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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38회 융중에서 삼분천하의 계책을 정하고, 손권이 장강에서 싸워 원수를 갚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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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三十八回 定三分隆中決策 戰長江孫氏報仇
2
제38회 융중에서 삼분천하의 계책을 정하고, 손권이 장강에서 싸워 원수를 갚다.
 
 
3
卻說玄德訪孔明兩次不遇,欲再往訪之。關公曰:“兄長兩次親往拜謁,其禮太過矣。想諸葛亮有虛名而無實學,故避而不敢見。兄何惑於斯人之甚也!”玄德曰:“不然,昔齊桓公欲見東郭野人,五反而方得一面。況吾欲見大賢耶?”張飛曰:“哥哥差矣。量此村夫,何足爲大賢;今番不須哥哥去;他如不來,我只用一條麻繩縛將來!”玄德叱曰:“汝豈不聞周文王謁薑子牙之事乎?文王且如此敬賢,汝何太無禮!今番汝休去,我自與雲長去。”飛曰:“既兩位哥哥都去,小弟如何落後!”玄德曰:“汝若同往,不可失禮。”飛應諾。
 
4
각설, 현덕이 공명을 두 번이나 찾아가 만나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려고 하자 관우가 말하기를,
 
5
“형님께서 두번이나 몸소 찾아 뵈러 갔으니 그 예의가 너무 지나치오. 생각해 보면, 제갈량은 헛된 명성만 있을 뿐 실제 학문은 없어 일부러 피해 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이오. 형께서 어찌 이런 사람에게 미혹되시는 것이 심합니다!”
 
6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7
“그렇지 않다. 옛날에 제나라 환공이 동곽의 촌사람을 만나려 해도 다섯번이나 되돌아오고서야 비로소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하물며 내가 뛰어나게 어진 사람을 만나려 하는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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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9
“형님이 틀렸소! 그 촌뜨기를 헤아리건대 어찌 족히 뛰어난 어진 사람이겠소? 이번에 형님이 가실 것 없이, 그 자가 안 오면 내가 한 줄기 삼끈으로 묶어 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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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꾸짖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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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찌 주나라 문왕이 강자아(강태공)를 만난 일을 듣지 못했느냐? 문왕조차도 그렇게 어진 이를 공경했는데 너희가 어찌 이렇게 무례하냐! 이번에 너는 (함께) 가지 마라. 내가 운장과 함께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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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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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님이 모두 가시는데 아우가 어찌 뒤에 떨어져 남겼소?”
 
14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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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약 같이 갈 것이면 예를 잃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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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장비가 응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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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三人乘馬引從者往隆中。離草廬半裏之外,玄德便下馬步行,正遇諸葛均。玄德忙施禮,問曰:“令兄在莊否?”均曰:“昨暮方歸。將軍今日可與相見。”言罷,飄然自去。玄德曰:“今番僥幸得見先生矣!”張飛曰:“此人無禮!便引我等到莊也不妨,何故竟自去了!”玄德曰:“彼各有事,豈可相強。”三人來到莊前叩門,童子開門出問。玄德曰:“有勞仙童轉報:劉備專來拜見先生。”童子曰:“今日先生雖在家,但今在草堂上晝寢未醒。”玄德曰:“既如此,且休通報。”分付關、張二人,只在門首等著。玄德徐步而入,見先生仰臥於草堂幾席之上。玄德拱立階下。
 
18
이에 세 사람이 말을 타고 하인을 이끌고 융중으로 갔다. 초가집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서 현덕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마침 제갈균을 만났다. 현덕이 황망히 인사를 하고 묻기를,
 
19
“오늘 형께서 집에 계시지 않습니까?”
 
20
하니, 제갈균이 말하기를,
 
21
“어제 저녁 막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 오늘 만나실 수 있습니다.”
 
22
하고, 말을 마치자 훌훌 떠나갔다. 현덕이 말하기를,
 
23
“이번에는 요행히 선생을 만나게 됐구나!”
 
24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25
“저 사람이 무례하네요. 우리를 안내해서 집으로 데려가도 괜찮은데, 무슨 까닭으로 자기 혼자 가버린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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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27
“각자 사정이 있을텐데 어찌 억지로 그리 하겠느냐?”
 
28
했다. 세 사람이 집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니 동자가 문을 열고 나와서 물었다. 현덕이 말하기를,
 
29
“수고스럽겠다만 동자가 선생께 가서, 유비가 선생을 만나뵈러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씀드려라.”
 
30
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31
“오늘은 선생께서 비록 집에 계시나, 이제 초당에서 낮잠을 주무셔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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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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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잠시 통보를 멈추어라.”
 
34
하고, 관우와 장비 두 사람에게 분부하여 문앞에서 기다리게 했다. 현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니 선생은 초당 돗자리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현덕이 두손을 모아 섬돌 아래에 섰다.
 
 
35
半晌,先生未醒。關、張在外立久,不見動靜,入見玄德猶然侍立。張飛大怒,謂雲長曰:“這先生如何傲慢!見我哥哥侍立階下,他竟高臥,推睡不起!等我去屋後放一把火,看他起不起!”雲長再三勸住。玄德仍命二人出門外等候。望堂上時,見先生翻身將起,忽又朝裏壁睡著。童子欲報。玄德曰:“且勿驚動。”又立了一個時辰,孔明才醒,口吟詩曰:“大夢誰先覺?平生我自知,草堂春睡足,窗外日遲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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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선생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관우와 장비가 밖에서 오래 서 있어서 동정을 살필 수 없어 들어가 현덕을 보니 여전히 지키고 서 있었다. 장비가 크게 노하여 운장에게 일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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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생이 어찌 저렇게 오만하오! 보자니 형님께서는 섬돌 아래 지켜 서 있고 그는 높이 누워 자면서 일어나지 않는구려! 우리가 집 뒤로 가서 불을 질러 그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봅시다!”
 
