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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1회 유황숙이 북해에서 공융을 구하고 온후 여포가 복양에서 조조를 깨뜨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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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十一回 劉皇叔北海救孔融 呂溫侯濮陽破曹操
2
제11회 유황숙이 북해에서 공융을 구하고 온후 여포가 복양에서 조조를 깨뜨리다.
 
 
3
卻說獻計之人,乃東海朐縣人,姓糜,名竺,字子仲。此人家世富豪,嘗往洛陽買賣,乘車而回,路遇一美婦人,來求同載,竺乃下車步行,讓車與婦人坐。婦人請竺同載。竺上車端坐,目不邪視。行及數裏,婦人辭去;臨別對竺曰:“我乃南方火德星君也,奉上帝敕,往燒汝家。感君相待以禮,故明告君。君可速歸,搬出財物。吾當夜來。”言訖不見。竺大驚,飛奔到家,將家中所有,疾忙搬出。
 
4
각설, 계책을 바친 사람은 동해군 구현 출신으로 성은 미이고 이름은 축이며 자는 자중이다. 이 사람은 집안이 대대로 부호인데, 일찍이 낙양에 가서 장사하고 수레를 타고 돌아오다가 길에서 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나서 태운 뒤에 자신은 수레에서 내려 걷고 부인에게 수레를 양보하여 태웠다. 부인이 동승하기를 청하여 미축이 타고서도 단정히 앉았을 뿐 눈으로 훔쳐보지 않았다. 몇 리를 가서 부인이 인사하고 가며 헤어질 때 미축에게 말하기를,
 
5
“나는 남쪽의 화덕성군(불을 관장하는 신)이오. 상제(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그대 집을 불태우러 왔으나 그대가 예의로써 대해주어 감동했기 때문에 알려주겠소. 그대는 속히 돌아가서 재물을 반출하시오. 내가 오늘밤에 찾아가리다.”
 
6
하고,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미축이 크게 놀라 집으로 바삐 달려가서 집안의 소유물을 황급히 들어내어 옮겼다.
 
 
7
是晚果然廚中火起,盡燒其屋。竺因此廣舍家財,濟貧拔苦。後陶謙聘爲別駕從事。當日獻計曰:“某願親往北海郡,求孔融起兵救援;更得一人往青州田楷處求救:若二處軍馬齊來,操必退兵矣。”謙從之,遂寫書二封,問帳下誰人敢去青州求救。一人應聲願往。 衆視之,乃廣陵人,姓陳,名登,字元龍。陶謙先打發陳元龍往青州去訖,然後命糜竺齎書赴北海,自己率 衆守城,以備攻擊。
 
8
그날밤 과연 부엌에서 불이 나서 그 집안을 모두 태웠다. 미축이 이로부터 널리 집안 재산을 베풀어 가난한 이를 구제하여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 뒤) 도겸이 초빙하여 별가종사(지방 수령의 보좌관)로 삼았다. 그날 (미축이) 계책을 바쳐 말하기를,
 
9
“제가 북해군으로 직접 가서 공융에게 군사를 일으켜 구원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 청주의 전해에게 가서 구원병을 구하십시오. 만약 두 곳에서 군마가 일제히 오면 조조는 반드시 병사를 물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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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도겸이 그 계책에 따라 편지 두 통을 쓴 뒤 휘하 가운데 누가 감히 청주로 가겠느냐 물으니, 한 사람이 말이 끝나자 바로 가겠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보니, 광릉 출신으로 성은 진이고 이름은 등이며 자는 원룡이다. 도겸이 먼저 진원룡에게 청주로 가게 한 후에, 미축에게도 편지를 주어 북해로 가라고 명했다. (도겸) 자신은 무리를 이끌고 성을 지키며 공격에 대비했다.
 
 
11
卻說北海孔融,字文舉,魯國曲阜人也,孔子二十世孫,泰山都尉孔宙之子。自小聰明,年十歲時,往謁河南尹李膺,閽人難之,融曰:“我系李相通家。”及入見,膺問曰:“汝祖與吾祖何親?”融曰:“昔孔子曾問禮於老子,融與君豈非累世通家?”膺大奇之。少頃,太中大夫陳煒至。膺指融曰:“此奇童也。”煒曰:“小時聰明,大時未必聰明。”融即應聲曰:“如君所言,幼時必聰明者。”煒等皆笑曰:“此子長成,必當代之偉器也。”自此得名。後爲中郎將,累遷北海太守。極好賓客,常曰:“座上客常滿,樽中酒不空:吾之願也。”在北海六年,甚得民心。
 
12
한편, 북해태수 공융은 자가 문거로 노국 곡부 사람이고 공자의 이십세 손이며 태산도위 공유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나이 열다섯 살에 하남윤 이응을 찾아가 뵈었는데 문지기가 가로막으니 공융이 말하기를,
 
13
“나는 이 씨 집안과 맺어져 서로 통하는 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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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들어가서 만나게 되자 이응이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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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조상과 내 조상이 어찌 친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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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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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자께서 일찍이 노자(李耳)께 예를 물으셨으니 저와 공이 어찌 대대로 집안끼리 통하지 않습니까?”
 
18
하였다. 이응이 크게 기특하다 여겼다. 잠시 뒤 태중대부 진위가 이르렀는데, 이응이 공융을 가리켜 말하기를,
 
19
“이 아이가 기특하오.”
 
20
하였다. 진위가 말하기를,
 
21
“어려서 총명하다고 커서 반드시 총명하지는 않지요.”
 
22
하니, 공융이 그 말을 듣자마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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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려서 분명히 총명하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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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진위 등이 모두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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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장성하면 반드시 당대의 큰 그릇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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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명성을 얻어서 뒤에 중랑장이 되고 여러번 옮겨 북해태수가 되었다. 그는 빈객을 아주 좋아하여 늘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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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손님이 가득하고 술통에 술이 비지 않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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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북해태수로 육 년 있으면서 민심을 크게 얻었다.
 
 
29
當日正與客坐,人報徐州糜竺至。融請入見,問其來意,竺出陶謙書,言:“曹操攻圍甚急,望明公垂救。”融曰:“吾與陶恭祖交厚,子仲又親到此,如何不去?只是曹孟德與我無仇,當先遣人送書解和。如其不從,然後起兵。”竺曰:“曹操倚仗兵威,決不肯和。”融教一面點兵,一面差人送書。正商議間,忽報黃巾賊黨管亥部領群寇數萬殺奔前來。
 
30
그날 마침 손님과 앉아 있는데 서주의 미축이 찾아왔다고 한다. 공융이 불러들여 그 찾아온 뜻을 물으니 미축이 도겸의 서찰을 꺼내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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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포위공격하여 몹시 위급하니 명공께서 구원해주시기 바랍니다.”
 
