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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2회 도공조(도겸)가 서주를 세번 양도하고 조맹덕(조조)이 여포와 크게 싸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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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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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十二回 陶恭祖三讓徐州 曹孟德大戰呂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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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도공조(도겸)가 서주를 세번 양도하고 조맹덕(조조)이 여포와 크게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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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操正慌走間,正南上一彪軍到,乃夏侯惇引軍來救援,截住呂布大戰。鬥到黃昏時分,大雨如注,各自引軍分散。操回寨,重賞典韋,加爲領軍都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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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황망히 달아나는 사이에 정남쪽에서 한 무리 군사가 당도하니, 바로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와서 여포를 가로막고 크게 싸웠다. 황혼 무렵까지 싸움을 계속하다가 큰 비가 쏟아지자 각자 군사를 이끌고 흩어졌다. 조조가 진지로 돌아와 전위를 크게 포상하고 영군도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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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呂布到寨,與陳宮商議。宮曰:“濮陽城中有富戶田氏,家僮千百,爲一郡之巨室;可令彼密使人往操寨中下書,言‘呂溫侯殘暴不仁,民心大怨。今欲移兵黎陽,止有高順在城內。可連夜進兵,我爲內應’。操若來,誘之入城,四門放火,外設伏兵。曹操雖有經天緯地之才,到此安能得脫也?”呂布從其計,密諭田氏使人徑到操寨。操因新敗,正在躊躇,忽報田氏人到,呈上密書 云:“呂布已往黎陽,城中空虛。萬望速來,當爲內應。城上插白旗,大書‘義’字,便是暗號。”操大喜曰:“天使吾得濮陽也!”重賞來人,一面收拾起兵。劉曄曰:“布雖無謀,陳宮多計。只恐其中有詐,不可不防。明公欲去,當分三軍爲三隊:兩隊伏城外接應,一隊入城,方可。”操從其言,分軍三隊,來至濮陽城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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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포가 영채에 이르러 진궁과 상의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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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양성 안에 부호 전씨가 있는데 종이 천백 명에 한 고을의 큰 가문입니다. 그 사람이 은밀히 사람을 조조의 진지로 보내어 서찰에 ‘온후 여포가 잔폭하고 어질지 못하여 민심이 크게 원망하므로 (그들이) 이제 여양으로 병력을 이동하려 합니다. 고순이 혼자 성 안에 머물 뿐이니, 밤중에 진격하면 제가 내응하겠습니다.’라고 쓰게 하십시오. 조조가 온다면 입성하도록 꾀어 사방의 성문에 방화하고 밖에는 복병을 두십시오. 조조가 비록 경천위지의 재주를 가졌다고 한들 여기에 이르고서야 어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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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여포가 그 계책에 따라 은밀히 전씨에게 사람을 조조 진지로 보내라고 했다. 조조가 방금 패하여 주저하고 있는데 문득 전씨가 사람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가 바친 밀서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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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이미 여양으로 가서 성중이 공허합니다. 만백성이 어서 오시기만 바라며 오시면 마땅히 내응하겠습니다. 성 위에 백기를 꽂고 크게 ‘의’자를 써서 암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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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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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게 복양을 주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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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찾아온 사자를 크게 포상하고, 한편으로 병사를 수습하여 출동하려 했다. 유엽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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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비록 꾀가 없으나 진궁은 꾀가 많습니다. 그 중에 속임수가 있을까 두려우니 대비해야 합니다. 명공께서 가시겠다면 삼군을 3대로 나눠 2대는 성 밖에서 접응하고 1대만 입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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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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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從其言,分軍三隊,來至濮陽城下。操先往觀之,見城上遍豎旗幡,西門角上,有一“義”字白旗,心中暗喜。是日午牌,城門開處,兩員將引軍出戰:前軍侯成,後軍高順。操即使典韋出馬,直取侯成。侯成抵敵不過,回馬望城中走。韋趕到吊橋邊,高順亦攔擋不住,都退入城中去了。數內有軍人乘勢混過陣來見操,說是田氏之使,呈上密書。約 云:“今夜初更時分,城上鳴鑼爲號,便可進兵。某當獻門。”操撥夏侯惇引軍在左,曹洪引軍在右,自己引夏侯淵、李典、樂進、典韋四將,率兵入城。李典曰:“主公且在城外,容某等先入城去。”操喝曰:“我不自往,誰肯向前!”遂當先領兵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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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그 말에 따라 군을 3대로 나누어 복양성 아래에 이르렀다. 조조가 먼저 가서 살펴보니 성 위에 두루 깃발을 꽂았는데 서문 위에 ‘의’자가 적힌 백기가 하나 있어 내심 기뻐했다. 이날 정오에 성문이 열린 곳에서 두 장수가 군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전군은 후성이고 후군은 고순이다. 조조가 즉시 전위를 출동시켜 곧바로 후성에게 달려들게 하였다. 후성이 대적하지 못하고 말을 돌려 성 안으로 달아난다. 전위가 쫓아 적교(들어올리는 다리) 가에 이르니 고순도 또한 막아내지 못하고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찌할까) 헤아리는 가운데 어떤 군인이 혼란한 틈을 타서 군진을 넘어와 조조를 만나 전씨의 사신이라고 한다. 밀서를 바치는데 대략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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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초경 무렵에 성 위에서 징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바로 진격하십시오. 제가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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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조조가 하후돈은 왼쪽에서 군사를 이끌고 조홍은 오른쪽에서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 네 장수를 이끌고 군사를 인솔하여 입성하였다. 이전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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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께서는 성 밖에 계시고 저희가 먼저 입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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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조가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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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소 가지 않으면 누가 기꺼이 앞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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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마침내 (조조가) 선두에서 병사를 거느리고 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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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約初更,月光未上。