38
하니, 운장이 거듭 말렸다. 현덕이 다시 두 사람에게 문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명했다. 초당 위를 올려다보니 선생이 몸을 돌려 일어나는가 싶더니 문득 다시 안쪽 벽을 보고 잠이 들었다. 동자가 알리려 하자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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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게 하지 말아라.”
 
40
했다. 다시 한 시진(두 시간)을 더 서서 기다려서야 공명이 깨어나 시를 읊기를,
 
41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울까? 평소 내 스스로 알았네. 초당에서 봄꿈은 족하고 창밖 해는 느릿느릿하구나.”
 
42
했다.
 
 
43
孔明吟罷,翻身問童子曰:“有俗客來否?”童子曰:“劉皇叔在此,立候多時。”孔明乃起身曰:“何不早報!尚容更衣。”遂轉入後堂。又半晌,方整衣冠出迎。玄德見孔明身長八尺,面如冠玉,頭戴綸巾,身披鶴氅,飄飄然有神仙之概。玄德下拜曰:“漢室末胄、涿郡愚夫,久聞先生大名,如雷貫耳。昨兩次晉謁,不得一見,已書賤名於文幾,未審得入覽否?”孔明曰:“南陽野人,疏懶性成,屢蒙將軍枉臨,不勝愧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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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읊고나서 몸을 돌려 동자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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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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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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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숙께서 오셔서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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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공명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기를,
 
49
“어째서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 일단 옷을 갈아 입어야겠구나.”
 
50
하고, 곧 후당으로 들어가 다시 한참 지나서야 옷과 갓을 차려 입고 나와서 맞이했다. 현덕이 공명을 보니 키가 8척이요 얼굴은 관옥 같고 머리에 윤건을 쓰고 몸에 학창의를 입어서 바람에 날리듯 신선의 기품이 풍겼다. 현덕이 허리 굽혀 인사하고 말하기를,
 
51
“한실의 보잘것없는 후예, 탁군의 어리석은 사내가 오래전부터 선생의 큰 명성을 우레처럼 들어왔습니다. 전날에 두 차례 찾아와 만나뵈려 했으나 만나지 못해 그때 천한 이름을 책상에 남겼는데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5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53
“저는 남양 땅의 야인이고 게으른 것이 천성이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거듭 왕림해주시니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54
했다.
 
 
55
二人敘禮畢,分賓主而坐,童子獻茶。茶罷,孔明曰:“昨觀書意,足見將軍憂民憂國之心;但恨亮年幼才疏,有誤下問。”玄德曰:“司馬德操之言,徐元直之語,豈虛談哉?望先生不棄鄙賤,曲賜教誨。”孔明曰:“德操、元直,世之高士。亮乃一耕夫耳,安敢談天下事?二公謬舉矣。將軍奈何舍美玉而求頑石乎?”玄德曰:“大丈夫抱經世奇才,豈可空老於林泉之下?願先生以天下蒼生爲念,開備愚魯而賜教。”孔明笑曰:“願聞將軍之志。”玄德屏人促席而告曰:“漢室傾頹,奸臣竊命,備不量力,欲伸大義於天下,而智術淺短,迄無所就。惟先生開其愚而拯其厄,實爲萬幸!”
 
56
두 사람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손님과 주인 자리로 나눠 앉았다. 동자가 차를 바쳤다. 차를 마신 후 공명이 말하기를,
 
57
“지난번에 남기신 글의 뜻을 살피오니,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다만 제가 어리고 재주가 모자라 잘못 물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58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59
“사마덕조나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허튼 이야기이겠습니까? 저를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아무쪼록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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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61
“사마덕조나 서원직은 당세의 뛰어난 선비입니다. 저는 밭이나 가는 농부일 뿐이니 어찌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분께서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어찌 아름다운 구슬을 버리고 쓸모없는 돌을 구하십니까?”
 
62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63
“대장부가 세상을 다스릴만한 재주를 갖고서 어찌 자연 속에 묻혀 헛되이 늙어가겠습니까? 바라건대 선생께서 천하의 백성들을 생각하셔서 저의 우둔함을 깨우쳐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64
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65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66
하니, 현덕이 사람을 물리치고 자리를 당겨 앉아 고하여 말하기를,
 
67
“한실이 기울어 무너지고 간신이 국가권력을 빼앗았습니다. 제가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하나 지혜와 책략이 얕고 짧아서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선생께서 저의 우매함을 깨우쳐 재앙에서 건져주신다면 참으로 만번 다행이겠습니다.”
 
68
했다.
 
 
69
孔明曰:“自董卓造逆以來,天下豪傑並起。曹操勢不及袁紹,而竟能克紹者,非惟天時,抑亦人謀也。今操已擁百萬之 衆,挾天子以令諸侯,此誠不可與爭鋒。孫權據有江東,已曆三世,國險而民附,此可用爲援而不可圖也。荊州北據漢、沔,利盡南海,東連吳會,西通巴、蜀,此用武之地,非其主不能守;是殆天所以資將軍,將軍豈有意乎?益州險塞,沃野千裏,天府之國,高祖因之以成帝業;今劉璋暗弱,民殷國富,而不知存恤,智能之士,思得明君。將軍既帝室之胄,信義著於四海,總攬英雄,思賢如渴,若跨有荊、益,保其岩阻,西和諸戎,南撫彝、越,外結孫權,內修政理;待天下有變,則命一上將將荊州之兵以向宛、洛,將軍身率益州之 衆以出秦川,百姓有不簞食壺漿以迎將軍者乎?誠如是,則大業可成,漢室可興矣。此亮所以爲將軍謀者也。惟將軍圖之。”
 
