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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7회 위나라 군주의 정치가 사마씨에게 돌아가고 강유가 우두산에서 패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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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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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七回 魏主政歸司馬氏 薑維兵敗牛頭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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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회 위나라 군주의 정치가 사마씨에게 돌아가고 강유가 우두산에서 패전하다.
 
 
3
卻說,司馬懿聞曹爽同弟曹羲、曹訓、曹彥並心腹何晏,鄧颺、丁謐、畢軌、李勝等及禦林軍,隨魏主曹芳,出城謁明帝墓,就去畋獵。懿大喜,即到省中,令司徒高柔,假以節鉞行大將軍事,先據曹爽營;又令太仆王觀行中領軍事,據曹羲營。懿引舊官入後宮奏郭太後,言爽背先帝托孤之恩,奸邪亂國,其罪當廢。郭太後大驚曰:“天子在外,如之奈何?”懿曰:“臣有奏天子之表,誅奸臣之計。太後勿憂。”太後懼怕,只得從之。懿急令太尉蔣濟、尚書令司馬孚,一同寫表,遣黃門齎出城外,徑至帝前申奏。懿自引大軍據武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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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마의가 듣자니, 조상이 그의 아우 조희, 조훈, 조언과 아울러 심복 하안, 등양, 정밀, 필궤, 이승 등과 어림군을 이끌고, 위나라 황제 조방을 수행하여, 성 밖으로 나가서 명제(조예)의 묘를 알현하고, 사냥하러 갔다고 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궁궐 안으로 가서 사도 고유에게 명하여 임시로 절월(황제의 신임 증표)을 주어서 대장군의 일을 맡겨 먼저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게 했다. 또한 태복 왕관에게 중령군의 일을 맡겨, 조희의 군영을 점거했다. 사마의가 옛 관리들을 이끌고 후궁으로 들어가서 곽 태후에게 아뢰기를, 조상이 선제(조예)의 탁고(고아를 부탁함)를 저버리고 간사하게 나라를 어지럽히니 그 죄가 마땅히 폐할 만하다고 했다. 곽 태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5
“천자께서 바깥에 계신데 어찌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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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7
“신에게 천자께 올릴 표와 간신을 주살할 계책이 있사오니, 태후께서 심려하지 마소서.”
 
8
했다. 태후가 두려워서 그 말을 따랐다. 사마의가 태위 장제와 상서령 사마부를 시켜 함께 표를 쓰게 하고, 황문(환관)에게 그 표를 줘서 성 밖으로 나가서 곧장 황제를 찾아가 아뢰게 했다. 사마의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무기고를 점거했다.
 
 
9
早有人報知曹爽家。其妻劉氏急出廳前,喚守府官問曰:“今主公在外,仲達起兵何意?”守門將潘舉曰:“夫人勿驚,我去問來。”乃引弓弩手數十人,登門樓望之。正見司馬懿引兵過府前,舉令人亂箭射下,懿不得過。偏將孫謙在後止之曰:“太傅爲國家大事,休得放箭。”連止三次,舉方不射。司馬昭護父司馬懿而過,引兵出城屯於洛河,守住浮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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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누군가 조상의 집에 알렸다. 그 처 유씨가 급히 관청 앞으로 가서 부중을 지키는 관리를 불러서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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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공이 바깥에 계신데, 중달(사마의)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무슨 까닭이오?”
 
12
하니, 수문장 반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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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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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궁노수 수십 인을 이끌고 문루에 올라서 바라보았다. 마침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관청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반거가 사람들을 시켜 아래쪽으로 난사하니, 사마의가 지나갈 수가 없었다. 편장(하급 장수) 손겸이 뒤에서 제지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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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부께서 국가의 큰일을 하는 것이니, 화살을 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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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잇달아 세 번을 제지하니 반거가 비로소 사격을 멈추었다. 사마소가 부친 사마의를 호위하여 통과하더니,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서 낙하(황하의 지류)에 주둔하여 부교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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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說,曹爽手下司馬魯芝,見城中事變,來與參軍辛敞商議曰:“今仲達如此變亂,將如之何?”敞曰:“可引本部兵出城去見天子。”芝然其言。敞急入後堂。其姊辛憲英見之,問曰:“汝有何事,慌速如此?”敞告曰:“天子在外,太傅閉了城門,必將謀逆。”憲英曰:“司馬公未必謀逆,特欲殺曹將軍耳。”敞驚曰:“此事未知如何?”憲英曰:“曹將軍非司馬公之對手,必然敗矣。”敞曰:“今魯司馬教我同去,未知可去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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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상의 수하로 있는 사마(군사 담당) 노지가 성안에서 변란이 일어나자, 참군 신창을 찾아가서 상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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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달(사마의)이 이렇게 변란을 일으키니 장차 어찌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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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신창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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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서 천자를 찾아뵙는 것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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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노지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 신창이 후당으로 급히 들어가니, 그의 누나 신헌영이 보고서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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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황급히 서두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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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신창이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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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께서 밖에 계신데, 태부가 성문을 폐쇄하니, 틀림없이 역모를 일으키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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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신헌영이 말하기를,
 
27
“사마의 공이 꼭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상 장군을 죽이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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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신창이 놀라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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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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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신헌영이 말하기를,
 
31
“조상 장군은 사마의 공의 맞수가 아니니 반드시 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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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신창이 말하기를,
 
33
“지금 노지 사마가 나더러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가도 될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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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35
憲英曰:“職守,人之大義也。凡人在難,猶或恤之;執鞭而棄其事,不祥莫大焉。”敞從其言,乃與魯芝引數十騎,斬關奪門而出。人報知司馬懿。懿恐桓範亦走,急令人召之。範與其子商議。其子曰:“車駕在外,不如南出。”範從其言,乃上馬至平昌門,城門已閉,把門將乃桓範舊吏司蕃也。範袖中取出一竹版曰:“太後有詔,可即開門。”司蕃曰:“請詔驗之。”範叱曰:“汝是吾故吏,何敢如此!”蕃只得開門放出。範出的城外,喚司蕃曰:“太傅造反,汝可速隨我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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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영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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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직무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큰 의리다. 무릇 사람이 재난에 처하면 그를 구해야 하는 법이다. 사람을 모시면서 그의 일을 모른 체한다면 그것보다 상서롭지 못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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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신창이 그 말을 따라, 이에 노지와 함께 수십 기를 이끌고 가서 관문을 지키는 이를 베고 성문을 열고 나갔다. 누군가 사마의에게 이것을 알렸다. 사마의가 환범도 달아나까 두려워서 급히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환범이 그 아들과 상의하니, 그 아들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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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임금의 수레)가 바깥에 있으니 남쪽으로 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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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환범이 그 말을 따라, 말을 타고 평창문에 이르니, 성문은 이미 닫혔는데, 수문장이 바로 환범의 옛 부하 사번이었다. 환범이 소매에서 대나무 판자를 하나 꺼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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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께서 내린 조서가 있으니 어서 문을 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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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번이 말하기를,
 
43
“조서를 검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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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환범이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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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옛 부하였거늘 어찌 감히 이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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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번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내보냈다. 환범이 성 밖으로 나와서, 사번을 불러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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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부가 반란을 일으키니, 너도 속히 나를 따라 가자.”
 
