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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79회 형이 아우를 핍박해 조식이 시를 짓고, 조카가 숙부를 저버려 유봉이 처형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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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七十九回 兄逼弟曹植賦詩 侄陷叔劉封伏法
2
제79회 형이 아우를 핍박해 조식이 시를 짓고, 조카가 숙부를 저버려 유봉이 처형되다.
 
 
3
卻說曹丕聞曹彰提兵而來,驚問 衆官;一人挺身而出,願往折服之。 衆視其人,乃諫議大夫賈逵也。曹丕大喜,即命賈逵前往。逵領命出城,迎見曹彰。彰問曰:“先王璽綬安在?”逵正色而言曰:“家有長子,國有儲君。先王璽綬,非君侯之所宜問也。”彰默然無語,乃與賈逵同入城。至宮門前,逵問曰:“君侯此來,欲奔喪耶?欲爭位耶?”彰曰:“吾來奔喪,別無異心。”逵曰:“既無異心,何故帶兵入城?”彰即時叱退左右將士,只身入內,拜見曹丕。兄弟二人,相抱大哭。曹彰將本部軍馬盡交與曹丕。丕令彰回鄢陵自守,彰拜辭而去。
 
4
각설, 조비는 조창이 병력을 거느리고 오자 놀라서 관리들에게 물으니, 한사람이 일어나 나와서 그를 찾아가 굴복시키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간의대부 가규였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가규를 보냈다. 가규가 명령을 받고 성을 나가서 조창을 만나니 조창이 묻기를,
 
5
“선왕의 옥새는 어디 있소?”
 
6
했다. 가규가 낯빛을 고쳐 말하기를,
 
7
“집안에 장자가 있고 나라에 왕세자가 있으니 선왕의 옥새는 군후께서 물어볼 것이 아닙니다.”
 
8
했다. 조창이 침묵하더니 마침내 가규와 함께 입성했다. 궁문 앞에 이르러 가규가 묻기를,
 
9
“군후께서 이렇게 오신 것은 오로지 분상(멀리서 급히 부모의 상을 치르러 옴) 때문입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려해서입니까?”
 
10
하니, 조창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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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상하러 온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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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가규가 말하기를,
 
13
“이미 다른 뜻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병력을 거느리고 입성하십니까?”
 
14
하니, 조창이 즉시 소리쳐서 좌우의 장사들을 물리친 뒤에 홀몸으로 들어가서 조비를 절하고 만났다. 형제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크게 곡했다. 조창이 본부 군마들을 모조리 조비에게 주었다. 조비가 조창에게 언릉으로 돌아가서 지키라고 하니 조창이 작별하고 떠났다.
 
