를 지니고, 험준한 지형을 만날 때마다 산을 뚫어 길을 내며, 교각(개천이나 골짜기에 놓인 다리)을 만들어, 행군을 편하게 했다. 등애가 군사 3만을 뽑아서 각자 건조 식량과 밧줄을 휴대하고 출발케 했다. 약 1백 리 남짓을 행군하여 군사 3천을 뽑아서 그곳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게 했다. 다시 1백 리 남짓 행군하여 또 군사 3천을 뽑아 영채를 세웠다. 이해 시월 음평에서 진군해서 높은 절벽과 험한 골짜기까지 무릇 2십여 일에 7백여 리를 행군했는데 모두 무인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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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兵沿途下了數寨,只剩下二千人馬。前至一嶺,名摩天嶺,馬不堪行,艾步行上嶺,正見鄧忠與開路壯士盡皆哭泣。艾問其故。忠告曰:“此嶺西皆是峻壁巔崖,不能開鑿,虛廢前勞,因此哭泣。”艾曰:“吾軍到此,已行了七百餘裏,過此便是江油,豈可複退?”乃喚諸軍曰:“不入虎穴,焉得虎子?吾與汝等來到此地,若得成功,富貴共之。” 衆皆應曰:“願從將軍之命。”
 
66
위나라 군사가 길을 따라 여러 곳에 영채를 세워서, 남은 군사는 단지 2천 명이었다. 앞으로 어느 고개에 이르니, 이름이 마천령이었다. 말이 갈 수가 없어, 등애가 걸어서 고개에 올랐다. 그런데 등충과 길을 내던 군사들이 모두 소리내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등애가 그 까닭을 묻자 등충이 고하기를,
 
67
“이 고개의 서쪽 뒤는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라 길을 뚫을 수 없어서 앞의 노고가 소용없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68
했다. 등애가 말하기를,
 
69
“아군이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7백 리를 행군하여, 이곳만 지나면 바로 강유인데 어찌 다시 물러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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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에 여러 군사를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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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겠느냐? 나와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만약 성공하면 부귀를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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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람들이 모두 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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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컨대,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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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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艾令先將軍器攛將下去。艾取氈自裹其身,先滾下去。副將有氈衫者裹身滾下,無氈衫者各用繩索束腰,攀木掛樹,魚貫而進。鄧艾、鄧忠,並二千軍,及開山壯士,皆度了摩天嶺。方才整頓衣甲器械而行,忽見道傍有一石碣,上刻:“丞相諸葛武侯題”。其文雲:“二火初興,有人越此。二士爭衡,不久自死。”艾觀訖大驚,慌忙對碣再拜曰:“武侯真神人也!艾不能以師事之,惜哉!”後人有詩曰:“陰平峻嶺與天齊,玄鶴徘徊尚怯飛。鄧艾裹氈從此下,誰知諸葛有先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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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가 앞장서서 군장비를 던져버리고, 모포로 몸을 감싸서 먼저 굴러 내려갔다. 부장들도 모포를 가진 사람들은 몸을 감싸 굴러 내려가고, 모포가 없는 사람들은 밧줄로 허리를 묶어 나무를 잡고 매달려서 마치 물고기들을 줄로 꿰듯이 나아갔다. 등애와 등충, 아울러 2천 명의 산길을 뚫은 장사들이 모두 마천령을 넘었다. 그제서야 갑옷과 무기를 정돈하여 행군하다가, 갑자기 길가에서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비석 위에 ‘승상 제갈무후가 적었다.”
 
77
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78
“두 개의 불이 처음 일어날 때 (당시 촉의 연호이던 염흥(炎興) 원년)에 누군가 이곳을 넘으리라. 두 장수가 다투다가, 머지않아 스스로 죽으리라.”
 
79
했다. 등애가 읽고 나서 크게 놀라, 황망히 비석을 향해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80
“무후는 참으로 신령 같은 사람이구나! 내가 스승으로 모시지 못한 것이 애석하구나!”
 