32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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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도공조(도겸)는 교분이 두텁고 자중(미축)도 몸소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도우러) 가지 않겠소. 다만 조맹덕(조조)과 나는 원수진 일이 없으니 마땅히 먼저 사람을 보내 편지로 화해시켜 보겠소. 만약 따르지 않으면 그때에 기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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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미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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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군사가 많은 위세만 믿고서 결코 화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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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융이 한편으로 병력을 점검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글을 전했다. 이렇게 미축과 상의하고 있는 사이에 황건적 잔당 관해가 떼도적 수만 명을 거느리고 몰려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37
孔融大驚,急點本部人馬,出城與賊迎戰。管亥出馬曰:“吾知北海糧廣,可借一萬石,即便退兵;不然,打破城池,老幼不留!”孔融叱曰:“吾乃大漢之臣,守大漢之地,豈有糧米與賊耶!”管亥大怒,拍馬舞刀,直取孔融,融將宗寶挺槍出馬;戰不數合,被管亥一刀,砍宗寶於馬下。孔融兵大亂,奔入城中。管亥分兵四面圍城,孔融心中鬱悶。糜竺懷愁,更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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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융이 크게 놀라 급히 휘하 인마를 거느리고 성밖에 나가 도적을 맞아 싸웠다. 관해가 말을 타고 나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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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북해에 양식이 많다 하니 1만 석만 빌려주면 즉시 군사를 물리겠다. 그렇지 않으면 성을 깨트려서 늙은이와 아이도 남겨놓지 않겠다!”
 
40
하니, 공융이 꾸짖기를,
 
41
“내가 한나라의 신하로서 한나라의 땅을 지키는데 어찌 양식을 도적에게 주겠는가!”
 
42
하였다. 관해가 대노하여 말을 박차 칼춤을 추며 곧장 공융에게 달겨드니, 공융의 장수 종보가 창을 꼬나잡고 말을 타고 나갔지만 싸운지 몇 합이 안 되어 관해의 한 칼에 베여서 말 아래 떨어진다. 공융의 군사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성중으로 달려 들어왔다. 관해가 병력을 나누어 성을 사면을 포위하니 공융의 가슴이 답답하고 미축도 수심에 잠겨 다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43
次日,孔融登城遙望,賊勢浩大,倍添憂惱。忽見城外一人挺槍躍馬殺入賊陣,左沖右突,如入無人之境,直到城下,大叫“開門”。孔融不識其人,不敢開門。賊 衆趕到壕邊,那人回身連搠十數人下馬,賊 衆倒退,融急命開門引入。其人下馬棄槍,徑到城上,拜見孔融。融問其姓名,對曰:“某東萊黃縣人也,覆姓太史,名慈,字子義。老母重蒙恩顧。某昨自遼東回家省親,知賊寇城。老母說:‘屢受府君深恩,汝當往救。’某故單馬而來。”孔融大喜。原來孔融與太史慈雖未識面,卻曉得他是個英雄。因他遠出,有老母住在離城二十裏之外,融常使人遺以粟帛;母感融德,故特使慈來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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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공융이 성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도적의 세력이 매우 크므로 더욱 근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밖에서 한 사람이 창을 잡고 말을 몰아 적진으로 쳐들어가 마치 무인지경처럼 좌충우돌하더니 성 아래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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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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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크게 외치는 것을 보았다. 공융은 그 사람이 누군인지 몰라 감히 문을 열지 못했다. 적의 무리가 해자 근처까지 추격하자 그 사람이 다시 몸을 돌려 연달아 십수 인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니 적의 무리가 뒤로 물러났다. 공융이 급히 명하여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하였다. 그 사람이 말에서 내려 창을 버리고 성위로 올라와 공융에게 절하고 뵈었다. 공융이 성명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47
“저는 동래군 황현 출신으로 복성(두 글자 성씨)이 태사이고 이름은 자이며 자는 자의입니다. 노모께서 은혜를 크게 입었는데, 제가 어제 요동에서 집으로 돌아와 모친을 뵙고, 도적이 성을 공격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모께서 말씀하시기를,‘사또의 깊은 은혜를 여러 번 받았으니 네가 마땅히 가서 도와드려라’하시므로 필마단기로 달려왔습니다.”
 
48
하였다. 공융이 크게 기뻐하였다. 본래 공융과 태사자는 비록 면식이 없었지만 (공융은) 그가 영웅인 걸 바로 알았다. 그가 멀리 나가 있을 때 노모가 성 밖 이십 리에 살고 있어 공융이 항상 사람을 시켜 곡식과 비단을 보내주었으므로 노모가 공융의 덕에 감동하여 태사자를 보내어서 구원한 것이었다.
 
 
49
當下孔融重待太史慈,贈與衣甲鞍馬。慈曰:“某願借精兵一千,出城殺賊。”融曰:“君雖英勇,然賊勢甚盛,不可輕出。”慈曰:“老母感君厚德,特遣慈來;如不能解圍,慈亦無顏見母矣。願決一死戰!”融曰:“吾聞劉玄德乃當世英雄,若請得他來相救,此圍自解。只無人可使耳。”慈曰:“府君修書,某當急往。”融喜,修書付慈,慈擐甲上馬,腰帶弓矢,手持鐵槍,飽食嚴裝,城門開處,一騎飛出。近壕,賊將率 衆來戰。慈連搠死數人,透圍而出。管亥知有人出城,料必是請救兵的,便自引數百騎趕來,八面圍定。慈倚住槍,拈弓搭箭,八面射之,無不應弦落馬。賊 衆不敢來追。
 
50
즉시 공융이 태사자를 후대하며 의복과 갑옷과 안장과 말을 주니, 태사자 말하기를,
 
51
“제게 정예병 천 명을 주시면 성을 나가서 도적을 무찌르겠습니다.”
 
52
하였다. 공융이 말하기를,
 
53
“그대가 비록 빼어나게 용맹하나 적세가 아주 성하니 가볍게 나가서는 안 될 것이오.”
 
54
하니, 태사자가 말하기를,
 
55
“노모께서 사또의 두터운 은덕에 감격하여 특별히 저를 보냈습니다. 만약 포위를 풀지 못한다면 저도 노모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한바탕 죽을 각오로 싸우겠습니다.”
 
56
하였다. 공융이 말하기를,
 
57
“내가 들으니 유현덕이 당세의 영웅이라는데, 만약 그에게 구원을 청하여 온다면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이오. 다만 보낼 사람이 없구려.”
 
58
하니,
 
59
“사또께서 글을 써 주시면 제가 마땅히 급히 가겠습니다.”
 