只聽得西門上吹蠃殼聲,喊聲忽起,門上火把燎亂,城門大開,吊橋放落。曹操爭先拍馬而入。直到州衙,路上不見一人,操知是計,忙撥回馬,大叫:“退兵!”州衙中一聲炮響,四門烈火,轟天而起;金鼓齊鳴,喊聲如江翻海沸。東巷內轉出張遼,西巷內轉出臧霸,夾攻掩殺。操走北門,道傍轉出郝萌、曹性,又殺一陣。操急走南門,高順、侯成攔住。典韋怒目咬牙,沖殺出去。高順、侯成倒走出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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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초경 쯤이지만 달빛은 아직 비추지 않았다. 다만 서문 위에서 소라고둥을 부는 소리와 딱딱이 소리, 함성이 갑자기 일어나고 문 위에 횃불이 어지러이 비추는데 성문이 크게 열리고 적교가 내려졌다. 조조가 앞다퉈 말을 몰고 들어갔다. 바로 복양성 관아에 이르니 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조가 이것이 계략인 걸 깨닫고 황망히 말을 돌리며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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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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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관아 안에서 호포 한 발이 터지더니 사방의 문에서 맹렬한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징소리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면서 강이 뒤집어지고 바다가 끓는 듯이 함성이 일어났다. 동쪽 거리에서 장요가 돌아나오고 서쪽 거리에서 장패가 돌아나와 협공하여 쳐들어왔다. 조조가 북문으로 달아나지만 길 옆에서 학맹과 조성이 돌아나와 다시 한바탕 무찌른다. 조조가 급히 남문으로 달아나니 고순과 후성이 막아섰다. 전위가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악물고 돌격하니 고순과 후성이 거꾸로 성 밖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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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韋殺到吊橋,回頭不見了曹操,翻身複殺入城來,門下撞著李典。典韋問:“主公何在?”典曰:“吾亦尋不見。”韋曰:“汝在城外催救軍,我入去尋主公。”李典去了。典韋殺入城中,尋覓不見;再殺出城壕邊,撞著樂進。進曰:“主公何在?”韋曰:“我往複兩遭:尋覓不見。”進曰:“同殺入去救主!”兩人到門邊,城上火炮滾下,樂進馬不能入。典韋冒煙突火,又殺入去,到處尋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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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가 적교까지 쇄도하여 고개를 돌리니 조조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돌려 다시 성 안으로 급히 들어가다가 문 아래에서 이전과 마주쳤다. 전위가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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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은 어디에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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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이전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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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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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전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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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성 밖에서 어서 군을 구하시오. 내가 들어가서 주공을 찾아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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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이전은 가버렸다. 전위가 성 안으로 뛰어들어 조조를 찾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성 밖으로 나와 해자 가에서 악진과 마주쳤다. 악진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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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은 어디에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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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전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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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번이나 오가며 찾았으나 보이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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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악진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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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들어가서 주공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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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두 사람이 문 앞으로 가니, 성 위에서 불덩이가 굴러 떨어지므로 악진이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없어 전위가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뚫고 돌입하여 가는 곳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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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曹操見典韋殺出去了,四下裏人馬截來,不得出南門;再轉北門,火光裏正撞見呂布挺戟躍馬而來。操以手掩面,加鞭縱馬竟過。呂布從後拍馬趕來,將戟於操盔上一擊,問曰:“曹操何在?”操反指曰:“前面騎黃馬者是他。”呂布聽說,棄了曹操,縱馬向前追趕。曹操撥轉馬頭,望東門而走,正逢典韋。韋曹操,殺條血路,到城門邊,火焰甚盛,城上推下柴草,遍地都是火,韋用戟撥開,飛馬冒煙突火先出。曹操隨後亦出。方到門道邊,城門上崩下一條火梁來,正打著曹操戰馬後胯,那馬撲地倒了。操用手托梁推放地上,手臂須發,盡被燒傷。典韋回馬來救,恰好夏侯淵亦到。兩個同救起曹操,突火而出。操乘淵馬,典韋殺條大路而走。直混戰到天明,操方回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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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조는 전위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보았지만 사방에서 인마가 가로막자 남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북문으로 몸을 돌리는데, 불빛 속에서 여포가 극을 들고 말을 달려 오는 것을 보았다. 조조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채찍질을 해서 말을 몰아 여포 곁을 지나갔다. 여포가 말을 몰고 따라와 극으로 조조의 투구를 한 번 치며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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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어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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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조가 반대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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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누런 말을 탄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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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여포가 그 말을 듣고 조조를 놔두고 말을 몰아 앞으로 추격했다. 