 
15
於是曹丕安居王位,改建安二十五年爲延康元年;封賈詡爲太尉,華歆爲相國,王朗爲禦史大夫;大小官僚,盡皆升賞。諡曹操曰武王,葬於鄴郡高陵,令於禁董治陵事。禁奉命到彼,只見陵屋中白粉壁上,圖畫關雲長水淹七軍擒獲於禁之事:畫雲長儼然上坐,龐德憤怒不屈,於禁拜伏於地,哀求乞命之狀。原來曹丕以於禁兵敗被擒,不能死節,既降敵而複歸,心鄙其爲人,故先令人圖畫陵屋粉壁,故意使之往見以愧之。當下於禁見此畫像,又羞又惱,氣憤成病,不久而死。後人有詩歎曰:“三十年來說舊交,可憐臨難不忠曹。知人未向心中識,畫虎今從骨裏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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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비가 왕위에 순조롭게 올라 건안 25년을 연강 원년으로 고쳤다. 가후를 태위로, 화흠을 상국으로, 왕랑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대소 관료가 모두 승진하고 상을 받았다. 조조 에게 무왕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업군 고릉에 장사지냈다. 우금에게 능 조성의 일을 감독하게 했다. 우금이 명을 받들어 그곳에 도착하니 능의 집 회벽에 관운장이 7군을 수몰시키고 우금을 사로잡은 일을 그려놓았다. 그림에서 운장은 근엄하게 윗자리에 앉고 방덕은 분노한 채 굴복하지 않는데 우금은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었다. 원래 조비는 우금이 패전해서 사로잡히고도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항복하고도 다시 돌아오자 마음속으로 그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겨서, 미리 사람을 시켜 능의 집 회벽에 그런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일부러 그곳에 가서 그림을 보고 부끄럽게 만든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금이 그림을 보더니 부끄럽고 괴로워 분노하다가 병이 나서 오래지 않아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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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해가 지나도록 오래 알고 지낸다고 말하더니, 불쌍하구나! 어려움에 빠지자 조씨에게 등을 돌렸네. 사람을 알더라도 마음속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니, 호랑이를 그린다고 곧바로 뼛속부터 그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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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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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華歆奏曹丕曰:“鄢陵侯已交割軍馬,赴本國去了;臨淄侯植、蕭懷侯熊,二人竟不來奔喪,理當問罪,丕從之,即分遣二使往二處問罪。不一日,蕭懷使者回報:“蕭懷侯曹熊懼罪,自縊身死。”丕令厚葬之,追贈蕭懷王。又過了一日,臨淄使者回報,說:“臨淄侯日與丁儀、丁廙兄弟二人酣飲,悖慢無禮,聞使命至,臨淄侯端坐不動;丁儀罵曰:昔者先王本欲立吾主爲世子,被讒臣所阻;今王喪未遠,便問罪於骨肉,何也?丁廙又曰:據吾主聰明冠世,自當承嗣大位,今反不得立。汝那廟堂之臣,何不識人才若此!臨淄侯因怒,叱武士將臣亂棒打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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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화흠이 조비에게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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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릉후는 이미 군마를 넘겨주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임치후 조식과 소회후 조웅, 두 사람은 분상하지 않으니 도리를 따져 죄를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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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비가 그 말에 따라 즉시 관리 두 사람을 두 곳으로 보내 죄를 물었다. 하루가 안 되어서 소회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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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후 조웅이 죄가 무서워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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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비가 그를 후하게 장사지내라 명령하고 소회왕으로 추증했다. 또 하루가 지나자 임치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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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후는 매일 정의와 정이 형제 두 사람과 어울려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거만하고 무례하여 사자가 온 것을 듣고도 임치후는 가만히 앉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의가 욕하기를,‘지난날 선왕께서 본래 우리 주공을 세자로 삼으시려 했으나 신하들이 헐뜯어 가로막은 것이다. 지금 선왕의 상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골육에게 죄를 묻다니 무슨 까닭이냐?’라고 했습니다. 정이도 말하기를,‘우리 주공께서 총명함이 세상에서 으뜸이니 마땅히 대위를 물려받으셔야 하거늘 지금 도리어 즉위하지 못하셨다. 너도 조정의 신하인데 어찌 사람의 재능을 이렇게 모르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에 임치후가 노해서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신을 마구 매질해서 쫓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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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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丕聞之,大怒,即令許褚領虎衛軍三千,火速至臨淄擒曹植等一千人來。褚奉命,引軍至臨淄城。守將攔阻,褚立斬之,直入城中,無一人敢當鋒銳,徑到府堂。只見曹植與丁儀、丁廙等盡皆醉倒。褚皆縛之,載於車上,並將府下大小屬官,盡行拿解鄴郡,聽候曹丕發落。丕下令,先將丁儀、丁廙等盡行誅戳。丁儀字正禮,丁廙字敬禮,沛郡人,乃一時文士;及其被殺,人多惜之。
 
28
조비가 듣더니 크게 노해서 즉시 허저에게 명을 내려 호위군 3천을 거느리고 부리나케 임치로 가서 조식 등 1천 명을 잡아오라고 했다. 허저가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임치성에 이르렀다. 수비하는 장수가 막아서자 허저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고 곧바로 성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감히 날카로운 기세를 막아내지 못해서 관청으로 질러갔다. 그런데 조식이 정의, 정이 등과 더불어 모두 만취해 쓰러져 있었다. 허저가 모두 포박해서 수레에 싣고 그 밑의 대소 관리들을 모조리 업군으로 압송해 와서 조비의 처분을 기다렸다. 조비가 명을 내려 먼저 정의, 정이 등을 모두 처형했다. 정의의 자는 정례이고, 정이의 자는 경례인데 패군 사람으로 당대의 문사였다. 그들이 피살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29
卻說曹丕之母卞氏,聽得曹熊縊死,心甚悲傷;忽又聞曹植被擒,其黨丁儀等已殺,大驚。急出殿,召曹丕相見。丕見母出殿,慌來拜謁。卞氏哭謂丕曰:“汝弟植平生嗜酒疏狂,蓋因自恃胸中之才,故爾放縱。汝可念同胞之情,存其性命。吾至九泉亦瞑目也。”丕曰:“兒亦深愛其才,安肯害他?今正欲戒其性耳。母親勿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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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비의 어머니 변씨는 조웅이 목매어 죽은 것을 듣고 마음이 몹시 비통했다. 홀연히 또 조식이 사로잡히고 그 무리 정의 등이 이미 살해된 것을 듣고 크게 놀랐다. 급히 내전을 나와서 조비를 불러 만났다. 조비는 어머니가 나온 것을 보고 황망히 와서 뵈었다. 변씨가 통곡하며 조비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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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우 식은 평소 술을 즐기고 미친 듯이 굴었다. 아마도 스스로 품은 재주를 믿어서 이렇게 방종한 것이다. 너는 형제의 정을 생각해서 그 목숨만은 살려주어라. 그래야 내가 구천에서도 눈을 감겠다.”
 
