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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14회 조모가 어가를 몰아 남궐에서 죽고 강유가 군량을 버려 위나라 군을 이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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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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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一十四回 曹髦驅車死南闕 薑維棄糧勝魏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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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회 조모가 어가를 몰아 남궐에서 죽고 강유가 군량을 버려 위나라 군을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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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薑維傳令退兵,廖化曰:“將在外,君命有所不受。今雖有詔,未可動也。”張翼曰:“蜀人爲大將軍連年動兵,皆有怨望;不如乘此得勝之時,收回人馬,以安民心,再作良圖。”維曰:“善。”遂令各軍依法而退。命廖化、張翼斷後,以防魏兵追襲。卻說,鄧艾引兵追趕,只見前面蜀兵旗幟整齊,人馬徐徐而退。艾歎曰:“薑維深得武侯之法也!”因此不敢追趕,勒軍回祁山寨去了。
 
4
한편, 강유가 철군을 명령하니, 요화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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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가 바깥에 있을 때, 비록 임금의 명이라도 받지 않는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비록 조서가 왔다 하나, 아직 움직여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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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익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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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 사람들은 장군이 해마다 군사를 움직인다고 모두 원망합니다. 차라리 장군께서 이번 승전한 때에 군사를 거두어 민심을 안정시킨 뒤에 다시 좋은 계책을 세움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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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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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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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곧 명령을 내려, 각군은 정해진 대로 퇴각했다. 요화와 장익에게 명하여 후미를 엄호해서 위나라 군사의 추격을 막으라고 했다. 한편,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니, 앞쪽에 촉군의 깃발이 정연한데, 군사들이 서서히 퇴각함이 보일 뿐이었다. 등애가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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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무후(제갈공명)의 병법을 깊이 습득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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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군사를 멈추어 기산 영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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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說,薑維至成都,入見後主,問召回之故。後主曰:“朕爲卿在邊庭,久不還師,恐勞軍士,故詔卿回朝,別無他意。”維曰:“臣已得祁山之寨,正欲收功,不期半途而廢。此必中鄧艾反間之計矣。”後主默然不語。薑維又奏曰:“臣誓討賊,以報國恩。陛下休聽小人之言,致生疑慮。”後主良久乃曰:“朕不疑卿;卿且回漢中,俟魏國有變,再伐之可也。”薑維歎息出朝,自投漢中去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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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유가 성도에 이르러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서 자신을 부른 까닭을 물으니, 후주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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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경이 변경에서 오랫동안 군사를 거두어 돌아오지 않으니, 군사들이 피로할까 두려워서 경을 조정으로 불러들였지, 다른 뜻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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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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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기산의 영채를 점령해서 공을 이루려고 했는데, 뜻밖에 도중에서 중지했습니다. 이는 반드시 등애의 반간계에 빠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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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후주가 침묵하며 말하지 않았다. 강유가 다시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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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맹세코 역적을 토벌해서, 국은을 갚으려 합니다. 폐하께서 소인배의 말을 듣고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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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후주가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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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경을 의심하지 않소. 일단 한중으로 돌아가서, 위나라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려서, 다시 정벌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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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강유가 탄식하며 조정을 나와 한중으로 떠났다.
 
 
23
卻說黨均回到祁山寨中,報知此事。鄧艾與司馬望曰:“君臣不和,必有內變。”就令黨均入洛陽,報知司馬昭。昭大喜,便有圖蜀之心,乃問中護軍賈充曰:“吾今伐蜀,如何?”充曰:“未可伐也。天子方疑主公,若一旦輕出,內難必作矣。舊年黃龍兩見於寧陵井中,群臣表賀,以爲祥瑞;天子曰:‘非祥瑞也。龍者君象,乃上不在天,下不在田,屈於井中,是幽困之兆也。’遂作《潛龍詩》一首。詩中之意,明明道著主公。其詩曰:‘傷哉龍受困,不能躍深淵。上不飛天漢,下不見於田。蟠居於井底,鰍鱔舞其前。藏牙伏爪甲,嗟我亦同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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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당균이 기산 영채로 돌아가서 이 일을 보고했다. 등애와 사마망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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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이 불화하니 반드시 내부의 변고가 생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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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당균을 시켜, 낙양으로 들어가서 사마소에게 보고하게 했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곧 촉나라를 도모할 뜻을 품고, 중호군(무관 선발 감독) 가충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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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촉나라를 정벌함이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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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가충이 말하기를,
 
