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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7회 원공로(원술)가 7군을 크게 일으키고, 조맹덕(조조)이 세 장수와 회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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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十七回 袁公路大起七軍 曹孟德會合三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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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원공로(원술)가 7군을 크게 일으키고, 조맹덕(조조)이 세 장수와 회합하다.
 
 
3
卻說袁術在淮南,地廣糧多,又有孫策所質玉璽,遂思僭稱帝號;大會群下議曰:“昔漢高祖不過泗上一亭長,而有天下;今曆年四百,氣數已盡,海內鼎沸。吾家四世三公,百姓所歸;吾效應天順人,正位九五。爾 衆人以爲何如?”主簿閻象曰:“不可。昔周後稷積德累功,至於文王,三分天下有其二,猶以服事殷。明公家世雖貴,未若有周之盛;漢室雖微,未若殷紂之暴也。此事決不可行。”術怒曰:“吾袁姓出於陳。陳乃大舜之後。以土承火,正應其運。又讖 云:代漢者,當塗高也。吾字公路,正應其讖。又有傳國玉璽。若不爲君,背天道也。吾意已決,多言者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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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원술이 회남에 있는데, 땅이 넓고 식량이 많으며, 또 손책이 맡긴 옥새를 가지고 있어서 마침내 황제를 참칭(신분에 넘치는 칭호)하려고 생각했다. 수하를 크게 모아 의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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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나라 고조께서 사상의 한 정장에 불과하였으나 천하를 가졌소. 지금까지 4백 년이 지나 기운과 운수가 이미 다하고, 천하가 솥이 끓듯하오. 우리 가문은 4대에 3공이 나왔고, 백성들이 의지하는 바요. 내가 하늘에 응하고 민심을 따라, 바로 구오(주역 대괘의 다섯째 양효,임금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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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주부 염상이 말하기를,
 
7
“불가합니다. 옛날 주나라는 후직이 덕을 쌓고 거듭 공을 이루었으며, 문왕에 이르러서 천하의 3분의 2를 가졌으나, 오히려 은나라에 복속하고 섬겼습니다. 명공의 집안이 대대로 비록 귀하나, 아직 주나라의 번성에 못 미칩니다. 한실이 비록 쇠미하나 아직 은나라 주왕의 폭정과 같지는 않습니다. 이 일은 결단코 행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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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원술이 노하여 말하기를,
 
9
“우리 원 씨는 진(陳)나라에서 나왔다. 진나라는 곧 위대한 순임금의 후예다. 토(土)로써 화(火)를 잇는 게, 바로 그 운수에 응하는 것이다. 또한 예언서에 이르기를,‘한나라를 대신하는 것은 당연히 길이 높다.’고 했는데, 내 자가 공로(公路)이니 바로 그 예언에 맞다. 또한 전국옥새도 가졌으니, 이러고도 임금이 안 되면 천도를 어기는 것이다. 내 뜻은 이미 결정됐으니, 여러 말을 하는 자는 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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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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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建號仲氏,立台省等官,乘龍鳳輦,祀南北郊,立馮方女爲後,立子爲東宮。因命使催取呂布之女爲東宮妃,卻聞布已將韓胤解赴許都,爲曹操所斬,乃大怒;遂拜張勳爲大將軍,統領大軍二十餘萬,分七路征徐州:第一路大將張勳居中,第二路上將橋蕤居左,第三路上將陳紀居右,第四路副將雷薄居左,第五路副將陳蘭居右,第六路降將韓暹居左,第七路降將楊奉居右。各領部下健將,克日起行。命兗州刺史金尚爲太尉,監運七路錢糧。尚不從,術殺之。以紀靈爲七路都救應使。術自引軍三萬,使李豐、梁剛、樂就爲催進使,接應七路之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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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연호를 중씨로 하고, 어사대와 삼성의 관청을 세우고, 용봉연(천자의 가마)을 타고, 남북으로 교사(들 제사)를 올리고, 풍방의 딸을 황후로 삼고, 아들을 동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사신을 보내서 여포의 딸을 데려와서 동궁비로 삼고자 재촉하였다. 그런데 도리어, 여포가 이미 한윤을 허도로 압송해서, 조조가 참한 걸 듣고 크게 노했다. 그리하여 장훈을 대장군으로 삼고, 20여만 대군을 거느리고, 일곱 갈래로 서주를 정벌하게 했다. 제1로는 대장군 장훈이 가운데를 맡고, 제2로는 상장 교유가 좌측을 맡으며, 제3로는 상장 진기가 우측을 맡고,제4로는 부장 뇌박이 좌측을 맡으며,제5로는 부장 진란이 우측을 맡고, 제6로는 귀순한 장수 한섬이 좌측을 맡으며, 제7로는 귀순한 장수 양봉이 우측을 맡았다. 각각 부하인 건장한 장수들을 거느리고 날짜를 정해 기병했다. 연주자사 김상을 태위로 삼고 일곱 갈래 군의 군량 운반을 맡겼지만 김상이 따르지 않자 원술이 그를 죽이고 기령을 칠로도구응사(일곱 갈래 군사를 모두 구원하는 관리)로 삼는다. 원술 스스로 3만 병력을 이끌고, 이풍, 양강, 악취를 최진사(진군을 재촉하는 관리)로 삼아, 일곱 갈래 병력과 접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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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布使人探聽得張勳一軍從大路徑取徐州,橋蕤一軍取小沛,陳紀一軍取沂都,雷薄一軍取琅琊,陳蘭一軍取碣石,韓暹一軍取下邳,楊奉一軍取浚山:七路軍馬,日行五十裏,於路劫掠將來。乃急召 衆謀士商議,陳宮與陳珪父子俱至。陳宮曰:“徐州之禍,乃陳珪父子所招,媚朝廷以求爵祿,今日移禍於將軍。可斬二人之頭獻袁術,其軍自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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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장훈의 1군이 큰길로 곧장 서주를 취하려 하고, 교유의 1군은 소패를, 진기의 1군은 기도를, 뇌박의 1군은 낭야를, 진란의 1군은 갈석을, 한섬의 1군은 하비를, 양봉의 1군은 준산을 취하려 하는데, 일곱 갈래의 군마가 매일 5십 리를 행군하고, 길에서 약탈하며 다가온다고 했다. 이에 (여포가) 급히 여러 모사를 불러 상의하자, 진궁이 진규 부자와 함께 왔다. 진궁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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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의 재앙은 곧 진규 부자가 초래한 겁니다. 조정에 아첨하여 벼슬과 봉록을 얻어서 결국 오늘날 장군에게 재앙이 온 것이니,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원술에게 준다면 그 군사가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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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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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聽其言,即命擒下陳珪、陳登。陳登大笑曰:“何如是之懦也?吾觀七路之兵,如七堆腐草,何足介意!”布曰:“汝若有計破敵、免汝死罪。”陳登曰:“將軍若用愚夫之言,徐州可保無虞。”布曰:“試言之。”登曰:“術兵雖 衆,皆烏合之師,素不親信;我以正兵守之,出奇兵勝之,無不成功。更有一計,不止保安徐州,並可生擒袁術。”布曰:“計將安出?”登曰:“韓暹、楊奉乃漢舊臣,因懼曹操而走,無家可依,暫歸袁術;術必輕之,彼亦不樂爲術用。若憑尺書結爲內應,更連劉備爲外合,必擒袁術矣。”布曰:“汝須親到韓暹、楊奉處下書。”陳登允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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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듣고서 즉시 진규와 진등을 잡으라 명하니, 진등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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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처럼 겁이 많습니까? 제가 보니, 일곱 갈래 병력이란 일곱 무더기 썩은 풀과 같거늘, 어찌 염려할 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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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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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만약 적을 깨트릴 계책이 있다면, 너의 죽을 죄를 면해주마.”
 
