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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9회 촉한의 장수가 기발한 계책으로 사마소를 포위하고 위나라 조방이 인과응보로 쫓겨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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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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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九回 困司馬漢將奇謀 廢曹芳魏家果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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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회 촉한의 장수가 기발한 계책으로 사마소를 포위하고 위나라 조방이 인과응보로 쫓겨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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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漢延熙十六年秋,將軍薑維起兵二十萬,令廖化、張翼爲左右先鋒,夏侯霸爲參謀,張嶷爲運糧使,大兵出陽平關伐魏。維與夏侯霸商議曰:“向取雍州,不克而還;今若再出,必又有准備。公有何高見?”霸曰:“隴上諸郡,只有南安錢糧最廣;若先取之,足可爲本。向者不克而還,蓋因羌兵不至。今可先遣人會羌人於隴右,然後進兵出石營,從董亭直取南安。”維大喜曰:“公言甚妙!”遂遣郤正爲使,齎金珠蜀錦入羌,結好羌王。羌王迷當,得了禮物,便起兵五萬,令羌將俄何燒戈爲大先鋒,引兵南安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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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연희 16년 가을 장군 강유가 군사 2십만을 일으켜 요화와 장익을 좌우 선봉으로 삼고 하후패를 참모로, 장의를 운량사(군량수송관)로 하여 대군이 양평관을 나가 위나라를 정벌했다. 강유가 하후패와 상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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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옹주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소. 지금 다시 출병하면 그들은 반드시 준비를 했을 것이오. 공의 고견을 듣고 싶소."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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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상(섬서성 북쪽과 감숙성 서쪽 일대)의 여러 군 가운데 남안의 재물과 식량이 가장 많소. 만약 그곳을 선취하면 족히 근본으로 삼을 수 있소. 지난번에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큰 원인이 강인들의 군사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제 사람을 먼저 보내어 농우(감숙성 농산과 육반산 서쪽、황하 동쪽 일대)에서 강인들과 합세한 뒤 진격하여 석영으로 나가서 동정을 따라 남안을 바로 취해야 하오."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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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말씀이 절묘하오!"하고, 곧 극정을 사자로 삼아서 황금 구슬과 촉나라 비단을 가지고 강인의 땅으로 가서 강인의 왕과 결맹하게 했다. 강왕 미당이 예물을 받자 곧 군사 5만을 일으켜 오랑캐 장수 아하소과를 선봉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남안으로 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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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左將軍郭淮聞報,飛奏洛陽。司馬師問諸將曰:“誰敢去敵蜀兵?”輔國將軍徐質曰:“某願往。”師素知徐質英勇過人,心中大喜,即令徐質爲先鋒,令司馬昭爲大都督,領兵望隴西進發。軍至董亭,正遇薑維,兩軍列成陣勢。徐質使開山大斧,出馬挑戰。蜀陣中廖化出迎。戰不數合,化拖刀敗回。張翼縱馬挺槍而迎,戰不數合,又敗入陣。徐質驅兵掩殺,蜀兵大敗,退三十餘裏。司馬昭亦收兵回,各自下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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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좌장군 곽회가 이 소식을 듣고 낙양에 급보했다. 사마사가 여러 장수에게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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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용감히 촉나라 군사를 대적하러 가겠소?" 하니, 보국장군 서질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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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겠습니다." 했다. 사마사가 평소 서질의 용맹이 빼어남을 알기에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즉시 서질을 선봉으로 삼고 사마소를 대도독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농서(감숙성 동남부)를 향해 출발하게 했다. 군사가 동정에 이르러 마침 강유와 마주쳐서 양쪽 군대가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서질이 개산대부(산을 쪼갤 듯한 큰 도끼)를 들고 말을 타고 도전했다. 촉나라 진영에서 요화가 출격했다. 싸움이 불과 몇 합을 못 넘겨서 요화가 칼을 늘어뜨리고 패하여 돌아오니 장익이 말을 몰아 창을 꼬나쥐고 맞아 싸웠다. 싸움이 몇 합 지나지 않아 정익도 패하여 촉나라 진영으로 들어왔다. 서질이 군사를 몰아 엄습하니 촉나라 군사가 대패하여 3십여 리를 퇴각했다. 사마소도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서 각자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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薑維與夏侯霸商議曰:“徐質勇甚,當以何策擒之?”霸曰:“來日詐敗,以埋伏之計勝之。”維曰:“司馬昭乃仲達之子,豈不知兵法?若見地勢掩映,必不肯追。吾見魏兵累次斷吾糧道,今卻用此計誘之,可斬徐質矣。”遂喚廖化分付如此如此,又喚張翼分付如此如此:二人領兵去了。一面令軍士於路撒下鐵蒺藜,寨外多排鹿角,示以久計。徐質連日引兵搦戰,蜀兵不出。哨馬報司馬昭說:“蜀兵在鐵籠山後,用木牛流馬搬運糧草,以爲久計,只待羌兵策應。”昭喚徐質曰:“昔日所以勝蜀者,因斷彼糧道也。今蜀兵在鐵籠山後運糧,汝今夜引兵五千,斷其糧道,蜀兵自退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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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하후패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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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질이 아주 용맹하니 무슨 수로 그를 잡아야겠소?" 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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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는 척하여 매복하는 계책으로 이길 수 있소."