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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6회 공손연이 패전해서 양평에서 죽고,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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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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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六回 公孫淵兵敗死襄平 司馬懿詐病賺曹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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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회 공손연이 패전해서 양평에서 죽고,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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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公孫淵乃遼東公孫度之孫,公孫康之子也。建安十二年,曹操追袁尚,未到遼東,康斬尚首級獻操,操封康爲襄平侯;後康死,有二子:長曰晃,次曰淵,皆幼;康弟公孫恭繼職。曹丕時封恭爲車騎將軍、襄平侯。太和二年,淵長大,文武兼備,性剛好鬥,奪其叔公孫恭之位,曹睿封淵爲揚烈將軍、遼東太守。後孫權遣張彌、許晏齎金珠珍玉赴遼東,封淵爲燕王。淵懼中原,乃斬張、許二人,送首與曹睿。睿封淵爲大司馬、樂浪公。淵心不足,與 衆商議,自號爲燕王,改元紹漢元年。副將賈範諫曰:“中原待主公以上公之爵,不爲卑賤;今若背反,實爲不順。更兼司馬懿善能用兵,西蜀諸葛武侯且不能取勝,何況主公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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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손연은 요동의 공손탁의 손자이며, 공손강의 아들이었다. 건안 12년, 조조가 원상을 추격해 요동에 이르기 전에, 공손강이 원상을 베어서 그 목을 조조에게 바치니, 조조가 공손강을 ‘양평후’로 봉했다. 그 후 공손강이 죽자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공손황이고, 차남은 공손연인데 모두 어렸다.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계승했다. 조비가 황제로 있을 때, 공손공을 ‘거기장군 양평후’로 봉했다. 태화 2년, 공손연이 장성하여, 문무를 겸비하고 성미가 굳세고 싸움을 좋아해서, 그 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빼앗자, 조예가 공손연을 ‘양렬장군 요동태수’로 삼았다. 그 뒤 손권이 장미와 허안을 사자로 삼아, 금은진주를 가지고 요동으로 가서 공손연을 ‘연왕’으로 봉했다. 공손연이 중원을 두려워해서 장미와 허안 두 사람을 베어서 그 목을 조예에게 보냈다. 조예가 공손연을 ‘대사마 낙랑공’으로 봉했다. 공손연이 마음속으로 만족치 못하고, 그 무리와 상의해, 스스로 연왕이라 일컫고, 연호를 소한 원년으로 고쳤다. 부장 가범이 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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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서 주공을 상공의 작위로써 대우하니, 결코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배반하면 참으로 순리를 거스릅니다. 게다가 사마의는 용병에 뛰어나서, 서촉의 ‘제갈 무후’조차 그를 이기지 못했거늘, 하물며 주공께서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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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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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大怒,叱左右縛賈範,將斬之。參軍倫直諫曰:“賈範之言是也。聖人雲:國家將亡,必有妖孽。今國中屢見怪異之事:近有犬戴巾幘,身披紅衣,上屋作人行;又城南鄉民造飯,飯甑之中,忽有一小兒蒸死於內;襄平北市中,地忽陷一穴,湧出一塊肉,周圍數尺,頭面眼耳口鼻都具,獨無手足,刀箭不能傷,不知何物。蔔者占之曰:有形不成,有口無聲;國家亡滅,故現其形。有此三者,皆不祥之兆也。主公宜避凶就吉,不可輕舉妄動。”淵勃然大怒,叱武士綁倫直並賈範同斬於市。令大將軍卑衍爲元帥,楊祚爲先鋒,起遼兵十五萬,殺奔中原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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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연이 크게 노하여, 좌우에게 소리쳐서 가범을 결박하여 처형하려고 했다. 참군 윤직이 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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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범의 말이 맞습니다. 성인께서 이르시길, ‘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불길한 징조가 있다.’ 하셨습니다. 이제 나라 안에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새 개가 두건을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채 집으로 올라가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또한 성남에서 시골 백성들이 밥을 짓는데 밥 시루 속에 홀연 아이 하나가 삶아져 죽어 있었습니다. 양평의 북쪽 저잣거리에서 땅이 갑자기 꺼져서 구멍이 생기더니 한 덩어리의 고깃덩이가 솟아 나왔는데, 둘레가 수 척이고, 안면에 눈, 귀, 입, 코를 모두 갖추었지만, 유독 손과 발만 없는데, 칼이나 화살에도 상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점쟁이가 점치기를, ‘형체는 있지만 완성되지 않고 입은 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구나. 국가가 멸망하려니 이런 형태가 나타났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모두가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을 좇아야지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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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손연이 벌컥 크게 노하여, 무사들에게 소리쳐 윤직을 포박해서 가범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처형하라 하고, 대장군 비연을 원수로, 양조를 선봉장으로 삼아, 요동의 군사 15만을 일으켜 중원으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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邊官報知魏主曹睿。睿大驚,乃召司馬懿入朝計議。懿奏曰:“臣部下馬步官軍四萬,足可破賊。”睿曰:“卿兵少路遠,恐難收複。”懿曰:“兵不在多,在能設奇用智耳。臣托陛下洪福,必擒公孫淵以獻陛下。”睿曰:“卿料公孫淵作何舉動?”懿曰:“淵若棄城預走,是上計也;守遼東拒大軍,是中計也;坐守襄平,是爲下計,必被臣所擒矣。”睿曰:“此去往複幾時?”懿曰:“四千裏之地,往百日,攻百日,還百日,休息六十日,大約一年足矣。”睿曰:“倘吳、蜀入寇,如之奈何?”懿曰:“臣已定下守禦之策,陛下勿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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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관리가 위나라 황제 조예에게 알리니, 조예가 크게 놀라 사마의를 조정으로 불러 토의했다. 사마의가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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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거느린 기병과 보병의 관군 4만으로 적을 족히 격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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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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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군사는 수가 적고 길은 머니 수복하기 어려울까 걱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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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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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이란 병력이 많은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능히 기발한 지혜를 쓸 수 있는가에 달렸을 뿐입니다. 신이 폐하의 큰 복에 의지하여, 반드시 공손연을 잡아서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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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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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보기에, 공손연이 어찌 행동할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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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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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연이 만약 성을 버리고 미리 달아난다면 그것이 상책입니다. 요동을 지키며 대군을 막는 것이 중책입니다. 양평을 앉아서 지키는 것이 하책이니, 반드시 신에게 잡히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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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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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왕복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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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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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 리 떨어진 곳이니 가는 데에 백 일, 공격하는 데에 백 일, 돌아오는 데 백 일, 휴식에 6십 일 해서, 대략 1년은 족히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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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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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오나라나 촉나라가 침범하면 어찌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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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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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이미 방어 대책을 정했으니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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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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睿大喜,即命司馬懿興師征討公孫淵。懿辭朝出城,令胡遵爲先鋒,引前部兵先到遼東下寨。哨馬飛報公孫淵。淵令卑衍,楊祚分八萬兵屯於遼隧,圍塹二十餘裏,環繞鹿角,甚是嚴密。胡遵令人報知司馬懿。懿笑曰:“賊不與我戰,欲老我兵耳。我料賊 衆大半在此,其巢穴空虛,不若棄卻此處,徑奔襄平;賊必往救,卻於中途擊之,必獲全功。”於是勒兵從小路向襄平進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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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마의에게 군사를 일으켜 공손연을 토벌하러 가라고 했다. 사마의가 조정을 떠나 성을 나가서, 호준을 선봉장으로 삼아 선두 부대를 이끌고 먼저 요동으로 가서 영채를 세우게 했다. 정찰 기병이 (이 소식을) 공손연에게 재빨리 알리니, 공손연이 비연과 양조에게 군사 8만을 나눠서 요수에 주둔하고, 2십여 리에 걸쳐서 참호를 두르고, 녹각(사슴뿔 모양의 방어 목책)을 설치하게 하니, 아주 엄밀했다. 호준이 사람을 시켜 사마의에게 보고하니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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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병이 우리와 맞붙어 싸우지 않고, 우리 군사를 지치게 할 속셈이오. 내가 헤아려보니, 적군의 태반이 그곳에 있어, 그 소굴은 텅 비어 있을 테니, 그곳을 버리고 곧장 양평으로 달려가는 것이 낫겠소. 그러면 적병이 반드시 구원하러 갈 테니 도중에 이를 치면 틀림없이 완전한 공훈을 거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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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에 군사를 지휘해서 작은 길을 따라 양평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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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卑衍與楊祚商議曰:“若魏兵來攻,休與交戰。彼千裏而來,糧草不繼,難以持久,糧盡必退;待他退時,然後出奇兵擊之,司馬懿可擒也。昔司馬懿與蜀兵相拒,堅守渭南,孔明竟卒於軍中:今日正與此理相同。”二人正商議間,忽報:“魏兵往南去了。”卑衍大驚曰:“彼知吾襄平軍少,去襲老營也。若襄平有失,我等守此處無益矣。”遂拔寨隨後而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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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비연이 양조와 상의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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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군사가 공격하러 오더라도 교전하지 마시오. 