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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57회 시상구에서 와룡이 문상하고 뇌양현에서 봉추가 일을 처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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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五十七回 柴桑口臥龍吊喪 耒陽縣鳳雛理事
2
제57회 시상구에서 와룡이 문상하고 뇌양현에서 봉추가 일을 처리하다.
 
 
3
卻說周瑜怒氣填胸,墜於馬下,左右急救歸船。軍士傳說:“玄德、孔明在前山頂上飲酒取樂。”瑜大怒,咬牙切齒曰:“你道我取不得西川,吾誓取之!”正恨間,人報吳侯遣弟孫瑜到。周瑜接入。具言其事。孫瑜曰:“吾奉兄命來助都督。”遂令催軍前行。行至巴丘,人報上流有劉封、關平二人領軍截住水路。周瑜愈怒。忽又報孔明遣人送書至。周瑜拆封視之。
 
4
각설, 주유가 가슴에 노기가 차서 말 아래로 떨어지니 좌우에서 급히 구하여 배로 돌아갔다. 군사가 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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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과 공명이 앞산 정상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습니다.”
 
6
했다. 주유가 크게 노해 어금니를 악물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7
“너희는 내가 서천을 취하지 못할 줄 알겠지만 내가 맹세코 취할 것이다.”
 
8
했다. 한창 원망하는 사이에 오후(손권)가 아우 손유를 파견해 도착했다고 사람들이 보고했다. 주유가 맞아들여 그 간의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자 손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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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의 명을 받들어 도독을 돕고자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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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곧 명을 내려 군사들을 재촉해 앞으로 나아갔다. 행렬이 파구에 이르자 상류에서 유봉과 관평 두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물길을 막고 있다고 사람이 보고했다. 주유가 더욱 노했다. 문득 또다시 보고하기를, 공명이 사람을 보내 편지를 전한다고 했다. 주유가 편지를 뜯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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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曰:“漢軍師中郎將諸葛亮,致書於東吳大都督公瑾先生麾下:亮自柴桑一別,至今戀戀不忘。聞足下欲取西川,亮竊以爲不可。益州民強地險,劉璋雖闇弱,足以自守。今勞師遠征,轉運萬裏,欲收全功,雖吳起不能定其規,孫武不能善其後也。曹操失利於赤壁,志豈須臾忘報仇哉?今足下興兵遠征,倘操乘虛而至,江南齏粉矣!亮不忍坐視,特此告知。幸垂照鑒。”
 
12
편지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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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군사 중랑장 제갈량이 동오 대도독 공근 선생 휘하에 글을 보냅니다. 내가 시상에서 그대와 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였습니다. 듣건대 족하께서 서천을 취하고자 하시나 제 생각에는 불가합니다. 익주는 백성들이 굳세고 땅은 험하니 유장이 비록 어리석고 약하다고 하나 족히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군사들을 수고롭게 만들며 원정에 나서서 만 리 먼 길을 가서 완전한 공을 이루려 하지만 비록 오기(춘추전국시대의 위나라 병법가)라 할지라도 그 책략을 정할 수 없고, 손무(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 병법가)도 그 뒤처리를 잘할 수 없을 것이오. 조조가 적벽에서 패전했으니 그 마음이 어찌 잠깐인들 복수할 것을 잊겠습니까? 이제 족하께서 병력을 일으켜 원정에 나서서, 만약 조조가 그 빈틈을 타고 (쳐들어) 온다면 강남은 가루가 되고 맙니다. 제가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서 일부러 이렇게 알려드리니 아무쪼록 살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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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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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瑜覽畢,長歎一聲,喚左右取紙筆作書上吳侯。乃聚 衆將曰:“吾非不欲盡忠報國,奈天命已絕矣。汝等善事吳侯,共成大業。”言訖,昏絕。徐徐又醒,仰天長歎曰:“既生瑜,何生亮!”連叫數聲而亡。壽三十六歲。後人有詩歎曰:“赤壁遺雄烈,青年有俊聲。弦歌知雅意,杯酒謝良朋,曾謁三千斛,常驅十萬兵。巴丘終命處,憑吊欲傷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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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가 읽고 나서 긴 탄식을 한번 하더니 좌우를 불러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글을 써서 오후에게 바치게 하고, 장수들을 모아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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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나, 아무래도 하늘이 정한 수명이 이미 끊어진 듯하오. 그대들은 오후를 훌륭히 모셔 함께 대업을 이루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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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말을 마치고 혼절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깨어나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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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유를 내시고, 어찌 제갈량을 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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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잇달아 몇 번 소리를 지르더니 죽었다. 수명이 서른여섯이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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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에서 치열하게 싸워 (역사에) 남을 때, 청년의 목소리는 씩씩했네. 비파에 맞쳐 노래하며 그 우아한 뜻을 알았고, 술을 돌려 좋은 벗에게 사례하였네. 일찍이 (노숙에게) 3천 석 식량을 청하고, 항상 십만 대군을 거느렸네. 파구에서 목숨이 다하니, 문상하는 이들의 마음이 아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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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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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瑜停喪於巴丘。 衆將將所遺書緘,遣人飛報孫權。權聞瑜死,放聲大哭。拆視其書,乃薦魯肅以自代也。書略曰:“瑜以凡才,荷蒙殊遇,委任腹心,統禦兵馬,敢不竭股肱之力,以圖報效。奈死生不測,修短有命;愚志未展,微軀已殞,遺恨何極!方今曹操在北,疆場未靜;劉備寄寓,有似養虎;天下之事,尚未可知。此正朝士旰食之秋,至尊垂慮之日也。魯肅忠烈,臨事不苟,可以代瑜之任。人之將死,其言也善。倘蒙垂鑒,瑜死不朽矣。”孫權覽畢,哭曰:“公瑾有王佐之才,今忽短命而死,孤何賴哉?既遺書特薦子敬,孤敢不從之。”即日便命魯肅爲都督,總統兵馬;一面教發周瑜靈柩回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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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가 파구에서 (죽어) 문상을 받았다. 장수들이 곧 그의 유서를 봉하여,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급보했다. 손권은 주유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목을 놓아 크게 곡을 했다. 그의 유서를 뜯어보니 자신을 대신하도록 노숙을 천거했다. 글에서 대략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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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인재로 특별히 은총을 입어서 복심을 맡아 병마를 거느리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보좌하는 힘을 다하여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래도 죽고 사는 것은 예측하지 못하여, 목숨이 길고 짧음은 운명입니다. 못난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미천한 몸이 벌써 죽게 되니 남겨놓은 한이 어찌 극심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바야흐로 조조는 북쪽에 있어 싸움터는 조용하지 않고, 유비는 빌붙어 지내니 마치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천하의 일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조정의 관원들이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때요 지존께서도 굽어 근심할 시기입니다. 노숙은 아주 충성스럽고 일을 맡아도 소홀하지 않으니 가히 저의 임무를 대신할 만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말씀을 굽어 살펴주신다면 저는 죽어도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26
라고 했다. 손권이 읽고 나서 통곡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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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근(주유)은 왕을 보필할 만한 인재거늘 이제 갑자기 단명해 죽으니 내가 누구에게 의지하리오? 이미 유서에서 특별히 자경(노숙)을 추천하였으니 내가 감히 따르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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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날 바로 노숙을 도독으로 삼아 병마를 모두 거느리게 했다. 한편으로 주유의 영구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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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孔明在荊州,夜觀天文,見將星墜地,乃笑曰:“周瑜死矣。”至曉,告於玄德。玄德使人探之,果然死了。玄德問孔明曰:“周瑜既死,還當如何?”孔明曰:“代瑜領兵者,必魯肅也。亮觀天象,將星聚於東方。亮當以吊喪爲由。往江東走一遭,就尋賢士佐助主公。”玄德曰:“只恐吳中將士加害於先生。”孔明曰:“瑜在之日,亮猶不懼;今瑜已死,又何患乎?”乃與趙雲引五百軍,具祭禮,下船赴巴丘吊喪。於路探聽得孫權已令魯肅爲都督,周瑜靈柩已回柴桑。孔明徑至柴桑,魯肅以禮迎接。周瑜部將皆欲殺孔明,因見趙雲帶劍相隨,不敢下手。孔明教設祭物於靈前,親自奠酒,跪於地下,讀祭文曰:
 