60
하였다. 공융이 기뻐하며 글을 써서 태사자에게 주니, 태사자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허리에 활과 화살을 차고 손에는 쇠 창을 쥐고 배불리 먹은 후에 단단히 준비하여 성문을 열고 단기필마로 달려나갔다. 해자 근처에서 적장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싸웠지만 태사자가 연달아 몇 명을 찔러죽이고 포위를 뚫고 나갔다. 관해가 누군가 성을 나온 것을 알고 필시 구원병을 요청하러 가는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 수백 기를 이끌고 추격하여 여덟 방면으로 포위했다. 태사자가 창을 비껴놓고 활을 들고 화살을 매겨 여덟 방면으로 쏘아대니 시윗소리 떨어질 때마다 낙마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도적들이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
 
 
61
太史慈得脫,星夜投平原來見劉玄德。施禮罷,具言孔北海被圍求救之事,呈上書劄。玄德看畢,問慈曰:“足下何人?”慈曰:“某太史慈,東海之鄙人也。與孔融親非骨肉,比非鄉黨,特以氣誼相投,有分憂共患之意。今管亥暴亂,北海被圍,孤窮無告,危在旦夕。聞君仁義素著,能救人危急,故特令某冒鋒突圍,前來求救。”玄德斂容答曰:“孔北海知世間有劉備耶?”乃同雲長、翼德點精兵三千,往北海郡進發。
 
62
태사자가 탈출하여 그날밤 평원으로 가서 유현덕을 만났다. 인사를 마치고 북해태수 공융이 포위되어 구원을 청하는 사정을 갖추어 말하고 서찰을 드렸다. 현덕이 읽어보고 난 후, 태사자에게 묻기를,
 
63
“그대는 누구시오?”
 
64
하니, 태사자가 말하기를,
 
65
“저는 태사자로 동해의 촌사람입니다. 공융과 가까워도 골육은 아니고 친해도 동향인도 아니지만 특별히 의기투합하여 우환을 함께 나눌 뜻을 가졌습니다. 이제 관해가 난폭하여 북해가 포위되고 아무데도 도움을 청할 곳 없이 고립되니 위급하기가 아침저녁에 처했습니다. 듣자하니 공께서 평소 인자하고 정의감이 높아서 능히 사람들의 위급을 구해주실 것이라 하므로 특별히 저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포위를 뚫고 달려와 구원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66
하니, 현덕이 모습을 가다듬고 대답하기를,
 
67
“공북해(북해태수 공융)께서 세간에 유비가 있는 줄 아시오?”
 
68
하였다. 이에 운장과 익덕과 더불어 정예병 3천을 징집히여 북해군으로 진군했다.
 
 
69
管亥望見救軍來到,親自引兵迎敵;因見玄德兵少,不以爲意。玄德與關、張、太史慈立馬陣前,管亥忿怒直出。太史慈卻待向前,雲長早出,直取管亥。兩馬相交, 衆軍大喊。量管亥怎敵得雲長,數十合之間,青龍刀起,劈管亥於馬下。太史慈、張飛兩騎齊出,雙槍並舉,殺入賊陣。玄德驅兵掩殺。城上孔融望見太史慈與關、張趕殺賊 衆,如虎入羊群,縱橫莫當,便驅兵出城。兩下夾攻,大敗群賊,降者無數,餘黨潰散。
 
70
관해가 멀리 구원군이 오는 것을 보고 친히 병력을 이끌고 적을 맞았다. 그는 현덕의 병력이 적은 것을 보고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현덕이 관우 장비 태사자와 함께 진 앞에 말을 세우니 관해가 성을 내어 달려 나왔다. 태사자는 앞을 향해 기다리고 운장이 먼저 나가 곧바로 관해와 맞붙었다. 두 말이 엇갈리자 군사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관해가 어찌 운장을 대적하겠는가, 수십 합 사이에 청룡도를 들어 관해를 쪼개어 말 아래 떨어뜨렸다. 태사자와 장비 두 사람이 일제히 출격하여 쌍창을 나란히 들고 적진으로 달려들고, 현덕이 병사를 몰아 덮쳤다. 성 위에서 공융이 멀리 태사자와 관우 장비가 도적들을 무찌르는 것이 마치 호랑이가 양떼 속에 들어가 종횡으로 무찌르는 것같음을 보고 병사를 몰아 성에서 나왔다. 양쪽에서 협공하여 도적떼를 크게 패퇴시키니 항복하는 자가 무수하고 나머지는 무너져 흩어졌다.
 
 
71
孔融迎接玄德入城,敘禮畢,大設筵宴慶賀。又引糜竺來見玄德,具言張闓殺曹嵩之事:“今曹操縱兵大掠,圍住徐州,特來求救。”玄德曰:“陶恭祖乃仁人君子,不意受此無辜之冤。”孔融曰:“公乃漢室宗親。今曹操殘害百姓,倚強欺弱,何不與融同往救之?”玄德曰:“備非敢推辭,奈兵微將寡,恐難輕動。“孔融曰:“融之欲救陶恭祖,雖因舊誼,亦爲大義。公豈獨無仗義之心耶?”玄德曰:“既如此,請文舉先行,容備去公孫瓚處,借三五千人馬,隨後便來。”融曰;“公切勿失信。”
 
72
공융이 현덕을 성으로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고 크게 술자리를 베풀어 축하했다. 미축도 불러들여 현덕을 보게 하여 장개가 조숭을 죽인 사건을 말하고, (공융이)
 
73
“이제 조조가 군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고 서주를 포위하니 급히 와서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74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75
“도공조(도겸)는 어진 군자인데 뜻밖에 무고한 원한을 받았군요.”
 
76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77
“공은 한실의 종친이니, 이제 조조가 백성을 모질게 해치며 힘센 것만 믿고 약자를 업신여기는데, 공께서 저와 함께 가서 구원해야 하지 않겠소?”
 
78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79
“제가 감히 사양할 수 없지만 병력이 미약하고 장수도 적으니 쉽게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80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81
“제가 도공조를 구하려는 건 오랜 우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대의를 위해서요. 어찌 공에게도 의로운 마음이 없겠소?”
 
82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83
“그렇다면 문거(공융)께서 먼저 가시고, 저는 공손찬에게 가서 3~5천 인마를 빌려 뒤따라 가게 해주십시오.”
 
84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85
“공께서 절대 실언하지 마시오.”
 
86
하였다.
 
 
87
玄德曰:“公以備爲何如人也?聖人 云:自古皆有死,人無信不立。劉備借得軍、或借不得軍,必然親至。”孔融應允,教糜竺先回徐州去報,融便收拾起程。太史慈拜謝曰:“慈奉母命前來相助,今幸無虞。有揚州刺史劉繇,與慈同郡,有書來喚,不敢不去。容圖再見。”融以金帛相酬,慈不肯受而歸。其母見之,喜曰:“我喜汝有以報北海也!”遂遣慈往揚州去了。不說孔融起兵。
 
88
현덕이 말하기를,
 
89
“공께서 저를 어떤 사람이라 여기시오? 성인께서 ‘예로부터 사람이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설 수가 없다.’하셨소. 저 유비가 군을 빌려 오든 혹시 못 빌려오든 반드시 직접 구원하러 가겠소.”
 