29
“아직은 정벌할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주공을 의심하는데, 만약 함부로 밖으로 나가면, 필시 안에서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작년에 황룡이 영릉의 우물 안에 두 번 나타나서, 신하들이 경하하며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천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서가 아니오. 용은 임금의 상징인데, 위로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 밭에 있지 않으면서, 우물 속에 엎드려 있으니 연금의 징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잠룡시> 한 수 지으셨는데, 시 속의 뜻은 명백히 주공을 말했습니다. 그 시에 이르기를,‘슬프구나! 용이 갇혀서, 깊은 못에서 날지 못하네. 위로 은하수로 날지 못하고, 아래로 밭에 나타나지 못하네. 우물 바닥에 서려 있으니, 미꾸라지 드렁허리가 앞에서 춤추네. 어금니를 감추고 발톱을 숨기니, 아아! 내 처지와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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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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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昭聞之大怒,謂賈充曰:“此人欲效曹芳也!若不早圖,彼必害我。”充曰:“某願爲主公早晚圖之。”時魏甘露五年夏四月,司馬昭帶劍上殿,髦起迎之。群臣皆奏曰:“大將軍功德巍巍,合爲晉公,加九錫。”髦低頭不答。昭厲聲曰:“吾父子兄弟三人有大功於魏,今爲晉公,得毋不宜耶?”髦乃應曰:“敢不如命?”昭曰:“《潛龍》之詩,視吾等如鰍鱔,是何禮也?”髦不能答。昭冷笑下殿, 衆官凜然。髦歸後宮,召侍中王沈、尚書王經、散騎常侍王業三人,入內計議。髦泣曰:“司馬昭將懷篡逆,人所共知!朕不能坐受廢辱,卿等可助朕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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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 가충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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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조방을 본받으려 하는구나! 만약 빨리 도모하지 않으면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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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가충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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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옵건대 주공을 위해 조만간 도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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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때는 위나라 감로 5년 여름 4월에 사마소가 검을 차고 대궐에 올라가니, 조모가 일어나 맞이했다. 신하들이 모두 주청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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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의 공덕이 우뚝 솟았으니 진공으로 봉하시고, 구석(황제가 내리는 최고 예우)을 더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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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모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답하지 않으니, 사마소가 성난 소리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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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자와 형제 세 사람이 위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이제 진공이 되는 것이 못마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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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모가 응답하기를,
 
41
“감히 어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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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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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의 시는 우리를 미꾸라지 드렁허리로 본 것인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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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모가 대답하지 못했다. 사마소가 비웃으며 전각을 내려갔다. 관리들은 두려워했다. 조모가 후궁으로 돌아가, 사중 왕심,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 세 사람을 불러들여 의논했다. 조모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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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가 장차 찬역할 마음을 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소! 짐이 가만히 앉은 채로 폐위되는 치욕을 받을 수 없으니, 경들은 짐을 도와 그를 토벌하시오!”
 
46
했다.
 
 
47
王經奏曰:“不可。昔魯昭公不忍季氏,敗走失國;今重權已歸司馬氏久矣,內外公卿,不顧順逆之理,阿附奸賊,非一人也。且陛下宿衛寡弱,無用命之人。陛下若不隱忍,禍莫大焉。且宜緩圖,不可造次。”髦曰:“是可忍也,孰不可忍也!朕意已決,便死何懼!”言訖,即入告太後。王沈、王業謂王經曰:“事已急矣。我等不可自取滅族之禍,當往司馬公府下出首,以免一死。”經大怒曰:“主憂臣辱,主辱臣死,敢懷二心乎?”王沈、王業見經不從,徑自往報司馬昭去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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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이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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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옛날 노나라 소공이 계씨의 횡포를 참지 못했지만, 결국 패주하여 나라를 잃었습니다. 이제 막중한 권력이 이미 사마씨에게 넘어간 지 오래라, 내외 공경 대신들이 충신과 역적의 도리를 따르지 않고, 간사한 역적에게 아부하는 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우선 폐하께는 숙위(황제 호위병)가 너무 적고 약해서 명령을 받들 사람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은인자중하지 않으시면, 그 재앙이 비할 데 없이 클 것입니다. 우선 천천히 도모하셔야지, 서두르면 안 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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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모가 말하기를,
 
51
“이것을 참으면 무엇을 참지 못하겠는가! 짐의 뜻은 이미 결정했으니, 곧 죽은들 무엇이 두렵겠소!”
 
52
했다. 말을 마치고, 곧 태후에게 고하러 들어갔다. 왕심과 왕업이 왕경에게 말하기를,
 
53
“사태가 위급하니, 우리가 멸족의 화를 자초해서는 안 되오. 당장 사마 공의 부중으로 가서 자수하여 죽음을 면합시다.”
 