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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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는 중달(사마의)의 아들인데 어찌 병법을 모를 리 있겠소? 만약 엄폐된 지세를 보면 틀림없이 추격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보니 위나라 군사가 누차에 걸쳐 아군의 군량 수송로를 끊었으니 이제 오히려 이 계책을 이용하여 유인하면 서질을 참할 수 있소." 하고, 곧 요화를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하고, 장익을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했다. 두 사람이 병력을 이끌고 갔다. 한편으로 병사들을 시켜 길에 마름쇠(마름 모양의 무쇠 장애물)를 뿌리고 영채 밖에 녹각(나무로 사슴뿔처럼 얼기설기 놓은 방어용 장애물)을 많이 설치하여 장기전에 대비함을 보여주었다. 서질이 날마다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걸지만, 촉나라 군사가 나오지 않았다. 정찰 기병이 사마소에게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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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 군이 철롱산 뒤에서 목우유마를 써서 군량과 사료를 운반하여 장기전을 도모하며 강족 군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했다. 사마소가 서질을 불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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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촉나라를 이긴 것은 그들의 군량 수송로를 끊어서요. 지금 촉나라 군사가 철롱산 뒤에서 군량을 운송하니 그대가 오늘 밤 군사 5천을 이끌고 그 양도를 끊으면 촉나라 군은 저절로 물러갈 것이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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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質領令,初更時分,引兵望鐵籠山來,果見蜀兵二百餘人,驅百餘頭木牛流馬,裝載糧草而行。魏兵一聲喊起,徐質當先攔住。蜀兵盡棄糧草而走。質分兵一半,押送糧草回寨;自引兵一半追來。追不到十裏,前面車仗橫截去路。質令軍士下馬拆開車仗,只見兩邊忽然火起。質急勒馬回走,後面山僻窄狹處,亦有車仗截路,火光迸起。質等冒煙突火,縱馬而出。一聲炮響,兩路軍殺來:左有廖化,右有張翼,大殺一陣,魏兵大敗。徐質奮死只身而走,人困馬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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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질이 명령을 받아 초경(저녁 8시쯤) 무렵에 군사를 이끌고 철롱산으로 가니, 과연 촉나라 군사 2백여 인이 1백여 량의 목우유마를 몰고 군량과 사료를 적재하여 갔다. 위나라 군사가 한바탕 함성을 지르고, 서질이 앞장서서 가로막으니 촉나라 군사가 군량과 사료를 모두 버리고 달아났다. 서질이 병력을 나누어 절반은 군량과 사료를 노획하여 영채로 돌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이끌고 추격했다. 추격한 지 십 리가 못 되어서 앞쪽에 수레와 병장기로 갈 길을 막아놓았다. 서질이 군사를 시켜 말에서 내려 수레와 병장기를 치우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서질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지만, 뒤쪽 산속의 외지고 좁은 곳에도 수레로 길을 막고 불빛이 솟아올랐다. 서질 등이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뚫고 말을 몰아 나갔다.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양쪽에서 군사가 달려들었다. 왼쪽은 요화가, 오른쪽은 장익이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위나라 군사가 대패했다. 서질이 죽기살기로 싸워서 겨우 자신만 달아나지만, 사람도 말도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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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奔走間,前面一枝兵殺到,乃薑維也。質大驚無措,被維一槍刺倒坐下馬,徐質跌下馬來,被 衆軍亂刀砍死。質所分一半押糧兵,亦被夏侯霸所擒,盡降其 衆。霸將魏兵衣甲馬匹,令蜀兵穿了,就令騎坐,打著魏軍旗號,從小路徑奔回魏寨來。魏軍見本部兵回,開門放入,蜀兵就寨中殺起。司馬昭大驚,慌忙上馬走時,前面廖化殺來。昭不能前進,急退時,薑維引兵從小路殺到。昭四下無路,只得勒兵上鐵籠山據守。原來此山只有一條路,四下皆險峻難上;其上惟有一泉,止夠百人之飲,——此時昭手下有六千人,被薑維絕其路口,山上泉水不敷,人馬枯渴。昭仰天長歎曰:“吾死於此地矣!”後人有詩曰:“妙算薑維不等閑,魏師受困鐵籠間:龐涓始入馬陵道,項羽初圍九裏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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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달아나는 사이에, 앞에서 한 무리 군사가 몰려오니 바로 강유였다. 서질이 크게 놀라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강유의 창에 찔려서 말 아래로 꼬꾸라졌다. 서질이 말에서 떨어져서 여러 군사들의 난도질에 베어져 죽었다. 서질이 나눈 나머지 절반의 군사들도 군량을 노획하여 가다가 역시 하후패에게 잡혀서 모조리 투항했다. 하후패가 위나라 군의 갑옷을 벗겨서 촉나라 병사들에게 입히고 위나라 군의 말을 타게 하여 위나라 군의 깃발을 들고 지름길을 따라 위나라 영채로 질러갔다. 위나라 군이 본부 병력이 돌아오는 줄 알고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니 촉나라 군이 영채 안으로 쇄도했다. 사마소가 크게 놀라 황망히 말에 올라 달아나려는데 앞쪽에서 요화가 달려들었다. 사마소가 전진하지 못하여 급히 물러나려 할 때,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을 따라 쇄도했다. 사마소가 사방으로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이끌고 철롱산에 올라가서 점거하여 지켰다. 원래 이 산에는 길이 한 갈래 있는데 사방이 모두 험준하여 오르기가 어렵고 그 위에 오로지 샘이 하나 있어 겨우 수백 사람이 마실 수 있었다. 이때 사마소의 수하에 6천 명이 있었는데, 강유가 길 입구를 차단하여 산 위의 샘물까지 갈 수 없어 사람과 말이 목이 말랐다. 사마소가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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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서 죽겠구나!"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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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묘책을 내니 얕볼 수 없구나. 위나라 군사가 철롱산에서 포위되니, 방연이 처음에 마릉의 길로 접어들고, 항우가 구리산에서 포위된 것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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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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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簿王韜曰:“昔日耿恭受困,拜井而得甘泉。將軍何不效之?”昭從其言,遂上山頂泉邊,再拜而祝曰:“昭奉詔來退蜀兵,若昭合死,令甘泉枯竭,昭自當刎頸,教部軍盡降;如壽祿未終,願蒼天早賜甘泉,以活 衆命!”祝畢,泉水湧出,取之不竭,因此人馬不死。