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85회 유비는 조서를 남겨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안히 앉아서 다섯 갈래 적병을 평정하다. ◇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85권 다음
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八十五回 劉先主遺詔托孤兒 諸葛亮安居平五路
2
제85회 유비는 조서를 남겨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안히 앉아서 다섯 갈래 적병을 평정하다.
 
 
3
卻說章武二年夏六月,東吳陸遜大破蜀兵於猇亭彝陵之地;先主奔回白帝城,趙雲引兵據守。忽馬良至,見大軍已敗,懊悔不及,將孔明之言,奏知先主。先主歎曰:“朕早聽丞相之言,不致今日之敗!今有何面目複回成都見群臣乎!”遂傳旨就白帝城住紥,將館驛改爲永安宮。人報馮習、張南、傅彤,程畿、沙摩柯等皆歿於王事,先主傷感不已。又近臣奏稱:“黃權引江北之兵,降魏去了。陛下可將彼家屬送有司問罪。”先主曰:“黃權被吳兵隔斷在江北岸,欲歸無路,不得已而降魏:是朕負權,非權負朕也,何必罪其家屬?”仍給祿米以養之。
 
4
각설, 장무 2년 여름 6월 동오의 육손이 촉병을 효정과 이릉 땅에서 대파했다. 선주(유비)가 백제성으로 물러나고 조운이 병력을 이끌고 웅거해 지켰다. 갑자기 마량이 도착해서 대군이 이미 패한 것을 보고 뉘우치고 한탄해 마지않으며 공명의 말을 선주에게 아뢰니, 선주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5
“짐이 일찍이 승상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의 패전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오! 이제 무슨 면목으로 다시 성도로 돌아가 신하들을 보겠소!”
 
6
하고, 곧 교지를 내려 백제성에 머물며 역관을 고쳐 영안궁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풍습, 장남, 부동, 정기, 사마가 등이 모두 임금이 벌인 일을 위해 죽은 것을 알리자 선주가 슬퍼해 마지않았다. 또 가까이 모시는 신하가 말하기를,
 
7
“황권이 강북의 병력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하러 갔습니다. 폐하께서 그 집안사람을 관리에게 보내어 죄를 물으소서. ”
 
8
하니, 선주가 말하기를,
 
9
“황권은 오병들이 북쪽 강변에서 막고 있어서 비록 돌아오고 싶어도 길이 없어 부득이 위나라에 항복했을 것이오. 이것은 짐이 그를 저버린 것이지 그가 짐을 버린 것이 아니오. 어찌 그 집안사람에게 죄를 묻겠소?”
 
10
하고, 봉급으로 주는 쌀을 줘서 그들을 부양하게 했다.
 
 
11
卻說黃權降魏,諸將引見曹丕,丕曰:“卿今降朕,欲追慕於陳、韓耶?”權泣而奏曰:“臣受蜀帝之恩,殊遇甚厚,令臣督諸軍於江北,被陸遜絕斷。臣歸蜀無路,降吳不可,故來投陛下。敗軍之將,免死爲幸,安敢追慕於古人耶!”丕大喜,遂拜黃權爲鎮南將軍。權堅辭不受。忽近臣奏曰:“有細作人自蜀中來,說蜀主將黃權家屬盡皆誅戮。”權曰:“臣與蜀主,推誠相信,知臣本心,必不肯殺臣之家小也。”丕然之。後人有詩責黃權曰:“降吳不可卻降曹,忠義安能事兩朝?堪歎黃權惜一死,紫陽書法不輕饒。”
 
12
한편, 황권이 위나라에 투항하니 장수들이 데려가서 조비를 만나게 했다. 조비가 말하기를,
 
13
“경이 이제 짐에게 귀순하니 진평과 한신(항우 밑에 있다가 유방에게 귀순했음)을 추모 해 따르려는 것이오?”
 
14
하니, 황권이 울며 말하기를,
 
15
“신이 촉제(촉의 황제)의 은혜를 입어 특별히 대우함이 몹시 두터워서 신으로 하여금 강북의 제군을 통솔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손이 퇴로를 끊으니 신이 촉으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동오에 항복할 수는 없었으므로 폐하께 투항하게 되었습니다. 패군한 장수가 죽음을 면한 것만으로 다행인데 어찌 감히 고인을 추모한다 하겠습니까?”
 
16
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곧 황권을 진남장군으로 제수했다. 황권이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그런데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17
“세작이 촉나라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촉의 군주가 황권의 가속을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18
하니, 황권이 말하기를,
 
19
“신이 촉의 군주에게 성심으로 대하며 서로 믿어서 신의 본심을 알 것인데, 틀림없이 신의 처자식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20
했다. 조비가 그럴 것이라 여겼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황권을 한탄하기를,
 
21
“동오에 항복할 수 없어 조 씨에게 항복하니, 충의로운 사람이 어찌 두 왕조를 섬기겠는가? 황권이 한번 죽음을 아끼다니 한심하구나, 주희의 필법이 가볍게 용서하지 않으리라.”
 
22
하였다.
 
 
23
曹丕問賈詡曰:“朕欲一統天下,先取蜀乎?先取吳乎?”詡曰:“劉備雄才,更兼諸葛亮善能治國;東吳孫權,能識虛實,陸遜現屯兵於險要,隔江泛湖,皆難卒謀。以臣觀之,諸將之中,皆無孫權、劉備敵手。雖以陛下天威臨之,亦未見萬全之勢也。只可持守,以待二國之變。”丕曰:“朕已遣三路大兵伐吳,安有不勝之理?”尚書劉曄曰:“近東吳陸遜,新破蜀兵七十萬,上下齊心,更有江湖之阻,不可卒制,陸遜多謀,必有准備。”
 
24
조비가 가후에게 묻기를,
 
25
“짐이 천하를 통일하려는데 먼저 촉을 취해야겠소? 아니면 먼저 오를 취해야겠소?”
 
26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27
“유비는 영웅의 자질이 있고 또 제갈량이 나라를 잘 다스립니다. 동오의 손권은 능히 허실을 알고 육손이 현재 병력을 험준한 요충지에 주둔한데다 강물이 가로막고 호수가 넘실대니 모두 갑자기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장수들 가운데 아무도 손권과 유비의 적수가 아닙니다. 비록 폐하께서 하늘같은 위엄으로 임하셔도 역시 완전한 형세를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보전하고 지키면서 두 나라의 변화를 기다려야 합니다.”
 
28
했다. 조비가 말하기를,
 
29
“짐이 세 갈래의 대병을 보내어 동오를 정벌하는데 이기지 못할 리가 있겠소?”
 