54
했다. 왕경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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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치욕을 당하고,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어 마땅하거늘,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소?”
 
56
했다.왕심과 왕업은 왕경이 따르지 않음을 보고, 사마소에게 알리려고 가버렸다. 쉬
 
 
57
少頃,魏主曹髦出內,令護衛焦伯,聚集殿中宿衛蒼頭官僮三百餘人,鼓噪而出。髦仗劍升輦,叱左右徑出南闕。王經伏於輦前,大哭而諫曰:“今陛下領數百人伐昭,是驅羊而入虎口耳,空死無益。臣非惜命,實見事不可行也!”髦曰:“吾軍已行,卿無阻當。”遂望雲龍門而來。只見賈充戎服乘馬,左有成倅,右有成濟,引數千鐵甲禁兵,呐喊殺來。髦仗劍大喝曰:“吾乃天子也!汝等突入宮庭,欲弑君耶?”禁兵見了曹髦,皆不敢動。賈充呼成濟曰:“司馬公養你何用?正爲今日之事也!”濟乃綽戟在手,回顧充曰:“當殺耶?當縛耶?”充曰:“司馬公有令;只要死的。”成濟撚戟直奔輦前。髦大喝曰:“匹夫敢無禮乎!”
 
58
얼마 뒤, 위나라 황제 조모가 궁궐을 나와서 호위 초백을 시켜, 궁전 안의 호위와 노복 일꾼 3백여 인을 모아서 북을 울리며 나갔다. 조모가 검을 가지고 임금의 수레에 올라, 좌우에게 호통쳐서 남쪽 궁궐로 나갔다. 왕경이 임금의 수레 앞에 엎드려 크게 곡하며 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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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폐하께서 수백 인을 이끌고 사마소를 토벌하시겠다니, 이는 양떼를 몰아 호랑이 입으로 들어갈 따름이라, 헛되이 죽을 뿐 아무 이익이 없사옵니다. 신이 목숨을 아껴서가 아니라, 참으로 이 일을 보니 결행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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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모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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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사가 결행했으니, 경은 말리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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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침내 운룡문(낙양궁성의 남문)을 향해 갔다. 그런데 보니, 가충이 전투복을 입고 말을 타고, 왼쪽으로 성쉬, 오른쪽으로 성제를 거느리고, 철갑을 입은 황궁 경호병 수천 명을 이끌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조모가 검을 잡고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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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자이니라! 너희가 궁정으로 쳐들어와서, 임금을 시해할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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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황궁 경호병들이 조모를 보고, 모두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가충이 성제를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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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 공께서 너를 무엇에 쓰려 기르셨겠느냐? 바로 오늘과 같은 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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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성제가 극(창의 일종)을 손에 움켜쥐고, 가충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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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까요? 사로잡아 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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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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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 공께서 반드시 죽이라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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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성제가 극을 꼬나쥐고, 곧바로 임금의 수레 앞으로 달려들었다. 조모가 크게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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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부놈이 감히 무례하구나!”
 
72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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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未訖,被成濟一戟刺中前胸,撞出輦來;再一戟,刃從背上透出,死於輦傍。焦伯挺槍來迎,被成濟一戟刺死。 衆皆逃走。王經隨後趕來,大罵賈充曰:“逆賊安敢弑君耶!”充大怒,叱左右縛定,報知司馬昭。昭入內,見髦已死,乃佯作大驚之狀,以頭撞輦而哭,令人報知各大臣。 時太傅司馬孚入內,見髦屍,首枕其股而哭曰:“弑陛下者,臣之罪也!”遂將髦屍用棺槨盛貯,停於偏殿之西。昭入殿中,召群臣會議。群臣皆至,獨有尚書仆射陳泰不至。
 
74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성제가 극으로 한 번에 조모의 앞가슴을 찌르니, 조모가 임금의 수레 밖으로 튕겨 나갔다. 다시 한번 극으로 찌르니, 창날이 조모 등을 꿰뚫고 나가서 임금의 수레 옆에서 죽었다. 초백이 창을 꼬나쥐고 맞서지만, 성제가 극으로 한 번에 찔러 죽였다. 무리들이 모두 도주하는데, 왕경은 뒤따라와서, 가충을 크게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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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이 어찌 감히 임금을 시해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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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가충이 크게 노하여, 좌우에게 호통쳐서 왕경을 포박하게 하고, 사마소에게 보고했다. 사마소가 입궐하여 조모가 이미 죽었음을 보고, 크게 놀란 척하며, 머리를 임금의 수레에 부딪히며 곡을 했다. 사람들을 시켜 각 대신에게 알리게 했다. 이때 태부 사마부가 궁궐로 들어와 조모의 주검을 보고, 조모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고 곡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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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시해된 것은 신의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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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침내 조모의 시신을 관곽에 입관한 뒤에 편전 서쪽에 안치했다. 사마소가 궁전으로 들어와서, 신하들과 회의하고자 부르니, 신하들이 모두 왔으나, 상서복야(황제 비서실 차관) 진태만 오지 않았다.
 