卻說,薑維在山下困住魏兵,謂 衆將曰:“昔日丞相在上方穀,不曾捉住司馬懿,吾深爲恨;今司馬昭必被吾擒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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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왕도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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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경공(후한의 장군)이 포위됐을 때 우물에 절하여 샘물을 얻었습니다. 장군께서 왜 그를 본받지 않으십니까?" 하니, 사마소가 그 말을 따라 곧 산 위의 샘물가로 올라가서 재배하고 축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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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촉나라 군을 물리치려 왔사오니, 만약 제가 죽어야 마땅하다면 감천이 고갈되게 하여, 저는 스스로 목을 베고 저희 군사들은 모조리 투항하게 하십시오. 만약 저의 목숨과 복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바라옵건대 푸른 하늘은 어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시어 뭇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소서!" 했다. 축원을 마치자 샘물이 솟아나니 이를 길어도 다하지 않았다. 이로써 인마들이 죽지 않았다. 한편, 강유는 산 아래에서 위나라 군사를 포위하고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지난날 승상께서 상방곡에서 사마의를 잡지 못하여 내가 몹시 한스러워했소. 이제 사마소가 틀림없이 내게 잡힐 것이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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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郭淮聽知司馬昭困於鐵籠山上,欲提兵來。陳泰曰:“薑維會合羌兵,欲先取南安。今羌兵已到,將軍若撤兵去救,羌兵必乘虛襲我後也。可先令人詐降羌人,於中取事;若退了此兵,方可救鐵籠之圍。”郭淮從之,遂令陳泰引五千兵,徑到羌王寨內,解甲而入,泣拜曰:“郭淮妄自尊大,常有殺泰之心,故來投降。郭淮軍中虛實,某俱知之。只今夜願引一軍前去劫寨,便可成功。如兵到魏寨,自有內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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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곽회는 사마소가 철롱산 위에서 포위당한 것을 듣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려고 했다. 진태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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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강족 군사와 회합하여 남안을 선취하려 합니다. 이제 강족 군사가 왔는데 장군께서 철병하여 구원하러 가면, 강족 군사가 그 틈을 타서 우리 배후를 습격할 것입니다. 먼저 사람을 시켜 강족 군사들에게 거짓으로 항복하게 하여 중간에서 공작하게 하십시오. 만약 이들 강족 군사를 물러나게 하면, 비로소 철롱산의 포위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니, 곽회가 이 말에 따라, 곧 진태를 시켜 군사 5천을 이끌고 강족 왕의 영채로 가게 했다. 진태가 갑옷을 풀고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강왕에게 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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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회가 망녕되게 스스로를 크게 높이고, 늘 저를 죽일 마음을 품은지라 투항하러 왔습니다. 곽회 군중의 허실을 제가 모두 압니다. 오늘 밤 1군을 이끌고 영채를 습격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군사가 위나라 영채에 이르면 그 안에서 내응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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迷當大喜,遂令俄何燒戈同陳泰來劫魏寨。俄何燒戈教泰降兵在後,令泰引羌兵爲前部。是夜二更,竟到魏寨,寨門大開。陳泰一騎馬先入。俄何燒戈驟馬挺槍入寨之時,只叫得一聲苦,連人帶馬,跌在陷坑裏。陳泰兵從後面殺來,郭淮從左邊殺來,羌兵大亂,自相踐踏,死者無數,生者盡降。俄何燒戈自刎而死。郭淮、陳泰引兵直殺到羌人寨中,迷當大王急出帳上馬時,被魏兵生擒活捉,來見郭淮。淮慌下馬,親去其縛,用好言撫慰曰:“朝廷素以公爲忠義,今何故助蜀人也?”迷當慚愧伏罪。淮乃說迷當曰:“公今爲前部,去解鐵籠山之圍,退了蜀兵,吾奏准天子,自有厚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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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 왕) 미당이 크게 기뻐하며 곧 아하소과에게 명하여 진태와 함께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라 했다. 아하소과가 진태에게 지시하여 항복한 병사들을 뒤에 두고, 진태로 하여금 강족 군사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게 했다. 이날 밤 2경(밤 10시쯤)에 마침내 위나라 영채에 이르니 영문이 크게 열려 있었다. 진태가 홀로 말을 타고 먼저 들어갔다. 아하소과가 말을 몰아 창을 잡고 영채로 따라 들어가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람과 말이 함께 함정 속으로 거꾸러졌다. 진태의 군사가 뒤에서 달려들고 곽회가 왼쪽에서 달려드니 강족 군사들이 대혼란에 빠져 서로 짓밟아 죽은 자가 무수하고 살아남은 자는 모두 항복했다. 아하소과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곽회와 진태가 군사를 이끌고 강족의 영채로 곧바로 쇄도하니 강왕 미당이 급히 군막을 나와 말에 오르다가 위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곽회 앞으로 끌려갔다. 곽회가 황망히 말에서 내려 친히 그 결박을 풀어주고 좋은 말로써 위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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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평소 공을 충의롭다고 여겼거늘 이제 무슨 까닭으로 촉나라 사람들을 돕는 것이오?" 하니, 미당이 부끄러워하며 죄를 청했다. 이에 곽회가 미당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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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 이제 선두에 서서 철롱산의 포위를 풀러 가서, 촉나라 군사를 물리치면 내가 천자께 상주하여 공께 두터운 포상을 내리게 하겠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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迷當從之,遂引羌兵在前,魏兵在後,徑奔鐵籠山。時值三更,先令人報知薑維。維大喜,教請入相見。魏兵多半雜在羌人部內;行到蜀寨前,維令大兵皆在寨外屯紥,迷當引百餘人到中軍帳前。薑維、夏侯霸二人出迎。魏將不等迷當開言,就從背後殺將起來。維大驚,急上馬而走。羌、魏之兵,一齊殺入。蜀兵四分五落,各自逃生。維手無器械,腰間止有一副弓箭,走得慌忙,箭皆落了,只有空壺。維望山中而走,背後郭淮引兵趕來;見維手無寸鐵,乃驟馬挺槍追之。看看至近,維虛拽弓弦,連響十餘次。淮連躲數番,不見箭到,知維無箭,乃掛住鋼槍,拈弓搭箭射之。