70
공명이 말하기를,
 
71
“동탁이 반역한 뒤로부터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조조는 세력이 원소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긴 것은 오로지 하늘이 도와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책략에서 이긴 까닭도 있습니다. 이제 조조가 벌써 백만의 무리를 가진데다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이것은 참으로 더불어 창칼을 겨눌 수가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한 지 벌써 3대에 이르고 나라는 험준하고 백성이 따르니 이것은 원조를 삼을 것이지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수와 면수에 의지하고 남쪽 바다에 이르는 이익을 모두 가지며, 동쪽으로 오군과 회계군에 잇닿았고, 서쪽으로 파촉 지방과 통하니 이것은 전쟁하기 좋은 땅이지 주인이 능히 지킬 곳은 아닙니다. 이것은 거의 하늘이 장군께 내린 것인데 장군께서 어찌 뜻이 없으십니까? 익주는 지형이 험준한 요새이고 기름진 땅이 천 리라 하늘이 내린 땅입니다. 고조(유방)는 거기에서 황제가 되는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유장은 어리석고 약하여 백성은 충실하고 나라는 부유하지만 사람을 위로하고 돌보는 것을 알지 못하여, 지식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밝은 군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황실의 후예이신데다 신의가 사해에 현저하고 영웅들을 거느리고 어진이를 생각하시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하십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걸터앉듯 얻는다면, 그 험난한 땅을 지키고 서융의 오랑캐들과 화친하며 남쪽으로 이와 월의 오랑캐들을 달래고, 바깥으로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 정치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천하의 변고를 기다렸다가 즉시 뛰어난 장수에게 명해 형주의 병력을 거느리고 남양과 낙양으로 향하게 합니다.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대군을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가시면 백성들 가운데 밥을 싸들고 나와 장군을 맞이하지 않을 이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와 같다면 가히 대업을 이루어서 한실을 중흥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장군을 위해 꾀하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이것을 도모하십시오.”
 
72
했다.
 
 
73
言罷,命童子取出畫一軸,掛於中堂,指謂玄德曰:“此西川五十四州之圖也。將軍欲成霸業,北讓曹操占天時,南讓孫權占地利,將軍可占人和。先取荊州爲家,後即取西川建基業,以成鼎足之勢,然後可圖中原也。”玄德聞言,避席拱手謝曰:“先生之言,頓開茅塞,使備如撥雲霧而睹青天。但荊州劉表、益州劉璋,皆漢室宗親,備安忍奪之?”孔明曰:“亮夜觀天象,劉表不久人世;劉璋非立業之主:久後必歸將軍。”玄德聞言,頓首拜謝。只這一席話,乃孔明未出茅廬,已知三分天下,真萬古之人不及也!後人有詩贊曰:“豫州當日歎孤窮,何幸南陽有臥龍!欲識他年分鼎處,先生笑指畫圖中。”
 
74
말을 마치자 동자에게 명해 그림 한 폭을 꺼내서 중당에 걸고 현덕에게 가리켜 말하기를,
 
75
“이것이 서천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면 북으로 조조에게 천시(하늘이 내린 기회)를 가지도록 양보하고, 남으로 손권에게 지리(지리적 우세)를 가지도록 양보하며, 장군께서는 가히 인화(사람들의 화합)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취해 내 집으로 만든 뒤 즉시 서천을 취해 토대를 세워서 정족지세(솥의 세다리처럼 맞선 형세)를 이뤄야 가히 중원을 도모할 만합니다.”
 
76
하니, 현덕이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모아 사례해 말하기를,
 
77
“선생의 말씀으로 막혔던 것이 갑자기 열리니, 저로 하여금 구름과 안개가 걷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같게 하였습니다. 다만 형주의 유표나 익주의 유장이 모두 한실의 종친이라 제가 어찌 차마 빼앗겠습니까?”
 
78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79
“제가 밤에 천상(천문)을 살피니 유표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뜰 것입니다. 유장은 대업을 이룰 군주가 아니므로 결국 장군께 넘어오고야 말 것입니다.”
 
80
했다. 현덕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사례했다. 이 자리의 이야기는 바로 공명이 초가집을 떠나기 전에 이미 천하를 셋으로 나눌 것을 안 것이니 참으로 만고에 걸쳐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81
“유예주 당시 외롭고 어려운 것을 한탄하다가, 다행히 남양 땅에 와룡선생을 만났네. 다른 날 정족지세로 나뉠 것을 알고 싶거늘, 선생은 웃으며 지도를 가리키네.”
 
82
하였다.
 
 
83
玄德拜請孔明曰:“備雖名微德薄,願先生不棄鄙賤,出山相助。備當拱聽明誨。”孔明曰:“亮久樂耕鋤,懶於應世,不能奉命。”玄德泣曰:“先生不出,如蒼生何!”言畢,淚沾袍袖,衣襟盡濕。孔明見其意甚誠,乃曰:“將軍既不相棄,願效犬馬之勞。”玄德大喜,遂命關、張入,拜獻金帛禮物。孔明固辭不受。玄德曰:“此非聘大賢之禮,但表劉備寸心耳。”孔明方受。於是玄德等在莊中共宿一宵。次日,諸葛均回,孔明囑付曰:“吾受劉皇叔三顧之恩,不容不出。汝可躬耕於此,勿得荒蕪田畝。待我功成之日,即當歸隱。”
 
84
현덕이 절하고 공명에게 청하기를,
 
85
“제가 비록 명성도 미미하고 덕도 박하지만 바라건대 선생께서 비천한 저를 버리지 말고 산을 나와 도와 주십시오. 제가 마땅히 손을 모아 선생의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8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7
“저는 오랫동안 밭갈고 김매기를 즐기고 세상에 적응하는 것에 게을러서 능히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88
했다. 현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89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백성은 어찌합니까?”
 