 
79
昭令泰之舅尚書荀顗召之。泰大哭曰:“論者以泰比舅,今舅實不如泰也。”乃披麻帶孝而入,哭拜於靈前。昭亦佯哭而問曰:“今日之事,何法處之?”泰曰:“獨斬賈充,少可以謝天下耳。”昭沉吟良久,又問曰:“再思其次?”泰曰:“惟有進於此者,不知其次。”昭曰:“成濟大逆不道,可剮之,滅其三族。”濟大罵昭曰:“非我之罪,是賈充傳汝之命!”昭令先割其舌。濟至死叫屈不絕。弟成倅亦斬於市,盡滅三族。後人有詩歎曰:“司馬當年命賈充,弑君南闕赭袍紅。卻將成濟誅三族,只道軍民盡耳聾。”
 
80
사마소가 진태의 외숙인 상서 순의를 시켜 진태를 불렀다. 진태가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81
“논의하는 사람들은, 저를 외숙과 비슷하게 여기지만, 지금 외숙은 참으로 저와 다릅니다.”
 
82
하고, 이에 상복을 입고 들어와서 조모의 영전에 곡하며 절했다. 사마소도 곡하는 척하며, 묻기를,
 
83
“오늘 일은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야겠소?”
 
84
하니, 진태가 말하기를,
 
85
“가충만 참해서는 천하에 사죄하기에 모자랍니다.”
 
86
했다. 사마소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묻기를,
 
87
“그 다음을 다시 생각해 보시오.”
 
88
하니, 진태가 말하기를,
 
89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90
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91
“성제가 대역부도하니, 그를 능지처참하고 삼족을 멸해야겠소.”
 
92
하니, 성제가 사마소에게 크게 욕하기를,
 
93
“내 죄가 아니다. 이는 가충이 네놈의 명령을 전한 것이다!”
 
94
했다. 사마소가 먼저 그의 혀를 자르게 했다. 성제가 죽을 때까지 억울하다고 고함쳤다. 성제의 아우(역사에서는 형) 성쉬도 저자에서 참하고, 삼족을 모조리 멸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95
“사마소가 그해 가충을 시켜, 임금을 남궐에서 죽이니 홍포가 붉게 물들었네. 도리어 성제의 삼족을 멸하니, 군사와 백성을 모두 귀머거리로 아는구나.”
 
96
했다.
 
 
97
昭又使人收王經全家下獄。王經正在廷尉廳下,忽見縛其母至。經叩頭大哭曰:“不孝子累及慈母矣!”母大笑曰:“人誰不死?正恐不得死所耳!以此棄命,何恨之有!”次日,王經全家皆押赴東市。王經母子含笑受刑。滿城士庶,無不垂淚。後人有詩曰:“漢初誇伏劍,漢末見王經:真烈心無異,堅剛志更清。節如泰華重,命似鴻毛輕。母子聲名在,應同天地傾。”
 
98
사마소가 또 사람들을 시켜 왕경 일가를 하옥했다. 왕경이 정위(형벌 투옥 담당)의 관청에 있다가, 갑자기 모친이 결박돼 온 것을 보았다. 왕경이 고개를 떨구고,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99
“불효자의 잘못이 어머니에게 미쳤습니다.”
 
100
하니, 모친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01
“죽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 죽을 자리를 못 찾을까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목숨을 버리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
 
102
했다. 다음날, 왕경 일가가 처형장인 동쪽 저자로 압송되었다. 왕경의 모자는 웃음을 머금고 형을 받았다. 성안의 사대부와 서민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103
“한나라 초기에 왕릉의 어머니가 기꺼이 목숨을 끊더니, 한나라 말기에 왕경의 어머니가 목숨을 끊는구나. 참으로 열렬한 마음이 다르지 않으니, 그 지조가 굳세고 맑네. 절개가 태산과 화산처럼 무겁고, 목숨은 기러기 털처럼 가벼우니, 모자의 명성이 길이 남아서, 마땅히 천지와 함께 영원하리라.”
 