30
한편, 공명은 형주에서 밤에 천문을 살피다가 장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31
“주유가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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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새벽이 되자 현덕에게 아뢰었다. 현덕이 사람을 시켜 탐지해보니 과연 (주유가) 죽었다. 현덕이 공명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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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가 이미 죽었는데 어찌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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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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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대신해 병력을 거느릴 사람은 틀림없이 노숙입니다. 제가 천상을 살피니 장성들이 동쪽에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마땅히 조상하는 것을 핑계로 강동으로 한번 가서 주공을 보좌해드릴 어진 선비를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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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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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장사들이 선생을 해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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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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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가 살아 있을 때도 저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주유가 이미 죽었거늘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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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조운과 더불어 5백 군사를 이끌고 제례를 갖추어 배를 타고 파구로 가서 조상했다. 도중에 손권이 이미 노숙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주유의 영구가 이미 시상으로 돌아간 것을 탐지해 듣고, 공명이 곧장 시상으로 가자 노숙이 예를 갖춰 영접했다. 주유의 부장들이 모두 공명을 죽이려 하나 조운이 검을 차고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공명이 제물을 주유의 영전에 진설케 하고 몸소 술을 따라 올리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어 제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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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呼公瑾,不幸夭亡!修短故天,人豈不傷?我心實痛,酹酒一觴;君其有靈,享我烝嘗!吊君幼學,以交伯符;仗義疏財,讓舍以居。吊君弱冠,萬裏鵬摶;定建霸業,割據江南。吊君壯力,遠鎮巴丘;景升懷慮,討逆無憂。吊君豐度,佳配小喬;漢臣之婿,不愧當朝,吊君氣概,諫阻納質;始不垂翅,終能奮翼。吊君鄱陽,蔣幹來說;揮灑自如,雅量高志。吊君弘才,文武籌略;火攻破敵,挽強爲弱。想君當年,雄姿英發;哭君早逝,俯地流血。忠義之心,英靈之氣;命終三紀,名垂百世,哀君情切,愁腸千結;惟我肝膽,悲無斷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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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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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공근이여! 불행하게 요절하셨구려. 목숨의 길고 짧음은 하늘에 달렸으나, 사람이 어찌 상심치 않으리오? 내 마음도 참으로 애통하니, 술 한 잔을 땅에 부어 신이 내려옴을 비오. 그대의 넋이 있다면 내가 올리는 제사를 누리시오! 애석하도다! 그대는 젊어서 배우고 백부(손책)와 사귀었소. 의리를 받들어 재물을 멀리하고 집을 떠나 거처하였소. 애석하도다! 그대는 약관의 나이에 만 리를 힘껏 날아오른 대붕과 같았소. 패업을 일으켜서 강남을 할거하였소. 애석하도다! 그대는 씩씩하고 굳세어 멀리 파구에 주둔하니 경승(유표)이 두려워하였고, 역적을 토벌하여 근심을 없앴소. 애석하도다! 그대의 풍격은 소교를 아름다운 배필로 맞이하여 한나라 신하의 사위가 되니 이 조정에 부끄럽지 않았소. 애석하도다! 그대의 기개는 인질을 보내려 하자 간언하여 저지하셨소. 처음에 날개가 꺾였으나 끝내 능히 날개를 힘껏 펼치셨소. 애석하도다! 그대는 파양호에서 장간이 와서 설득하자 태연히 물에 흔들어 깨끗이 씻었으니 아량과 높은 뜻이었소. 애석하도다! 그대의 큰 재주는 문무에 걸친 책략이라. 화공으로써 적병을 격파했으니 강한 자를 눌러 약한 자를 위했소. 생각하니, 그대는 당대에 영웅의 자태를 떨치셨소. 그대가 요절하여 땅에 쓰러져 피를 흘린 것을 통곡하고, 충의로운 마음, 영웅적인 영혼의 기운을 가지셨으니, 목숨은 서른여섯에 끝났으나 이름은 백대에 드리울 것이오. 슬프다! 그대와의 정이 간절하니 울적한 마음이 가슴속에 쌓여 제 간담은 슬픔이 그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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昊天昏暗,三軍愴然;主爲哀泣;友爲淚漣。亮也不才,丐計求謀;助吳拒曹,輔漢安劉;掎角之援,首尾相儔,若存若亡,何慮何憂?嗚呼公瑾!生死永別!樸守其貞,冥冥滅滅,魂如有靈,以鑒我心:從此天下,更無知音!嗚呼痛哉!伏惟尚饗。”孔明祭畢,伏地大哭,淚如湧泉,哀慟不已。 衆將相謂曰:“人盡道公瑾與孔明不睦,今觀其祭奠之情,人皆虛言也。”魯肅見孔明如此悲切,亦爲感傷,自思曰:“孔明自是多情,乃公瑾量窄,自取死耳。”後人有詩歎曰:“臥龍南陽睡未醒,又添列曜下舒城。蒼天既已生公瑾,塵世何須出孔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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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하늘이 컴컴하게 어둡고, 3군이 모두 슬프고 가슴 아파하며, 주공께서 슬프게 흐느끼고 벗들이 눈물을 흘리오. 저도 재주가 없어서 그대로부터 꾀를 빌리고 지모를 구하여, 동오를 도와 조조를 막고 한실을 도와 유씨를 안정시켰소. 기각(병력을 둘로 나눠 적병을 견제하거나 협공하는 것)으로써 서로 돕고, 머리와 꼬리가 짝을 이루어 있는 듯 없는 듯 하니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근심했겠소? 오호라, 공근이여! 삶과 죽음이 영원히 갈라지니 질박한 본성을 올곧이 지켜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구려! 영혼이 있다면 내 마음을 살펴주시오. 이로부터 천하에 다시는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가 없겠소! 오호라, 슬프구나! 엎드려 바라오니 바친 제물을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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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제사를 마치고 땅에 엎드려 크게 우는데 눈물이 샘솟는 듯하며 애통하기 그지없다. 장수들이 서로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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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들 공근과 공명이 화목하지 못했다 말하지만 이제 그 제사 올리는 정성을 보건대 사람들이 모두 틀린 말을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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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노숙도 공명이 이처럼 슬프고 애절한 것을 보고 역시 슬픔을 느껴 생각하기를,‘공명이 이렇게 다정한 것을 보건대 공근이 속이 좁아 스스로 죽음을 불렀을 뿐이구나.’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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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이 남양 땅에서 잠을 깨지 않았는데, 또 서성 땅에 빛나는 별을 더하였네, 푸른 하늘은 기왕에 공근을 내셨거늘, 어지러운 세상에 하필 공명을 또 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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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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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肅設宴款待孔明。宴罷,孔明辭回。方欲下船,只見江邊一人道袍竹冠,皂絛素履,一手揪住孔明大笑曰:“汝氣死周郎,卻又來吊孝,明欺東吳無人耶!”孔明急視其人,乃鳳雛先生龐統也。孔明亦大笑。兩人攜手登舟,各訴心事。孔明乃留書一封與統,囑曰:“吾料孫仲謀必不能重用足下。稍有不如意,可來荊州共扶玄德。此人寬仁厚德,必不負公平生之所學。”統允諾而別,孔明自回荊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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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이 주연을 베풀어 공명을 환대했다. 주연을 마치고 공명이 작별 인사를 했다. 막 배에 타려는데 강변에서 한 사람이 도포 차림에 대나무 갓을 쓰고, 검은 끈의 하얀 신을 신고, 한 손으로 공명을 꽉 붙잡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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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주랑(주유)을 화가 치솟게 하여 죽게 해놓고도 도리어 문상을 와서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동오에 사람이 없는 줄 아시오!”
 