90
하고, 말을 마치니 눈물이 옷소매를 적셔서 옷깃이 모두 젖었다. 공명이 그 뜻이 매우 정성스러운 것을 보고 말하기를,
 
91
“장군께서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견마지로(개나 말처럼 충성을 다함)를 다하겠습니다.”
 
92
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곧 명을 내려 관우와 장비를 들어오게 하여, 절하고 금과 비단을 예물로 바쳤다. 공명이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자 현덕이 말하기를,
 
93
“이것은 뛰어나게 어진 사람을 초빙하는 예물이 아니라 다만 유비의 작은 정성을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94
하니, 공명이 그제서야 받았다. 이에 현덕 일행이 그 집에서 함께 하룻밤을 함께 묵었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공명이 당부하여 말하기를,
 
95
“내가 유황숙의 세 번을 찾아온 은혜를 입어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여기서 몸소 농사를 지어 논밭을 황무지로 만들지 말아라. 내가 공을 이룬 뒤에 돌아와서 은거하겠다.”
 
96
하였다.
 
 
97
後人有詩歎曰:“身未升騰思退步,功成應憶去時言。只因先主丁寧後,星落秋風五丈原。”又有古風一篇曰:“高皇手提三尺雪,芒碭白蛇夜流血;平秦滅楚入鹹陽,二百年前幾斷絕。大哉光武興洛陽,傳至桓靈又崩裂;獻帝遷都幸許昌,紛紛四海生豪傑:曹操專權得天時,江東孫氏開鴻業;孤窮玄德走天下,獨居新野愁民厄。南陽臥龍有大志,腹內雄兵分正奇;只因徐庶臨行語,茅廬三顧心相知。先生爾時年三九,收拾琴書離隴畝;先取荊州後取川,大展經綸補天手;縱橫舌上鼓風雷,談笑胸中換星鬥;龍驤虎視安乾坤,萬古千秋名不朽!”
 
98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감탄하기를,
 
99
“몸이 날아오르기에 앞서 물러남을 생각했으니, 공을 이뤘으면 응당 그때의 말을 기억했으리라. 오직 선주(유비)가 간절히 부탁한 뒤에, 오장원에 별은 떨어지고 가을바람은 쓸쓸했네.”
 
100
라고 했다. 또 고풍(고시) 한 편을 짓기를,
 
101
“고황제(유방)께서 눈처럼 하얀 칼 빼어들고, 망탕산에서 흰 뱀을 베어 피가 흘렀네. 진나라와 초나라를 멸해서 함양에 들어갔으나, 이백년 전에 왕업 거의 끊어질 뻔했네. 크구나! 광무께서 낙양에서 중흥했으나, 환제와 영제에 이르러 또 무너졌네. 헌제가 천도해서 허창으로 가지만, 어지러이 사해에서 호걸들 일어났네. 조조가 권력을 장악해 천시를 얻었고, 강동에서 손씨가 큰 사업을 열었는데, 외롭고 어려운 현덕은 천하를 떠돌다가, 홀로 신야에서 백성의 곤액을 걱정했네. 남양의 와룡선생이 커다란 뜻을 가지고, 웅대한 전략 품고 병법에 능통하네. 서서가 현덕을 떠나가며 (추천의) 말을 남겨, 초가집을 세번 찾아온 마음을 알았네. 선생이 이때 나이가 스물일곱 살인데, 거문고와 책을 챙겨 논밭을 떠났네. 먼저 형주를 취한 뒤에 서천을 취하여, 경륜을 크게 펼쳐 세상을 구하리라. 종횡무진하여 혀끝에서 바람과 우레가 일고, 담소하는 가슴 속에서 우주를 바꾸네. 용처럼 달리고 범처럼 노려보며 천하를 안정시키니, 만고천추 그 이름이 썪지 않으리라.”
 
102
하였다.
 
 
103
玄德等三人別了諸葛均,與孔明同歸新野。玄德待孔明如師,食則同桌,寢則同榻,終日共論天下之事,孔明曰:“曹操於冀州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侵江南之意。可密令人過江探聽虛實。”玄德從之,使人往江東探聽。
 
104
현덕 등 세 사람이 제갈균과 작별하고 공명과 더불어 신야로 돌아왔다. 현덕이 공명을 스승같이 대하여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자며 하루종일 천하의 일들을 함께 의논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05
“조조가 기주에서 현무지를 만들어 놓고 수군을 조련하니 틀림없이 강남을 침범할 뜻을 있습니다. 몰래 사람을 장강 너머로 보내 허실을 정탐해야 합니다.”
 
106
했다.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사람을 강동으로 보내 정탐시켰다.
 