22
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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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께서 만약 저의 말을 따르신다면, 서주를 보존하는데 걱정할 게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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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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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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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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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병력이 비록 많다고 하나, 모두가 오합지졸이라 평소 서로 화목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군사로 수비하고 기습병으로 이기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또 계책이 하나 있는데, 서주를 안전히 지킬 뿐 아니라 아울러 원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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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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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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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진등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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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섬과 양봉은 한나라 옛 신하로서, 조조를 두려워해서 달아났으나, 의탁할 데가 없어서 잠시 원술에게 귀순한 것입니다. 원술이 틀림없이 무시할 것이고, 그들도 원술이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글을 써서 그들과 내응하고, 다시 유비와 연결하여 밖에서 합세하면, 반드시 원술을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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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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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모름지기 직접 한섬과 양봉이 있는 곳에 가서, 글을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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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진등이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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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乃發表上許都,並致書與豫州,然後令陳登引數騎,先於下邳道上候韓暹。暹引兵至,下寨畢,登入見。暹問曰:“汝乃呂布之人,來此何幹?”登笑曰:“某爲大漢公卿,何謂呂布之人?若將軍者,向爲漢臣,今乃爲叛賊之臣,使昔日關中保駕之功,化爲烏有,竊爲將軍不取也。且袁術性最多疑,將軍後必爲其所害。今不早圖,悔之無及!”暹歎曰:“吾欲歸漢,恨無門耳。”登乃出布書。暹覽書畢曰:“吾已知之。公先回。吾與楊將軍反戈擊之。但看火起爲號,溫侯以兵相應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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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곧 표(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써서 허도에 올리고, 아울러 예주에 서신을 보내고, 그런 뒤에 진등에게 명하여 몇 기를 이끌고 먼저 하비로 가는 길가에서 한섬을 기다리게 했다. 한섬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야영 준비를 마치자, 진등이 들어가서 만났다. 한섬이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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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여포의 사람인데, 여기에 온 것은 어떤 용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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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진등이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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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나라의 공경인데 어찌 여포의 사람이라 하십니까? 장군도 예전에 한나라 신하이다가 이제는 반적의 신하가 되어 지난 날 관중에서 천자의 거가를 보위한 공로도 전부 잃게 되었으니, 속으로 가만히 장군이 취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원술은 성격이 아주 의심이 많아서 장군을 훗날 틀림없이 해칠 것입니다. 지금 어서 도모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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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한섬이 탄식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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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게 한스러울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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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진등이 곧 여포의 서신을 꺼냈다. 한섬이 편지를 읽고서 말하기를,
 
43
“알겠소. 먼저 가시오. 나는 양 장군과 함께 무기를 돌려서 치겠소. 다만 불이 치솟는 걸 신호로, 온후가 병력을 이끌고 응하면 될 것이오.”
 