30
하니, 상서 유엽이 말하기를,
 
31
“요즈음 동오의 육손이 촉병 7십만을 막 격파하였고 상하가 한마음인데다 강과 호수가 가로막으니 쉽게 제압할 수 없습니다. 육손은 꾀가 많으니 반드시 준비가 있을 것입니다.”
 
32
했다.
 
 
33
丕曰:“卿前勸朕伐吳,今又諫阻,何也?”曄曰:“時有不同也。昔東吳累敗於蜀,其勢頓挫,故可擊耳;今既獲全勝,銳氣百倍,未可攻也。”丕曰:“朕意已決,卿勿複言。”遂引禦林軍親往接應三路兵馬。早有哨馬報說東吳已有准備:令呂範引兵拒住曹休,諸葛瑾引兵在南郡拒住曹真,朱桓引兵當住濡須以拒曹仁。劉曄曰:“既有准備,去恐無益。”丕不從,引兵而去。
 
34
조비가 말하기를,
 
35
“경은 예전에 짐에게 동오를 칠 것을 권하더니, 이제 다시 간언해서 가로막으니 어찌된 것이오?”
 
36
하니, 유엽이 말하기를,
 
37
“때가 같지 않습니다. 지난날 동오는 촉에게 거듭 패하여 그 세력이 갑자기 꺾였으므로 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전승을 이미 거두어 그 날카로운 기세가 백배이니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38
했다. 조비가 말하기를,
 
39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경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40
하고, 마침내 어림군을 이끌고 친히 세 갈래의 병마를 지원하러 갔다. 벌써 정찰 기병이 달려와 동오가 이미 준비를 마쳤음을 알렸다. 동오에서 명하여 여범이 병력을 이끌고 조휴를 막고, 제갈근이 병력을 이끌고 남군에서 조진을 막고, 주환이 병력을 이끌고 유수를 맡아 조인을 막는다는 것이다. 유엽이 말하기를,
 
41
“이미 준비를 했다니 우리가 가더라도 이익이 없을까 두렵사옵니다.”
 
42
했으나, 조비가 따르지 않고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43
卻說吳將朱桓,年方二十七歲,極有膽略,孫權甚愛之;時督軍於濡須,聞曹仁引大軍去取羨溪,桓遂盡撥軍守把羨溪去了,止留五千騎守城。忽報曹仁令大將常雕同諸葛虔、王雙、引五萬精兵飛奔濡須城來。 衆軍皆有懼色。桓按劍而言曰:“勝負在將,不在兵之多寡。兵法雲:‘客兵倍而主兵半者,主兵尚能勝於客兵。’今曹仁千裏跋涉,人馬疲困。吾與汝等,共據高城,南臨大江,北背山險,以逸待勞,以主制客:此乃百戰百勝之勢。雖曹丕自來,尚不足憂,況仁等耶!”於是傳令,教 衆軍偃旗息鼓,只作無人守把之狀。
 
44
한편, 동오의 장수 주환은 이제 나이 27세인데 아주 담략이 있어 손권이 매우 아꼈다. 이때 유수에서 군사를 통솔하고 있었는데,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선계를 취하러 온다고 하니, 주환은 군사를 모두 일으켜 선계를 지키러 보내고, 자신은 겨우 5천 기를 거느리고 유수성을 지켰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조인이 대장 상조에게 명하여 제갈건, 왕쌍과 함께 5만 정예병을 이끌고 유수성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군사들이 모두 두려운 기색이었으나, 주환이 칼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45
“승부는 장수에게 있지 병력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소. 병법에 이르기를,‘공격군이 갑절이고 수비군이 반이라면 수비군이 오히려 공격군을 이길 수 있다.’고 했소. 지금 조인이 천리를 산 넘고 물 건너 오니 그 인마가 피곤하오. 나와 그대들은 함께 높은 성을 점거하였고 남쪽으로 큰 강에 임하였으며 북쪽으로 험한 산을 등지고 있소. 편히 쉬며 피로한 적병을 기다리고, 수비군이 공격군을 제압하는 것이니, 이야말로 백전백승의 형세요. 비록 조비가 직접 오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하물며 조인 따위겠소?”
 
46
했다. 이에 명령을 전하여 군사들에게 깃발을 누이고 북을 치지 않게 하여 아무도 지키지 않는 듯한 모양을 꾸몄다.
 
 
47
且說魏將先鋒常雕,領精兵來取濡須城,遙望城上並無軍馬。雕催軍急進,離城不遠,一聲炮響,旌旗齊豎。朱桓橫刀飛馬而出,直取常雕。戰不三合,被桓一刀斬常雕於馬下。吳兵乘勢沖殺一陣,魏兵大敗,死者無數。朱桓大勝,得了無數旌旗軍器戰馬。曹仁領兵隨後到來,卻被吳兵從羨溪殺出。曹仁大敗而退,回見魏主,細奏大敗之事。丕大驚。正議之間,忽探馬報:“曹真、夏侯尚圍了南郡,被陸遜伏兵於內,諸葛瑾伏兵於外,內外夾攻,因此大敗。”言未畢,忽探馬又報:”曹休亦被呂範殺敗。”丕聽知三路兵敗,乃喟然歎曰:“朕不聽賈詡、劉曄之言,果有此敗!”時值夏天,大疫流行,馬步軍十死六七,遂引軍回洛陽。吳、魏自此不和。
 
48
한편, 위나라 선봉장수 상조는 정예병을 거느리고 유수성을 취하러 왔다. 멀리 바라보니 성 위에 아무런 군마도 없었다. 상조가 군사들을 다그쳐 서둘러 나아가는데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바탕 포성이 울리더니 깃발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주환이 칼을 비껴들고 나는 듯이 말을 몰아 나오며 곧바로 상조에게 달려들었다. 싸운 지 3합이 못 되어 주환이 한칼에 상조를 베어 말 아래 떨어뜨렸다. 오나라 군사들이 그 기세를 타고 한바탕 무찌르니 위나라 군사들이 크게 패하여 죽은 이가 무수했다. 주환이 크게 이겨서 무수한 깃발과 무기, 말들을 빼앗았다. 조인이 병력을 거느리고 뒤따라 도착하는데 오나라 군사들이 선계에서 튀어나와 무찔렀다. 조인이 크게 패하여 물러나서 위나라 주군을 만나, 대패한 것을 자세히 아뢰니, 조비가 크게 놀랐다. 의논하는 사이에 홀연 정찰 기병이 알리기를,
 
49
“조진과 하후상이 남군을 포위했으나 육손은 안에서, 제갈근은 밖에서 복병을 내어 안팎으로 협공하여 이로 인해 크게 패했습니다.”
 