조조가 말 머리를 돌려 동문으로 달아나다가 바로 전위를 만났다. 전위가 조조를 옹호하며 죽을 힘을 다해 혈로를 찾아 성문 가에 이르니 화염이 극성하고 성 아래로 장작과 건초가 쏟아져 온통 불바다다. 전위가 극을 휘둘러 길을 열고 나는듯이 말을 달려 연기를 무릅쓰고 불을 뚫으며 앞장서 나갔다. 조조가 뒤따라 나왔다. 막 성문 길가에 이르니 성문 위에서 불 붙은 대들보 하나가 무너져내려 조조가 탄 말의 뒷다리 사타구니에 맞아 말이 엎어진다. 조조가 손으로 대들보를 땅으로 밀어 냈지만 손이고 팔이고 수염이고 머리카락이고 모조리 화상을 입었다. 전위가 말을 돌려와서 구하는데 마침 하후연도 도착했다. 두 사람이 함께 조조를 구해내어 불을 뚫고 나갔다. 조조가 하우연의 말을 타고 전위가 크게 길을 열어 달아났다. 혼전 중에 날이 밝아서야 조조가 진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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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將拜伏問安,操仰面笑曰:“誤中匹夫之計,吾必當報之!”郭嘉曰:“計可速發。”操曰:“今只將計就計:詐言我被火傷,已經身死。布必引兵來攻。我伏兵於馬陵山中,候其兵半渡而擊之,布可擒矣。”嘉曰:“真良策也!”於是令軍士掛孝發喪,詐言操死。早有人來濮陽報呂布,說曹操被火燒傷肢體,到寨身死。布隨點起軍馬,殺奔馬陵山來。將到操寨,一聲鼓響,伏兵四起。呂布死戰得脫,折了好些人馬;敗回濮陽,堅守不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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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수가 절하며 문안하자 조조가 얼굴을 들어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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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부의 계책에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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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졌소. 내가 반드시 갚아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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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곽가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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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책을 빨리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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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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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만 장계취계(저편의 계략을 이용하여 이편의 계략을 씀)뿐이오. 내가 화상을 입어 이미 죽었다고 속여서 말하면, 여포가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할 것이오. 내가 마릉산 속에 복병한 뒤 적병이 반쯤 지나기를 기다려 공격한다면 여포를 잡을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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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곽가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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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계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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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이에 군사에게 상복을 입혀서 발상하고 조조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금방 누군가 복양으로 가서 여포에게 보고하되, 조조가 온몸에 화상을 입어 진지로 돌아와 죽었다고 했다. 여포가 곧 군마를 일으켜 마릉산으로 달려갔다. 조조의 진지에 이르자 한 번 북소리가 울리면서 복병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왔다. 여포가 죽을 힘을 다해 싸워서 탈출하지만 허다한 인마를 잃고 패하여 복양으로 돌아가서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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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年蝗蟲忽起,食盡禾稻。關東一境,每穀一斛,直錢五十貫,人民相食。曹操因軍中糧盡,引兵回鄄城暫住。呂布亦引兵出屯山陽就食。因此二處權且罷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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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 황충(메뚜기)이 갑자기 창궐하여 벼를 모조리 갉아먹었다. 관동 일대에서 곡식 한 곡(10 말) 값이 5십 관이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조조는 군대의 양식이 바닥나자 군사를 이끌고 견성에 잠시 머물렀다. 여포도 병력을 이끌고 산양에 주둔하여 양식을 구했다. 이로 인해 두 진영 모두 당분간 싸움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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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陶謙在徐州,時年已六十三歲,忽然染病,看看沉重,請糜竺、陳登議事。竺曰:“曹兵之去,止爲呂布襲兗州故也。今因歲荒罷兵,來春又必至矣。府君兩番欲讓位於劉玄德,時府君尚強健,故玄德不肯受;今病已沉重,正可就此而與之,玄德不肯辭矣。”謙大喜,使人來小沛:請劉玄德商議軍務。玄德引關、張帶數十騎到徐州,陶謙教請入臥內。玄德問安畢,謙曰:“請玄德公來,不爲別事:止因老夫病已危篤,朝夕難保;萬望明公可憐漢家城池爲重,受取徐州牌印,老夫死亦瞑目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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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주의 도겸은 나이가 이미 63 세인데, 갑자기 병이 들어 점점 위중해져서 미축과 진등을 불러 의논했다. 미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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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군사가 물러간 것은 여포가 연주를 습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흉년이 들어 군사를 파했지만 오는 봄에 반드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부군께서 두번이나 유현덕에게 양위하셨지만 당시는 부군께서 아직 강건하실 때이므로 현덕이 받으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병이 위중하니 바로 이런 모습으로 그에게 주면 현덕이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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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도겸이 크게 기뻐하며 소패로 사람을 보내 현덕을 군무를 의논할 게 있다고 불렀다. 현덕이 관우 장비과 더불어 수십 기를 대동하고 서주에 이르니 도겸이 침실로 불러들였다. 현덕이 문안을 마치니 도겸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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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 공을 오라고 한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닙니다. 이 늙은이가 병이 위독하여 아침저녁을 (살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만인이 공께서 한나라의 성지(성과 해자)을 가련하게 여겨 서주의 관인을 받아 주기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이 늙은이는 죽어도 또한 눈을 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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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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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德曰:“君有二子,何不傳之?”謙曰:“長子商,次子應,其才皆不堪任。老夫死後,猶望明公教誨,切勿令掌州事。”玄德曰:“備一身安能當此大任?”謙曰:“某舉一人,可爲公輔:系北海人,姓孫,名乾,字公祐。此人可使爲從事。”又謂糜竺曰:“劉公當世人傑,汝當善事之。”玄德終是推托,陶謙以手指心而死。 衆軍舉哀畢,即捧牌印交送玄德。玄德固辭。次日,徐州百姓,擁擠府前哭拜曰:“劉使君若不領此郡,我等皆不能安生矣!”關、張二公亦再三相勸。玄德乃許權領徐州事;使孫乾、糜竺爲輔,陳登爲幕官;盡取小沛軍馬入城,出榜安民;一面安排喪事。玄德與大小軍士,盡皆掛孝,大設祭奠祭畢,葬於黃河之原。將陶謙遺表,申奏朝廷。
 