32
하니, 조비가 말하기를,
 
33
“소자도 그 재주를 몹시 아끼는데 어찌 해치겠습니까? 이제 그 성질을 다스리려 할 뿐이니 모친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34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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卞氏灑淚而入,丕出偏殿,召曹植入見。華歆問曰:“適來莫非太後勸殿下勿殺子建乎?”丕曰:“然。”歆曰:“子建懷才抱智,終非池中物;若不早除,必爲後患。”丕曰:“母命不可違。”歆曰:“人皆言子建出口成章,臣未深信。主上可召入,以才試之。若不能,即殺之;若果能,則貶之,以絕天下文人之口。”丕從之。須臾,曹植入見,惶恐伏拜請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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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씨가 눈물을 뿌리며 들어갔다. 조비가 편전을 나와서 조식을 불러들였다. 화흠이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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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태후께서 전하께 자건(조식)을 죽이지 말라고 권하시지 않으셨습니까?”
 
38
하니, 조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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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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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41
“자건은 재주와 지혜를 품어 끝내 연못 속에 (이무기로) 살 물건이 아닙니다. 어서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됩니다.”
 
42
하니, 조비가 말하기를,
 
43
“어머니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소.”
 
44
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45
“사람들이 모두 자건이 입만 열면 문장을 짓는다 하오나 신은 아직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주상께서 불러 그 재주를 시험하십시오. 능히 해내지 못하면 바로 죽이십시오. 과연 해낸다면 신분을 낮춰서 천하 문인들의 입을 막으십시오.”
 
46
하니, 조비가 그에 따랐다. 얼마 뒤 조식이 들어와 황공히 엎드려 절하고 죄를 청했다.
 
 
47
丕曰:“吾與汝情雖兄弟,義屬君臣,汝安敢恃才蔑禮?昔先君在日,汝常以文章誇示於人,吾深疑汝必用他人代筆。吾今限汝行七步吟詩一首。若果能,則免一死;若不能,則從重治罪,決不姑恕!”植曰:“願乞題目。”時殿上懸一水墨畫,畫著兩只牛,鬥於土牆之下,一牛墜井而亡。丕指畫曰:“即以此畫爲題。詩中不許犯著‘二牛鬥牆下,一牛墜井死’字樣。”植行七步,其詩已成。詩曰:“兩肉齊道行,頭上帶凹骨。相遇塊山下,郯起相搪突。二敵不俱剛,一肉臥土窟。非是力不如,盛氣不泄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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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가 말하기를,
 
49
“나와 너는 정으로는 비록 형제이지만 의를 따지면 임금과 신하다. 네가 어찌 재주를 믿고 예의를 업신여기느냐? 지난날 선군께서 살아 계실 때 너는 늘 문장으로 남들에게 과시했으나 나는 네가 남에게 대필시키는 게 아닐까 심히 의심했다. 내가 이제 네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수를 짓게 하겠다. 네가 과연 해낸다면 죽음은 면할 것이나 만약 해내지 못한다면 무거운 처벌을 내려 결코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50
하니, 조식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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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제목을 내려주십시오.”
 
52
했다. 이때 궁전 벽에 수묵화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두 마리 소가 흙담 아래에서 싸우다가 한 마리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 것을 그려 놓았다. 조비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53
“바로 이 그림을 주제로 해라. 시 속에는‘두 소가 담 아래 싸우다가 한 소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다’라는 구절을 넣어서는 안 된다.”
 
54
했다. 조식이 일곱 걸음을 걷자 시가 벌써 완성되었다. 시에 이르기를,
 
55
“두 고기 덩이가 나란히 길을 가는데, 머리 위에 오목한 뼈를 둘렀구나. 서로 흙산 아래에서 마주쳐서, 갑자기 서로 치고 나가려 하네. 둘이 맞서도 모두 강하지는 못하니, 한 고기 덩이가 토굴 속으로 넘어지네. 힘이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강성한 기운을 다 쏟아내지 못해서라네.”
 
56
했다.
 