81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82
“음평의 높은 고개는 하늘과 가지런한데, 검은 학도 떠돌다가 겁먹고 날아가네. 등애가 모포를 감고 이곳을 내려가지만, 제갈공명의 선견지명을 누가 알겠는가.”
 
83
했다.
 
 
84
卻說,鄧艾暗度陰平,引兵行時,又見一個大空寨。左右告曰:“聞武侯在日,曾撥一千兵守此險隘。今蜀主劉禪廢之。”艾嗟呀不已,乃謂 衆人曰:“吾等有來路而無歸路矣!前江油城中,糧食足備:汝等前進可活,後退即死,須並力攻之。” 衆皆應曰:“願死戰!”於是鄧艾步行,引二千餘人,星夜倍道來搶江油城。卻說江油城守將馬邈,聞東川已失,雖爲准備,只是提防大路;又仗著薑維全師守住劍閣關,遂將軍情不以爲重。當日操練人馬回家,與妻李氏擁爐飲酒。其妻問曰:“屢聞邊情甚急,將軍全無憂色,何也?”邈曰:“大事自有薑伯約掌握,幹我甚事?”其妻曰:“雖然如此,將軍所守城池,不爲不重。”
 
85
한편, 등애가 몰래 음평을 지나며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텅 빈 커다란 영채를 보았다. 좌우에서 고하기를,
 
86
“듣자니, 제갈 무후가 살아 있을 때, 일찍이 군사 1천 명을 뽑아 이 험준한 관문을 지키게 했으나, 근래에 촉나라 임금 유선이 폐했습니다.”
 
87
했다. 등애가 감탄하기를 마지않으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88
“우리가 오는 길은 있으나 돌아갈 길은 없소. 앞의 강유성 안에 양식이 넉넉히 있으니, 그대들이 전진하면 살 것이나 후퇴하면 곧 죽을 것이오. 반드시 힘을 모아 공격하시오.”
 
89
하니, 사람들 모두 응답하기를,
 
90
“바라건대 죽을 각오로 싸우겠습니다!”
 
91
했다. 이에 등애가 걸어가며 2천여 명을 이끌고, 그날 밤 길을 재촉해 강유성을 치러 갔다. 한편, 강유성을 지키는 장수는 마막이었다. 동천을 이미 잃은 것을 듣고, 비록 준비를 하지만, 단지 큰길을 막을 뿐이었다. 또한 마막은 강유가 전군으로 검각의 관문을 지키는 것만 의지헤서 군사 정세를 엄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날 인마를 조련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 아내 이씨와 더불어 화롯가에서 술을 마셨다. 그 아내가 묻기를, "변경의 정세가 심히 위급하다고 여러 번을 들었는데, 장군께서는 아무 걱정하는 기색이 없으니 무슨 까닭이시오?"하니, 마막이 말하기를,
 
92
“큰일은 원래 강백약(강유)이 장악하고 있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겠소?" 했다. 그 아내가 말하기를,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께서 이곳 성을 지키는 소임을 받았으니 가볍게 여기지 마시오." 했다.
 
 
93
邈曰:“天子聽信黃皓,溺於酒色,吾料禍不遠矣。魏兵若到,降之爲上,何必慮哉?”其妻大怒,唾邈面曰:“汝爲男子,先懷不忠不義之心,枉受國家爵祿,吾有何面目與汝相見耶!”馬邈羞慚無語。忽家人慌入報曰:“魏將鄧艾不知從何而來,引二千餘人,一擁而入城矣!”邈大驚,慌出納降,拜伏於公堂之下,泣告曰:“某有心歸降久矣。今願招城中居民,及本部人馬,盡降將軍。”艾准其降。遂收江油軍馬於部下調遣,即用馬邈爲向導官。忽報馬邈夫人自縊身死。艾問其故,邈以實告。艾感其賢,令厚禮葬之,親往致祭。魏人聞者,無不嗟歎。後人有詩贊曰:“後主昏迷漢祚顛,天差鄧艾取西川。可憐巴蜀多名將,不及江油李氏賢。”
 