48
했다.
 
 
49
蕃大驚,追之不及。人報知司馬懿。懿大驚曰:“‘智囊’泄矣!如之奈何?”蔣濟曰:“駑馬戀棧豆,必不能用也。”懿乃召許允、陳泰曰:“汝去見曹爽,說太傅別無他事,只是削汝兄弟兵權而已。”許、陳二人去了。又召殿中校尉尹大目至;令蔣濟作書,與目持去見爽。懿分付曰:“汝與爽厚,可領此任。汝見爽,說吾與蔣濟指洛水爲誓,只因兵權之事,別無他意。”尹大目依令而去。卻說,曹爽正飛鷹走犬之際,忽報城內有變,太傅有表。爽大驚,幾乎落馬。黃門官捧表跪於天子之前。爽接表拆封,令近臣讀之。
 
50
사번이 크게 놀라서, 뒤쫓았지만 따라가지 못했다. 누군가 사마의에게 이것을 알리니,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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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주머니'를 놓치다니! 어찌해야겠소?”
 
52
하니, 장제가 말하기를,
 
53
“열등한 말은 늘 먹을 것만 생각한다고 했으니, 그런 자는 틀림없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54
했다. 사마의가 이에 허윤과 진태를 불러서 말하기를,
 
55
“너희가 조상을 찾아가서, 태부에게 다른 뜻은 없고 다만 그들 형제의 병권을 박탈하려는 것뿐이라고 말해라.”
 
56
하니, 허, 진 두 사람이 떠났다. 다시 전중교위 윤대목을 불러오고, 장제에게 명하여 글을 쓰게 하여, 그 글을 윤대목에게 줘서 조상을 찾아가게 했다. 사마의가 분부하기를,
 
57
“그대가 조상과 친분이 두터우니 이 임무를 맡아야겠소. 조상을 만나거든, 나와 장제가 낙수(황하의 지류)를 가리켜 맹세하며 병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했다고 전하시오.”
 
58
라고 했다. 윤대목이 명령을 받고 떠났다. 한편, 조상이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달리게 하는데, 홀연 알리기를, 성안에 변고가 일어나서 태부 사마의가 표를 올렸다고 했다. 조상이 크게 놀라서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황문관(내시)이 표를 받들어 천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상이 표를 받아서 뜯은 뒤에 근신(모시는 신하)으로 하여금 읽게 했다.
 
 
59
表略曰:“征西大都督、太傅臣司馬懿,誠惶誠恐,頓首謹表:臣昔從遼東還,先帝詔陛下與秦王及臣等,升禦床,把臣臂,深以後事爲念。今大將軍曹爽,背棄顧命,敗亂國典;內則僭擬,外專威權;以黃門張當爲都監,專共交關;看察至尊,候伺神器;離間二宮,傷害骨肉;天下洶洶,人懷危懼:此非先帝詔陛下及囑臣之本意也。臣雖朽邁,敢忘往言?太尉臣濟、尚書令臣孚等,皆以爽爲有無君之心,兄弟不宜典兵宿衛。奏永寧宮,皇太後令敕臣如奏施行。臣輒敕主者及黃門令,罷爽、羲、訓吏兵,以侯就第,不得逗留,以稽車駕;敢有稽留,便以軍法從事。臣輒力疾將兵,屯於洛水浮橋,伺察非常。謹此上聞,伏於聖聽。”
 
60
표에 대략 이르기를,
 
61
“정서대도독 태부 신 사마의는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고개 숙여 삼가 표를 올리나이다. 신이 지난날 요동에서 돌아오자 선제께서 조서를 내려, 폐하를 진왕(조상)과 신들과 함께 용상 가까이 불러, 신의 팔을 잡고 후사를 깊이 근심하셨습니다. 이제 대장군 조상이 고명(황제의 유언)을 저버리고 국가의 제도와 법령을 무너뜨리니, 안으로 참람하고 밖으로 위세와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황문(내시) 장당을 도감으로 임명하더니, 그와 함께 결탁하여, 지존(황제)을 감시하고 신기(황제의 지위)를 찬탈할 기회를 노렸습니다. 황제와 태후를 이간시키고 골육을 해쳤습니다. 천하가 흉흉하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게 됐습니다. 이것은 결코 선제께서 폐하에게 말씀하시고 신들에게 부탁한 본의가 아닙니다. 신이 비록 노쇠할지언정 어찌 감히 옛 말씀을 잊겠습니까? 태위 신 장제, 상서령 신 사마부 등이 모두 조상에게는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없으며, 그 형제는 병권을 쥐고 금군을 지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녕궁에 계시는 황태후께 상주하니, 황태후께서 신으로 하여금 상주한대로 시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이 독단으로 담당자와 황문령(내시장)에 명하여, 조상, 조희, 조훈의 병권을 빼앗고 집으로 돌아가서 처분을 기다리게 하고, 그들이 거가(황제의 수레)를 멈추거나 가로막지 못하게 했습니다. 감히 그들이 방해한다면, 군법대로 다스릴 것입니다. 신이 독단으로 장수와 병사들을 신속히 움직여서 낙수의 부교에 주둔하여 엄중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삼가 이렇게 아뢰며, 엎드려 폐하의 명을 기다리겠습니다.”
 
62
했다.
 