50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정찰 기병이 또 와서 알리기를,
 
51
“조휴 역시 여범에게 크게 패전했습니다.”
 
52
했다. 조비가 세 갈래의 패전을 듣고 한숨을 쉬며 탄식해 말하기를,
 
53
“짐이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더니 과연 이렇게 패했구나!”
 
54
했다. 이때가 바로 여름이라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기병과 보병이 열에 예닐곱은 죽으니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오나라와 위나라가 이로부터 불화했다.
 
 
55
卻說先主在永安宮,染病不起,漸漸沉重,至章武三年夏四月,先主自知病入四肢,又哭關、張二弟,其病愈深:兩目昏花。厭見侍從之人,乃叱退左右,獨臥於龍榻之上。忽然陰風驟起,將燈吹搖,滅而複明,只見燈影之下,二人侍立。先主怒曰:“朕心緒不寧,教汝等且退,何故又來!”叱之不退。先主起而視之,上首乃雲長,下首乃翼德也。先主大驚曰:“二弟原來尚在?”雲長曰:“臣等非人,乃鬼也。上帝以臣二人平生不失信義,皆敕命爲神。哥哥與兄弟聚會不遠矣。”先主扯定大哭。忽然驚覺,二弟不見。即喚從人問之,時正三更。
 
56
한편, 선주는 영안궁에서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점점 심각해졌다. 장무 3년 여름 4월에 이르러 선주는 병이 사지에 퍼진 것을 알았다. 또한 관우와 장비 두 동생을 애통하게 부르니 병이 더욱 심해졌다. 두 눈이 흐려지니 곁에서 모시는 사람들을 보기 싫어했다. 이에 좌우 사람들을 물리치고 홀로 황제의 침상에 누웠다. 홀연 음산한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흔들리며 깜빡였다. 등잔 그늘 아래 두 사람이 시립해 있었다. 선주가 노하여 말하기를,
 
57
“짐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해서 너희더러 나가라고 했거늘 무슨 까닭으로 또 왔느냐?”
 
58
하고 꾸짖어도 물러나지 않았다. 선주가 일어나 바라보니 윗자리는 운장이요 아랫자리는 익덕이었다. 선주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59
“두 아우가 원래부터 아직 살아 있었는가?”
 
60
하니, 운장이 말하기를,
 
61
“저희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오. 상제께서 저희 두 사람 평생 신의를 잃지 않았다고 모두 칙명을 내려 신으로 삼으셨소. 형님도 우리 형제와 모일 날이 멀지 않았소.”
 
62
했다. 선주가 그들을 붙잡으며 크게 곡하다가, 문득 깨어보니 두 아우가 보이지 않았다. 즉시 시종을 불러 물어보니 이때가 3경(자정)이었다.
 
 
63
先主歎曰:“朕不久於人世矣!”遂遣使往成都,請丞相諸葛亮,尚書令李嚴等,星夜來永安宮,聽受遺命。孔明等與先主次子魯王劉永、梁王劉理,來永安宮見帝,留太子劉禪守成都。且說孔明到永安宮,見先主病危,慌忙拜伏於龍榻之下。先主傳旨,請孔明坐於龍榻之側。撫其背曰:“朕自得丞相,幸成帝業;何期智識淺陋,不納丞相之言,自取其敗。悔恨成疾,死在旦夕。嗣子孱弱,不得不以大事相托。”言訖,淚流滿面。孔明亦涕泣曰:“願陛下善保龍體,以副天下之望!”
 
64
선주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65
“짐이 머지않아 인간세상을 뜨겠구나!”
 
66
하고, 곧 사자를 성도로 보내어 승상 제갈량, 상서령 이엄 등에게 밤을 새워 영안궁으로 와서 유명을 들으라고 했다. 공명 등이 선주의 둘째 아들 노왕 유영, 양왕 유리와 함께 영안궁으로 와서 황제를 만나고 태자 유선은 성도에 남아서 지키게 했다. 한편, 공명이 영안궁에 이르니 선주의 병세가 위급한지라 황망히 용탑(황제의 침대) 아래 엎드렸다. 선주가 명을 내려 공명을 용탑 옆에 불러서 앉히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67
“짐이 승상을 얻은 뒤 요행히 제왕의 대업을 이루었소. 지혜가 얕고 비루한 줄을 모르고 승상의 말을 듣지 않아 스스로 패전할 줄 어찌 알았겠소. 그 회한으로 병이 되어 죽음이 아침저녁에 달렸소. 뒤를 이을 아들이 빈약한데 부득불 대사를 부탁하오.”
 
68
하고 말을 마치자 얼굴 가득 눈물이 흘렀다. 공명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69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용체를 잘 보존하시어 천하의 소망에 부응하소서.”
 
70
했다.
 
 
71
先主以目遍視,只見馬良之弟馬謖在傍,先主令且退。謖退出,先主謂孔明曰:“丞相觀馬謖之才何如?”孔明曰:“此人亦當世之英才也。”先主曰:“不然。朕觀此人,言過其實,不可大用。丞相宜深察之。”分付畢,傳旨召諸臣入殿,取紙筆寫了遺詔,遞與孔明而歎曰:“朕不讀書,粗知大略。聖人雲:‘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朕本待與卿等同滅曹賊,共扶漢室;不幸中道而別。煩丞相將詔付與太子禪,令勿以爲常言。凡事更望丞相教之!”
 
72
선주가 눈으로 두루 둘러보니 마량의 아우 마속이 곁에 있어 선주가 잠시 물러나라고 명했다. 마속이 물러나자 선주가 공명에게 말하기를,
 
73
“승상은 마속의 재주가 어떻다고 보시오?”
 
7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75
“그 역시 당세의 영재입니다.”
 
76
했다. 선주가 말하기를,
 
77
“그렇지 않소. 짐이 관찰하니 말이 실제보다 지나쳐서 크게 쓸 수가 없소. 승상께서 깊이 살펴야겠소.”
 
78
하고, 분부를 마치고 지시를 내려 신하들을 전각으로 불러들였다. 종이와 붓을 가져다 황제의 유언을 쓰더니 공명에게 건네주고 탄식하기를,
 
79
“짐이 독서를 즐기지 않아 대략만 알고 있소만 성인께서 이르시기를,‘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이 구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선하다.’고 하셨소. 짐이 본래 경들과 더불어 조씨 역적을 멸하고 함께 한실을 바로잡을 날을 기다렸으나 불행히 중도에 헤어지는구려. 수고롭겠지만 승상에게 태자 유선을 부탁하니 흔히 하는 말로 여기지 마시오. 모든 일을 승상이 가르쳐주기 바라오.”
 