94
마막이 말하기를, "천자께서 황호의 말만 믿고 주색에 빠졌으니 재앙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오. 위나라 군사가 오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인데 어찌 반드시 걱정하겠소?" 하니, 그 아내가 크게 노해 마막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당신이 사내가 돼서 먼저 불충 불의한 마음을 품은 채 국가의 벼슬과 봉급을 헛되이 받다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을 보겠소!" 했다. 마막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갑자기 집안사람이 황급히 들어와 알리기를,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겠지만, 위나라 장수 등애가 군사 2천 명을 이끌고 성안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하니, 마막이 크게 놀라 황급히 나가서 투항했다. (마막이) 관청 아래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고하기를, "제가 투항할 마음을 품은 지 오래입니다. 이제 바라건대 성안의 백성들과 제 휘하의 인마들을 불러 모아 모두 장군께 항복하겠습니다." 했다. 등애가 항복을 받아들여서 강유성의 군마를 거둬들여서 배치하고, 마막을 향도관(길잡이 관리)으로 삼았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마막의 부인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했다. 등애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마막이 사실대로 고했다. 등애가 그 부인이 어진 것에 감동하여, 두터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친히 가서 제사를 올렸다. 위나라 사람들이 듣고서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탄하기를,
 
95
“후주가 혼미해 한나라가 쓰러지고, 하늘이 등애를 보내 서천을 점령했네. 가련하구나, 파촉에 명장들이 많다지만, 강유성의 이씨 부인보다 못하구나!”
 
96
했다.
 
 
97
鄧艾取了江油,遂接陰平小路諸軍,皆到江油取齊,徑來攻涪城。部將田續曰:“我軍涉險而來,甚是勞頓,且當休養數日,然後進兵。”艾大怒曰:“兵貴神速,汝敢亂我軍心耶!”喝令左右推出斬之。 衆將苦告方免。艾自驅兵至涪城。城內官吏軍民疑從天降,盡皆投降。蜀人飛報入成都。後主聞知,慌召黃皓問之。皓奏曰:“此詐傳耳。神人必不肯誤陛下也。”後主又宣師婆問時,卻不知何處去了。此時遠近告急表文,一似雪片,往來使者,聯絡不絕。
 
98
등애가 강유성을 취한 뒤, 곧 음평의 지름길로 온 군사들을 맞아들였다. 군사들이 모두 강유성에 이르러 합류하고 곧바로 부성을 공격하러 갔다. 부장 전속이 말하기를,
 
99
“우리 군사들이 험한 길을 넘어온지라 몹시 피로합니다. 일단 며칠 쉬면서 힘을 기른 후에 진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등애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100
“군사 작전에는 귀신 같이 빠른 것이 귀중하거늘 네가 감히 우리의 군심을 어지럽히느냐!" 하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그를 끌어내 참하라고 소리쳤다. 여러 장수가 간곡히 말리자 그제야 살려주었다. 등애가 스스로 군사를 몰아 부성에 이르렀다. 성안의 관리, 군사, 백성들은 (군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 모두 나와서 항복했다. 촉나라 사람들이 성도로 들어가 급보를 전하니, 후주가 이를 듣고 황망히 황호를 불러 묻었다. 황호가 아뢰기를, "이것은 거짓 전갈입니다. 신령 같은 무당이 결코 폐하를 그르칠 리가 없습니다." 했다, 후주가 다시 여자 무당을 부르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멀고 가까운 곳에서 급보를 전하는 표문들이 마치 눈송이처럼 날아들고, 사자가 끊임없이 왕래했다.
 