維急閃過,順手接了,就扣在弓弦上;待淮追近,望面門上盡力射去,淮應弦落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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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 왕) 미당이 이를 따라 곧 강병들을 이끌고 앞서고 위나라 군사가 뒤따라서 철롱산으로 달려갔다. 3경(자정쯤)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보내어 강유에게 알리니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와서 만나자고 했다. 위나라 군사 태반이 강족 부대 속에 섞여들었다. 이들이 촉나라 영채 앞에 이르자, 강유가 대군은 모두 영채 밖에 머물라 하고, 미당은 백여 명을 이끌고 중군의 군막 앞으로 오라고 했다. 강유와 하후패 두 장수가 나가서 (미당을) 맞이했다. 위나라 장수가 미당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배후에서 달려들었다. 강유가 크게 놀라 황급히 말을 타고 달아났다. 강족 군사들과 위나라 군사가 일제히 돌입하니 촉나라 군사가 어지럽게 흩어져서 각자 목숨을 구하여 달아났다. 강유가 손에 아무 무기가 없고 허리에 다만 한 벌 활과 화살을 차고 있었는데 황망히 달아나다 보니 화살이 모두 땅으로 떨어져서 화살통이 텅 비었다. 강유가 산속으로 달아나자 뒤에서 곽회가 군사를 이끌고 쫓아갔다. 강유의 손에 작은 무기도 없는 것을 보고 곽회가 말을 몰아 창을 꼬나쥐고 뒤쫓았다. 점점 따라붙자 강유가 빈 활시위를 당기니 잇달아 십여 차례 활 쏘는 소리가 들렸다. 곽회가 연속하여 피하지만 화살이 날아오지 않자, 강유에게 화살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강철 창을 옆에 걸어놓고 화살을 활시위에 매겨서 쏘았다. 강유가 민첩하게 피하더니 손으로 잡아서 바로 활시위에 매겨서 곽회가 접근하기를 기다려서 얼굴을 향하여 힘껏 쏘았다. 곽회가 활시위 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40
維勒回馬來殺郭淮,魏軍驟至。維下手不及,只掣得淮槍而去。魏兵不敢追趕,急救淮歸寨,拔出箭頭,血流不止而死。司馬昭下山引兵追趕,半途而回。夏侯霸隨後逃至,與薑維一齊奔走。維折了許多人馬,一路收紥不住,自回漢中。雖然兵敗,卻射死郭淮,殺死徐質,挫動魏國之威,將功補罪。卻說,司馬昭犒勞羌兵,發遣回國去訖,班師還洛陽,與兄司馬師專制朝權,群臣莫敢不服。魏主曹芳每見師入朝,戰栗不已,如針刺背。一日,芳設朝,見師帶劍上殿,慌忙下榻迎之。師笑曰:“豈有君迎臣之禮也,請陛下穩便。”須臾,群臣奏事,司馬師俱自剖斷,並不啟奏魏主。少時朝退,師昂然下殿,乘車出內,前遮後擁,不下數千人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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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말머리를 돌려 곽회를 죽이려 가는데 위나라 군사가 몰려왔다. 강유가 미처 죽이지 못하고 다만 곽회의 창을 집어들고 떠났다. 위나라 군사들이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급히 곽회를 구출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화살촉을 뽑아내지만 피가 그치지 않아 사망했다. 사마소가 산을 내려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다가 도중에 돌아왔다. 하후패가 뒤따라 도망하다가 강유와 함께 달아났다. 강유가 허다한 인마를 잃고 한 방면의 영채도 수습하지 못한 채 한중으로 철수했다. 비록 패전했지만 곽회를 사살하고, 서질을 격살하여 위나라의 위세를 좌절시켜 흔드니 그 공로가 그 죄를 덮었다. 한편, 사마소가 강족의 병사들을 호궤하여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낸 뒤, 군사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가서 그 형 사마사와 함께 조정의 권력을 전제하니 신하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위나라 군주 조방은 사마사가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전율하여 마지않았다. 어느 날 조방이 조회를 열었는데, 사마사가 검을 차고 전각을 올라오니 조방이 황망히 용상을 내려가 맞이했다. 사마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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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임금이 신하를 맞이하는 예법이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편안하게 하십시오."했다. 잠시 뒤 신하들이 상주하자 사마사가 모두 스스로 판단하며 위나라 군주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얼마 뒤 사마사가 물러가며 당당하게 전각을 내려가 수레를 타고 나가는데 앞뒤로 옹위하는 이들이 적어도 수천 사람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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芳退入後殿,顧左右止有三人:乃太常夏侯玄,中書令李豐,光祿大夫張緝,緝乃張皇後之父,曹芳之皇丈也。芳叱退近侍,同三人至密室商議。芳執張緝之手而哭曰:“司馬師視朕如小兒,覷百官如草芥,社稷早晚必歸此人矣!”言訖大哭。李豐奏曰:“陛下勿憂。臣雖不才,願以陛下之明詔,聚四方之英傑,以剿此賊。”夏侯玄奏曰:“臣叔夏侯霸降蜀,因懼司馬兄弟謀害故耳;今若剿除此賊,臣叔必回也。臣乃國家舊戚,安敢坐視奸賊亂國,願同奉詔討之。”芳曰:“但恐不能耳。”三人哭奏曰:“臣等誓當同心滅賊,以報陛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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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이 안쪽 궁전으로 물러나서 좌우를 살펴보니 겨우 세 사람이 남아 있을 뿐인데, 바로 태상 하후현, 중서령 이풍, 광록대부 장집이었다. 장집은 장 황후의 부친이요 조방의 장인이었다. 조방이 근시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세 사람과 함께 밀실로 가서 상의했다. 조방이 장집의 손을 잡고 곡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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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사가 짐을 어린애 보듯이 하고, 백관을 티끌처럼 여기니 종묘사직이 조만간 반드시 그 자에게 넘어가고 말겠소!" 했다. 말을 마치고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이풍이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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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걱정하지 마소서. 신이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바라옵건대 폐하의 밝은 조서를 받아 사방의 영웅호걸들을 모아 이 역적을 없애겠나이다." 했다. 하후현이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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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저씨 하후패가 촉나라에 귀순한 것은 사마 형제가 모해할까 두려워한 까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이 도적을 없애면 신의 아저씨가 틀림없이 돌아올 것입니다. 신이 바로 국가의 오랜 친척인데 어찌 감히 저 간사한 역적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좌시하겠습니까? 함께 조서를 받들어 토벌하기를 바라나이다." 했다. 조방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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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능히 할 수 없을까 두려울 따름이오." 하니, 세 사람이 곡하며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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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맹세코 한마음으로 역적을 토벌하여 폐하께 보답하겠나이다!" 했다.
 