80
했다.
 
 
81
孔明等泣拜於地曰:“願陛下將息龍體!臣等盡施犬馬之勞,以報陛下知遇之恩也。”先主命內侍扶起孔明,一手掩淚,一手執其手,曰:“朕今死矣,有心腹之言相告!”孔明曰:“有何聖諭!”先主泣曰:“君才十倍曹丕,必能安邦定國,終定大事。若嗣子可輔,則輔之;如其不才,君可自爲成都之主。”孔明聽畢,汗流遍體,手足失措,泣拜於地曰:“臣安敢不竭股肱之力,盡忠貞之節,繼之以死乎!”言訖,叩頭流血。
 
82
공명 등이 바닥에 엎드려 울며 절하여 말하기를,
 
83
“폐하께 청하옵건대 용체를 쉬게 하옵소서! 신들이 모두 견마지로를 다해서 폐하께서 재능을 알아준 은혜를 보답하겠나이다.”
 
84
하니, 선주가 내시에게 명하여 공명을 일으켜 세워서 한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고 한손으로 그 손을 잡고 말하기를,
 
85
“짐은 이제 죽을 것이오! 내 가슴 깊이 담아둔 말을 하겠소!”
 
8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7
“어떤 성유(임금의 가르침)이십니까?”
 
88
했다. 선주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89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열 배이니 틀림없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마침내 대사를 이룰 것이오. 만약 뒤를 잇는 태자가 보필할 만하면 보필하고, 그럴 재목이 못 되면 그대가 스스로 성도의 주인이 되시오.”
 
90
했다. 공명이 듣고 나서 식은땀을 흘리고 손발을 어디에 둘 줄 몰라 바닥에 엎드려 울며 절하여 말하기를,
 
91
“신이 어찌 감히 온몸의 힘을 다하여 충성과 절개를 다하여 죽음으로써 폐하의 뜻을 이어나가지 않겠습니까?”
 
92
하고, 말을 마친 후 머리로 바닥을 찧어 피를 흘렸다.
 
 
93
先主又請孔明坐於榻上,喚魯王劉永、梁王劉理近前,分付曰:“爾等皆記朕言:朕亡之後,爾兄弟三人,皆以父事丞相,不可怠慢。”言罷,遂命二王同拜孔明。二王拜畢,孔明曰:“臣雖肝腦塗地,安能報知遇之恩也!”先主謂 衆官曰:“朕已托孤於丞相,令嗣子以父事之。卿等俱不可怠慢,以負朕望。”又囑趙雲曰:“朕與卿於患難之中,相從到今,不想於此地分別。卿可想朕故交,早晚看覷吾子,勿負朕言。”雲泣拜曰:“臣敢不效犬馬之勞!”先主又謂 衆官曰:“卿等 衆官,朕不能一一分囑,願皆自愛。”言畢,駕崩,壽六十三歲。時章武三年夏四月二十四日也。後杜工部有詩歎曰:“蜀主窺吳向三峽,崩年亦在永安宮。翠華想像空山裡,玉殿虛無野寺中。古廟杉松巢水鶴,歲時伏臘走村翁。武侯祠屋長鄰近,一體君臣祭祀同。”
 
94
선주가 다시 공명을 용탑에 불러 앉히고 노왕 유영과 양왕 유리를 가까이 앞으로 불러 분부하기를,
 
95
“너희는 모두 짐의 말을 새겨들어라. 짐이 죽은 뒤에 너희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아버지를 대하듯이 승상을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마라.”
 
96
하고 말을 마친 후, 두 왕에게 함께 공명에게 절을 하라고 했다. 두 왕이 절을 마치자 공명이 말하기를,
 
97
“신이 비록 간과 뇌를 땅에 바르더라도 어찌 능히 폐하의 알아준 은혜를 보답하겠습니까!”
 
98
했다. 선주가 여러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99
“짐이 이미 승상에게 고아를 맡기고 태자더러 승상을 아비처럼 섬기라 했소. 경들 모두 태만하지 말고 짐의 소망을 저버리지 마시오.”
 
100
했다. 또한 조운에게 부탁하기를,
 
101
“짐과 경은 환난 속에서 상종해서 지금에 이르렀으나 뜻밖에 이렇게 헤어지는구려. 경은 짐과 오래 사귄 정을 생각해서, 아침저녁으로 내 아들을 지켜보며 절대 짐의 말을 저버리지 마시오.”
 
102
하니, 조운이 눈물 흘리며 절하여 말하기를,
 
103
“신이 어찌 감히 견마지로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104
했다. 선주가 다시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105
“경들 여러 관리들은 짐이 일일이 따로 부탁하지 못하나 바라건대 모두 스스로 몸을 소중히 하시오.”
 
106
했다. 말을 마치고 천자가 죽으니 나이가 63세였다. 이때가 장무 3년 4월 24일이었다. 훗날 두공부(두보)가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107
“촉나라 임금이 동오를 치러 삼협으로 향했지만, 붕어하던 해에 영안궁에 머물었네, 천자의 깃발은 빈 산 속에 있었겠고, 궁전은 텅 비어 절간같이 되었구나. 옛 사당의 전나무에 물새 둥지를 틀었고, 해마다 복날과 섣달에 촌 늙은이가 와서, 무후(제갈량)의 사당이 언제나 인근에 있으니, 한 몸 같은 임금과 신하에게 함께 제사를 올리네.”
 
108
했다.
 