67
현덕이 말하기를,
 
68
“부군께 두 아들이 있는데 어찌 물려주지 않으십니까?”
 
69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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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상과 차자 응은 재주가 모두 (고을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늙은이가 죽은 후에 오히려 명공께서 가르쳐 주시되 절대로 고을의 공무는 맡기지 마십시오.”
 
71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72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큰 임무를 맡겠습니까?”
 
73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74
“제가 한 사람을 천거할테니 공을 보좌할 만합니다. 원래 북해 사람으로 성은 손이고 이름은 건이며 자는 공우입니다. 이 사람을 종사(보좌관)로 삼으십시오.”
 
75
하였다. 또 도겸이 미축에게 말하기를,
 
76
“유공은 당세 인걸이시니 그대는 마땅히 잘 모셔야 하오.”
 
77
하였다. 현덕이 끝까지 다른 일을 핑계로 거절하는데 도겸이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죽었다. 모든 군사가 애도를 표하고 곧 관인을 받들어 현덕에게 바쳤다. 현덕이 굳이 사양했다. 이튿날 서주 백성들이 관청 앞에 몰려들어 울고 절하며 말하기를,
 
78
“유 사군께서 이 고을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우리들은 모두 편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79
하니, 관우와 장비도 거듭 권했다. 현덕이 마침내 임시로 서주의 일을 보겠다고 허락했다. 손건과 미축을 보좌관으로 삼고 진등을 참모로 삼았다. 소패의 군마를 모두 (서주에) 입성시키고 방을 내걸어서 백성을 안심시켰다. 한편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현덕이 상하 군사들과 함께 모두 상복을 입고 크게 상례를 거행했다. 제사를 마치고 황하의 언덕에 (도겸을) 장사지낸 뒤, 도겸의 유표(남긴 상소문)를 조정에 상주했다.
 
 
80
操在鄄城,知陶謙已死,劉玄德領徐州牧,大怒曰:“我仇未報,汝不費半箭之功,坐得徐州!吾必先殺劉備,後戮謙屍,以雪先君之怨!”即傳號令,克日起兵去打徐州。荀彧入諫曰:“昔高祖保關中,光武據河內,皆深根固本以制天下,進足以勝敵,退足以堅守,故雖有困,終濟大業。明公本首事兗州,且河、濟乃天下之要地,是亦昔之關中、河內也。今若取徐州,多留兵則不足用,少留兵則呂布乘虛寇之,是無兗州也。若徐州不得,明公安所歸乎?今陶謙雖死,已有劉備守之。徐州之民,既已服備,必助備死戰。明公棄兗州而取徐州,是棄大而就小,去本而求末,以安而易危也。願熟思之。”
 
81
조조가 견성에 있다가 도겸이 죽고 유현덕이 서주목이 된 것을 알고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82
“내 원수를 아직 갚지 못했는데 그놈은 화살 하나 쏘지 않고 앉아서 서주를 얻다니! 내가 반드시 유비를 죽이고 도겸의 시체를 육시하여 아버지의 원한을 풀겠다!”
 
83
하고, 즉시 명령을 전해 기한을 정하여 병사를 일으켜 서주를 치려고 하니, 순욱이 들어와 간언하기를,
 
84
“옛날 고조(유방)가 관중을 지키고, 광무제가 하내에 웅거한 것은 모두 근본을 튼튼히 하고 이로써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나아가 적을 이기기에 족하고 물러나 굳게 지키기에 족하니, 비록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명공께서 본래 연주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황하와 제수 지방은 천하의 요지로서 옛날의 관중이나 하내와 같습니다. 이제 만약 서주를 공격할 때 여기에 병사를 많이 두면 공격하는데 부족하고, 적게 두면 여포가 틈을 타서 쳐들어와 연주를 잃습니다. 만약 서주를 얻지 못하면 명공께서 어디로 돌아가실 것입니까? 지금 도겸이 비록 죽었다 하나 이미 유비가 지키고 있습니다. 서주 백성이 유비를 따르니 반드시 유비를 도와 결사 항전할 것입니다. 명공께서 연주를 버리고 서주를 취하려는 것은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이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구하는 것이니, 안정된 것으로 위급한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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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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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曰:“今歲荒乏糧,軍士坐守於此,終非良策。”彧曰:“不如東略陳地,使軍就食汝南、潁川。黃巾餘黨何儀、黃劭等,劫掠州郡,多有金帛、糧食、此等賊徒,又容易破;破而取其糧,以養三軍,朝廷喜,百姓悅,乃順天之事也。”操喜,從之,乃留夏侯惇、曹仁守鄄城等處,自引兵先略陳地,次及汝、潁。黃巾何儀、黃劭知曹兵到,引 衆來迎,會於羊山。時賊兵雖 衆,都是狐群狗黨,並無隊伍行列。操令強弓硬弩射住,令典韋出馬。何儀令副元帥出戰,不三合,被典韋一戟刺於馬下。操引 衆乘勢趕過羊山下寨。
 
87
조조가 말하기를,
 
88
“지금 흉년이 들어 양식이 모자라니 군사가 여기서 앉아 지키는 것도 결국 좋은 계책은 아니오.”
 