그들이 천리를 왔으니, 군량과 사료가 공급되지 않아서 오래 버티기 어렵고, 식량과 사료가 떨어지면 틀림없이 퇴각할 것이오. 그들이 퇴각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기습 군사를 내어 친다면 사마의를 잡을 수 있소. 지난날 사마의가 촉나라 군사와 대치할 때, 위남을 굳게 지켜서, 공명이 끝내 군중에서 죽었소. 오늘 그 방법을 똑같이 써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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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두 사람이 상의하고 있는 사이에 홀연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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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군사가 남쪽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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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비연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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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리 군사가 양평에 적은 것을 알고, 우리의 본거지를 습격하러 간 것이오. 만약 양평을 잃으면 우리가 이곳을 지킨들 아무 이익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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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곧 영채를 철거하고 뒤이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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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有探馬飛報司馬懿。懿笑曰:“中吾計矣!”乃令夏侯霸、夏侯威,各引一軍伏於遼水之濱:“如遼兵到,兩下齊出。”二人受計而往。早望見卑衍、楊祚引兵前來。一聲炮響,兩邊鼓噪搖旗:左有夏侯霸、右有夏侯威,一齊殺出。卑、楊二人,無心戀戰,奪路而走;奔至首山,正逢公孫淵兵到,合兵一處,回馬再與魏兵交戰。卑衍出馬罵曰:“賊將休使詭計!汝敢出戰否?”夏侯霸縱馬揮刀來迎。戰不數合,被夏侯霸一刀斬卑衍於馬下,遼兵大亂。霸驅兵掩殺,公孫淵引敗兵奔入襄平城去,閉門堅守不出。魏兵四面圍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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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정찰 기병이 사마의에게 급보하니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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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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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하후패와 하후위 두 사람에게 각각 1군을 이끌고 요수 가에 매복하게 하고,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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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군사들이 오거든 양쪽에서 일제히 나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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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났다. 어느새 비연과 양조가 병사를 이끌고 앞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양쪽에서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며, 왼쪽에서 하후패가, 오른쪽에서 하후위가 일제히 달려 나왔다. 비연과 양조 두 사람이 싸울 마음이 없어서 길을 뚫고 달아났다. 수산까지 달아나다가 마침 공손연의 군사와 마주쳐서 군사를 한데 합친 뒤 말머리를 되돌려 다시 위나라와 군사와 교전했다. 비연이 말을 타고 나와서 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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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은 속임수를 쓰지 마라! 네가 어찌 감히 출전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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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하후패가 말을 몰고 칼을 휘두르며 맞서러 나왔다. 싸운 지 몇 번 되지 않아서, 하후패가 한칼에 비연을 베어서 말 아래로 떨어뜨리니, 요동의 군사들이 크게 혼란에 빠졌다. 하후패가 군사를 내몰아서 덮치니 공손연이 패잔병을 이끌고 양평성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았다. 위나라 군사가 사방을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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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值秋雨連綿,一月不止,平地水深三尺,運糧船自遼河口直至襄平城下。魏兵皆在水中,行坐不安。左都督裴景入帳告曰:“雨水不住,營中泥濘,軍不可停,請移於前面山上。”懿怒曰:“捉公孫淵只在旦夕,安可移營?如有再言移營者斬!”裴景喏喏而退。少頃,右都督仇連又來告曰:“軍士苦水,乞太尉移營高處。”懿大怒曰:“吾軍令已發,汝何敢故違!”即命推出斬之,懸首於轅門外。於是軍心震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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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을비가 한 달을 그치지 않고 내려서 평지의 수심이 3척에 이르니, 군량을 운반하는 배가 요하 어귀에서 곧바로 양평성 아래까지 왔다. 위나라 군사가 모두 물속에서 지내니, 걷거나 앉거나 늘 불안했다. 좌도독 배경이 군막으로 들어와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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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그치지 않아, 영내가 진창이니, 군사들이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앞쪽의 산 위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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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노하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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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연을 잡을 것이 아침저녁에 있는데, 어찌 영채를 옮길 수 있겠오? 영채를 옮기자는 말을 다시 꺼내는 자는 참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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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배경이‘네, 네’하며 물러났다. 얼마 뒤 우도독 구련이 와서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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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이 빗물 때문에 고생하니, 태위께 바라옵건대 영채를 높은 지대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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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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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령을 이미 발표했거늘 네놈이 어찌 감히 일부러 어기려드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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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즉시 끌어내서 처형하고 그 목을 군영의 문밖에 걸어두었다. 이에 군사들의 마음이 두려워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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懿令兩寨人馬暫退二十裏,縱城內軍民出城樵采柴薪,牧放牛馬。司馬陳群問曰:“前太尉攻上庸之時,兵分八路,八日趕至城下,遂生擒孟達而成大功;今帶甲四萬,數千裏而來,不令攻打城池,卻使久居泥濘之中,又縱賊 衆樵牧。某實不知太尉是何主意?”懿笑曰:“公不知兵法耶?昔孟達糧多兵少,我糧少兵多,故不可不速戰;出其不意,突然攻之,方可取勝。今遼兵多,我兵少,賊饑我飽,何必力攻?正當任彼自走,然後乘機擊之。我今放開一條路,不絕彼之樵牧,是容彼自走也。”陳群拜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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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가 명령을 내려서 양쪽 영채의 군사들을 잠시 2십 리 밖으로 물러나게 하니, 성안의 군사와 백성들이 성을 나와서 땔나무를 베고 땔감을 채취하고, 소와 말을 방목했다. 사마(보좌관) 진군이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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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태위께서 상용을 치실 때, 병력을 여덟 방면으로 나누어 8일 만에 성 아래에 당도해서 마침내 맹달을 사로잡아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제 무장병 4만이 수천 리를 왔는데 성을 치라고 명하지 않고, 도리어 오랫동안 진창 속에서 지내게 만들고, 또 적의 무리로 하여금 땔나무를 베고 소와 말을 방목하도록 하니, 저는 태위께서 무슨 뜻을 가지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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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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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 병법을 모르시오? 지난날 맹달은 군량이 많고 병력이 적었으나, 아군은 군량이 적고 병력이 많았던 까닭에 싸움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소. 적이 생각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 돌연히 공격해야 비로소 승리를 거두는 것이오. 이제 요동 군사는 많고 아군은 적고, 적군은 굶주리고 아군은 포식하고 있는데 하필 힘껏 공격해야겠소? 마땅히 적들이 스스로 달아나게 한 뒤에 기회를 타서 공격해야 하오. 내가 이제 한줄기 길을 열어서 저들에게 땔나무를 베고 소와 말을 방목하게 하는 것은 저들을 스스로 달아나게 하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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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진군이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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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司馬懿遣人赴洛陽催糧。魏主曹睿設朝,群臣皆奏曰:“近日秋雨連綿,一月不止,人馬疲勞,可召回司馬懿,權且罷兵。”睿曰:“司馬太尉善能用兵,臨危制變,多有良謀,捉公孫淵計日而待。卿等何必憂也?”遂不聽群臣之諫,使人運糧解至司馬懿軍前。懿在寨中,又過數日,雨止天晴。是夜,懿出帳外,仰觀天文,忽見一星,其大如鬥,流光數丈,自首山東北,墜於襄平東南。各營將士,無不驚駭。懿見之大喜,乃謂 衆將曰:“五日之後,星落處必斬公孫淵矣。來日可並力攻城。” 衆將得令,次日侵晨,引兵四面圍合,築土山,掘地道,立炮架,裝雲梯,日夜攻打不息,箭如急雨,射入城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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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사마의가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어 군량을 보내달라고 재촉했다. 위나라 황제 조예가 조회를 열자 신하들이 모두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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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가을비가 한 달을 그치지 않아서 군사들이 피로하니 사마의를 불러들이고 잠시 군사를 거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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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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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 태위는 용병에 능하고, 위기에 잘 대처하며, 좋은 계책을 많이 갖고 있어서, 공손연을 잡는 것도 날짜만 헤아려 기다리면 될 일이오. 경들이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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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침내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사마의의 싸움터까지 보냈다. 사마의가 영채 안에 머물며 다시 며칠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갰다. 이날 밤 사마의가 군막을 나와서 우러러 천문을 살피니 홀연히 한 별이 크기는 북두성과 같은데 몇 길이나 되는 빛을 끌며 수산의 동북쪽에서 양평의 동남쪽으로 떨어졌다. 각 영채의 장수와 병사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마의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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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 별이 떨어진 곳에서 반드시 공손연을 참할 것이오. 내일 힘을 합쳐 성을 쳐야겠소.”
 