 
109
先主駕崩,文武官僚,無不哀痛。孔明率 衆官奉梓宮還成都。太子劉禪出城迎接靈柩,安於正殿之內。舉哀行禮畢,開讀遺詔。詔曰:“朕初得疾,但下痢耳;後轉生雜病,殆不自濟。朕聞“人年五十,不稱夭壽”。今朕年六十有餘,死複何恨?但以卿兄弟爲念耳。勉之!勉之!勿以惡小而爲之,勿以善小而不爲。惟賢惟德,可以服人;卿父德薄,不足效也。卿與丞相從事,事之如父,勿怠!勿忘!卿兄弟更求聞達。至囑!至囑!”群臣讀詔已畢。孔明曰:“國不可一日無君,請立嗣君,以承漢統。”乃立太子禪即皇帝位,改元建興。加諸葛亮爲武鄉侯,領益州牧。葬先主於惠陵,諡曰昭烈皇帝。尊皇後吳氏爲皇太後;諡甘夫人爲昭烈皇後,糜夫人亦追諡爲皇後。升賞群臣,大赦天下。
 
110
선주가 붕어하자 문무 관료 중에 애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공명이 관리들을 이끌고 임금의 관을 받들어 성도로 돌아왔다. 태자 유선이 성곽을 나와 선주의 영구를 영접하여 정전 안에 안치했다. 애도하여 장례를 마치고 선주의 유서를 열어 읽으니 이르기를,
 
111
“짐이 처음에 걸린 병은 단지 설사였다. 그 뒤 여러 가지 병으로 바뀌니 거의 고칠 수 없게 됐다. 짐이 들은 말에,‘사람의 나이가 50이면 일찍 죽었다고 일컫지 않는다.’ 했다. 이제 짐이 60이 넘었으니 죽은들 다시 무엇이 한스럽겠는가? 다만 너희 형제를 걱정할 뿐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악한 것이 작더라도 하지 말며, 착한 것이 작더라도 아니 하지 말라. 오로지 어짊과 덕으로써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다. 네 아비의 덕은 얕아서 본받을 만하지 않으니 (내가 죽은 뒤) 너희는 승상과 일을 할 때 아비처럼 섬기기를 태만히 하지 말고 잊지 말라! 너희 형제가 거듭 명성이 높아지기를 구할 것을 간절히 당부하고 또 당부하노라!”
 
112
했다. 신하들이 유조(황제의 유서) 읽기를 마치자 공명이 말하기를,
 
113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선 안 된다 하였소. 청하건대 황태자를 옹립해서 한나라의 계통을 이어야 하오.”
 
114
했다. 이에 태자 유선이 황제 자리에 올라 연호를 건흥으로 고쳤다. 제갈량에게 무향후의 작위를 더하고 익주목을 맡게 했다. 선주를 혜릉에 안장하고 소열황제의 시호를 바쳤다. 황후 오 씨를 황태후로 높이고 감부인에게 소열황후의 시호를 바쳤다. 미부인도 황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바쳤다. 신하들을 승진시키거나 포상하고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115
早有魏軍探知此事,報入中原。近臣奏知魏主。曹丕大喜曰:“劉備已亡,朕無憂矣。何不乘其國中無主,起兵伐之?”賈詡諫曰:“劉備雖亡,必托孤於諸葛亮。亮感備知遇之恩,必傾心竭力,扶持嗣主。陛下不可倉卒伐之。”正言間,忽一人從班部中奮然而出曰:“不乘此時進兵,更待何時?” 衆視之,乃司馬懿也。丕大喜,遂問計於懿。懿曰:“若只起中國之兵,急難取勝。須用五路大兵,四面夾攻,令諸葛亮首尾不能救應,然後可圖。”
 
116
어느새 위나라 군사들이 이것을 탐지해서 중원에 들어가 보고했다. 측근 신하가 위나라 임금에게 아뢰니,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17
“유비가 이미 죽었으니 짐에게 걱정이 없어졌소. 어찌 그 나라에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병력을 일으켜 정벌해야 하지 않겠소?”
 
118
하니, 가후가 간언하기를,
 
119
“유비가 비록 죽었지만 틀림없이 제갈량에게 고아를 부탁했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유비의 알아준 은혜에 감격해서 반드시 전심전력으로 뒤를 이은 군주를 도울 것입니다. 폐하께서 창졸지간에 정벌하실 수 없습니다.”
 
120
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자리에서 분연히 나오며 말하기를,
 
121
“이때를 틈타서 진격하지 않으면 또 언제를 기다리겠습니까?”
 
122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조비가 몹시 기뻐하며 그에게 계책을 물으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123
“단지 중원의 병력만 일으켜서는 급히 승리하기 어렵사옵니다. 반드시 다섯 갈래의 대병을 동원해서 사면으로 협공해야 제갈량이 앞뒤로 도울 수 없게 되니 그런 연후에 가히 도모할 수 있사옵니다.”
 
124
했다.
 
 
125
丕問何五路,懿曰:“可修書一封,差使往遼東鮮卑國,見國王軻比能,賂以金帛,令起遼西羌兵十萬,先從旱路取西平關:此一路也。再修書遣使齎官誥賞賜,直入南蠻,見蠻王孟獲,令起兵十萬,攻打益州、永昌、牂牁、越巂四郡,以擊西川之南:此二路也。再遣使入吳修好,許以割地,令孫權起兵十萬,攻兩川峽口,徑取涪城:此三路也。又可差使至降將孟達處,起上庸兵十萬,西攻漢中:此四路也。然後命大將軍曹真爲大都督,提兵十萬,由京兆徑出陽平關取西川;此五路也。共大兵五十萬,五路並進,諸葛亮便有呂望之才,安能當此乎?”
 
126
조비가 다섯 갈래가 무엇이냐고 묻자, 사마의가 말하기를,
 
127
“편지 1봉을 써서 요동에 있는 선비국의 왕 가비능에게 사자를 보내어 황금과 비단을 뇌물로 주어서 요서의 강족 병사 십만을 일으켜 먼저 지름길을 따라서 서평관을 공격하는 것이 한 갈래입니다. 다시 편지를 써서 사자를 보내며 벼슬을 내리는 교지와 포상을 가지고 곧바로 남만으로 들어가서 남쪽 오랑캐 왕 맹획을 만나 병력 십만을 일으켜 익주, 영창, 장가, 월준의 4군을 공격해서 서천의 남쪽을 치는 것이 두 갈래입니다. 다시 사자를 보내 동오로 들어가 우호를 맺어 땅을 갈라주겠다고 하면서 손권으로 하여금 병력 십만을 일으켜 동천과 서천의 협곡 입구를 공략해서 곧바로 부성을 취하게 하는 것이 세 갈래입니다. 또다시 사자를 항복한 장수 맹달의 거처로 보내어 상용 땅의 십만 병력을 일으켜서 서쪽으로 한중을 공략하는 것이 네 갈래입니다. 그런 뒤 대장군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십만 병력을 거느리고 경조에서 곧바로 양평관으로 나가서 서천을 취하는 것이 다섯 갈래입니다. 모두 5십만 대병이 다섯 갈래로 나란히 진격한다면 제갈량이 비록 여망(강태공)의 재주를 가진들 어찌 능히 이것을 막겠사옵니까?”
 
128
했다.
 