 
50
芳脫下龍鳳汗衫,咬破指尖,寫了血詔,授與張緝,乃囑曰:“朕祖武皇帝誅董承,蓋爲機事不密也。卿等須謹細,勿泄於外。”豐曰:“陛下何出此不利之言?臣等非董承之輩,司馬師安比武祖也?陛下勿疑。”三人辭出,至東華門左側,正見司馬師帶劍而來,從者數百人,皆持兵器。三人立於道傍。師問曰:“汝三人退朝何遲?”李豐曰:“聖上在內廷觀書,我三人侍讀故耳。”師曰:“所看何書?”豐曰:“乃夏、商、周三代之書也。”師曰:“上見此書,問何故事?”豐曰:“天子所問伊尹扶商、周公攝政之事,我等皆奏曰:今司馬大將軍,即伊尹、周公也。”
 
51
조방이 용과 봉황이 수 놓인 적삼을 벗더니 손가락 끝을 깨물어 피로써 조서를 써서 장집에게 주며 부탁하기를,
 
52
“짐의 증조부 무황제(조조)께서 동승을 주살할 수 있었던 것은 무릇 동승이 기밀을 지키지 못해서였소. 경들은 반드시 삼가고 세밀히 하여 절대 바깥으로 누설하지 마시오." 하니, 이풍이 말하기를,
 
53
“폐하께서 어찌 이런 이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신들은 동승의 무리가 아니며, 사마사가 어찌 감히 무황제와 같겠습니까? 폐하께서 걱정하지 마소서." 했다. 세 사람이 고별하고 나와서 동화문 좌측에 이르자, 마침 사마사가 검을 차고 오며, 그를 따르는 자들 수백 명이 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길가에 서 있으니, 사마소가 묻기를,
 