90
하였다. 공융이 응락하고, 미축에게 먼저 서주로 가서 알리라 한 뒤, 공융도 수습하여 길을 떠났다. 태사자가 절을 올려 사례하며 말하기를,
 
91
“제가 모친의 말씀을 받들어 도우러 왔다가 이제 다행히 염려할 게 없게 되었습니다. 양주자사 유요는 저와 같은 군(郡) 출신이데 서찰을 보내 부르니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92
하니, 공융이 금과 비단을 주었지만 태사자가 받지 않고 돌아갔다. 그의 모친이 (아들을) 만나 기뻐하며 말하기를,
 
93
“네가 있어 북해(태수)에게 보답하니 기쁘구나!”
 
94
하였다. 그리고 곧 태사자를 양주로 떠나보냈다. 공융이 군사를 일으켜 (도겸을 도우러 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95
且說玄德離北海來見公孫瓚,具說欲救徐州之事。瓚曰:“曹操與君無仇,何苦替人出力?”玄德曰:“備已許人,不敢失信。”瓚曰:“我借與君馬步軍二千。”玄德曰:“更望借趙子龍一行。”瓚許之。玄德遂與關、張引本部三千人爲前部,子龍引二千人隨後,往徐州來。卻說糜竺回報陶謙,言北海又請得劉玄德來助;陳元龍也回報青州田楷欣然領兵來救;陶謙心安。原來孔融、田楷兩路軍馬,懼怕曹兵勢猛,遠遠依山下寨,未敢輕進。曹操見兩路軍到,亦分了軍勢,不敢向前攻城。
 
96
차설, 현덕이 북해를 떠나 공손찬을 만나보고 서주를 구하고 싶다는 것을 갖추어 말하니, 공손찬이 말하기를,
 
97
“조조와 그대는 원수진 게 없는데 어찌 수고스럽게 남을 대신해 나서겠는가?”
 
98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99
“제가 이미 허락했으니 실언할 수 없습니다.”
 
100
하였다. 공손찬이 말하기를,
 
101
“기마병과 보병 2천을 빌려주겠네.”
 
102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03
“조자룡도 함께 가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104
하였다. 공손찬 허락하여, 마침내 현덕이 관우 장비과 함께 본디 거느린 3천 명을 앞세우고 자룡이 2천 명을 이끌고 뒤따라 서주로 갔다.
 
105
한편, 미축이 돌아가 도겸에게 북해에도 이야기하고 유현덕에게도 와서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보고하였다. 진원룡(진등)도 돌아와 청주의 전해가 기꺼이 병력을 이끌고 구하러 올 것이라고 보고하니, 도겸이 안심하였다. 그러나 사실, 공융과 전해의 양 군은 조조의 군세가 대단함을 두려워하여 멀리 산 아래 포진하고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조조도 두 방면에서 군사들이 온 것 보고 군사를 나누어서 감히 앞으로 나아가 성을 공격하지 못했다.
 
 
106
卻說劉玄德軍到,見孔融。融曰:“曹兵勢大,操又善於用兵,未可輕戰。且觀其動靜,然後進兵。”玄德曰:“但恐城中無糧,難以久持。備令雲長、子龍領軍四千,在公部下相助;備與張飛殺奔曹營,徑投徐州去見陶使君商議。”融大喜,會合田楷,爲掎角之勢;雲長、子龍領兵兩邊接應。是日玄德、張飛引一千人馬殺入曹兵寨邊。正行之間,寨內一聲鼓響,馬軍步軍,如潮似浪,擁將出來。當頭一員大將,乃是於禁,勒馬大叫:“何處狂徒!往那裏去!”張飛見了,更不打話,直取於禁。兩馬相交,戰到數合,玄德掣雙股劍麾兵大進,於禁敗走。張飛當前追殺,直到徐州城下。
 
107
각설, 현덕 군이 당도하여 공융을 만나니 공융이 말하기를,
 
108
“조조의 군사가 세력이 대단하고 조조가 또 용병을 잘 하니 가볍게 싸울 수는 없소. 동정을 살핀 뒤에 진격해야겠소.”
 
109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10
“다만 성 안에 양식이 없어서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제가 운장과 자룡에게 명하여 4천 군사로 공의 부하들을 돕고, 저는 장비와 함께 조조 진영을 뚫고 서주성으로 들어가 도겸 사또와 상의하겠습니다.”
 
111
하니, 공융이 크게 기뻐하며 전해와 함께 회합하여, 군대를 나누어 적을 견제하거나 협공하는 형세를 이루고, 운장과 자룡이 병력을 거느리고 양쪽에서 접응하기로 하였다. 이날 현덕과 장비가 1천 인마를 이끌고 조조 군사의 영채 측면으로 달려드니, 바로 그때 영채 안에서 북소리 크게 일며 기마병과 보병이 조수 물결처럼 장수를 옹위하여 몰려나왔다. 선두의 대장은 우금인데 말 고삐를 당기며 크게 외치기를,
 
112
“어디서 온 미치광이들이냐! 저리 썩 꺼져라!”
 
113
하였다. 장비가 그것을 보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곧바로 우금에게 달겨든다. 두 말이 맞붙은 지 몇 합에 현덕이 쌍고검을 뽑아 병력을 지휘하여 크게 진격하니 우금이 패주하였다. 장비가 추격하여 서주성 아래에 도달하였다.
 
 
114
城上望見紅旗白字,大書“平原劉玄德”,陶謙急令開門。玄德入城,陶謙接著,共到府衙。禮畢,設宴相待,一壁勞軍。陶謙見玄德儀表軒昂,語言豁達,心中大喜,便命糜竺取徐州牌印,讓與玄德。玄德愕然曰:“公何意也?”謙曰:“今天下擾亂,王綱不振;公乃漢室宗親,正宜力扶社稷。老夫年邁無能,情願將徐州相讓。公勿推辭。謙當自寫表文,申奏朝廷。”玄德離席再拜曰:“劉備雖漢朝苗裔,功微德薄,爲平原相猶恐不稱職。今爲大義,故來相助。公出此言,莫非疑劉備有吞並之心耶?若舉此念,皇天不佑!”謙曰:“此老夫之實情也。”再三相讓,玄德那裏肯受。糜竺進曰:“今兵臨城下,且當商議退敵之策。待事平之日,再當相讓可也。”玄德曰:“備生遺書於曹操,勸令解和。操若不從,廝殺未遲。”於是傳檄三寨,且按兵不動;遣人齎書以達曹操。
 
115
성 위에서 바라보니 붉은 깃발에 흰 글자로 크게 ‘평원 유현덕’이라 쓰여 있어 도겸이 급히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현덕이 입성하자 도겸이 영접하고 함께 내아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사들을 (음식으로) 위로한다. 도겸이 현덕을 만나보니 외모가 훌륭하고 언어가 활달하므로 내심 크게 기뻐하여 미축에게 서주의 관인을 가져오게 하여 현덕에게 넘기려 한다. 현덕이 깜짝 놀라 말하기를,
 
116
“공께서 왜 이러십니까?”
 