 
129
丕大喜,隨即密遣能言官四員爲使前去;又命曹真爲大都督,領兵十萬,徑取陽平關。此時張遼等一班舊將,皆封列侯、俱在冀、徐、青及合淝等處,據守關津隘口,故不複調用。卻說蜀漢後主劉禪,自即位以來,舊臣多有病亡者,不能細說。凡一應朝廷選法,錢糧、詞訟等事,皆聽諸葛丞相裁處。時後主未立皇後,孔明與群臣上言曰:“故車騎將軍張飛之女甚賢,年十七歲,可納爲正宮皇後。”後主即納之。
 
130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은밀히 언변이 뛰어난 관리 네 사람을 사자로 먼저 보냈다. 또한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병력 십만을 거느리고 곧바로 양평관을 취하게 했다. 이때 장요 등의 한 무리 옛 장수들을 모두 열후에 봉하고, 기주, 서주, 청주와 합비 등의 관문과 나루와 길목 입구에 주둔하여 지키게 했으므로 다시 배치하지 않았다. 한편, 촉한의 후주 유선이 즉위한 이래 옛 신하들은 병사한 이가 많아 일일이 말할 수 없었다. 무릇 조정의 관리 선발 방법과, 돈과 식량, 소송 등의 일들은 모두 제갈 승상의 재가를 받았다. 이때 후주가 아직 황후를 세우지 않아 공명이 신하들과 더불어 말씀 드리기를,
 
131
“옛 거기장군 장비의 딸이 몹시 어질고 나이가 17세이니 정궁황후로 맞이하실 만하옵니다.”
 
132
하여, 후주가 즉시 황후로 맞이했다.
 
 
133
建興元年秋八月,忽有邊報說:“魏調五路大兵,來取西川;第一路,曹真爲大都督,起兵十萬,取陽平關;第二路,乃反將孟達,起上庸兵十萬,犯漢中;第三路,乃東吳孫權,起精兵十萬,取峽口入川;第四路,乃蠻王孟獲,起蠻兵十萬,犯益州四郡;第五路,乃番王軻比能,起羌兵十萬,犯西平關。此五路軍馬,甚是利害。已先報知丞相,丞相不知爲何,數日不出視事。”
 
134
건흥 원년 가을 8월에 갑자기 변방에서 보고하기를,
 
135
“위나라가 다섯 갈래로 대병을 일으켜서 서천을 치러 옵니다. 한 갈래는 조진을 대도독으로 병력 십만을 일으켜 양평관을 공격하고, 둘째 갈래는 반역한 장수 맹달이 상용에서 병력 십만을 일으켜 한중을 침범합니다. 셋째 갈래는 동오의 손권이 정예병 십만을 일으켜 협구를 통해 서천으로 침입합니다. 넷째 갈래는 남쪽 오랑캐 왕 맹획이 오랑캐 군사 십만을 일으켜 익주의 네 개 군을 침범합니다. 다섯째 갈래는 제후국의 왕 가비능이 강족 병사 십만을 일으켜 서평관을 침범합니다. 이들 다섯 갈래 군마가 몹시 맹렬합니다. 이미 먼저 승상에게 알렸으나 승상도 어찌할 바를 모르며 며칠째 일을 보러 나오지 않습니다.”
 
136
했다.
 
 
137
後主聽罷大驚,即差近侍齎旨,宣召孔明入朝。使命去了半日,回報:“丞相府下人言,丞相染病不出。”後主轉慌;次日,又命黃門侍郎董允、諫議大夫杜瓊,去丞相臥榻前,告此大事。董、杜二人到丞相府前,皆不得入。杜瓊曰:“先帝托孤於丞相,今主上初登寶位,被曹丕五路兵犯境,軍情至急,丞相何故推病不出?”良久,門吏傳丞相令,言:“病體稍可,明早出都堂議事。”董、杜二人歎息而回。
 
138
후주가 듣고서 크게 놀라, 즉시 측근 시종에게 교지를 갖고 공명을 찾아가 조정에 들어오라고 했다. 사자가 반나절이 지나서 돌아와 보고하기를,
 
139
“승상의 부중에 있는 이가 말하기를, 승상은 병에 걸려 나오지 못한다 하옵니다.”
 
140
하니, 후주가 더욱 당황했다. 다음날 황문시랑 동윤, 간의대부 두경 두 사람에게 명하여 승상의 침상 앞으로 찾아가 이러한 중대사를 고하라 했다. 동윤과 두경 두 사람이 승상의 부중 앞에 도착하지만 모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두경이 말하기를,
 
141
“선제께서 승상에게 탁고(고아를 부탁)하시고 이제 주상께서 보위에 오르자마자 조비가 다섯 갈래의 대병으로 국경을 침범하니 군사정세가 지극히 위급한데 승상은 무슨 까닭으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는 것이오?”
 
142
하니, 한참 있다가 문지기가 승상의 영을 전하여 말하기를,
 
143
“병든 몸이 조금 나아서 내일 아침에 도당으로 나아가 의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144
했다. 동윤과 두경 두 사람이 탄식하고 돌아갔다.
 
 
145
次日,多官又來丞相府前伺候。從早至晚,又不見出。多官惶惶,只得散去。杜瓊入奏後主曰:“請陛下聖駕,親往丞相府問計。”後主即引多官入宮,啟奏皇太後。太後大驚,曰:“丞相何故如此?有負先帝委托之意也!我當自往。”董允奏曰:“娘娘未可輕往。臣料丞相必有高明之見。且待主上先往。如果怠慢,請娘娘於太廟中,召丞相問之未遲。”太後依奏。
 
146
다음날, 많은 관리가 다시 승상부 앞에 와서 기다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역시 공명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관리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흩어져 갔다. 두경이 들어와 후주에게 아뢰기를,
 
147
“청하옵건대 폐하께서 친히 천자의 수레를 타시고 승상부로 가시어 계책을 물으소서.”
 
148
하니, 후주가 즉시 많은 관리를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태후에게 여쭈니, 황태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149
“승상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단 말이오? 선제가 위탁한 뜻을 저버리는 것이오! 내가 직접 가봐야겠소.”
 
150
했다. 동윤이 아뢰기를,
 
151
“태후마마께서 가벼이 가시지 마소서. 신이 헤아리기에 승상에게 반드시 고명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주상께서 먼저 가시기를 기다리소서. 그래도 태만하다면 태후마마께서 태묘에 납시어 승상을 불러서 물어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152
하니, 태후가 주청을 받아들였다.
 