 
57
曹丕及群臣皆驚。丕又曰:“七步成章,吾猶以爲遲。汝能應聲而作詩一首否?”植曰:“願即命題。”丕曰:“吾與汝乃兄弟也。以此爲題。亦不許犯著‘兄弟’字樣。”植略不思索,即口占一首曰:“煮豆燃豆萁,豆在釜中泣,本是同根生,相煎何太急!”曹丕聞之,潸然淚下。其母卞氏,從殿後出曰:“兄何逼弟之甚耶?”丕慌忙離坐告曰:“國法不可廢耳。”於是貶曹植爲安鄉侯。植拜辭上馬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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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와 신하들이 모두 놀랐다. 조비가 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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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걸음에 문장을 완성했다만 나는 오히려 늦은 것 같구나. 네 능히 듣자마자 시 한수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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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식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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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주제를 정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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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비가 말하기를,
 
63
“나와 너는 형제이니 이것을 주제로 해라. 역시‘형제'라는 구절을 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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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식이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즉시 입으로 한 수를 읊기를,
 
65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우니,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렇게 급하게 끓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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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비가 듣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어머니 변씨가 뒤에서 나오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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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어찌 이토록 심하게 아우를 핍박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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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비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하기를,
 
69
“국법을 폐할 수 없어 그랬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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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조식을 안향후로 지위를 낮추니, 조식이 작별하고 말을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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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丕自繼位之後,法令一新,威逼漢帝,甚於其父。早有細作報入成都。漢中王聞之,大驚,即與文武商議曰:“曹操已死,曹丕繼位,威逼天子,更甚於操。東吳孫權,拱手稱臣。孤欲先伐東吳,以報雲長之仇;次討中原,以除亂賊。”言未畢,廖化出班,哭拜於地曰:“關公父子遇害,實劉封、孟達之罪。乞誅此二賊。”玄德便欲遣人擒之。孔明諫曰:“不可。且宜緩圖之,急則生變矣。可升此二人爲郡守,分調開去,然後可擒。”玄德從之,遂遣使升劉封去守綿竹。
 
72
조비가 왕위를 계승한 뒤에 법령을 새로 고쳐 한나라 황제를 위협하고 핍박하는 것이 그 아버지보다 심했다. 벌써 세작이 성도로 들어와서 보고했다. 한중왕(유비)이 듣고 크게 놀라 문무 관리들과 상의하며 말하기를,
 
73
“조조가 이미 죽고 조비가 왕위를 계승해서 천자를 핍박함이 조조보다 심하다고 하오. 게다가 동오의 손권은 손을 모아 조씨의 신하를 칭했소. 나는 먼저 동오를 정벌해서 운장의 원수를 갚고 싶소. 그 다음 중원을 토벌해 난적을 제거하겠소.”
 
74
하니,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요화가 자리에서 나와서 통곡하며 엎드려 말하기를,
 
75
“관공 부자가 살해된 것은 참으로 유봉과 맹달의 죄입니다. 바라옵건대 이들 두 도적놈을 주살하소서.”
 
76
했다. 현덕이 곧 사람들을 보내 잡아들이려 하자 공명이 간언하기를,
 
77
“안 됩니다. 마땅히 천천히 도모해야 합니다. 급하면 변고가 생기게 됩니다. 이들 두 사람을 군수로 승진시켜 따로 부임해서 갈라지게 하십시오. 그런 뒤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78
했다. 현덕이 이를 따라서 사자를 보내서 유봉을 승진시켜 면죽을 지키게 했다.
 
 
79
原來彭羕與孟達甚厚,聽知此事,急回家作書,遣心腹人馳報孟達。使者方出南門外,被馬超巡視軍捉獲,解見馬超。超審知此事,即往見彭羕。羕接入,置酒相待。酒至數巡,超以言挑之曰:“昔漢中王待公甚厚,今何漸薄也?”羕因酒醉,恨罵曰:“老革荒悖,吾必有以報之!”超又探曰:“某亦懷怨心久矣。”羕曰:“公起本部軍,結連孟達爲外合,某領川兵爲內應,大事可圖也。”超曰:“先生之言甚當。來日再議。”超辭了彭羕,即將人與書解見漢中王,細言其事。玄德大怒,即令擒彭羕下獄,拷問其情。羕在獄中,悔之無及。玄德問孔明曰:“彭羕有謀反之意,當何以治之?”孔明曰:“羕雖狂士,然留之久必生禍。”於是玄德賜彭羕死於獄。
 
80
원래 팽양이 맹달과 교분이 아주 두터워서 이 사실을 전해 듣더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서신을 작성하여 자신의 심복을 보내서 맹달에게 빨리 알렸다. 그 사자가 남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마초의 순찰하는 군사에게 잡혀서 마초에게 압송되었다. 마초가 이 사실을 캐내어서 즉시 팽양을 찾아갔다. 팽양이 맞아들여 술을 내어 접대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마초가 말로 건드려보기를,
 
81
“지난날 한중왕께서 공을 몹시 후대했는데 지금은 어째서 점점 박대하는 것이오?”
 