117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118
“이제 천하가 요란하고 임금의 기강이 부진한데 공께서 한실 종친이니 마땅히 사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늙은이는 나이 많고 무능하니 진정으로 서주를 양도하고자 합니다. 공은 사양하지 마십시오. 제가 마땅히 표문을 써서 조정에 상주하겠습니다.”
 
119
하였다. 현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120
“저 유비가 비록 한실의 먼 후손이지만 공은 적고 덕은 엷으므로 평원상도 오히려 직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제 대의를 위하여 도와주러 온 것인데 공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유비에게 집어삼킬 마음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제가 그런 속셈을 가졌다면 하늘이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121
하니, 도겸이 말하기를,
 
122
“이것은 늙은이의 진정입니다.”
 
123
하고, 두번 세번 넘겨주려 하지만 현덕이 어찌 기꺼이 받겠는가. 미축이 나아가 말하기를,
 
124
“지금 적병이 성 아래 다달았으니 또한 마땅히 적을 물리칠 대책을 상의해야 합니다. 일이 풀린 뒤를 기다렸다가 다시 상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25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26
“제가 글을 조조에게 보내 화해를 권하겠습니다. 조조가 만약 따르지 않으면 무찔러도 늦지 않습니다.”
 
127
하였다. 이에 격문을 세 군데 진지(유비, 공융, 전해의 진지)에 보내어 군사를 멈추고 정세를 관망하게 하고, 사람을 보내 글을 가지고 가서 조조에게 전달했다.
 
 
128
卻說曹操正在軍中,與諸將議事,人報徐州有戰書到。操拆而觀之,乃劉備書也。書略曰:“備自關外得拜君顏,嗣後天各一方,不及趨侍。向者,尊父曹侯,實因張闓不仁,以致被害,非陶恭祖之罪也。目今黃巾遺孽,擾亂於外;董卓餘黨,盤踞於內。願明公先朝廷之急,而後私仇;撤徐州之兵,以救國難:則徐州幸甚,天下幸甚!”曹操看書,大罵:“劉備何人,敢以書來勸我!且中間有譏諷之意!”命斬來使,一面竭力攻城。郭嘉諫曰:“劉備遠來救援,先禮後兵,主公當用好言答之,以慢備心;然後進兵攻城,城可破也。”操從其言,款留來使,候發回書。
 
129
한편, 조조가 군중에서 여러 장수와 함께 의논하는데 서주에서 편지가 왔다고 사람이 알렸다. 조조가 뜯어 보니 유비의 서신이다.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130
“제가 관애 밖에서 공을 만난 뒤 하늘 가에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며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저번에 존부 조후(조숭)께서는 참으로 장개가 어질지 못하여 해를 입은 것이지 도공조(도겸)의 죄가 아닙니다. 지금 황건적의 잔당이 바깥에서 요란하고 동탁의 남은 무리는 안에서 둥지를 틀고 앉았습니다. 바라건대 명공께서 조정의 위급을 우선하시고 사사로운 원수는 뒤로 하십시오. 서주에서 군사를 물려 국난을 구하신다면 서주도 다행이고 천하도 다행입니다!”
 
131
하였다. 조조가 서찰을 보고 난 후 크게 욕하기를,
 
132
“유비 제가 뭐라고 감히 글을 보내 나를 권하냐! 게다가 중간에 슬쩍 비웃고 있구만!”
 
133
하고, 사자를 참하라 명하고 한편으로 힘껏 성을 공격하라고 한다. 곽가가 간언하기를,
 
134
“유비가 멀리 구원하러 와서 예의를 먼저하고 싸움을 뒤로 했습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좋은 말로 답을 하여 유비가 방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군사를 내어 성을 공격하면 깨뜨릴 수 있습니다.”
 
135
하였다. 조조가 그 말에 따라 사자에게 머물러 기다렸다가 회신을 받아가라고 했다.
 
 
136
正商議間,忽流星馬飛報禍事。操問其故,報說呂布已襲破兗州,進據濮陽。原來呂布自遭李、郭之亂,逃出武關,去投袁術;術怪呂布反覆不定,拒而不納。投袁紹,紹納之,與布共破張燕於常山。布自以爲得志,傲慢袁紹手下將士。紹欲殺之。布乃去投張楊,楊納之。時龐舒在長安城中,私藏呂布妻小,送還呂布。李傕、郭汜知之,遂斬龐舒,寫書與張楊,教殺呂布。布因棄張楊去投張邈。恰好張邈弟張超引陳宮來見張邈。宮說邈曰:“今天下分崩,英雄並起;君以千裏之 衆,而反受制於人,不亦鄙乎!今曹操征東,兗州空虛;而呂布乃當世勇士,若與之共取兗州,霸業可圖也。”
 
137
막 상의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소식을 전하는 빠른 말이 달려와 재앙을 알렸다. 조조가 까닭을 물으니 여포가 이미 연주를 습격하고 복양으로 진격하여 점거했다고 하였다. 원래 여포는 이각과 곽사의 난을 만나 무관 밖으로 달아나 원술에게 갔다. 원술은 여포가 이랬다 저랬다 일정한 게 없음을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아서 원소에게 갔다. 원소가 받아주어서 함께 상산에서 장연을 격파했다. 여포가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생각하여 원소의 수하 장사에게 오만하게 대했다. 원소가 죽이려하자 여포는 장양에게 달아나니 장양이 받아들였다. 그때 방서가 장안성 안에서 여포의 처자식을 몰래 데리고 있다가 여포에게 보냈다. 이각과 곽사가 이를 알고 방서를 처형하고 글을 장양에게 보내 여포를 죽이도록 했다. 이에 여포가 장양을 버리고 장막에게 갔다. 때마침 장막의 아우 장초가 진궁을 데려와 장막에게 뵙게하니, 진궁이 장막을 유세하기를,
 
138
“이제 천하가 갈라져 무너지니 영웅이 나란히 일어납니다. 그대가 천리에 걸친 무리를 가지고도 도리어 남에게 제어받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 조조가 동쪽을 치러나가 연주가 비었고 여포는 당세의 용사이니 만약 그와 함께 연주를 취한다면 패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139
고 하였다.
 