 
63
魏主曹芳聽畢,乃喚曹爽曰:“太傅之言若此,卿如何裁處?”爽手足失措,回顧二弟曰:“爲之奈何?”羲曰:“劣弟亦曾諫兄,兄執迷不聽,致有今日。司馬懿譎詐無比,孔明尚不能勝,況我兄弟乎?不如自縛見之,以免一死。”言未畢,參軍辛敞、司馬魯芝到。爽問之。二人告曰:“城中把得鐵桶相似,太傅引兵屯於洛水浮橋,勢將不可複歸。宜早定大計。”正言間,司農桓範驟馬而至,謂爽曰:“太傅已變,將軍何不請天子幸許都,調外兵以討司馬懿耶?”爽曰:“吾等全家皆在城中,豈可投他處求援?”範曰:“匹夫臨難,尚欲望活!今主公身隨天子,號令天下,誰敢不應?豈可自投死地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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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황제 조방이 듣고 나서 조상을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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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부의 말씀이 이러한데, 경은 어떻게 판단하여 대처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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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상이 손발을 가누지 못하고, 두 아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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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찌해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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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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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아우도 일찍이 형님에게 간했지만, 형님이 고집을 부리며 듣지 않아서 오늘처럼 됐소. 사마의는 속임수가 비할 데가 없어 공명도 그를 이기지 못했거늘, 하물며 우리 형제가 어찌하겠소? 스스로 몸을 묶어서 그를 만나 죽음이라도 면하는 것이 낫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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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참군 신창과 사마 노지가 왔다. 조상이 물으니 두 사람이 고하기를,
 
71
“성안을 철통같이 장악하고, 태부가 군사를 이끌고 낙수의 부교에 주둔했으니, 이런 형세에서 복귀해서는 안 됩니다. 어서 큰 계획을 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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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사농 환범이 말을 몰아서 오더니, 조상에게 말하기를,
 
73
“태부가 이미 변란을 일으켰는데 장군께서는 어찌 천자를 허도로 모시고 외부 병력을 동원해서 사마의를 토벌하지 않으십니까?”
 
74
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75
“우리 가족이 모두 성안에 있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가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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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환범이 말하기를,
 
77
“장부가 어려운 상황에 임하여, 아직도 살아남기를 바라겠습니까? 이제 주공께서 천자를 수행하여, 천하를 호령한다면, 누가 감히 응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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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79
爽聞言不決,惟流涕而已。範又曰:“此去許都,不過中宿。城中糧草,足支數載。今主公別營兵馬,近在闕南,呼之即至。大司馬之印,某將在此。主公可急行,遲則休矣!”爽曰:“多官勿太催逼,待吾細細思之。”少頃,侍中許允、尚書陳泰至。二人告曰:“太傅只爲將軍權重,不過要削去兵權,別無他意。將軍可早歸城中。”爽默然不語。又只見殿中校尉尹大目到。目曰:“太傅指洛水爲誓,並無他意。有蔣太尉書在此。將軍可削去兵權,早歸相府。”爽信爲良言。桓範又告曰:“事急矣,休聽外言而就死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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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이 그 말을 듣고도 결단하지 못하고, 다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환범이 다시 말하기를,
 
81
“지금 허도로 가면 오늘 밤 자정까지는 당도할 수 있습니다. 성안의 군량과 사료도 넉넉히 몇 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이제 주공의 별도 군영 병마들이 가까이 궐남에 있으니 부르면 즉시 올 것입니다. 대사마의 도장도 제가 가져왔습니다. 주공께서 서둘러 가십시오. 늦으면 끝입니다.”
 
82
하니, 조상이 말하기를,
 
83
“여럿이 너무 재촉하지 마시오. 내가 세세하게 생각하도록 기다려 주시오.”
 
84
했다. 잠시 뒤, 시중 허윤, 상서 진태가 와서 고하기를,
 
85
“태부께서 단지 장군의 권한이 지나치다고 여겨서, 병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장군께서 어서 성안으로 돌아가십시오.”
 
86
하니, 조상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또 전중교위 윤대목도 와서 말하기를,
 
87
“태부께서 낙수를 가리켜 맹세하며, 참으로 다른 뜻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장제 태위의 서신이 여기 있습니다. 장군께서 병권을 내놓으시고, 어서 승상의 관저로 돌아가십시오.”
 
88
했다. 조상이 이를 믿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니, 환범이 다시 고하기를,
 
89
“일이 급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사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90
했다.
 
 
91
是夜,曹爽意不能決,乃拔劍在手,嗟歎尋思;自黃昏直流淚到曉,終是狐疑不定。桓範入帳催之曰:“主公思慮一晝夜,何尚不能決?”爽擲劍而歎曰:“我不起兵,情願棄官,但爲富家翁足矣!”範大哭,出帳曰:“曹子丹以智謀自矜!今兄弟三人,真豚犢耳!”痛哭不已。許允、陳泰令爽先納印綬與司馬懿。爽令將印送去,主簿楊綜扯住印綬而哭曰:“主公今日舍兵權自縛去降,不免東市受戮也!”爽曰:“太傅必不失信於我。”
 
92
이날 밤, 조상이 결정하지 못해서 검을 뽑아 손에 쥐고 탄식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황혼부터 줄곧 눈물을 흘리다가 새벽이 오는데도, 끝까지 의심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환범이 장막으로 들어와서 재촉하기를,
 
93
“주공께서 하루 밤낮으로 생각하셨는데 어찌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십니까?”
 
94
하니, 조상이 검을 던지며 탄식하기를,
 
95
“나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소. 청컨대 관직을 버리고 다만 부자 늙은이로 산다면 만족하겠소!”
 
96
했다. 환범이 크게 통곡하고 장막을 나가며 말하기를,
 
97
“조자단(조진)은 지모를 자부했는데 지금의 형제 세 사람은 정말 돼지 새끼일 따름이구나!”
 
98
하고, 통곡해 마지않았다. 허윤과 진태가 조상에게 먼저 대장군의 도장과 끈을 사마의에게 바치게 했다. 조상이 장군의 도장을 그들에게 내어줘서 보내려 하니, 주부 양종이 인수(도장과 끈)를 붙잡고 소리내어 울며 말하기를,
 
99
“주공께서 오늘 병권을 버리고 스스로 몸을 묶어 항복하시면, 동쪽 저잣거리에서 살륙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100
했다. 조상이 말하기를,
 
101
“태부께서 틀림없이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오.”
 
102
했다.
 