 
101
後主設朝計議,多官面面相覷,並無一言。郤正出班奏曰:“事已急矣!陛下可宣武侯之子商議退兵之策。”原來武侯之子諸葛瞻,字思遠。其母黃氏,即黃承彥之女也。母貌甚陋,而有奇才:上通天文,下察地理;凡韜略遁甲諸書,無所不曉。武侯在南陽時,聞其賢,求以爲室。武侯之學,夫人多所贊助焉。及武侯死後,夫人尋逝,臨終遺教,惟以忠孝勉其子瞻。瞻自幼聰敏,尚後主女,爲駙馬都尉。後襲父武鄉侯之爵。景耀四年,遷行軍護衛將軍。時爲黃皓用事,故托病不出。
 
102
후주가 조회를 열어 토의하려 하자, 많은 관료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극정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사세가 이미 급박하오니, 폐하께서 무후(제갈공명)의 아들에게 하교하시어 적병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하소서." 했다. 원래, 무후의 아들 제갈첨은 자가 사원이고 그 모친 황 씨는 황승언의 딸이었다. 모친은 몹시 못생겼지만 비범한 재주를 지녀서,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필 수 있었다. 무릇 육도삼략(강태공과 황석공의 병법)과 둔갑(은신 변신술) 등 여러 서적을 깨우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무후가 남양에 있을 때 그 훌륭함을 듣고 아내로 맞아들였다. 무후의 학문도 부인이 도운 바가 많았다. 무후의 사후에 부인도 곧 죽었는데 임종 시에 가르침을 남겨서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제갈첨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후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부마도위(임금의 사위)가 되었다. 그 뒤 부친이 가졌던 무향후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경요 4년에 행군호위장군이 됐으나 이때 황호가 권력을 잡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103
當下後主從郤正之言,即時連發三詔,召瞻至殿下。後主泣訴曰:“鄧艾兵已屯涪城,成都危矣。卿看先君之面,救朕之命!”瞻亦泣奏曰:“臣父子蒙先帝厚恩、陛下殊遇,雖肝腦塗地,不能補報。願陛下盡發成都之兵,與臣領去決一死戰。”後主即撥成都兵將七萬與瞻。瞻辭了後主,整頓軍馬,聚集諸將問曰:“誰敢爲先鋒?”言未訖,一少年將出曰:“父親既掌大權,兒願爲先鋒。” 衆視之,乃瞻長子諸葛尚也。尚時年一十九歲。博覽兵書。多習武藝。瞻大喜,遂命尚爲先鋒。是日,大軍離了成都,來迎魏兵。
 
104
그 자리에서 후주가 극정의 말을 따라, 즉시 잇달아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제갈첨을 궁전으로 불렀다. 후주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를,
 
105
“등애의 군사가 이미 부성에 주둔했으니 성도가 위태롭게 됐소. 경이 선군(돌아가신 부친)의 얼굴을 봐서라도 짐의 목숨을 구해주오!" 하니, 제갈첨도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106
“신의 부자가 선제(유현덕)의 두터운 은혜와 폐하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니, 비록 저의 간과 뇌를 땅바닥에 뿌리는 한이 있어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성도의 모든 병력을 뽑아서 신에게 주시면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죽음을 각오한 일전을 벌이겠습니다." 했다. 후주가 즉시 성도의 병력 7만을 뽑아 제갈첨에게 주었다. 제갈첨이 후주를 작별하고 군마를 정돈하며 여러 장수들을 모아 묻기를,
 
107
“누가 용감히 선봉이 되겠소?" 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소년 장수가 나서며 말하기를,
 
108
“부친께서 대권을 잡으셨으니 소자가 선봉을 맡고 싶습니다." 했다. 사람들이 보니 바로 제갈첨의 장자 제갈상이었다. 제갈상은 이때 나이가 열아홉 살인데, 병법서를 두루 읽고 무예를 많이 익혔다. 제갈첨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제갈상을 선봉으로 삼았다. 이날 대군이 성도를 떠나 위나라 군사를 맞아 싸우러 갔다.
 