 
140
張邈大喜,便令呂布襲破兗州,隨據濮陽。止有鄄城、東阿、範縣三處,被荀彧、程昱設計死守得全,其餘俱破。曹仁屢戰,皆不能勝,特此告急。操聞報大驚曰:“兗州有失,使吾無家可歸矣,不可不亟圖之!”郭嘉曰:“主公正好賣個人情與劉備,退軍去複兗州。”操然之,即時答書與劉備,拔寨退兵。
 
141
장막이 크게 기뻐하며 여포에게 연주를 습격하고 이어서 복양도 점거토록 했다. 다만 견성 동아 범현 세 곳만 순욱과 정욱이 계책을 써서 사수하여 온전했고 나머지는 모두 격파됐다. 조인이 거듭 싸웠지만 모두 이기지 못했으므로 특별히 이렇게 위급을 알린 것이었다. 조조가 듣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142
“연주를 잃으면 내게 돌아갈 집이 없어진다. 서둘르지 않으면 안 된다!”
 
143
하니, 곽가가 말하기를,
 
144
“주공께서 유비에게 개인의 정을 내세워 좋게 말씀하시고 퇴군하여 연주로 돌아가십시오.”
 
145
하니, 조조가 그렇다고 여겨 즉시 답서를 유비에게 보내고 진지를 뽑아 군사를 물렸다.
 
 
146
且說來使回徐州,入城見陶謙,呈上書劄,言曹兵已退。謙大喜,差人請孔融、田楷、雲長、子龍等赴城大會。飲宴既畢,謙延玄德於上座,拱手對 衆曰:“老夫年邁,二子不才,不堪國家重任。劉公乃帝室之胄,德廣才高,可領徐州。老夫情願乞閑養病。”玄德曰:“孔文舉令備來救徐州,爲義也。今無端據而有之,天下將以備爲無義人矣。”糜竺曰:“今漢室陵遲,海宇顛覆,樹功立業,正在此時。徐州殷富,戶口百萬,劉使君領此,不可辭也。”玄德曰:“此事決不敢應命。”陳登曰:“陶府君多病,不能視事,明公勿辭。”玄德曰:“袁公路四世三公,海內所歸,近在壽春,何不以州讓之?”孔融曰:“袁公路塚中枯骨,何足掛齒!今日之事,天與不取,悔不可追。”
 
147
한편, 사자가 서주로 돌아가서 성에 들어가 도겸을 만나 서찰을 올리니 조조 군사가 이미 퇴각하겠다고 하였다. 도겸이 크게 기뻐하며 공융, 전해, 자룡 등을 성으로 불러 큰 잔치를 열었다. 술자리가 끝나자 도겸이 현덕을 상좌에 앉히고 두손을 모아 뭇 사람에게 말하기를,
 
148
“이 늙은이는 나이가 많고 두 아들이 재주가 없어 국가의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소. 유공께서 황실의 후예이고 덕이 넓고 재주가 높으니 서주를 다스릴 만하오. 늙은이가 진정으로 쉬면서 병을 다스리고 싶을 뿐이오.”
 
149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150
“공문거(공융)께서 저에게 서주로 와서 구원하라 명하신 것은 의로움 때문입니다. 지금 아무 근거도 없이 (서주를) 가진다면 천하가 저를 불의한 사람으로 알 것입니다.”
 
151
하였다. 미축이 말하기를,
 
152
“이제 한실이 쇠하여 천하가 전복되니 공을 세워 사업을 일으킬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서주는 풍요하고 호구가 백만이니 유사군께서 이곳을 다스리는 걸 사양하지 마십시오.”
 
153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154
“이 일은 결탄코 감히 명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155
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156
“도부군(도겸)께서 병이 많아서 일을 보기 어려우니 명공께서 사양하지 마십시오.”
 
157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58
“원공로(원술)께서 4대에 걸쳐 3공을 지낸 명문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따르고 가까이 수춘에 계시는데 어찌 그분께 양도하지 않으십니까?”
 
159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160
“원공로는 무덤 속의 말라비틀어진 뼈와 같으니 어찌 입에 올리겠소! 오늘 일은 하늘이 줘도 안 갖겠다 하시니 후회해도 소용없소.”
 
161
하였다.
 
 
162
玄德堅執不肯。陶謙泣下曰:“君若舍我而去,我死不瞑目矣!”雲長曰:“既承陶公相讓,兄且權領州事。”張飛曰:“又不是我強要他的州郡;他好意相讓,何必苦苦推辭!”玄德曰:“汝等欲陷我於不義耶?”陶謙推讓再三,玄德只是不受。陶謙曰:“如玄德必不肯從,此間近邑,名曰小沛,足可屯軍,請玄德暫駐軍此邑,以保徐州。何如?” 衆皆勸玄德留小沛,玄德從之。陶謙勞軍已畢,趙雲辭去,玄德執手揮淚而別。孔融、田楷亦各相別,引軍自回。玄德與關、張引本部軍來至小沛,修葺城垣,撫諭居民。
 
163
현덕이 고집을 피우며 수긍하지 않으니, 도겸이 울면서 말하기를,
 
164
“그대가 나를 버리고 가 버리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165
하니, 운장이 말하기를,
 
166
“이미 도공께서 양도하시는 걸 받아서 형님이 서주를 맡으시오.”
 
167
하고, 장비도 말하기를,
 
168
“그리고 이것은 남의 고을을 강제로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께서 호의로써 양도하시는데 하필 굳이 사양하시오?”
 
169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170
“너희가 나를 불의에 빠뜨리려고 하느냐?”
 
171
하였다. 도겸이 두 번 세 번 양도하였으나 현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겸이 말하기를,
 
172
“만약 현덕께서 기어코 (내 제안을) 따르시지 않겠다면 이 근처에 소패라는 고을이 있는데 군대를 주둔할 만합니다. 청컨대 현덕께서 잠시 이 읍에 주둔하여 서주를 보호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173
하였다. 모두가 현덕에게 소패에 머물도록 권하므로 유비가 따르기로 했다. 도겸이 군사를 위로한 뒤에 조운이 인사하고 떠나는데, 현덕이 손을 쥐고 눈물 흘리며 헤어졌다. 공융과 전해도 또한 각각 헤어져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현덕이 관우 장비과 함께 본디 거느렸던 군사를 이끌고 소패에 이르러 성벽을 수리하고 백성을 보살폈다.
 
 
174
卻說曹操回軍,曹仁接著,言呂布勢大,更有陳宮爲輔,兗州、濮陽已失,其鄄城、東阿、範縣三處,賴荀彧、程昱二人設計相連,死守城郭。操曰:“吾料呂布有勇無謀,不足慮也。”教且安營下寨,再作商議。呂布知曹操回兵,已過騰縣,召副將薛蘭、李封曰:“吾欲用汝二人久矣。汝可引軍一萬,堅守兗州。吾親自率兵,前去破曹。”二人應諾。陳宮急入見曰:“將軍棄兗州,欲何往乎?”布曰:“吾欲屯兵濮陽,以成鼎足之勢。”宮曰:“差分。薛蘭必守兗州不住。此去正南一百八十裏,泰山路險,可伏精兵萬人在彼。曹兵聞失兗州,必然倍道而進,待其過半,一擊可擒也。”布曰:“吾屯濮陽,別有良謀,汝豈知之!”遂不用陳宮之言,而用薛蘭守兗州而行。
 
175
한편, 조조가 회군하니 조인이 맞이하여 여포 세력이 크고, 또 진궁이 보좌하여 연주와 복양을 이미 잃었고, 견성 동아 범현 세 곳만 순욱과 정욱 두 사람이 계책을 짜서 연결한 덕에 성곽을 사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176
“내가 생각하기에 여포는 용맹하지만 꾀가 없으니 걱정할 게 못 된다.”
 
