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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43회 제갈량이 많은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힘써 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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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四十三回 諸葛亮舌戰群儒 魯子敬力排 衆議
2
제43회 제갈량이 많은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힘써 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다.
 
 
3
卻說魯肅、孔明辭了玄德、劉琦,登舟望柴桑郡來。二人在舟中共議、魯肅謂孔明曰:“先生見孫將軍,切不可實言曹操兵多將廣。”孔明曰:“不須子敬叮嚀,亮自有對答之語。”及船到岸,肅請孔明於館驛中暫歇,先自往見孫權。權正聚文武於堂上議事,聞魯肅回,急召入問曰:“子敬往江夏,體探虛實若何?”肅曰:“已知其略,尚容徐稟。”權將曹操檄文示肅曰:“操昨遣使齎文至此,孤先發遣來使,現今會 衆商議未定。”肅接檄文觀看。其略曰:“孤近承帝命,奉詞伐罪。旄麾南指,劉琮束手;荊襄之民,望風歸順。今統雄兵百萬,上將千員,欲與將軍會獵於江夏,共伐劉備,同分土地,永結盟好。幸勿觀望,速賜回音。”
 
4
각설, 노숙과 공명은 현덕과 유기에게 작별을 고하고 배를 타고 시상군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배 안에서 함께 의논하여, 노숙이 공명에게 말하기를,
 
5
“선생께서 손 장군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의 병사들과 장수들이 많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7
“자경(노숙의 자)께서 당부하지 않으셔도 제게 이미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
 
8
했다. 배가 강둑에 다다라 노숙이 공명에게 관역(여관)에서 잠시 쉴 것을 청하고 자신은 먼저 가서 손권을 만났다. 손권은 마침 문무 관리들을 당상에 모아서 의논하고 있었는데 노숙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불러들여 묻기를,
 
9
“자경이 강하에 가서 몸소 허실을 알아보니 어떠하였소?”
 
10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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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알아냈습니다만 천천히 아뢰겠습니다.”
 
12
했다. 손권이 조조의 격문을 노숙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13
“조조가 어제 사자를 보내서 이 격문을 보내왔소. 내가 우선 그 사자를 보내고 지금 사람들을 모아 상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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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노숙이 격문을 받아 들고 살펴보니, 그 대략에 이르기를,
 
15
“내가 요즘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조서에 따라 죄인을 토벌하오. 깃발을 남쪽으로 향하자 유종이 속수무책이었고 형양의 백성들은 형세를 보고 귀순했소. 내가 지금 씩씩한 병력 백만과 상장 1천 명을 거느려서 장군과 더불어 강하에서 힘을 합쳐 함께 유비를 토벌하고 토지를 같이 나누어 길이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오. 행여나 관망하지 말고 어서 답신을 보내주기 바라오.”
 
16
했다.
 
 
17
魯肅看畢曰:“主公尊意若何?”權曰:“未有定論。”張昭曰:“曹操擁百萬之 衆,借天子之名,以征四方,拒之不順。且主公大勢可以拒操者,長江也。今操既得荊州,長江之險,已與我共之矣,勢不可敵。以愚之計,不如納降,爲萬安之策。 衆謀士皆曰:“子布之言,正合天意。”孫權沉吟不語。張昭又曰:“主公不必多疑。如降操,則東吳民安,江南六郡可保矣。”孫權低頭不語。
 
18
노숙이 읽고 나서 말하기를,
 
19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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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21
“아직 정해진 논의가 없소.”
 
22
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23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사방을 정벌하니 그를 거역하는 것은 순조롭지 못합니다. 또한 주공께서 조조를 맞설 만했던 것은 장강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이미 형주를 얻었으니 장강의 험준함도 이미 우리와 다를 바 없게 돼서 지금 형세로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제가 헤아려 보건대 투항하는 것이 만전의 대책입니다.”
 
24
하니, 모사들 모두가 말하기를,
 
25
“자포의 말씀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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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손권이 깊이 신음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장소가 다시 말하기를,
 
27
“주공께서는 여러 가지로 의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조조에게 항복하면 동오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강남 6군을 가히 보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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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손권이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29
須臾,權起更衣,魯肅隨於權後。權知肅意,乃執肅手而言曰:“卿欲如何?”肅曰:“恰才 衆人所言,深誤將軍。 衆人皆可降曹操,惟將軍不可降曹操。”權曰:“何以言之?”肅曰:“如肅等降操,當以肅還鄉黨,累官故不失州郡也;將軍降操,欲安所歸乎?位不過封侯,車不過一乘,騎不過一匹,從不過數人,豈得南面稱孤哉! 衆人之意,各自爲己,不可聽也。將軍宜早定大計。”
 
30
잠시 뒤, 손권이 옷을 갈아입으러 일어나니 노숙이 뒤따라갔다. 손권이 노숙의 뜻을 알아차리고 노숙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31
“경은 어떻게 하고 싶소?”
 
32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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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사람들이 한 말은 장군을 몹시 그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도 되겠지만 장군만은 조조에게 항복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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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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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렇게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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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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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은 사람들이야 조조에게 항복한들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을 더할 수도 있고, 다스리던 고을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장군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신다면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지위는 고작 열후에 불과하고 수레는 불과 1승이요 마필도 불과 한 필일 것이며 종들도 불과 몇일텐데 어찌 (지금처럼) 남면해서 고(군주가 스스로를 낮추는 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뜻이야 각자 자기를 위하는 것일 뿐이니,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장군께서 마땅히 어서 대계를 정하십시오!”
 
38
했다.
 