82
하니, 팽양이 술에 취해서 미워하며 욕하기를,
 
83
“늙은 놈이 함부로 하지만 내가 반드시 복수할 것이오!”
 
84
했다. 마초가 더욱 떠보기를,
 
85
“저 역시 원한을 품은 지 오래요.”
 
86
하니, 팽양이 말하기를,
 
87
“공께서 본부군(직속군사)을 일으켜서 맹달과 연결해서 외부에서 합세하고 제가 서천 땅의 병력을 이끌고 내응한다면 대사를 도모할 수 있소.”
 
88
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89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오. 내일 다시 의논합시다.”
 
90
했다. 마초가 팽양을 작별하고, 곧 사로잡은 팽양의 심복과 압수한 서신을 가지고 한중왕을 만나 그 일을 낱낱이 고했다. 현덕이 크게 노해서 즉시 팽양을 잡아 하옥하고 그 사실을 문초하게 했다. 팽양이 옥중에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현덕이 공명에게 묻기를,
 
91
“팽양이 모반할 마음을 가졌는데 어찌 다스려야겠소?”
 
9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93
“팽양이 비록 자유분방한 사람이나 오래 가만히 두면 반드시 재앙이 생길 것입니다.”
 
94
했다. 이에 현덕이 팽양을 옥중에서 자살하게 했다.
 
 
95
羕既死,有人報知孟達。達大驚,舉止失措。忽使命至,調劉封回守綿竹去訖。孟達慌請上庸、房陵都尉申耽、申儀弟兄二人商議曰:“我與法孝直同有功於漢中王;今孝直已死,而漢中王忘我前功,乃欲見害,爲之奈何?“耽曰:“某有一計,使漢中王不能加害於公。”達大喜,急問何計。耽曰:“吾弟兄欲投魏久矣,公可作一表,辭了漢中王,投魏王曹丕,丕必重用。吾二人亦隨後來降也。”達猛然省悟,即寫表一通,付與來使;當晚引五十餘騎投魏去了。
 
96
팽양이 죽자 어떤 사람이 맹달에게 알렸다. 맹달이 크게 놀라 허둥대는데 사자가 도착해서 유봉에게 면죽으로 돌아가서 지키라고 했다. 맹달이 황급히 상용과 방능의 도위인 신탐과 신의 형제 두 사람을 불러서 상의하기를,
 
97
“나는 법효직(법정)과 더불어 한중왕에게 공을 세웠소. 이제 효직은 이미 죽었고 한중왕은 지난날 나의 공로를 잊고 해치려는데 어찌해야겠소?”
 
98
하니, 신탐이 말하기를,
 
99
“제게 계책이 하나 있사오니 한중왕이 공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100
했다. 맹달이 크게 기뻐하며 무슨 계책인지 급히 물었다. 신탐이 말하기를,
 
101
“저희 형제는 위나라에 귀순하고 싶은지 오래입니다. 공께서 표를 작성해서 한중왕에게 작별하고 위왕 조비에게 귀순하시면 조비가 반드시 중용할 것입니다. 저희 두 사람도 뒤따라 투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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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맹달이 깨달아 즉시 표 한통을 쓰더니 사자에게 주었다. 그날 저녁 5십여 기를 이끌고 위나라로 투항하러 갔다.
 
 
103
使命持表回成都,奏漢中王,言孟達投魏之事。先主大怒。覽其表曰:“臣達伏惟殿下:將建伊、呂之業,追桓、文之功,大事草創,假勢吳、楚,是以有爲之士,望風歸順。臣委質以來,愆戾山積;臣猶自知,況於君乎?今王朝英俊鱗集,臣內無輔佐之器,外無將領之才,列次功臣,誠足自愧!臣聞範蠡識微,浮於五湖;舅犯謝罪,逡巡河上。夫際會之間,請命乞身,何哉?欲潔去就之分也。況臣卑鄙,無元功巨勳,自系於時,竊慕前賢,早思遠恥。昔申生至孝,見疑於親;子胥至忠,見誅於君;蒙恬拓境而被大刑,樂毅破齊而遭讒佞。臣每讀其書,未嘗不感慨流涕;而親當其事,益用傷悼!
 