89
하니, 순욱이 말하기를,
 
90
“진지를 동쪽에서 경영하는 게 낫습니다. 여남과 영천에서 황건 잔당 하의와 황소 등이 고을을 약탈하여 금백과 양식이 많습니다. 이들 도적 무리는 용이하게 격파할 수 있으니 그 양식을 취하여 삼군을 양성하면 조정에서도 기뻐하고 백성도 즐거워할테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91
하였다. 조조가 기뻐하여 따르고, 하후돈과 조인을 남겨 견성 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병력을 이끌고 진지를 거둬 여남과 영천으로 가서 머물렀다. 황건적 하의와 황소가 조조의 군대가 도착한 것을 알고 무리를 이끌고 나와 양산에 모였다. 당시 적병이 수는 많았으나 모두 여우나 개 떼 같이 대형을 갖추지 못했다. 조조가 강한 활과 굳센 쇠뇌로 사격하라 하고 전위를 출격시켰다. 하의도 부원수를 출전시키지만 3합이 안 되어서 전위의 극에 찔려 낙마했다. 조조가 무리를 이끌고 기세를 타고 추격하여 양산을 지나 영채를 세웠다.
 
 
92
次日,黃劭自引軍來。陣圓處,一將步行出戰,頭裹黃巾,身披綠襖,手提鐵棒,大叫:“我乃截天夜叉何曼也!誰敢與我廝鬥?”曹洪見了,大喝一聲,飛身下馬,提刀步出。兩下向陣前廝殺,四五十合,勝負不分。曹洪詐敗而走,何曼趕來。洪用拖刀背砍計,轉身一踅,砍中何曼,再複一刀殺死。李典乘勢飛馬直入賊陣。黃劭不及提備,被李典生擒活捉過來。曹兵掩殺賊 衆,奪其金帛、糧食無數。何儀勢孤,引數百騎奔走葛陂。正行之間,山背後撞出一軍。爲頭一個壯士,身長八尺,腰大十圍,手提大刀,截住去路。何儀挺槍出迎,只一合,被那壯士活挾過去。餘 衆著忙,皆下馬受縛,被壯士盡驅入葛陂塢中。
 
93
이튿날 황소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오는데, 둥글게 진을 친 곳에서 한 장수가 걸어서 출전하는데 머리에 황건을 두르고 몸에 녹색 웃옷을 걸치고 손에 쇠 몽둥이를 들고 크게 외치기를,
 
94
“내가 절천야차(하늘도 끊는 악귀) 하만이다! 누가 감히 나와 맞서 싸우겠느냐?”
 
95
했다. 조홍이 그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려 말에서 뛰어내려 칼을 뽑아들고 걸어나갔다. 두사람이 진 앞에서 맞서 싸우는데 4, 5십 합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홍이 거짓으로 패한 척 달아나니 하만이 쫓아갔다. 조홍이 칼을 끌고 달아나다가 뒤돌아서 베는 계책을 써서 몸을 돌려 뛰어올라 하만을 베고 다시 한번 칼을 휘둘러 죽였다. 이전이 기세를 타고 말을 달려 적진으로 돌입했다. 황소가 미처 대비하지 못하여 이전에게 사로잡혀 왔다. 조조의 군사들이 적들을 덮쳐 빼앗은 금과 비단, 양식이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하의가 세력이 외롭게 되자 수백 기를 이끌고 갈피로 달아났다. 가는 도중에 산 뒤쪽에서 한무리 군사가 나와서 막아섰다. 선두의 장사는 신장 8척이고 허리 크기가 열 아름인데 손에 큰 칼을 들고서 가는 길을 막았다. 하의가 창을 꼬나쥐고 나가서 맞서지만 단지 1합에 그 장사에게 사로잡혀 꿰어차졌다. 나머지 무리는 놀라서 모두 말에서 내려서 포박을 받으니 그 장사가 모두 갈피의 보루 안으로 몰고 갔다.
 
 
96
卻說典韋追襲何儀到葛陂,壯士引軍迎住。典韋曰:“汝亦黃巾賊耶?”壯士曰:“黃巾數百騎,盡被我擒在塢內!”韋曰:“何不獻出?”壯士曰:“你若贏得手中寶刀,我便獻出!”韋大怒,挺雙戟向前來戰。兩個從辰至午,不分勝負,各自少歇。不一時,那壯士又出搦戰,典韋亦出。直戰到黃昏,各因馬乏暫止。典韋手下軍士,飛報曹操。操大驚,忙引 衆將來看。次日,壯士又出搦戰。操見其人威風凜凜,心中暗喜,分付典韋,今日且詐敗。韋領命出戰;戰到三十合,敗走回陣,壯士趕到陣門中,弓弩射回。操急引軍退五裏,密使人掘下陷坑,暗伏鉤手。
 
97
한편, 전위가 하의를 뒤쫓아서 갈피에 이르렀는데, 장사가 군을 이끌고 나와서 맞이했다. 전위가 말하기를,
 
98
“너도 황건적이냐?”
 