74
했다. 여러 장수가 명령을 받고, 다음날 새벽에 군사를 이끌고 사방에서 에워싸더니, 흙산을 쌓고 땅굴을 파고 화포 받침대를 세우고 운제를 장치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격하여 화살을 소나기처럼 성안으로 퍼부었다.
 
 
75
公孫淵在城中糧盡,皆宰牛馬爲食。人人怨恨,各無守心,欲斬淵首,獻城歸降。淵聞之,甚是驚憂,慌令相國王建、禦史大夫柳甫,往魏寨請降。二人自城上系下,來告司馬懿曰:“請太尉退二十裏,我君臣自來投降。”懿大怒曰:“公孫淵何不自來?殊爲無理!”叱武士推出斬之,將首級付與從人。從人回報,公孫淵大驚,又遣侍中衛演來到魏營。司馬懿升帳,聚 衆將立於兩邊。演膝行而進,跪於帳下,告曰:“願太尉息雷霆之怒。克日先送世子公孫修爲質當,然後君臣自縛來降。”懿曰:“軍事大要有五:能戰當戰,不能戰當守,不能守當走,不能走當降,不能降當死耳!何必送子爲質當?”叱衛演回報公孫淵,演抱頭鼠竄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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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연의 성안에서 군량이 바닥나자 모두 소와 말을 잡아서 먹었다. 사람마다 원망하며 성을 지킬 마음이 없어서 공손연의 머리를 베어서 성을 바치고 투항하려고 했다. 공손연이 이를 듣고 몹시 놀라고 근심하여, 상국 왕건과 어사대부 유보를 황급히 시켜서 위나라 진영을 찾아가 항복을 청하게 했다. 두 사람이 성 위에서 밧줄에 매달려서 내려와서, 사마의를 찾아가서 고하기를,
 