 
103
於是曹爽將印綬與許、陳二人,先齎與司馬懿。 衆軍見無將印,盡皆四散。爽手下只有數騎官僚。到浮橋時,懿傳令,教曹爽兄弟三人,且回私宅;餘皆發監,聽候敕旨。爽等入城時,並無一人侍從。桓範至浮橋邊,懿在馬上以鞭指之曰:“桓大夫何故如此?”範低頭不語,入城而去。於是司馬懿請駕拔營入洛陽。曹爽兄弟三人回家之後,懿用大鎖鎖門,令居民八百人圍守其宅。曹爽心中憂悶。羲謂爽曰:“今家中乏糧,兄可作書與太傅借糧。如肯以糧借我,必無相害之心。”爽乃作書令人持去。司馬懿覽畢,遂遣人送糧一百斛,運至曹爽府內。爽大喜曰:“司馬公本無害我之心也!”遂不以爲憂。
 
104
이에 조상이 인수를 허윤과 진태 두 사람에게 줘서 먼저 사마의에게 보냈다. 여러 군사가 조상에게 장군의 인수가 없는 것을 보고 모조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상의 수하는 겨우 몇 기의 관료뿐이었다. 그들이 부교에 이르자, 사마의가 명령을 전하여, 조상 형제 세 사람을 우선 사택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머지 모두는 투옥하고, 천자의 명령을 기다리게 했다. 조상 등이 성안으로 들어갈 때 한 사람도 시종하는 사람이 없었다. 환범이 부교 주변에 이르자, 사마의가 말 위에서 채찍을 들어 가리키며 말하기를,
 
105
“환 대부가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됐소?”
 
106
하니, 환범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며, 성으로 들어갔다. 이에 사마의가 천자에게 청하여, 군영을 거두고 낙양으로 들어가게 했다. 조상 형제 세 사람이 귀가한 뒤에 사마의가 큰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주민 8백 인을 동원해 그 집을 에워싸서 지키게 했다. 조상이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고민했다. 조희가 조상에게 말하기를,
 
107
“지금 집안의 양식이 떨어졌으니 형님이 글을 써서 태부에게 양식을 빌려 보시오. 그가 기꺼이 양식을 빌려준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는 것이오.”
 
108
했다. 조상이 이에 글을 써서 사람에게 가져가게 했다. 사마의가 글을 읽더니 곧 사람들을 시켜 양식 1백 석을 보내어, 조상의 부중까지 운반했다. 조상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109
“사마의 공은 본디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구나!”
 
110
하고, 마침내 걱정하지 않았다.
 
 
111
原來司馬懿先將黃門張當捉下獄中問罪。當曰:“非我一人,更有何晏、鄧颺、李勝、畢軌,丁謐等五人,同謀篡逆。”懿取了張當供詞,卻捉何晏等勘問明白:皆稱三月間欲反。懿用長枷釘了。城門守將司蕃告稱:“桓範矯詔出城,口稱太傅謀反。”懿曰:“誣人反情,抵罪反坐。”亦將桓範等皆下獄,然後押曹爽兄弟三人並一幹人犯,皆斬於市曹,滅其三族;其家產財物,盡抄入庫。
 
112
알고 보니, 사마의는 먼저 황문(내시) 장당을 붙잡아 옥중에서 죄를 물으니, 장당이 말하기를,
 
113
“저 한 사람이 아니라, 하안, 등양, 이승, 필궤, 정밀 등 다섯 사람이 함께 찬탈하여 반역할 것을 모의했습니다.”
 
114
했다. 사마의가 장당의 자백을 받아낸 뒤, 하안 등을 잡아들여 심문하여 밝혔는데, 모두가 석 달 안에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말했다. 사마의가 그들에게 큰 칼(형틀)을 채웠다. 성문을 지키는 장수 사번이 고발하기를,
 
115
“환범이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여 성을 나가더니 입으로‘태부가 모반한다’고 했다.”
 
116
고 말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117
“남을 무고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니,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오.”
 
118
했다. 환범 등을 모두 하옥한 뒤에 조상 형제 3인을 끌어내서, 함께 관련된 범인들 모두를 저잣거리에서 처형하고, 그 삼족을 멸했다. 그들의 가산과 재물은 모조리 빼앗아 곳간에 넣었다.
 
 
119
時有曹爽從弟文叔之妻,乃夏侯令女也:早寡而無子,其父欲改嫁之,女截耳自誓。及爽被誅,其父複將嫁之,女又斷去其鼻。其家驚惶,謂之曰:“人生世間,如輕塵棲弱草,何至自苦如此?且夫家又被司馬氏誅戮已盡,守此欲誰爲哉?”女泣曰:“吾聞‘仁者’不以盛衰改節,義者不以存亡易心。曹氏盛時,尚欲保終;況今滅亡,何忍棄之?此禽獸之行,吾豈爲乎!”懿聞而賢之,聽使乞子以養,爲曹氏後。後人有詩曰:“弱草微塵盡達觀,夏侯有女義如山。丈夫不及裙釵節,自顧須眉亦汗顏。”
 
120
그때 조상의 종제(사촌 동생) 조문숙의 처는 바로 하후령의 딸이었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자식도 없어, 그 부친이 개가시키려 하자, 그 딸이 귀를 잘라 맹세하며 거부했다. 이윽고 조상이 처형되기에 이르자, 그 부친이 다시 개가시키려는데, 딸이 다시 자신의 코를 잘랐다. 그 가족이 놀라고 당황해서, 그 딸에게 말하기를,
 
121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힘없는 풀잎에 붙은 티끌처럼 덧없거늘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느냐? 게다가 시집도 사마씨에게 주륙을 당해 없어졌는데, 이렇게 수절한들 누구를 위한단 말이냐?”
 
122
하니,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123
“제가 듣기에, 어진 사람은 성쇠에 따라 절개를 고치지 않으며, 의로운 사람은 존망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씨가 번성할 때도 끝까지 지키려 했는데, 하물며 이제 멸망했다고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이런 짓은 짐승의 행동이니 제가 어찌 행할 수 있겠습니까?”
 
124
했다. 사마의가 이를 듣고 그 여인을 어질다고 여겨서, 아들을 입양하여 길러서 조씨의 후손으로 삼으라고 하니, 그렇게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125
“인생은 풀잎의 먼지 같다고 달관하거늘, 하후씨의 딸은 의롭기가 태산 같네. 대장부도 여인의 절개에 미치지 못하니, 사내들은 스스로 돌아보아 식은땀을 흘리네.”
 
126
했다.
 
 
127
卻說,司馬懿斬了曹爽,太尉蔣濟曰:“尚有魯芝、辛敞斬關奪門而出,楊綜奪印不與,皆不可縱。”懿曰:“彼各爲其主,乃義人也。”遂複各人舊職。辛敞歎曰:“吾若不問於姊,失大義矣!”後人有詩贊辛憲英曰:“爲臣食祿當思報,事主臨危合盡忠。辛氏憲英曾勸弟,故令千載頌高風。”司馬懿饒了辛敞等,仍出榜曉諭:但有曹爽門下一應人等,盡皆免死;有官者照舊複職。軍民各守家業,內外安堵。何、鄧二人死於非命,果應管輅之言。後人有詩贊管輅曰:“傳得聖賢真妙訣,平原管輅相通神。“鬼幽”“鬼躁”分何鄧,未喪先知是死人。”
 
128
한편, 사마의가 조상을 참하자 태위 장제가 말하기를,
 
129
“일찍이 노지와 신창은 관문의 수비병을 죽이고 달아났으며, 양종은 인수를 탈취해서 주지 않았으니 모두 풀어주면 안 됩니다.”
 