 
39
權歎曰:“諸人議論,大失孤望。子敬開說大計,正與吾見相同。此天以子敬賜我也!但操新得袁紹之 衆,近又得荊州之兵,恐勢大難以抵敵。”肅曰:“肅至江夏,引諸葛瑾之弟諸葛亮在此,主公可問之,便知虛實。”權曰:“臥龍先生在此乎?”肅曰:“現在館驛中安歇。”權曰:“今日天晚,且未相見。來日聚文武於帳下,先教見我江東英俊,然後升堂議事。”
 
40
손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41
“사람들의 의논이 내 소망을 크게 저버렸소. 자경이 큰 계책을 깨우쳐 주는 것이 내 견해와 꼭 맞소. 이것은 하늘이 자경을 내게 내리신 것이오! 다만 조조가 원소의 무리를 새로 얻은 데다 요새 형주의 병력까지 더했으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가 어려울까 걱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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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43
“제가 강하에 가서 제갈근의 아우 제갈량을 여기 데려 왔으니, 주공께서 그에게 물어 허실을 알아내십시오.”
 
44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45
“와룡 선생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오?”
 
46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47
“현재 여관에서 쉬고 있습니다.”
 
48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49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만나기에 늦었소. 내일 문무 관리들을 본진으로 불러 모아서 먼저 그에게 우리 강동의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런 뒤에 관청의 당에 올라 의논하겠소.”
 
50
했다.
 
 
51
肅領命而去。次日至館驛中見孔明,又囑曰:“今見我主,切不可言曹操兵多。”孔明笑曰:“亮自見機而變,決不有誤。”肅乃引孔明至幕下。早見張昭、顧雍等一班文武二十餘人,峨冠博帶,整衣端坐。孔明逐一相見,各問姓名。施禮已畢,坐於客位。張昭等見孔明豐神飄灑,器宇軒昂,料道此人必來遊說。張昭先以言挑之曰:“昭乃江東微末之士,久聞先生高臥隆中,自比管;樂。此語果有之乎?”孔明曰:“此亮平生小可之比也。”昭曰:“近聞劉豫州三顧先生於草廬之中,幸得先生,以爲如魚得水,思欲席卷荊襄。今一旦以屬曹操,未審是何主見?”
 
52
노숙이 명령을 듣고 나갔다. 다음날 여관에 가서 공명을 만나 다시 부탁하기를,
 
53
“오늘 우리 주공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 병력이 많은 것은 말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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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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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상황을 봐 가며 대처할 것인즉 결코 그르침이 없을 것입니다.”
 
56
했다. 노숙이 이에 공명을 본진으로 데려갔다. 벌써 장소, 고옹 등 한 무리 문무 관리 스무 명 남짓이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차림으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단정히 앉아 있었다. 공명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인사하고 성명을 물었다. 인사를 마치고 손님 자리에 앉았다. 장소 등이 보니 공명이 태도는 생기가 넘치고 외모는 당당한 것이 이 사람은 아무래도 유세하러 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장소가 먼저 입을 열어 타진하여 말하기를,
 
57
“저는 강동의 보잘것 없는 선비이지만, 오래전부터 선생께서 융중에서 높이 누워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5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59
“제가 평소에 그렇게 견주어 봤습니다.”
 
60
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61
“요새 듣자니 유예주(유비)가 선생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요행히 선생을 얻었다 하더군요.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얻은 듯이 여기고는 형주 양양 지방을 석권한 마음을 먹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루아침에 조조에게 복종하게 됐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지 미심쩍구려.”
 
62
하였다.
 
 
63
孔明自思張昭乃孫權手下第一個謀士,若不先難倒他,如何說得孫權,遂答曰:“吾觀取漢上之地,易如反掌。我主劉豫州躬行仁義,不忍奪同宗之基業,故力辭之。劉琮孺子,聽信佞言,暗自投降,致使曹操得以猖獗。今我主屯兵江夏,別有良圖,非等閑可知也。”
 
64
공명이 생각해보니 장소는 곧 손권의 수하 가운데서 제일가는 모사이므로 만약 먼저 그를 압도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손권을 설득하리오 하고, 곧 대답하기를,
 
65
“제가 보기에 한수 상류 지방을 취하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듯 쉬웠습니다. 그러나 저희 주공이신 유예주께서는 인의를 몸소 실천하셔서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애써 사양하셨습니다. 유종은 어린애라 간사한 말을 믿고 어리석게도 스스로 투항해서 결국 조조가 창궐하게 됐습니다. 지금 저희 주공께서는 강하에 둔병하여 따로 좋은 기회를 노리시는 것이니 평범한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
 
66
했다.
 
 
67
昭曰:“若此,是先生言行相違也。先生自比管、樂,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樂毅扶持微弱之燕,下齊七十餘城:此二人者,真濟世之才也。先生在草廬之中,但笑傲風月,抱膝危坐。今既從事劉豫州,當爲生靈興利除害,剿滅亂賊。且劉豫州未得先生之前,尚且縱橫寰宇,割據城池;今得先生,人皆仰望。雖三尺童蒙,亦謂彪虎生翼,將見漢室複興,曹氏即滅矣。朝廷舊臣,山林隱士,無不拭目而待:以爲拂高天之雲翳,仰日月之光輝,拯民於水火之中,措天下於衽席之上,在此時也。何先生自歸豫州,曹兵一出,棄甲拋戈,望風而竄;上不能報劉表以安庶民,下不能輔孤子而據疆土;乃棄新野,走樊城,敗當陽,奔夏口,無容身之地:是豫州既得先生之後,反不如其初也。管仲、樂毅,果如是乎?愚直之言,幸勿見怪!”
 