54
했다. 공명이 급히 그 사람을 보니 바로 봉추 선생 방통이다. 공명 역시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배에 올라서 각각 마음속의 말을 나누었다. 공명이 서찰 하나를 방통에게 건네며 부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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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손중모(손권)는 반드시 족하를 중용하지 않을 것이오.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시면 형주로 오셔서 함께 현덕을 도웁시다. 그 분은 너그럽고 인자하며 후덕하니 반드시 그대가 평생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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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방통이 허락하고 헤어졌다. 공명은 형주로 돌아갔다.
 
 
57
卻說魯肅送周瑜靈柩至蕪湖,孫權接著,哭祭於前,命厚葬於本鄉。瑜有兩男一女,長男循,次男胤,權皆厚恤之。魯肅曰:“肅碌碌庸才,誤蒙公瑾重薦,其實不稱所職,願舉一人以助主公。此人上通天文,下曉地理;謀略不減於管、樂,樞機可並於孫、吳。往日周公瑾多用其言,孔明亦深服其智,現在江南,何不重用!”權聞言大喜,便問此人姓名。肅曰:“此人乃襄陽人,姓龐,名統,字士元:道號鳳雛先生。”權曰:“孤亦聞其名久矣。今既在此,可即請來相見。”
 
58
한편, 노숙은 주유의 영구를 무호까지 모셔 오니, 손권이 맞이하여 그 앞에서 울며 제사하고 고향에 후히 장사지내라고 명했다. 주유에게 2남 1녀가 있는데 장남은 주순이고 차남은 주윤이다. 손권이 그들을 두터이 돌봐주었다. 노숙이 말하기를,
 
59
“저는 녹록하고 평범한 재목이지만 공근의 추천을 그릇되게 받아 참으로 맡은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한 사람을 천거하여 주공을 돕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아래로 지리에 밝습니다. 계략은 관중이나 악의보다 모자라지 않고, 병법은 손자나 오자와 나란히 설 만합니다. 지난날 주공근(주유)도 그의 말을 많이 쓰고 공명 역시 그 지혜에 깊이 탄복했습니다. 현재 강남에 있거늘 어찌 중용하시지 않습니까?”
 
60
하니, 손권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곧 그 사람의 성명을 묻자, 노숙이 말하기를,
 
61
“그 사람은 양양 사람으로 성은 방이요 이름은 통이며 자는 사원인데 도호는 봉추선생이라 합니다.”
 
62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63
“나도 역시 그 이름을 들은 지 오래 되었소. 이제 이미 이렇게 됐으니 즉시 청하여 만나 봅시다.”
 
64
했다.
 
 
65
於是魯肅邀請龐統入見孫權。施禮畢。權見其人濃眉掀鼻,黑面短髯,形容古怪,心中不喜。乃問曰:“公平生所學,以何爲主?”統曰:“不必拘執,隨機應變。”權曰:“公之才學,比公瑾如何?”統笑曰:“某之所學,與公瑾大不相同。”權平生最喜周瑜,見統輕之,心中愈不樂,乃謂統曰:“公且退。待有用公之時,卻來相請。”統長歎一聲而出。魯肅曰:“主公何不用龐士元?”權曰:“狂士也,用之何益!”肅曰:“赤壁鏖兵之時,此人曾獻連環策,成第一功。主公想必知之。”權曰:“此時乃曹操自欲釘船,未必此人之功也,吾誓不用之。”
 
66
이에 노숙이 방통을 맞이하여 들어가 손권을 만나서 인사를 마쳤다. 손권이 그 사람을 보니 눈썹이 짙고 들창코인데다 얼굴은 검고 수염은 짧아 그 생김새가 기괴하니 마음속으로 기쁘지 않았다. 이에 묻기를,
 
67
“공은 평생 배우신 것이 무엇을 주로 하였소?”
 
68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69
“얽매이지 않고 임기응변하였습니다.”
 
70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71
“공의 재능과 학식을 공근(주유)과 비교하면 어떻소?”
 
72
하니,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73
“저의 학식은 공근보다 크면 컸지 그와 같지는 않습니다.”
 
74
했다. 손권이 평소에 주유를 가장 좋아했으므로 방통이 그를 경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더욱 불쾌하여 방통에게 말하기를,
 
75
“공은 우선 물러가시오. 공을 쓸 때가 되면 부르리다.”
 
76
하니, 방통이 길게 탄식을 하고 나갔다. 노숙이 말하기를,
 
77
“주공께서 어찌 방사원(방통)을 쓰지 않으십니까?”
 