130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131
“그들는 모두 각자 주군을 위한 것이니 의로운 사람들이오.”
 
132
하고, 곧 각자 옛 직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신창이 탄식하기를,
 
133
“내가 만약 누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면 대의를 잃을 뻔했구나!”
 
134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신헌영을 찬양하기를,
 
135
“신하가 되어 녹봉을 받으면 보은을 생각해야 하고, 주군을 섬기다 위급에 처하면 충성을 다해야 하네. 신헌영이 일찍이 동생에게 이렇게 권하니, 천년이 지나도 드높은 기풍을 칭송하게 하였네.”
 
136
했다. 사마의가 신창 등을 용서한 뒤에 방문을 붙여서 알렸다. 또한 조상의 문하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죽음을 면해 주었다. 관직에 있던 이들도 원래대로 복직시켰다. 군사와 백성이 각각 가업을 지키고 내외가 안도했다.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이 비명에 죽었으니 과연 관로의 예언대로였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관로를 찬탄하기를,
 
137
“듣자니, 성현은 참으로 비결을 가졌다더니, 평원의 관로는 신령과 통했네. 귀유(용모가 바짝 말라서 정신이 없음)와 귀조(귀신같은 태도와 행실)로 하안과 등양을 분별하여, 아직 초상을 치르지 않았지만 죽은 이와 같음을 먼저 알았네.”
 
138
했다.
 
 
139
卻說,魏主曹芳封司馬懿爲丞相,加九錫。懿固辭不肯受。芳不准,令父子三人同領國事。懿忽然想起:“曹爽全家雖誅,尚有夏侯玄守備雍州等處,系爽親族,倘驟然作亂,如何提備?必當處置。”即下詔遣使往雍州,取征西將軍夏侯玄赴洛陽議事。玄叔夏侯霸聽知大驚,便引本部三千兵造反。有鎮守雍州刺史郭淮,聽知夏侯霸反,即率本部兵來,與夏侯霸交戰。淮出馬大罵曰:“汝既是大魏皇族,天子又不曾虧汝,何故背反?”霸亦罵曰:“吾祖父於國家多建勤勞,今司馬懿何等匹夫,滅吾兄曹爽宗族,又來取我,早晚必思篡位。吾仗義討賊,何反之有?”
 
140
한편, 위나라 황제 조방은 사마의를 승상으로 봉하고, 그에게 구석(아홉가지 특전)의 지위를 더했다. 사마의가 사양하며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방이 불허하며 사마의의 부자 세 사람에게 함께 국사를 다스리도록 명했다. 사마의가 문득 상기하기를,
 
141
“비록 조상의 일족을 모두 주살했다 하더라도 아직도 하후현이 옹주 등지를 수비하고 있다. 조상과 연계된 친족이 만약 돌연히 반란을 일으키면 어찌 방비하겠는가? 반드시 대처해야겠구나.”
 
142
하고, 즉시 조서를 내려 사자를 옹주로 보내 정서장군 하후현을 낙양으로 불러들여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다. 하후현의 아저씨 하후패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곧 휘하의 3천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옹주를 지키는 자사 곽회가 하후패의 반란을 전해 듣고, 즉각 휘하 병력을 거느리고 와서 하후패와 교전했다. 곽회가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꾸짖기를,
 
143
“너는 위나라의 황족이고 천자께서도 너를 버리지 않으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배반하느냐?”
 
144
하니, 하후패가 욕하기를,
 
145
“내 조부께서는 국가에 많은 공훈을 세우셨지만 이제 사마의는 어떤 필부이기에 우리 형 조상의 종족을 멸하고 나를 치려 하느냐? 조만간 틀림없이 제위를 찬탈하려는 것이니, 내가 대의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는 것인데 어찌 반란이겠느냐?”
 
146
했다.
 
 
147
淮大怒,挺槍驟馬,直取夏侯霸。霸揮刀縱馬來迎。戰不十合,淮敗走,霸隨後趕來。忽聽的後軍呐喊,霸急回馬時,陳泰引兵殺來。郭淮複回,兩路夾攻。霸大敗而走,折兵大半;尋思無計,遂投漢中來降後主。有人報與薑維,維心不信,令人體訪得實,方教入城。霸拜見畢,哭告前事。維曰:“昔微子去周,成萬古之名:公能匡扶漢室,無愧古人也。”遂設宴相待。維就席問曰:“今司馬懿父子掌握重權,有窺我國之志否?”霸曰:“老賊方圖謀逆,未暇及外。但魏國新有二人,正在妙齡之際,若使領兵馬,實吳、蜀之大患也。”
 
148
곽회가 크게 노하여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곧바로 하후패에게 달려들었다. 하후패도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맞서려 달려나왔다. 싸운 지 십 합이 되지 않아서 곽회가 패주하니 하후패가 뒤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후군에서 함성이 들리므로, 하후패가 급히 말을 돌릴 때에, 진태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곽회가 되돌아와서 두 갈래로 협공을 하니, 하후패가 대패하여 달아나고 병력의 태반을 잃었다. 한동안 생각해도 계책이 없자, 마침내 한중으로 가서 후주(촉나라)에게 투항했다. 누군가 이를 강유에게 알리니, 강유가 마음속으로 믿지 못하여 사람을 시켜 직접 실상을 살피게 한 뒤에야 성으로 들어오게 지시했다. 하후패가 인사를 마치고 소리내어 울며 지난 일을 고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149
“옛날에 미자(은나라 주왕(紂王)의 이복형)가 주(周)나라로 가서 만고에 이름을 전하게 됐소. 공께서 능히 한나라 황실을 바로잡는다면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오.”
 
150
했다. 곧 연회를 베풀어 대접했다. 강유가 연회 자리에서 묻기를,
 
151
“이제 사마의의 부자가 대권을 장악했으니 우리나라를 넘보지 않겠소?”
 
152
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153
“늙은 역적이 이제 막 역모를 꾸민지라 아직은 나라 밖까지 넘볼 틈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위나라에 새로 나타난 두 사람이 있는데 이제 한창 청춘의 나이요. 만약 그들이 병마를 지휘하게 되면 참으로 오나라와 촉나라의 큰 우환이 될 것이오.”
 
154
했다.
 