 
107
卻說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連年以來,你我相薦。時有會稽闞澤,字德潤;彭城嚴畯,字曼才;沛縣薛綜,字敬文;汝陽程秉,字德樞;吳郡朱桓,字休穆;陸績,字公紀;吳人張溫,字惠恕;會稽淩統,字公續;烏程吾粲,字孔休:此數人皆至江東,孫權敬禮甚厚。又得良將數人:乃汝南呂蒙,字子明;吳郡陸遜,宇伯言;琅琊徐盛,字文向;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文武諸人,共相輔佐,由此江東稱得人之盛。
 
108
한편, 손권이 손책의 사후부터 강동에 웅거하여 아버지와 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어진 선비를 받아들이고 오군과 회계 땅에 객관을 열어 고옹과 장굉에게 명해 사방의 빈객을 접견하게 했다. 해마다 너도나도 추천했다. 당시에 회계의 감택은 자가 덕윤이고, 팽성의 엄준은 자가 만재이며. 패현의 설종은 자가 경문이고, 여양의 정병은 자가 덕추이며, 오군의 주환은 자 휴목이고, 육적은 자가 공기이며, 오군 사람 장온은 자가 혜서이고, 회계의 능통은 자 공속이며, 오정의 오찬은 자 공휴였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강동으로 오니, 손권이 그들을 공경하는 예의가 아주 후했다. 또 뛰어난 장수를 몇몇을 얻었다. 그들은 여양의 여몽은 자가 자명이고, 오군의 육손은 자가 백언이며, 낭야의 서성은 자가 문향이고, 동군의 반장은 자가 문규이며, 여강의 정봉은 자가 승연이다. 문관과 무관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좌하니, 이로 말미암아 강동에서 인재를 많이 얻었다고 일컬었다.
 
 
109
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權猶豫未決。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張昭曰:“操欲令我遣子入朝,是牽制諸侯之法也。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周瑜曰:“將軍承父兄遺業,兼六郡之 衆,兵精糧足,將士用命,有何逼迫而欲送質於人?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吳太夫人曰:“公瑾之言是也。”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110
건안 7년에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사자를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명해 그 아들을 입조시켜 임금을 모시라고 했다. 손권이 유예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 등을 마주하여 의논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111
“조조가 우리에게 아드님을 입조시키라 함은 바로 제후를 견제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만약 보내지 않으면 그가 강동으로 출병해서 형세가 필시 위태로울까 걱정입니다.”
 
112
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113
“장군(손권)께서 부형의 유업을 이어받아 6군의 사람들을 아울러 거느려서 병사는 정예하고 식량은 넉넉하며 장사들은 명령을 받듭니다. 어째서 핍박을 받아 인질을 남에게 보내야겠습니까? 인질을 보내면 조씨와 동맹하지 않을 수 없어 그가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렇게 남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인질을 보내지 말고 천천히 그 변화를 살펴 따로 좋은 계책으로 제어하는 것만 못합니다.”
 
114
했다. 오태부인이 말하기를,
 
115
“공근(주유의 자)의 말씀이 옳소.”
 
116
하니, 손권이 마침내 그 말에 따라 사자는 돌려보내고 아들은 보내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조가 강남을 정벌할 마음을 가졌다. 다만 북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남쪽을 정벌할 틈이 없었다.
 
 
117
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祖軍敗績。權部將淩操,輕舟當先,殺入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淩操子淩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卻說孫權弟孫翊爲丹陽太守,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爲心腹,共謀殺翊。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翊妻徐氏美而慧,極善蔔《易》,是日蔔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翊不從,遂與 衆大會。
 
118
건안 8년 11월에 손권이 병력을 이끌고 황조를 정벌하여 장강 가운데서 싸웠는데, 황조의 군대가 거듭 패했다. 손권의 부장 능조가 작고 빠른 배를 타고 앞장서 하구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황조의 부장 감녕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능조의 아들 능통이 당시 막 15세인데 힘을 떨쳐 나아가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서 돌아왔다. 손권이 보니 정세의 변화가 불리하여 군사를 거두어 동오로 되돌아갔다. 한편, 손권의 아우 손익이 단양 태수가 되었는데, 손익은 강직하고 술을 좋아해서 취하면 일찍이 사졸들을 채찍으로 때렸다. 단양의 감독 장수 규람 과 군의 보좌관 대원 이 두 사람이 늘 손익을 죽일 마음을 먹고 결국 손익의 종인 변홍을 심복으로 삼아 함께 손익을 죽일 것을 도모했다. 당시 손익이 장수들과 현령들을 모두 단양에 소집하여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려 했다. 손익의 아내 서씨가 아름다운데다 지혜로웠고 주역 점을 아주 잘 쳤다. 그날 점괘가 몹시 흉해서 손익에게 외출하여 손님을 맞이하지 말 것을 권했다. 손익이 따르지 않고 끝내 사람들과 크게 모임을 가졌다.
 
 
119
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二人乘勢擄翊家資侍妾。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曰:“吾爲汝夫報仇,汝當從我;不從則死。”徐氏曰:“夫死未幾,不忍便相從;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覽從之。徐氏乃密召孫翊心腹舊將孫高、傅嬰二人入府,泣告曰:“先夫在日,常言二公忠義。今媯、戴二賊,謀殺我夫,只歸罪邊洪,將我家資童婢盡皆分去。媯覽又欲強占妾身,妾已詐許之,以安其心。二將軍可差人星夜報知吳侯,一面設密計以圖二賊,雪此仇辱,生死銜恩!”
 
120
저녁이 되어 자리를 파하니, 변홍이 칼을 차고 문밖으로 따라나와 즉시 칼을 뽑아 손익을 베어죽였다. 규람과 대원이 이에 죄를 변홍에게 뒤집어 씌워서 저잣거리에서 처형했다. 두 사람이 이 틈에 손익의 재산과 시첩들을 빼앗았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녀에게 일러 말하기를,
 
121
“내가 네 남편의 원수를 갚았으니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죽이리라.”
 
122
하니, 서씨가 말하기를,
 
123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차마 바로 따를 수는 없소. 그믐날을 기다려 제사를 올리고 상복을 벗은 뒤에 결혼을 해도 늦지 않소.”
 