104
했다.
 
 
105
太傅司馬孚請以王禮葬曹髦,昭許之。賈充等勸司馬昭受魏禪,即天子位。昭曰:昔文王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故聖人稱爲至德。魏武帝不肯受禪於漢,猶吾之不肯受禪於魏也。”賈充等聞言,已知司馬昭留意於子司馬炎矣,遂不複勸進。是年六月,司馬昭立常道鄉公曹璜爲帝,改元景元元年。璜改名曹奐,字景明。乃武帝曹操之孫,燕王曹宇之子也。奐封昭爲相國、晉公,賜錢十萬、絹萬匹。其文武多官,各有封賞。
 
106
태부 사마부가 왕의 예로써 조모의 장례를 치를 것을 청하니, 사마소가 허락했다. 가충 등이 사마소에게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했다. 사마소가 말하기를,
 
107
“옛날 주나라 문왕이 천하의 3분의 2를 가졌으나, 은나라를 따르며 섬겨서, 성인께서 지극한 덕이라 칭하셨소. 위나라 무제(조조)도 한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 했으니, 내가 위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는 것과 같소.”
 
108
했다. 가충 등은 그 말을 듣고, 사마소가 그 아들 사마염에게 넘겨줄 뜻을 가졌음을 알고, 마침내 더 권하지 않았다. 이 해 6월에 사마소가 상도향공 조황을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경원 원년으로 바꾸었다. 조황이 조환으로 개명했다. 조환은 자가 경명인데 위나라 무제 조조의 손자이자 연왕 조우의 아들이었다. 조환이 사마소를 상국 진공으로 봉하고, 10만 전의 돈과 1만 필의 비단을 하사했다. 많은 문무관료가 각각 작위와 포상을 받았다.
 
 
109
早有細作報入蜀中。薑維聞司馬昭弑了曹髦,立了曹奐,喜曰:“吾今日伐魏,又有名矣。”遂發書入吳,令起兵問司馬昭弑君之罪;一面奏准後主,起兵十五萬,車乘數千輛,皆置板箱於上;令廖化、張翼爲先鋒:化取子午穀,翼取駱穀;維自取斜穀,皆要出祁山之前取齊。三路兵並起,殺奔祁山而來。時鄧艾在祁山寨中,訓練人馬,聞報蜀兵三路殺到,乃聚諸將計議。參軍王瓘曰:“吾有一計,不可明言,現寫在此,謹呈將軍台覽。”艾接來展看畢,笑曰:“此計雖妙,只怕瞞不過薑維。”瓘曰:“某願舍命前去。”艾曰:“公志若堅,必能成功。”
 
110
재빨리 세작이 촉나라로 보고하러 들어갔다. 강유는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하고 조환을 세운 것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111
“내가 오늘 위나라를 정벌할 명분이 있게 되었소.”
 
112
하고, 곧 오나라로 서신을 보내어, 군사를 일으켜 사마소에게 임금을 시해한 죄를 묻자고 했다. 한편으로 후주에게 주청해서, 군사 15만을 일으키고 수레 수천 량을 동원하며, 수레마다 나무상자를 설치했다. 요화와 장익을 선봉으로 삼아 요화는 자오곡으로, 장익은 낙곡으로, 강유 자신은 사곡으로 진군했다. 모두 기산의 앞으로 나가서 함께 진군하기로 했다. 3로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기산으로 돌진했다. 이때 등애가 기산 영채에 머물며 인마를 훈련하다가, 촉군이 3로로 쇄도한다는 말을 듣고, 장수들을 불러 토의했다. 참군(참모) 왕관이 말하기를,
 
113
“제에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드러내놓고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써서 장군께 바치오니 살펴보십시오.”
 
114
했다. 등애가 다가와서 왕관이 쓴 것을 펼쳐 보고나서, 웃으며 말하기를,
 
115
“이 계책이 비록 절묘하지만, 강유를 속여넘기지 못할까 걱정이오.”
 
116
하니, 왕관이 말하기를,
 
117
“제가 목숨을 걸고 가보겠습니다.”
 
118
했다. 등애가 말하기를,
 
119
“공의 뜻이 굳세니 반드시 성공하겠구려.”
 
120
했다.
 