 
155
維問:“二人是誰?”霸告曰:“一人現爲秘書郎,乃潁川長社人,姓鍾,名會,字士季,太傅鍾繇之子,幼有膽智。繇嘗率二子見文帝,會時年七歲,其兄毓年八歲。毓見帝惶懼,汗流滿面。帝問毓曰:卿何以汗?毓對曰:戰戰惶惶,汗出如漿。帝問會曰:“卿何以不汗?會對曰:戰戰栗栗,汗不敢出。帝獨奇之。及稍長,喜讀兵書,深明韜略;司馬懿與蔣濟皆奇其才。
 
156
강유가 묻기를,
 
157
“그 두 사람이 누구요?”
 
158
하니, 하후패가 알려주기를,
 
159
“한 사람은 현재 비서랑이 되었는데 영천군 장사현 출신으로 성은 종이고 이름은 회이며 자는 사계요. 태부 종요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담력과 지혜를 갖추었소. 종요가 일찍이 두 아들을 데리고 문제(조비)를 알현한 적이 있소. 그때 종회가 일곱 살이고 그 형 종육은 여덟 살이었소. 종육이 황제를 뵙자 두려워서, 식은땀을 얼굴 가득 흘렸소. 문제가 종육에게,‘경이 어째서 땀을 흘리는가?’하고 물으니, 종육이 대답하기를,‘ 벌벌 떨리며 두려워서 땀이 마치 국물처럼 나옵니다.’라고 답했소. 문제가 종회에게 묻기를,‘경은 어째서 땀을 흘리지 않는가?’하니, 종회가 대답하기를,‘벌벌 떨리고 오싹한지라 땀이 감히 나오지 못합니다.’라고 했소. 문제가 매우 기특하게 여겼소. 이윽고 조금 자라자 병서를 읽기를 즐겨서 육도삼략(강태공과 황석공의 병법)을 깊이 깨우쳤소. 사마의와 장제 모두 그 재능을 칭찬했소.
 
 
160
一人現爲掾吏,乃義陽人也,姓鄧,名艾,字士載,幼年失父,素有大志,但見高山大澤,輒窺度指畫,何處可以屯兵,何處可以積糧,何處可以埋伏。人皆笑之,獨司馬懿奇其才,遂令參贊軍機。艾爲人口吃,每奏事必稱‘艾……艾……’。懿戲謂曰:‘卿稱艾艾有幾艾?’艾應聲曰:‘“鳳兮鳳兮”,故是一鳳。’其資性敏捷,大抵如此。此二人深可畏也。”維笑曰:“量此孺子,何足道哉!”
 
161
또 한 사람은 현재 연리(아전)가 되었는데 의양군 사람이고, 성은 등이며 이름은 애이고 자는 사재요. 유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평소 큰 뜻을 품고 높은 산과 큰 못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계책을 세우고 손으로 그리며 어느 곳에 병력을 주둔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군량을 쌓아야 하는지, 어느 곳에 매복해야 하는지를 도모했소. 사람들 모두 그를 비웃었으나 사마의만은 그 재능을 기특하다고 여기더니 마침내 군사 업무에 참여하게 했소. 등애는 사람됨이 말을 더듬어서 매양 사무를 아뢸 때마다 ‘애, 애’소리를 내곤 하니, 사마의가 농담으로,‘경이 애, 애, 라고 말하는데 대체 등애가 몇이나 있는 것이오?’라고 하니, 등애가 즉시‘봉이여, 봉이여, 말하여도 봉은 한 마리입니다.’라고 답했소. 그 성질이 민첩한 것이 대개 이와 같소.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오.”
 
162
했다.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163
“그까짓 어린애들이야 어찌 족히 말할 게 있겠소!”
 
164
했다.
 
 
165
於是薑維引夏侯霸至成都,入見後主。維奏曰:“司馬懿謀殺曹爽,又來賺夏侯霸,霸因此投降。目今司馬懿父子專權,曹芳懦弱,魏國將危。臣在漢中有年,兵精糧足;臣願領王師,即以霸爲向導官,克服中原,重興漢室:以報陛下之恩,以終丞相之志。”尚書令費禕諫曰:“近者,蔣琬、董允皆相繼而亡,內治無人。伯約只宜待時,不宜輕動。”維曰:“不然。人生如白駒過隙,似此遷延歲月,何日恢複中原乎?”禕又曰:“孫子雲:知彼知己,百戰百勝。我等皆不如丞相遠甚,丞相尚不能恢複中原,何況我等?”
 
166
이에 강유가 하후패를 데리고 성도로 가서 후주를 알현했다. 강유가 아뢰기를,
 
167
“사마의가 조상을 모살하고 또 하후패를 속이려 하니 하후패가 이 때문에 투항했습니다. 이제 바로 사마의의 부자가 권력을 전횡하고 조방이 유약하니 위나라가 장차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신이 한중에 수년을 머물러서 병력은 정예하고 군량은 풍족합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국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즉시 하후패를 향도관으로 삼아 중원을 이겨서 한나라 황실을 중흥함으로써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 승상의 유지를 계승하겠나이다.”
 
168
하니, 상서령 비위가 간하기를,
 
169
“요즘에 장완과 동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서 내치를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백약(강유)은 시기를 기다려야지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170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171
“그렇지 않소. 인생이란 하얀 망아지가 지나가는 것을 작은 틈새로 보는 것처럼 빨라서 이렇게 세월을 지연하면 언제 중원을 회복하겠소?”
 
172
하니, 비위가 또 말하기를,
 
173
“손자가 말하기를,‘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라고 했소. 우리 모두는 승상과 몹시 차이가 나는데 승상도 중원을 회복한 적이 없거늘 하물며 우리가 어찌하겠소?”
 
174
했다.
 
 
175
維曰:“吾久居隴上,深知羌人之心;今若結羌人爲援,雖未能克複中原,自隴而西,可斷而有也。”後主曰:“卿既欲伐魏,可盡忠竭力,勿墮銳氣,以負朕命。”於是薑維領敕辭朝,同夏侯霸徑到漢中,計議起兵。維曰:“可先遣使去羌人處通盟,然後出西平,近雍州。先築二城於麹山之下,令兵守之,以爲掎角之勢。我等盡發糧草於川口,依丞相舊制,次第進兵。”是年秋八月,先差蜀將句安、李歆同引一萬五千兵,往麹山前連築二城:句安守東城,李歆守西城。
 
176
강유가 말하기를,
 
177
“내가 농상(섬서성 북쪽과 감숙성 서쪽 지방)에 오래 살아서 강인(오랑캐 강족)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소. 이제 강인들과 연결하여 원군으로 삼으면 비록 중원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농서 지방을 빼앗아 가질 수 있소.”
 