68
장소가 말하기를,
 
69
“그렇다면 선생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견준다고 하셨는데, 관중은 환공을 도와서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습니다. 악의는 미약한 연나라를 떠받쳐서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세상을 구제할 재주를 가졌다 하겠습니다. 선생은 초가집에서 단지 한가로이 풍월이나 읊어대고 무릎을 껴안고 앉아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유예주에게 종사했으니 마땅히 백성들을 위해 이익을 진흥하고 폐해를 제거하며 어지러운 도적을 소멸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유예주는 선생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오히려 천하를 종횡하고, 성지를 할거했습니다. 지금 선생을 얻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봤습니다. 비록 삼척동자라도 이제 호랑이가 날개를 단 셈이라 말하고 장차 한실을 부흥하고 조씨가 즉시 멸망할 것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정의 옛 신하들이나 산림에 숨어지내는 선비들도 눈을 씻고 살피며 기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때에 하늘의 구름을 걷어내어 해와 달의 빛을 우러르게 하고, 물과 불의 재난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내어 천하를 편안하게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선생이 유예주를 모신 뒤부터 조조의 군대가 출동하니,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바람에 불리듯 쫓겨서 위로는 유표에 보답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했고, 아래로는 외로운 아들(유종)을 도와 강토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신야를 포기하고 번성으로 달아나더니 당양에서 패전하여 하구로 달아나니 몸을 용납할 땅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유예주는 선생을 얻고 나서 도리어 예전보다 못하게 된 것입니다. 관중과 악의가 과연 이러했습니까? 제 못난 소견이니 행여나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70
했다.
 
 
71
孔明聽罷,啞然而笑曰:“鵬飛萬裏,其志豈群鳥能識哉?譬如人染沉屙,當先用糜粥以飲之,和藥以服之;待其腑髒調和,形體漸安,然後用肉食以補之,猛藥以治之:則病根盡去,人得全生也。若不待氣脈和緩,便投以猛藥厚味,欲求安保,誠爲難矣。吾主劉豫州,向日軍敗於汝南,寄跡劉表,兵不滿千,將止關、張、趙雲而已:此正如病勢尫羸已極之時也,新野山僻小縣,人民稀少,糧食鮮薄,豫州不過暫借以容身,豈真將坐守於此耶?夫以甲兵不完,城郭不固,軍不經練,糧不繼日,然而博望燒屯,白河用水,使夏侯惇,曹仁輩心驚膽裂:竊謂管仲、樂毅之用兵,未必過此。
 
72
공명이 듣고 나서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기를,
 
73
“붕새는 만리를 날아가니 그 뜻을 어찌 뭇새가 알겠습니까? 비유컨대 사람이 병을 오래 앓으면 마땅히 먼저 죽을 먹은 뒤에 부드러운 약을 복용해서 내장이 조화되고 몸이 점차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뒤에 고기를 먹어 보양하고 강한 약으로 치료해야 병의 뿌리가 모조리 없어져서 사람이 온전히 살아나게 됩니다. 만약 그 기맥이 안정되기를 바라지 않고 바로 강한 약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고치려 하면 참으로 어렵게 되고 맙니다. 제 주공 유예주께서는 지난날 여남에서 패전해 유표에게 몸을 맡기셨을 때 병력이 천 명이 되지 못한데다 거느린 장수들도 겨우 관우, 장비, 조운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병세가 심하기 그지없는 때와 똑같았습니다. 신야는 궁벽한 작은 고을이고 인민도 희소한데다 양식마저 적어서 예주께서 잠깐 몸을 둘 만한 곳에 불과하지 어찌 참으로 장차 고수할 곳이겠습니까? 이렇게 무장병력도 모자라고 성곽도 튼튼치 못하고 군대도 충분히 숙련되지 못한데다 양식마저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지만 박망파에서 적의 근거지를 불사르고 백하에서 수공을 가해서 하후돈과 조인 등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간담을 찢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관중과 악의가 용병해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습니다.
 
 
74
至於劉琮降操,豫州實出不知;且又不忍乘亂奪同宗之基業,此真大仁大義也。當陽之敗,豫州見有數十萬赴義之民,扶老攜幼相隨,不忍棄之,日行十裏,不思進取江陵,甘與同敗,此亦大仁大義也。寡不敵 衆,勝負乃其常事。昔高皇數敗於項羽,而垓下一戰成功,此非韓信之良謀乎?夫信久事高皇,未嘗累勝。蓋國家大計,社稷安危,是有主謀。非比誇辯之徒,虛譽欺人:坐議立談,無人可及;臨機應變,百無一能。誠爲天下笑耳!”
 
75
심지어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도 예주께서는 참으로 알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난리를 틈타 함부로 빼앗지 못하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당양의 패전도, 수십만 정의를 위해 나선 백성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업고 따라오는 것을 예주께서 보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루 겨우 십 리를 가면서도 강릉을 빼앗으러 진격할 생각을 안 하고 백성들과 함께 패전할 것을 감내하셨으니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병을 대적하지 못했지만 그런 승부는 으레 있는 법입니다. 예전에 고조 황제는 항우에게 수차례 패했지만 해하에서 한차례 싸움으로 성공했으니 이것이 한신의 좋은 계책이 아닙니까? 무릇 한신이 오래전부터 고조 황제를 섬겼지만 일찍이 승리를 거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저 국가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는 근본 계획을 세워야지 과대하게 떠벌이거나 헛된 명예로 남들을 속이는 자들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 무리는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야 남들이 따라올 수 없게 잘하지만 임기응변이 필요한 때에는 백에 하나도 능히 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76
라고 했다.
 
 
77
這一篇言語,說得張昭並無一言回答。座上忽一人抗聲問曰:“今曹公兵屯百萬,將列千員,龍驤虎視,平吞江夏,公以爲何如?”孔明視之,乃虞翻也。孔明曰:“曹操收袁紹蟻聚之兵,劫劉表烏合之 衆,雖數百萬不足懼也。”虞翻冷笑曰:“軍敗於當陽,計窮於夏口,區區求教於人,而猶言‘不懼’,此真大言欺人也!”孔明曰:“劉豫州以數千仁義之師,安能敵百萬殘暴之 衆?退守夏口,所以待時也。今江東兵精糧足,且有長江之險,猶欲使其主屈膝降賊,不顧天下恥笑。由此論之,劉豫州真不懼操賊者矣!”
 
78
이렇게 한바탕 말하자 장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좌상에서 문득 한 사람이 항변하여 묻기를,
 
79
“지금 조공이 백만 대군과 장수 1천 명을 거느리고 용이 날뛰고 호랑이가 쏘아보듯이 강하를 평정해 집어삼키려 하는데, 공은 어찌 하겠소?”
 