54
“세 분의 퇴궐이 어찌 이렇게 늦으시오?" 하니, 이풍이 말하기를,
 
55
“성상께서 내정에서 책을 읽으셔서 저희 세 사람이 시독(독서 시중)했기 때문입니다." 했다. 사마사가 말하기를,
 
56
“무슨 책을 보셨소?" 하니, 이풍이 말하기를,
 
57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삼대의 책입니다." 하니, 사마사가 말하기를,
 
58
“상께서 그 책을 읽으시고 무슨 고사를 물으셨소?" 했다. 이풍이 말하기를,
 
59
“천자께서 물으신 것은 이윤이 상나라를 붙들고, 주공이 섭정한 일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아뢰기를, 이제 사마 대장군이 바로 이윤과 주공 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했다.
 
 
60
師冷笑曰:“汝等豈將吾比伊尹、周公!其心實指吾爲王莽、董卓!”三人皆曰:“我等皆將軍門下之人,安敢如此?”師大怒曰:“汝等乃口諛之人!適間與天子在密室中所哭何事?”三人曰:“實無此狀。”師叱曰:“汝三人淚眼尚紅,如何抵賴!”夏侯玄知事已泄,乃厲聲大罵曰:“吾等所哭者,爲汝威震其主,將謀篡逆耳!”師大怒,叱武士捉夏侯玄。玄揎拳裸袖,徑擊司馬師,卻被武士擒住。師令將各人搜檢,於張緝身畔搜出一龍鳳汗衫,上有血字。左右呈與司馬師。師視之,乃密詔也。
 
61
사마사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62
“너희가 어찌 나를 이윤과 주공에 비했겠느냐! 마음속으로 나를 가리켜 왕망과 동탁이라고 했겠지!”
 
63
하니, 세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64
“저희들이 모두 장군 문하의 사람들인데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했다. 사마사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65
“너희가 바로 입으로 아첨하는 놈들이구나! 조금 전에 천자와 함께 밀실 안에서 통곡한 것은 무슨 일이냐?" 하니, 세 사람이 말하기를,
 
66
“참으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했다. 사마사가 꾸짖어 말하기를,
 
67
“너희 세 사람이 눈물을 흘려 아직도 눈이 붉거늘 어찌 부인하느냐!" 했다. 하후현이 이미 일이 누설된 것을 알고, 소리 높여 크게 꾸짖기를,
 
68
“우리가 곡을 한 것은 네가 그 주인을 위협하여 장차 찬역을 꾀하기 때문이다!" 했다. 사마사가 크게 노하여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하후현을 잡으라고 했다. 하후현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을 휘두르며 사마사를 때리려 하지만 무사들에게 사로잡혔다. 사마사가 장수들을 시켜 각각을 수색하니 장집의 몸에서 용과 봉을 수 놓은 한삼이 나오고, 그 위에 혈서가 적혀 있었다. 좌우의 모시는 자가 사마사에게 드렸다. 사마사가 보니 바로 천자의 비밀 조서였다.
 
 
69
詔曰:“司馬師弟兄,共持大權,將圖篡逆。所以詔制,皆非朕意。各部官兵將士,可同仗忠義,討滅賊臣,匡扶社稷。功成之日,重加爵賞。”司馬師看畢,勃然大怒曰:“原來汝等正欲謀害吾兄弟!情理難容!”遂令將三人腰斬於市,滅其三族。三人罵不絕口。比臨東市中,牙齒盡被打落,各人含糊數罵而死。師直入後宮。魏主曹芳正與張皇後商議此事。皇後曰:“內廷耳目甚多,倘事泄露,必累妾矣!”
 
70
조서에 이르기를,
 
71
“사마사 형제가 함께 대권을 장악하고 장차 찬역을 도모하오. 군주의 명령으로 행하는 것들도 모두 짐의 뜻이 아니오. 각부의 관병과 장사들은 다 함께 충의를 받들어 역적 신하를 토멸하여 사직을 바로잡으시오. 공을 이루는 날에 벼슬과 상을 크게 내릴 것이오.”
 
72
했다. 사마사가 읽고나서 벌컥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73
“알고 보니 너희가 음모를 꾸며 우리 형제를 해치려 했구나! 참으로 용서하기 어렵구나!" 하고, 즉시 영을 내려 세 사람을 저자에서 허리를 베어 죽이고 그 삼족을 멸하라 했다. 세 사람이 욕을 멈추지 않았다. 동쪽 시장(처형장)에 이르러서 얻어맞아서 이가 모두 빠지고,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렵건만 각각 수차례 욕설을 퍼부으며 죽었다. 사마사가 곧바로 후궁으로 들어갔다. 위나라 군주 조방이 마침 장황후와 이 일을 상의하고 있는데, 황후가 말하기를,
 
74
“궁정 안에 눈과 귀가 매우 많은데 만약 이 일이 누설되면 반드시 소첩이 연루될 것입니다!" 했다.
 