 
109
卻說,鄧艾得馬邈獻地理圖一本,備寫涪城至成都三百六十裏山川道路,闊狹險峻,一一分明。艾看畢,大驚曰:“若只守涪城,倘被蜀人據住前山,何能成功耶?如遷延日久,薑維兵到,我軍危矣。”速喚師纂並子鄧忠,分付曰:“汝等可引一軍,星夜徑去綿竹,以拒蜀兵。吾隨後便至。切不可怠緩。若縱他先據了險要,決斬汝首!”師、鄧二人引兵將至綿竹,早遇蜀兵。兩軍各布成陣。師、鄧二人勒馬於門旗下,只見蜀兵列成八陣。三冬鼓罷,門旗兩分,數十員將簇擁一輛四輪車,車上端坐一人:綸巾羽扇,鶴氅方裾。車傍展開一面黃旗,上書:‘漢丞相諸葛武侯’。諕得師、鄧二人汗流遍身,回顧軍士曰:“原來孔明尚在,我等休矣!”
 
110
한편, 등애는 마막이 바친 지도를 한 권 얻었는데 거기에는 부성에서 성도까지 360리의 산천과 도로의 넓고 좁고 험준함이 하나하나 분명했다. 등애가 보고 나서 크게 놀라 말하기를,
 
111
“내가 부성을 지키고만 있는데, 만약 촉나라 군사가 앞산에 진을 치고 막는다면 어찌 성공하겠는가? 여기서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강유의 병력이 온다면 아군이 위태로울 것이다." 하고, 급히 사찬과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하기를,
 
112
“너희가 1군을 이끌고 오늘 밤에 면죽으로 달려가서 촉나라 군사를 막아라. 내가 뒤따라갈 것이니 절대로 태만하게 하지 마라. 만일 남에게 험한 요충지를 먼저 빼앗기면 너희를 참수할 것이니라!" 했다.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면죽에 곧 닿을 즈음에 촉나라 군사와 마주쳤다. 양군이 각각 포진하자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문기 아래에 말을 멈춰 세우고 바라보는데, 촉나라 군사가 팔진을 펼쳤다. 세 번 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문기(병영 문의 기)가 양옆으로 열리고, 수십 명의 장수가 사륜거 한 대를 빽빽이 에워쌌는데 수레 위에 단정히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쥐었으며 몸에 학창의를 입었는데 옷자락이 반듯했다. 수레 옆에 누런 깃발을 세우고 그 위에 ‘한나라 승상 제갈 무후’라고 적었다.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놀라서 온몸에 땀을 흘리며 고개 돌려 군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113
“제갈공명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 우리는 이제 끝이구나!" 했다.
 
 
114
急勒兵回時,蜀兵掩殺將來,魏兵大敗而走。蜀兵掩殺二十餘裏,遇見鄧艾援兵接應。兩家各自收兵。艾升帳而坐,喚師纂、鄧忠責之曰:“汝二人不戰而退,何也?”忠曰:“但見蜀陣中諸葛孔明領兵,因此奔還。”艾怒曰:“縱使孔明更生,我何懼哉!汝等輕退,以致於敗,宜速斬以正軍法!” 衆皆苦勸,艾方息怒。令人哨探,回說孔明之子諸葛瞻爲大將,瞻之子諸葛尚爲先鋒。——車上坐者乃木刻孔明遺像也。
 
115
급히 군사를 되돌리려는데, 촉나라 군사가 덮치니 위나라 군이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촉나라 군사가 2십여 리를 추격하다가 등애가 이끄는 구원병과 마주쳤다. 양쪽이 각각 병력을 거두었다. 등애가 군막 안에 앉아서 사찬과 등충을 불러 꾸짖기를,
 
116
“너희 두 사람이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다니 무슨 까닭이냐?”
 
117
하니, 등충이 말하기를,
 
118
“촉나라 진중에서 제갈공명이 군사를 지휘하는 것이 보여서, 이로 인해 물러나 돌아온 것입니다.”
 