80
하니, 공명이 보니 그는 우번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81
“조조가 원소의 개미떼 같은 병력을 거둔데다 유표의 오합지졸을 빼앗은 것이니 비록 수는 백만 대군이나 두려워 할 게 못 되오.”
 
82
했다. 우번이 냉소하고 말하기를,
 
83
“당양에서 군사들은 패배하고 하구에서 꾀가 바닥나서 구구히 남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오고서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이야말로 참으로 허풍을 쳐서 남을 속이는 것이구려!”
 
8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5
“유예주께서 고작 수천 명의, 인의를 받드는 군사로써 어찌 능히 백만의 잔인하고 포악한 무리에 대적하겠소? 하구로 물러나 지키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오. 지금 강동에는 병력이 정예하고 양식이 풍부하며 게다가 장강의 험한 지형이 있는데도 오히려 그 주인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도적에게 항복하게 만들고자 하니 천하에서 비웃을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오. 이렇게 따지면 유예주야말로 진실로 조조 도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오!”
 
86
했다.
 
 
87
虞翻不能對。座間又一人問曰:“孔明欲效儀、秦之舌,遊說東吳耶?”孔明視之,乃步騭也。孔明曰:“步子山以蘇秦張儀爲辯士,不知蘇秦、張儀亦豪傑也。蘇秦佩六國相印,張儀兩次相秦,皆有匡扶人國之謀,非比畏強淩弱,懼刀避劍之人也。君等聞曹操虛發詐偽之詞,便畏懼請降,敢笑蘇秦、張儀乎?”
 
88
우번이 할 말이 없었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묻기를,
 
89
“공명은 소진과 장의처럼 혀를 놀려 동오에 유세하고자 하시오?”
 
90
했다. 공명이 보니 그는 보즐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91
“보자산(보즐)은 소진과 장의를 변사로만 여기지 소진과 장의 또한 호걸인 것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 인감을 차고, 장의는 진나라에서 두 번이나 재상을 지냈으니 그들 모두 나라를 바로세울 지모를 가졌었소. 강한 자를 두려워하고 약한 자를 능멸하는 자들이나 창칼을 무서워하는 자들과 비교할 사람들이 아니오. 여러분은 조조의 허풍을 듣자마자 두려워 바로 항복하기를 청하는 처지에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을 수 있소?”
 
92
했다.
 
 
93
步騭默然無語。忽一人問曰:“孔明以曹操何如人也?”孔明視其人,乃薛綜也。孔明答曰:“曹操乃漢賊也,又何必問?”綜曰:“公言差矣。漢傳世至今,天數將終。今曹公已有天下三分之二,人皆歸心。劉豫州不識天時,強欲與爭,正如以卵擊石,安得不敗乎?”孔明厲聲曰:“薛敬文安得出此無父無君之言乎!夫人生天地間,以忠孝爲立身之本。公既爲漢臣,則見有不臣之人,當誓共戮之:臣之道也。今曹操祖宗叨食漢祿,不思報效,反懷篡逆之心,天下之所共憤;公乃以天數歸之,真無父無君之人也!不足與語!請勿複言!”
 
94
보즐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문득 한 사람이 묻기를,
 
95
“공명은 조조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시오?”
 
96
했다.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설종이었다. 공명이 답하기를,
 
97
“조조는 한나라 역적인데, 더 물어볼 필요가 있겠소?”
 
98
하니, 설종이 말하기를,
 
99
“공이 틀렸소. 한나라가 지금에 이르러 하늘이 내린 운수가 곧 다하려 하오. 이제 조공은 이미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복종하고 있소. 유예주는 천시를 알아보지 못하고 굳이 그와 다투려 하니 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데 어찌 패하지 않겠소?”
 
100
했다. 공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101
“설경문(설종)은 어찌 이렇게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처럼 말씀하시오? 무릇 사람이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충효를 입신의 근본으로 삼는 법이오. 공은 이미 한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만약 신하답지 못한 사람을 보면 마땅히 함께 그를 처단해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요. 이제 조조가 조상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고도 보답할 생각 없이 도리어 찬역할 마음을 품고 있으니 천하의 공분을 사고 있소. 공은 이것을 하늘의 운수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여기다니 참으로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이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구려! 청컨대 다시는 말하지 마시오!”
 
102
했다.
 
 
103
薛綜滿面羞慚,不能對答。座上又一人應聲問曰:“曹操雖挾天子以令諸侯,猶是相國曹參之後。劉豫州雖雲中山靖王苗裔,卻無可稽考,眼見只是織席販屨之夫耳,何足與曹操抗衡哉!”孔明視之,乃陸績也。孔明笑曰:“公非袁術座間懷桔之陸郎乎?請安坐,聽吾一言:曹操既爲曹相國之後,則世爲漢臣矣;今乃專權肆橫,欺淩君父,是不惟無君,亦且蔑祖,不惟漢室之亂臣,亦曹氏之賊子也。劉豫州堂堂帝胄,當今皇帝,按譜賜爵,何雲無可稽考?且高祖起身亭長,而終有天下;織席販屨,又何足爲辱乎?公小兒之見,不足與高士共語!”
 
104
설종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을 띠고 대답하지 못했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공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묻기를,
 
105
“조조가 비록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지만 그래도 상국 조참의 후예요. 유예주가 비록 중산정왕의 후예라 말하지만 도리어 아무 고증할 길이 없고 확실한 것은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던 사내였다는 것뿐이니 어찌 족히 조조와 맞설 수 있겠소?”
 