99
하니, 장사가 말하기를,
 
100
“황건적 수백 기를 모두 내가 사로잡아 보루 안에 있다!”
 
101
고 했다. 전위가 말하기를,
 
102
“어째서 갖다 바치지 않느냐?”
 
103
하니, 장사가 말하기를,
 
104
“네가 만약 수중의 보도를 넘기면 내 곧 바치마!”
 
105
했다. 전위가 크게 노하여 쌍철극을 겨누어 돌진하여 싸웠다. 둘이 진시(오전8시)부터 오시(12시)까지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으므로 각자 잠깐 쉬었다. 얼마 안 돼 그 장사가 다시 나와서 싸움을 거니 전위도 나갔다. 바로 황혼까지 싸우다가 각자 말이 피곤하여서 잠시 멈추었다. 전위의 수하 군사가 급히 조조에게 알리자 조조가 크게 놀라서 바삐 여러 장수를 이끌고 와서 보았다. 이튿날 그 장사가 다시 나와서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그 사람을 살펴보니 위풍이 늠름하여서 마음 속으로 가만히 기뻐하며, 전위에게 분부하여 오늘은 거짓으로 패하라고 하였다. 전위가 명을 받들고 출전하여서 30여 합을 싸우고서 패주하여 진으로 돌아온다. 장사가 진문 안까지 뒤쫓자 활과 쇠뇌를 쏘아 돌려보냈다. 조조가 급히 군사를 5리쯤 퇴각시키고 몰래 함정을 파고 갈고리 군사를 매복시켰다.
 
 
106
次日,再令典韋引百餘騎出。壯士笑曰:“敗將何敢複來!”便縱馬接戰。典韋略戰數合,便回馬走。壯士只顧望前趕來,不提防連人帶馬,都落於陷坑之內,被鉤手縛來見曹操。操下帳叱退軍士,親解其縛,急取衣衣之,命坐,問其鄉貫姓名。壯士曰:“我乃譙國譙縣人也,姓許,名褚,字仲康。向遭寇亂,聚宗族數百人,築堅壁於塢中以禦之。一日寇至,吾令 衆人多取石子准備,吾親自飛石擊之,無不中者,寇乃退去。又一日寇至,塢中無糧,遂與賊和,約以耕牛換米。米已送到,賊驅牛至塢外,牛皆奔走回還,被我雙手掣二牛尾,倒行百餘步。賊大驚,不敢取牛而走。因此保守此處無事。”操曰:“吾聞大名久矣,還肯降否?”褚曰:“固所願也。”遂招引宗族數百人俱降。操拜許褚爲都尉,賞勞甚厚。隨將何儀、黃劭斬訖。汝、潁悉平。
 
107
이튿날, 다시 전위에게 1백여 기를 이끌고 나가도록 하였다. 장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108
“패장이 어찌 감히 다시 오냐!”
 
109
하고, 말을 몰아서 접전했다. 전위가 몇 합 싸우다가 문득 말을 돌려 달아났다. 장사가 앞만 보고 쫓아오다가 느닷없이 사람과 말이 함께 함정 안으로 떨어지니 갈고리 군사들이 포박하여서 조조에게 끌고 온다. 조조가 장막 아래 나와서 군사들을 꾸짖어서 물리치고 친히 포박을 풀어주고서 급히 옷을 벗어 입히고 자리에 앉힌 뒤 그의 본관과 성명을 물었다. 장사가 말하기를,
 
110
“저는 초국 초현 사람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저이며 자는 중강입니다. 일찍이 도적이 난을 일으키자 종족 수백 인을 모아 보루를 튼튼히 쌓아서 방어했습니다. 어느날 도적들이 몰려오므로 제가 사람들에게 돌맹이를 준비토록 하고서 제가 앞장서서 돌을 던져 공격하니 명중되지 않는 자가 없어 도적들이 곧 물러갔습니다. 또 어느날 도적들이 몰려왔는데 보루 안에 양식이 떨어져서 도적과 화친하고 농사짓는 소와 쌀을 바꾸었습니다. 쌀을 받고나서 도적들이 소를 몰아서 보루 밖으로 갔는데 소들이 모두 달려서 되돌아오기에 제가 두 손으로 소 두 마리 꼬리를 잡고서 꺼꾸로 백 보를 끌고 갔습니다. 도적들이 크게 놀라서 감히 소를 받지도 않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로부터 여기를 지키는데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111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112
“내가 그대의 큰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소. 이제 내게 투항하지 않겠소?”
 
113
하니, 허저가 말하기를,
 
114
“진실로 바라던 바입니다.”
 
115
하고, 곧 종족 수백인 불러서 모두 투항시켰다. 조조가 허저를 도위(군사보좌관)로 삼고 매우 후하게 포상하고 대접했다. 이어서 하의와 황소를 베어버리고 여남과 영천을 모두 평정했다.
 