119
했다. 등애가 노해 말하기를,
 
120
“비록 공명이 다시 살아난들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느냐! 너희들이 경솔하게 물러나 패하게 되었으니 빨리 목을 베어 군법을 바로 세워야 마땅하겠다!”
 
121
했다. 사람들 모두 간곡히 권하니 등애가 그제서야 노여움을 삭혔다. 사람들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말하기를,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 대장이고,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이 선봉이며, 수레 위에 앉았던 것은 바로 나무로 깎아 만든 공명의 조각상이라고 했다.
 
 
122
艾聞之,謂師纂、鄧忠曰:“成敗之機,在此一舉。汝二人再不取勝,必當斬首!”師、鄧二人又引一萬兵來戰。諸葛尚匹馬單槍,抖擻精神,戰退二人。諸葛瞻指揮兩掖兵沖出,直撞入魏陣中,左沖右突,往來殺有數十番,魏兵大敗,死者不計其數。師纂、鄧忠中傷而逃。瞻驅士馬隨後掩殺二十餘裏,紥營相拒。師纂、鄧忠回見鄧艾,艾見二人俱傷,未便加責,乃與 衆將商議曰:“蜀有諸葛瞻善繼父志,兩番殺吾萬餘人馬,今若不速破,後必爲禍。”監軍丘本曰:“何不作一書以誘之?”
 
123
등애가 이를 듣고, 사찬과 등충에게 말하기를,
 
124
“승패의 기회는 이번 전투에 달렸다. 너희 두 사람이 또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반드시 목을 베겠다!" 하니,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다시 군사 1만을 이끌고 싸우러 갔다. 제갈상이 홀로 말을 몰고 창을 쥔 채 정신을 모아 두 사람을 격퇴했다. 제갈첨이 양옆의 군사를 지휘하여 위나라 진중으로 돌입해 좌충우돌하며 수십 차례 오가니, 위나라 군사가 대패하여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사찬과 등충이 부상을 입고 달아났다. 제갈첨이 군사를 몰아 2십여 리를 추격해 영채를 세워 대치했다. 사찬과 등충이 돌아와 등애를 만나니, 등애가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은 것을 보고 더 꾸짖지 못하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상의하기를,
 
125
“촉나라에서 제갈첨이 부친의 뜻을 잘 계승하여, 두 번에 걸쳐 우리의 1만여 인마를 죽였소. 이제 만약 속히 격파하지 못하면 뒤에 반드시 화근이 될 것이오!”
 
126
하니, 감군 구본이 말하기를,
 
127
“어찌 서신을 써서 보내 그를 유인하지 않으십니까?”
 
128
했다.
 
 
129
艾從其言,遂作書一封,遣使送人蜀寨。守門將引至帳下,呈上其書。瞻拆封視之。書曰:“征西將軍鄧艾,致書於行軍護衛將軍諸葛思遠麾下:切觀近代賢才,未有如公之尊父也。昔自出茅廬,一言已分三國,掃平荊、益,遂成霸業,古今鮮有及者;後六出祁山,非其智力不足,乃天數耳。今後主昏弱,王氣已終,艾奉天子之命,以重兵伐蜀,已皆得其地矣。成都危在旦夕,公何不應天順人,仗義來歸?艾當表公爲琅琊王,以光耀祖宗,決不虛言。幸存照鑒。”
 
130
등애가 그 말을 따라 서신 1봉을 써서 사자를 촉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수문장이 사자를 이끌고 군막으로 들어가 그 서신을 바치니, 제갈첨이 뜯어서 읽었다. 서신에 이르기를,
 