 
121
遂撥五千兵與瓘。瓘連夜從斜穀迎來,正撞蜀兵前隊哨馬。瓘叫曰:“我是魏國降兵,可報與主帥。”哨軍報知薑維,維令攔住餘兵,只教爲首的將來見。瓘拜伏於地曰:“某乃王經之侄王瓘也。近見司馬昭弑君,將叔父一門皆戮,某痛恨入骨。今幸將軍興師問罪,故特引本部兵五千來降。願從調遣,剿除奸黨,以報叔父之恨。”維大喜,謂瓘曰:“汝既誠心來降,吾豈不誠心相待?吾軍中所患者,不過糧耳。今有糧車數千,現在川口,汝可運赴祁山。吾只今去取祁山寨也。”
 
122
이에 군사 5천을 뽑아 왕관에게 주었다. 왕관이 밤을 이어 사곡에서 오다가, 촉군 선두부대의 정찰 기병과 마주쳐서, 왕관이 외치기를,
 
123
“우리는 위나라의 항복하는 병사들이니 최고 지휘관께 보고하라.”
 
124
고 했다. 정찰 기병이 강유에게 보고하니, 강유가 군사들은 가로막게 하고, 우두머리 장수만 접견하게 했다. 왕관이 바닥에 엎드려 절하고 말하기를,
 
125
“저는 왕경의 조카 왕관입니다. 요즘에 사마소가 임금을 시해하고, 저희 숙부 일가를 몰살하니, 제가 통한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이제 다행히 장군께서 출병하여 죄를 물으신다기에, 제가 특별히 휘하 병력 5천 명을 이끌고 투항하러 왔습니다. 장군의 지휘를 따라 간사한 무리를 소탕해서 숙부의 한을 갚고자 합니다.”
 
126
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왕관에게 말하기를,
 
127
“그대가 진심으로 투항하러 왔는데, 내가 어찌 진심으로 상대하지 못하겠소? 아군의 걱정은 군량뿐인데, 지금 군량 수송차 수천 대가 천구에 있으니, 그대가 기산으로 운반해주시오. 나는 지금 기산의 위나라 영채를 치러 가야겠소.”
 
128
했다.
 
 
129
瓘心中大喜,以爲中計,忻然領諾。薑維曰:“汝去運糧,不必用五千人,但引三千人去,留下二千人引路,以打祁山。”瓘恐維疑惑,乃引三千兵去了。維令傅僉引二千魏兵隨征聽用。忽報夏侯霸到。霸曰:“都督何故准信王瓘之言也?吾在魏,雖不知備細,未聞王瓘是王經之侄。其中多詐,請將軍察之。”維大笑曰:“我已知王瓘之詐,故分其兵勢,將計就計而行。”霸曰:“公試言之。”維曰:“司馬昭奸雄比於曹操,既殺王經,滅其三族,安肯存親侄於關外領兵?故知其詐也。仲權之見,與我暗合。”
 
130
왕관이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계략이 적중했다고 여겨서 기꺼이 응낙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131
“그대가 군량을 운반하는데, 5천 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 3천 명만 이끌고 가시오. 나머지 2천 명은 남겨서 길을 인도하게 하여 기산을 치러 가야겠소.”
 
132
했다. 왕관이 강유가 의심할까 두려워서 군사 3천 명만 거느리고 떠났다. 강유가 부첨이 항복한 위나라 군사 2천 명을 출정하는 군사에 붙여서 지휘하게 했다. 갑자기 하후패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133
“도독께서 무슨 까닭으로 왕관의 말을 믿으십니까? 제가 위나라에 있을 때, 비록 상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왕관이 왕경의 조카란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 속에 속임수가 많을 것이니, 청컨대 장군께서 살피십시오.”
 
134
하니, 강유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35
“내가 이미 왕관의 속임수를 알고, 그래서 그 병력을 분산하여 적의 계책을 역이용한 것이오.”
 
136
했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137
“공이 한번 말씀해보십시오.”
 
138
하니,
 
139
“사마소는 조조에 비교되는 간웅이오. 이미 왕경을 죽이고 그 삼족을 멸했는데, 어찌 친조카를 살려, 변경에서 군사를 거느리게 하겠소? 그래서 속임수를 알아차렸소. 중권(하후패)의 견해가 나와 꼭 같구려.”
 
140
했다.
 