178
하니, 후주가 말하기를,
 
179
“경이 위나라를 정벌할 결심이 섰다면 충성과 힘을 다하여 예기를 무너뜨리지 말고 짐의 명을 저버리지 마시오.”
 
180
했다. 이에 강유가 천자의 칙명을 받들어 조정을 떠나서 하후패와 함께 한중으로 질러가서 출병을 토의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181
“먼저 사자를 강인들의 땅으로 보내어 동맹을 맺은 뒤에 서평으로 나가서 옹주로 접근해야겠소. 먼저 국산 아래에 두 성을 쌓아 군사들이 지키게 하여 기각지세(군대를 나누어 적을 견제하거나 협공하는 형세)를 이루겠소. 우리가 군량과 사료를 천구에 모두 운반하고 승상의 옛 전술을 따라 차례차례 진군할 것이오.”
 
182
했다. 이해 가을 팔월에 먼저 촉나라 장수 구안과 이흠에게 함께 군사 1만 5천 명을 주어서 국산 앞으로 가서 2개 성을 쌓고, 구안이 동쪽 성을 지키고 이흠이 서쪽 성을 지켰다.
 
 
183
早有細作報與雍州刺史郭淮。淮一面申報洛陽,一面遣副將陳泰引兵五萬,來與蜀兵交戰。句安、李歆各引一軍出迎;因兵少不能抵敵,退入城中。泰令兵四面圍住攻打,又以兵斷其漢中糧道。句安、李歆城中糧缺。郭淮自引兵亦到,看了地勢,忻然而喜;回到寨中,乃與陳泰計議曰:“此城山勢高阜,必然水少,須出城取水;若斷其上流,蜀兵皆渴死矣。”
 
184
어느새 세작이 옹주자사 곽회에게 보고했다. 곽회가 낙양에 이를 알리는 한편, 부장 진태에게 군사 5만을 주어서 촉나라 군사와 교전하게 했다. 구안과 이흠이 각각 1군을 이끌고 출격하지만, 병력이 적어서 막지 못하고 성안으로 퇴각해 들어갔다. 진태가 군사들에게 사면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하고 병력을 동원하여 한중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했다. 구안과 이흠이 성안에서 군량이 모자랐다. 곽회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도착하여 지세를 살피더니 흔연히 기뻐했다. 그가 군영으로 돌아와 진태와 토의하며 말하기를,
 
185
“이 성은 산세가 높아서 틀림없이 물이 부족할 것이니, 성을 나와야만 물을 얻을 수 있소. 만약 상류를 끊으면 촉나라 군사들이 모두 목말라 죽을 것이오.”
 
186
했다.
 
 
187
遂令軍士掘土堰斷上流。城中果然無水。李歆引兵出城取水,雍州兵圍困甚急。歆死戰不能出,只得退入城去。句安城中亦無水,乃會了李歆,引兵出城,並在一處;大戰良久,又敗入城去。軍士枯渴。安與歆曰:“薑都督之兵,至今未到,不知何故。”歆曰:“我當舍命殺出求救。”遂引數十騎,開了城門,殺將出來。雍州兵四面圍合,歆奮死沖突,方才得脫;只落得獨自一人,身帶重傷,餘皆沒於亂軍之中。是夜北風大起,陰雲布合,天降大雪,因此城內蜀兵分糧化雪而食。
 
188
곧 군사들에게 흙을 파서 둑을 쌓아 상류를 막게 했다. 성안에 과연 물이 바닥났다. 이흠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와서 물을 얻으려 하지만 옹주 병사들이 포위하니 심히 위급해졌다. 이흠이 죽을 각오로 싸워도 벗어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성으로 들어갔다. 구안도 성안에 물이 떨어지자 이흠과 합세하여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왔다. 군사를 한데 모아 크게 한참 동안 싸우지만, 다시 패전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군사들이 마실 물이 없으니 구안이 이흠에게 말하기를,
 
189
“강 도독의 군사가 여태 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소.”
 
190
하니, 이흠이 말하기를,
 
191
“제가 목숨을 걸고 뚫고 나가서 구원을 청하겠소.”
 
192
했다. 곧 수십 기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옹주 병사들이 사면을 포위하자, 이흠이 죽을 각오로 충돌하여 겨우 탈출했다. 빠져나간 사람은 이흠 한 사람뿐인데 몸에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난군 중에서 죽었다. 이날 밤 북풍이 크게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이에 성안의 촉나라 군사들이 군량을 나누고 눈을 녹여 먹었다.
 
 
193
卻說李歆撞出重圍,從西山小路行了兩日,正迎著薑維人馬。歆下馬伏地告曰:“麹山二城,皆被魏兵圍困,絕了水道。幸得天降大雪,因此化雪度日。甚是危急。”維曰:“吾非來遲;爲聚羌兵未到,因此誤了。”遂令人送李歆入川養病。維問夏侯霸曰:“羌兵未到,魏兵圍困麹山甚急,將軍有何高見?”霸曰:“若等羌兵到,麹山二城皆陷矣。吾料雍州兵,必盡來麹山攻打,雍州城定然空虛。將軍可引兵徑往牛頭山,抄在雍州之後:郭淮、陳泰必回救雍州,則麹山之圍自解矣。”維大喜曰:“此計最善!”於是薑維引兵望牛頭山而去。
 
194
한편, 이흠이 두터운 포위를 뚫고 나가서 서산의 작은길로 이틀을 가다가 강유의 인마들과 마주쳤다. 이흠이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고하기를,
 
195
“국산의 두 성은 모두 위나라 군사에게 포위당하고 물길이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린 덕분에 눈을 녹여 잠시 버틸 수 있겠지만 몹시 위급합니다.”
 
196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197
“내가 구원을 일부러 늦춘 것이 아니오. 강족의 군사가 아직 오지 않은 탓에 착오가 생긴 것이오.”
 
198
했다. 곧 사람을 시켜 이흠을 서천으로 데려가 요양하게 했다. 강유가 하후패에게 묻기를,
 
199
“강족 군사들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위나라 군사들이 국산을 몹시 위급하게 포위했소. 장군의 고견은 어떻소?”
 
200
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201
“강병들이 국산에 오기를 기다리다가는 국산의 두 성이 모두 함락될 것이오. 내 생각에는 옹주 군사들이 모조리 국산을 치러 왔을 것이오. 옹주성은 틀림없이 텅 비었을 테니 장군께서 군사를 이끌고 우두산으로 질러가서 옹주의 배후를 습격하시오. 곽회와 진태가 반드시 옹주를 구원하러 돌아갈 것이니, 국산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오.”
 