 
153
次日,後主車駕親至相府。門吏見駕到,慌忙拜伏於地而迎。後主問曰:“丞相在何處?”門吏曰:“不知在何處。只有丞相鈞旨,教擋住百官,勿得輒入。”後主乃下車步行,獨進第三重門,見孔明獨倚竹杖,在小池邊觀魚。後主在後立久,乃徐徐而言曰:“丞相安樂否?”孔明回顧,見是後主,慌忙棄杖,拜伏於地曰:“臣該萬死!”
 
154
다음날, 후주의 수레가 친히 승상부에 이르니, 문지기가 천자의 수레가 도착함을 보고 황망히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맞이했다. 후주가 묻기를,
 
155
“승상은 어디에 계신가?”
 
156
하니, 문지기가 말하기를,
 
157
“어디 있는지 모르옵니다. 다만 승상이 명령을 내려 백관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습니다.”
 
158
했다. 후주가 수레에서 내려 걸어가서 홀로 세 번째 문을 지나니 공명이 홀로 대 지팡이에 의지하여 작은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후주가 그 뒤에 한참 서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말하기를,
 
159
“승상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오?”
 
160
하니, 공명이 고개를 돌려 후주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황망히 지팡이를 버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161
“신이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162
했다.
 
 
163
後主扶起,問曰:“今曹丕分兵五路,犯境甚急,相父緣何不肯出府視事?”孔明大笑,扶後主入內室坐定,奏曰:“五路兵至,臣安得不知,臣非觀魚,有所思也。”後主曰:“如之奈何?”孔明曰:“羌王軻比能,蠻王孟獲,反將孟達,魏將曹真;此四路兵,臣已皆退去了也。止有孫權這一路兵,臣已有退之之計,但須一能言之人爲使。因未得其人,故熟思之。陛下何必憂乎?”
 
164
후주가 일으켜 세워서 묻기를,
 
165
“지금 조비가 병력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국경을 침범하니 몹시 위급한데 승상께서 무슨 일로 부중으로 나와 일을 보지 않으시오?”
 
166
하니, 공명이 크게 웃으며 후주를 모시고 내실로 들어가 좌정한 뒤에 아뢰기를,
 
167
“다섯 갈래 군사가 이른 것을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신이 물고기를 본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입니다.”
 
168
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169
“어찌 해야겠소?”
 
17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71
“강족 왕 가비능, 남쪽 오랑캐 왕 맹획, 배반한 장수 맹달, 위나라 장수 조진 이들 네 갈래의 병력은 신이 이미 모두 물리쳤습니다. 단지 손권의 한 갈래 군사가 남아 있으나 신에게 이미 적병을 물리칠 계책이 있습니다. 다만 언변이 뛰어난 사람 하나를 사자로 삼아야겠는데 아직 그런 사람을 얻지 못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어찌 걱정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172
했다.
 
 
173
後主聽罷,又驚又喜,曰:“相父果有鬼神不測之機也!願聞退兵之策。”孔明曰:“先帝以陛下付托與臣,臣安敢旦夕怠慢。成都 衆官,皆不曉兵法之妙,貴在使人不測,豈可泄漏於人?老臣先知西番國王軻比能,引兵犯西平關;臣料馬超積祖西川人氏,素得羌人之心,羌人以超爲神威大將軍,臣已先遣一人,星夜馳檄,令馬超緊守西平關,伏四路奇兵,每日交換,以兵拒之:此一路不必憂矣。
 
174
후주가 듣고 나서 놀랍고 기뻐서 말하기를,
 
175
“승상에게 과연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재주가 있구려! 바라건대 적병을 물리칠 계책을 듣고 싶소.”
 
17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77
“선제께서 폐하를 신에게 맡기셨거늘 신이 어찌 아침저녁 한순간이라도 태만하겠습니까? 성도의 관리들이 모두 병법의 묘를 깨우치지 못한지라 사람들이 모르게 한 것이니 어찌 사람들에게 누설하겠습니까? 늙은 신하는 서쪽 제후국의 왕 가비능이 병력을 이끌고 서평관을 침범할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마초는 집안 대대로 서천에 살던 사람으로 평소 강인들의 마음을 얻어 강인들이 마초를 신위대장군이라 여깁니다. 신이 벌써 한 사람을 보내어 밤새 급히 격문을 전하여 마초로 하여금 서평관을 굳게 지키며 사방에 복병을 매복해서 날마다 교대로 막게 하였사옵니다. 이곳 한 갈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178
했다.
 
 
179
又南蠻孟獲,兵犯四郡,臣亦飛檄遣魏延領一軍左出右入,右出左入,爲疑兵之計:蠻兵惟憑勇力,其心多疑,若見疑兵,必不敢進:此一路又不足憂矣。又知孟達引兵出漢中;達與李嚴曾結生死之交;臣回成都時,留李嚴守永安宮;臣已作一書、只做李嚴親筆,令人送與孟達;達必然推病不出,以慢軍心:此一路又不足憂矣。又知曹真引兵犯陽平關;此地險峻,可以保守,臣已調趙雲引一軍守把關隘,並不出戰;曹真若見我軍不出,不久自退矣。
 
180
(공명이 말하기를)
 
181
“또한 남쪽 오랑캐 맹획이 병력을 이끌고 네 개 고을을 침범하지만, 신이 역시 급히 격문을 보내 위연에게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왼쪽이 나오면 오른쪽이 들어가고, 오른쪽이 나오면 왼쪽이 들어가서 적군을 현혹시키는 계책을 쓰게 했습니다. 남쪽 오랑캐 군사가 오로지 용맹과 힘을 믿을 뿐 의심이 많아서 현혹시키는 병사를 본다면 틀림없이 감히 전진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한 갈래도 또한 걱정할 만한 게 못 됩니다. 또한 맹달이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나오는 것을 알고, 맹달과 이엄은 일찍이 죽고살기를 함께 할 교제를 했으므로 신이 성도로 돌아올 때 이엄을 남겨 (백제성의) 영안궁을 지키라 했습니다. 신이 이미 편지 1통을 이엄의 친필로 지어서 사람을 시켜 맹달에게 보냈습니다. 맹달은 반드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군사들의 마음이 흩어질 것입니다. 이 한 갈래도 우려할 만한 게 못 됩니다. 또한 조진이 병력을 이끌고 양평관을 범할 것을 알았사온데 이곳은 험준하니 지킬 만하옵니다. 신이 벌써 조운에게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길목을 지키되 나가서 싸우지는 말라고 했사옵니다. 조진은 아군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182
했다.
 