104
사자가 표를 가지고 성도로 돌아가 한중왕에게 상주하며 맹달이 위나라로 귀순한 것을 말했다. 선주(유비)가 크게 노하여 그 표를 보니 표에 이르기를,‘신 맹달이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장차 이윤(상나라 탕왕의 재상)과 여상(주나라 무왕의 재상)의 업적을 세우시고 환문지공(춘추시대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업적)을 추구해서 대사를 초창하시며 오, 초 지역의 세력을 빌린다면 이로써 유능한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귀순할 것입니다. 신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한 이래 허물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신이 스스로 이렇게 알 정도이니 하물며 임금께서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지금 조정에 뛰어나고 준수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신은 안으로 아무런 보좌할 기량이 없고 밖으로 장수의 재능도 없으면서 공신의 반열에 올랐으니 참으로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신이 듣자니 범여는 미세한 것을 보고 본질을 꿰뚫었으나 오호(吳越의 호수)를 떠돌았고, 구범(진나라 문공 시절의 사람)은 사죄했으나 강가를 떠돌았습니다. 무릇 (임금과 신하가) 좋게 만나는 사이에도 목숨을 빌고 사직을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거취의 구분을 깨끗이 하려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은 비루한데다 아무런 큰 공훈도 없사오니 때때로 스스로 마음속으로 옛 현인을 생각하며 일찍부터 이러한 부끄러운 일을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옛날에 신생은 효성이 지극했으나 부친에게 의심을 받았으며, 오자서는 충성이 지극했으나 임금에게 주살됐습니다. 몽염은 국경을 개척했으나 형벌을 받았으며, 악의는 제나라를 격파했으나 모함을 만났습니다. 신은 책을 읽을 때마다 감개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 친히 그런 일을 당하니 더욱 가슴 아프고 슬픕니다!
 
 
105
邇者,荊州覆敗,大臣失節,百無一還;惟臣尋事,自致房陵、上庸,而複乞身,自放於外。伏想殿下聖恩感悟,湣臣之心,悼臣之舉。臣誠小人,不能始終。知而爲之,敢謂非罪?臣每聞“交絕無惡聲,去臣無怨辭”。臣過奉教於君子,願君王勉之,臣不勝惶恐之至!”玄德看畢,大怒曰:“匹夫叛吾,安敢以文辭相戲耶!”即欲起兵擒之。孔明曰:“可就遣劉封進兵,令二虎相並;劉封或有功,或敗績,必歸成都,就而除之,可絕兩害。玄德從之,遂遣使到綿竹,傳諭劉封。封受命,率兵來擒孟達。
 
106
얼마 전에 형주에서 패전하자 대신들이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신이 홀로 일부러 스스로 방능과 상용에 이르러 밖에서 거듭 목숨을 애걸하고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의 성은으로 깊이 헤아리셔서 신의 마음을 가엽게 여기시고 신의 행동을 불쌍히 여기소서. 신은 참으로 소인이라 시종일관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알면서도 (배신)하는데 감히 죄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신이 매양 듣자니, 교제를 끊어도 악평을 하지 않으며 떠나는 신하는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사오니 바라건대 군왕께서 격려해주십시오. 신은 황공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했다. 현덕이 읽기를 마치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107
“필부놈이 내게 반역하면서 어찌 감히 문사로써 희롱하는 것이냐!”
 
108
하고, 즉시 병력을 일으켜 잡아들이려 하자, 공명이 말하기를,
 
109
“유봉을 보내서 진격시키면 두 호랑이를 서로 다투게 만들 것입니다. 유봉이 공을 세우든 패전하든 반드시 성도로 돌아올 것이니 그때 바로 제거한다면 가히 두 가지 해악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110
했다.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면죽으로 보내어 유봉에게 어명을 전달했다. 유봉이 명을 받고 병력을 인솔해 맹달을 잡으러 갔다.
 
 
111
卻說曹丕正聚文武議事,忽近臣奏曰:“蜀將孟達來降。”丕召入問曰:“汝此來,莫非詐降乎?”達曰:“臣爲不救關公之危,漢中王欲殺臣,因此懼罪來降,別無他意。”曹丕尚未准信,忽報劉封引五萬兵來取襄陽,單搦孟達廝殺。丕曰:“汝既是真心,便可去襄陽取劉封首級來,孤方准信。”達曰:“臣以利害說之,不必動兵,令劉封亦來降也。”丕大喜,遂加孟達爲散騎常侍、建武將軍、平陽亭侯,領新城太守,去守襄陽、樊城。原來夏侯尚、徐晃已先在襄陽,正將收取上庸諸部。
 
112
한편, 조비가 마침 문무 관리를 모아서 의논하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뢰기를,
 
113
“촉나라 장수 맹달이 투항해 왔습니다.”
 