202
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203
“이 계책이 최선이오!”
 
204
하고, 이에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우두산을 향하여 떠났다.
 
 
205
卻說,陳泰見李歆殺出城去了,乃謂郭淮曰:“李歆若告急於薑維,薑維料吾大兵皆在麹山,必抄牛頭山襲吾之後。將軍可引一軍去取洮水,斷絕蜀兵糧道;吾分兵一半,徑往牛頭山擊之。彼若知糧道已絕,必然自走矣。”郭淮從之,遂引一軍暗取洮水。陳泰引一軍徑往牛頭山來。卻說,薑維兵至牛頭山,忽聽的前軍發喊,報說魏兵截住去路。維慌忙自到軍前視之。陳泰大喝曰:“汝欲襲吾雍州!吾已等候多時了!”維大怒,挺槍縱馬,直取陳泰。泰揮刀而迎。戰不三合,泰敗走,維揮兵掩殺。雍州兵退回,占住山頭。維收兵就牛頭山下寨。維每日令兵搦戰,不分勝負。
 
206
한편, 진태는 이흠이 성을 탈출한 것을 보고, 곽회에게 말하기를,
 
207
“이흠이 강유에게 위급한 것을 고하면 강유는 우리 대군이 모두 국산에 있다고 여기고, 틀림없이 우두산으로 질러가서 우리 배후를 습격할 것입니다. 장군께서 1군을 이끌고 가서 도수(강 이름)를 점령하여 촉나라 군사들의 군량 수송로를 끊으십시오. 제가 군사의 절반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달려가서 그들을 공격하겠습니다. 저들이 군량 수송로가 끊긴 것을 알면, 반드시 저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208
했다. 곽회가 이를 따라, 곧 1군을 이끌고 몰래 도수를 점령하러 갔다. 진태는 1군을 이끌고 우두산으로 질러갔다. 한편, 강유의 군사가 우두산에 이르자 갑자기 선두 부대 쪽에서 함성이 들렸다. 위나라 군사가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보고했다. 강유가 황망히 앞으로 와서 바라보니 진태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209
“네가 우리 옹주를 습격하려 하지만 내가 기다린 지 오래다!”
 
210
했다. 강유가 크게 노하여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진태에게 달려들었다. 진태도 칼을 휘두르며 맞섰다. 싸운 지 3합도 안 되어 진태가 패주했다. 강유가 군사를 지휘하여 엄습했다. 옹주 군사가 퇴각하여 산 정상에 진을 쳤다. 강유가 군사를 거두어 우두산에 진을 쳤다. 강유가 매일 군사들을 시켜 도전했지만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211
夏侯霸謂薑維曰:“此處不是久停之所。連日交戰,不分勝負,乃誘兵之計耳,必有異謀。不如暫退,再作良圖。”正言間,忽報郭淮引一軍取洮水,斷了糧道。維大驚,急令夏侯霸先退,維自斷後。陳泰分兵五路趕來。維獨拒五路總口,戰住魏兵。泰勒兵上山,矢石如雨。維急退到洮水之時,郭淮引兵殺來。維引兵往來沖突。魏兵阻其去路,密如鐵桶。維奮死殺出,折兵大半,飛奔上陽平關來。
 
212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하기를,
 
213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되오. 날마다 교전해도 승부를 가르지 못하니 이것은 바로 우리 군사를 유인하는 계책일 뿐이오. 틀림없이 다른 음모가 있소. 잠시 퇴각하여 좋은 계책을 짜는 것만 못하오.”
 
214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곽회가 1군을 이끌고 도수를 점령하여 군량 수송로를 끊었다는 것이다. 강유가 크게 놀라 급히 하후패에게 명하여 먼저 퇴각하라고 하고 강유가 후미를 엄호했다. 진태가 군사를 나누어 다섯 방면으로 추격했다. 강유가 홀로 다섯 개 길이 합쳐지는 곳을 막아 지켜서, 위나라 군사를 저지했다. 진태가 군사들을 산 위로 올려 보내서, 화살과 돌을 비 오듯이 퍼부었다. 강유가 급히 도수까지 퇴각했을 때, 곽회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들었다.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이리저리 오가며 충돌하지만, 위나라 군사가 갈 길을 차단하여 철통같이 포위했다. 강유가 죽기로 분투하여 뚫고 나오지만, 군사들 태반을 잃고 양평관 쪽으로 급히 퇴각했다.
 
 
215
前面又一軍殺到;爲首一員大將,縱馬橫刀而出。那人生得圓面大耳,方口厚唇,左目下生個黑瘤,瘤上生數十根黑毛,乃司馬懿長子驃騎將軍司馬師也。維大怒曰:“孺子焉敢阻吾歸路!”拍馬挺槍,直來刺師。師揮刀相迎。只三合,殺敗了司馬師,維脫身徑奔陽平關來。城上人開門放入薑維。司馬師也來搶關,兩邊伏弩齊發,一弩發十矢,乃武侯臨終時所遺連弩之法也。正是:難支此日三軍敗,獨賴當年十矢傳。
 
216
그런데 앞쪽에서 1군이 달려들었다. 선두의 대장이 말을 몰아 칼을 비껴들고 나왔다. 그 사람의 생김새는 얼굴이 둥글고 귀가 크고, 입이 네모지고 입술이 두꺼웠다. 왼쪽 눈 아래에 검은 혹이 났고 혹 위에 검은 털이 수십 개가 자랐으니 바로 사마의의 맏아들 표기장군 사마사였다. 강유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217
“젖먹이가 어찌 감히 내 갈 길을 가로막느냐!”
 
218
하고, 말을 몰아 창을 꼬나쥐고 사마사를 찌르려 달려들었다. 사마사가 칼을 휘두르며 맞섰다. 겨우 세 번 맞붙어서 강유가 사마사를 쫓아버리고, 탈출하여 양평관으로 달아났다. 성 위에 있던 사람들이 성문을 열어서 강유를 들어오게 했다. 사마사가 양평관을 빼앗으러 오자, 양쪽에 매복해둔 쇠뇌를 일제히 발사하여, 쇠뇌 하나로 화살 열 개를 쏘니, 바로 무후(제갈공명)가 임종하며 남긴 연발 쇠뇌의 방법이었다. 이야말로, 이날 3군이 패전한 것을 지탱하기 어려운데, 오로지 지난날 남겨놓은 연노법에 의지하는구나.
 
 
219
未知司馬師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220
사마사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7회 위나라 군주의 정치가 사마씨에게 돌아가고 강유가 우두산에서 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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