78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79
“미친 선비를 써서 무엇이 이롭겠소?”
 
80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81
“적벽대전 당시에 이 사람이 연환책을 바쳐서 첫째가는 공을 세웠습니다. 주공께서 반드시 알아주셔야 합니다.”
 
82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83
“그때는 조조가 스스로 선박에 못질을 한 것이지 반드시 그 사람의 공이라 할 수는 없소. 나는 맹세코 그를 쓰지 않겠소.”
 
84
했다.
 
 
85
魯肅出謂龐統曰:“非肅不薦足下,奈吳侯不肯用公。公且耐心。”統低頭長歎不語。肅曰:“公莫非無意於吳中乎?”統不答。肅曰:“公抱匡濟之才,何往不利?可實對肅言,將欲何往?”統曰:“吾欲投曹操去也。”肅曰:“此明珠暗投矣,可往荊州投劉皇叔,必然重用。”統曰:“統意實欲如此,前言戲耳。”肅曰:“某當作書奉薦,公輔玄德,必令孫、劉兩家,無相攻擊,同力破曹。”統曰:“此某平生之素志也。”乃求肅書。徑往荊州來見玄德。
 
86
노숙이 나가서 방통에게 말하기를,
 
87
“제가 족하를 천거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후께서 공을 쓰려 하지 않으니 어쩌겠소. 공께서 잠시 참고 기다리시오.”
 
88
했다. 방통이 고개를 숙여 장탄식하며 아무 말이 없자 노숙이 말하기를,
 
89
“공께서 동오에 머물 뜻이 없는 것은 아니오?”
 
90
하니, 방통이 대답하지 않았다. 노숙이 말하기를,
 
91
“공은 세상을 구제할 재주를 가졌는데 어딜 간들 이롭지 않겠소? 제 말에 사실대로 말씀해주시오. 어디로 가려 하시오?”
 
92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93
“조조에게 넘어가고 싶소.”
 
94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95
“그것은 밝은 구슬을 어둠 속에 던지는 셈이오. 형주로 가서 유황숙에게 투신하시면 반드시 중용해주실 것이오.”
 
96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97
“제 뜻도 실은 그리고 가고 싶소. 앞의 말은 농담일 뿐이오.”
 
98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99
“제가 서찰을 작성하여 추천하겠소. 공께서 현덕을 보필하시거든 반드시 손권과 유비 양가끼리 서로 공격하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조조를 격파하게 만들어 주시오.”
 
100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101
“그것이 제 평소의 뜻이오.”
 
102
했다. 이에 노숙의 서찰을 받아 곧장 형주로 현덕을 만나러 갔다.
 
 
103
此時孔明按察四郡未回,門吏傳報:“江南名士龐統,特來相投。”玄德久聞統名,便教請入相見。統見玄德,長揖不拜。玄德見統貌陋,心中亦不悅,乃問統曰:“足下遠來不易?”統不拿出魯肅、孔明書投呈,但答曰:“聞皇叔招賢納士,特來相投。”玄德曰:“荊楚稍定,苦無閑職。此去東南數百裏,有一縣名耒陽縣,缺一縣宰,屈公任之,如後有缺,卻當重用。”
 
104
이때 공명은 4개 군을 둘러보느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문지기가 전하기를,
 
105
“강동의 명사 방통이 특별히 찾아왔다.”
 
106
고 했다. 현덕이 오래전부터 방통의 명성을 들어 곧 불러들여 만났다. 방통이 현덕을 만나 장읍(두 손을 맞잡아 쥐고 아래위로 흔들며 하는 인사)할 뿐 절을 하지 않았다. 현덕이 보니 방통의 외모가 못났으므로 마음속이 역시 기쁘지 않아서 방통에게 묻기를,
 
107
“족하께서 멀리 오시느라 힘이 드셨지요?”
 
108
하니, 방통이 노숙의 서찰을 꺼내지도 않고 아울러 공명의 서찰도 내지 않은 채 다만 대답하기를,
 
109
“듣자니 황숙께서 어진 인재들을 불러 받아들이신다고 하기에 특별히 찾아왔습니다.”
 
110
현덕이 말하기를,
 
111
“형주와 초나라 지역이 겨우 평정돼 빈 관직이 전혀 없소. 여기서 동남쪽 수백 리에 뇌양현이라는 고을이 있는데 마침 현령 자리가 비어 있으니 보잘 것 없으나마 공께서 맡아 주시기 바라오. 훗날 자리가 비면 마땅히 중용하겠소.”
 
112
했다.
 
 
113
統思:‘玄德待我何薄!’欲以才學動之,見孔明不在,只得勉強相辭而去。統到耒陽縣,不理政事,終日飲酒爲樂;一應錢糧詞訟,並不理會。有人報知玄德,言龐統將耒陽縣事盡廢。玄德怒曰:“豎儒焉敢亂吾法度!”遂喚張飛分付,引從人去荊南諸縣巡視:“如有不公不法者,就便究問。恐於事有不明處,可與孫乾同去。”張飛領了言語,與孫乾前至耒陽縣。軍民官吏,皆出郭迎接,獨不見縣令。飛問曰:“縣令何在?”同僚覆曰:“龐縣令自到任及今,將百餘日,縣中之事,並不理問,每日飲酒,自旦及夜,只在醉鄉。今日宿酒未醒,猶臥不起。”
 
114
방통이 생각하기를,‘현덕이 나를 어찌 이리 박대하는가?’생각하고, 자신의 재주와 학식으로써 그를 움직여 보고자 했다. 공명이 있지 아니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억지로 (현덕과)작별하여 떠났다. 방통이 뇌양현에 도착한 뒤 정사를 돌보지 않고 종일 음주를 즐겼다. 일체의 재물(세금) 관련 소송도 아울러 처리하지 않았다. 누군가 현덕에게 이를 보고하며 방통이 뇌양현의 사무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 말했다. 현덕이 노하여 말하기를,
 
115
“못난 선비가 어찌 감히 내 법도를 어지럽히느냐!”
 
116
하고, 곧 장비를 불러 하인들을 이끌고 형주 남쪽 여러 현을 순시하라고 분부하기를,
 
117
“공정하지 않거나 불법을 저지른 자가 있거든 신문하라. 사무 처리가 밝지 못할까 두려우니 손건과 동행하라.”
 
118
고 했다. 장비가 그 말을 받들어서 손건과 더불어 뇌양현에 이르렀다. 군인과 민간, 관리들이 모두 성곽을 나와 영접했지만 오직 현령만 보이지 않았다. 장비가 묻기를,
 
119
“현령은 어디 있는가?”
 
120
하니, 동료가 엎드려 말하기를,
 
121
“방 현령께서 부임하신 이래 지금까지 곧 1백 일이 넘어가는데 현 안의 사무를 전혀 처리하지 않으시고 매일 음주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만취해 있습니다. 오늘도 숙취가 깨지 않아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22
했다.
 