 
141
於是薑維不出斜穀,卻令人於路暗伏,以防王瓘奸細。不旬日,果然伏兵捉得王瓘回報鄧艾下書人來見。維問了情節,搜出私書,書中約於八月二十日,從小路運糧送歸大寨,卻教鄧艾遣兵於壇山穀中接應。維將下書人殺了,卻將書中之意,改作八月十五日,約鄧艾自率大兵,於壇山穀中接應。一面令人扮作魏軍往魏營下書;一面令人將現有糧車數百輛卸了糧米,裝載幹柴茅草引火之物,用青布罩之,令傅僉引二千原降魏兵,執打運糧旗號。維卻與夏侯霸各引一軍,去山穀中埋伏。令蔣舒出斜穀,廖化、張翼俱各進兵,來取祁山。
 
142
이에 강유가 사곡으로 나가지 않고, 도리어 길에 병력을 매복하여 왕관의 간첩 행위를 방비했다. 열흘이 안 돼서 과연 복병이, 왕관이 등애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사람을 잡아왔다. 강유가 정황을 물은 뒤에 비밀문서를 수색해 내었다. 비밀문서에 8월 20일 오솔길로 군량을 본영으로 운반하니, 등애가 군사를 단산 골짜기 안으로 보내서 접응하라고 했다. 강유가 문서 전하는 사람을 죽이고, 내용을 8월 15일로 고쳐서 등애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와서 접응하라고 약속했다. 한편으로 위나라 군사로 변장시킨 사람을 시켜 위나라 영채로 보내서 서신을 전했다. 한편으로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운반하는 수레 수백 량에서 군량미를 내리고, 대신에 장작과 띠풀 같은 인화물을 싣고 푸른 베로 덮게 했다. 부첨으로 하여금 앞서 항복한 위나라 군사 2천 명을 이끌고, 군량 운반을 표시하는 깃발을 들고 가게 했다. 강유는 하후패와 더불어, 각각 1군을 이끌고 산골짜기로 매복하러 가고, 장서는 사곡으로 나가고, 요화와 장익은 각각 진군하여, 기산을 치게 했다.
 
 
143
卻說鄧艾得了王瓘書信,大喜,急寫回書,令來人回報。至八月十五日,鄧艾引五萬精兵徑往壇山穀中來,遠遠使人憑高眺探,只見無數糧車,接連不斷,從山凹中而行。艾勒馬望之,果然皆是魏兵。左右曰:“天已昏暮,可速接應王瓘出穀口。”艾曰:“前面山勢掩映,倘有伏兵,急難退步;只可在此等候。”正言間,忽兩騎馬驟至,報曰:“王將軍因將糧草過界,背後人馬趕來,望早救應。”艾大驚,急催兵前進。時值初更,月明如晝,只聽得山後呐喊,艾只道王瓘在山後廝殺。徑奔過山後時,忽樹林後一彪軍撞出,爲首蜀將傅僉,縱馬大叫曰:“鄧艾匹夫!已中吾主將之計,何不早早下馬受死!”
 
144
한편, 등애는 왕관의 서신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답신을 써서 서신을 가져온 사람에게 돌아가 보고하게 했다. 8월 15일에 이르러 등애가 정예병 5만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왔다. 멀리 사람들을 시켜 높은 곳을 올라 살펴보니, 무수한 군량 수레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산 고개를 따라 넘어가고 있었다. 등애가 말을 멈춰 바라보니, 과연 모두가 위나라 군사였다. 좌우에서 말하기를,
 
145
“이미 해가 저무니, 어서 왕관과 접응하도록 골짜기 어귀로 나가야 합니다.”
 
146
하니, 등애가 말하기를,
 
147
“앞쪽 산세에 빛이 가려서 만약 복병이 있다면 급히 퇴각하기 어렵겠소. 다만 여기서 기다려야겠소.”
 
148
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갑자기 기병 두 사람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149
“왕 장군이 군량을 가지고 경계를 넘는데, 뒤에서 촉나라 인마가 추격하니, 어서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150
했다. 등애가 크게 놀라서 서둘러 군사를 재촉하여 전진했다. 시각이 초경(저녁 8시쯤)에 이르자,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그런데 산 뒤에서 함성이 울리는 것을 듣고, 등애는 단지 왕관이 산 뒤에서 격전을 치른다고 생각했다. 등애가 산 뒤로 달려가자, 숲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오는데, 앞장선 촉나라 장수는 부첨이었다. 그가 말을 달려 크게 외치기를,
 
151
“등애 필부놈아! 이미 우리 주장의 계책에 빠졌구나! 어찌 빨리 말에서 내려 목숨을 내놓지 않느냐!”
 
152
했다.
 