124
했다. 규람이 그 말을 따랐다. 서씨가 이에 몰래 손익의 심복인 옛 장수 손고와 부영 두 사람을 부중으로 불러들여 눈물을 흘리며 고하기를,
 
125
“남편이 살아 계실 적에 늘 두 분을 충의롭다고 하셨소. 이제 규람과 대원 두 도적놈이 제 남편을 죽일 것을 도모하고도 변홍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뒤에 우리집 재산과 종들을 모조리 나눠 가졌소. 게다가 규람이 제 몸을 강제로 욕보이려 해서 제가 이미 거짓으로 허락하여 그놈을 안심시켰소. 두 장군께서 어서 사람을 보내 오후(손권)께 알리는 한편, 몰래 계책을 내어 두 도적놈을 도모하여 이 원수와 치욕을 갚아주신다면 죽어도 은혜를 잊지 않겠소!”
 
126
했다.
 
 
127
言畢再拜。孫高、傅嬰皆泣曰:“我等平日感府君恩遇,今日所以不即死難者,正欲爲複仇計耳。夫人所命,敢不效力!”於是密遣心腹使者往報孫權。至晦日,徐氏先召孫、傅二人,伏於密室幃幕之中,然後設祭於堂上。祭畢,即除去孝服,沐浴薰香,濃妝豔裹,言笑自若。媯覽聞之甚喜。至夜,徐氏遺婢妾請覽入府,設席堂中飲酒。飲既醉,徐氏乃邀覽入密室。覽喜,乘醉而入。
 
128
(서씨는) 말을 마치고 재배했다. 손고와 부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129
“저희가 평소 부군의 은혜를 크게 입었습니다. 이제 즉시 따라죽지 못한 까닭은 오로지 원수를 갚고자 해서였습니다. 부인께서 명하시는데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130
했다. 이에 몰래 심복을 사자로 보내 손권에게 알렸다. 그믐날에 이르러 서씨가 먼저 손고와 부영 두 사람을 불러 밀실의 휘장 속에 숨긴 뒤, 대청 위에서 제사를 올렸다. 제사를 마치고 즉시 상복을 벗고 목욕하고 향을 뿌려 진하게 화장해 꾸미는데 말하고 웃는 게 태연자약했다. 규람이 (소식을) 듣더니 아주 기뻐했다. 그날 밤 서씨가 비첩을 보내 규람을 부중으로 불렀다. 대청에 술자리를 차려 술을 마시고 취하자 서씨가 규람을 밀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규람이 기뻐하며 취한 채 들어갔다.
 
 
131
徐氏大呼曰:“孫、傅二將軍何在!”二人即從幃幕中持刀躍出。媯覽措手不及,被傅嬰一刀砍倒在地,孫高再複一刀,登時殺死。徐氏複傳請戴員赴宴。員入府來,至堂中,亦被孫、傅二將所殺。一面使人誅戮二賊家小,及其餘黨。徐氏遂重穿孝服,將媯覽、戴員首級,祭於孫翊靈前。不一日,孫權自領軍馬至丹陽,見徐氏已殺媯、戴二賊,乃封孫高、傅嬰爲牙門將,令守丹陽,取徐氏歸家養老。江東人無不稱徐氏之德。後人有詩贊曰:“才節雙全世所無,奸回一旦受摧鋤。庸臣從賊忠臣死,不及東吳女丈夫。”
 
132
서씨가 크게 외치기를,
 
133
“손고, 부영 두 장군은 어디 계시오!”
 
134
하니, 두 사람이 즉시 휘장 뒤에서 칼을 들고 뛰어나왔다. 규람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부영이 한칼에 베어 쓰러뜨리고 손고가 한칼을 더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서씨가 다시 대원을 연회에 불렀다. 대원이 부중에 들어와 대청에 이르러 역시 손, 부 두 장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편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두 도적의 식구와 잔당을 죽였다. 서씨가 다시 상복을 입고 규람과 대원의 벤 머리를 손익의 영전에 올려 제사지냈다. 하루가 안 되어서 손권이 몸소 군마를 거느리고 단양에 이르렀다. 그가 서씨가 이미 규람과 대원 두 도적을 죽인 것을 보고 손고와 부영을 아문장 으로 삼아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귀가시켜 여생을 보내게 했다. 강동 사람치고 서씨의 덕을 칭송치 않는 이가 없었다.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135
“재주와 절개 모두 갖추기는 세상에 드문데, 간악한 무리가 하루아침에 제거되었구나. 용렬한 신하는 도적을 따르고 충신은 죽을 뿐이니, 동오의 여장부를 따를 수가 없구나.”
 
136
하였다.
 
 
137
且說東吳各處山賊,盡皆平複。大江之中,有戰船七千餘只。孫權拜周瑜爲大都督,總統江東水陸軍馬。建安十二年,冬十月,權母吳太夫人病危,召周瑜、張昭二人至,謂曰:“我本吳人,幼亡父母,與弟吳景徒居越中。後嫁與孫氏,生四子。長子策生時,吾夢月入懷;後生次子權,又夢日入懷。蔔者雲:夢日月入懷者,其子大貴。不幸策早喪,今將江東基業付權。望公等同心助之,吾死不朽矣!”又囑權曰:“汝事子布、公瑾以師傅之禮,不可怠慢。吾妹與我共嫁汝父,則亦汝之母也;吾死之後,事吾妹如事我。汝妹亦當恩養,擇佳婿以嫁之。”言訖遂終。孫權哀哭,具喪葬之禮,自不必說。
 
138
한편, 동오 곳곳에서는 산적이 모두 평정되었다. 장강에 전선 7천여 척을 보유하고, 손권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강동의 육군과 수군을 모두 거느리게 했다. 건안 12년 겨울 10월에 손권의 어머니 오태부인이 위독하여 주유와 장소 두 사람을 불러서 일러 말하기를,
 
139
“나 오태부인은 어려서 부모를 잃어 동생 오경과 더불어 월 지방에 옮겨와 살게 됐소. 뒤에 손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네 아들을 낳았소. 맏아들 손책을 낳을 때 내 꿈에 달이 내품에 안겼소. 뒤에 차남 손권을 낳을 때는 또 꿈에 해가 들어와 안겼소. 점쟁이가 이르길, ‘꿈에 해와 달이 들어와 안김은 그 아들이 귀해질 조짐입니다.’라고 했소. 불행히 손책이 일찍 죽어서 지금 강동의 기업은 손권에게 넘어갔소. 바라건대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그를 도와준다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겠소!”
 