 
123
張飛大怒,欲擒之。孫乾曰:“龐士元乃高明之人,未可輕忽。且到縣問之。如果於理不當,治罪未晚。”飛乃入縣,正廳上坐定,教縣令來見。統衣冠不整,扶醉而出。飛怒曰:“吾兄以汝爲人,令作縣宰,汝焉敢盡廢縣事!”統笑曰:“將軍以吾廢了縣中何事?”飛曰:“汝到任百餘日,終日在醉鄉,安得不廢政事?”統曰:“量百裏小縣,些小公事,何難決斷!將軍少坐,待我發落。”
 
124
장비가 크게 노하여 체포하려 하자 손건이 말하기를,
 
125
“방사원(방통)은 고명하신 분이니 아직 함부로 할 수 없소. 우선 현으로 가서 물어봅시다. 만약 일 처리가 부당하면 그때 치죄해도 늦지 않소.”
 
126
했다. 장비가 이에 현청으로 들어가 대청 위에 자리잡고 앉아 현령을 오라고 했다. 방통이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술에 취해 나왔다. 장비가 노하여 말하기를,
 
127
“내 형께서 너를 인물이라 여기어서 현령을 맡기셨거늘 너는 어찌 감히 현의 사무를 모조리 폐했느냐?”
 
128
하니,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129
“장군께서 저더러 현의 무슨 사무를 폐하였다고 그러시오?”
 
130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131
“네가 부임한 지 1백여 일인데 종일 만취해 있으니 어떻게 정사를 폐한 게 아니냐?”
 
132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133
“이까짓 백 리의 작은 현에서 약간의 사무쯤이야 처리하는데 무엇이 어렵겠소? 장군은 잠시 앉아 내가 처리하는 것을 기다리시오.”
 
134
했다.
 
 
135
隨即喚公吏,將百餘日所積公務,都取來剖斷。吏皆紛然齎抱案卷上廳,訴詞被告人等,環跪階下。統手中批判,口中發落,耳內聽詞,曲直分明,並無分毫差錯。民皆叩首拜伏。不到半日,將百餘日之事,盡斷畢了,投筆於地而對張飛曰:“所廢之事何在!曹操、孫權,吾視之若掌上觀文,量此小縣,何足介意!”
 
136
이어서 공무원을 불러 1백여 일 동안 쌓인 공무를 모조리 가져오게 하여 판단하니 관리들이 모두 바쁘게 안건을 가져와 대청 위에서 판결을 구한다. 소송 피고인 등은 섬돌 아래 둥글게 무릎 꿇으니, 방통이 손으로는 판결하고 입으로는 처리하며 귀로는 송사를 듣는데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털끝만치도 어긋나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반나절이 못 돼 1백여 일의 (쌓인) 사무를 모두 처리하더니 붓을 땅에 내던지고 장비에게 말하기를,
 
137
“폐한 사무가 어디 있소? 조조와 손권도 내 손금 보듯 하는데 이깟 작은 현이야 어찌 족히 개의하겠소!”
 
138
했다.
 
 
139
飛大驚,下席謝曰:“先生大才,小子失敬。吾當於兄長處極力舉薦。”統乃將出魯肅薦書。飛曰:“先生初見吾兄,何不將出?”統曰:“若便將出,似乎專藉薦書來幹謁矣。”飛顧謂孫乾曰:“非公則失一大賢也。”遂辭統回荊州見玄德,具說龐統之才。玄德大驚曰:“屈待大賢,吾之過也!”飛將魯肅薦書呈上。玄德拆視之。書略曰:“龐士元非百裏之才,使處治中、別駕之任,始當展其驥足。如以貌取之,恐負所學,終爲他人所用,實可惜也!”玄德看畢,正在嗟歎,忽報孔明回。玄德接入,禮畢,孔明先明曰:“龐軍師近日無恙否?”玄德曰:“近治耒陽縣,好酒廢事。”
 
140
장비가 크게 놀라 자리에서 내려와 사죄하기를,
 
141
“선생은 큰 재목이시거늘 못난 놈이 무례하였소. 내 마땅히 형장께 가서 극력 천거하겠소.”
 
142
했다. 방통이 이에 노숙의 추천서를 내놓자 장비가 말하기를,
 
143
“선생께서 당초 제 형을 만나실 때 어째서 내놓지 않으셨소?”
 
144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145
“만약 바로 내놨으면 오로지 추천서에 의지해 찾아와 사사롭게 알현을 청하는 것 같았을 것이오.”
 
146
했다. 장비가 고개를 돌려 손건에게 말하기를,
 
147
“공이 아니었으면 대현을 잃을 뻔했소.”
 
148
했다. 마침내 방통에게 작별하고 형주로 되돌아가 현덕을 만나 방통의 재능을 두루 이야기했다.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49
“대현을 박대하다니 나의 잘못이구나!”
 
150
하니, 장비가 노숙의 추천서를 바쳤다. 현덕이 뜯어서 보니 대략 이르기를,
 
151
“방사원(방통)은 백리지재(백리의 작은 땅이나 다스릴 재목)가 아니오니 치중(보좌관)이나 별가(보좌관)의 임무를 맡겨야 비로소 그 뛰어난 기량을 펼칠 수 있습니다. 만약 생김새만 보고서 그 학식을 저버려서 다른 사람이 쓰게 되면 참으로 아까울까 두렵습니다.”
 
152
했다. 현덕이 읽고 나서 탄식하고 있는데, 문득 공명이 돌아왔다고 보고했다. 현덕이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자 공명이 먼저 말하기를,
 
153
“방군사께서 요새 무양 평안하시지 않습니까?”
 
154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55
“요새 뇌양현을 다스리게 했는데 술을 좋아해 사무를 폐하였습니다.”
 
156
했다.
 
 
157
孔明笑曰:“士元非百裏之才,胸中之學,勝亮十倍。亮曾有薦書在士元處,曾達主公否?”玄德曰:“今日方得子敬書,卻未見先生之書。”孔明曰:“大賢若處小任,往往以酒糊塗,倦於視事。”玄德曰:“若非吾弟所言,險失大賢。”隨即令張飛往耒陽縣敬請龐統到荊州。玄德下階請罪。統方將出孔明所薦之書。玄德看書中之意,言鳳雛到日,宜即重用。玄德喜曰:“昔司馬德操言:‘伏龍、鳳雛,兩人得一,可安天下。’今吾二人皆得,漢室可興矣。”遂拜龐統爲副軍師中郎將,與孔明共贊方略,教練軍士,聽候征伐。
 
158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159
“사원(방통)은 백리지재가 아니니 그 흉중의 학식은 저보다 열배는 낫습니다. 제가 일찍이 추천서를 사원에게 주었었는데 주공께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160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61
“오늘에야 자경(노숙)의 서찰을 봤을 뿐 아직 선생의 글은 못 봤습니다.”
 