177
하고, 영채를 세우도록 한 뒤 다시 상의하였다. 여포는 조조가 회군하여 이미 등현을 지난 것을 알고, 부장 설란과 이봉을 불러 말하기를,
 
178
“내가 너희 두 사람을 쓰고 싶은 지 오래였다. 너희가 군사 1만 명을 데리고 연주를 굳게 지켜라. 내가 친히 병력을 거느리고 조조를 격파하러 가겠다.”
 
179
하였다. 두 사람이 응락하였다. 진궁이 급히 들어와 말하기를,
 
180
“장군께서 연주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181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182
“내가 복양에 둔병하여 솥발처럼 셋이 맞서는 형세를 이루고 싶소.”
 
183
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184
“틀렸습니다. 설란이 기필코 연주를 지키려해도 지킬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정남쪽으로 1백8십 리에 태산의 험로가 있으니 정병 일만을 거기 매복시키십시오. 조조 군이 연주를 잃은 걸 듣고 틀림없이 서둘러 길을 재촉할테니 그들이 반쯤 지나기를 기다려서 일격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185
하니,
 
186
“내가 복양에 주둔하는 것은 따로 좋은 계책이 있어서요. 그대가 어찌 알겠오!”
 
187
하였다. (여포는) 결국 진궁의 말을 따르지 않고 설란에게 연주를 지키도록 하고 떠났다.
 
 
188
曹操兵行至泰山險路,郭嘉曰:“且不可進,恐此處有伏兵。”曹操笑曰:“呂布無謀之輩,故教薛蘭守兗州,自往濮陽,安得此處有埋伏耶?教曹仁領一軍圍兗州,吾進兵濮陽,速攻呂布。”陳宮聞曹兵至近,乃獻計曰:“今曹兵遠來疲困,利在速戰,不可養成氣力。”布曰:“吾匹馬縱橫天下,何愁曹操!待其下寨,吾自擒之。”
 
189
조조의 병력이 태산 험로에 다다르자 곽가가 말하기를,
 
190
“더 갈 수 없습니다. 여기 복병이 있을 까 두렵습니다.”
 
191
하니,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192
“여포는 무모한 놈이니 설란에게 연주를 지키도록 하고 스스로 복양으로 갔을 것이오. 어찌 여기에 매복을 하겠소? 조인에게 일군으로 연주를 포위하게 하고 나는 복양으로 진격하여 속히 여포를 치겠소.”
 
193
하였다. 진궁이 조조의 군사가 가까이 옴을 듣고 계책을 올리기를,
 
194
“이제 조조의 군대가 멀리 와서 피곤하니 속전이 유리합니다. (저들이) 기력을 양성하게 해선 안 됩니다.”
 
195
하니, 여포 말하기를,
 
196
“내가 필마로 천하를 종횡했는데 어찌 조조를 근심하겠소! 그들이 진지를 세우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직접 (조조를) 잡겠소.”
 
197
하였다.
 
 
198
卻說曹操兵近濮陽,下住寨腳。次日,引 衆將出,陳兵於野。操立馬於門旗下,遙望呂布兵到。陣圓處,呂布當先出馬,兩邊排開八員健將:第一個雁門馬邑人,姓張,名遼,字文遠;第二個泰山華陰人,姓臧,名霸,字宣高。兩將又各引三員健將:郝萌、曹性、成廉,魏續、宋憲、侯成。布軍五萬,鼓聲大震。操指呂布而言曰:“吾與汝自來無仇,何得奪吾州郡?”布曰:“漢家城池,諸人有分,偏爾合得?”便叫臧霸出馬搦戰。曹軍內樂進出迎。兩馬相交,雙槍齊舉。戰到三十餘合,勝負不分。夏侯惇拍馬便出助戰,呂布陣上張遼截住廝殺。惱得呂布性起,挺戟驟馬,沖出陣來。夏侯惇、樂進皆走,呂布掩殺,曹軍大敗,退三四十裏。布自收軍。
 
199
한편, 조조의 병력이 복양 근처에 잠시 머물러 진지를 세웠다. 다음날 무리를 이끌고 나가 들판에 포진했다. 조조가 진문 깃발 아래 말을 세우고 멀리 여포 병력이 도착한 것을 보았다. 둥글게 진을 친 곳에서 여포가 앞장서서 말을 타고 나오고, 양 옆으로 여덟 명의 건장한 장수들이 늘어섰다. 첫째는 안문군 마읍현 사람인 성은 장이고 이름은 요이며 자는 문원이요, 둘째는 태산군 화음현 사람인 성은 장이고 이름은 패이며 자는 선고이니, 두 장수가 또한 각각 세 사람의 건장한 장수를 거느렸는데, 학맹 조성 성렴 위속 송헌 후성이다. 여포의 군사 5만 명이 북소리를 크게 울렸다. 조조가 여포를 손가락질하며 말하기를,
 
200
“내가 너와 원수진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내 고을을 빼앗았느냐?”
 
201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202
“한나라 왕실의 성을 여럿이 나누어 먹는데 너만 가지란 법이 있느냐?”
 
203
하였다. (여포가) 문득 장패를 고함쳐 출전시켜 싸움을 걸었다. 조조군 안에서 악진이 나가 맞이한다. 두 말이 맞붙어 두 창을 일제히 들었다. 싸운 지 삼십여 합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자, 하후돈이 말을 박차고 달려나와 싸움을 돕고, 여포 진영에서 장요가 가로막고 싸운다. 성난 여포가 성질이 나서 창을 꼬나들고 말을 몰아 맹렬히 달려나오니, 하후돈과 악진이 모두 달아났다. 여포가 덮치니 조군이 대패하여 삼사십 리를 퇴각했다. 여포도 스스로 군사를 거두었다.
 