131
“정서장군 등애가 행군호위장군 제갈사원(제갈첨) 휘하에 글을 보내오. 근대의 뛰어난 인재를 살펴보건대 공의 존부(아버지)만 한 분이 아직 없소. 지난날 초가집에서 나온 이래, 한마디 말로 삼국을 나누었고, 형주와 익주를 평정하여 마침내 패업을 이루었소. 고금을 통틀어 그분만 한 분이 드물었소. 뒤에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갔으나 그 지혜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정한 운수 때문이었소. 지금 후주가 어리석고 나약한데다 제왕의 기운이 이미 끝났으므로 내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강한 군대를 이끌고 촉나라를 정벌하여 이미 그 땅을 모두 얻었소. 성도의 위급함이 단석(아침저녁, 짧은 기간)에 달렸는데 공께서 어찌 천명에 응하고 민심을 따라 나에게 와서 귀순하지 않으시오? 내가 마땅히 천자께 표를 올려 공을 낭야왕으로 삼아 선조를 빛내게 해줄 것이니, 이는 결코 허언이 아니오. 부디 밝게 살피시기 바라오.”
 
132
했다.
 
 
133
瞻看畢,勃然大怒,扯碎其書,叱武士立斬來使,令從者持首級回魏營見鄧艾。艾大怒,即欲出戰。丘本諫曰:“將軍不可輕出,當用奇兵勝之。”艾從其言,遂令天水太守王頎、隴西太守牽弘,伏兩軍於後,艾自引兵而來。此時諸葛瞻正欲搦戰,忽報鄧艾自引兵到。瞻大怒,即引兵出,徑殺入魏陣中。鄧艾敗走,瞻隨後掩殺將來。忽然兩下伏兵殺出。蜀兵大敗,退入綿竹。艾令圍之。於是魏兵一齊呐喊,將綿竹圍的鐵桶相似。
 
134
제갈첨이 읽고 나서 버럭 크게 화를 내며 서신을 찢어버리고 무사에게 소리쳐서 사자를 그 자리에서 참했다. 사자를 수행한 사람에게 사자의 목을 가지고 위나라 영채로 돌아가 등애에게 전하라 했다. 등애가 크게 노해 즉시 출전하려는데 구본이 간하기를,
 
135
“장군께서 성급히 나갈 것이 아니라 기습 군사를 써서 이겨야 합니다.”
 
136
하니, 등애가 그 말에 따라 천수 태수 왕기와 농서 태수 견홍에게 군사를 이끌고 후방에 매복하라고 했다. 등애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갔다. 이때 제갈첨도 싸움을 걸고자 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등애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 하자, 제갈첨이 크게 노하여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위나라 진중으로 쳐들어갔다. 등애가 패주하자 제갈첨이 추격하여 덮치려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복병이 튀어나와 촉나라 군이 크게 패해 면죽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등애가 포위를 명하자 위나라 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면죽성을 철통처럼 에워쌌다.
 
 
137
諸葛瞻在城中,見事勢已迫,乃令彭和齎書殺出,往東吳求救。和至東吳,見了吳主孫休,呈上告急之書。吳主看罷,與群臣計議曰:“既蜀中危急,孤豈可坐視不救。”即令老將丁奉爲主帥,丁封、孫異爲副將,率兵五萬,前往救蜀。丁奉領旨出師,分撥丁封、孫異引兵二萬向沔中而進,自率兵三萬向壽春而進:分兵三路來援。
 
138
제갈첨이 성안에서 사세가 이미 긴박함을 보고, 팽화에게 명하여 서신을 가지고 탈출하여 동오로 가서 구원을 청하게 했다. 팽화가 동오에 이르러 오나라 임금 손휴를 만나, 촉나라의 위급을 고하는 서신을 바쳤다. 오나라 임금이 읽고 나서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하기를, "촉나라가 위급한데 내가 어찌 좌시하며 구원하지 않겠소?" 하고, 즉시 노장 정봉(丁奉)을 주장으로, 정봉(丁封)과 손이를 부장으로 삼아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촉나라를 구원하러 가게 했다. 정봉(丁奉)이 교지를 받들어 출전하며 정봉(丁封)과 손이에게 군사 2만을 나눠 주어 면중으로 진격하라 하고, 자신은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수춘으로 진군하며 세 방면으로 군사를 나눠 구원했다.
 