162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63
“대현(아주 어진 사람)에게 만약 작은 자리를 맡기면 왕왕 술에 빠져 사무를 보는 데 게으르게 됩니다.”
 
164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65
“제 아우의 말이 아니었으면 자칫 대현을 잃을 뻔했습니다.”
 
166
했다. 이어 즉시 장비를 뇌양현으로 보내 방통을 형주로 불러서 현덕이 섬돌 아래에서 죄를 청했다. 방통이 비로소 공명의 추천서를 꺼냈다. 현덕이 그 글의 뜻을 살피니 봉추가 도착하는 날 즉시 중용해야 한다고 했다. 현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167
“지난날 사마덕조가 말씀하시기를, ‘복룡과 봉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만 얻어도 가히 천하를 안정시킨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두 사람 모두 얻었으니 한실을 가히 중흥시키겠습니다.”
 
168
하고, 곧 방통을 부군사 중랑장으로 삼아 공명과 더불어 계획과 책략을 마련하고 군사를 교련해 정벌을 대비하게 했다.
 
 
169
早有人報到許昌,言劉備有諸葛亮、龐統爲謀士,招軍買馬,積草屯糧,連結東吳,早晚必興兵北伐。曹操聞之,遂聚 衆謀士商議南征。荀攸進曰:“周瑜新死,可先取孫權,次攻劉備。”操曰:“我若遠征,恐馬騰來襲許都。前在赤壁之時,軍中有訛言,亦傳西涼入寇之事,今不可不防也。”荀攸曰:“以愚所見,不若降詔加馬騰爲征南將軍,使討孫權,誘入京師,先除此人,則南征無患矣。”操大喜,即日遣人齎詔至西涼召馬騰。
 
170
어느새 누군가 허창으로 가서 보고하기를, 유비가 제갈량과 방통을 모사로 삼아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고 말먹이 풀과 군량을 쌓아 동오와 연결하여, 조만간 반드시 병력을 일으켜 북쪽을 정벌할 것이라 했다. 조조가 듣고서 모사들을 불러 모아 남쪽 정벌을 상의하자 순유가 나와 말하기를,
 
171
“주유가 얼마 전에 죽었으니 손권을 먼저 취하고 다음에 유비를 공격해야 합니다.”
 
172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173
“내가 만약 멀리 정벌하러 가면 아마도 마등이 허도를 내습할 것이오. 지난번 적벽대전 당시에 군중에 헛소문이 돌아 서량 땅에서 침입할 것이라 전하였으니 이제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174
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175
“제 못난 소견으로는, 조서를 내려 마등에게 정남장군의 직위를 더해 주고 손권을 토벌하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사로 유인해서 먼저 이 사람을 제거하고 나서 남쪽을 정벌한다면 아무 우환이 없게 됩니다.”
 
176
하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그날 바로 사람을 보내 조서를 갖고 서량으로 가서 마등을 부르게 했다.
 
 
177
卻說騰字壽成,漢伏波將軍馬援之後,父名肅,字子碩,桓帝時爲天水蘭幹縣尉;後失官流落隴西,與羌人雜處,遂娶羌女生騰。騰身長八尺。體貌雄異,稟性溫良,人多敬之。靈帝末年,羌人多叛,騰招募民兵破之。初平中年,因討賊有功,拜征西將軍,與鎮西將軍韓遂爲弟兄。當日奉詔,乃與長子馬超商議曰:“吾自與董承受衣帶詔以來,與劉玄德約共討賊,不幸董承已死,玄德屢敗。我又僻處西涼,未能協助玄德。今聞玄德已得荊州,我正欲展昔日之志,而曹操反來召我,當是如何?”馬超曰:“操奉天子之命以召父親。今若不往,彼必以逆命責我矣。當乘其來召,竟往京師,於中取事,則昔日之志可展也。”
 
178
한편, 마등은 자가 수성이고 한나라 복파장군 마원의 후예다. 부친의 이름은 숙이고 자는 자석인데 환제 시절에 천수군 난간현의 현위(경찰서장)가 되었다. 뒤에 관직을 잃고 농서 땅으로 흘러 들어가 강인(강족)들과 섞여 살며 강인 여자를 맞이하여 마등을 낳았다. 마등은 신장이 8척이고 생김새가 우람하고 기이한데, 품성이 따뜻하고 어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공경했다. 영제 말년에 많은 강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등이 민병을 모집하여 격파했다. 초평(헌제의 연호) 중년에 도적을 토벌한 공으로 정서장군에 제수되고 진서장군 한수 와 의형제가 되었다. 그날 조서를 받고 맏아들 마초와 상의하기를,
 
179
“나는 동승에게서 의대에 숨긴 밀조를 받은 이래, 유현덕과 더불어 역적을 토벌하고자 했으나 불행히 동승은 죽었고 현덕은 거듭 패전했다. 나 또한 서량으로 피신하여 아직까지 현덕과 협조할 수 없었다. 이제 듣자니 현덕은 이미 형주를 얻었다 하니, 내가 지난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데 도리어 조조가 나를 부르니 이를 어찌해야겠느냐?”
 
180
하니, 마초가 말하기를,
 
181
“조조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부친을 부르니 이제 만약 가지 않으시면 그는 반드시 우리를 역적이라 꾸짖을 것입니다. 마땅히 그 조서를 보낸 것을 이용해 경사로 가서 틈을 노려 성사하면 지난날의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182
했다.
 
 
183
馬騰兄子馬岱諫曰:“曹操心懷叵測,叔父若往,恐遭其害。”超曰:“兒願盡起西涼之兵,隨父親殺入許昌,爲天下除害,有何不可?”騰曰:“汝自統羌兵保守西涼,只教次子馬休、馬鐵並侄馬岱隨我同往。曹操見有汝在西涼,又有韓遂相助,諒不敢加害於我也。”超曰:“父親欲往,切不可輕入京師。當隨機應變,觀其動靜。”騰曰:“吾自有處,不必多慮。”
 
184
마등의 형의 아들, 마대가 간언하기를,
 
185
“조조의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숙부께서 가신다면 아마 그에게서 해를 입을 것입니다.”
 
186
하니, 마초가 말하기를,
 
187
“제가 서량의 병력을 모두 일으켜 부친을 따라 허창으로 돌입해 천하를 위해서 해로운 자를 제거한다면 안 될 것이 무엇이겠소?”
 
188
했다. 마등이 말하기를,
 
189
“네가 직접 강족 병사들을 거느려 서량을 지키도록 하고, 다만 네 동생 마휴와 마철, 아울러 조카 마대가 나를 따라 함께 가도록 하자. 조조는 네가 서량에 있고 또한 한수가 돕는 것을 보면 짐작건대 감히 내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190
하니, 마초가 말하기를,
 
191
“부친께서 가신다면 절대 함부로 경사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마땅히 임기응변으로 그들의 동정을 살피셔야 합니다.”
 