 
204
曹操輸了一陣,回寨與諸將商議。於禁曰:“某今日上山觀望,濮陽之西,呂布有一寨,約無多軍。今夜彼將謂我軍敗走,必不准備,可引兵擊之;若得寨,布軍必懼:此爲上策。”操從其言,帶曹洪、李典、毛玠、呂虔、於禁、典韋六將,選馬步二萬人,連夜從小路進發。卻說呂布於寨中勞軍。陳宮曰:“西寨是個要緊去處,倘或曹操襲之,奈何?”布曰:“他今日輸了一陣,如何敢來!”宮曰:“曹操是極能用兵之人,須防他攻我不備。”布乃撥高順並魏續、侯成引兵往守西寨。
 
205
조조가 한바탕 지고나서 진지로 돌아가 여러 장수와 상의했다. 우금이 말하기를,
 
206
“제가 오늘 산을 올라 살펴보니 복양 서쪽에 여포의 영채가 하나 있는데 병력이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밤 적장은 아군이 패주한 것을 보고 대비를 하지 않았을 테니 병력을 이끌고 치십시오. 만약 진지를 점령하면 여포 군사가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207
하였다. 조조가 그 말에 따라 조홍 이전 모개 여건 우금 전위 여섯 장수를 데리고 기병과 보병 2만 명을 선발하여 그날밤 샛길로 출발했다. 한편, 여포가 영채 안에서 군사를 위로(격려)하는데 진궁이 말하기를,
 
208
“서쪽 진지는 요긴한 곳이니 만약 조조가 습격하면 어찌하겠습니까?”
 
209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210
“그가 오늘 한바탕 패했는데 어찌 감히 오겠소?”
 
211
하였다. 진궁이 말하기를,
 
212
“조조는 용병에 아주 능한 사람이라 그가 우리의 무방비를 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213
하니, 여포가 이에 고순과 위속과 후성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서쪽 영채를 지키게 하였다.
 
 
214
卻說曹操於黃昏時分,引軍至西寨,四面突入。寨兵不能抵擋,四散奔走,曹操奪了寨。將及四更,高順方引軍到,殺將入來。曹操自引軍馬來迎,正逢高順,三軍混戰、將及天明,正西鼓聲大震,人報呂布自引救軍來了。操棄寨而走。背後高順、魏續、侯成趕來;當頭呂布親自引軍來到。於禁、樂進雙戰呂布不住。操望北而行。山後一彪軍出:左有張遼,右有臧霸。操使呂虔、曹洪戰之,不利。操望西而走。忽又喊聲大震,一彪軍至:郝萌、曹性、成廉、宋憲四將攔住走路。 衆將死戰,操當先沖陣。梆子響處,箭如驟雨射將來。操不能前進,無計可脫,大叫:“誰人救我!”
 
215
한편, 조조가 황혼 무렵에 군을 이끌고 서쪽 영채에 이르러 사방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영채의 병력은 막아낼 수가 없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니 조조가 영채를 점령했다. 사경(새벽 두시)이 되었을 때 고순이 막 군사를 이끌고 와서 쳐들어 왔다. 조조가 직접 군마를 이끌고 나가 고순과 마주쳐 삼군(전군, 중군, 후군)이 뒤섞여 싸웠다. 날이 밝아오자 정서쪽에서 북소리 크게 울리더니 여포가 직접 구원군을 이끌고 온다고 하였다. 조조가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뒤에는 고순과 위속과 후성이 추격하고, 앞에는 여포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당도했다. 우금과 악진이 쌍으로 붙어 여포와 계속 싸웠지만, (막을 수 없자) 조조는 북쪽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산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나오는데, 왼쪽은 장요요 오른쪽은 장패다. 조조가 여건과 조홍에게 싸우게 했지만 불리하여 조조가 서쪽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다시 갑자기 함성이 크게 울리더니 한 무리 군사가 다가왔다. 학맹 조성 성렴 송헌 네 장수가 와서 달아나는 길을 막는다. 여러 장수가 죽기살기로 싸우고 조조도 선두에서 돌진한다. 딱딱이 소리가 나는 곳에서 화살이 소나기 같이 쏟아졌다. 조조가 전진할 수 없고 벗어날 계책이 없어 크게 외치기를,
 
216
“누가 나를 살려달라!”
 
217
고 했다.
 
 
218
馬軍隊裏,一將踴出,乃典韋也,手挺雙鐵戟,大叫:“主公勿憂!”飛身下馬,插住雙戟,取短戟十數枝,挾在手中,顧從人曰:“賊來十步乃呼我!”遂放開腳步,冒箭前行。布軍數十騎追至。從人大叫曰:“十步矣!”韋曰:“五步乃呼我!”從人又曰:“五步矣!”韋乃飛戟刺之,一戟一人墜馬,並無虛發,立殺十數人。 衆皆奔走。韋複飛身上馬,挺一雙大鐵戟,沖殺入去。郝、曹、成、宋四將不能抵擋,各自逃去。典韋殺散敵軍,救出曹操。 衆將隨後也到,尋路歸寨。看看天色傍晚,背後喊聲起處,呂布驟馬提戟趕來,大叫:“操賊休走!”此時人困馬乏,大家面面相覷,各欲逃生。正是:雖能暫把重圍脫,只怕難當勁敵追。
 
219
기병 무리에서 한 장수가 뛰어나오니 바로 전위였다. 손에 쌍철극을 쥐고 크게 외치기를,
 
220
“주공은 걱정 마십시오!”
 
221
하고, 몸을 날려 말에서 내리더니 쌍철극을 땅에 꽂고 표창 열 몇 개를 손바닥에 쥐고 종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222
“적들이 십 보 거리에 오면 외쳐라!”
 
223
하였다. 큰 걸음으로 걸어 화살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여포의 군사 십수 기병이 추격하니 종이 크게 외치기를,
 
224
“십 보요!”
 
225
하니, 전위가
 
226
“오 보면 바로 외쳐라!”
 
227
하자, 종이 다시 말하기를,
 
228
“오 보요!”
 
229
했다. 전위가 표창을 날리니 표창 하나에 한 사람씩 말에서 떨어지고 잘못 맞는 것이 없으니 선 채로 십수 명을 죽였다. 무리가 모두 달아나니, 전위가 다시 몸을 날려 말을 타고 큰 철극 두 자루를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학맹 조성 성렴 송헌 네 장수가 감당하지 못하고 각각 달아났다. 전위가 적군을 죽여서 흩어버리고 조조를 구출하고 여러 장수도 뒤따라 도착하여 길을 찾아 진지로 돌아간다. 보니 날이 어두워지는데 배후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곳에 여포가 말을 달려 방천화극을 들고 쫓아오며 크게 외치기를,
 
230
“조조 도적은 달아나지 말라!”
 
231
하였다. 이때 사람도 말도 지쳐 모두들 서로 훔쳐볼 뿐 각각 달아나 목숨만 건지려 하였다. 이야말로, 비록 중첩된 포위를 잠깐 뚫고 탈출했지만 굳센 적이 쫓는 걸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네.
 
 
232
不知曹操性命如何,且聽下文分解。
 
233
조조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1회 유황숙이 북해에서 공융을 구하고 온후 여포가 복양에서 조조를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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