 
139
卻說,諸葛瞻見救兵不至,謂 衆將曰:“久守非良圖。”遂留子尚與尚書張遵守城,瞻自披掛上馬,引三軍大開三門殺出。鄧艾見兵出,便撤兵退。瞻奮力追殺,忽然一聲炮響,四面兵合,把瞻困在垓心。瞻引兵左沖右突,殺死數百人。艾令 衆軍放箭射之,蜀兵四散。瞻中箭落馬,乃大呼曰:“吾力竭矣,當以一死報國!”遂拔劍自刎而死。
 
140
한편, 제갈첨은 구원병이 오지 않자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141
“오래 지키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오.”
 
142
하고, 마침내 아들 제갈상과 상서 장준을 남겨 성을 지키라 하고, 스스로 무장하고 말에 올라 3군을 이끌고 3개 성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갔다. 등애가 촉나라 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군사를 거둬 물러났다. 제갈첨이 힘을 내어 추격하는데 갑자기 한 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사방에서 군사가 몰려나와 제갈첨을 겹겹이 포위했다. 제갈첨이 군사를 이끌고 좌충우돌하며 수백 명을 죽였다. 등애가 병사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하니, 촉나라 군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갈첨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며 크게 소리치기를,
 
143
“나의 힘이 다했구나!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겠다!" 하고, 이에 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144
其子諸葛尚在城上,見父死於軍中,勃然大怒,遂披掛上馬。張遵諫曰:“小將軍勿得輕出。”尚歎曰:“吾父子祖孫,荷國厚恩,今父既死於敵,我何用生爲!”遂策馬殺出,死於陣中。後人有詩贊瞻、尚父子曰:“不是忠臣獨少謀,蒼天有意絕炎劉。當年諸葛留嘉胤,節義真堪繼武侯。”鄧艾憐其忠,將父子合葬。乘虛攻打綿竹。張遵、黃崇、李球三人,各引一軍殺出。蜀兵寡,魏兵 衆,三人亦皆戰死。艾因此得了綿竹。勞軍已畢,遂來取成都。正是:試觀後主臨危日,無異劉璋受逼時。
 
145
그 아들 제갈상이 성 위에서 아버지가 전사하는 것을 보고, 벌컥 크게 노하여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랐다. 장준이 간하기를,
 
146
“작은 장군은 절대 경솔히 나가지 마시오." 하니, 제갈상이 탄식하기를, "우리 부자와 할아버지와 손자는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소. 이제 부친께서 적진에서 죽었는데 내가 살아 무엇하겠소!" 하고, 마침내 말을 채찍질해서 돌격하여 진중에서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를 찬양하기를,
 
147
“충신에게 지모만 모자랐던 것이 아니라, 하늘이 유씨의 한나라를 멸망시킬 뜻이 가졌음이라. 그해 제갈공명의 훌륭한 자손들이 있어, 절의를 지켜 제갈무후를 훌륭하게 계승했구나.”
 
148
했다. 등애가 그들의 충성을 가련하게 여겨 그들 부자를 합장하고, 빈틈을 타서 면죽을 공격하니, 장준, 황숭, 이구 세 사람이 각각 1군을 이끌고 몰려나왔다. 촉나라 군사는 적고 위나라 군사는 많아서 세 사람도 모두 전사했다. 등애가 이로써 면죽을 점령했다. 군사들을 위로한 뒤 곧 성도를 치러 갔다. 이야말로, 후주에게 위기가 닥친 날을 보면, 지난날 유장이 핍박받던 때와 다르지 않네.
 
 
149
未知成都如何守禦,且看下文分解。
 
150
성도를 어떻게 지킬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17회 등사재(등애)가 은밀히 음평을 돌파하고, 제갈첨이 면죽에서 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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