 
116
曹操班師,曹仁、夏侯惇接見,言近日細作報說:兗州薛蘭、李封軍士皆出擄掠,城邑空虛,可引得勝之兵攻之,一鼓可下。操遂引軍徑奔兗州。薛蘭、李封出其不意,只得引兵出城迎戰。許褚曰:“吾願取此二人,以爲贄見之禮。”操大喜,遂令出戰。李封使畫戟,向前來迎。交馬兩合,許褚斬李封於馬下。薛蘭急走回陣,吊橋邊李典攔住。薛蘭不敢回城,引軍投巨野而去;卻被呂虔飛馬趕來,一箭射於馬下,軍皆潰散。
 
117
조조가 회군하니, 조인과 하후돈이 접견한 뒤, 간첩의 최근 첩보를 말하였다. 연주의 설란과 이봉의 군사가 모두 나와서 노략질하느라 성읍이 공허하므로 승전한 병사를 이끌고 가서 치면 북소리 한 번으로 함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조가 곧 군을 이끌고 연주로 질러갔다. 설란과 이봉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적이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성을 나와 맞서 싸웠다. 허저가 말하기를,
 
118
“저 둘을 제가 잡아서 주공을 뵌 예물로 삼고 싶습니다.”
 
119
하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그를 출전시켰다. 이봉이 화극을 들고 앞으로 나와 적을 맞이했다. 말이 엇갈리고 두 합만에 허저가 이봉을 베어서 말에서 떨어뜨렸다. 설란이 급히 진으로 달아나는데 적교 옆에서 이전이 막아섰다. 설란이 감히 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거야로 가는데, 다시 여건이 나는듯이 말을 달려 뒤쫓아서 활을 쏘아 한 발에 맞혀 말 아래 떨어뜨리니, 그 군사들이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120
曹操複得兗州,程昱便請進兵取濮陽。操令許褚、典韋爲先鋒,夏侯惇、夏侯淵爲左軍,李典、樂進爲右軍,操自領中軍,於禁、呂虔爲合後。兵至濮陽,呂布欲自將出迎,陳宮諫:“不可出戰。待 衆將聚會後方可。”呂布曰:“吾怕誰來?”遂不聽宮言,引兵出陣,橫戟大罵。許褚便出。鬥二十合,不分勝負。操曰:“呂布非一人可勝。”便差典韋助戰,兩將夾攻;左邊夏侯惇、夏侯淵,右邊李典、樂進齊到,六員將共攻呂布。布遮攔不住,撥馬回城。城上田氏,見布敗回,急令人拽起吊橋。布大叫;“開門!”田氏曰:“吾已降曹將軍矣。”
 
121
조조가 연주를 다시 얻자, 정욱이 곧 요청하기를 복양으로 진격하여 빼앗으라고 하였다. 조조가 허저와 전위를 선봉으로 삼고, 하후돈과 하후연을 좌군으로,이전과 악진을 우군으로 삼으며, 조조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우금과 여건에게 후미를 맡겼다. 병력이 복양에 이르자, 여포가 자신이 나가 맞서려 하자 진궁이 간하기를,
 
122
“출전해선 안 됩니다. 여러 장수가 모이길 기다린 뒤에 출전해야 합니다.”
 
123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124
“내가 누가 온다고 두렵겠소?”
 
125
하고, 곧 진궁의 말을 듣지 않고서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더니, 극을 빗겨들고 크게 욕을 했다. 허저가 곧 출격하여 2십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126
“여포를 혼자서는 이길 수 없소.”
 
127
하고, 곧 전위를 보내어서 싸움을 돕게 하니 두 장수가 협공했다. 왼쪽의 하후돈과 하후연, 오른쪽의 이전과 악진도 일제히 달려와서 여섯 장수가 함께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가 견디지 못하고 말을 돌려서 성으로 돌아갔다. 성 위에서 전씨가 여포가 패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적교를 걷어올리게 했다. 여포가 크게 외치기를,
 
128
“문을 열어라!”
 
129
하니, 전씨가 말하기를,
 
130
“나는 이미 조 장군에게 항복했소.”
 
131
하였다.
 
 
132
布大罵,引軍奔定陶而去。陳宮急開東門,保護呂布老小出城。操遂得濮陽,恕田氏舊日之罪。劉曄曰:“呂布乃猛虎也,今日困乏,不可少容。”操令劉曄等守濮陽,自己引軍趕至定陶。時呂布與張邈、張超盡在城中,高順、張遼、臧霸、侯成巡海打糧未回。操軍至定陶,連日不戰,引軍退四十裏下寨。正值濟郡麥熟。操即令軍割麥爲食。細作報知呂布,布引軍趕來。將近操寨,見左邊一望林木茂盛,恐有伏兵而回。
 
133
여포가 크게 욕하고서 군사를 이끌고 (장막이 있는) 정도로 달아났다. 진궁이 급히 (복양성) 동문을 열고, 여포의 노소 가족을 보호하여 성을 나갔다. 조조가 마침내 복양을 얻고 전씨의 전날 죄를 용서했다. 유엽이 말하기를,
 
134
“여포는 바로 맹호이니 오늘 곤핍하다고 작은 틈을 줘선 안 됩니다.”
 