77
“청컨대 태위께서 2십 리를 물러나시면 저희 임금과 신하들이 스스로 투항하러 오겠습니다.”
 
78
하니, 사마의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79
“공손연이 어찌 직접 오지 않았느냐? 몹시 무례하구나!”
 
80
하고,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이들을 끌어내어 처형하고, 수급을 그들의 종에게 넘겨주었다. 종이 돌아가서 알리니, 공손연이 크게 놀라서, 또 시중 위연을 위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사마의가 군막으로 나와서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양쪽에 세웠다. 위연이 무릎걸음으로 나아가서 군막 아래에 무릎을 꿇고 고하기를,
 
81
“바라건대 태위께서 천둥과 벼락같은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날짜를 정해서 먼저 저희 세자 공손수를 인질로 보내겠습니다. 그런 뒤에 저희 임금과 신하들이 스스로 결박해서 항복하러 오겠습니다.”
 
82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83
“군사의 대략적 요지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싸울 수 없으면 지키며, 지킬 수 없으면 달아나고, 달아날 수 없으면 항복하며, 항복할 수 없으면 죽을 뿐이다. 어찌 반드시 아들을 인질로 보내야겠느냐?”
 
84
하고, 위연을 꾸짖어 보내며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알리라고 하니, 위연이 머리를 감싸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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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告公孫淵,淵大驚,乃與子公孫修密議停當,選下一千人馬,當夜二更時分,開了南門,往東南而走。淵見無人,心中暗喜。行不到十裏,忽聽得山上一聲炮響,鼓角齊鳴:一枝兵攔住,中央乃司馬懿也;左有司馬師,右有司馬昭,二人大叫曰:“反賊休走!”淵大驚,急撥馬尋路欲走。早有胡遵兵到;左有夏侯霸、夏侯威,右有張虎、樂綝:四面圍得鐵桶相似。公孫淵父子,只得下馬納降。懿在馬上顧諸將曰:“吾前夜丙寅日,見大星落於此處,今夜壬申日應矣。” 衆將稱賀曰:“太尉真神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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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이)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고하니, 공손연이 크게 놀라 아들 공손수와 몰래 의논을 마치더니, 인마 1천을 뽑아서 그날 밤 2경(밤10시쯤) 무렵에 남문을 열고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공손연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십 리를 못 가서 갑자기 산 위에서 한차례 포성이 들리더니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자, 한 무리 군사가 가로막는데 중앙은 바로 사마의였다. 좌측은 사마사요, 우측은 사마소인데, 두 사람이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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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일으킨 역적은 달아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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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손연이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몰아 길을 찾아 달아나려 했다. 어느새 호준의 군사가 이르러서, 좌측은 하후패와 하후위이고, 우측은 장호와 악침의 군사였다. 사면에서 철통같이 포위했다. 공손연 부자가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항복했다. 사마의가 말 위에서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89
“내가 어젯밤 병인일에 큰 별이 여기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오늘 밤 임신일에 이렇게 될 줄 알았소.”
 
90
하니, 여러 장수들이 칭송하기를,
 
91
“태위께서는 참으로 귀신 같은 재능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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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93
懿傳令斬之。公孫淵父子對面受戮。司馬懿遂勒兵來取襄平。未及到城下時,胡遵早引兵入城。城中人民焚香拜迎,魏兵盡皆入城。懿坐於衙上,將公孫淵宗族,並同謀官僚人等,俱殺之,計首級七十餘顆。出榜安民。人告懿曰:賈範、倫直苦諫淵不可反叛,俱被淵所殺。懿遂封其墓而榮其子孫。就將庫內財物,賞勞三軍,班師回洛陽。
 
94
사마의가 그들을 참하라고 명령하니, 공손연 부자가 마주 보고 죽임을 당했다. 사마의가 곧 군사를 거느리고 양평을 점령하러 갔다. 성 밑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호준이 벌써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의 인민이 향을 사르고 절하며 맞이했다. 위나라 군사가 모두 성으로 들어갔다. 사마의가 관아 대청 위에 앉아 공손연의 종족과 아울러 함께 모반한 관료 등을 끌고 와서 모두 죽이니, 수급이 7십여 개였다.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심시키니, 사람들이 사마의에게 고하기를,
 
95
“가범과 윤직이 공손연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간절하게 간언했으나, 모두 공손연에게 살해됐습니다.”
 