140
하고, 다시 손권에게 부탁하기를,
 
141
“너는 자포(장소의 자)와 공근(주유의 자)을 사부의 예로써 섬기는데 태만해선 안 된다. 내 여동생은 나와 함께 네 부친께 시집왔으니 역시 네 모친이다. 내가 죽은 뒤 내 여동생 섬기기를 나를 섬기듯 해라. 네 누이도 마땅히 사랑하고 보호하여 좋은 사위를 골라 시집보내어라.”
 
142
했다. 말을 마치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손권이 슬프게 곡하고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음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143
至來年春,孫權商議欲伐黃祖。張昭曰:“居喪未及期年,不可動兵。”周瑜曰:“報仇雪恨,何待期年?”權猶豫未決。適平北都尉呂蒙入見,告權曰:“某把龍湫水口,忽有黃祖部將甘寧來降。某細詢之:寧字興霸,巴郡臨江人也;頗通書史,有氣力,好遊俠;嘗招合亡命,縱橫於江湖之中;腰懸銅鈴,人聽鈴聲,盡皆避之。又嘗以西川錦作帆幔,時人皆稱爲‘錦帆賊’。後悔前非,改行從善,引 衆投劉表。見表不能成事,即欲來投東吳,卻被黃祖留住在夏口。
 
144
이듬해 봄이 되자 손권이 황조를 칠 것을 상의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145
“상을 입은 지 아직 1년이 안 되었으므로 출병은 불가합니다.”
 
146
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147
“원수를 갚는데 어찌 1년을 기다리겠습니까?”
 
148
했다. 손권이 유예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마침 평북도위 여몽이 들어와 뵙고 손권에게 고하기를,
 
149
“제가 용추 입구를 지키는데 문득 황조의 부하장수 감녕이 귀순했습니다. 제가 자세히 물어보니 감녕의 자는 흥패이고 파군의 임강 사람입니다. 제법 경전과 역사에 통하고 기력이 있고 유협(의협심에서 나온 행동)을 좋아합니다. 그가 일찍이 도망자들을 모아 강호를 주름잡았습니다. 허리에 구리방울을 달아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모두 피해 달아났습니다. 또한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만들어 당시 사람들이 ‘비단 돛을 단 도적’이라 일컬었습니다. 그 뒤에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 착하게 살려고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귀순했습니다. 유표는 큰 일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즉시 동오로 넘어오려 했으나 황조에게 붙들려서 하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150
했다.
 
 
151
前東吳破祖時,祖得甘寧之力,救回夏口;乃待寧甚薄。都督蘇飛屢薦寧於祖。祖曰:寧乃劫江之賊,豈可重用!寧因此懷恨。蘇飛知其意,乃置酒邀寧到家,謂之曰:吾薦公數次,奈主公不能用。日月逾邁,人生幾何,宜自遠圖。吾當保公爲邾縣長,自作去就之計。寧因此得過夏口,欲投江東,恐江東恨其救黃祖殺淩操之事。某具言主公求賢若渴,不記舊恨;況各爲其主,又何恨焉?寧欣然引 衆渡江,來見主公。乞鈞旨定奪。”
 
152
(여몽이 말하기를)
 
153
“예전에 동오가 황조를 격파하자 황조가 감녕의 힘으로 하구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몹시 박하게 대접했습니다. 도독 소비가 여러번 감녕을 황조에게 추천했습니다만, 황조가 말하기를,‘감녕은 강을 노략질하던 도적인데 어찌 중용하겠소?’라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한을 품었습니다. 소비가 그 뜻을 알아 술을 마련해 그를 집으로 불러 이르기를,‘내가 그대를 여러번 천거했으나 어쩐 일인지 주공이 쓰지 않는구려. 세월이 지나가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소. 마땅히 스스로 멀리를 도모하시오. 내가 그대를 악현의 장으로 삼을테니 스스로 거취의 계획을 세우시오.’라고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하구를 벗어나게 돼서 강동으로 넘어오려 했으나 지난날 황조를 구하려고 능조를 죽인 것을 강동에서 원망할까 두려워합니다. 제가 그에게, 주공께서 어진 사람을 목마른 듯이 구하시고 옛 원한은 기억하지 않으며, 하물며 각각 그 주인을 위하여 한 일인데 어찌 원망하겠느냐고 갖추어 말했습니다. 감녕이 흔쾌히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와서 주공을 만나뵐 것입니다. 아무쪼록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154
했다.
 
 
155
孫權大喜曰:“吾得興霸,破黃祖必矣。”遂命呂蒙引甘寧入見。參拜已畢,權曰:“興霸來此,大獲我心,豈有記恨之理?請無懷疑。願教我以破黃祖之策。”寧曰:“今漢祚日危,曹操終必篡竊。南荊之地,操所必爭也。劉表無遠慮,其子又愚劣,不能承業傳基,明公宜早圖之;若遲,則操先圖之矣。今宜先取黃祖。祖今年老昏邁,務於貨利;侵求吏民,人心皆怨;戰具不修,軍無法律。明公若往攻之,其勢必破。既破祖軍,鼓行而西,據楚關而圖巴、蜀,霸業可定也。”
 
156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157
“내가 흥패(감녕의 자)를 얻었으니 반드시 황조를 격파하겠다.”
 