106
했다. 공명이 보니 바로 육적이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107
“공은 바로 원술이 있는 자리에서 귤을 품었다던 육랑이 아니시오? 청컨대 편히 앉아 제 한마디를 들어보시오. 조조가 조상국의 후예라면 바로 대대로 한나라 신하였다는 것이오. 이제 권력을 틀어쥐고 제멋대로 행사하여 임금을 속이고 능멸하니, 이것은 임금만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능멸하는 것이기도 하오. 한실의 난신일 뿐 아니라 조씨 집안의 반역자이기도 한 것이오! 유예주께서는 당당히 황제의 후예로서 현재의 황제께서도 족보를 살펴보고 작위를 내렸는데 어찌 고증할 길이 없다고 하시오? 게다가 고조께서는 정장을 지내시다 몸을 일으켜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셨소.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았다 한들 어찌 족히 치욕이 되겠소? 공의 어린애 같은 견해야말로 고상한 선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오!”
 
108
했다.
 
 
109
陸績語塞。座上一人忽曰:“孔明所言,皆強詞奪理,均非正論,不必再言。且請問孔明治何經典?”孔明視之,乃嚴酸也。孔明曰:“尋章摘句,世之腐儒也,何能興邦立事?且古耕莘伊尹,釣渭子牙,張良、陳平之流。鄧禹、耿弇之輩,皆有匡扶宇宙之才,未審其生平治何經典。豈亦效書生,區區於筆硯之間,數黑論黃,舞文弄墨而已乎?”嚴峻低頭喪氣而不能對。
 
110
육적은 말문이 막히는데, 자리에서 한 사람이 문득 말하기를,
 
111
“공명이 하는 말은 모두 억지로 이치를 벗어난 것이라 죄다 정론이 아니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소. 우선 공명은 무슨 경전을 익히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112
했다. 공명이 보니 그는 바로 엄준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113
“(경전에서) 그럴싸한 글귀나 뒤지는 것은 세속의 썩은 선비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찌 능히 나라를 흥하게 하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라 하겠소? 더욱이 옛날 신야(莘野)에서 밭을 갈던 이윤이나 위수에서 낚시하던 자아(강태공)나 (한고조를 도운) 장랑, 진평 같은 사람들이나, (광무제를 도운) 등우, 경엄 같은 무리는 모두 천하를 바로잡을 재주를 가졌었지만 그들이 평생에 무슨 경전을 익혔는지 미심쩍소. 또한 어찌 서생들의, 구구하게 붓과 벼루에 파묻혀 제멋대로 어지럽게 시비를 가려서 말하는 것과 글재주를 부려 법도를 어지럽히는 것을 본받을 수 있겠소?”
 
114
했다. 엄준이 머리를 숙이고 기가 꺾여 대답하지 못했다.
 
 
115
忽又一人大聲曰:“公好爲大言,未必真有實學,恐適爲儒者所笑耳。”孔明視其人,乃汝陽程德樞也。孔明答曰:“儒有君子小人之別。君子之儒,忠君愛國,守正惡邪,務使澤及當時,名留後世。若夫小人之儒,惟務雕蟲,專工翰墨,青春作賦,皓首窮經;筆下雖有千言,胸中實無一策。且如楊雄以文章名世,而屈身事莽,不免投閣而死,此所謂小人之儒也;雖日賦萬言,亦何取哉!”
 
116
문득 한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하기를,
 
117
“공은 큰소리를 즐기지만 여태 참으로 실학을 가지지는 못했으니 선비들에게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오!”
 
118
했다.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여양의 정덕추였다. 공명이 대답하기를,
 
119
“선비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소. 군자인 선비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바른 길을 지키고 사악한 길을 미워하며, 힘써서 당대에 은택을 미치게 하고 후세에 이름을 남기오. 저들 소인인 선비들은 오로지 글귀나 다듬는 데 힘을 쓰고 문학만 붙잡고 청춘에는 시부나 짓고 흰머리가 돼서는 경전이나 연구하고 있소. 붓으로 천 마디 말을 쓴 들 가슴속에는 참으로 아무런 계책이 없소. 게다가 양웅이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몸을 굽혀 왕망을 섬겼다가 누각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른바 소인인 선비요. 비록 하루에 시부를 만 마디씩 지은들 무슨 취할 것이 있으리오!”
 
120
했다.
 
 
121
程德樞不能對。 衆人見孔明對答如流,盡皆失色。時座上張溫、駱統二人,又欲問難。忽一人自外而入,厲聲言曰:“孔明乃當世奇才,君等以唇舌相難,非敬客之禮也。曹操大軍臨境,不思退敵之策,乃徒鬥口耶!” 衆視其人,乃零陵人,姓黃,名蓋,字公覆,現爲東吳糧官。當時黃蓋謂孔明曰:“愚聞多言獲利,不如默而無言。何不將金石之論爲我主言之,乃與 衆人辯論也?”孔明曰:“諸君不知世務,互相問難,不容不答耳。”
 
122
정덕추가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공명이 흐르는 물처럼 대답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때 자리에 장온과 낙통 두 사람이 있어 다시 어려운 질문을 해보려 하는데, 문득 한 사람이 밖에서 들어와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123
“공명은 당세의 기재이거늘 여러분이 말로써 그를 난처하게 하다니 손님을 공경하는 예의가 아니오. 조조의 대군이 국경에 임박했는데 적을 물리칠 계책은 생각하지 못할망정 헛되이 말다툼이나 하는 것이오!”
 
124
했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니 바로 영릉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이름은 개이며 자는 공복인데 현재 동오에서 양관(식량 담당)을 맡고 있었다. 그때 황개가 공명에게 말하기를,
 
125
“제가 듣건대 말을 많이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했습니다. 어찌해서 금석 같은 이야기를 저희 주공께 말씀드리지 않으시고, 뭇 사람과 변론하십니까?”
 
12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27
“여러분이 세상 사정을 모르시고 제게 따져 물으니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28
했다.
 