44
했다.
 
 
45
登辭暹,急回報呂布。布乃分兵五路,高順引一軍進小沛,敵橋蕤;陳宮引一軍進沂都,敵陳紀;張遼、臧霸引一軍出琅琊,敵雷薄;宋憲、魏續引一軍出碣石,敵陳蘭;呂布自引一軍出大道,敵張勳。各領軍一萬,餘者守城。呂布出城三十裏下寨。張勳軍到,料敵呂布不過,且退二十裏屯住,待四下兵接應。
 
46
진등이 한선과 작별하고, 급히 돌아와서 여포에게 보고했다. 여포가 곧 병력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고순이 1군을 이끌고 소패로 나아가서 교유를 대적하고, 진궁이 1군을 이끌고 기도로 나아가 진기를, 장요와 장패가 1군을 이끌고 낭야로 나가서 뇌박을, 송헌과 위속이 1군을 이끌고 갈석으로 나가서 진란을, 여포는 스스로 군을 이끌고 큰 길로 나가서 장훈을 대적했다. 각각 1만 병력을 거느리고, 나머지는 성을 지켰다. 여포가 성 밖 30 리에 진지를 세웠다. 장훈의 군대가 왔다가 여포를 대적하기 어렵다고 보고, 다시 20 리를 물러나 주둔하고 사방 병력이 접응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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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夜二更時分,韓暹、楊奉分兵到處放火,接應呂家軍入寨。勳軍大亂。呂布乘勢掩殺,張勳敗走。呂布趕到天明,正撞紀靈接應。兩軍相迎,恰待交鋒,韓暹、楊奉兩路殺來。紀靈大敗而走,呂布引兵追殺。山背後一彪軍到,門旗開處,只見一隊軍馬,打龍鳳日月旗幡,四鬥五方旌幟,金瓜銀斧,黃鉞白旄,黃羅銷金傘蓋之下,袁術身披金甲,腕懸兩刀,立於陣前,大罵:“呂布,背主家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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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2경 무렵에 한섬과 양봉이 병력을 나누어 도처에 방화하고, 여포 쪽 병력이 진지를 공격하는 것을 접응했다. 장훈의 군사가 크게 혼란해졌다. 여포가 기세를 타고서 덮치자, 장훈이 패주했다. 여포가 추격하다가 날이 밝는데, 마침 기령이 접응하는 것과 마주쳤다. 양쪽 군사가 맞서서, 창칼을 교차하자마자, 한섬과 양봉이 두 갈래로 협공했다. 기령이 대패해서 달아나고, 여포가 병력을 이끌고 뒤쫓아 무찌르는데, 산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이르렀다. 문전의 깃발이 열린 곳에 한 대열의 군마가 보이는데, 용과 봉황, 해와 달이 그려진 깃발과 북두성의 별자리와 다섯 방향이 그려진 깃발, 금 호리병과 은 도끼,하얀 털로 깃대를 장식한 큰 도끼, 황제의 누런 일산 덮개 아래에 원술이 몸에 황금 갑옷을 입고 칼 두 자루를 차고, 진 앞으로 나와 서서 (여포를) 크게 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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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야, 이 주인을 배신한 종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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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51
布怒,挺戟向前。術將李豐挺槍來迎;戰不三合,被布刺傷其手,豐棄槍而走。呂布麾兵沖殺,術軍大亂。呂布引軍從後追趕,搶奪馬匹衣甲無數。袁術引著敗軍,走不上數裏,山背後一彪軍出,截住去路。當先一將乃關雲長也,大叫:“反賊!還不受死!”袁術慌走,餘 衆四散奔逃,被雲長大殺了一陣。袁術收拾敗軍,奔回淮南去了。
 
52
여포가 노해서, 극을 잡고서 앞으로 내달았다. 원술의 장수 이풍이 창을 잡고 맞섰지만, 싸운지 3합이 안 되어 여포가 그의 손을 찌르자 이풍은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여포가 병력을 몰아서 쳐들어오자, 원술의 군사가 크게 혼란해졌다. 여포가 군사를 이끌고 그 뒤를 추격하여, 빼앗은 말과 갑옷이 무수했다. 원술이 패잔병을 이끌고 몇 리 못 달아나서, 산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나와, 갈 길을 막았다. 선두의 장수는 바로 관운장이다. 크게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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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일으킨 도적놈아! 아직도 죽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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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원술이 황망히 달아나고, 나머지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니 관운장이 한바탕 크게 무찔렀다. 원술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회남으로 달아났다.
 
 
55
呂布得勝,邀請雲長並楊奉、韓暹等一行人馬到徐州,大排筵宴管待,軍士都有犒賞。次日,雲長辭歸。布保韓暹爲沂都牧、楊奉爲琅琊牧,商議欲留二人在徐州。陳珪曰:“不可。韓、楊二人據山東,不出一年,則山東城郭皆屬將軍也。”布然之,遂送二將暫於沂都、琅琊二處屯紥,以候恩命。陳登私問父曰:“何不留二人在徐州,爲殺呂布之根?”珪曰:“倘二人協助呂布,是反爲虎添爪牙也。”登乃服父之高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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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승리를 거두고, 관운장과 아울러 양봉, 한섬 등의 일행 인마를 서주로 초청하여, 크게 술자리를 베풀어 환대했다. 군사들은 모두 음식으로 위로하고 상을 주었다. 이튿날, 관운장이 작별하고 돌아갔다. 여포가 한섬을 기도목으로, 양봉을 낭야목으로 삼고, 상의하여 두 사람을 서주에 머물게 하려 하자 진규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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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섬과 양봉 두 사람이 산동에 주둔하면 1년이 못 가서 산동의 성곽 모두가 장군께 속할 것입니다.”
 