192
했다. 마등이 말하기를,
 
193
“내가 알아서 조처할 테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194
했다.
 
 
195
於是馬騰乃引西涼兵五千,先教馬休、馬鐵爲前部,留馬岱在後接應,迤邐望許昌而來。離許昌二十裏屯住軍馬。曹操聽知馬騰已到,喚門下侍郎黃奎分付曰:“目今馬騰南征,吾命汝爲行軍參謀,先至馬騰寨中勞軍,可對馬騰說:西涼路遠,運糧甚難,不能多帶人馬。我當更遣大兵,協同前進。來日教他入城面君,吾就應付糧草與之。”
 
196
이에 마등이 곧 서량 병사 5천을 이끌고 먼저 마휴와 마철을 선봉으로 삼고 마대를 뒤에서 접응하게 하며 줄줄이 허창을 향하여 가더니, 허창에서 2십 리 떨어진 곳에 군마를 주둔시켰다. 조조가 마등이 이미 도착했음을 듣고 문하시랑 황규를 불러 분부하기를,
 
197
“지금 마등이 남쪽 정벌에 나서는데 내가 그대를 행군참모로 임명할 테니, 먼저 마등의 영채로 가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마등에게 전하기를,‘서량은 길이 멀어 군량 운반이 몹시 어려우니 인마를 많이 데려갈 수 없소. 내가 마땅히 많은 병력을 파견하여 협동해서 전진하게 하겠소.' 라고 하시오. 내일 그로 하여금 성 안으로 들어와 임금을 면담하게 하면 나는 바로 군량과 말먹이 풀을 주겠소.”
 
198
했다.
 
 
199
奎領命,來見馬騰。騰置酒相待。奎酒半酣而言曰:“吾父黃琬死於李傕、郭汜之難,嘗懷痛恨。不想今日又遇欺君之賊!”騰曰:“誰爲欺君之賊?”奎曰:“欺君者操賊也。公豈不知之,而問我耶?”騰恐是操使來相探,急止之曰:“耳目較近,休得亂言。”奎叱曰:“公竟忘卻衣帶詔乎!”騰見他說出心事,乃密以實情告之。奎曰:“操欲公入城面君,必非好意。公不可輕入。來日當勒兵城下。待曹操出城點軍,就點軍處殺之,大事濟矣。”
 
200
황규가 명령을 받들어 가서 마등을 만나니 마등이 술을 내어 대접했다. 황규가 제법 취하자 말하기를,
 
201
“제 부친 황완께서 이각, 곽사의 난리 중에 돌아가시어 일찍이 통한을 품었소. 뜻밖에 오늘날 또다시 임금을 업신여기는 역적을 만날 줄을 몰랐소!”
 
202
하니, 마등이 말하기를,
 
203
“누구를 임금을 업신여기는 역적이라 하시오?”
 
204
했다. 황규가 말하기를,
 
205
“임금을 업신여기는 놈은 바로 조조 역적이요. 공께서 어찌 모르시고 내게 물으시오?”
 
206
하니, 마등은 이것이 조조가 시켜 염탐하는 것일까 두려워 급히 제지하여 말하기를,
 
207
“사람들의 이목이 있으니 어지러운 말을 삼가시오.”
 
208
했다. 황규가 꾸짖기를,
 
209
“공은 결국 의대의 밀조를 잊으셨소?”
 
210
하니, 마등은 그가 마음속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은밀히 실정을 말하자 황규가 말하기를,
 
211
“조조가 공을 성 안으로 불러 들여 임금을 면담하게 한다는데 반드시 좋은 뜻은 아니오. 공은 가벼이 성에 들어오지 말고, 내일 병력을 성 아래로 인솔해 오시오. 조조가 출성하여 군대를 점검하기를 기다려서 점검하는 자리에서 그를 죽이면 대사를 이룰 수 있소.”
 
212
했다.
 
 
213
二人商議已定。黃奎回家,恨氣未息。其妻再三問之,奎不肯言。不料其妾李春香、與奎妻弟苗澤私通。澤欲得春香,正無計可施。妾見黃奎憤恨,遂對澤曰:“黃侍郎今日商議軍情回,意甚憤恨,不知爲誰?”澤曰:“汝可以言挑之曰:‘人皆說劉皇叔仁德,曹操奸雄,何也?’看他說甚言語。”
 
214
두 사람이 상의를 마치고 황규가 귀가하지만 한스러운 기색이 식지 않았다. 그 아내가 거듭 묻지만 황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의 첩 이춘향이 황규 아내의 동생 묘택과 사통하고 있었다. 묘택은 춘향을 차지하고 싶지만 아무 계책이 없었다. 황규가 분개하고 한스러워 하는 것을 본 그 첩이 곧 묘택에게 말하기를,
 
215
“황 시랑께서 오늘 군정을 상의하고 돌아와 몹시 분개하고 한스러워 하는 뜻이 누구 때문인지 모르겠소?”
 
216
하니, 묘택이 말하기를,
 
217
“네가 이런 말로 건드려 봐라. ‘사람들이 모두 유황숙은 인덕이 있지만 조조는 간웅이라 말하는데 왜 그렇습니까?’그래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봐라.”
 
218
했다.
 
 
219
是夜黃奎果到春香房中。妾以言挑之。奎乘醉言曰:“汝乃婦人,尚知邪正,何況我乎?吾所恨者,欲殺曹操也!”妾曰:“若欲殺之,如何下手?”奎曰:“吾已約定馬將軍,明日在城外點兵時殺之。”妾告於苗澤,澤報知曹操。操便密喚曹洪、許褚分付如此如此;又喚夏侯淵、徐晃分付如此如此。各人領命去了,一面先將黃奎一家老小拿下。
 
220
이날 밤 과연 황규가 춘향의 방으로 왔다. 그 첩이 그 말로 건드리자 황규가 취한 김에 말하기를,
 
221
“자네 같은 부인도 사악한 것과 옳은 것을 알거늘 하물며 내가 모르겠는가? 내가 한스러워 하는 까닭은 조조를 죽이고자 해서이네.”
 
222
하니, 첩이 말하기를,
 
223
“만약 그를 죽이시겠다면 어떻게 손을 쓰시겠습니까?”
 
224
했다. 황규가 말하기를,
 
225
“내가 이미 마 장군과 약정하여 내일 성 밖에서 군사를 점검할 때 죽일 것이네.”
 
226
했다. 첩이 묘택에게 고하자 묘택이 조조에게 보고해 알렸다. 조조가 곧 은밀히 조홍과 허저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 분부했다. 또 하후연과 서황에게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 분부했다. 각자 명을 받들어 떠나고 한편으로 황규 일가의 식구들을 체포했다.
 