 
153
艾大驚,勒回馬便走。車上火盡著,那火便是號火。兩山下蜀兵盡出,殺得魏兵七斷八續,但聞四下山上只叫:“拿住鄧艾的,賞千金,封萬戶侯!”唬得鄧艾棄甲丟盔,撇了坐下馬,雜在步軍之中,爬山越嶺而逃。薑維、夏侯霸只望馬上爲首的徑來擒捉,不想鄧艾步行走脫。維領得勝兵去接王瓘糧車。卻說,王瓘密約鄧艾,先期將糧草車仗,整備停當,專候舉事。忽有心腹人報:“事已泄漏,鄧將軍大敗,不知性命如何。”瓘大驚,令人哨探,回報三路兵圍殺將來,背後又見塵頭大起,四下無路。瓘叱左右令放火,盡燒糧草車輛。一霎時,火光突起,烈火燒空。瓘大叫曰:“事已急矣!汝等宜死戰!”乃提兵望西殺出。
 
154
등애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수레 위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삼아, 양쪽 산에서 촉군이 몰려나와 위나라 군사를 열에 일고여덟을 베었다. 사방의 산 위에서 다만 외치기를,
 
155
“등애를 사로잡으면 1천 금을 포상하고, 1만 호의 제후로 봉한다!”
 
156
라고 했다. 놀란 등애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내던지고, 타고 있던 말을 때려서 달아나게 한 뒤에 보졸들 틈에 섞여서, 산을 기어오르고 고개를 넘어서 달아났다. 강유와 하후패는 말 위에 탄 적장을 잡으려 달려오지만, 등애가 걸어서 달아난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강유가 승리를 거둔 군사를 거느리고, 왕관의 군량 수레들을 덮치러 갔다. 한편, 왕관은 등애와 밀약하고 먼저 군량과 사료 수레를 정비하여 거사를 기다렸다. 갑자기 심복이 보고하기를,
 
157
“일이 누설되어서 등 장군께서 대패했는데, 목숨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58
했다. 왕관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탐지하니, 돌아와서 알리기를, 세 갈래로 군사들이 몰려오고, 그 뒤로 먼지가 크게 이는데, 사방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했다. 왕관이 좌우에게 소리쳐서 군량 수레를 모두 불사르라 했다. 삽시간에 불빛이 치솟고, 맹렬한 불길이 하늘을 물들였다. 왕관이 크게 외치기를,
 
159
“사세가 위급하구나!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라!”
 
160
했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서쪽을 향해서 달아났다.
 
 
161
背後薑維三路追趕。維只道王瓘舍命撞回魏國,不想反殺入漢中而去。瓘因兵少,只恐追兵趕上,遂將棧道並各關隘盡皆燒毀。薑維恐漢中有失,遂不追鄧艾,提兵連夜抄小路來追殺王瓘。瓘被四面蜀兵攻擊,投黑龍江而死。餘兵盡被薑維坑之。維雖然勝了鄧艾,卻折了許多糧車,又毀了棧道,乃引兵還漢中。鄧艾引部下敗兵,逃回祁山寨內,上表請罪,自貶其職。司馬昭見艾數有大功,不忍貶之,複加厚賜。艾將原賜財物,盡分給被害將士之家。昭恐蜀兵又出,遂添兵五萬,與艾守禦。薑維連夜修了棧道,又議出師。正是:連修棧道兵連出,不伐中原死不休。
 
162
배후에서 강유의 군사가 세 갈래로 뒤쫓았다. 강유는 왕관이 목숨을 걸고 위나라로 후퇴하는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왕관은 도리어 한중으로 쳐들어갔다. 왕관은 군사가 적어 추격병이 따라붙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잔도와 관애를 모조리 불태웠다. 강유는 한중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등애를 추격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밤새 지름길을 따라 왕관을 추격했다. 왕관은 사방에서 촉나라 군이 공격하자, 흑룡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나머지 군사 모두를 강유가 산 채로 묻어버렸다. 강유가 비록 등애를 이겼지만, 도리어 허다한 군량 운반 수레를 잃은 데다, 또 잔도가 훼손되니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갔다. 등애는 부하 패잔병을 이끌고, 기산 영채로 돌아와서 조정에 표를 올려 죄를 청하고, 스스로 그 직위를 강등했다. 사마소는 등애가 여러 번 큰 공을 세운 것을 보고, 강등을 허락지 않고, 다시 두터운 상을 내렸다. 등애는 받은 재물을 모조리 피해 장병들의 가족에게 나눠주었다. 사마소는 촉나라 군이 다시 나올까 두려워서, 등애에게 군사 5만을 보태 주고 방어하게 했다. 강유가 밤낮없이 잔도를 수리하고, 다시 출병을 의논했다. 이야말로, 잇달아 잔도를 수리해 계속 군사를 내니, 중원을 정벌하지 못하면 죽어도 쉬지 못하리.
 
 
163
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164
승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14회 조모가 어가를 몰아 남궐에서 죽고 강유가 군량을 버려 위나라 군을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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