58
했다. 여포가 그렇다 여겨서, 마침내 두 장수를 기도와 낭야에 당분간 머물면서 은명(관직 임명 등에 관한 임금의 명)을 기다리게 했다. 진등이 은밀히 부친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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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두 사람을 서주에 머물게 해서 여포를 죽일 수단으로 삼지 않으십니까?”
 
60
하니, 진규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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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두 사람이 여포에게 협조라도 하면, 도리어 호랑이에게 발톱과 이빨을 더해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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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진등이 이에 부친의 고견에 수긍했다.
 
 
63
卻說袁術敗回淮南,遣人往江東問孫策借兵報仇。策怒曰:“汝賴吾玉璽,僭稱帝號,背反漢室,大逆不道!吾方欲加兵問罪,豈肯反助叛賊乎!”遂作書以絕之。使者齎書回見袁術。術看畢,怒曰:“黃口孺子,何敢乃爾!吾先伐之!”長史楊大將力諫方止。卻說孫策自發書後,防袁術兵來,點軍守住江口。忽曹操使至,拜策爲會稽太守,令起兵征討袁術。策乃商議。便欲起兵。長史張昭曰:“術雖新敗,兵多糧足,未可輕敵。不如遺書曹操,勸他南征,吾爲後應:兩軍相援,術軍必敗。萬一有失,亦望操救援。”策從其言,遣使以此意達曹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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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원술이 패전하고 회남으로 돌아가서 사람을 강동으로 보내어, 손책에게 병력을 빌려 복수하겠다고 하자, 손책이 노하여 말하기를,
 
65
“네가 내 옥새를 가지고 황제라고 참칭하며, 한실을 배반했으니 대역부도한 짓이다! 내가 마침 군사를 동원해서 죄를 묻고자 하거늘, 어찌 도리어 역적을 돕겠느냐?”
 
66
하고, 곧 글을 써서 절교했다. 사자가 글을 가지고 돌아와서 원술을 만나니, 원술이 읽은 후에 성을 내어 말하기를,
 
67
“애송이 어린 놈이 어찌 감히 이렇단 말이냐!내가 먼저 토벌하겠다!”
 
68
하니. 장사(보좌관) 양대장이 힘껏 간언해서 겨우 말렸다. 한편, 손책이 스스로 글을 써 보낸 뒤에 원술의 병력이 올 걸 대비하여 군사를 점검하고 강구를 수비했다. 문득 조조 사신이 이르러서 손책을 회계태수로 삼고, 군사를 일으켜서 원술을 토벌하라고 했다. 손책이 상의하고 곧 기병하려고 했다. 장사(보좌관) 장소가 말하기를,
 
69
“원술이 막 패했어도, 병력이 많고 군량이 넉넉하여 가볍게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조조에게 글을 보내어 그가 남쪽을 정벌하면 우리가 뒤에서 응하겠다고 하는 게 낫습니다. 양쪽 군사가 서로 도우면, 원술의 군사가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또한 조조의 구원을 바랄 수 있습니다.”
 
70
했다. 손책이 그 말을 따라서, 사자를 보내서 조조에게 그 뜻을 전했다.
 
 
71
卻說曹操至許都,思慕典韋,立祀祭之;封其子典滿爲中郎,收養在府。忽報孫策遣使致書,操覽書畢;又有人報袁術乏糧,劫掠陳留。欲乘虛攻之,遂興兵南征。令曹仁守許都,其餘皆從征:馬步兵十七萬,糧食輜重千餘車。一面先發人會合孫策與劉備、呂布。兵至豫州界上,玄德早引兵來迎,操命請入營。相見畢,玄德獻上首級二顆。操驚曰:“此是何人首級?”玄德曰:“此韓暹、楊奉之首級也。”
 
72
한편, 조조가 허도로 가서 전위를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그 아들 전만을 중랑으로 삼아 자신의 부중에서 거두어 길렀다. 문득 손책이 사신을 보내 글을 가져왔다고 보고하니 조조가 그 글을 읽고, 또 원술도 양식이 모자라 진류를 겁략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어, 틈을 타서 원술을 치기로 했다. 곧 출병하여 남쪽 정벌에 나서니, 조인에게 허도를 지키라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정벌군을 따르게 하니, 기병과 보병이 17만이고 양식과 치중 수레가 천여 량이었다. 한편으로 먼저 사람을 보내, 손책, 유비, 여포와 회합하기로 했다. 군대가 예주의 경계에 이르자, 현덕이 먼저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였다. 조조가 군영으로 불러들여서 서로 인사를 마치자, 현덕이 두 사람의 머리를 바쳤다. 조조가 놀라서 말하기를,
 
73
“이게 누구의 머리요?”
 