 
129
於是黃蓋與魯肅引孔明入。至中門,正遇諸葛瑾,孔明施禮。瑾曰:“賢弟既到江東,如何不來見我?”孔明曰:“弟既事劉豫州,理宜先公後私。公事未畢,不敢及私。望兄見諒。”瑾曰:“賢弟見過吳侯,卻來敘話。”說罷自去。魯肅曰:“適間所囑,不可有誤。”孔明點頭應諾。引至堂上,孫權降階而迎,優禮相待。施禮畢,賜孔明坐。 衆文武分兩行而立。魯肅立於孔明之側,只看他講話。孔明致玄德之意畢,偷眼看孫權:碧眼紫髯,堂堂一表。孔明暗思:“此人相貌非常,只可激,不可說。等他問時,用言激之便了。”
 
130
이에 황개와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들어가다가, 중문에서 마침 제갈근과 마주치니 공명이 인사를 올렸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131
“아우는 강동에 도착하고도 어찌 나를 찾지 않았는가?”
 
13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33
“아우가 유예주를 모시고 있으므로 그 이치가 마땅히 공무를 먼저하고 사적인 일을 뒤에 해야 합니다. 공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감히 사사로운 일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134
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135
“아우가 오후(손권)를 만나 보고 난 뒤에 이야기를 나누세.”
 
136
하고 말을 마치자 떠났다. 노숙이 말하기를,
 
137
“얼마 전에 부탁드린 것을 실수 없이 하셔야 합니다.”
 
138
하니, 공명이 고개를 끄덕여 응낙했다. 관청 당상으로 데리고 가자 손권이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여 예우가 두터웠다. 인사를 마치고 공명을 자리에 앉도록 했다. 문무 관리들이 두 줄로 늘어섰다. 노숙이 공명 곁에 서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공명이 현덕의 뜻을 전해주고서 슬그머니 손권을 살폈다.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으로 생김새와 행동이 당당했다. 공명이 속으로 생각하기를,‘이 사람은 생김새가 남다르니 격동시켜야지 설득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가 물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말로써 격동시키면 되겠다.’했다.
 
 
139
獻茶已畢,孫權曰:“多聞魯子敬談足下之才,今幸得相見,敢求教益。”孔明曰:“不才無學,有辱明問。”權曰:“足下近在新野,佐劉豫州與曹操決戰,必深知彼軍虛實。”孔明曰:“劉豫州兵微將寡,更兼新野城小無糧,安能與曹操相持。”權曰:“曹兵共有多少?”孔明曰:“馬步水軍,約有一百餘萬。”權曰:“莫非詐乎?”孔明曰:“非詐也。曹操就兗州已有青州軍二十萬;平了袁紹,又得五六十萬;中原新招之兵三四十萬;今又得荊州之軍二三十萬:以此計之,不下一百五十萬。亮以百萬言之,恐驚江東之士也。”
 
140
차를 대접하고 손권이 말하기를,
 
141
“노자경(노숙)으로부터 족하(상대방의 존칭)의 재주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 다행히 만나게 됐습니다. 감히 요청하건대 이로운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14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43
“재주가 없고 배우지 못해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144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45
“족하가 요새 신야에서 유예주를 도와서 조조와 결전하셨다니 반드시 그 군대의 허실을 잘 아시겠습니다.”
 
14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47
“유예주께서는 병력이 미미하고 장수가 적은데다 신야성이 작고 식량이 없었으므로 어찌 능히 조조에 맞섰겠습니까?”
 
148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49
“조조의 병력은 모두 합쳐서 얼마나 됩니까?”
 
15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51
“기병과 보명, 수군을 합쳐서 대략 1백여 만입니다.”
 
152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53
“과장하는 것 아닙니까?”
 
15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55
“과장은 없습니다. 조조는 연주에서 이미 청주군 2십만이 있었습니다. 원소를 평정하고 다시 5, 6십만을 얻었고, 중원에서 새로 뽑아서 모은 병력이 3, 4십만입니다. 이제 다시 형주의 군대 2, 3십만을 얻었으니, 이렇게 계산하면 적어도 1백 5십만입니다. 제가 1백만이라 말씀드렸던 것은 강동 선비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156
했다.
 
 
157
魯肅在旁,聞言失色,以目視孔明;孔明只做不見。權曰:“曹操部下戰將,還有多少?”孔明曰:“足智多謀之士,能征慣戰之將,何止一二千人。”權曰:“今曹操平了荊、楚,複有遠圖乎?”孔明曰:“即今沿江下寨,准備戰船,不欲圖江東,待取何地?”權曰:“若彼有吞並之意,戰與不戰,請足下爲我一決。”孔明曰:“亮有一言,但恐將軍不肯聽從。”權曰:“願聞高論。”孔明曰:“向者宇內大亂,故將軍起江東,劉豫州收 衆漢南,與曹操並爭天下。今操芟除大難,略已平矣;近又新破荊州,威震海內;縱有英雄,無用武之地:故豫州遁逃至此。願將軍量力而處之:若能以吳、越之 衆,與中國抗衡,不如早與之絕;若其不能,何不從 衆謀士之論,按兵束甲,北面而事之?”
 
158
노숙이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실색해서 공명에게 눈짓을 했으나, 공명이 못 본 체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59
“조조 부하 중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장수는 또한 얼마나 되오?”
 
16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61
“지모가 많은 모사들과 원정에 나서 전투를 능숙히 할 장수들이 족히 1, 2천은 되리라 봅니다!”
 
162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63
“지금 조조가 형주 초나라 지역을 평정했는데 다시 멀리까지 도모하겠습니까?”
 
16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65
“바로 지금 강가를 따라 진지를 세우고 전선을 준비하는데 이것이 강동을 도모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땅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겠습니까?”
 
166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67
“만약 그가 병탄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청하건대 그대가 나를 위해 결정해 주십시오.”
 
16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69
“제가 드릴 말씀이 있기는 한데, 다만 장군께서 기꺼이 따르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170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71
“바라건대 높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17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73
“예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던 까닭에 장군께서 강동에서 일어나고 유예주께서 한수 남쪽에서 무리를 모아서 조조와 나란히 천하를 다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조는 큰 어려움을 없애버리고 대략 평정했습니다. 요새 다시 형주를 깨뜨려 위세가 천하를 뒤흔듭니다. 비록 영웅이 있더라도 무력을 쓸 수 있는 땅이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주께서 여기까지 피해 왔습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오월 지방 사람들로써 중원과 맞설 수 있다면 일찍 조조와 단교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어찌 모사들이 의논하듯이 병력을 거두고 갑옷을 벗어 북면하여 그를 섬기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까?”
 