 
75
正言間,忽見師入,皇後大驚。師按劍謂芳曰:“臣父立陛下爲君,功德不在周公之下;臣事陛下,亦與伊尹何別乎?今反以恩爲仇,以功爲過,欲與二三小臣,謀害臣兄弟,何也?”芳曰:“朕無此心。”師袖中取出汗衫,擲之於地曰:“此誰人所作耶!”芳魂飛天外,魄散九霄,戰栗而答曰:“此皆爲他人所逼故也。朕豈敢興此心?”師曰:“妄誣大臣造反,當加何罪?”芳跪告曰:“朕合有罪,望大將軍恕之!”師曰:“陛下請起。國法未可廢也。”乃指張皇後曰:“此是張緝之女,理當除之!”芳大哭求免,師不從,叱左右將張後捉出,至東華門內,用白練絞死。後人有詩曰:“當年伏後出宮門,跣足哀號別至尊。司馬今朝依此例,天教還報在兒孫。”
 
76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갑자기 사마사가 들어오니 황후가 깜짝 놀았다. 사마사가 검을 매만지며 조방에게 말하기를,
 
77
“신의 부친이 폐하를 임금으로 옹립했으니 그 공덕이 주공보다 아래에 있지 않고, 신이 폐하를 섬김이 역시 이윤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제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고 공을 허물로 여겨서, 두세 사람의 신하와 더불어 신의 형제를 모해하려 하시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했다, 조방이 말하기를,
 
78
“짐은 그런 마음이 없소." 하니, 사마사가 소매 안에서 용과 봉을 수놓은 한삼을 꺼내어 바닥에 던지며 말하기를,
 
79
“이것은 누가 쓴 것입니까?" 했다. 조방의 혼이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 넋이 하늘 끝으로 흩어져 벌벌 떨며 답하기를,
 
80
“이것은 모두 타인이 핍박하여 쓴 것이오. 짐이 어찌 감히 이런 마음을 일으키겠소?" 하니, 사마사가 말하기를,
 
81
“대신을 반역했다고 함부로 무고하면 무슨 죄를 주어야 마땅하겠습니까?" 했다. 조방이 무릎 꿇고 고하기를,
 
82
“짐에게 죄가 있는 게 맞소. 대장군께서 용서해 주기를 바라오." 하니, 사마사가 말하기를,
 
83
“폐하 일어나십시오. 국법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곧 장황후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84
“이 사람은 장집의 딸이니 제거해야 마땅합니다." 했다. 조방이 크게 울며 살려달라고 하지만, 사마사가 듣지 않고 좌우에게 소리쳐서 장황후를 끌고 나가서 동화문 안에 이르러 흰 비단으로 목을 졸라 죽였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85
“지난날 복황후가 궁문 밖으로 끌려 나갈 때, 맨발로 지존에게 애달프게 작별을 고했네. 사마사가 이 왕조에서 그것을 본받으니, 자손에게 복수가 돌아감을 하늘이 가르치네.”
 
86
했다.
 
 
87
次日,司馬師大會群臣曰:“今主上荒淫無道,褻近娼優,聽信讒言,閉塞賢路:其罪甚於漢之昌邑,不能主天下。吾謹按伊尹、霍光之法,別立新君,以保社稷,以安天下,如何?” 衆皆應曰:“大將軍行伊、霍之事,所謂應天順人,誰敢違命?”師遂同多官入永寧宮,奏聞太後。太後曰:“大將軍欲立何人爲君?”師曰:“臣觀彭城王曹據,聰明仁孝,可以爲天下之主。”太後曰:“彭城王乃老身之叔,今立爲君,我何以當之?今有高貴鄉公曹髦,乃文皇帝之孫;此人溫恭克讓,可以立之。卿等大臣,從長計議。”
 
88
다음날, 사마사가 신하들을 크게 모아 말하기를,
 
89
“지금의 주상이 황음무도하고 음란하기가기생과 가까우며 참언을 듣고 믿어 현명한 사람의 길을 막았소. 그 죄가 한나라의 창읍왕(향연과 음란을 일삼다가 곽광에 의해 즉위한 지 27일 만에 폐위됨)보다 심하니 천하를 다스릴 수 없소. 내가 삼가 이윤과 곽광의 법을 본받아 따로 새 임금을 옹립함으로써 사직을 보전하고 천하를 안정되게 하려는데 어떻겠소?" 하니, 사람들이 모두 응답하기를,
 
90
“대장군께서 이윤과 곽광의 사례를 행함은 이른바 하늘의 뜻에 응하고 민심을 따름인데 누가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했다. 사마사가 곧 많은 관리와 함께 영녕궁으로 들어가 태후에게 아뢰었다. 태후가 말하기를,
 
91
“대장군은 누구를 임금으로 세우고 싶소?" 하니, 사마사가 말하기를,
 
92
“신이 살펴보건대 팽성왕 조거가 총명하고 인자롭고 효성스러우니 가히 천하의 주인이 될 만합니다." 했다. 태후가 말하기를,
 
93
“팽성왕은 이 늙은 몸의 숙부인데, 이제 임금이 된다면 내가 어찌해야겠소? 지금 고귀향공 조모는 문황제(조비)의 손자로 이 사람이 온화하고 공경하며 겸양하니 옹립할 만하오. 경을 비롯한 대신들이 천천히 자세하게 상의하시오." 했다.
 