96
했다. 사마의가 곧 그들의 묘를 조성하고 그 자손들을 포상했다. 곳간의 재물로 전군에 상을 주고 위로한 뒤, 군사를 거느리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97
卻說,魏主在宮中,夜至三更,忽然一陣陰風,吹滅燈光,只見毛皇後引數十個宮人哭至座前索命。睿因此得病。病漸沉重,命侍中光祿大夫劉放、孫資,掌樞密院一切事務;又召文帝子燕王曹宇爲大將軍,佐太子曹芳攝政。宇爲人恭儉溫和,未肯當此大任,堅辭不受。睿召劉放、孫資問曰:“宗族之內,何人可任?”二人久得曹真之惠,乃保奏曰:“惟曹子丹之子曹爽可也。”睿從之。
 
98
한편, 위나라 황제가 궁중에 있는데, 밤 3경(자정쯤)에 이르자, 갑자기 한바탕 음산한 바람이 불어서 등불을 꺼뜨렸다. 그런데 모 황후가 수 십 명의 궁녀들을 이끌고 옥좌 앞까지 와서 울면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했다. 조예가 이로 인해 병이 생겼다. 병이 점차 심각해져서 시중 광록대부 유방과 손자에게 명하여 추밀원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 했다. 또한 문제(조비)의 아들 연왕 조우를 불러들여서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태자 조방을 도와 섭정하도록 했다. 조우의 사람됨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온화한데, 이러한 대임을 맡으려 하지 않고,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조예가 유방과 손자를 불러 묻기를,
 
99
“종족 중에서 누구에게 맡길 만하겠소?”
 
100
하니, 두 사람이 오래도록 조진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이에 보증하여 아뢰기를,
 
101
“조자단(조진)의 아들 조상이 좋겠습니다.”
 
102
했다. 조예가 그 말을 따랐다.
 
 
103
二人又奏曰:“欲用曹爽,當遣燕王歸國。”睿然其言。二人遂請睿降詔,齎出諭燕王曰:“有天子手詔,命燕王歸國,限即日就行;若無詔不許入朝。”燕王涕泣而去。遂封曹爽爲大將軍,總攝朝政。睿病漸危,急令使持節詔司馬懿還朝。懿受命,徑到許昌,入見魏主。睿曰:“朕惟恐不得見卿;今日得見,死無恨矣。”懿頓首奏曰:“臣在途中,聞陛下聖體不安,恨不肋生兩翼,飛至闕下。今日得睹龍顏,臣之幸也。”
 
104
두 사람이 또 아뢰기를,
 
105
“조상을 쓰시겠다면 연왕은 귀국(제후의 지역으로 돌아감)시키소서.”
 
106
하니, 조예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이 곧 조예에게 조서를 내려달라 청하고, 조서를 가지고 연왕에게 가서 황제의 칙유를 전하며 말하기를,
 
107
“천자께서 조서를 써서 명하시기를, 연왕은 즉일로 귀국하고 부르지 않으면 조정에 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08
했다. 연왕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떠났다. 곧 조상을 대장군으로 봉하여, 조정의 정무를 모두 관장하도록 했다. 조예가 병세가 점차 위중해지자 급히 사자에게 부절을 가지고 사마의를 찾아가서 조정으로 들어오라는 명을 전했다. 사마의가 명을 받고 곧 허창에 이르러 위나라 황제를 들어가 만났다. 조예가 말하기를,
 
109
“짐은 오직 경을 만나지 못할까 걱정했소. 오늘 만날 수 있으니 죽어도 한이 없소.”
 
110
하니,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111
“신이 도중에서 폐하의 옥체가 편안치 않다는 것을 알고, 날개가 달려 궁궐로 날아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오늘 용안을 뵙게 되니, 신의 다행입니다.”
 
112
했다.
 
 
113
睿宣太子曹芳,大將軍曹爽,侍中劉放、孫資等,皆至禦榻之前。睿執司馬懿之手曰:“昔劉玄德在白帝城病危,以幼子劉禪托孤於諸葛孔明,孔明因此竭盡忠誠,至死方休:偏邦尚然如此,何況大國乎?朕幼子曹芳,年才八歲,不堪掌理社稷。幸太尉及宗兄元勳舊臣,竭力相輔,無負朕心!”又喚芳曰:“仲達與朕一體,爾宜敬禮之。”遂命懿攜芳近前。芳抱懿頸不放。睿曰:“太尉勿忘幼子今日相戀之情!”言訖,潸然淚下。懿頓首流涕。魏主昏沉,口不能言,只以手指太子,須臾而卒;在位十三年,壽三十六歲,時魏景初三年春正月下旬也。
 
114
조예가 하교하여,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과 손자 등을 모두 용상 앞으로 오게 했다. 조예가 사마의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115
“지난날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세가 위급할 때,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탁고하니 공명이 이 때문에 충성을 다 바치다가 죽어서야 멈추었소. 변방의 나라도 이러한데 하물며 대국은 어떻겠소? 짐의 어린 아들 조방은 나이가 겨우 여덟 살이니 종묘사직을 감당할 수는 없소. 부디 태위와 종친 연장자, 공신과 옛 신하들은 힘껏 그를 보좌하여 짐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시오!”
 
116
하고, 또 조방을 불러 말하기를,
 
117
“중달(사마의)은 짐과 한 몸이니 너는 마땅히 삼가 그를 예우하라.”
 
118
했다. 곧 사마의에게 명하여, 조방을 이끌고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했다. 조방이 사마의의 목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자, 조예가 말하기를,
 
119
“태위는 어린 아들이 오늘 이렇게 좋아하는 정을 잊지 마시오!”
 
120
하고, 말을 마치더니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사마의도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위나라 황제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말을 할 수 없어 다만 손으로 태자를 가리키다가 얼마 뒤에 죽었다. 재위 13년, 나이 36세였다. 이때가 위나라 경초 3년 봄 정월 하순이었다.
 