135
하니, 조조가 유엽 등에게 복양을 지키도록 하고, 스스로 군을 이끌고 정도로 뒤쫓았다. 이때 여포가 장막 장초와 함께 모두 성중에 있었는데, 고순 장요 장패 후성은 해안 지방을 따라서 곡식을 구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조조의 군사가 정도에 이르렀으나 여러 날 싸우지 않으므로 군을 이끌고 4십리를 물러나서 진지를 세웠다. 마침 제군의 보리가 익었으므로 조조가 군사에게 영을 내려 보리를 베어서 식량으로 했다. 간첩이 이것을 여포에게 보고하니, 여포가 군을 이끌고 추격하여 조조의 진지 가까이 갔으나, 왼쪽에 수목이 무성하여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서 돌아갔다.
 
 
136
操知布軍回去,乃謂諸將曰:“布疑林中有伏兵耳,可多插旌旗於林中以疑之。寨西一帶長堤,無水,可盡伏精兵。明日呂布必來燒林,堤中軍斷其後,布可擒矣。”於是止留鼓手五十人於寨中擂鼓;將村中擄來男女在寨內呐喊。精兵多伏堤中。
 
137
조조가 여포의 군사가 돌아간 것을 알고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138
“여포가 숲속에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였으니, 숲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서 (더욱)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오. 진지의 서쪽 일대에 긴 둑에 물이 없으니 정예병을 모두 매복시킬 만하오. 내일 여포가 반드시 와서 숲에 불을 지를테니 둑에 숨은 군사가 그 뒤를 끊으면, 여포를 잡을 수 있소.”
 
139
하였다. 이에 고수 5십 명만 진중에 남겨서 북을 두드리게 하고, 마을에서 남녀들을 잡아와서 진중에서 함성을 지르게 했다. 많은 정예병들은 둑 속에 매복하였다.
 
 
140
卻說呂布回報陳宮。宮曰:“操多詭計,不可輕敵。”布曰:“吾用火攻,可破伏兵。”乃留陳宮、高順守城。布次日引大軍來,遙見林中有旗,驅兵大進,四面放火,竟無一人。欲投寨中,卻聞鼓聲大震。正自疑惑不定,忽然寨後一彪軍出。呂布縱馬趕來。炮響處,堤內伏兵盡出:夏侯惇、夏侯淵、許褚、典韋、李典、樂進驟馬殺來。呂布料敵不過,落荒而走。從將成廉,被樂進一箭射死。布軍三停去了二停,敗卒回報陳宮,宮曰:“空城難守,不若急去。”遂與高順保著呂布老小,棄定陶而走。曹操將得勝之兵,殺入城中,勢如劈竹。張超自刎,張邈投袁術去了。山東一境,盡被曹操所得。安民修城,不在話下。
 
141
한편, 여포가 돌아와서 진궁에게 알려주니 진궁이 말하기를,
 
142
“조조는 속임수가 많으니 가볍게 맞설 수 없습니다.”
 
143
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
 
144
“내가 화공을 써서 복병을 깰 수가 있소.”
 
145
하고, 진궁과 고순은 머물러서 성을 지키게 했다. 이튿날 여포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멀리서 보니 수풀 속에 깃발이 있으므로 병사를 몰아서 크게 진격하여 4면으로 불을 지르지만 끝내 한 사람도 없다. 진지 안으로 돌입하려 하자,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스스로 의혹이 일어서 가라앉지 않는데 갑자기 진지 뒤에서 한 무리 군마가 출현하니 여포가 말을 몰아서 추격했다. 호포 소리가 들리더니 둑 속에서 복병이 모두 튀어나왔다. 하후돈 하후연 허저 전위 이전 악진이 말을 몰아서 쇄도했다. 여포가 감당할 수 없다고 헤아리고서 황망히 달아났다. 뒤따르던 성렴이 악진의 화살 한 발을 맞고 죽었고, 여포의 군사 중 3분의 2를 잃었다. 패한 군졸이 진궁에게 돌아가서 알리니 진궁이 말하기를,
 
146
“성이 비어서 지키기 어려우니 급히 떠나는 게 좋겠다.”
 
147
하고 곧 고순과 함께 여포의 가족을 보호하여 정도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조가 승리를 거둔 병력을 거느리고 성 안으로 쇄도하니 파죽지세였다. 장초는 자살하고 장막은 원술에게 갔다. 산동 일대가 모두 조조의 차지가 되었다. 백성을 안정시키고 성을 수리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148
卻說呂布正走,逢諸將皆回。陳宮亦已尋著。布曰:“吾軍雖少,尚可破曹。”遂再引軍來。正是:兵家勝敗真常事,卷甲重來未可知。
 
149
한편, 여포가 달아나다가 여러 장수가 모두 돌아오는 것을 만났다. 진궁도 역시 찾아왔다. 여포가 말하기를,
 
150
“우리 군사가 비록 적지만, 아직 조조를 격파할 수 있소.”
 
151
하고, 다시 군사를 이끌고 왔다. 이야말로, 싸우다보면 이기고 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라, 갑옷을 걷고 (행군하여) 다시 오니 아직 (승패를) 모르겠네.
 
 
152
不知呂布勝負如何,且聽下文分解。
 
153
여포가 이길지 질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2회 도공조(도겸)가 서주를 세번 양도하고 조맹덕(조조)이 여포와 크게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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