 
94
一人奏曰:“太後之言是也。便可立之。” 衆視之,乃司馬師宗叔司馬孚也。師遂遣使往元城召高貴鄉公;請太後升太極殿,召芳責之曰:“汝荒淫無度,褻近娼優,不可承天下;當納下璽綬,複齊王之爵,目下起程,非宣召不許入朝。”芳泣拜太後,納了國寶,乘王車大哭而去。只有數員忠義之臣,含淚而送。後人有詩曰:“昔日曹瞞相漢時,欺他寡婦與孤兒。誰知四十餘年後,寡婦孤兒亦被欺。”
 
95
어떤 사람이 아뢰기를,
 
96
“태후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서 그분을 옹립해야 합니다." 했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바로 사마사의 아저씨인 사마부였다. 사마사가 곧 사자를 원성으로 보내어 고귀향공을 불러오게 하고, 태후에게 청하여 태극전으로 가서 조방을 불러 이렇게 꾸짖게 했다.
 
97
“너는 황음무도하고 음란하기가 기생과 가까워서 천하를 이어받을 수 없다. 마땅히 옥새를 내려놓고 다시 제왕의 작위로 돌아가야 할 것이니 당장 길을 떠나라. 앞으로 임금의 부름이 아니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불허한다." 조방이 눈물 흘리며 태후에게 절하고 국새를 바친 뒤, 왕의 수레를 타고 크게 울면서 떠났다. 몇 명 충의로운 신하들만이 눈물을 머금고 보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98
“지난날 조만(조조)이 한나라의 승상일 적에, 남의 과부와 고아를 업신여겼지. 누가 알았으랴! 사십여 년 뒤에, 후손의 과부와 고아가 그런 꼴 당할 줄을!”
 
99
했다.
 
 
100
卻說,高貴鄉公曹髦,字彥士,乃文帝之孫,東海定王霖之子也。當日,司馬師以太後命宣至,文武官僚備鑾駕於西掖門外拜迎。髦慌忙答禮。太尉王肅曰:“主上不當答禮。”髦曰:“吾亦人臣也,安得不答禮乎?”文武扶髦上輦入宮,髦辭曰:“太後詔命,不知爲何,吾安敢乘輦而入?”遂步行至太極東堂。司馬師迎著,髦先下拜,師急扶起。問候已畢,引見太後。後曰:“吾見汝年幼時,有帝王之相;汝今可爲天下之主:務須恭儉節用,布德施仁,勿辱先帝也。”
 
101
한편, 고귀향공 조모는 자가 언사인데 바로 문제(조비)의 손자로서 동해정왕 조림의 아들이었다. 그날 사마사가 태후의 명으로 오게 하니, 문무 관료가 서액문 밖에 난가(천자의 수레)를 준비하여 절을 올려 영접했다. 조모가 황망히 답례하니 태위 왕숙이 말하기를,
 
102
“주상께서는 답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니, 조모가 말하기를,
 
103
“나도 남의 신하이거늘 어찌 답례를 하지 않겠소." 했다. 문무 관료가 조모를 부축하여 연(황제의 수레)에 태워서 입궁하려 하니, 조모가 사양해 말하기를,
 
104
“태후의 명령이 어찌된 것인지 모르는데 내가 어찌감히 연을 타고 입궁하겠소?" 하고, 결국 걸어서 태극전 동당까지 가니, 사마사가 영접했다. 조모가 먼저 몸을 숙여 절하니, 사마사가 급히 부축하여 일으켰다. 문후를 마치고 태후에게 데려가니 태후가 말하기를,
 
105
“내가 보니 그대는 어려서부터 제왕의 상을 갖고 있었소. 그대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돼야 하오.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고 절약할 것이며 덕과 인을 베풀어 선제를 욕보이지 마시오." 했다.
 
 
106
髦再三謙辭。師令文武請髦出太極殿,是日立爲新君,改嘉平六年爲正元元年,大赦天下,假大將軍司馬師黃鉞,入朝不趨,奏事不名,帶劍上殿。文武百官,各有封賜。正元二年春正月,有細作飛報,說鎮東將軍毋丘儉、揚州刺史文欽,以廢主爲名,起兵前來。司馬師大驚。正是:漢臣曾有勤王志,魏將還興討賊師。
 
107
조모가 두 번 세 번 사양하지만, 사마사가 문무 관료들에게 명하여 조모를 태극전으로 나오게 청하여 그날 바로 새 임금으로 옹립하고, 연호를 가평 6년에서 정원 원년으로 고쳤다. 천하에 크게 사면령을 내리고, 대장군 사마사에게 황월(황금 도끼로 왕권의 상징인데 간혹 정벌하는 중신에게 특별히 내리기도 함)을 내리며, 그에게 황제를 알현하러 조정에 들어올 때 종종걸음을 하지 않고, 임금에게 상주할 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칼을 차고 궁전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문무백관도 각각 벼슬과 포상을 받았다. 정원 2년 봄 정월에 세작이 급보하니,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임금을 폐한 일을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오고 있다고 했다. 사마사가 크게 놀랐다. 이야말로, 일찍이 한나라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할 뜻을 가졌었는데, 위나라 장수 또한 역적을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키네.
 
 
108
未知如何迎敵,且看下文分解。
 
109
어떻게 대적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9회 촉한의 장수가 기발한 계책으로 사마소를 포위하고 위나라 조방이 인과응보로 쫓겨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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