 
121
當下司馬懿、曹爽,扶太子曹芳即皇帝位。芳字蘭卿,乃睿乞養之子,秘在宮中,人莫知其所由來。於是曹芳諡睿爲明帝,葬於高平陵;尊郭皇後爲皇太後;改元正始元年。司馬懿與曹爽輔政。爽事懿甚謹,一應大事,必先啟知。爽字昭伯,自幼出入宮中,明帝見爽謹慎,甚是愛敬。爽門下有客五百人,內有五人以浮華相尚:一是何晏,字平叔;一是鄧颺,字玄茂,乃鄧禹之後;一是李勝,字公昭;一是丁謐,字彥靖;一是畢軌,字昭先。又有大司農桓範字元則,頗有智謀,人多稱爲“智囊”。此數人皆爽所信任。
 
122
즉시 사마의와 조상이 태자 조방을 받들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조방은 자가 난경인데 조예의 양자였다. 그동안 궁중에 숨겨놓아 사람들이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다. 이에 조방이 조예에게 명제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고평릉에 장사지냈다. 곽 황후를 황태후로 높이고, 연호를 정시 원년으로 고쳤다. 사마의가 조상과 더불어 정무를 보좌했다. 조상이 사마의를 몹시 공손히 섬겨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에게 먼저 알렸다. 조상의 자는 소백인데 어려서부터 궁중을 출입했다. 명제가 조상의 언행이 공손하고 신중한 것을 보고 몹시 아꼈다. 조상의 문하에 식객이 5백 명인데, 그들 중에 다섯 사람이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함으로 서로를 높였다. 그 중 하나는 이름이 하안이고 자는 평숙이이며, 하나는 이름이 등양이고 자는 현무인데 등우의 후예였다. 하나는 이름이 이승이고 자는 공소이며, 하나는 이름이 정밀이고 자는 언정이었다. 하나는 이름이 필궤이고 자는 소선이었다. 또한 대사농(재정 담당) 환범인데 자는 원칙이고 자못 지모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꾀주머니’라고 불렀다. 이들 몇 사람이 모두 조상의 신임을 받았다.
 
 
123
何晏告爽曰:“主公大權,不可委托他人,恐生後患。”爽曰:“司馬公與我同受先帝托孤之命,安忍背之?”晏曰:“昔日先公與仲達破蜀兵之時,累受此人之氣,因而致死。主公如何不察也?”爽猛然省悟,遂與多官計議停當,入奏魏主曹芳曰:“司馬懿功高德重,可加爲太傅。”芳從之,自是兵權皆歸於爽。爽命弟曹羲爲中領軍,曹訓爲武衛將軍,曹彥爲散騎常侍,各引三千禦林軍,任其出入禁宮。又用何晏、鄧颺、丁謐爲尚書,畢軌爲司隸校尉,李勝爲河南尹:此五人日夜與爽議事。
 
124
하안이 조상에게 고하기를,
 
125
“주공의 대권을 타인에게 위탁하지 마십시오. 후환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126
하니, 조상이 말하기를,
 
127
“사마의 공은 나와 더불어 선제의 탁고(고아를 맡김)를 받았거늘, 어찌 차마 그를 배신하겠소?”
 
128
했다. 하안이 말하기를,
 
129
“지난날 선공(조예)께서 중달과 더불어 촉나라 군사를 격파할 때 누차에 걸쳐서 그의 기세에 눌려서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인데, 주공께서 어찌 살피지 않으십니까?”
 
130
하니, 조상이 갑자기 깨닫고, 곧 여러 관리와 토의를 마치더니, 위나라 황제 조방을 만나러 들어가서 말하기를,
 
131
“사마의의 공이 높고 덕이 무거우니, 태부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132
했다. 조방이 이를 따랐다. 이 때문에 병권이 모두 조상에게 넘어갔다. 조상이 아우 조희를 중령군으로, 조훈을 무위장군으로, 조언을 산기상시로 임명해서, 각각 3천의 어림군을 이끌고 금궁(황제 거처)의 출입을 맡게했다. 또한 하안, 등양, 정밀을 상서로, 필궤를 사예교위로, 이승을 하남윤으로 임명했다. 이들 다섯 사람이 밤낮으로 조상과 더불어 공무를 의논했다.
 
 
133
於是曹爽門下賓客日盛。司馬懿推病不出,二子亦皆退職閑居。爽每日與何晏等飲酒作樂:凡用衣服器皿,與朝廷無異;各處進貢玩好珍奇之物,先取上等者入己,然後進宮,佳人美女,充滿府院。黃門張當,諂事曹爽,私選先帝侍妾七八人,送入府中;爽又選善歌舞良家子女三四十人,爲家樂。又建重樓畫閣,造金銀器皿,用巧匠數百人,晝夜工作。
 
134
이에 조상 문하의 빈객들이 나날이 융성해졌다. 사마의가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고, 두 아들도 모두 퇴직하여 한가로이 지냈다. 조상이 매일 하안 등과 더불어 음주하며 환락을 즐겼다. 무릇 의복과 그릇을 쓰는 것이 조정과 차이가 없었다. 각처에서 완상하고 즐길 진기한 물건들을 바치면, 먼저 상등품을 자기가 가진 뒤에 나머지를 궁궐에 바쳤다. 고운 남자와 미녀들이 귀족과 관료의 저택에 가득했다. 환관 장당이 조상에게 아첨하고 섬겨서, 사사로이 선제(조예)의 시첩 일여덟 명을 골라서 조상의 부중으로 들여보냈다. 조상이 또한 가무에 뛰어난 양갓집 자녀 3,4십 명을 골라서, 가악(노래하는 기녀)으로 삼았다. 또한 화려한 누각을 짓고, 금과 은으로 그릇을 만들었는데, 뛰어난 장인 수백 인을 부려서 밤낮으로 공사를 했다.
 