 
227
次日,馬騰領著西涼兵馬,將次近城,只見前面一簇紅旗,打著丞相旗號。馬騰只道曹操自來點軍,拍馬向前。忽聽得一聲炮響,紅旗開處,弓弩齊發。一將當先,乃曹洪也。馬騰急撥馬回時,兩下喊聲又起:左邊許褚殺來,右邊夏侯淵殺來,後面又是徐晃領兵殺至,截斷西涼軍馬,將馬騰父子三人困在垓心。
 
228
이튿날 마등이 서량 병마들을 거느리고 성에 점차 가까이 가자 앞쪽에 한 무리 붉은 깃발이 보이는데 승상의 깃발이 뚜렷했다. 마등이 조조가 스스로 군사를 점검하러 온다고 여겨, 말에 박차를 가해 앞으로 나갔다. 문득 호포 소리가 한차례 울리더니 붉은 깃발이 갈라지며 활과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한 장수가 앞장섰는데 바로 조홍이었다. 마등이 급히 말머리를 돌리자 양쪽에서도 함성이 일어났다. 왼쪽은 허저가 쇄도하고 오른쪽은 하후연이 쇄도하고 뒷쪽도 서황이 병력을 거느리고 돌진하여 서량 병마를 끊으니 곧 마등 부자 세 사람이 포위 한가운데에 갇혔다.
 
 
229
馬騰見不是頭,奮力沖殺。馬鐵早被亂箭射死。馬休隨著馬騰,左沖右突,不能得出。二人身帶重傷,坐下馬又被箭射倒。父子二人俱被執。曹操教將黃奎與馬騰父子,一齊綁至。黃奎大叫:“無罪!”操教苗澤對證。馬騰大罵曰:“豎儒誤我大事!我不能爲國殺賊,是乃天也!”操命牽出。馬騰罵不絕口,與其子馬休,及黃奎,一同遇害。後人有詩歎馬騰曰:“父子齊芳烈,忠貞著一門,捐生圖國難,誓死答君恩。嚼血盟言在,誅奸義狀存。西涼推世胄,不愧伏波孫!”
 
230
마등이 사정이 불리함을 보고 힘껏 돌격했다. 마철은 벌써 어지러운 화살을 맞아 죽었다. 마휴가 마등을 수행해 좌충우돌하나 탈출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중상을 입고 타고 있던 말도 화살을 맞아 넘어지니 부자 두 사람이 모두 사로잡혔다. 조조가 황규를 마등 부자에게 끌고 오게 하여 나란히 포박했다. 황규가 크게 외치기를,
 
231
“나는 죄가 없다!”
 
232
하니, 조조가 묘택과 대질시켰다. 마등이 크게 욕하기를,
 
233
“못난 선비가 나의 큰일을 그르쳤구나! 내가 나라를 위해 역적을 죽이지 못하다니 이것도 하늘의 뜻이다!”
 
234
했다. 조조가 끌어내라고 명하지만 마등은 입에서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 아들 마휴 그리고 황규와 함께 살해되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마등을 탄식하기를,
 
235
“부자가 나란히 장렬하게 죽으니, 충성과 절개 한 집안에 뚜렷하구나. 목숨을 바쳐 국난을 구하고자, 죽음으로 성은에 보답하길 맹서했네. 피를 바르며 다짐하던 말과, 간웅을 주살하자던 의장은 남아 있네. 서량에서 대대로 가문을 이었으니, 복파장군의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구나.”
 
236
했다.
 
 
237
苗澤告操曰:“不願加賞,只求李春香爲妻。”操笑曰:“你爲了一婦人,害了你姐夫一家,留此不義之人何用!”便教將苗澤、李春香與黃奎一家老小並斬於市。觀者無不歎息。後人有詩歎曰:“苗澤因私害藎臣,春香未得反傷身。奸雄亦不相容恕,枉自圖謀作小人。”曹操教招安西涼兵馬,諭之曰:“馬騰父子謀反,不幹 衆人之事。”一面使人分付把住關隘,休教走了馬岱。
 
238
묘택이 조조에게 고하기를,
 
239
“포상을 바라는 게 아니고 다만 이춘향을 아내로 삼고자 합니다.”
 
240
하니, 조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241
“네가 한낱 부인 때문에 자형 일가를 해쳤는데, 이따위 의롭지 못한 놈을 무엇에 쓰겠느냐!”
 
242
하고, 곧 묘택과 이춘향을 황규 일가의 노소와 함께 저잣거리에서 참했다. 이를 보고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243
“묘택이 사사로이 충신을 해쳤지만, 춘향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제 몸이 죽었네. 간웅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으니, 사악한 놈이 스스로 못난 짓을 도모했구나.”
 
244
했다. 조조가 서량 군사들에게 투항을 권유하며 타일러 말하기를,
 
245
“마등 부자가 모반했지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게 아니다.”
 
246
하고, 한편으로 관문과 길목을 지키도록 분부하여 마대를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
 
 
247
且說馬岱自引一千兵在後。早有許昌城外逃回軍士,報知馬岱。岱大驚,只得棄了兵馬,扮作客商,連夜逃遁去了。曹操殺了馬騰等,便決意南征。忽人報曰:“劉備調練軍馬,收拾器械,將欲取川。”操驚曰:“若劉備收川,則羽翼成矣。將何以圖之?”言未畢,階下一人進言曰:“某有一計,使劉備、孫權不能相顧,江南、西川皆歸丞相。”正是:西州豪傑方遭戮,南國英雄又受殃。
 
248
한편, 마대는 스스로 1천 병력을 거느리고 뒤에 있었는데, 허창성 밖에서 달아난 군사가 급히 돌아와 마대에게 보고해 알렸다. 마대가 크게 놀라서 어쩔 수 없이 병마를 버리고 떠돌이 장사꾼으로 변장해 밤새 달아났다. 조조가 마등 등을 죽이고서 곧 남쪽 정벌을 결의했다. 문득 누군가 보고하기를,
 
249
“유비가 군마를 조련하고 무기를 수습하여 서천을 취하려 합니다.”
 
250
하니, 조조가 놀라서 말하기를,
 
251
“만약 유비가 서천을 취하면 날개를 다는 것이오.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겠소?”
 
252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섬돌 아래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253
“제가 계책이 하나 있사오니 유비와 손권으로 하여금 서로 돌아보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강남과 서천이 모두 승상께 들어올 것입니다.”
 
254
했다. 이야말로, 서주의 호걸이 방금 죽음을 당했는데, 남국의 영웅도 재앙을 만나겠구나.
 
 
255
未知獻計者是誰,且看下文分解。
 
256
계책을 바친 이가 누구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57회 시상구에서 와룡이 문상하고 뇌양현에서 봉추가 일을 처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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