74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75
“이것은 한섬과 양봉의 머리입니다.”
 
76
했다.
 
 
77
操曰:“何以得之?”玄德曰:“呂布令二人權住沂都、琅琊兩縣。不意二人縱兵掠民,人人嗟怨。因此備乃設一宴,詐請議事;飲酒間,擲盞爲號,使關、張二弟殺之,盡降其 衆。今特來請罪。”操曰:“君爲國家除害,正是大功,何言罪也?”遂厚勞玄德,合兵到徐州界。呂布出迎,操善言撫慰,封爲左將軍,許於還都之時,換給印綬。布大喜。操即分呂布一軍在左,玄德一軍在右,自統大軍居中,令夏侯惇、於禁爲先鋒。
 
78
조조가 말하기를,
 
79
“어찌 얻었소?”
 
80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81
“여포가 두 사람을 기도와 낭야 두 고을에 임시로 머물게 했는데, 뜻밖에 둘이 병력을 함부로 풀어 백성을 약탈하니 사람마다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회를 베풀어 의논할 일이 있다 거짓으로 말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잔을 던지는 걸 신호로 관우 장비 두 아우가 그들을 죽이고, 그 무리는 모두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죄를 청합니다.”
 
82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83
“그대가 나라를 위해 해로운 자를 없앴으니, 바로 큰 공을 세운 것이지 어찌 죄라 말하시오?”
 
84
하고, 현덕을 크게 치하하고, 병력을 합쳐 서주 경계로 갔다. 여포가 나와 맞자 조조가 좋은 말로 달래어 좌장군에 봉하고,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 인수를 보내주겠다 했다. 여포가 크게 기뻐했다. 조조가 즉시 병력을 나눠, 여포의 1군은 좌측에 두고, 유비의 1군은 우측에 두어,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중앙에 위치하며, 하후돈과 우금을 선봉으로 삼았다.
 
 
85
袁術知操兵至,令大將橋蕤引兵五萬作先鋒。兩軍會於壽春界口。橋蕤當先出馬,與夏侯惇戰不三合,被夏侯惇搠死。術軍大敗,奔走回城。忽報孫策發船攻江邊西面,呂布引兵攻東面,劉備、關、張引兵攻南面,操自引兵十七萬攻北面。術大驚,急聚 衆文武商議。楊大將曰:“壽春水旱連年,人皆缺食;今又動兵擾民,民既生怨,兵至難以拒敵。不如留軍在壽春,不必與戰;待彼兵糧盡,必然生變。陛下且統禦林軍渡淮,一者就熟,二者暫避其銳。”術用其言,留李豐、樂就、梁剛、陳紀四人分兵十萬,堅守壽春;其餘將卒並庫藏金玉寶貝,盡數收拾過淮去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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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은 조조의 병력이 온다는 것을 알고, 대장 교유에게 명하여 병력 5만으로 선봉에 서게 했다. 양쪽 군대가 수춘 어귀에서 만났다. 교유가 선봉으로 출마하여 하후돈과 싸워서 3합을 넘기지 못하고 찔려 죽었다. 원술의 군사가 대패하여 성안으로 달아났다. 갑자기 급보가 날아들어, 손책이 선박을 내어 강변 서쪽을 공격하고, 여포가 병력을 이끌고 동쪽을 공격하며, 유비와 관우 장비가 병력을 이끌고 남쪽을 공격하고, 조조는 스스로 17만 병력을 이끌고 북쪽을 친다고 했다. 원술이 크게 놀라서 급히 여러 문무 관리를 소집하여 상의했다. 양대장이 말하기를,
 
87
“수춘에 가뭄이 여러 해라 사람들이 모두 식량이 모자랍니다. 지금 또 병력을 동원하고 백성을 소란케 하여서, 백성이 이미 원망하고 있으니 병력으로 적을 막기 지극히 어렵습니다. 수춘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반드시 싸움을 피하는 게 낫습니다. 저들이 식량이 다하면, 반드시 변고가 생길 것이니 기다려야 합니다. 폐하께서 어림군을 거느리고 회수를 건너십시오. 첫째는 익숙한 곳으로 가시는 것이고, 둘째는 잠시 저들의 날카로운 기세를 피하는 것입니다.”
 
88
하였다. 원술이 그 말대로 이풍 악취 양강 진기 네 사람에게 병력 10만을 나누어 수춘을 굳게 지키게 했다. 나머지 장졸과 창고의 금은보화를 모조리 수습하여 회수를 건너갔다.
 
 
89
卻說曹兵十七萬,日費糧食浩大,諸郡又荒旱,接濟不及。操催軍速戰,李豐等閉門不出。操軍相拒月餘,糧食將盡,致書於孫策,借得糧米十萬斛,不敷支散。管糧官任峻部下倉官王垕人稟操曰:“兵多糧少,當如之何?”操曰:“可將小斛散之,權且救一時之急。”垕曰:“兵士倘怨,如何?”操曰:“吾自有策。”
 
90
한편, 조조의 병력 17만 명은 하루에 소비하는 식량이 엄청나고, 여러 고을이 가물어서 식량 조달이 (수요에) 미치지 못했다. 조조가 속전을 재촉하나, 이풍 등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조조 군이 대치 한 달 만에 식량이 곧 다하려 하자, 손책에게 글을 보내어 군량미 10만 석을 빌렸지만 두루 나눠줄 수가 없었다. 군량을 관리하는 임준과 부하 창고지기 왕후라는 사람이 조조에게 아뢰기를,
 
91
“병력은 많고 군량은 적은데, 어찌해야 할런지요?”
 