 
135
卻說,何晏聞平原管輅明數術,請與論《易》。時鄧颺在座,問輅曰:“君自謂善《易》而語不及《易》中詞義,何也?”輅曰:“夫善《易》者,不言《易》也。”晏笑而贊之曰:“可謂要言不煩。”因謂輅曰:“試爲我蔔一卦:可至三公否?”又問:“連夢青蠅數十,來集鼻上,此是何兆?”輅曰:“元、愷輔舜,周公佐周,皆以和惠謙恭,享有多福。今君侯位尊勢重,而懷德者鮮,畏威者 衆,殆非小心求福之道。且鼻者,山也;山高而不危,所以長守貴也。今青蠅臭惡而集焉。位峻者顛,可不懼乎?願君侯裒多益寡,非禮勿履:然後三公可至,青蠅可驅也。”鄧颺怒曰:“此老生之常談耳!”輅曰:“老生者見不生,常談者見不談。”遂拂袖而去。
 
136
한편, 하안이 평원의 관로라는 사람이 음양오행의 술수에 뛰어나다고 듣고, 관로를 불러서 <주역>을 논의했다. 이때 등양이 그 자리에 있다가 관로에게 묻기를,
 
137
“그대가 스스로 <주역>에 뛰어나다고 하면서,<주역> 속의 뜻을 말하지 않으니 무엇 때문이오?”
 
138
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139
“무릇 <주역>에 뛰어난 사람은 <주역>을 말하지 않소.”
 
140
했다. 하안이 웃으며 그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141
“가히 요긴한 말은 번잡하지 않다고 할 만하오.”
 
142
하고, 인하여 관로에게 이르기를,
 
143
“나를 위해 점을 쳐보시겠소? 내가 삼공의 지위까지 오르겠소?”
 
144
하며, 또 묻기를,
 
145
“요새 꿈 속에서 파리 수십 마리가 내 코 위에 몰려오는데, 이것이 무슨 징조요?”
 
146
했다. 관로가 말하기를,
 
147
“원개(八元八愷:현명하고 재주 있는 사람들)가 요임금을 보필하고, 주공이 주나라를 도왔는데, 이들 모두가 온화하고 은혜를 베풀며, 겸손하고 공손했기 때문에 많은 복을 누렸소. 이제 군후(벼슬아치의 경칭)께서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크지만 군후의 은덕을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고, 위세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많으니, 진실로 조심하며 복을 찾는 길은 아니오. 게다가 코는 산인데, 산이 높고 위태롭지 않다면, 고귀한 신분을 오래 지킬 것이오. 파리들은 악취에 끌려서 모이는 것이오. 지위가 높은 이가 전복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바라건대 군후께서는 많은 것은 덜어내고 적은 것은 보충하며,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마시오. 그런 뒤에야 삼공까지 오르고, 파리들도 쫓아낼 수 있소.”
 
148
했다. 등양이 노해서 말하기를,
 
149
“이것은 늙은이들이 늘 하는 이야기일 뿐이오!”
 
150
하니, 관로가 말하기를,
 
151
“늙은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볼 수 있고, 늘 하는 이야기는 아직 말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법이오.”
 
152
하고, 마침내 소매를 털며 가버렸다.
 
 
153
二人大笑曰:“真狂士也!”輅到家,與舅言之。舅大驚曰:“何、鄧二人,威權甚重,汝奈何犯之?”輅曰:“吾與死人語,何所畏耶!”舅問其故。輅曰:“鄧颺行步,筋不束骨,脈不制肉,起立傾倚,若無手足:此爲‘鬼躁’之相。何晏視候,魂不守宅,血不華色,精爽煙浮,容若槁木:此爲‘鬼幽’之相。二人早晚必有殺身之禍,何足畏也!”其舅大罵輅爲狂子而去。
 
154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55
“참으로 미친 선비요!”
 
156
했다. 관로가 귀가하여 처남에게 이것을 말하니, 처남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57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은 권세가 대단히 큰데 어찌 그들을 거스르셨소?”
 
158
했다. 관로가 말하기를,
 
159
“죽은 사람에게 말한 것인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오?”
 
160
했다. 처남이 그 까닭을 물으니, 관로가 말하기를,
 
161
“등양이 걸을 때, 근육이 뼈를 바로잡지 못하고, 혈맥이 살을 제어하지 못하오. 일어서면 몸이 기울어지니, 마치 손발이 없는 듯하오. 이것은 귀조(귀신같은 태도와 행실)의 형상이오. 하안을 살펴보면, 그 넋이 몸을 지키지 못하고, 혈색이 좋지 않고, 정령이 연기처럼 떠돌며, 그 용모가 마치 마른 나무와 같소. 이것은 귀유(용모가 바짝 말라서 정신이 없음)의 형상이오. 두 사람은 조만간 반드시 자신의 몸을 죽이는 재앙을 입을 텐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162
했다. 그 처남이 관로를 미치광이라고 크게 꾸짖고 떠났다.
 
 
163
卻說,曹爽嘗與何晏、鄧颺等畋獵。其弟曹羲諫曰:“兄威權太甚,而好出外遊獵,倘爲人所算,悔之無及。”爽叱曰:“兵權在吾手中,何懼之有!”司農桓範亦諫,不聽。時魏主曹芳,改正始十年爲嘉平元年。曹爽一向專權,不知仲達虛實,適魏主除李勝爲荊州刺史,即令李勝往辭仲達,就探消息。勝徑到太傅府中,早有門吏報入。司馬懿謂二子曰:“此乃曹爽使來探吾病之虛實也。”乃去冠散發,上床擁被而坐,又令二婢扶策,方請李勝入府。
 
164
한편, 조상이 일찍이 하안, 등양 등과 함께 사냥을 갔는데, 그 아우 조희가 간하기를,
 
165
“형의 권위가 아주 대단한데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즐기니, 이러다가 누가 노린다면, 후회막급이오.”
 