 
183
此四路兵俱不足憂。臣尚恐不能全保,又密調關興、張苞二將,各引兵三萬,屯於緊要之處,爲各路救應。此數處調遣之事,皆不曾經由成都,故無人知覺。只有東吳這一路兵,未必便動:如見四路兵勝,川中危急,必來相攻;若四路不濟,安肯動乎?臣料孫權想曹丕三路侵吳之怨,必不肯從其言。雖然如此,須用一舌辯之士,徑往東吳,以利害說之,則先退東吳;其四路之兵,何足憂乎?但未得說吳之人,臣故躊躇。何勞陛下聖駕來臨?”後主曰:“太後亦欲來見相父。今朕聞相父之言,如夢初覺。複何憂哉!”
 
184
(공명이 말하기를,)
 
185
“이들 네 갈래 병력은 모두 족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그래도 혹시나 온전히 지켜내지 못할까 걱정해서 관흥과 장포 두 장수에게 은밀히 지시해 각각 병력 3만을 이끌고, 긴요한 곳에 주둔해서 각처의 구원에 응하게 했습니다. 이들 여러 곳에 배치한 일들은 모두 성도를 경유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오로지 동오의 한 갈래 병력이 아직까지 쉽게 움직이지 않는데, 만약 네 갈래의 군사가 이겨서 이곳 (촉나라의) 서천과 동천이 위급해지면 반드시 공격할 것입니다. 만약 네 갈래에서 실패하면 어찌 기꺼이 움직이겠습니까? 신이 보기에, 손권은 조비가 세 갈래로 동오를 침략한 원한을 생각해서 틀림없이 그 말을 기꺼이 따르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언변이 뛰어난 사람을 써서 곧바로 동오를 찾아가 이해득실로써 설득하면 동오를 먼저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네 갈래의 병력이야 어찌 걱정할 만하겠습니까? 다만 동오를 설득할 사람을 아직 얻지 못하여 신이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번거롭게 폐하의 수레를 친히 오게 만들겠습니까?”
 
186
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187
“태후께서도 상부(승상)를 보러 오시고자 하셨소. 이제 짐이 상부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하니 어찌 또 걱정하겠소!”
 
188
했다.
 
 
189
孔明與後主共飲數杯,送後主出府。 衆官皆環立於門外,見後主面有喜色。後主別了孔明,上禦車回朝。 衆皆疑惑不定。孔明見 衆官中,一人仰天而笑,面亦有喜色。孔明視之,乃義陽新野人,姓鄧,名芝,字伯苗,現爲戶部尚書;漢司馬鄧禹之後。孔明暗令人留住鄧芝。多官皆散,孔明請芝到書院中,問芝曰:“今蜀、魏、吳鼎分三國,欲討二國,一統中興,當先伐何國?”
 
190
공명이 후주와 함께 몇 잔 술을 마시고 후주를 승상부 밖에서 배웅했다. 관리들이 모두 문 밖에 둘러서서 바라보니 후주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후주가 공명과 헤어져서 수레를 타고 궁궐로 돌아갔다. 관리들은 궁금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여러 관리들을 보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웃는데 얼굴에 또한 기쁜 빛이 있었다. 공명이 보니 바로 의양 신야 사람으로 성은 등이고, 이름은 지이며, 자는 백묘다. 현재 호부상서(재무장관)인데 한나라 사마 등우의 후손이었다. 공명이 몰래 사람을 시켜 등지를 머물게 했다. 많은 관리들이 모두 해산한 후, 공명이 등지를 서원 안으로 불러 그에게 묻기를,
 
191
“이제 촉나라, 위나라, 오나라가 삼국으로 솥발처럼 갈라섰으니, 두 나라를 토벌해서 통일을 이루어 중흥하려는데, 먼저 어느 나라를 쳐야겠소?”
 
192
했다.
 
 
193
芝曰:“以愚意論之:魏雖漢賊,其勢甚大,急難搖動,當徐徐緩圖;今主上初登寶位,民心未安,當與東吳連合,結爲唇齒,一洗先帝舊怨,此乃長久之計也。未審丞相鈞意若何?”孔明大笑曰:“吾思之久矣,奈未得其人。今日方得也!”芝曰:“丞相欲其人何爲?”孔明曰:“吾欲使人往結東吳。公既能明此意,必能不辱君命。使乎之任,非公不可。”芝曰:“愚才疏智淺,恐不堪當此任。”孔明曰:“吾來日奏知天子,便請伯苗一行,切勿推辭。”芝應允而退。至次日,孔明奏准後主,差鄧芝往說東吳。芝拜辭,望東吳而來。正是:吳人方見幹戈息,蜀使還將玉帛通。
 
194
등지가 말하기를,
 
195
“제 우매한 의견은 위나라가 비록 한나라의 역적이지만 그 세력이 매우 커서 급히 흔들기는 어려우니 마땅히 서서히 도모해야 합니다. 이제 주상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얼마 안 되어,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마땅히 동오와 연합해서 입술과 이의 관계가 되어, 선제(유현덕)의 옛 원한은 씻어버리는 것이 바로 장구한 계책입니다. 승상의 의견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196
하니, 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97
“나도 그렇게 생각한 지 오래이나, 아직 그 사람을 얻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얻는구려!”
 
198
했다. 등지가 말하기를,
 
199
“승상께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20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201
“내가 그 사람을 보내어 동오와 동맹을 맺게 하겠소. 공께서 이미 그 뜻을 잘 아시니, 틀림없이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오. (동오에 가는) 사신은 공이 아니면 불가하오.”
 
202
했다. 등지가 말하기를,
 
203
“저의 재능이 성글고 지혜가 천박하니 이러한 중임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20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205
“내가 내일 천자께 아뢰어 곧바로 백묘(등지)를 보내기로 청할 테니 절대로 사양하지 마시오.”
 
206
했다. 등지가 응낙하고 물러갔다. 다음날이 되어 공명이 후주에게 아뢰어 허가를 받고, 등지를 보내어 동오를 설득하러 가게 했다. 등지가 절하여 작별하고 동오를 향해 갔다. 이야말로, 오나라 사람들이 이제야 전쟁을 멈췄는데, 촉나라 사신이 다시 옥과 비단 예물을 들고 찾아가는구나.
 
 
207
未知鄧芝此去若何,且看下文分解。
 
208
등지가 이렇게 가서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85회 유비는 조서를 남겨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안히 앉아서 다섯 갈래 적병을 평정하다.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중국고전〕
▪ 분류 :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5511
- 전체 순위 : 3 위 (1 등급)
- 분류 순위 : 1 위 / 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 날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나관중(羅貫中) [저자]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백과사전 으로 가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동양문학 >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85권 다음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