92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93
“작은 섬으로 나눠주면 임시로 잠깐 동안 위급을 면할 수 있네.”
 
94
했다. 왕후가 말하기를,
 
95
“병사들이 원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96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97
“내게 계책이 있네.”
 
98
했다.
 
 
99
垕依命,以小斛分散。操暗使人各寨探聽,無不嗟怨,皆言丞相欺 衆。操乃密召王垕入曰:“吾欲問汝借一物,以壓 衆心,汝必勿吝。”垕曰:“丞相欲用何物?”操曰:“欲借汝頭以示 衆耳。”垕大驚曰:“某實無罪!”操曰:“吾亦知汝無罪,但不殺汝,軍必變矣。汝死後,汝妻子吾自養之,汝勿慮也。”垕再欲言時,操早呼刀斧手推出門外,一刀斬訖,懸頭高竿,出榜曉示曰:“王垕故行小斛,盜竊官糧,謹按軍法。”於是 衆怨始解。
 
100
왕후가 명령에 따라서, 작은 섬으로 나누어 주었다. 조조가 몰래 사람을 시켜 각 진영에 탐지해 보니, 원망하지 않는 데가 없고 모두 승상이 사람들을 속인다고 했다. 조조가 곧 은밀히 왕후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101
“내가 너에게서 물건 하나를 빌려서, 사람들 마음을 진정하고 싶으니, 너는 아까워 마라.”
 
102
하니, 왕후가 말하기를,
 
103
“승상께서 무슨 물건을 쓰려고 하십니까?”
 
104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05
“네 머리를 빌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뿐이다.”
 
106
하니, 왕후가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107
“저는 정말 죄가 없습니다.”
 
108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09
“나도 네가 무죄란 것을 안다. 다만 너를 죽이지 않으면 군사들의 마음이 변할 것이다. 네가 죽은 후에 처자식은 내가 돌볼테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110
했다. 왕후가 다시 뭐라 말하려 하는데, 조조가 급히 도부수를 불러 문 밖에 끌고나가서 한칼에 베어 그 머리를 높은 장대에 매달게 하고, 방문을 써서 알리기를,
 
111
“왕후가 고의로 작은 섬을 써서, 군량미를 훔친 것을 군법에 따라 처단했다.”
 
112
라고 했다. 이로부터 군사들의 원망이 비로소 풀렸다.
 
 
113
次日,操傳令各營將領:“如三日內不並力破城,皆斬!”操親自至城下,督諸軍搬土運石,填壕塞塹。城上矢石如雨,有兩員裨將畏避而回,操掣劍親斬於城下,遂自下馬接土填坑。於是大小將士無不向前,軍威大振。城上抵敵不住,曹兵爭先上城,斬關落鎖,大隊擁入。李豐、陳紀、樂就、梁剛都被生擒,操令皆斬於市。焚燒偽造宮室殿宇、一應犯禁之物;壽春城中,收掠一空。商議欲進兵渡淮,追趕袁術。荀彧諫曰:“年來荒旱,糧食艱難,若更進兵,勞軍損民,未必有利。不若暫回許都,待來春麥熟,軍糧足備,方可圖之。”
 
114
이튿날, 조조가 각 군영의 장령들에게 전령하기를,
 
115
“3일 안에 힘을 합쳐서 성을 함락지 못하면, 모두 참하겠다!”
 
116
하고, 조조가 친히 성 아래에 이르러, 군사들이 흙과 돌을 운반해서 해자와 구덩이를 메우게 독려하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지자 두 비장이 두려워서 피해 돌아가려 하는 것을 조조가 검을 뽑아 성 아래에서 직접 베어버리고, 스스로 말에서 내려서 흙을 묻히며 구덩이를 메웠다. 이로부터 높고 낮은 장병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가 없어 군대의 위세가 크게 떨쳤다. 성 위에서 버틸 수가 없으니 조조 병력이 앞다투어 성에 오르고, 빗장과 자물쇠를 부수어 큰 대열이 빽빽하게 들어갔다. 이풍 진기 악취 양강 모두는 사로잡혔다. 조조가 명하여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하게 했다. (황제를 사칭하여) 거짓 조성한 궁궐 전각과 금지한 물건을 모두 불살랐다. 수춘성 안을 약탈하여 텅비게 했다. 진군하여 회수를 건너서 원술을 추격할 것인지 상의했다. 순욱이 간하여 말하기를,
 
117
“몇 해째 흉년과 가뭄이라 양식을 대기 어려운데, 만약 다시 군사를 진격시키면 군사들이 힘들고 백성들이 상할테니 반드시 유리하지 않습니다. 잠깐 허도로 돌아가서 봄에 밀이 익기를 기다려서 군량이 갖추어지면 그때 도모하는 게 낫습니다.”
 
118
했다.
 