158
하고, 곧 여몽에게 명해 감녕을 데려오게 해서 만났다. 인사를 마쳐 손권이 말하기를,
 
159
“흥패가 여기에 와서 내 마음을 빼앗았거늘 어찌 원한을 기억할 리 있겠소? 청컨대 의심하지 마시오. 내게 황조를 격파할 계책을 가르쳐주기 바라오.”
 
160
하니, 감녕이 말하기를,
 
161
“지금 한나라의 운명이 나날이 기울어지니 결국 조조가 찬탈할 게 분명합니다. 형주 남쪽 지역도 조조가 반드시 다툴 것입니다. 유표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그 아들들도 어리석고 못났으니 그 기반을 계승하지 못할 것입니다. 명공께서 어서 그곳을 도모해야 합니다. 만약 늦으면 조조가 먼저 도모할 것입니다. 이제 마땅히 먼저 황조를 취하십시오. 황조는 이제 늙고 혼미해서 재물과 이익에 눈이 멀어 관리와 백성을 착취하니 사람들이 모두 원망합니다. 무기는 수리하지 않고 군대는 기강이 없습니다. 명공께서 쳐들어가시면 그 세력을 반드시 깨트릴 것입니다. 황조의 군사를 격파한 뒤 북을 울려 서쪽으로 가서 초관을 장악하고 파촉을 도모하시면 가히 패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162
했다.
 
 
163
孫權曰:“此金玉之論也!”遂命周瑜爲大都督,總水陸軍兵;呂蒙爲前部先鋒;董襲與甘寧爲副將;權自領大軍十萬,征討黃祖。細作探知,報至江夏。黃祖急聚 衆商議,令蘇飛爲大將,陳就、鄧龍爲先鋒,盡起江夏之兵迎敵。陳就、鄧龍各引一隊艨艟截住沔口,艨艟上各設強弓硬弩千餘張,將大索系定艨艟於水面上。東吳兵至,艨艟上鼓響,弓弩齊發,兵不敢進,約退數裏水面。甘寧謂董襲曰:“事已至此,不得不進。”乃選小船百餘只,每船用精兵五十人:二十人撐船,三十人各披衣甲,手執鋼刀,不避矢石,直至艨艟傍邊,砍斷大索,艨艟遂橫。
 
164
손권이 말하기를,
 
165
“이것은 금과 옥 같은 이야기요!”
 
166
하고, 마침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수륙의 군사를 모두 거느리게 하고, 여몽을 선봉으로 삼았다. 동습과 감녕을 부장으로 삼았다. 손권이 스스로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황조를 토벌하러 갔다. 세작이 탐지하여 강하에 보고했다. 황조가 급히 무리를 모아 상의하여 소비를 대장으로, 진취와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 강하의 병력을 총동원해 대적했다. 진취와 등룡이 각각 한 무리의 전선을 이끌고 면구에 정박하고 전선마다 강한 활과 쇠뇌를 1천여 장씩 배치하고 큰 밧줄로 전선들을 물 위에 묶었다. 동오의 군대가 이르자 전선에서 북소리가 울리더니 활과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어 동오의 병사들이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물 위에서 몇리를 물러나려 했다. 감녕이 동습에게 말하기를,
 
167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전진하지 않을 수 없소.”
 
168
하고, 이에 작은 배 1백여 척을 골라 배마다 정병 50 인을 태우고, 20인은 노를 젓고 30인은 갑옷을 입고 강철 칼을 들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며 곧장 전선에 접근해 큰 밧줄을 끊으니, 마침내 전선들이 뒤엉켰다.
 
 
169
甘寧飛上艨艟,將鄧龍砍死。陳就棄船而走。呂蒙見了,跳下小船,自舉櫓棹,直入船隊,放火燒船。陳就急待上岸,呂蒙舍命趕到跟前,當胸一刀砍翻。比及蘇飛引軍於岸上接應時,東吳諸將一齊上岸,勢不可當。祖軍大敗。蘇飛落荒而走,正遇東吳大將潘璋,兩馬相交,戰不數合,被璋生擒過去,徑至船中來見孫權。權命左右以檻車囚之,待活捉黃祖,一並誅戮。催動三軍,不分晝夜,攻打夏口。正是:只因不用錦帆賊,至令沖開大索船。
 
170
감녕이 전선 위로 날 듯이 올라가 등룡을 베어죽였다. 진취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여몽이 보더니 작은 배로 뛰어내려서 스스로 노를 저어 적의 선단으로 돌입해서 적선에 불을 질었다. 진취가 급히 강둑에 오르지만 여몽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쫓아가서 한칼에 가슴을 찔러 거꾸러뜨렸다. 소비가 군사를 이끌고 강둑에서 맞서지만 오군의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상륙하여 막아내지 못했다. 황조의 군사가 대패하고 소비가 큰길을 버리고 들로 도망치다가 바로 동오의 대장 반장을 맞닥뜨렸다. 둘이 맞붙어 몇합 싸우지 않아서 반장이 사로잡아서 배 위로 끌고가 손권에게 보였다. 손권이 좌우에 명해 함거에 가두게 하고 황조를 사로잡기를 기다려 함께 처형하려 했다. 3군을 재촉하여 밤낮없이 하구를 공격했다. 이야말로, 오직 ‘비단 돛을 단 도적’을 쓰지 않더니 결국 큰 밧줄로 묶은 선단을 공격하게 했구나.
 
 
171
未知黃祖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172
황조의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38회 융중에서 삼분천하의 계책을 정하고, 손권이 장강에서 싸워 원수를 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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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동양문학 >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38권 다음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