166
하니, 조상이 꾸짖기를,
 
167
“병권이 내 수중에 있거늘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168
했다. 사농(재정 조세 담당) 환범도 간하지만 조상이 듣지 않았다. 이때 위나라 황제 조방이 정시 10년을 가평 원년으로 바꾸었다. 조상이 계속 권력을 독점하지만, 사마의의 허실을 알지 못했다. 마침 위나라 황제가 이승을 형주자사로 제수하니, (조상이) 곧 이승으로 하여금 중달(사마의)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서 소식을 염탐하도록 했다. 이승이 곧장 태부(사마의의 직위)의 부중으로 가서, 문지기를 시켜서 자신이 온 것을 알리게 했다. 사마의가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169
“이것은 조상이 시켜서 내 병의 허실을 탐지하러 온 것이다.”
 
170
하고, 곧 관을 벗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침상으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앉았다. 또한 두 여종에게 자신을 부축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이승을 부중으로 들어오게 했다.
 
 
171
勝至床前拜曰:“一向不見太傅,誰想如此病重。今天子命某爲荊州刺吏,特來拜辭。”懿佯答曰:“並州近朔方,好爲之備。”勝曰:“除荊州刺史,非‘並州’也。”懿笑曰:“你方從並州來?”勝曰:“漢上荊州耳。”懿大笑曰:“你從荊州來也!”勝曰:“太傅如何病得這等了?”左右曰:“太傅耳聾。”勝曰:“乞紙筆一用。”
 
172
이승이 앞으로 와서 절하며 말하기를,
 
173
“그 동안 태부를 만나뵙지 못하였지만 누가 이렇게 병세가 위중한 줄 알았겠습니까? 이제 천자께서 저를 형주자사로 제수하셔서, 일부러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174
하니, 사마의가 거짓으로 답하기를,
 
175
“병주는 북방과 가까우니 준비를 잘하시오.”
 
176
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177
“형주자사로 제수됐습니다. 병주가 아닙니다.”
 
178
하니,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179
“그대가 방금 병주에서 왔다고?”
 
180
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181
“한수 가의 형주입니다.”
 
182
하니, 사마의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83
“그대가 형주에서 왔구나!”
 
184
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185
“태부께서 어쩌다가 병세가 이렇게 됐습니까?”
 
186
하니, 좌우(측근)가 말하기를,
 
187
“태부께서 귀가 먹었소.”
 
188
했다. 이승이 말하기를,
 
189
“제게 종이와 붓을 주십시오.”
 
190
했다.
 
 
191
左右取紙筆與勝。勝寫畢,呈上,懿看之,笑曰:“吾病的耳聾了。此去保重。”言訖,以手指口。侍婢進湯,懿將口就之,湯流滿襟,乃作哽噎之聲曰:“吾今衰老病篤,死在旦夕矣。二子不肖,望君教之。君若見大將軍,千萬看覷二子!”言訖,倒在床上,聲嘶氣喘。李勝拜辭仲達,回見曹爽,細言其事。爽大喜曰:“此老若死,吾無憂矣!”司馬懿見李勝去了,遂起身謂二子曰:“李勝此去,回報消息,曹爽必不忌我矣。只待他出城畋獵之時,方可圖之。”
 
192
좌우가 종이와 붓을 가져다가 이승에게 주니, 이승이 글을 써서 바쳤다. 사마의가 읽더니 웃으며 말하기를,
 
193
“내가 병이 들어서 귀가 먹었소. 이제 가면 부디 건강을 조심하시오.”
 
194
하고, 말을 마치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켰다. 시중을 드는 여종이 탕을 바치니, 사마의가 입을 갖다 대지만, 탕이 흘러서 소매를 흥건히 적셨다. 이에 사마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하기를,
 
195
“내가 이제 노쇠하고 병세가 위독하니, 죽음이 아침저녁에 있소. 두 아들이 불초하니 바라건대 그대가 가르쳐주구려. 대장군(조상)을 만나거든 제발 내 두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해주시오.”
 
196
하고, 말을 마치더니 침상 위로 쓰러지는데, 목이 쉬었고 숨이 찼다. 이승이 중달(사마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조상에게 돌아가서 그 일을 자세히 말했다. 조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97
“그가 늙어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이제 내게 아무 걱정이 없소!”
 
198
했다. 사마의는 이승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서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199
“이승이 이렇게 가서 내 소식을 전하면, 조상이 틀림없이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성을 나가서 사냥할 때만을 기다렸다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00
했다.
 
 
201
不一日,曹爽請魏主曹芳去謁高平陵,祭祀先帝。大小官僚,皆隨駕出城。爽引三弟,並心腹人何晏等,及禦林軍護駕正行,司農桓範叩馬諫曰:“主公總典禁兵,不宜兄弟皆出。倘城中有變,如之奈何?”爽以鞭指而叱之曰:“誰敢爲變!再勿亂言!”當日,司馬懿見爽出城,心中大喜,即起舊日手下破敵之人,並家將數十,引二子上馬,徑來謀殺曹爽。正是:閉戶忽然有起色,驅兵自此逞雄風。
 
202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조상이 위나라 황제 조방에게 고평릉을 찾아가서 선제 조예에게 제사를 지낼 것을 청했다. 대소 관료가 모두 어가를 수행하여 성을 나섰다. 조상이 동생 셋과 아울러 심복 하안 등과 어림군(황제의 친위대)을 이끌고 어가를 호위하여 출발하려는데, 사농 환범이 말을 붙잡고 간하기를,
 
203
“주공께서 금병(황제의 친위대)을 총지휘하는데, 형제가 모두 나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안에서 변란이 생기면 어찌하시겠습니까?”
 
204
하니, 조상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꾸짖기를,
 
205
“누가 감히 변란을 일으키겠느냐? 다시는 어지러운 말을 하지 말라!”
 
206
했다. 이날 사마의는 조상이 성을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즉시 옛날에 그의 수하에서 적을 격파하던 사람들과 아울러 가병 수십 명을 동원하며, 두 아들을 이끌고 말을 타고, 곧바로 조상을 모살하러 갔다. 이야말로, 문을 닫은 채 홀연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이제야 군사를 몰아 위풍당당하게 나서네.
 
 
207
未知曹爽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208
조상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6회 공손연이 패전해서 양평에서 죽고,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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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