 
119
操躊躇未決。忽報馬到,報說:“張繡依托劉表,複肆猖獗、南陽、江陵諸縣複反;曹洪拒敵不住,連輸數陣,今特來告急。”操乃馳書與孫策,令其跨江布陣,以爲劉表疑兵,使不敢妄動;自己即日班師,別議征張繡之事。臨行,令玄德仍屯兵小沛,與呂布結爲兄弟,互相救助,再無相侵。呂布領兵自回徐州。操密謂玄德曰:“吾令汝屯兵小沛。是掘坑待虎之計也。公但與陳珪父子商議,勿致有失。某當爲公外援。”話畢而別。
 
120
조조가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는데, 홀연히 파발이 이르러 보고하기를,
 
121
“장수가 유표에 의탁하자 다시 방자하게 창궐하여 남양과 강릉 여러 고을이 다시 배반했습니다. 조홍 장군께서 막아내지 못하고, 잇달아 여러 차례 져서 지금 위급을 고합니다.”
 
122
고 했다. 조조가 급히 글을 써 손책에게 강을 건너서 포진하여 유표에게 의심스러운 군사로 여기게 하여, (유표가)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조조) 자기는 그날 바로 군사를 돌려, 따로 장수를 정벌할 일을 의논했다. 떠날 때에 현덕에게 소패에 다시 주둔하여 여포와 형제를 맺어서 서로 구조하고 다시 서로 침범치 말도록 했다. 여포가 군사를 거느리고 서주로 돌아가자 조조가 몰래 현덕에게 일러 말하기를,
 
123
“내가 그대를 소패에 주둔케 함은 ‘굴갱대호(함정을 파서 호랑이를 기다림)’의 계책이오. 그대는 다만 진규 부자와 상의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오. 나는 그대를 바깥에서 도우리라.”
 
124
하였다. 말을 마치고 헤어졌다.
 
 
125
卻說曹操引軍回許都,人報段煨殺了李傕,伍習殺了郭汜,將頭來獻。段煨並將李傕合族老小二百餘口活解入許都。操令分於各門處斬,傳首號令,人民稱快。天子升殿,會集文武,作太平筵宴。封段煨爲蕩寇將軍、伍習爲殄虜將軍,各引兵鎮守長安。二人謝恩而去。操即奏張繡作亂,當興兵伐之。天子乃親排鑾駕。送操出師。時建安三年夏四月也。
 
126
한편,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허도로 돌아가자, 보고하기를, 단외가 이각을 죽이고 오습이 곽사를 죽여서 그 머리를 바친다고 했다. 단외가 아울러 이각의 집안 노소 2백여 명을 산 채로 허도로 잡아왔다. 조조가 명해 그들을 베어서 각 문에 나누어 머리를 보내어 보이게 하자, 인민이 칭송하고 통쾌해 했다. 천자가 전각을 올라 문무 관리를 모아, 태평 연회를 베풀었다. 단외를 탕구장군, 오습을 진우장군으로 삼고 각각 군사를 이끌고 장안을 수비토록 했다. 두 사람이 사은하고 떠났다. 조조가 바로 글을 올려, 장수가 난을 일으켜서 출병하여 토벌할 것을 아뢰었다. 천자가 친히 난가(황제의 수레)를 타고 조조의 출병을 배웅하니, 때는 건안 3년 여름 4월이었다.
 
 
127
操留荀彧在許都,調遣兵將,自統大軍進發。行軍之次,見一路麥已熟;民因兵至,逃避在外,不敢刈麥。操使人遠近遍諭村人父老,及各處守境官吏曰:“吾奉天子明詔,出兵討逆,與民除害。方今麥熟之時,不得已而起兵,大小將校,凡過麥田,但有踐踏者,並皆斬首。軍法甚嚴,爾民勿得驚疑。”百姓聞諭,無不歡喜稱頌,望塵遮道而拜。官軍經過麥田,皆下馬以手扶麥,遞相傳送而過,並不敢踐踏。
 
128
조조가 순욱을 허도에 남겨 장병을 지휘케 하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출동했다. 행군할 때, 길옆으로 밀이 이미 익은 것을 보았지만 백성들은 군대가 오자 바깥으로 달아나, 감히 밀을 베려고 하지 않았다. 조조가 사람을 원근에 보내어, 마을 사람과 어른들과 각처 수비 관리에게 깨우쳐 말하기를,
 
129
“내가 천자의 밝은 명령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러 출병하여 백성과 함께 해로움을 제거하려 한다. 지금 막 밀이 익을 때에 부득이 출병하지만, 대소 장교들은 무릇 밀밭을 지나더라도 밀을 짓밟은 자는 모두 참하겠다. 군법은 매우 엄하니 너희 백성들은 놀라거나 의심치 말라.”
 
130
하였다. 백성들이 듣고서 기뻐서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길을 뒤덮은 먼지를 향해 절했다. 관군이 밀밭을 지날 때에 모두 말에서 내려 손으로 밀을 붙들고 한줄씩 번갈아 지나가며 감히 밀을 밟지 않았다.
 