174
했다.
 
 
175
權未及答。孔明又曰:“將軍外托服從之名,內懷疑貳之見,事急而不斷,禍至無日矣!”權曰:“誠如君言,劉豫州何不降操?”孔明曰:“昔田橫,齊之壯士耳,猶守義不辱。況劉豫州王室之胄,英才蓋世, 衆士仰慕。事之不濟,此乃天也。又安能屈處人下乎!”孫權聽了孔明此言,不覺勃然變色,拂衣而起,退入後堂。 衆皆哂笑而散,魯肅責孔明曰:“先生何故出此言?幸是吾主寬洪大度,不即面責。先生之言,藐視吾主甚矣。”孔明仰面笑曰:“何如此不能容物耶!我自有破曹之計,彼不問我,我故不言。”肅曰:“果有良策,肅當請主公求教。”孔明曰:“吾視曹操百萬之 衆,如群蟻耳!但我一舉手,則皆爲齏粉矣!”
 
176
손권이 미처 답하지 못하는데 공명이 다시 말하기를,
 
177
“장군께서 겉으로 그에게 복종한다고 하면서 안으로 머뭇거리며 다른 마음을 먹다가는 사세가 다급하여 결단하지 못해 재앙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178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179
“참으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예주께서는 어째서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소?”
 
18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81
“옛날의 전횡은 제나라의 장사였으나 오히려 의리를 지켜 욕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유예주께서는 왕실의 후예로서 그 영웅의 재질이 세상을 뒤덮고 뭇 선비가 우러러 사모합니다.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니, 어찌 몸을 굽혀 남의 밑에 처하겠습니까?”
 
182
했다. 손권이 공명의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불끈 낯빛이 바뀌어, 옷깃을 털고 일어나 후당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모두들 비웃으며 흩어졌다. 노숙이 공명을 책망해 말하기를,
 
183
“선생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다행히 저희 주공께서 관대하고 도량이 넓어서 그 자리에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말씀은 저희 주공을 몹시 깔본 것입니다.”
 
184
하니, 공명은 얼굴을 들고 웃으며 말하기를,
 
185
“어째서 그 말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까? 내 나름대로 조조를 깨부술 계책이 있는데 제게 묻지 않으시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186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187
“정말 좋은 계책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주공께 청해 가르침을 구하라 하겠습니다.”
 
18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89
“제가 보기에 조조의 백만 무리도 개미떼 같을 뿐입니다! 제가 한번 손을 쓰면 그들 모두 가루가 될 것입니다!”
 
190
했다.
 
 
191
肅聞言,便入後堂見孫權。權怒氣未息,顧謂肅曰:“孔明欺吾太甚!”肅曰:“臣亦以此責孔明,孔明反笑主公不能容物。破曹之策,孔明不肯輕言,主公何不求之?”權回嗔作喜曰:“原來孔明有良謀,故以言詞激我。我一時淺見,幾誤大事。”便同魯肅重複出堂,再請孔明敘話。權見孔明,謝曰:“適來冒瀆威嚴,幸勿見罪。”孔明亦謝曰:“亮言語冒犯,望乞恕罪。”權邀孔明入後堂,置酒相待。
 
192
노숙이 이 말을 듣고는 곧 후당으로 들어가 손권을 만났다. 손권은 노기가 가라앉지 않아 노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193
“공명이 나를 이토록 업신여기다니!”
 
194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195
“신도 역시 그것으로 공명을 책망했더니, 그가 도리어 웃으며 주공께서 능히 용납하지 못하시므로 그가 조조를 쳐부술 계책을 쉽게 말씀드릴 수 없다 했습니다. 주공께서 어찌하여 그것을 물어보지 않습니까?”
 
196
했다. 손권이 성냄을 돌려 기뻐하며 말하기를,
 
197
“원래 공명이 좋은 꾀를 가지고도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구려. 내가 한때의 얕은 생각으로 대사를 그르칠 뻔했소.”
 
198
하고, 곧 노숙과 함께 다시 관청 당상으로 나가 공명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손권이 공명을 보고 사과하기를,
 
199
“방금 선생의 청정하고 엄숙함을 모독한 것을 아무쪼록 용서해 주시오.”
 
200
하니, 공명도 역시 사과하여 말하기를,
 
201
“제 말이 지나쳤습니다. 바라건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202
했다. 손권이 공명을 후당으로 들게 하여 술을 내어 대접했다.
 
 
203
數巡之後,權曰:“曹操平生所惡者:呂布、劉表、袁紹、袁術、豫州與孤耳。今數雄已滅,獨豫州與孤尚存。孤不能以全吳之地,受制於人。吾計決矣。非劉豫州莫與當曹操者;然豫州新敗之後,安能抗此難乎?”孔明曰:“豫州雖新敗,然關雲長猶率精兵萬人;劉琦領江夏戰士,亦不下萬人。曹操之 衆,遠來疲憊;近追豫州,輕騎一日夜行三百裏,此所謂強弩之末,勢不能穿魯縞者也。且北方之人,不習水戰。荊州士民附操者,迫於勢耳,非本心也。今將軍誠能與豫州協力同心,破曹軍必矣。操軍破,必北還,則荊、吳之勢強,而鼎足之形成矣。成敗之機,在於今日。惟將軍裁之。”
 
204
몇 차례 술잔이 돈 후에 손권이 말하기를,
 
205
“조조가 평소 미워하던 자들은 여포, 유표, 원소, 원술, 예주(유비) 그리고 저뿐입니다. 이제 영웅들이 멸망하고 예주와 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동오 땅을 모조리 남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내 계획은 결정되었습니다. 유예주가 아니라면 함께 (힘을 합쳐) 조조와 싸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예주가 이제 패했으니 어찌 이 난적에게 대항하겠습니까?”
 