114
했다. 조비가 맹달을 불러들여 묻기를,
 
115
“그대가 이렇게 온 것은 거짓 항복이 아니오?”
 
116
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117
“신이 관우의 위기를 구하지 않아서 한중왕이 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두려워 투항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118
했다. 조비가 아직 믿지 못하는데 갑자기 유봉이 5만 병력을 이끌고 양양을 공격하며 오로지 맹달과 싸우겠다고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비가 말하기를,
 
119
“그대가 만약 진심이라면 어서 양양으로 가서 유봉의 수급을 가져오시오. 그때 비로소 믿겠소.”
 
120
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121
“제가 이해득실로써 설득한다면 병력을 움직일 것도 없이 유봉도 투항하게 할 수 있습니다.”
 
122
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곧 맹달을 상기상시 건무장군 평양정후 신성 태수로 임명해서 양양과 번성을 지키러 가게 했다. 원래 하후상과 서황이 이미 양양에 머물면서 곧 상용의 여러 곳을 빼앗으려 하는 참이었다.
 
 
123
孟達到了襄陽,與二將禮畢,探得劉封離城五十裏下寨。達即修書一封,使人齎赴蜀寨招降劉封。劉封覽書大怒曰:“此賊誤吾叔侄之義,又間吾父子之親,使吾爲不忠不孝之人也!”遂扯碎來書,斬其使,次日,引軍前來搦戰。孟達知劉封扯書斬使,勃然大怒,亦領兵出迎。兩陣對圓,封立馬於門旗下。以刀指罵曰:“背國反賊,安敢亂言!”孟達曰:“汝死已臨頭上,還自執迷不省!”封大怒,拍馬輪刀,直奔孟達。戰不三合,達敗走,封乘虛追殺二十餘裏,一聲喊起,伏兵盡出,左邊夏侯尚殺來,右邊徐晃殺來,孟達回身複戰。三軍夾攻,劉封大敗而走,連夜奔回上庸,背後魏兵趕來。劉封到城下叫門,城上亂箭射下。
 
124
맹달이 양양에 도착해서 두 장수와 인사를 마치고, 유봉이 성 밖 5십 리에 진지를 세운 것을 탐지했다. 맹달이 즉시 서신 한 봉을 써서 사자를 시켜 촉나라 영채로 가져가서 유봉에게 투항을 권했다. 유봉이 서신을 읽더니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
 
125
“이 도적놈이 내 숙부와 조카의 의를 그르치게 하더니 또다시 우리 부자 사이마저 이간시켜서 나를 불충불효한 사람으로 만들 셈이구나!”
 
126
하고, 곧 가져온 서신을 찢어발기고 사자를 참했다. 다음날, 군사를 이끌고 앞으로 나가 싸움을 걸었다. 맹달은 유봉이 서신을 찢고 사자를 참한 것을 알고, 벌컥 크게 성을 내어 병력을 거느리고 나가서 맞이했다. 양쪽 진영이 포진을 마치자 유봉이 문기 아래 말을 세우고 칼을 들어 맹달을 가리키며 욕하기를,
 
127
“나라를 배반한 도적놈아!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128
하니, 맹달이 말하기를,
 
129
“네가 죽음이 머리 위에 있거늘 아직도 고집을 피우며 돌아볼 줄 모르느냐!”
 
130
했다. 유봉이 크게 노하여 말에 박차를 가하고 칼을 휘두르며 맹달에게 달려들었다. 싸운지 3합이 안 되어 맹달이 패주하니 유봉이 그 틈을 타고 2십여 리를 추격하는데, 한바탕 함성소리가 일더니 복병이 모조리 뛰쳐나왔다. 왼쪽은 하후상이 달려들고 오른쪽은 서황이 달려들고 맹달도 되돌아서서 다시 싸웠다. 3군이 협공하자 유봉이 대패해서 달아나 밤새 상용으로 달려가니 배후에서 위나라 군사들이 뒤쫓았다. 유봉이 성 아래 이르러 문을 열라고 외치자 성 위에서 화살을 어지럽게 쏘았다.
 
 
131
申耽在敵樓上叫曰:“吾已降了魏也!”封大怒,欲要攻城,背後追軍將至,封立腳不住,只得望房陵而奔,見城上已盡插魏旗。申儀在敵樓上將旗一颭,城後一彪軍出,旗上大書“右將軍徐晃”。封抵敵不住,急望西川而走。晃乘勢追殺。劉封部下只剩得百餘騎。到了成都,入見漢中王,哭拜於地,細奏前事。玄德怒曰:“辱子有何面目複來見吾!”封曰:“叔父之難,非兒不救,因孟達諫阻故耳。”玄德轉怒曰:“汝須食人食、穿人衣,非土木偶人!安可聽讒賊所阻!”命左右推出斬之。漢中王既斬劉封,後聞孟達招之,毀書斬使之事,心中頗悔;又哀痛關公,以致染病。因此按兵不動。
 
132
신탐이 망루 위에서 외치기를,
 
133
“나는 이미 위나라에 항복했다!”
 