 
131
操乘馬正行,忽田中驚起一鳩。那馬眼生,竄入麥中,踐壞了一大塊麥田。操隨呼行軍主簿,擬議自己踐麥之罪。主簿曰:“丞相豈可議罪?”操曰:“吾自制法,吾自犯之,何以服 衆?”即掣所佩之劍欲自刎。 衆急救住。郭嘉曰:“古者《春秋》之義:法不加於尊。丞相總統大軍,豈可自戕?”操沉吟良久,乃曰:“既《春秋》有法不加於尊之義,吾姑免死。”乃以劍割自己之發,擲於地曰:“割發權代首。”使人以發傳示三軍曰:“丞相踐麥,本當斬首號令,今割發以代。”於是三軍悚然,無不懍遵軍令。後人有詩論之曰:“十萬貔貅十萬心,一人號令 衆難禁。拔刀割發權爲首,方見曹瞞詐術深。”
 
132
조조가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갑자기 밭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놀라서 날자 그 말도 낯설어서 밀밭 가운데 돌입하여 한바탕 밀밭을 크게 짓밟았다. 조조가 곧 행군주부를 불러 자신이 밀을 밟은 죄를 따지게 했다. 주부가 말하기를,
 
133
“승상께 어찌 죄를 묻겠습니까?”
 
134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135
“내 스스로 법을 만들고 스스로 범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복종시키겠는가?”
 
136
하고, 즉시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스스로 찌르려 했다. 사람들이 급히 구해 멈추었다. 곽가가 말하기를,
 
137
“옛날 <춘추> 의 뜻에 따르면, 법은 존엄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승상께서 대군을 모두 거느리시거늘 어찌 스스로 벌하여 죽겠습니까?”
 
138
하였다. 조조가 한참 신음하다가 말하기를,
 
139
“이미 <춘추>에 법은 존엄한 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 있다면, 내 잠깐 죽음은 면하겠다.”
 
140
하고, 곧 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141
“머리카락을 잘라 임시로 머리를 대신하겠소.”
 
142
하였다. 사람을 시켜 그 머리카락을 삼군에 돌려 보이며 말하기를,
 
143
“승상께서 밀을 밟아 본래 마땅히 머리를 잘라 보여야 할 것이나 지금 머리카락을 잘라 그것을 대신한다.”
 
144
고 했다. 이로부터 삼군이 등골이 오싹하여 누구나 군령을 조심하여 준수했다. 훗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논하기를,
 
145
“사나운 병사 10만 명이 그 마음도 10만이라, 한 사람의 호령으로 금하기 어려운데, 칼을 뽑아 머리카락을 잘라 머리를 대신하니, 조아만(조조)의 속임수가 깊구나.”
 
146
하였다.
 
 
147
卻說張繡知操引兵來,急發書報劉表,使爲後應;一面與雷敘、張先二將領兵出城迎敵。兩陣對圓,張繡出馬,指操罵曰:“汝乃假仁義無廉恥之人,與禽獸何異!”操大怒,令許褚出馬。繡令張先接戰。只三合,許褚斬張先於馬下,繡軍大敗。操引軍趕至南陽城下。繡入城,閉門不出。操圍城攻打,見城壕甚闊,水勢又深,急難近城。乃令軍士運土填壕;又用土布袋並柴薪草把相雜,於城邊作梯凳;又立雲梯窺望城中;操自騎馬繞城觀之,如此三日。傳令教軍士於西門角上,堆積柴薪,會集諸將,就那裏上城。城中賈詡見如此光景,便謂張繡曰:“某已知曹操之意矣。今可將計就計而行。”正是:強中自有強中手,用詐還逢識詐人。
 
148
한편, 장수가 조조 병력이 오는 걸 알고서 급히 유표에게 글을 보내서 뒤에서 접응하게 했다. 한편으로 뇌서 장선 두 장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가 적을 맞이하게 했다. 양쪽이 포진하자, 장수가 출마하여 조조를 손가락질하며 욕하기를,
 
149
“네가 바로 인의를 가장한 염치 없는 인간이니 금수와 어찌 다르겠느냐!”
 
150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허저에게 출마하게 하자, 장수도 장선에게 접전토록 했다. 단지 3합에 허저가 장선을 베어서 말 아래 떨어뜨리니, 장수의 군사가 대패했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남양성 아래까지 추격하니, 장수가 성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조조가 포위하고 공격하지만, 성 둘레 해자가 매우 넓고, 물살이 거세고 또한 깊어서 성에 접근하기 아주 어려운 걸 보고서, 군사들에게 명하여 흙을 날라 해자를 메우게 했다. 또한 흙 포대와 땔감을 성 둘레에 모으고, 사다리를 만들었다. 또한 운제(높은 사다리)를 세워 성 안을 엿보았다. 조조 스스로 말을 몰아 성을 돌면서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기를 3일이 되어, 조조가 영을 내려 서문 귀퉁이에 땔감을 쌓아올리고 여러 장수를 모아서, 거기서 성을 오르려 했다. 성 안에서 가후가 이 광경을 보고 문득 장수에게 말하기를,
 
151
“저는 이미 조조의 의도를 알았습니다. 지금 장계취계(적의 계략을 이용하는 것)를 쓸 수 있습니다.”
 
152
하였다. 이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속임수를 쓰다가 꿰뚫어보는 사람을 만났구나.
 
 
153
不知其計若何,且聽下文分解。
 
154
그 계책이 무엇인지 모르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7회 원공로(원술)가 7군을 크게 일으키고, 조맹덕(조조)이 세 장수와 회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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