20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207
“예주께서 비록 얼마 전에 패하셨다 하나 관운장이 아직도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기도 강하에서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역시 1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조조 무리는 멀리서 오느라 몹시 피로합니다. 요새 예주를 추격하느라 저들이 경기병을 동원해 하루 밤낮에 3백 리를 내달렸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무리 센 화살이라도 그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지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북쪽 사람들은 수전에 서툽니다. 형주의 사대부와 백성들이 조조에게 붙은 것은 형세가 급박해서일 뿐이지 본심은 아닙니다. 이제 장군께서 진실로 유예주와 한 마음으로 협력하시면 반드시 조조의 군대를 격파할 것입니다. 조조 군대가 격파되면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형주와 동오의 세력은 강해져서 결국 솥발 같은 형세가 될 것입니다. 성패의 기회는 오늘에 달렸습니다. 장군께서 잘 헤아려 주십시오.”
 
208
했다.
 
 
209
權大悅曰:“先生之言,頓開茅塞。吾意已決,更無他疑。即日商議起兵,共滅曹操!”遂令魯肅將此意傳諭文武官員,就送孔明於館驛安歇。張昭知孫權欲興兵,遂與 衆議曰:“中了孔明之計也!”急入見權曰:“昭等聞主公將興兵與曹操爭鋒。主公自思比袁紹若何?曹操向日兵微將寡,尚能一鼓克袁紹;何況今日擁百萬之 衆南征,豈可輕敵?若聽諸葛亮之言,妄動甲兵,此所謂負薪救火也。”孫權只低頭不語。顧雍曰:“劉備因爲曹操所敗,故欲借我江東之兵以拒之,主公奈何爲其所用乎;願聽子布之言。”
 
210
손권이 크게 기뻐해 말하기를,
 
211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막혔던 것이 갑자기 뚫린 듯합니다. 제 뜻은 결정됐으니 이제 다른 망설임은 없습니다. 곧 병력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여 함께 조조를 멸합시다.”
 
212
하고, 마침내 노숙에게 명해서 이 뜻을 문무 관원들에게 전하게 하고, 공명을 여관으로 보내 쉬게 했다. 장소가 손권이 병력을 일으키려는 것을 알고 곧 사람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213
“공명의 계략에 빠지고 말았구려!”
 
214
하고, 급히 들어가 손권을 만나 말하기를,
 
215
“저희가 듣자니 주공께서 병력을 일으켜 조조와 싸울 것이라 합니다. 주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원소와 비교해 어떻습니까? 조조는 지난날 병력은 미미하고 장수는 적었지만 북소리 한번 울려 원소를 이겼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그가 백만 대군을 거느려 남쪽을 정벌하는데 어찌 함부로 대적하시겠습니까? 만약 제갈량의 말을 듣고 망령되게 군대를 움직이신다면 이것은 이른바 장작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216
했다. 손권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고옹이 말하기를,
 
217
“유비가 조조에게 패전했으므로 우리 강동의 병력을 빌려서 그에게 맞서려는 것인데 주공께서 어찌해서 이용당하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자포(장소)의 말을 들으소서.”
 
218
했다.
 
 
219
孫權沉吟未決。張昭等出,魯肅入見曰:“適張子布等,又勸主公休動兵,力主降議,此皆全軀保妻子之臣,爲自謀之計耳。原主公勿聽也。”孫權尚在沉吟。肅曰:“主公若遲疑,必爲 衆人誤矣。”權曰:“卿且暫退,容我三思。”肅乃退出。時武將或有要戰的,文官都是要降的,議論紛紛不一。
 
220
손권이 낮게 신음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장소 등이 나가자 노숙이 들어와 말하기를,
 
221
“장자포(장소) 등이 또다시 주공께 병력 출동을 하지 말라고 권하며 항복하자고 조르니 이 모두가 제 몸과 처자식이나 보전하려는 신하들이 스스로를 위해 세운 계책일 뿐입니다.”
 
222
했다. 손권은 아직 망설이는데 노숙이 말하기를,
 
223
“주공께서 머뭇거리시다가는 반드시 사람들이 주공을 그르치고 맙니다.”
 
224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225
“경은 잠시 물러가시오. 내가 거듭 생각해 보리다.”
 
226
했다. 이에 노숙이 물러났다. 당시에 무장들 가운데 일부는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관들은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해서, 의논이 분분해 일치되지 않았다.
 
 
227
且說孫權退入內宅,寢食不安,猶豫不決。吳國太見權如此,問曰:“何事在心,寢食俱廢?”權曰:“今曹操屯兵於江漢,有下江南之意。問諸文武,或欲降者,或欲戰者。欲待戰來,恐寡不敵 衆;欲待降來,又恐曹操不容:因此猶豫不決。”吳國太曰:“汝何不記吾姐臨終之語乎?”孫權如醉方醒,似夢初覺,想出這句話來。正是:追思國母臨終語,引得周郎立戰功。
 
228
한편, 손권은 안으로 물러가서 먹고 자기를 제대로 못하며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했다. 오 국태(손권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묻기를,
 
229
“무슨 일이 마음에 걸려 침식을 모두 폐하느냐?”
 
230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231
“이제 조조가 강한(장강과 한수)에 진을 치고 강남을 함락할 뜻을 가졌습니다. 문무 관리들에게 물으니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고, 어떤 이는 싸우자 합니다. 싸우자니 중과부적일까 걱정이고 항복하자니 조조가 용납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래서 머뭇거리며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232
했다. 오국태가 말하기를,
 
233
“너는 어찌 내 언니가 임종하며 남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234
하니, 손권이 마치 술에 취했다가 방금 깨어난 듯, 꿈에서 막 벗어난 듯 그 말이 생각났다. 이야말로, 국모가 임종하며 남긴 말을 떠올려서, 주랑을 데려와서 전공을 세우게 하겠구나.
 
 
235
畢竟說著甚的,且看下文分解。
 
236
결국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43회 제갈량이 많은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힘써 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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