134
하니, 유봉이 크게 노해 성을 공격하려는데 배후에서 추격군이 당도했다. 유봉이 버티고 있을 수 없어서 방릉을 바라보고 달아났지만 (방릉의) 성 위에는 모조리 위나라 깃발이 꽂혀 있었다. 신의가 망루 위에서 깃발을 한번 흔들자 한 무리 군사들이 성 뒤에서 튀어나오니, 깃발에‘우장군 서황’이라 크게 쓰여 있었다. 유봉이 맞서지 못해서 급히 서천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서황이 승세를 타고 추격했다. 유봉의 부하는 겨우 1백여 기가 남았다. 성도에 이르러 한중왕을 만나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앞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현덕이 노해서 말하기를,
 
135
“못난 아들놈이 무슨 면목으로 다시 나를 찾아왔느냐!”
 
136
하니, 유봉이 말하기를,
 
137
“숙부의 어려움은 제가 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로지 맹달이 간언하여 저지해서입니다.”
 
138
했다. 현덕이 더욱 노해서 말하기를,
 
139
“네가 틀림없이 사람의 음식을 먹고 사람의 옷을 입을 것이니 흙이나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는 아닐 것이다! 어찌 헐뜯는 도적놈이 가로막는다고 들어주었느냐!”
 
140
하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령해 끌어내 참하도록 했다. 한중왕이 유봉을 참한 뒤에야 맹달이 유봉을 회유했으나 서신을 찢고 사자를 참한 것을 전해 듣고 마음속으로 몹시 뉘우쳤다. 게다가 관공을 애통해 하다가 병에 걸렸다. 이 때문에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다.
 
 
141
且說魏王曹丕,自即王位,將文武官僚,盡皆升賞;遂統甲兵三十萬,南巡沛國譙縣,大饗先塋。鄉中父老,揚塵遮道,奉觴進酒,效漢高祖還沛之事。人報大將軍夏侯惇病危,丕即還鄴郡。時惇已卒,丕爲掛孝,以厚禮殯葬。是歲八月間,報稱石邑縣鳳凰來儀,臨淄城麒麟出現,黃龍現於鄴郡。於是中郎將李伏、太史丞許芝商議:種種瑞徵,乃魏當代漢之兆,可安排受禪之禮,令漢帝將天下讓於魏王。遂同華歆、王朗、辛毗、賈詡、劉廙、劉曄、陳矯、陳群、桓階等一班文武官僚,四十餘人,直入內殿,來奏漢獻帝,請禪位於魏王曹丕。正是:魏家社稷今將建,漢代江山忽已移。
 
142
한편, 위왕 조비는 왕위에 즉위한 뒤 곧 문무 관료들을 모두 승진시키고 포상했다. 그리고 곧 무장한 병력 30만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패국 초현으로 순시해 선영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마을의 부형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길을 메워 잔을 들고 술을 바치니 마치 한고조(유방)가 패국으로 돌아왔던 옛일을 보는 듯했다. 어떤 사람이 대장군 하후돈의 병세가 위급하다고 알리니 조비가 즉시 업군으로 돌아왔다. 그때 이미 하후돈이 죽은 뒤라 조비가 상복을 입고 후한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이해 8월에 석읍현에 봉황이 나타나고 임치성에 기린이 출현하고 황룡이 업군에 나타난 것을 아뢰며 칭송했다. 이에 중랑장 이복과 태사승 허지가 상의하여, 갖가지 상서로운 징조가 있으니, 바로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할 징조라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예를 주선해서 한나라 황제로 하여금 천하를 위왕에게 양도하게 하자고 했다. 곧 화흠, 왕랑, 신비, 가후, 유이, 유엽, 진교, 진군, 환계를 비롯한 한 무리 문무관료 40여 명이 내전으로 바로 들어가 한나라 헌제에게 상주하여 위왕 조비에게 선위할 것을 청했다. 이야말로, 위나라 사직이 이제 막 세워지자, 한나라 강산이 홀연히 옮겨가네.
 
 
143
未知獻帝如何回答,且看下文分解。
 
144
헌제가 어찌 대답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79회 형이 아우를 핍박해 조식이 시를 짓고, 조카가 숙부를 저버려 유봉이 처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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